항목 ID | GC04900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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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志禎 |
이칭/별칭 | 지숙(志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혜원 |
[정의]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출신의 문신이자 시인.
[가계]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지숙(志叔). 고조할아버지는 좌찬성 능안 부원군(綾安府院君) 구사맹(具思孟)으로, 딸이 인조의 어머니인 인헌 왕후(仁獻王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구굉(具宏)이고, 할아버지는 구인기(具仁墍)이다. 아버지는 숙종 대 한성부 판윤 겸 총융사·지돈령부사 등을 지낸 구일(具鎰)로, 구지정(具志禎)[1647~1713]은 세 아들 중 둘째이다. 부인은 이지무(李枝茂)의 딸이다.
[활동 사항]
구지정은 1666년(현종 7) 식년 진사시 3등으로 급제하였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아버지 구일은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고, 구지정 역시 나라를 원망하는 말을 많이 하고 상중에 음비(陰祕)한다는 등의 구실로 귀양을 갔다가 3년 뒤 복직하였다. 1697년(숙종 23) 영의정 남구만(南九萬)과 여러 재상이 추천한 인물들이 서용될 때 조상우(趙相愚)의 추천으로 음관(蔭官)을 받았고, 이후 공주 목사와 황주 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695년(숙종 21) 아버지가 사망하자 양주의 선영[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장사지내고 1702년(숙종 28)에 묘표를 세웠다. 구일 묘표는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글을 짓고 구지정이 글씨를 썼다. 구일 묘는 남양주시 금곡동 군장리 산93번지에 있으며, 일본 교토 대학교[京都大學校]에 탁본이 소장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구지정이 지은 몇 편의 시조가 『해동가요(海東歌謠)』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 있다. 주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노래하며 당시 정치의 부패상을 풍자하는 내용들인데, 대표적으로 「쥐 찬 소로기들아」가 많이 알려져 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쥐 찬 쇼로기들아 ㅣ브로롸 쟈랑 마라./ 청강(清江) 여왼 학(鶴)이 주리다 부를소냐./ 내 몸이 한가(閑暇)야마 못진들 엇리”
[묘소]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