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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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以楷 |
이칭/별칭 | 성범(聖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189-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기승 |
출생 시기/일시 | 1707년 2월 13일 - 이이해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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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23년 - 이이해 의과 식년시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771년 7월 30일 - 이이해 졸 |
묘소|단소 | 이이해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189-1 |
성격 | 내의 |
성별 | 남 |
본관 | 태안(泰安) |
대표 관직 | 지중추부사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내의.
[가계]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성범(聖範). 아버지는 주학 계사(籌學計士)를 지낸 이봉령(李鳳齡)으로, 이이해(李以楷)[1707~1771]는 큰아들이다. 첫 번째 부인은 첨절제사 김성장(金聖章)의 딸인 청양 김씨(靑陽金氏)이며, 두 번째 부인은 사과(司果) 한두기(韓斗璣)의 딸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두 딸만 있어서 사촌형인 이이재(李以材)의 아들 이문철(李文喆)을 양자로 삼았다.
[활동 사항]
이이해는 17세 때인 1723년(경종 3) 의과(醫科) 식년시에 합격하였다. 1750년(영조 26)부터 내의(內醫)로서 영조를 측근에서 섬겨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이후 용인 현령, 삭령 군수로 잠시 궁궐을 떠나기도 하였지만 죽기 전까지 매일 같이 영조를 모시며 국왕의 건강을 챙겼다. 관품은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 관직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묘소]
묘는 사적 제440호로 지정된 서울 초안산 분묘군의 가장 북단에 있는 태안 이씨 묘역[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자리하고 있다. 『태안 이씨 세보(泰安李氏世譜)』에는 선영 부근에 두 부인과 합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2년 현재 봉분과 여러 석물이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