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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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睦林奇 |
이칭/별칭 | 사규(士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52-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나종현 |
출생 시기/일시 | 1625년 - 목임기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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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46년 - 목임기 선전관으로 출사 |
몰년 시기/일시 | 1702년 - 목임기 졸 |
묘소|단소 | 목임기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사천(泗川) |
대표 관직 | 삼도 통제사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가계]
본관은 사천(泗川). 증조할아버지 목첨(睦詹)은 선조 연간에 대사간, 도승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할아버지 목서흠(睦敍欽)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인조를 호종한 바 있으며 관직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아버지 목처선(睦處善)은 목서흠의 큰아들로 인천 감목관, 연천 현감 등을 지냈다. 어머니는 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우의정에 추증된 정응성(鄭應聖)의 첫째 딸로, 목임기(睦林奇)[1625~1702]는 1남 5녀 중 큰아들이다.
[활동 사항]
목임기는 1545년(인조 23) 무과에 급제하여 1646년(인조 24) 선전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69년(현종 10) 경주 영장으로 있으면서, 훈련별대(訓鍊別隊)를 지원병으로 모집하면서 강제로 모집하라 명을 내려 추고를 당한 바 있다. 1679년(숙종 5) 충청 병사로 재임 중에도 임의로 병사를 충원하여 파직되었다. 1683년(숙종 9) 길주 목사로 스스로 곡식을 갖추어 흉년을 당한 가난한 백성을 도왔다고 하여 가자(加資)[벼슬 품계를 올려줌]되기도 하였다. 1691년(숙종 17) 벼슬이 삼도 통제사에 이르렀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사천 목씨 묘역에 있다. 양효공(良孝公) 안맹담(安孟聃)과 정의 공주(貞懿公主) 묘역이 있는 능선의 동쪽 계곡부에 조성된 사천 목씨 묘역 동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