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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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元線鐵道建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류정선 |
[정의]
1910~1911년에 서울~원산 간 철도를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부설한 사건.
[역사적 배경]
경원선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222.7㎞를 잇는 철도로서, 경인선과 이어져 서해안과 동해안을 연결하고, 두만강까지 이어지는 함경선과 연결되는 등 한반도 동북 지방을 서울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노선이다. 특히 군사·산업적 거점이 되는 원산과 연결되기 때문에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서 경원선 부설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경과]
대한 제국 정부는 1898년 1월 이미 허가를 내준 것 이외에 외국인의 철도 및 광산 경영은 일체 허가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고, 1899년 7월 국내 철도 용달 회사가 정부의 측량 허가를 받아 경원선 부설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금 사정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되고 말았다.
러·일 전쟁 발발로 부산에서 압록강까지 일본군 및 군용 물자의 수송이 필요하게 된 일본은 1904년 2월 임시 군용 철도 감부(臨時軍用鐵道監部)를 편성하고, 철도 대대 및 공병대가 들어와서 강제적으로 경의선과 경원선 부설에 착수하였다. 임시 군용 철도 감부는 원산과 용산에 철도 건축반을 설치하여 원산반은 원산~용지원(龍池院) 간, 용산반은 용산~의정부 간을 담당하게 하였다. 용산반은 1905년 11월 의정부까지 측량을 마쳤으나 토지 소유자들의 항의로 노반 공사는 착수도 하지 못한 채 공사가 중단되었다.
임시 군용 철도 감부의 경원선 부설 업무는 1906년 9월 통감부 철도 관리국으로 이관되었다가, 강제 병합 이후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다. 1910년 10월 용산에서 용산~의정부 구간의 기공식이 있었고, 1911년 11월에 준공되었다. 도봉구 지역에 부설된 철도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었다. 경원선은 1914년 8월에 전 노선 222.7㎞가 완성되었다.
[결과]
경원선 부설 공사는 처음부터 조선인들의 저항에 부딪쳤는데, 특히 강제 병합을 전후하여 일본군의 철도 부설에 반대하는 민간인과 의병들의 저항과 습격이 자주 발생하였다. 한국 정부와 일본이 맺은 조약에 의하면 철도의 부설과 운영에 필요한 토지를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되어 있는데, 철도의 부지 중 민간인 소유자의 토지는 정부가 매수하여 제공한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토지 보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토지 매수와 대금의 지불을 둘러싸고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1910년 측량을 재개했을 때에도 의병과 해산 군인들의 습격 때문에 일본인 측량 대원들은 한복 차림으로 측량하였다고 한다. 1910년 4월 8일자 제4687호 관보 용산~원산 간 철도 용지 수용이 종료될 때까지 해당 지역에 토지, 지상 건물의 매매 전질 및 가옥 분묘의 신축을 금지하는 내부 고시를 발포하였는데, 여기에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도 포함되어 있어 이들 지역에도 철도 부설에 따라 지역민들이 고초를 겪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