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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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東輿地圖 |
영어공식명칭 | Daedongyeigido Map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신문로2가 2-1]|서울특별시 보문로 34다길 2[돈암동 173-1]|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추윤 |
제작 시기/일시 | 1861년 - 『대동여지도』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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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시기/일시 | 1864년 - 『대동여지도』 재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9일 - 대동여지도(1985) 보물 제850-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12-07 - 대동여지도(2002) 보물 850-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8-12-22 - 대동여지도(2008) 보물 850-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대동여지도(1985), 대동여지도(2002), 대동여지도(2008) 보물로 재지정 |
현 소장처 | 서울 역사 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신문로2가 2-1] |
현 소장처 | 성신 여자 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보문로 34다길 2[돈암동 173-1] |
현 소장처 |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성격 | 지도첩 |
작가 | 김정호 |
서체/기법 | 필사본 |
소유자 | 성신 여자 대학교 박물관|서울 역사 박물관|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관리자 | 성신 여자 대학교 총장|서울 역사 박물관장|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장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이 실려 있는, 1861년에 김정호가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분첩절철식의 전국 지도첩.
[개설]
김정호(金正浩)[1804~1866 추정]는 황해도 토산 출신으로 한양의 만리재 고개 약현에 살았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이다.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백원(伯元), 백온(伯溫), 백지(伯之), 호는 고산자(古山子)이다. 김정호는 지도책 3권을 순차적으로 만들었는데, 첫째 1834년(순조 34)에 『청구도(靑邱圖)』, 1857년(철종 8)에 『동여도(東輿圖)』, 1861년(철종 12)에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제작하였다. 이 밖에 김정호가 새긴 지구도, 해좌 전도, 도리도표 등이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에 뜻을 두고 혜강 최한기와 벗하며 필사본으로 처음 제작한 지도가 『청구도』이다. 김정호는 『청구도』 범례에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도별, 군현별 대부분의 지도가 도법과 축척이 달라 서로 인접하여 볼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이를 보완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김정호는 『청구도』를 만들기 전에 『동여도지(東輿圖志)』 30권을 저술하고, 다시 『여도비지(輿圖備志)』 20권을 만들어서 이를 바탕으로 『동여도』를 만들었다. 『동여도』는 『청구도』의 도엽을 변형, 확대하였으며 총 126판 227면으로 구성하고 절첩식으로 제책하였다. 『동여도』를 제작하는 데는 최한기, 최성환, 신헌 등의 후원자가 있었다. 『대동여지도』는 필사본 『동여도』를 개작 목각한 지도로 그 당시 가장 정확하고 이용하기에 편리하게 제작되었다. 현재 『대동여지도』 판목의 일부가 국립 중앙 박물관과 숭실 대학교 박물관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의 판목 소각설은 사실이 아니다.
김정호는 이후 지도 제작을 위해 사용했던 『동여도지』와 『여도비지』를 재정리하여 『대동지지(大東地志)』을 저술하였으나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
현재 『대동여지도』는 성신 여자 대학교, 서울 역사 박물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미국 밀워키 대학교 등에 남아 있다.
현재 3점의 『대동여지도』가 각각 1985년 8월 9일 보물 제850-1호[성신 여자 대학교 소장], 2002년 12월 7일 보물 제850-2호[서울 역사 박물관 소장], 보물 제850-3호[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제1층에는 지도의 제목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발간 연도인 당저십이년 신유(當宁十二年 辛酉), 고산자 교간(古山子校刊)[발간자]를 명시하였다. 서문 격인 지도류설(地圖類說)이 쓰여져 있으며, 도별로 주현 수, 대소영, 진보, 봉수, 역참, 방면, 전부, 민호, 인구, 군총, 목장, 창고, 곡총 등이 기록되어 있다. 축척은 ‘매방십리(每方十里)’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백리척(百里尺)을 기준으로 하여 그 당시 사용하던 자인 주척(周尺) 약 20㎝를 대비하면 약 1:216,000이 된다. 본도와는 별도로 한양의 경조 오부도(京兆五部圖)와 도성도(都城圖)가 그려져 있다. 지도표(地圖標)에는 영아(營衙), 읍치(邑治), 성지(城池), 진보(鎭堡), 역참(驛站), 창고(倉庫), 목소(牧所), 봉소(烽燧), 능침(陵寢), 방리(坊里), 고현(古縣), 고진보(古鎭堡), 고산성(古山城), 도로(道路) 등 14가지 범례가 그려져 있다.
전국도를 한장으로 하면 크고 열람에 불편한 점이 많아 병풍처럼 접었다 펼칠수 있게 만들었다.
[특징]
『대동여지도』는 판각하기 쉽게 『동여도』의 1만 9140개의 지명 가운데 7,370개를 줄여서 1만 1770개 정도의 지명을 수록하였다. 제외된 지명은 방리명이 3810개, 산 관계 지명 1180개, 물 관련 지명 700여개, 교통 관계 160개, 군사 관계 90개, 기타 1400여 개이다. 축척은 약 1:216,000이며, 남북을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19판으로 구성했다. 가로 8칸, 세로 12칸의 방격지(方格紙)의 사용이다. 이것은 실제 거리 횡 80리와 종 120리를 10분의 1로 나누어 놓은 방격지이다. 이 방격지에는 ‘매방 십리(每方十里)’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가로 세로 각각 10리라는 뜻이다.
대축척 지도로 분첩 절첩식(分帖折疊式)이다. 원래 판각으로 되어 있어서 흑백 지도인데 소장자가 채색하여 책색 지도 형태로 가지고 있기도 했다. 『대동여지도』는 산계와 수계를 중시하여 지도를 그렸으며, 현대 지도와 같이 지도 범례를 14개 항목[실제는 23개 항목 표시 가능]이나 표시한 것이 큰 특징이다. 지금까지의 조선 시대 지도가 설명문으로 범례를 대신해 왔는데, 『대동여지도』는 현대 지도와 같이 범례를 사용하여 간단 명료하게 제시한 점이다. 예를 들면 읍치를 표시할 때 읍성(邑城)이 있느냐 없느냐를 성유(城有)는 ○, 성무(城無)는 ◎와 같이, 창고(倉庫) 범례에서도 창고만 있으면 ■ 기호로, 성이 있으면 ▣ 기호로 표시하였다. 이와 같이 기호로서 표시한 것은 획기적인 발전이다.
아주 중요한 특징은 지도류설(地圖類說)이란 글이다. 지도 내력, 지도의 중요성, 청구도와 같이 배수의 6원칙, 중국 역대 지도의 주안점인 방위와 거리를 강조하였고, 끝으로 『문헌비고(文獻備考)』를 참조하여 우리나라 해안선의 길이와 도별 주현 수, 인구 등을 기록하고 있다.
필사본을 판각본인 목판으로 제작한 것은 필사본은 민간인들이 전사 과정에서 잘못 전사되는 경우가 있고, 일반 백성들에게 유용한 지도를 대량으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판각본으로 해야 하며, 전국적으로 통일된 지도를 가지고 국정을 논하면 큰 혼란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당진]
당진시 지역은 『대동여지도』 제14층, 15층, 16층에 수록된 당진, 면천 부근이다. 당진 지역에 나타난 『대동여지도』의 특징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삽교천 주변의 우리나라 최대 월경지 분포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아산지에 속한 우평, 수원지에 속한 걸매, 홍주지에 속한 신평과 합덕, 덕산지에 속한 비방곶, 면천지에 속한 범천, 천안지에 속한 돈의 등이 그려져 있다.
둘째, 당진 지역의 도서 분포가 비교적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아산만의 당진 소속 내도, 행담도, 영웅암과 석문면 앞의 난지[대난지], 소난지, 산도 등이 그려져 있다.
셋째, 산계와 수계가 명확하게 나누어져 그려져 있어 하천과 산지 파악이 일목요연하다. 당진 지방의 하천은 대모천, 승선천, 산지는 창택산, 고산, 신암산, 다불산, 아미산, 몽산, 성당산, 삼봉산, 이배산, 마산으로 나타나 산지는 비교적 정확하게 그렸는데 하천은 아쉽게도 2개밖에 없고 삽교천을 삽교 옆에 선화천으로 기술하고 말았다.
넷째, 당진의 최고봉인 아미산의 산 계통도를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다. 아미산이 내포 지역의 최고 명산 가야산에서 분지되어 태극 형상을 하면서 휘돌아 북쪽으로 뻗으면서 몽산~아미산~다불산~신암산~고산~창택산으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당진 지역의 조선 시대 군현도의 대부분의 지도가 필사체 채색 지도로 그려지고 지지적 내용이 소략하고 관아의 배치, 행정 구역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 데 비해서 『대동여지도』는 창, 월경지, 행정명, 포, 도서, 곶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정호는 지도를 제작하면서, "지도란 특수한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민[士, 農, 工, 商], 즉 일반 백성이 보아서 우리 땅의 모두를 자세히 알아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호는 "지도(地圖)는 지지(地誌)와 함께 하나의 대경(大經)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깨달아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고 나라 땅을 사랑하여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이와 같이 김정호는 위민(爲民) 정신에 따라 지도를 제작하였다.
김정호는 지도와 지지는 같은 장소에 있을 때에만 시너지 효과가 많음을 알고 지도에 지지적 내용을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으나 좁은 판각에 많은 글자를 새겨 넣을 수 없음을 알고 최소화하였다. 그래서 지지적 내용만 살펴보면 필사본인 『동여도』와 『청구도』가 더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