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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218
한자 唐津浦里
영어공식명칭 Dangjinp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당진군 고대면 당진포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2012년 1월 1일 - 충청남도 당진군 고대면 당진포리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7.678㎢
가구수 387세대
인구[남/여] 810명[남자 421명, 여자 389명]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당진포리고대면대호 방조제 최상류 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서쪽에 대호지만을 면하고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에 해창 미곡 처리장이 있을 정도로 간사지를 간척하여 만든 답작 지대가 서쪽의 해창 주변, 동쪽의 탁주막 주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명칭 유래]

백제 때 당나라로 왕래하던 나루터인 당진포(唐津浦)가 있으므로 당진포리(唐津浦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당진포리는 원래 당진군 고산면(高山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서 고산면 만길동(萬吉洞), 사동(汜洞), 고산동(高山洞)을 통폐합해 원래대로 당진포리(唐津浦里)라 하여 당진군 고대면에 편입되었다. 1514년(중종 9)에 쌓은 둘레 1340자, 높이 9자의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이 있어서 수군만호(水軍萬戶) 1인과 수군 다수가 주둔하여 서해를 지키던 요지이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당진포리는 서쪽은 천의만이 좁고 깁게 들어와 있고 북쪽은 노적봉이 위치하여 당진포진성이 있다. 조선 시대 한양 경창으로 조운하던 해창이 있었다. 당진포는 방조제로 막히기 전에는 좁고 긴 곶으로 대호만을 방어하는 데 최적의 군사전략지였다. 약 40정보[0.3967㎢]의 온동 저수지(溫洞貯水池)가 당진포 3리에 있다.

[자연 마을]

당진포리에는 만길동, 대산동, 해창, 탱주막, 사동, 온동, 고산동, 유래, 성안, 부엉산의 10개 자연 마을이 있다.

만길동(萬吉洞)은 옛 당진군 고산면 만길동 지역으로, 당진포영(唐津浦營)이 있어서 수군만호가 이곳에 주둔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여러 사람이 부귀를 누리며 귀하게 잘 살은 데서 유래했다 한다. 영전이라고도 부른다. 대산동 해창 가까이에 있는 마을로, 큰 산이 있기에 대산동이 변해서 대상동이라고도 부른다. 해창(海倉)은 온동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시대에 곡물 등과 같은 현물 세곡을 보관하던 해창이 있었다. 『충청도 읍지』 당진 창고 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해창 동고 육간 복물고 오간 재현 서 삼십리 당진포변 기사 신건선두(海倉東庫六間伏物庫五間在縣西三十里 唐津浦邊己巳新建船頭)." 즉, 해창은 당진현에서 서쪽으로 30리 떨어진 당진포 해변에 있고, 동고가 6칸, 곡물고가 5칸인데 기사년에 선두(船頭)에 새로 세웠다는 뜻이다. 해창에는 나룻터가 있어서 연륙되기 전의 초락도와 인천을 오가는 배가 있었다. 탱주막은 만길동 북쪽에 위치했는데 간척하여 연륙되기 전에 탕주막섬이 있었다. 옛날에 배가 드나드는 포구 주막이 있었다 한다.

사동(汜洞)은 옛 당진군 고산면 사동 지역이다. 온동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물이 잘나는 샘이 있었는데 그 속에 큰 뱀이 살았다 한다. 혹은 부락 지형이 풍수지리상 뱀 모양이었다고 한다. 온동(溫洞)은 남쪽에 있는 마을로 용샘이 주위의 물보다 따뜻하기에 유래했다. 온동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북쪽에 곰새라는 하인이 주인을 위해서 팠다는 용샘[곰새샘]이 있다. 여기에는 곰새와 관련된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산동(高山洞)은 옛 당진군 고산면 고산동 지역이다. 온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봉수가 있던 고산봉(高山峰) 아래에 위치했다. 고산봉 남쪽에 고산사(高山寺) 절터가 있다. 고산사에 서 있던 부도 1기가 몇 년 전 절터 아래 하천변에서 발견되었다. 유래(柳來)는 사동 북동쪽 해안가 온동 간사지 근처에 있는 마을로, 유씨(柳氏)가 처음 와서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혹은 옛날에 당나라 배가 왔다 갔다 하여 유래된 것이라고도 한다. 성안[城內]은 해창 옆에 있는 마을로 옛 당진포진성의 성 안에 마을이 있었기에 유래했다. 부엉산은 대산동의 남쪽에 있었으며, 전주 이씨의 산소를 파는 데 큰 돌을 들어내니 그 속에서 부엉이가 날아가서 앞산에 앉자 마을 앞산이 부엉산이 되었고,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하게 되었다.

[현황]

2016년 현재 면적은 17.678㎢이며 인구는 387세대에 총810명[남자 421명, 여자 389명]이다. 서쪽은 천의만 건너 대호지 적서리와, 남쪽은 정미면 천의리와, 동쪽은 고대면 진관리와, 북쪽은 석문 저수지 건너 석문면 초락도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대호지 적서리 쪽에서 대호 대교가 천의만을 가로질러 건설되어 마을의 북서쪽 끝 해창 마을 앞으로 관통하여 석문면 초락도리로 통한다. 당진포진성은 망재산[60m] 주위에 석성으로 축조했는데, 산정에는 망해정(望海亭)이 복원되어 있다.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에서 석성의 흔적과 기와조각이 보인다. 탕주막섬이 있었으나 1980년 삼봉 방조제 완공으로 연륙되었다. 삼신 봉직 등 군소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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