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213
한자 龍頭里
영어공식명칭 Yongdu-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용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당진군 고대면 용두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2012년 1월 1일 - 충청남도 당진군 고대면 용두리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용두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760㎢
가구수 378세대
인구[남/여] 761명[남자 398명, 여자 363명]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용두리는 면소재지로 면사무소, 농협, 보건 지소 등 각종 공공 기관이 있으며 예전에는 시장이 개설되었던 곳이다. 615번 지방도가 마을의 서쪽을 지나고있다. 북쪽으로는 산능선을 이루며 고개가 있고 동쪽으로는 용두 평야가 넓게 전개되며 역천과 그 지류가 흐르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명칭 유래]

풍수지리상 마을 형상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용머리라 하여 '용두리(龍頭里)'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용두리는 원래 당진군 하대면(下大面)의 지역으로서 상용두리(上龍頭里), 하용두리(下龍頭里)로 나뉘어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하대면 주동(珠洞), 석동(石洞), 신곡리(新谷里)를 병합해 용두리라 하여 당진군 고대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동쪽으로 역천[용장천]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고대면 용두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용두리는 동북쪽 슬항리 경계에 국사봉이 있다. 국사봉은 마을의 평안을 빌기 위해서 6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남쪽 경계면이 옛 조지제 방죽의 북쪽과 접하고 있었다. 동쪽은 역천 천변에 해당되는데 간사지를 간척하여 대규모 농경지가 형성되어 용두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큰 산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공설 운동장 밑으로 지나 용두 평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흘러 역천에 유입되고 있다.

[자연 마을]

용두리에는 구장벌, 신곡, 석동, 상용, 하룡, 주동, 신시장, 구억말, 기와집말, 샛말, 사창말, 궁말의 12개 자연 마을이 있다.

구장벌(舊場垈)은 석굴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시장이 섰다 한다. 『임원 경제지』에는 하대면에 5일자와 10일자에 삼거리장(三巨里場)이 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세거리장이라고도 했다.

신곡(薪谷)은 옛 당진군 하대면 신곡리 지역으로 전에 섶이 많았다 한다.

석동(石洞)은 옛 당진군 하대면 석동 지역으로 상용두 서쪽에 있는 마을로, 석굴이라고도 한다.

상용(上龍)은 옛 당진군 하대면 상용두리 지역으로, 샛말의 동쪽에 있다. 용두리의 위쪽에 위치하여 ‘상용’ 지역이라 부른다.

하룡(下龍)은 옛 당진군 하대면 하용두리 지역으로, 용두리 아래쪽이 되며 샛말 잿배기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주동(珠洞)은 옛 당진군 하대면 주동 지역으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을 때의 여의주 자리에 해당된다 하여 ‘주동’이라 했다고 전한다.

샛말은 잿배기 고개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시장(新市場)은 1954년 구장벌에서 장이 새로 옮겨 왔기에 고대 시장, 신시장이라 한다. 샛말 서쪽에 있는 마을로 새못이 방죽[鳥池堤] 머리 쪽에 해당된다. 시거리(市巨里), 방죽머리라고도 부른다. 새못이 방죽은 현재 흙으로 메워져 당진시 공설 운동장이 되었다.

구억말은 샛말 동쪽 구석에 있는 마을이다. ‘구억’은 구석의 사투리로 궝말, 꿩말이라고도 부른다.

기와집말은 샛말 잿배기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기와집이 있었다 한다.

샛말은 주동 동쪽에 있는 마을로 주동과 구억말 사이에 있었으며, ‘사이말’이 ‘샛말’로 변음되었다.

사창말은 상용의 동쪽에 있으며 조선 시대 사창이 있었기에 ‘사창말’이라고 한다. 역천의 최하류 지역으로서 논으로 개답되기 이전에는 용두강(龍頭江)[역천 하류]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이곳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궁말은 샛말 동쪽에 있으며 부락 형세가 활 모양이다.

[현황]

2016년 현재 면적은 2.760㎢이며 인구는 378세대에 총 761명[남자 398명, 여자 363명]이다. 북쪽은 슬항리, 남쪽은 진관리, 동쪽은 역천 건너 당진시 우두동, 서쪽은 슬항리진관리에 접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용두강 밑에 사창(社倉)이 있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