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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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谷里 |
영어공식명칭 | Bugok-ri[Songak-eup]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별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부곡리는 큰봉[65m]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산촌 마을이었다. 예전에는 마을이 야산지로 이루어진 산간 마을이었으며 일부 과수원이 있었다. 지금은 부곡 공단이 개발되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심훈의 고향 필경사가 유명하다. 1935년에 개설한 619번 지방도가 기지시리를 경유하여 당진으로 통한다.
[명칭 유래]
부곡리는 풍수 지형상 '가는 곳'[세곳]이 '가난고지'로 되었는데 '못사는 마을'이란 뜻이 싫어, 부자 마을이란 뜻의 ‘부곡(富谷)’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원래 '가는 곳'은 지형이 좌측은 '영천 개', 우측은 '명대 개'를 끼고 송곳처럼 가늘고 긴 능선 뿌리가 중터에서 구례[복운리]까지 약 2㎞ 정도 곶을 이루어 붙여진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부곡리는 본래 홍주군 신북면(新北面)의 지역으로 부곡리(富谷里)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하여 면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북면 소대리(小大里)와 대동(大洞), 오사리(梧寺里)의 각 일부를 병합해 부곡리라 하여 당진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2010년 1월 1일 송악면이 송악읍으로 승격하였으며.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로 개편되었다. 1900년대 예산 광시면 가덕리 사람 이순득을 선두로 부곡리 산54번지에 가마터를 만들고 옹기를 만들어 팔면서 합덕 천주 교회를 다녀서 신앙생활을 한것이 계기가 되어 점촌이 형성되었는데, 이 점촌 마을이 송악면 최초의 천주교 발상지이다.
[자연환경]
원래 부곡리 서남쪽은 야산간 지대로 농사와 과수원, 동북쪽은 아산만과 접하여 소규모 어업을 해 왔다. 현재는 갯벌의 공유 수면과 일부 야산 등을 개발하여 공단이 조성되었다. 상록 초등학교 근처를 옛부터 백토재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장석이 산출되어 1952년부터 한진 장석이 광업 허가를 받아 도자기 원료로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1991년 삼정 산업이 인수하여 영업을 하다가 1995년 경제성이 없어 폐업했다.
[자연 마을]
부곡리에는 가는고지, 영철미, 쇠재끝, 달기머리, 소당골, 방축골, 재무당살이, 영안, 점말, 안성댕이, 낡근대골, 큰말, 작은말, 용춧골, 텃골, 오얏골, 보도막골, 동고지, 쇠머리산, 중터의 20개 자연 마을이 있다.
가는고지[細串]는 부곡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형이 ‘가는 곶’ 모양이라고 한다. 또 부락 모양이 길마처럼 생겼다는 길마고지 설과 부곡리에서 제일 높은 봉월산에서 내려다 보면 골짜기마다 집들이 모여 있어 꼬쟁이에 꿰인 것 같아 풍수지리가들이 '가는 곳'이라 했는데 후에 '가난고지'로 변하여 불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영철미[靈泉山]는 큰말 동북쪽에 있는 높이 63m의 영천산(靈泉山) 밑에 있는 부락으로, 영천뫼, 영천미 등으로도 불린다. 쇠재끝은 예전에 몇 호가 거주했으나 현재는 모두 폐가되었다. 한진 염전 왼쪽에 있다. 달기머리는 닭귀머리라고도 부르는데 부락의 지형이 닭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부곡리의 남쪽 즉 큰말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부곡공단에 흡수되어 없어졌다.
소당골은 영철미 동쪽 해안가에 있는 작은 당골 마을로 5~6호가 거주했으나 부곡 공단으로 편입되어 폐가되었다. 부락 지형이 소당 모양으로 생긴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숫안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방축골[防築谷]은 상록 초등학교 뒤쪽 백토재 남쪽의 솔밭 안에 있는 마을로 전에 방죽이 있었다고 전한다. 재무당살이는 방축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부곡 공단에 편입되었다. 영안[營內]은 큰말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옛날에 군대가 주둔하던 진영의 안쪽에 있다. 부곡 공단에 편입되어 폐가되었다.
점말[店村]은 즘말이라고도 불리는데, 안성댕이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옹기점이 있었다고 전한다. 안성댕이는 중터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에 안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낡근대골은 날근대골이라고도 부르는데, 중터 서쪽에 있는 마을로 비산 비야지이며, 옛날에는 물이 건조했다고 전한다. 큰말[大洞]은 옛 면천군 신북면 대동(大洞) 지역으로, 부곡 1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달기머리의 서쪽에 있다. 작은말[小垈]은 옛 면천군 신북면 소대리(小垈里) 지역으로, 큰말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용춧골은 방축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용추(龍湫)가 있었다고 전한다. 텃골은 낡은대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제비집을 짓는 터가 된다고 한다. 오얏골은 부곡 2구에서 동쪽 야산 골짜기에 있다. 오얏골 뒷산에서 현재 장석을 캐고 있다. 보도막골은 방축골 남쪽 심훈의 집필 장소였던 필경사 부근의 마을로 상록 문화관이 있다. 동고지는 쇠머리산[쇠대갈산]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 약 40호가 살았으나 부곡공단의 부지로 편입되어 보상을 받고 철거했다. 부곡리의 동쪽에 있다. 쇠머리산은 한진의 동쪽 해안가에 있으며, 전에는 8~9호가 수박 재배 등을 했으나 현재는 부곡 공단에 편입되어 보상을 받고 철수했다. 중터[中基]는 부곡리 서쪽, 즉 2구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 옛날 부곡 정미소가 있었고, 현재 마을 회관이 있다.
[현황]
부곡리는 2016년 현재 면적은 4.599㎢이며 인구는 277세대에 총 502명[남자 288명, 여자 214명]이다. 북쪽은 한진리, 동쪽은 부곡 공단에 접한 아산만에, 동남쪽은 복운리, 남족은 명대들판 건너 옥고리, 서쪽은 고대리와 월곡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1995년에 아산만 바닷가에 부곡 공단이 크게 조성되어 큰봉을 비롯한 소모리산, 닭의 머리산, 원내들 등이 사라지고 현재는 수십개의 공장들이 입주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