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203
한자 中興里
영어공식명칭 Jungheu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중흥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2010년 1월 1일 -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중흥리에서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읍 중흥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2년 1월 1일 -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읍 중흥리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4.381㎢
가구수 1,280세대
인구[남/여] 3,247명[남자 1,745명, 여자 1,502명]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중흥리(中興里)송악읍 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8㎞ 정도 떨어져 있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진산인 송악산[150.6m]이 마을 북서쪽에 솟아 있다. 송악읍에서 기지시리 다음으로 제2의 중심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중흥 치안 센터, 우체국, 보건 진료소 등 각종 공공 기관이 있다. 지방도 619호선이 마을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한진 쪽과 신평 쪽으로 교통이 편리하여 사통팔달이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중흥면 면 이름을 따서 중흥리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중흥리는 원래 면천군 중흥면의 지역으로서 중흥면사무소가 있어서 중흥말, 중흥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흥면 과약리(果若里), 신대리(新垈里), 사하리(寺下里)와 신북면(新北面) 수곡리(壽谷里), 월곡리(月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해 중흥리라 하여 당진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2010년 1월 1일에 송악면송악읍으로 승격하였으며, 2012년 1월 1일에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하여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중흥리는 주산인 송악산을 중심으로 자루 모양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송악산 산록에서 발원한 소하천은 사하와 새장터를 지나 과약을 거쳐서 계속 남동진하여 초대천에 유입된 후에 제일 농장을 통과하여 서해 대교 아래 아산만으로 유입된다. 송악산 정상 부근에는 토석성인 송악산성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이곳을 구한말 동학군이 요새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한다리들, 안버러지들, 새터앞들이 마을 남부를 이루고 있으며, 그 밑으로 소하천이 남서쪽으로 흘러가서 서원천에 유입된다.

[자연 마을]

중흥리는 절아래, 제비골, 연자동, 느랭이, 쇠털지, 고이탑뿌리, 동남터, 감나무골, 신선골, 중상골, 중말, 뒷골, 구억말, 새장터, 과약이, 새터, 질마재, 승전골, 승지벌, 노루비, 동자골, 칡사리, 해낮이, 오리목골의 24개 자연 마을이 있다.

절아래[寺下]는 옛 면천군 중흥면 사하리(寺下里) 지역으로, 예전에 마을 위쪽에 숭학사(崇學寺)가 있었다. 현재 송악산 아래 숭학사 터의 주춧돌이 일부 남아 있다. 송학산은 옛날에 숭학산이라고 불렀다. 제비골, 연자동, 느랭이, 쇠털지, 고이탑뿌리 등의 소부락이 속해 있다. 제비골[燕谷]은 월곡리로 넘어가는 절 아래 북동쪽 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연소형(燕巢形)의 명당이 있다 한다. 재 밑이 되기에 '재밑골'이 변해서 '제비골'로 되었다. 연자동은 제비골에 붙어 있는데 능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비골의 북쪽 능선 너머에 있다. 수원 백씨 중시조의 묘지가 있는데 마을 모양이 제비 형국이다. 느랭이는 중흥리 시장에서 서쪽으로 500m 지점, 송악산 산능선이 길게 늘어진 자락에 있다. 천도 식품 도계장 부근이다. 쇠털지는 중흥리 시장 바닥인데, 그중에서도 남동쪽의 아래쪽에 해당된다. 현재 민가가 많이 있는데 전에는 쇠털꼴 풀만 무성해서 소 등의 가축을 방목했다 한다. 고이탑뿌리는 중흥리 시장의 우체국 뒤쪽 능선에 있는 마을로 새 경로당이 들어선 마을이다. 노서 하전형(老鼠下田型) 명당이 있고, 지평(持平) 이완(李完)의 묘가 있었다. 묘지 형국이 쥐 형국이라 가내가 기울어 고양이 모양의 고이탑을 만들어 이완 묘 앞에 묻어 자손들의 가세가 점차 기우는 것을 방지했다 한다. 4~5년 전에 후손들이 파 가서 비석과 묘소가 없다.

동남터[東南垈]는 중흥리 시장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서북방은 산으로 막혀 있고 동남쪽은 가린 것 없이 터져 있는 데서 유래했다. 송악산 산 밑에 있는 마을이다. 감나무골, 신선골, 중상골 등의 소부락이 속해 있다. 감나무골[枾木洞]은 예전에 감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동남터의 남쪽 산능선 아래 계곡 쪽으로 쑥 들어와 있다. 신선골[神仙谷]은 동남터의 서쪽에 있으며 부락 주위가 금방이라도 신선이 놀던 곳으로 느껴지기에 이름이 유래했다. 골이 깊고 신선이 나타나서 목욕했다는 포강이 있다. 현재 동부 철강 496세대 사원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중상골은 동남터의 서쪽에 있고 계곡이 완만한 산의 중간에 있는데, '중산골'이 변해서 '중상골'이 되었다.

중말은 과약에서 서남쪽으로 약 800m 지점, 중흥리 시장에서 남쪽에 있다. 중흥리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로, 부락의 중앙에 위치하여 마을의 중심이 되고 있다. 1972년 새마을 운동 전까지 장승제를 지냈다. 뒷골, 구억말, 홍수골 등의 소부락이 속해 있다. 뒷골[後谷]은 중말의 북쪽 능선너머 골짜기에 위치하였다. 구억말은 중말의 서쪽 구석에 있는 마을로, 곡식 9억 말을 생산할 수 있는 부자 집터가 있어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나 '구억'은 구석의 사투리이다. 새장터는 중흥리 시장의 동쪽에 있는 마을로, 중흥면이 있을 때 새로 장이 섰던 곳이다. 현재 장은 안 서지만 먼 훗날 상권의 요새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해서 지었다는 유래도 있다. 과약이란 소부락이 속해 있다. 과약이[果若里]는 옛 면천군 중흥면 과약리 지역으로, 중말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새장터 동쪽 바로 옆에 있다. 새터[新垈]는 옛 면천군 중흥면 신대리 지역으로, 과약이 동쪽 들판 건너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예부터 집 지을 터가 많은 곳이라 ‘새터’라고 했다는 유래가 있다. 질마재는 새터 북쪽, 즉 연자동 동쪽으로 쭉 내려와서 한진 가는 도로에 인접한 곳에 있다. 산능성의 생김새가 소등에 앉혀 짐을 나르는 질마[길마]처럼 생긴 질마재 밑에 있는 마을이다.

승전골은 노루비의 서쪽 숭학사 절이 한창 번창할 때 밭을 일구었던 곳으로, 현대 사원 아파트 780호가 건설되어 있다. 승지벌은 송악산 아래에 숭학사에 승려 수십 명이 기거했는데, 약 500~600m 떨어진 이곳에 채소와 작물을 재배하던 땅이 만여 평 있어 승려들이 영농하여 공양하던 곳이란 유래가 있다. 노루비는 질마재의 동남쪽 송악산의 한자락인 산능선이 노루 모양인데, 부락이 노루 배꼽에 해당되는 곳에 있었다. 동자골은 노 승려가 동자 부처를 모시고 수도한 암자가 있었다 한다. 칡사리는 노루가 뜯어 먹던 칡과 싸리가 마을에 많았기에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노루비의 동쪽에 있다. 오리목골은 느랭이 북쪽 송악산 바로 밑 장수 바위 아래에 있다. 옛날 아들을 못 낳은 사람이 목욕 재개하고 청수를 떠 빌면 아들을 낳았다는 장수 바위는 삽교천 제방 공사 시 거의 다 파괴되었다.

[현황]

중흥리는 2016년 현재 면적은 4.381㎢이며 인구는 1,280세대에 총 3,247명[남자 1,745명, 여자 1,502명]이다. 북쪽으로는 오곡리월곡리가, 동쪽으로는 복운리가, 남쪽으로는 금곡리, 전대리가, 서쪽으로는 석포리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송악읍의 제2의 중심지로 동부 제철 아파트와 세종 그랑시아 아파트 등이 입주했고, 당진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깊은 1920년대에 개교한 송악 초등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