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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039
한자 孝子門-
영어공식명칭 Hyojamun Gogae Pass
이칭/별칭 효자 고개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송산면 무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추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효자문고개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
해당 지역 소재지 효자문고개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지도보기
성격 고개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송산면 무수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

[개설]

효자문고개송산면 소재지에서 633번 지방도를 따라 성구미 포구 쪽으로 가다가 삼월리무수리의 경계 부근 언덕에 있는 고개이다.

[명칭 유래]

효자문(孝子門) 고개라는 이름은 고개의 초입에 효자 박순명(朴順命)의 정려(旌閭)가 있기에 유래했다. 『면천현읍지(沔川縣邑誌)』와 『면양읍지(沔陽邑誌)』에는 ‘박순명(朴順明)’으로, 정려에는 ‘박순명(朴順命)’으로 한자가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

『면천읍지(沔川邑誌)』에 효행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박순명은 밀양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여 어머니를 지극한 효심으로 봉양하여 고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군역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노모가 병환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이를 보고 불효자를 기다리다가 병이 난 것이라 생각하고, 밤낮으로 애통해 하며 목욕재개하고, 기도하며 백방으로 약을 구해서 지성으로 탕약을 만들어 마시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세가 더욱 악화되자, 자기 손가락을 절단하여 그 피로 사흘을 연명하였으나 돌아가시고 말았다. 장례를 지내고 삼 년간 시묘를 산 후에 끝내 죽고 말았다. 이런 효행을 동네에서 감영에 고하고, 감사가 예조에 고하여 왕이 이를 듣고 명하여 면천군 감천면 삼월리 고개에 효자 정문을 세웠다. 그 후부터 이 고개를 ‘효자 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황]

박순면의 효자 정려는 1916년에 중수한 사실이 정려 내 현판에 기록되어 있다. 1856년(철종 7) 2월에 7세손 박덕돌(朴德乭)이 퇴락한 것을 중수하였고, 그 후 또 퇴락하여 1973년 2월 당시 송산면장 이재은(李載殷)이 군비 3만을 보조받아 보수하여, 원래의 자리에서 약간 올려다 지었다. 후손들이 개보수 중 현판이 망실되어 정문 수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정려각은 시멘트 바닥에 시멘트로 원주형 초석을 만들고 원주를 올렸다. 일체의 장식이 없는 슬레이트 지붕이다. 정려 현판은 건물 안 중앙에 걸려 있다. “효자 박순명지문 숭정 기원후사 병진 이월일 육대손 덕돌 중수(孝子 朴順命之門 崇禎 紀元後 四 丙辰 二月日 六代孫 德乭 重修)”라고 써져 있어, 1856년에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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