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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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北無盡株式會社 |
영어공식명칭 | Gyeongbuk Mujin Corpor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영세 상공업자와 도시 노동자를 위하여 설립된 서민 금융 기관.
상호신용계의 전 용어인 무진(無盡)은 일정한 수의 계좌를 모아 기간과 금액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납입한 사람에게 1계좌마다 추첨이나 입찰 등의 방법으로 금액을 내주는 일종의 계와 비슷한 형태의 제도이다. 1910년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후 개인이 하던 무진업을 1922년 5월 11일 조선총독부가 회사 조직체로만 경영할 수 있도록 제정한 「조선무진업령(朝鮮無盡業令)」이 발포되면서 전국에 무진회사가 설립되었다.
경상북도에는 대구에 1921년 대구무진주식회사와 1922년 10월 조양무진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또 1922년 11월 김천에 김천무진주식회사와 1923년 9월 포항에 포항무진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1935년 조선총독부가 무진회사 병립의 폐해와 가입자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1도 1사의 방침을 내세워 무진회사 합병을 압박하자 대구무진주식회사, 조양무진주식회사, 포항무진주식회사, 김천무진주식회사 등 4개 사를 합병하여 1938년 1월 15일 경북무진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본사는 대구에 두고 나머지는 대구지점, 포항지사, 김천지사가 되었다.
이후 조선총독부가 전시 통제책의 일환으로 금융 통제를 하면서 무진회사의 대 합동을 추진하였다. 1942년 8월 경북무진주식회사를 마지막으로 전국의 모든 무진주식회사가 한일은행의 전신인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에 흡수되었다. 한일은행은 한국상업은행과 합병하여 한빛은행으로 바뀌었다가 평화은행을 분할·합병하면서 우리은행으로 바뀌었다.
경북무진주식회사는 자본금 200만 원으로 설립되었다. 경북무진주식회사의 개업은 조양무진주식회사 사옥에서 이루어졌다. 경북무진주식회사의 임원은 대표이사에 서창규, 이사에 이상악·서병원·서병주·서병화·서상현·정영균 외 일본인 2명, 감사에 이상무 외 일본인 1명 등이 선임되었다. 경북무진주식회사의 주주 현황을 보면 총 4만 주에 111명의 주주가 있었다. 이상악 2,381주, 정영균 1,585주, 윤상태 1,499주, 서창규 1,498주 서병원 1,439주, 서병주 1,415주 등 대부분 조선인이 대주주였다. 경북무진주식회사는 1938년 2월 안동출장소를 신설하며 영업망을 넓혔다.
경북무진회사는 조선총독부의 무진회사 1도 1사 방침에 따라 설립된 조선인 중심의 서민 금융기관으로 대구 서민금융의 기초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