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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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州李氏 |
영어의미역 | Gwangju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앙성면 영죽리 |
집필자 | 최일성 |
세거지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앙성면 영죽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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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 | 1460년대 |
성씨시조 | 이자성|이당 |
입향시조 | 이극감 |
[정의]
이자성, 이당을 시조로 하고 이극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연원]
광주이씨(廣州李氏)는 신라 내물왕 대에 내사령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한다. 이자성은 원래 칠원(현 경상남도 함안)을 봉토로 갖고 있던 칠원백이었으나 통일신라가 망한 후에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불복하였으므로 왕건이 이자성의 신분을 낮추어 회안의 호장으로 삼았다. 그 후 고려 성종 대에 회안이 광주로 개칭됨에 따라 후손들이 광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광주이씨는 이당(李唐)을 중시조로 하여 번성하게 되는데 파에 따라서는 이당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당은 고려 말 광주 출신으로 국자감 생원시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조선시대에 이조판서겸지의금부사에 추증된 인물이다. 이당의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광주이씨를 중흥시켰는데 특히 둘째 아들 이집(李集)의 후손이 가장 번창하여 이당을 시조로 하는 파는 이집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광주이씨는 조선시대에 왕비 1명, 재상 5명, 공신 11명, 대제학 2명, 청백리 5명, 문과 급제자 188명, 무과 급제자 274명을 배출하였다.
[입향경위]
1460년대 이집의 증손으로 형조판서를 지낸 이극감(李克堪)이 처가가 있는 충주로 이주하여 현 주덕읍 사락리에 정착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경제기획원 자료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충주시에 거주하는 광주이씨는 391가구, 1,167명으로 조사되었다. 2008년 현재 충주시에 세거하고 있는 광주이씨는 문경공파 이극감의 후손이 주덕읍 사락리에, 사복시정을 지낸 이여랑의 후손이 앙성면 영죽리에, 참판공파 이극기의 후손이 충주시 일원에 살고 있다.
[관련유적]
이극감 묘와 이약빙 묘가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이여량 묘는 충주시 앙성면 영죽리에 있다. 이상성(李相成)과 이광운(李光運) 2대 효자정려는 무너지고 그 터만 앙성면 영죽리에 있으며 이연경을 배향한 팔봉서원이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부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