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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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遠器 |
영어음역 | Song Wongi |
이칭/별칭 | 학무(學懋),아헌(啞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학무(學懋), 호는 아헌(啞軒). 고려 목종(穆宗) 때 간의대부총부의랑(諫議大夫摠部議郞) 맹영(孟英)을 시조로 하는 야성송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교위(校尉) 송사호(宋師顥)이고 어머니는 팔거도씨, 부인은 인천이씨이다.
[활동사항]
어려서 증조부 충숙공 송야계(宋倻溪)와 숙부 송신연(宋新淵)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한강 정구(鄭逑)와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서낙재 곽괴헌(郭槐軒)과 더불어 교유하였다. 1548년(명종 3)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여 학문으로 천거되어 찰방(察訪)에 임명되었고,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 벼슬이 학유(學諭)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병사가 팔거[현재의 칠곡]에 머물러 진(鎭)을 침에 송경헌(宋敬軒)과 함께 사재(私財)와 모곡(募穀)으로 군량미 7백 석을 얻어 수송하고 군무십책(軍務十策)을 진술하였다. 정응태(丁應泰)가 명나라 조정에 조선을 무함(誣陷)하자 변무서(卞誣書)를 지어 올려 선무 원종훈(原從勳)에 참여하였다. 1624년(인조 2) 사간원헌납 춘추관 기주관(記注官)으로 증직되었으며 불천위(不遷位)로 모시고 있다. 임금에게 육강소(六綱疎)를 상소하였으나 임금이 불윤(不允)하자, 병을 핑계로 낙향(落鄕)하여 호를 벙어리라는 뜻의 아헌(啞軒)이라 하고 반평생을 고향에서 조용히 지냈다. 5권 2책의 문집이 있다고 전해진다.
[묘소]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대천 1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매양서원에서 제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