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29
한자 戰骨塚
영어공식명칭 Jeongolch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37년 1월 28일 - 김화 백전 전투 발발
전골총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지도보기

[정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 있는 병자호란 김화 백전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 근왕군 합장묘.

[개설]

전골총(戰骨塚)은 병자호란 당시 1637년 1월 28일 김화 백전(柏田) 전투에서 평안도관찰사 홍명구 군대가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 전사한 군사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묘(墓)이다. 김화 백전 전투 지휘관이었던 홍명구가 전사한 것을 보면 홍명구의 휘하에 있던 군사들도 대부분 전사하였을 것이며, 대체로 1,000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김화 백전 전투에서 전사한 군사들을 당시 현감이었던 이휘조가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6~7개 분묘로 장례를 치렀는데, 세월이 흘러 분묘들의 형체가 허물어지자 1645년(인조 23) 현감 안응창이 분묘를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청나라 군대에 패배하면서 전사한 군사의 시신을 묻은 전골총의 구체적인 위치는 현재 알 수 없다. 패전 이후 홍명구의 시신은 부장인 박형에 의하여 수습되어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에 안장되었지만, 지방관이었던 이휘조 등에 의하여 조성된 휘하의 군사들의 묘 위치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추정 전골총]

전골총으로 거론되는 두 곳이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생창리 지역인 옛 김화 관아터 북쪽의 성재산 기슭이다. 현재는 남한의 군사철책이 세워진 바로 뒤편에 있어 현장 조사가 불가능하다. 전골총은 뒤쪽에서 연결된 산릉으로 판단되고 있는데, 홍명구 군대가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던 곳과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전골총일 가능성은 희박하여 보인다. 또 하나는 용양리 전골총이다. 용양리 전골총생창리 동편에 밭으로 이용되던 경작지를 논으로 개간한 곳이다. 2013년 발굴 조사 결과 표토층 바로 아래에서 풍화암반층이 확인되어 인공적으로 시신을 묻고 흙을 쌓은 분묘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와 같이 전골총의 위치는 현재 확인할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에 의하면 뒤편에 산이 보이는 옛날 무덤으로 추정되는 자료가 있다. 사진에서 중앙에 보이는 산정부가 성산성(城山城)으로 생각되며 사람이 서서 조사하는 고분은 성산성 남쪽의 현재 군부대가 있는 지점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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