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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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柴炭市場 |
영어공식명칭 | Sitansijang |
이칭/별칭 | 화목시장,나무시장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영규 |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일대 일제 강점기 나무 땔감 시장 개설 문제.
[개설]
강원도 철원군의 중심지는 철원도호부가 있었던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일대이다. 반면 지금의 철원군 중심지인 철원군청이 있는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와 상가가 밀집된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는 농토는 물론 집들이 거의 없는 두메산골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외곽 지역에는 산지가 많아 대부분 주민들이 겨울철에 나무를 해서 철원읍 장에 내다 팔아 생활을 영위하였다. 철원군 갈말읍에서 나무가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은 문혜리 텃골이었다. 문혜리에서 나무를 철원읍 장에 내다 팔려면 새벽에 우마차에 싣고 길을 나서야 했다. 한탄강을 건너 장흥리 벌판을 지나 철원읍에 닿을 수 있었고 빨리 팔려야 다시 되돌아 올 수 있었는데 오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였다.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와 동막리 주민들은 나무를 실은 우마차를 끌고 한탄강 외동교를 건너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를 통하여 철원읍 시장에 갔다.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 사람들은 상노리 담터계곡에서 나무를 하였고, 역시 하루 종일 걸려 왕복 30㎞ 이상을 걸어다녀야 하였다.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일대는 워낙 번화가이고 비좁아서 따로 시탄시장[나무시장]이 없었고 시가지 입구 길가에 우마차를 대고 판매하였다.
[건립 경위]
1936년 당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시가는 읍내(邑內)와 역전(驛前)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거리가 약 10리[약 3.927㎞] 정도 되었으므로 철원 역전은 독립적 별개 시가였다. 또한 철원역 주변의 호구 수는 600여 호에 인구 3,000여 명에 이르렀음에도 시장이 없는 실정이었다. 이에 많은 주민들이 생활상 불편함을 겪으며 시탄시장 설치의 필요성을 호소하였고, 거듭된 요구로 철원역 앞에 제한적으로나마 시탄시장이 개설되었다.
1936년 2월 7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철원읍 철원역 일대에도 시탄시장[나무시장]이 별도로 없어 혼잡하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