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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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坡平 尹氏 |
영어공식명칭 | Papyeong Yoo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본관 | 파평 윤씨 본관 - 경기도 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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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파평 윤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
세거|집성지 | 파평 윤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어암리 |
성씨 시조 | 윤신달 |
입향 시조 | 윤사석 |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사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파평 윤씨(坡平 尹氏)는 고려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고려 시대 유명한 문벌 귀족 중의 하나이다. 윤신달의 현손 윤관(尹瓘)은 숙종 때 밀직원사(密直院使)로 병마도통사(兵馬都統使)가 되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올랐다. 또한 영평현 개국백(開國白)에 봉하여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파평 윤씨는 고려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가문의 번성을 이루었으며, 조선 시대를 통틀어 문과 급제자는 418명, 정승은 11명을 배출한 성씨로 성장하였다. 파평 윤씨는 윤관의 후대에서 문정공파(文定公派), 대언공파(代言公派), 소정공파(昭靖公派), 판도공파(版圖公派) 등 10여 파로 분파되었다. 청주의 입향조인 윤사석을 중심으로 한 종파는 집의공파(執義公派)이다.
[입향 경위]
파평 윤씨가 청주 지역에 자리 잡은 때는 시조의 18세손 윤사석(尹師晳) 때부터이다. 윤사석은 호가 만둔암(晩遯菴)이며 형제가 아홉인데, 첫째 형 윤사로는 세종의 정현옹주와 혼인을 하였으며, 여섯째 윤사하(尹師夏)는 벼슬이 사헌부집의에 이르렀다. 윤사석은 성종 대 주부(主簿)에 추천되어 제수되었고 다시 청안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연산군 때 거듭되는 사화로 현인군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사모(紗帽)와 관복을 찢어 버리고 가족들을 거느리고 청주의 옥화대(玉華臺)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풀을 엮어 정자를 짓고 ‘만경(萬景)’이라고 편액하였다.
[현황]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파평 윤씨는 청원군 내 일곱 번째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794가구, 2,466명이 거주하였다. 그중 미원면 어암리[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어암리]에 47가구가 거주하였다.
[관련 유적]
청원구 북이면 내추리에는 윤관(尹瓘)의 영정을 봉안한 호남사(湖南祠)가 있는데 ‘문숙영당(文肅影堂)’이라고도 한다. 세조 때 좌익공신인 윤형(尹炯)을 모신 공간사(恭簡祠)도 있다. 윤사석이 은거하였던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옥화대에는 윤사석이 지은 만경정(萬景亭)이라는 정자가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26년 허물어져 1989년 다시 지은 것이다. 안에는 1989년 윤지한이 지은 「만경정중수기(萬景亭重修記)」가 걸려 있고, 밖에는 ‘만경정’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이후 윤사석의 자손들이 2011년 만경정 옆에 숭모사(崇慕祠)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