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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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礪山 宋氏 |
영어공식명칭 | Yeosan S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본관 | 여산 송씨 본관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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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여산 송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
세거|집성지 | 여산 송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
성씨 시조 | 송유익 |
[정의]
송유익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여산 송씨(礪山 宋氏)의 시조는 고려 때 진사로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하여지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된 송유익(宋惟翊)이다. 후손들은 여산을 관향으로 삼았다. 송유익의 두 동생 중 송천익(宋天翊)은 은진 송씨(恩津 宋氏)의 시조가 되었고, 송문익(宋文翊)은 서산 송씨(瑞山 宋氏)의 시조가 되어 갈라졌다. 고려 원종 때 4대손 송송례(宋松禮)가 왕실을 위협하던 권신 임연(林衍) 일파를 제거하는 공을 세워 추성익대보리동덕좌명공신(推誠翼戴輔理同德佐命功臣)에 책록되고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광정대부(匡靖大夫) 문하시중판전리사사(門下侍中判典理司事) 상장군(上將軍)에 올랐다. 더불어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하여졌고 식읍 1,000호를 받았다. 이로써 여산 송씨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후손들은 송송례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송송례의 아들은 송염(宋琰)과 송분(宋玢)이다. 송염의 아들 송운은 원윤공파(元尹公派), 송방영은 밀직공파(密直公派), 송원미는 소윤공파(少尹公派)로 갈라졌다. 송분의 아들 송린은 지신공파(知申公派), 송서는 정가공파(正嘉公派)로 갈라졌다.
[입향 경위]
여산 송씨가 청주에 입향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한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사후 송상현의 묘소가 청주로 옮겨지면서 후손들이 세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1930년 국세 조사 통계 자료에 의거하면 여산 송씨는 강서면 수의리[지금의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40가구가 거주하였다.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를 참고하면 여산 송씨는 101가구, 314명이 거주하였다.
[관련 유적]
흥덕구 수의동 입구에는 21세손 송현기(宋鉉器)의 부인 밀양 박씨의 효열각과 송명휘(宋明輝)의 부인 연일 정씨의 효부각이 있다. 안쪽에 송상현(宋象賢)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와 청주 송상현 묘소가 있다. 묘소 아래에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신도비가 있다. 송상현은 성주 이씨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송인급(宋仁及)의 묘소는 흥덕구 수의동에 있다. 송인급의 아들 송근은 5남 4녀를 두었는데, 다섯 아들 모두 수의동 일대에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