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 김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300
한자 延安 金氏
영어공식명칭 Yeonan K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68년연표보기 - 김원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36년연표보기 - 김원 사망
본관 연안 김씨 본관 - 황해남도 연안군
입향지 연안 김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연안 김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연안 김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수대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김섬한
입향 시조 김원

[정의]

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연안 김씨(延安 金氏)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 국자감의 사문박사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문헌에 의하면 김섬한의 선계는 신라 김알지의 후예로 두 왕자가 왕에게 직간(直諫)을 하다가 형은 북빈경(北濱京)[현재의 강릉]에 유배되고, 동생은 시염성(豉鹽城)[연안의 옛 지명]으로 유배되었다. 시염성으로 유배된 동생의 후손이 바로 김섬한이다. 후손들은 김섬한의 유배지인 연안(延安)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김섬한의 아들 김준구(金俊龜), 김준용(金俊龍), 김준린(金俊麟) 3형제 중에서 청주에 세거하는 연안 김씨의 세계는 대장군을 지낸 셋째 아들 김준린,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김경성(金景成), 대광보국문하찬성사(大匡輔國門下贊成事)를 지낸 김우(金祐),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낸 김광후(金光厚),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왕 때 밀직제학을 지낸 김도(金濤), 문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로 이어진다.

[입향 경위]

연안 김씨가 청주 지역에 입향한 것은 재령군 수공파의 파조인 김잉(金仍)의 6대손 김원(金瑗)[1568~1636]이 남이면으로 이거하면서부터로 추정된다. 김자지(金自知)의 셋째 아들인 김잉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으로는 세종 때 중훈대부 재령군수를 지냈으며, 후에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이후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였던 김잉의 사위 성삼문(成三問)과 손자 사위인 성삼고(成三顧)의 처가라는 이유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자 화를 피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충청도 직산으로 은거하였다. 이후 김원의 아버지 김종유(金宗裕)가 계축사화에 연루되면서 또다시 직산으로 은거하였고, 인조반정 이후 김원이 서원구 남이면으로 이거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연안 김씨가 청주에 입향한 이후 후손들의 묘소 등이 현재의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 남이면 수대리 등에 있는 것을 보면 일대에 세거지, 집성촌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유적]

김원의 효자각은 원래 남이면 수대리에 있던 것을 북이면 선암리로 옮겼으며, 연안 김씨 묘역 역시 선암리에 조성되어 있다. 김원의 아들 김태형(金兌亨)은 효행이 뛰어나 숙종 대에 포상으로 통사랑이 되었다. 김태형의 묘소는 수대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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