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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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 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도연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56년 - 김백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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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90년 - 김백희 사망 |
본관 | 안동 김씨 본관 - 경상북도 안동시 |
입향지 | 안동 김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청원구 오창읍|흥덕구 강내면 궁현리 |
세거|집성지 | 안동 김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 |
세거|집성지 | 안동 김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
세거|집성지 | 안동 김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모정리 |
묘소|세장지 | 김사렴 묘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모정리 산8 |
성씨 시조 | 김숙승[구 안동 김씨]|김선평[신 안동 김씨] |
입향 시조 | 김사렴[구 안동 김씨]|김백희[신 안동 김씨] |
[정의]
김숙승과 김선평을 시조로 하고 김사렴과 김백희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개설]
안동 김씨(安東 金氏)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구 안동 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손자인 평장사(平章事)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경순왕의 8대손인 고려 후기 무신 충열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한다. 신 안동 김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태사를 역임한 김선평(金宣平)이다. 이후의 세계는 부정(副正)을 지낸 김습돈(金習敦)을 1세조로 하여 이어진다.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는 구 안동 김씨의 안렴사공파와 익원공파, 신 안동 김씨의 판관공파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입향 경위]
충청북도 청주시에 세거하는 구 안동 김씨의 계보는 김방경의 셋째 아들이자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상락군에 봉하여진 김순(金恂)으로 이어진다. 구 안동 김씨의 청주 입향조는 고려 후기 안렴사를 지낸 김사렴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김사렴은 관직을 버리고 청원군 오창[현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으로 낙향한다. 이후 오창은 구 안동 김씨 안렴사공파의 세거지가 된다. 한편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 일대에는 김사렴의 동생이자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으로 태종 때 좌의정을 지낸 김미(金湄)가 강내면 궁현리[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궁현리]로 입향하였다. 신 안동 김씨가 청주에 처음 입향한 것은 김백희(金伯喜)[1456~1490]가 청주로 이거하면서부터이다. 김백희는 판관공파의 파조인 김용(金龍)의 6대손이다.
[현황]
김사렴의 후손으로는 명종 때 문장과 초서에 뛰어났던 김주(金澍)[1512~1563]가 있고, 임진왜란 때의 김제갑(金悌甲)[1525~1592]과 김시민(金時敏)[1554~1592]·김시약(金時若)[?~1627] 형제가 충의로 이름이 높았다. 또한 병자호란 때 성천부사(成川府史)로 순절한 김언(金言)과 숙종 때 학자로 참판을 지낸 김득신(金得臣)[1604~1684] 등이 유명하다. 김백희의 후손으로는 손자 김철수(金鐵壽)가 1502년(연산군 8) 무과에 급제한 후 의주목사와 함경남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그리고 15세손 김응생(金應生)[1534~1598]은 성균관 생원으로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후에 신항서원 2대 원장이 되었고, 동생 김계생(金繼生)[1541~1609]은 사마시에 입격한 후 형과 함께 양화동에 우거하면서 신항서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김계종(金繼宗)은 임진왜란 때 조강의 의병 부대에서 활약하여 후에 군수가 되었으며, 김희식(金讀式)은 순절하였다. 현재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모정리는 구 안동 김씨 안렴사공파 후손들의 집성촌이며,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을 비롯한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일대에는 구 안동 김씨 익원공파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김사렴의 묘소는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모정리 산8에 있으며 주변에 영모재(永慕齋)와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