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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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銘 |
영어음역 | Jo My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희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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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미상 |
몰년 | 1478년 |
본관 | 한양(漢陽) |
자 | 경부(警夫) |
호 | 인촌(仁村) |
아버지 | 조순생(趙順生) |
어머니 | 원유용(元有容)의 딸 원주원씨(原州元氏) |
추증/추서 | 도승지(都承旨) 직제학(直提學) |
[정의]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경부(警夫), 호는 인촌(仁村)이다. 태조 배향공신이며 개국공신인 조인옥(趙仁沃)의 증손이며,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조뢰(趙賚)의 손자이며, 이조참의(吏曹參議) 조순생(趙順生)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음보로 세종 때 여러 벼슬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다. 한번은 병조의 군적이 분실된 일이 있어 담당자들이 모두 죄를 입을까 두려워하였다. 이때 조명이 조용히 기억을 더듬어 암송해 장부를 완성하였다. 얼마 후 분실된 군적부를 찾게 되어 대조하였더니 원부와 한자도 틀림이 없어 모두 탄복하였다.
계유정난때(1453)에 부친과 함께 화를 입어 금산(錦山)에 귀양갔다. 그때 그 아비지인 조순생이 고성(固城)에서 사사(賜死)됨을 들었으나 나라의 금령으로 가지 못하였다.
1469년(예종 1) 중궁(中宮)의 친족이라 하여 그의 처와 함께 목천(木川)에 안치되었다. 목천에 있을 때 뒷산 높은 봉우리에 올라 단종이 계신 동쪽을 향해 배례하고, 남쪽 고성을 향하여 곡하였다. 매 삭망에 결하지 않고 이같이 행하였다. 그가 동배하던 산을 목천에서는 정랑봉(正郞峯)이라 하였으며, 대를 만경대, 우거한 마을을 다인촌이라 하였다.
1477년(성종 8) 목천에 있을 때 반역을 도모한다고 무고당하기도 하였다. 그 후 목천의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정조 때에 도승지(都承旨) 직제학(直提學)이 증직(贈職)되었다. 순조 때에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1934년 분향하던 향로(香爐)가 발견되었는데, 강내면 연정리 충효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