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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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鳴殷 |
영어음역 | Yun Myeonge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규근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이다. 직장 윤영(尹瑛)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역임하고, 정언, 지평, 병조좌랑, 교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공양이 남달랐다. 1634년 인조가 그의 친어버이를 숭봉하려 하자 양사가 이를 반대하니 인조가 양사 장관의 벼슬을 좌천시켰다. 이에 그도 지평으로서 사친추숭(私親追崇)을 반대, 경성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와 고향에 은거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양에 나아가 조익(趙翼)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강화에 건너갔는데 강화가 함락되었다. 난이 끝난 뒤 서천군수, 청주목사를 역임하고 집의, 동부승지를 지냈으며, 1645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사직하고 남포(藍浦)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낚시질을 하며 지내다가 죽었다.
[상훈과 추모]
그의 지극한 효행이 널리 알려져 정문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