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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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仲淹 |
영어음역 | Sin Jungeo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재학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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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522년 |
몰년 | 1604년 |
본관 | 고령(高靈) |
자 | 희범(希范) |
아버지 | 신서(申漵) |
아내 | 문화유씨(文化柳氏)|전주이씨(全州李氏) |
추증/추서 | 좌찬성(左贊成)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희범(希范)으로 문충공 신숙주(申淑舟)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의 4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서(申漵)이고, 할아버지는 갑자사화(甲子士禍) 이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청원군 낭성면 지역으로 은거한 신광윤(申光潤)이다.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와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인이 있었다.
아들로 신저(申渚), 신식(申湜), 신용(申涌), 신은(申氵隱) 등 4형제를 두었는데, 신식은 충청도와 강원도의 관찰사를 지냈으며, 신용은 황해도관찰사와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다.
[활동사항]
음사(蔭仕)로 관직에 나아갔다. 선공감(繕工監)의 감역(監役)을 시작으로 용담, 상주, 수안, 순천, 곡산 등의 수령을 지냈는데, 그중 수안(遂安)에는 그를 기리는 거사비(去思碑)가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군량미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고는 자신의 재산을 내어 명나라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국난 대처에 노력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첨지중추부사를 제수 받았으며, 80세가 되자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상훈과 추모]
그가 죽자 선조(宣祖)는 예관(禮官)을 보내어 치제(致祭)하였으며 좌찬성을 추증하였다. 1619년(광해군 11)에 세운 신도비가 있는데 비문은 심희수(沈喜壽)가 지었고 글씨는 이산뢰(李山賚)가 썼다. 신도비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묘소]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묵정에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 청원군 일대에 세거하는 고령신씨(高靈申氏) 영성군파 종중의 대표적인 현조(顯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