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153 |
---|---|
한자 | 淸州紡織 |
이칭/별칭 | ㈜청방,청주방적㈜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43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태재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섬유 제조업체.
[설립목적]
1950년 한국동란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산업시설을 복구하여 절대 부족한 생필품을 공급할 목적으로 당시 새로이 선보인 화학섬유를 생산·공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청주방직은 1954년 설립 이후 전후복구 과정의 물자부족 상황에서 성업을 이루었으며, 1970년대 말에는 아크릴염색사와 복지를 생산하였다. 이후 청주산업단지가 조성되자 1974년 5월 청주시 복대동 100 청주산업단지 제1공단 초입에 현대적인 공장시설을 갖춘 청주합섬㈜을 따로 설립하였다.
소모사(梳毛絲)를 주로 생산하는 청주합섬이 주력이 되면서 우암동의 청주방직은 점차 인원과 생산을 감소하였고, 한 때 이 자리에 특급호텔 건립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자 이를 매각, 청주동부경찰서와 상당구청이 들어서게 되었다.
청주합섬은 당초 소모방적시설 10,000추에서 1977년 9월 10,000추를 증설, 시설을 배가하였고, 1979년 1월 상호를 청주방적㈜으로 변경하였다. 1981년 10월 태사(준소모) 방적시설 792추를 설치하였고, 1982년 3월 안정적인 인력확보를 위해 산업체 부설학교인 석천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84년 4월에는 염색시설을 신설하였고, 1988년 9월 소모방적시설 6,848추 증설, 1994년 8월 소모방적시설 6,000추 증설이 이어졌으나 사업전환 등의 이유로 1995년 5월 현재의 서한모방㈜으로 변경되었다. 이로써 한국동란 이후 전후복구기, 그리고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명성을 날렸던 청주방직의 이름은 사라지고 말았다.
[주요사업과 업무]
청주방직은 아크릴염색사와 복지를 생산하였고, 청주방적은 주생산품목이 소모사이며, 혼방사와 모사 그리고 OEM방식으로 양복지를 생산 납품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1977~1979년에 청주방직은 자본금 41억7천만원, 대지 9,596평, 건평 3,085평, 종업원 247(남62, 여185)명이고, 생산실적은 1976년 아크릴염색사 156,135야드/1천5백만원, 복지 347,877야드/6천만원, 합계 7천5백만원 1977년 아크릴염색사 256,875야드/3천만원, 복지 356,717야드/7천5백만원, 합계 1억5백만원 1978년 아크릴염색사 1,881,839야드/37억1천6백만원, 복지 733,072야드/28억6천9백만원, 합계 65억8천5백만 원을 기록하고 있다. 1978년도에 생산 및 매출이 급증한 것은 예년에 없던 수출(1억2천2백11만4천 달러) 때문이다.
한편, 청주방적은 자본금 6억원, 대지 18,599평, 건평 5,455평, 종업원 736(남87, 여649)명이고, 생산실적은 1977년 소모사 5,282M/T/27억6백만원(수출5백41만2천달러) 1978년 소모사 7,595M/T/55억원(수출 1천1백만 달러)을 기록하였다.
청주방직은 한국동란 직후 폐허속에서 당시로서는 첨단 신소재 화학섬유를 생산, 부족한 생필품 공급에 기여하며 특수를 누릴 수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1970년대 산업화 대열의 선두에 서서 청주지역을 대표하는 섬유산업을 이끌었다. 그러나 경영이 2세 체제로 이어지면서 지역연고 이미지가 약해지고 청주지역의 오랜 역사를 가진 대표적 섬유기업으로서의 명성이 바래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