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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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䫨 |
영어음역 | Jeong 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미숙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청주사람으로서 본관은 청주이며, 자(字)는 사겸(思謙), 호는 설헌(雪軒)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장경공(章敬公) 정해(鄭瑎)이고, 아버지는 청하군(淸河君) 정책(鄭幘)이며, 동생은 좌사간(左司諫) 정포(鄭誧)이다.
[활동사항]
과거에 급제하고, 1330년(충혜왕 즉위년)에 성균관승(成均館丞)을 지내었으며, 이어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었으나, 내인 최안계(崔安桂)가 “정오(鄭䫨)가 왕이 나이가 어려서 정치의 방도를 잘 알지 못 한다고 말하였다”고 한 참소로 인하여 이문소에 투옥되고 장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 뒤 1352년(공민왕 원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왕을 연경에서 모신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으며, 1354년에는 첨의평리(僉議評理)로 서원군(西原君)에 봉해지고, 추충진의보리공신(推忠陳義輔理功臣)이 되었다. 일찍이 원의 선명(宣命)을 받아 제거(提擧), 정동유학(征東儒學 )이 되기도 했다. 1359년 7월에 죽으니, 시호를 문극(文克)이라 하였다.
[의의와 평가]
정오가 죽은 후에 청주사람들이 나쁜 놈 하나가 또 없어졌다고 한 것으로 보아, 청주사람들에게 좋은 인품을 보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