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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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璃目沼-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유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 「이목소와 이무기」 『내 고장 전통문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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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이목소와 이무기」 『청도 군지』에 수록 |
관련 지명 | 운문사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
성격 | 설화|전설|용 전설|지소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보양|이목|천제|사자 |
모티프 유형 | 신이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운문사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이목소와 이무기」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雲門寺)에 머물던 국사(國師) 보양(寶壤)과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璃目)에 대한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청도군에서 1981년에 발간한 『내 고장 전통문화』에 「이무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1991년에 청도군에서 발간한 『청도 군지』에는 「이목소와 이무기」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절골에는 운문사가 자리하고 있다. 운문사 맞은편에는 이목소라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는데, 이목소에는 한 가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국사(國師)인 보양이 중국에 들어가서 불법을 전수받고 돌아올 때 이야기이다. 서해 용왕이 보양을 용궁으로 맞아들여 경을 읽게 하고는 금으로 만든 비단 가사 한 벌을 시주하고 이목이라는 아들을 딸려 보냈다. 보양을 따라온 이목은 항상 절 옆에 있는 웅덩이에 머물며 보양이 불법을 펼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던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어 논과 밭에 있는 곡식이 타들어 가자 보양이 이목에게 명하여 비를 내리게 하였다. 사람들은 가뭄 때문에 큰 고충을 겪고 있던 터라 비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천제(天帝)는 자신의 허락 없이 이목이 조화를 부려 비를 내린 것을 알고 이목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목은 천제가 노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보양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보양이 이목을 법당 마루에 숨겨 주었다.
그때 천제가 보낸 사자가 보양에게 찾아와서 이목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보양은 뜰 앞마당에 있던 커다란 배나무[이목(梨木)]를 가리키며 이목이라고 하였다. 천제의 사자는 보양의 말을 그대로 믿고 배나무에 벼락을 때리고 올라갔다. 사자가 돌아간 뒤에 법당 마루 밑에서 나온 이목은 벼락을 맞은 배나무를 다시 살려 놓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이목소와 이무기」의 주요 모티프는 ‘이목의 신이한 행적’이다. 이목소에 살고 있는 이목은 서해 용왕의 아들이다. 이목은 보양을 도와 불법을 전파하고 가뭄이 든 마을에 비를 내려 사람들을 도왔다. 하지만 비를 내리게 한 것이 천제의 미움을 사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목은 보양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한다. 「이목소와 이무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수록된 「보양 이목(寶壤梨木)」과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보양 이목」은 사찰의 창건이 핵심인데 반해 「이목소와 이무기」에서는 ‘이목의 신이한 행적’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청도군에 소재한 운문사 내의 이목소를 증거물로 하여 신빙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