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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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
집필자 | 박유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청도 납딱 바위」 『청도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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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청도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
성격 | 설화|전설|암석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길손|역인 |
모티프 유형 | 암석 유래설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의 납딱 바위에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개설]
「청도 납딱 바위」는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에 위치한 청도역 터에 있었다는 납딱 바위에 얽힌 이야기이다. 납딱 바위는 경부선 철도를 부설할 당시 매몰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91년 청도군에서 발간한 『청도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청도의 납딱 바위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바위였다고 한다. 전해진 바로는 당시 납딱 바위 부근에는 늙은 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고 시원한 샘물도 있어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휴식처로는 그만이었다고 한다. 공물을 지고 청도를 통과하는 역인들은 반드시 널찍한 납딱 바위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한양으로 향하였다. 대구에서 출발한 길손도 납딱 바위에 도착하면 정오쯤이 되니 어김없이 쉬었다 갔다. 밀양에서 올라오는 길손도 납딱 바위까지 오면 정오 때가 되었다. 공물을 운반하는 역인들끼리는 약속처럼 서로 인사로 청도 납딱 바위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는 영남 지역의 선비들에게는 청도 납딱 바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가는 길에 반드시 청도 납딱 바위에 앉아서 쉬어 가야 크게 길하다는 말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청도의 길목에서 수백 년 제자리를 지키던 납딱 바위는 청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군들이 이정표로도 삼았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청도 납딱 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납딱 바위의 유래(由來)’이다. 청도역 터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납딱 바위에 대한 유래를 말해 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전승 집단은 청도군에서 유명하던 납딱 바위가 사라져 안타까웠던 심정과, 1998년 역전 도로 공사 확장 시에 납딱 바위의 흔적이 발견되자 공원으로 조성하여 납딱 바위의 명성을 되찾은 것에 대한 기쁨을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