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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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院 |
영어의미역 | Lecture Hall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장성진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유학 교육과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
[개설]
서원은 조선 시대에 발달한 사립 고등 교육 기관이다. 창원 지역은 15세기 초에 이미 도호부로 편제되어 중부 경남의 행정과 학문 거점 기능을 하였다. 지역 특성상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유학자와, 조선 후기 정계 진출로가 막힌 향촌 사림 학자들의 덕행을 기리는 서원이 많다. 창원 지역에 현존하는 서원은 모두 11개소이다. 서당이나 재실로부터 승격한 시기가 불확실한 경우도 있지만, 19세기 말까지 설립된 서원이 5개소이고, 20세기에 설립된 것이 6개소이다. 행정 구역의 크기에 비해서 비교적 밀집해 있는 편이다. 대부분 중창 과정에서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원래는 소박한 서원이 많았다.
[연원 및 변천]
한국 서원의 효시는 16세기 중엽인 1543년(중종 38)에 풍기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다. 창원에서 서원이 건립된 시기는 비교적 늦은 편에 속한다. 그 건립 추이를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창원시의 서원으로서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은 17세기의 회원 서원(檜原書院)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학문과 시를 논하던 관해정(觀海亭)을 한강 사후인 1634년(인조 12) 서원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두 번째는 19세기에 세워진 서원이며, 대부분 앞 시기에 세워진 사우(祠宇)가 승격된 것으로서 강학보다는 제향을 위주로 하였다. 도봉 서원(道峯書院)은 임란 공신 김명윤(金命胤)을 기리는 도봉사(道峯祠)를 1844년(헌종 10)에 승격시킨 것이며, 운암 서원(雲巖書院)은 효자 박신윤(朴身潤)을 제향 하던 운암사(雲巖祠)를 1844년(헌종 10)에 승격시킨 것이다. 구암 서원(龜巖書院)은 학자인 정이오(鄭以吾)와 절의사인 정분(鄭苯)을 제향 하던 구연사(龜淵祠)를 1864년(고종 1)에 승격시킨 서원이다. 월영 서원(月影書院)은 건립 시기에 대한 기록이 서로 다르지만 19세기 중엽이 유력하다.
세 번째는 20세기에 세워진 서원으로서 사우가 발전했거나 제향 기능이 중심이다. 첨두 서원(瞻斗書院)은 18세기 건립설이 있기는 하지만 승격은 20세기에 이루어졌으며, 저산 서원(楮山書院)과 도남 서원(道南書院), 증산 서원(甑山書院), 원천 서원(源川書院), 여산 서원(廬山書院)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창원 지역에 서원이 늦게 건립된 것은 도시의 성격과 관계가 있다. 창원 지역은 조선 동남부 해안 도시로서 이론적 학문보다 왜적 방어, 물류의 이동 등 현실적 정책 수행에 집중한 것과 현실적으로 조선 후기 정치에서 소외된 북인 계열의 학자들이 선현을 기릴 여유가 없었던 것이 이유이다.
[구조]
서원의 공간 배치는 제향 공간인 사당, 교학 공간인 강당,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크게 나누어진다. 여기에 규모에 따라 서적을 펴내는 장판고(藏版庫), 이를 보관하는 서고(書庫), 서원의 관리 및 유생들의 편의 공간인 교직사(校直舍),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 등의 부속 건물이 있다.
창원 지역 서원 중 운암 서원이나 저산 서원처럼 규모가 큰 서원은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우가 남북으로 일직선에 배치되고 동재와 서재가 강당 앞 좌우에 배치되는 전형적 전학 후묘 구조이다. 그러나 이 지역 서원 중 상당수는 변형을 보여준다. 구암 서원, 도봉 서원, 첨두 서원 등은 내삼문과 사우가 서쪽에 배치되는 동학서묘의 구조이다. 도남 서원은 강당과 사우가 따로 건립되어 있으며, 회원 서원은 공간이 비좁아서 강당과 사당을 직각으로 배치하는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제향 인물]
창원 지역 서원에 제향 된 인물들은 학문적 성취보다 유교적 덕목을 실천한 덕행이 중시되었다.
회원 서원의 한강 정구와 미수(眉叟) 허목(許穆)은 강학을 한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 학자이며, 월영 서원의 최치원은 숭모의 대상이다. 도봉 서원의 김명윤, 운암 서원의 박홍정(朴弘貞), 첨두 서원의 노경종(盧景宗), 증산 서원의 서응시(徐應時), 여산 서원의 박진영(朴震英) 등은 임진왜란에 창의하였으며, 저산 서원의 김관(金菅)은 고려 말에 왕을 호종한 사람이다. 운암 서원의 박익과 도남 서원의 김귀(金龜)는 고려 말에, 구암 서원의 정분과 첨두 서원의 조정직(盧廷直)은 단종 때 절의를 지킨 사람들이다. 그 밖의 사람들은 주로 향리에 은거하면서 수양을 한 향촌 사림이다.
이와 같이 실천을 중시한 것은, 이 지역이 해안에 위치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에 자주 직면하면서, 무엇보다 실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체험한 결과로 보인다.
[유물]
창원 지역의 서원에 소장된 유물은 전체적으로 많지 않은 편이다. 이는 제향 인물들이 저술이나 교류에 힘쓰지 않았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데 기인한다. 그러나 몇 가지 유물은 독특하고 가치가 있다. 도봉 서원에 소장된 ‘김명윤 유품 쌍검(金命胤遺品雙劍)’ 두 자루는 선조가 직접 내려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검은 양날을 가지고 있으며, 검의 등 쪽에 가지가 붙어 있다. 두 검 중 하나는 나무 손잡이만 훼손되었다. 손잡이가 없는 검은 길이 73㎝, 폭 5.2㎝이며, 손잡이가 있는 검은 길이가 62㎝이다.
운암 서원에는 『우곡 선생 문집(愚谷先生文集)』·『인당 선생 문집(忍堂先生文集)』·『송은집(松隱集)』 등의 책판이 있는데, 이는 운암 서원에서 간행과 국역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 중 『송은집』은 4권 1책의 목활자 본으로서 1837년에 간행되었으며,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창원 지역의 서원 중 일부는 공간이 여유 있게 잘 정비되어 향사가 이루어지며, 대부분 도시로부터 접근성이 좋아서 전통 문화를 이해하는 교육 장소로 활용할 만하다. 실제로 운암 서원은 주변에 편의 시설을 두어 관리와 운영에 활용하며, 구암 서원은 특강 등 강학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신흥 공업 도시인 창원 지역에서 인문학적 지식과 감성을 함양할 수 있는 중요한 터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