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296 |
---|---|
한자 | 保寧- 長古島- 鹽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에서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
[개설]
장고도(長古島)는 섬의 모양이 장구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고도 염전은 1960년대에 조성하였으며, 지금까지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다. 2022년 현재 염전의 주인은 2002년에 편갑득으로부터 염전을 매수해 임대해 주었으나, 2015년부터는 직접 운영 중에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소금은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장고도에서 생산한 소금은 인근의 삽시도, 외연도, 녹도 등지로 판매되고 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청정지역의 해수를 이용해서 소금을 생산하며, 토질이 좋아 인기가 많다.
[보령 지역의 소금 생산]
염전은 소금을 생산할 목적으로 며칠 혹은 바닷물이 거의 들어오지 않을 때 갯벌을 논처럼 만든 것이다. 조석 간만의 차이가 큰 간석지 중 물이 가장 덜 빠지는 조금에나 물이 빠지는 곳의 갯벌을 수시로 쟁기를 멘 소로 갈아 둔다. 갈아 둔 갯벌의 속살의 수분이 햇볕에 증발하면 염도가 높은 흙이 만들어진다. 갯벌 밭 중앙에 구덩이를 파두고, 보름 동안 쟁기질을 반복한다. 사리 때 바닷물이 밀려들면 농도가 높은 개흙[갯바닥이나 늪 바닥, 진펄 같은 데에 있는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흙]의 염분이 구덩이로 빠진다.
충청남도 보령시의 해안 및 도서 지역의 간석지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은 화염(火鹽)이었다. 즉, 염도가 높은 바닷물을 퍼다가 솥에 넣고 끓이는 방식을 행하였는데, 그중 주교면 은포리 인근에서 많이 생산하였다. 도서지역에서는 100여 년 전까지 장고도에서 행하였다고 한다. 해안과 달리 도서지역은 간석지가 발달하지 않아 화염을 생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천일염 생산기술이 보급되면서 화염은 자취를 감추었고, 천일염 생산지가 급속도로 늘었다. 1980년대까지 보령시 전역에는 염전 15곳이 있었다. 주포면 2곳, 오천면 6곳, 천북면 2곳, 청소면 3곳, 남포면 1곳, 주산면 1곳 등이었다. 이 가운데 염전의 비중이 높은 곳은 오천면으로 장고도에 1곳, 원산도에 3곳, 내륙에 2곳이 있었다. 도서지역은 내륙과 달리 소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않으면 어물 염장에 어려움이 있었기에 자체적으로 생산하였다.
1980년대 이후 값싼 중국산 소금을 수입하면서 내륙 염전은 일찍이 중단되었다. 2019년까지 원산도 염전 1곳이 영업하였으나, 연육교 신설로 염전 부지가 수용되었다. 2022년 현재 보령시에 남아 있는 염전은 장고도가 유일하다.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장고도]
장고도는 섬의 중앙부가 잘룩하고 양끝이 발달해 있다. 잘룩한 부위 양쪽은 각기 다른 갯벌을 이루고 있다. 앞쪽으로는 모래갯벌이 발달해 있고, 뒤편에는 혼합갯벌이 발달되어 있다. 혼합갯벌에는 펄·모래·잔돌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고, 섬 주변의 수심이 낮고 암초가 발달되어 있어 연안에 서식하는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전복, 해삼은 물론 멸치, 까나리, 실치, 김 등도 많다. 특히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청청해역을 유지하고 있다.
섬 주변 곳곳에 삐죽하게 나와 있는 기암괴석과 푸른 소나무가 해안 주변을 뒤덮고 있어 해안국립공원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푸른 바다의 넉넉함에 기대어 10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섬의 규모에 비해 인구 밀도는 높은 편이다.
대천항에서 21㎞ 떨어져 있으며, 여객선을 타면 1시간 남짓 시간이 걸린다. 수산자원이 많고, 풍부한 청정해역이라 어업에 종사하는 순수 어촌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자녀들과 함께 자연을 체험하고 관광객을 즐기려는 많은 이들이 다니러 온다. 아파트와 달리 친자연적인 섬 집에서 생활하는 즐거움도 경험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까나리, 멸치 등을 어획해 많은 양의 액젓을 생산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집마다 소량만 생산하고 있다. 여러 가지 작은 생선을 섞어 담은 잡젓을 주로 생산하고 있어, 섬 곳곳에서 붉은색의 젓갈통이 눈에 띈다. 섬 뒤편에는 전국에서 유일한 처녀들의 성년식으로 알려진 등바루놀이를 하는 명장섬이 있고, 그 앞쪽으로는 고운 모래갯벌이 넓게 펼쳐진 장고도명장섬해수욕장이 있다.
등바루놀이는 시집가지 않은 색시들이 명장섬 앞쪽의 굴밭에서 굴을 까고, 굴을 많이 깐 사람을 뽑는 노동의례이자 성년의례로 유명하다. 장고도명장섬해수욕장은 조용하고 수심이 낮아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적합하며, 모래갯벌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잔돌과 모래가 잘 어우러져 있는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다. 굴·바지락·낙지 등의 어패류가 많아 갯벌 체험으로도 적합하다. 특히 명장섬 바지락은 알이 굵고 쫄깃한 식감 덕분에 많은 이들이 찾는다.
[『한국수산지』에서 확인되는 '장고도의 소금 생산']
『한국수산지』는 1908년부터 1911년까지 농상공부 수산국과 조선총독부 농상공부에서 전국 연안의 도서와 하천 등의 수산물의 실상을 조사해서 작성한 보고서로, 장고도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섬의 중앙부, 즉 마을 옆에 2정보[약 1만 9835㎡] 규모의 염전이 있었다. 염전에는 철제 솥가마 2기가 있었는데, 큰 것은 2칸짜리로 사방이 각이 진 솥이었다. 이 솥은 군산에서 매입하였는데, 가격이 50원이었다. 제염 시기는 2월부터 10월까지 9개월간이었으며, 연료 부족으로 휴업하는 일이 있었다. 연료는 안면도에서 들여오는데 가마솥 2개에 소요되는 1일 연료가 약 1원이었다. 제염 인부는 솥 1개에 2인이 요구되었고, 임금은 식사를 주고서 1인 1일 25전을 주는 것이었으니 솥 2개에 1일 1원이 들었다. 그 외에 염전 정리를 위하여 1개월 2회 원산도에서 소를 빌려서 1회에 7일간 사용하는데 사용료로 1원 50전과 식사를 공급하였다. 그러므로 월 2회에 3원이 들었다. 기타 제염에 쓰이는 소모는 인부에게 식료잡비 등 1개월분으로 22원 50전이 들었다. 도합 82원 50전이 들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장고도의 중앙부에 화염을 생산하던 염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염을 생산하였던 염전의 위치는 2022년 현재 운영 중인 천일염전이 있는 곳과 동일한 곳이다. 장고도에서는 ’화염’이라는 명칭보다는 ‘본염’이라 불렀다.
[장고도의 천일염 생산 방식]
봄부터 가을까지 소금을 생산하지만 근래에는 봄부터 여름까지만 작업한다. 가을에는 소금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아 인건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름철에만 집중적으로 작업한다. 양력 3월부터 본격적으로 소금 생산 준비를 시작한다. 염판과 둑을 정비하는 데 2개월여가 소요된다. 소금 생산은 5월부터 8월까지 한다.
소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염도를 맞추는 일이다. 저수지에서 난지로 바닷물을 넣으면 염도가 약 3.5‰이다. 난지는 모두 4칸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소금물의 농도가 높아지면 조금씩 아래 칸으로 옮기 위해 칸을 구분해 둔 것이다. 난지라 해도 동일한 염도가 아니라 칸마다 다르다. 칸마다 구멍을 내어 염도가 높은 물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둔다. 이곳에서 13‰이 되면 느태로 보낸다.
느태에서 햇볕에 졸여지고 염도 23~24‰이 되면 결정지로 옮긴다. 이때 염주[염전 주인]는 염도계로 염도를 확인한다. 이렇게 염도가 낮은 바닷물을 난지에 넣어 결정지에서 소금으로 완성되는 기간은 보통 일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난지와 느태에서 물이 졸여지는 기간 동안 수시로 염부는 뜰채를 이용해 염판에 떨어진 동물의 사체, 검불 등을 걷어 낸다. 결정지에 이르면 고무래와 같이 생긴 고무 소파와 대패를 이용해서 소금을 한쪽으로 모은다. 대패는 대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결정지에서 소금을 밀거나 긁어모을 때 혹은 염전 바닥을 청소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크기는 규격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보통 너비 150~180㎝에 길이 180~230㎝ 정도이다. 소파는 대파가 닿지 않는 결정지의 테두리 부분을 가운데로 밀어 올릴 때 주로 사용하며, 염전 수로를 청소할 때도 사용한다.
5월부터 시작하여 10월까지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매달 생산되는 소금은 그 양과 질이 차이를 보인다. 일조량이 많은 여름에 가장 많이 생산된다. 그중에서도 5월에 생산되는 소금은 상품성이 뛰어나다. 이 소금을 장고도에서는 ‘송화가루 소금’이라 한다. 소나무의 꽃인 송화가루가 날릴 무렵에 만드는 소금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소금 품질을 조사하는 검사관들도 송화가루 소금은 인체에 좋은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할 정도이다. 한 여름에는 하루에 300가마니 정도를 생산한다. 다만 무더운 뙤약볕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첫 소금이 생산되면 고사를 지낸다]
첫 소금이 생산되면 소머리를 삶고 과일, 떡 등을 제물로 마련해서 고사를 지낸다. 이 제사를 일컫는 명칭은 특별히 없지만, 좋은 소금이 많이 생산되게 해달라는 바람을 담아 지낸다. 소금 생산은 천신(天神)에 의해 좌우되므로 대상 신령은 천신인 셈이다. 첫 소금을 생산하는 양력 5월에 고사를 지내는데,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수확량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고사도 지내지 않는다. 간혹 거르기도 하지만 해마다 고사를 지내고 있다.
[감빨이 센 장고도 소금을 팔다]
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창고로 옮긴다. 포장은 하지 않고 한쪽에 쌓아 둔다. 시세와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한 달 이상을 그대로 놓아 두면 저절로 염수가 빠져 질 좋은 소금이 된다. 과거에는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에 소금을 담아 판매하였으나, 지금은 ‘장고도 천일염’이라 명시된 비닐 포대에 담아 판매한다.
생산된 소금은 전국으로 판매된다. 한 해에 생산되는 소금은 대략 1만 가마니이다. 소금은 썩지 않으므로 대략 5~6년 동안 묵혀 염기를 뺀다. 장고도 소금을 맛본 사람들은 “감빨이 세다.”라고 평한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금에 비해 염기가 강하고 단맛이 강하다는 표현이다.
[소금으로 만든 장고도 젓갈과 건어]
장고도 주민이 어획한 어물인 까나리로 만든 까나리액젓은 인근 일대에서 제일로 알아준다. 어획한 까나리를 이용해 액젓을 담아 집에서 소비하였으나,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한동안 전문적으로 까나리액젓을 담아 ‘장고도 까나리액젓’이라는 상품명으로 팔았다.
본래 까나리액젓은 백령도의 것이 유명하였다. ‘백령도 까나리액젓’이 유명하던 1980년대 이전까지는 장고도에서는 까나리를 말려서 건어물로 팔았다. 건어물의 국내 소비가 줄면서 1980년대부터 까나리액젓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식품 가공법」 허가제로 인해 주민들이 생산하는 까나리액젓은 판매를 할 수 없어 액젓 상품화는 중단되었다. 지금은 장고도 소금의 짜고 담백한 맛으로 담근 까나리액젓은 주민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장고도 소금은 주민들이 어획한 우럭, 놀래미, 광어, 도다리, 아나고 등 어물을 말리거나 염장할 때에 사용한다. 특히 어물과 젓갈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천일염전의 변화]
2022년 현재 운영 중인 장고도의 염전은 1만 5000필(筆)의 규모로 과거 단위로는 5정(町)[약 545m] 규모이다. 이 염전은 본래 간석지로 염기가 강해 벼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에 염전으로 활용하였다. 염전의 위치는 섬의 중간에 허리가 잘록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수차(水車)[염전에서 바닷물을 끌어들이는데 사용했던 기구]를 이용하던 과거와 달리 1990년대 중반에 모터로 기계화되었고, 염판은 2018년에 도자기판으로 교체하였다.
염전은 난지[제1증발지], 느태[제2증발지], 결정지[채렴장]로 구분되어 있다. 느태와 결정지 옆에는 2m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소금물을 가둔다. 이를 ‘해주[함수 창고]’라고 부른다. 해주를 만드는 것은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던 도중 비가 오면 염도를 높인 소금물을 일단 저수지에 가두었다가 비가 지나가면 다시 꺼내어 염판에 옮겨서 졸이기 위해서이다. 해주는 지붕을 씌워 두어 비가 직접 들어가지 않도록 해둔다.
소금을 햇볕에 쬐는 염판은 본래 흙이었으나 작은 사기를 깔기도 하였다. 2018년 정부에서 보조해 주어 사방 60㎝의 도자기를 깔았다. 도자기를 깐 후, 소금 생산량이 훨씬 늘었다. 소금 생산량이 늘어난 반면에 과거 토판에서 작업할 때의 소금 맛이 가장 좋았다고 회상하는 사람도 있다.
[장고도 염전의 보전]
장고도 천일염전은 지금도 활발하게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염전을 생산하는 염전 주인인 박재순은 2022년 현재 83세이다. 고령의 내외가 염전 일을 하고 있기에 염전업의 지속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내륙과 도서와의 왕래가 잦아진 상황에서 장고도 염전의 효용성이 큰 편은 아닐 수 있지만, 보령시에 유일하게 남은 염전이 유지되기를 기대해본다.
청정해역 장고도에서 햇볕에 쬐여 만든 소금은 보령시의 중요한 문화자산이자 특산물이다. 여느 내륙지역과 달리 도서지역은 내륙의 오폐수가 유입되지 않아 섬 주변이 청정해역을 유지하고 있다. 장고도 소금은 섬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청정소금으로, 그 가치가 높다. 1년에 1만 가마니만 생산된다는 생산량의 제약이 있지만, 보령시만이 가진 특별한 산물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