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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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洪州等六郡商務社 |
이칭/별칭 | 육군상무사,원홍주등육군상무우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유병덕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지역에서 활동한 보부상 조직.
[개설]
원홍주 등 6군상무사(元洪州等六郡商務社)는 1851년 홍주와 홍주목 관할에 있던 청양·보령·결성·대흥 등의 보부상들이 설립한 단체로, 보상[봇짐장수]과 부상[등짐장수] 중에 보상이 중심이 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포구와 오일장에 임소를 두고 장시를 관리하고, 물품을 유통·판매하는 등의 상업 활동을 벌였다.
[설립 목적]
충청남도 보령시의 보부상들이 단체를 결성한 것은 조선 후기에 상업과 오일장이 발달하면서 같은 구역의 오일장을 순회하던 행상들끼리 내부 결속과 상부상조, 장시에서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이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의 설립 목적은 탐관오리 등으로부터의 보호, 애경사 등 동료 간의 상부상조,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불순한 행위를 한 자의 징벌, 규율 정립 등이다.
[변천]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1851년 대흥에 사는 임인손의 주도로 결성하여 초기에는 홍주·청양·보령·결성·대흥 등 5읍 상계(商稧)로 출발하였다가 1899년 보부상단을 관할하는 상무사(商務社)가 설치되면서 ‘상무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1901년 오천군이 신설되면서 6군 체제를 이루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오천군이 폐지된 이후에도 ‘6군상무사’라는 명칭은 유지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 현재의 홍성, 보령, 청양의 오일장을 중심으로 상행위와 장시의 발전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들어 조선 시대와 같이 장시를 관리, 감독하는 역할은 폐지되었다. 보령 지역은 접장 선출 문제로 분란이 있어 1907년부터 1915년까지는 6군상무사에서 분리되어 운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조선 시대에 혜상공국-상리국-상무사 등으로 변천해 온 보부상 관할 기구의 말단 조직으로 관할 지역 내 장시의 관리와 질서 유지, 장세 징수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관할 지역 내에 6군상무사의 사무소 격인 여러 임소(任所)[처소]를 두고 활동하였다. 조선 시대 6군상무사의 임소는 6개 정도를 유지하였는데, 보령 지역에는 보령임소를 중심으로 수영임소, 대천임소 등이 설치되었다가 20세기 이후에는 오천임소, 은포임소, 녹도임소, 평촌임소, 홍도원임소 등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현황]
1960년대 이후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오일장에서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급속히 쇠락하였으며, 주요 활동은 보령 홍도원에서 선대 보부상에게 지내는 제사인 한식속절제(寒食俗節祭)를 봉행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현재 6군상무사의 본소는 청양에 두고 있으며, 보령임소, 홍성임소 등이 유지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예덕상무사와 함께 조선 시대에 결성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보부상 단체로 보부상 조직의 형성과 특징, 상업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체이다. 특히, 6군상무사의 문화유산인 홍도원[보령 원홍주 등 6군상무사 임소] 유적과 국가민속문화재 제30-4호로 지정된 다수의 문헌과 민속품, 비석 그리고 한식속절제 등의 의례는 보부상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학술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