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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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泂 |
영어공식명칭 | Im Hyeong |
이칭/별칭 | 중경(仲敻),독성(獨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교빈 |
출생 시기/일시 | 1660년 - 임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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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0년 - 임형 사간원의 탄핵으로 아버지 임홍망과 함께 관직에서 물러남 |
활동 시기/일시 | 1690년 - 임형 식년시 진사과 입격, 와서별제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99년 - 임형 증광시 급제, 증광시 응시자들의 부정행위로 모든 급제자의 합격 취소 |
활동 시기/일시 | 1710년 - 임형 무효 처리된 과거 급제 재인정 |
활동 시기/일시 | 1721년 - 임형 대간을 경시하지 말라는 상소를 올림 |
몰년 시기/일시 | 1721년 - 임형 사망 |
묘소|단소 | 임형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풍천 |
대표 관직|경력 | 집의|남양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개설]
임형(任泂)[1660~1721]은 숙종, 경종 때 벼슬을 지낸 노론(老論) 문신 관료로 사관(史官)을 거쳐 전적(典籍), 좌랑(佐郞), 장령(掌令), 정언(正言), 집의(執義) 등을 지냈다. 벼슬에 있는 동안 1722년(경종 2) 임인무옥(壬寅誣獄) 때 처형당한 사촌 형 임창(任廠)의 일로 공격받은 일이 많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상에 예를 다했고, 계모를 지성으로 섬겼으며 문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계]
임형의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중경(仲敻), 호는 독성(獨醒)이다. 증조할아버지 사예(司藝) 임희지(任羲之) 때 충청남도 아산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증(贈) 좌참찬 임환(任喚),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임홍망(任弘望)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사간(司諫) 성여관(成汝寬)의 딸이다. 아들은 임징하(任徵夏)이고, 숙종의 정비(正妃)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오빠인 호조판서 김진구(金鎭龜)의 딸을 며느리로 두었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에 살았다.
[활동 사항]
임형은 1690년(숙종 16) 식년시(式年試) 진사과에 입격(入格)한 뒤 음직(蔭職)[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으로 와서별제(瓦署別提)를 지냈다. 1699년(숙종 25)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였지만 김인지(金麟至), 이성휘(李聖輝) 등 응시자들의 답안 작성에 부정행위가 있다 하여 모든 급제자의 합격이 취소되었다. 이듬해 이 사건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아버지 임홍망과 함께 관직에서 몰려났다. 1710년(숙종 36) 무효 처리된 과거 시험 급제가 다시 인정되어 사관을 거쳐 전적, 좌랑, 장령, 정언, 집의 등을 지냈으며 외직으로 김포군수, 남양부사를 맡았다. 1721년(경종 1) 임금에게 오로지 정사에 마음을 두고 대간(臺諫)을 경시하지 말라는 상소를 올렸다.
[묘소]
임형의 묘소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 부친의 묘 아래에 있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이 지은 묘지(墓誌)와 아들 임징하가 짓고 6세손 임두호(任斗鎬)가 덧붙여 쓴 묘표(墓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