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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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治 |
영어음역 | Jeonchi |
영어의미역 | Politics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집필자 | 박현석 |
[정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국가 권력의 획득·유지·행사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개인 또는 제 집단 간의 투쟁이나 조정 과정.
[개설]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분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는 주로 국가나 정부라는 제도적인 권력 장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정치는 좁게는 국가 권력에 의해 수행되는 일련의 통치 행위이며, 넓게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공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국가 권력의 획득·유지·행사를 둘러싼 제 집단 간의 투쟁이나 조정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기도 안산 지역의 정치는 전통시대부터 해방 이전인 일제강점기까지에는 주로 국가 기구에 의한 일방적인 통치 행위를 중심으로, 그리고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주로 국가 기구에 파견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전통시대~일제강점기]
경기도 중서부에 위치한 안산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농업과 어업의 중요 생산지로서 많은 사람이 살았던 지역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굴된 신길동 신석기유적지의 집단취락지, 양상동과 월피동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5기와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 군자동 뒷산 서쪽 구릉지대에서 출토된 민무늬토기 후기에 속하는 검은 간토기 조각 등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리고 목내동에서는 삼국시대의 성터 등이 발굴되어 당시 안산 지역이 상당한 인구를 관할했던 군사 기지였다는 증거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에 안산은 서해안의 요충지인 남양만에 이르는 초지동에 별망성(別望城)을 쌓아 삼국이 쟁패하던 주요 거점 지역이었다.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유했던 5세기 말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는 장항구현(獐項口縣) 또는 고사야홀차(古斯也惚次)로 불렀으며,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는 장구군(獐口郡)으로 개칭되어 한주(漢州)의 속군으로서 태수(太守)가 배치되는 중요 지역으로 승격되었다.
고려시대 초기인 940년(태조 23)에는 안산군이라 했다가 1018년(현종 9)에는 수주(水州)의 속현으로서 안산현(安山縣)이 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는 문종 임금이 탄생한 곳이라 하여 다시 안산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안산김씨(安山金氏) 시조의 아들인 김은부(金殷傅)[945~1017]는 문종의 외조부로서 성종·목종·현종 3대를 섬긴 중신(重臣)이었다.
조선 건국 두 해 뒤인 1394년(태조 3)에는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면서 안산도 인근 각 고을과 더불어 기전(畿甸) 지역이 되면서 양광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되었으며, 또한 같은 해에는 남양만과 함께 왜구를 물리치기 위한 국가 전함 건조사업의 중요 기지로 지정되었다. 1896년(고종 32)에는 지방 관제 개혁에 따라 경기도의 4등군(等郡)으로 인천부에 속했으나 이듬해 13도제가 시행되며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06년에는 광주의 월경지였던 북방면, 월곡면, 성곶면이 안산군에 편입되었고,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시흥군 수암면, 군자면, 수원군 반월면으로 개편되었다. 이와 같이 고대로부터 해방 이전까지 전개되어 온 안산 지역의 역사에서 정치는 주로 국가 기구에 의한 권력 작용, 즉 국가의 지역 주민에 대한 일방적인 통치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해방 이후~현대]
정당은 현대 정치의 생명선이라는 말처럼 현대 민주 정치는 주로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 질서가 성립됨과 더불어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정당에 관한 규정을 헌법과 법률에 명문화하고 구체화함으로써 근대적인 의미의 정당 활동 및 정당 정치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안산의 경우 제헌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는 지역 내에 정당 지구당이 없었을 정도로 정당 활동이 미미하였다. 안산 지역의 농민도 해방 공간에서 전개된 전국적인 농민운동에 참가하기도 하고 군자면 등에서는 어업 문제 및 염전 문제가 일부 제기되기도 했지만 당시 대중운동이 주로 군(郡)을 단위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서 1946년 5월 한민당이 지방유세대를 조직하여 각지에 파견하기 시작했으며 경기도 안산 등지에 파견된 인물은 원세훈·박명환·최윤영·윤보선 등이었다. 이어 같은 해 6월 30일에는 한민당 시흥지부가 결성되었다. 한편 당시 전국적으로 전개된 좌우 갈등은 안산 지역에서도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다. 1947년 9월 말 새로운 우익단체인 대동청년단의 창립과 더불어 10월 2일에는 수암면에서 대동청년단 시흥군지부가 결성된데 이어 대동청년단원의 좌익 가담자에 대한 폭력 행위가 속출하였다.
이에 김완종·유보형 등이 수암면 일대를 중심으로 일종의 자생적인 민족주의적 계몽단체인 파악동인회(波嶽同人會)를 조직하여 좌우 이념 대립 타파와 민족 단결을 목표로 독서 토론과 연극 공연 등을 통해 계몽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더불어 파악동지회는 과거 좌익 가담자를 포섭하여 대동청년단의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후에는 대동청년단을 견제할 만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조선민족청년단에 가입하여 조선민족청년단 안양지부가 되었다.
1. 국회의원 선거
이후 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시 현 안산시의 많은 지역이 속해 있었던 시흥군의 경우 모두 4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무소속으로 입후보한 이재형(李載灐)이 13,528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차점자는 이영섭으로 10,589표를 얻었고, 그 다음으로 유지연 6,259표, 장배근 3,986표의 순으로 나타났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1950년 5월 30일 전국에서 실시되었으며 시흥군의 경우 5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국민당 소속의 이재형이 초대에 이어 연속으로 당선되었다. 차점자는 무소속의 이영섭이었으며 다음으로 무소속 전규설, 한청 소속 양서홍, 무소속 김상기 순이었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54년 5월 20일 실시되었으며 시흥군에서는 본래 3명의 후보가 등록하였으나 초대와 제2대 연이어 당선되었던 이재형이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중도 사퇴하였다. 선거 결과 당시 자유당으로 출마한 이영섭이 야당으로 출마한 백봉운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4대 국회의원 선거는 1958년 5월 2일 실시되었으며 당시 시흥군에서는 자유당의 이재형이 1~2대에 이어 세 번째 당선되었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는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민의원과 참의원 양원으로 구성하는 선거로 1960년 7월 29일 실시되었다. 시흥군의 경우 민의원에 6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무소속의 이재형 후보가 다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참의원의 경우 경기도의 정수가 모두 6명이었으나 시흥군 출신은 1명도 당선되지 못하였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3년 11월 26일에 실시되었으며 당시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시흥군은 부천군·옹진군과 더불어 한 개의 선거구로 개편되었으며 모두 9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옥조남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7년 6월 8일에 실시되었다. 당시 시흥군은 제6대 국회의원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부천군·옹진군과 함께 경기도 제13지역구가 되어 모두 6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였다. 개표 결과 민주공화당의 오학진(吳學鎭) 후보가 56,024표라는 압도적 다수로 당선되었으며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병상은 겨우 1,526표를 얻는 데 그쳤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1년 5월 25일에 실시되었다. 시흥군은 다시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제15지역 선거구로 단독 편성되었으며 3명의 후보자가 출마한 가운데 야당인 신민당으로 출마하였던 이택돈 후보가 여당으로 출마하였던 민주공화당의 이영호 후보를 1만 표 이상의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제9대부터 제12대까지의 국회의원 선거는 모두 중선거구제로 1선거구에서 2명을 선출하도록 규정된 선거였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3년 2월 27일 실시되었으며 부천군·옹진군과 함께 시흥군이 포함된 경기도 제6선거구에서는 5명이 출마하여 신민당의 이택돈이 1위로,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오학진이 2위로 각각 당선되었다.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8년 12월 12일 실시되었으며 다시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시흥군은 안양·부천·옹진과 함께 경기도 제6선거구에 편성되었다. 4명이 출마한 이 선거에서는 신민당의 이택돈 후보와 민주공화당 윤국로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으며 이택돈 후보는 내리 3선을 하게 되었다.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1년 3월 25일 실시되었으며 시흥군의 경우 옹진군·안양시와 함께 경기 제6선거구에 속했으며 민정당의 윤국로, 민한당의 이석용, 신정당의 김종일, 신민당의 신하철, 민사당의 박제상 등 7명의 후보가 각축을 벌인 결과 민정당의 윤국로 후보[81,351표], 신한당의 이석용 후보[57,444표]가 각각 1, 2위를 차지하면서 동반 당선되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2월 12일 실시되었으며 시흥군의 경우는 안양·광명·옹진군과 함께 경기도 제4선거구에 편입되었는데 모두 6명이 출마하여 경쟁한 결과 신민당 이택돈 후보[194,690표]와 민정당 윤국로 후보[121,949표]가 각각 1, 2위로 동반 당선되었다.
제13대부터 현 제18대까지의 국회의원 선거는 모두 소선거구제로 실시되었다. 우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8년 4월 26일 실시되었으며 1986년 안산시로 승격된 안산 지역은 새로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옹진군과 합쳐 하나의 선거구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 안산시·옹진군 선거구에서는 4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그중 민주정의당의 장경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2년 3월 24일 실시되었으며 안산시·옹진군 선거구에서는 4명의 후보가 입후보하여 여당인 민주자유당 장경우 후보가 51,837표로 당선되었다. 차점자는 민주당 김동현 후보[47,496표]였으며 다음으로 통일국민당의 송진섭 후보[27,036표], 민중당의 전성 후보[4,859표] 순이었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6년 4월 11일 실시되었으며 안산 지역은 안산시 갑구와 을구로 선거구가 개편되었다. 안산시 갑구에서는 7명의 후보가, 안산시 을구에서는 5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갑구에서는 국민회의의 김영환 후보[31,997표]가 당선되었으며 을구에서는 국민회의의 천정배 후보[36,902표]가 각각 당선되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 4월 13일 실시되었으며 안산시 갑구에서는 민주당의 김영환 후보[48,206표]가, 안산시 을구에서는 민주당의 천정배 후보[37,523표]가 각각 당선되었다.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안산시는 상록구와 단원구를 각각 갑구와 을구로 나누면서 선거구가 총 4개로 늘어난 가운데 상록구 갑에서는 열린우리당 장경수 후보, 상록구 을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임종인 후보, 단원구 갑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후보, 단원구 을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제종길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상록구 갑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화수 후보, 상록구 을에서는 친박연대 홍장표 후보, 단원구 갑에서는 통합민주당 천정배 후보, 단원구 을에서는 한나라당의 박순자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그 후 친박연대 홍장표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화되었고, 2009년 10월 28일 실시된 상록구 을 재선거에서 민주당 김영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2. 기초단체장 선거
1995년 6월 27일에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송진섭 후보가,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국민회의의 박성규 후보가, 2002년 6월 13일에 실시된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송진섭 후보가, 2006년 5월 31일에 실시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박주원 후보가 안산시장으로 각각 당선되었다. 2010년 6월 2일에 실시된 제5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김철민후보가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다.
3.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의 경우 제1대와 제2대는 안산 지역이 안산시 승격 이전 시흥군에 속했던 시기에 실시되었다. 1952년 5월 10일에 실시된 제1대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김홍규·유지연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고, 1956년 8월 13일 실시된 제2대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김주승·조남찬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이후 5·16군사정변으로 지방의회가 해산되면서 지방자치제가 30년간 유보되다가 1991년에 이르러 다시 실시되었다.
1991년 6월 20일에 실시된 제3대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정한주·이병우·김봉식이 당선되었다. 1995년 6월 27일에 실시된 제4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는 민주당의 권회근·신일영·이기연·최종문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1999년 실시된 제5대 도의원 선거에서는 국민회의의 김영웅·김장훈·부좌현·정운천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2003년 실시된 제6대 선거에는 한나라당의 김수철·박공진·엄종국·홍장표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2006년 실시된 제7대 선거에는 한나라당의 이헌원·김수철·김제연·노영호·엄종국·권혁조·박선호·이백래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2010년 실시된 제8대 선거에는 민주당의 송한준, 손호성, 장동일, 이재천, 윤화섭, 고영인, 김현삼, 원미정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특이한 것은 1991년 이후 실시된 제3대 선거부터는 한 정당에서 싹쓸이 하는 투표 형태가 나타났다. 7대는 한나라당에서, 8대는 민주당에서 각각 8명 모두를 당선시키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4. 안산시의회 의원 선거
안산시의회 의원 선거의 경우 1991년 3월 26일 제1대 안산시의회 의원 선거를 통해 19명의 의원이 선출되었으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1995년 6월 27일 제2대 안산시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34명의 의원이 선출되었다. 이어진 제3대 안산시의회 의원 선거[1998년 6월 4일 실시], 제4대 안산시의회 의원 선거[2002년 6월 13일 실시], 제5대 안산시의회 의원 선거[2006년 5월 31일 실시]에서는 각각 22명의 의원이 선출되었다. 제6대 안산시의회 의원 선거[2010년 6월 2일 실시]에서는 각각 21명의 의원[지역구 18명, 비례3명]이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