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586 |
---|---|
한자 | 蓮城吟社 |
영어음역 | Yeonseongeumsa |
영어의미역 | The Chinese Poem Creation Meeti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계형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안산시 지역에 있었던 안산·시흥 지역 문인 중심의 한시 단체.
[설립목적]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없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선비의 기개가 점차 쇠약해지고 세상을 가르치고 교화함이 더욱 약해진 것을 안타깝게 여긴 여러 선비들이 한시를 숭상하는 풍습을 다시 일으키고자 연성음사(蓮城吟社)를 설립하였다.
[변천]
1921년 5월 이운근(李雲根)이 청년과 나이든 선비 10여 명을 모아 시모임을 만들었으나 자금과 장소를 구하지 못하여 없어졌다. 1926년 3월 강영윤(姜永尹)·김봉성(金鳳聲)·이운근 등이 조직 결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뜻을 같이하여, 5월 광곡(廣谷)[지금의 안산시 안산동]의 고송정음사(枯松亭吟社)에서 여러 인사들을 모아 연성음사를 조직하였다. 연성은 안산의 별호이다.
[주요사업과 업무]
연성음사 회원 수는 45명으로 임원은 사장·총무·회계 각 1명과 간사 3명, 서기 1명으로 구성되었고, 임원 임기는 1년으로 하되 추천자 가운데 선출하도록 하였다. 모임은 월 1회 개최했는데 매월 16일 오전 10시에 만나 12시에 폐회하였고, 의제는 다수결에 따라 처리하였다. 회원은 매월 한 번씩 돌아가면서 자리를 마련하여 술과 음식을 제공하였으며, 각각 2원씩 기금을 출연하였고 그 이윤으로 모임을 운영하였다.
회원이 스스로 물러나면 원금은 되돌려 주지 않지만, 멀리 이사 가서 부득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에는 2원 이내에서 기념품을 제공하도록 하였다. 회원 가운데 부모상을 당하면 이에 참석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심부름꾼을 보내되, 회원이 사망하면 모두 장삿날에 모여 술과 과일을 준비하고 각각 만장 1편을 짓도록 규정하였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안산시 연성음사 회원 명단
[활동사항]
1927년 1월 김교성의 집에서 낙성식과 더불어 모임을 갖고 회원들이 창작한 칠언율시 48편을 묶어 『연성음사시첩(蓮城吟社詩帖)』을 엮었다. 『연성음사시첩』에는 모임의 취지를 밝힌 서문 5편과 45명의 회원 명단이 실려 있다.
연성음사는 시작(詩作)을 전국 규모로 확대하고자 1927년 9월 21일자 『동아일보』에 10월 말[음력]까지 기한을 두고 한시(漢詩)를 현상 공모하였다. 시제는 ‘전당홍(錢塘紅)’이고, 압운(押韻)은 ‘당(塘)’자였다. 분량은 한지 반절, 참가비는 시 한 편당 50전이며, 부상으로 1등[1명] 50원, 2등[2명] 각 30원, 3등[4명] 각 10원, 4등[8명] 각 5원, 5등[10명] 각 2원, 6등[100명] 1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얼마 뒤 기일이 너무 촉박하다 하므로 11월 말일로 연장하여 총 608수의 한시가 접수되었다. 1928년 4월 모든 선정 과정을 마쳤으나 1929년 2월 2일에야 비로소 『연성음사제일회집(蓮城吟社第壹回集)』이 창간되었다. 창간호 서문에는 일제의 승인과 검열을 받고 출간하는 데 시간이 걸려 발간이 늦어졌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연성음사는 일제강점기 문인들이 의기투합하여 결성한 문학 창작 모임으로, 다른 지역과 달리 1926년과 1928년 두 차례에 걸쳐 시집을 활자본으로 출판한 점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