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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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原州邊氏簡齋宗宅-簡齋亭 |
영어음역 | Wonjubyeonssi Ganjae Jongtaek Mit Ganjaejeong |
영어의미역 | Ganjae Head Family House and Shrine of Wonju Byeon Cla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162[풍산태사로 2720-3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12월 15일 - 원주변씨간재종택및간재정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3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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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원주변씨간재종택및간재정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고가|누정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홑처마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796년(정조 20)(원주변씨 간재 종택)|17세기(간재정) |
정면칸수 | 6.5칸(원주변씨 간재 종택)|3칸(간재정) |
측면칸수 | 5.5칸(원주변씨 간재 종택)|1.5칸(간재정)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162[풍산태사로 2720-30] 외 |
소유자 | 변성렬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및 누정.
[개설]
원주변씨간재종택및간재정은 조선 중기 유학자인 간재(簡齋) 변중일(邊中一, 1575~1660) 후손의 살림집과 변중일이 강학하던 정자이다. 변중일의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가순(可純), 호는 간재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조모와 모친을 구하여 효자로 이름이 높았고, 이어서 창령 화왕산(火旺山)의 곽재우(郭再祐) 의병진에 참여하여 많은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후일 변중일의 효행과 의병활동에 대한 포상이 이루어져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에 임명되었고, 정려도 내려졌다. 금고서원(琴皐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간재집(簡齋集)』(2권 1책)이 있다. 간재 종택은 변중일의 아호인 간재를 따 이름붙였으며, 간재정은 변중일이 만년에 지은 정자로 임진왜란의 울분을 달래고 학문에 정진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위치]
원주변씨간재종택및간재정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162번지[풍산태사로 2720-30]에 있다. 서후면 금계리 초입에 위치하는데, 서후면의 진입로가 있는 송야사거리에서 3㎞ 정도 가면 오른쪽에 작은 마을로 들어가는 농로가 있다. 이 농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원주변씨 간재 종택이 있고 종택 뒷산 언덕 위에 간재정이 있다. 골짜기 맨 아래쪽에 남서향한 원주변씨 간재 종택이 크게 일곽을 이루면서 자리 잡고, 그 뒤편 우측에 사당이 서향으로 놓여 있다. 사당 좌측 골의 맨 위쪽 전망 좋은 곳에 간재정이 남서향으로 자리한다.
[변천]
원주변씨 간재 종택은 1796년(정조 20)에 지은 것이라 하나 1949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 이외에는 건축 연대를 확인할 수 없다. 간재정은 변중일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초반이나 중반경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의 건물은 1874년(고종 11) 변중일의 8세손인 변석찬(邊錫瓚)·변석하(邊錫夏) 등이 중건한 것이다.
[형태]
원주변씨 간재 종택은 정면 6칸 반, 측면 5.5칸의 건물로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가옥의 평면은 ‘ㅁ’자형을 취하고 있으며, 사랑마당에서 볼 때 정면 우측에 있는 사랑채가 ‘ㅁ’자형의 평면에서 반 칸 돌출해 있다. 사랑채는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로 난간을 두른 누마루와 뒷면에 반 칸의 퇴를 내어 벽장으로 사용하는 2칸통의 사랑방,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 반인 사랑마루 등으로 구성된다.
안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뒷면에 반 칸 퇴를 내어 2칸 반통을 사용하는 안방, 우측에 2칸통인 안사랑방이 있다. 그리고 안방과 면하고 있는 좌익사(左翼舍)는 부엌 1칸, 고방 1칸으로 배치되었으며 고방과 면하고 있는 중문간채는 뒷방 1칸과 곡식을 보관하는 뒤주인 반 칸의 고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안사랑방과 면하는 우익사(右翼舍)는 부엌 1칸과 사랑채의 사랑마루와 면하는 1칸의 책방으로 되어 있다.
원주변씨 간재 종택의 사랑채 전면 좌측에는 ‘무민당(无憫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팔작지붕과 홑처마인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건물이 있는데, 좌측 2칸은 온돌방이고 우측 1칸은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 원주변씨 간재 종택 뒤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맞배지붕에 홑처마인 사당이 있다.
간재정은 원주변씨 간재 종택 뒷산에 있다.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든 후 그 위에 정자를 세웠다. 정자는 남향으로 종택을 바라보고 있으며 누각식(樓閣式)으로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크기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홑처마로 되어 있다. 간재정의 전면 반 칸에는 난간을 두른 마루를 설치하여 누마루로 설치하였다.
정자 기단은 막돌 허튼층으로 쌓았으며 높이는 80㎝ 정도로 다소 높은 편이다. 기단 위에 자연석을 원형으로 다듬은 주초를 놓고 둥근기둥을 세웠다. 본채를 받치고 있는 기단은 누하주에서 50㎝ 정도 들어가서 쌓았는데 앞 기단보다 20㎝ 정도 더 높게 하였다. 누마루로 올라가는 출입구는 양쪽 난간 끝에 만들었다. 누마루 전면 처마 밑에는 ‘간재’라고 써 있는 현판을 게첨하였다.
간재정은 2개의 온돌방과 1개의 마루방으로 구성되었는데, 양쪽 협칸은 각각 온돌방이고 어간은 마루방이다. 마루방과 누마루는 완전히 개방되었으며 양쪽 온돌방에서 마루방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좌협칸에는 세살문 외여닫이문을 달고 우협칸에는 세살문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좌협칸 문 위에 「간재중수기(簡齋重修記)」 현판을 게첨하였고, 우협칸 방문 위에는 ‘간재기(簡齋記)’ 현판을 게첨하였다. 마루방 뒷벽에는 판문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누마루 아래로 양쪽 협칸 자리에 각각 아궁이를 설치하였으며, 방 뒤쪽에는 굴뚝을 설치하였다.
[현황]
원주변씨간재종택및간재정은 2003년 12월 15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변성렬이다.
[의의와 평가]
원주변씨간재종택및간재정은 19세기 전후한 시기의 건축 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건물로, 종가의 품위와 규모를 잘 갖추고 있다. 작은 산골짜기에 정침 및 별당·사당·정자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자연 지형에 순응하면서 각기 기능에 적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대부가의 공간 영역을 구비한 이러한 단독 종택은 동성마을의 유형으로 발전한 한국 종가사에서 흔하지 않은 형국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입지 및 정주관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한 가거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