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허비. 가정목은양선생유허비(稼亭牧隱兩先生遺墟碑)는 이곡(李穀)[1298~1351]과 이색(李穡)[1328~1396]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곡의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가정으로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자 이색의 아버지이다. 신흥사대부로 1332년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였고, 예문관 검열·밀직부사·정당 문학 등의 벼슬을 지냈...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각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안동인 권인형(權仁衡)과 권인형의 아들 권세평(權世平)의 제사를 지내고 무덤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권인형은 안동권씨 부정공파 영덕 입향조인 권책(權策)의 아들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갈암이선생신도비(葛庵李先生神道碑)는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사적(事蹟)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이다.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황(李滉)-김성일(金誠一)-장흥효(張興孝)로 이어지는 퇴계학통을 계승하였다. 저서로는 『갈암집(葛庵集)』과 편서로 『...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택. 갈암종택(葛菴宗宅)은 이현일(李玄逸) 종가의 종택이다. 이현일은 퇴계학맥을 이어 17세기 중후반 영남학파(嶺南學派)를 통합한 인물이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남인정권에서 영남남인의 대표로 산림으로 등용되었으나,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실각하여 홍원, 광양 등지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이현일의 학문은 이재...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감화당(甘華堂)은 김종우(金宗禹)[1782~1859]가 건립하였다. 김종우의 본관은 경주, 자는 군범(君範), 호는 감화당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권상임이 지은 고택. 강파헌정침은 권상임(權尙任)[1622~1700]의 살림집이다. 권상임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중(士重), 호는 강파(江坡)이며, 인량리에서 출생하였다. 1669년(현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집으로 돌아와 시묘살이를 하였다. 관직에 복귀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는...
-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경모재(敬慕齋)는 경주인 이수춘(李壽春)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수춘은 사암리 당곡에 거주하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천리에 이거하였다. 이후 이수춘의 후손들이 도천리에 세거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부에서 작성된 조선 후기 계안 자료. 17세기 후반 경상북도 영해부 인량리 출신의 사족 인사들이 상부상조를 통한 결속력 강화를 위해 결성한 계(契) 조직의 규정과 좌목을 엮어 놓은 자료이다....
-
1832년 편찬한 경상도 영덕현과 영해도호부의 읍지. 1832년 편찬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수록된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의 읍지이다. 『경상도읍지』는 모두 2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덕읍지(盈德邑誌)」는 권8-3, 「영해부읍지(寧海府邑誌)」는 권10-3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일본 덴리대학 이마나시문고에는 1786년 편찬한 영덕현과 영해부 읍지를 소...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옥. 경수당종택(慶壽堂宗宅)은 박세순(朴世淳)[1539~1612]이 건립한 가옥이다. 박세순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공검(公儉), 호는 경수당(慶壽堂)이다. 영해 원구리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후방의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군자감정의 직을 맡았았고, 조카 무의공 박의장이 경주와 울산 등지의 전투에서 군량미가 떨어져 곤경에 처하자...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발생한 조선 후기 향전 관련 자료. 1840년(헌종 6) 영해 지역에서 신·구향(新舊鄕) 간의 향전(鄕戰)이 발생하였다. 당시 구향 중 한 사람이 구향의 입장에서 사건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경주김씨(慶州金氏) 아천공파(我泉公波) 종가(宗家)이다. 눌곡리에 세거하는 경주김씨는 아천(我泉) 김주린(金周麟)[1553~1650]을 입향조로 한다. 김주린은 임진왜란 때 경주에서 영덕 천전으로 와 머물다가 눌곡에 정착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살림집. 권응주(權應周)[1539~1610]가 건립한 살림집이다. 권응주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망(汝望), 호는 곡강정(曲江亭)이다. 안동권씨 영해 입향조 권책(權策)의 현손이다. 임진왜란 때 화왕산성 곽재우 진영에서 공을 세워 승사랑(承仕郞) 예빈시(禮賓寺) 봉사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된 영덕현·영해부 지도. 『광여도』는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도로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와 구성과 형태가 상당히 비슷하다. 영·정조 시기에는 여럿의 관찬 지리지가 편찬되었는데 이들 지도들이 민간에 유출되면서 사찬 지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광여도』도 이 중의 하나로 18세기 당시 조선의 지리 정보가 담겨 있다. 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괴시리괴정(槐市里槐亭)은 남준형(南峻衡)[1703~1778]이 1766년(영조 42)에 처음 건립한 누정이다. 남준형의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괴정(槐亭)이다. 1753년(영조 29)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괴정유고(槐亭遺稿)」를 남겼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거주한 영양남씨 12인의 조선 후기 시문집. 『괴장세고(槐庄世稿)』는 괴시리에 거주한 남붕익 등 영양남씨 12인의 유고를 모아 놓은 것이다. 후손 남곤수(南崑壽)[1789~1847]가 편집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봉서원(九峯書院)은 박의장(朴毅長)[1555~1615]·박홍장(朴弘長)[1558~1958] 형제를 제향하기 위해 1665년(현종 6) 구봉정사(九峯精舍)로 처음 설립하였고, 1785년(정조 9)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제향자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청신재(淸愼齋),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무관으로서 관직은 경상좌...
-
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학자. 권경(權璟)[1604~1666]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이다. 문집으로 『대은집(臺隱集)』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대규(權大規)[1676~1747]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이다. 1715년(숙종 41) 문과에 급제한 후 삼례도찰방(參禮道察訪)·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대림(權大臨)[1659~1723]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으로 1687년(숙종 13)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자인현감(慈仁縣監)·만경현감(萬頃縣監)·보령현감(保寧縣監)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득여(權得輿)[1636~1717]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로 1682년(숙종 8)에 진사에 입격하였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 연구에 힘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만두(權萬斗)[1674~1753]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으로 1717년(숙종 43) 문과에 등과(登科)하였으며, 장수현감(長水縣監) 등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났을 때 군사를 일으켜 정희량(鄭希亮) 부대를 토벌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상길(權尙吉)[1610~1674]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이다.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이듬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화의(和議)를 반대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상임(權尙任)[1622~1700]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으로 현종 시기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상정(權尙精)[1644~1725]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로 인산서원(仁山書院) 창건을 주도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권응주(權應周)[1539~1610]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곽재우(郭再祐)[1552~1617]의 진중(陣中)으로 달려가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금서헌(琴書軒)은 박륵(朴玏)[1594~1656]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박륵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숙헌(俶獻), 호는 금서(琴書), 아버지는 박의장(朴毅長),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회령판관·도총부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김덕오(金德五)[1680~1748]는 『주역』과 수학에 조예가 깊었다. 1723년(경종 3) 영해 출신의 동년배인 박용상(朴龍相)·백시승(白始升)과 함께 진사시에 입격한 후 영좌삼경(嶺左三庚)이라고 불렸다....
-
조선 후기 영덕군 출신의 학자. 김도장(金道章)[1628~1721]은 일찍이 학문과 행의가 높았으며, 어머니를 효로써 봉양하고 동생과 자녀들의 교육에 정성을 다하여 고을에 명성이 알려졌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김선겸(金善兼)[?~?]은 1737년(영조 13)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755년 나주에서 일어난 벽서사건(壁書事件)을 무마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김성하(金成夏)[?~?]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기성(器成), 호는 서암(棲庵)이다. 부친은 교위 김대원(金大元)이며, 형은 김기하(金器夏)이다....
-
조선 후기의 문신. 김시양(金時讓)[1581~1643]의 자는 자중(子中), 호는 하담(荷潭),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초명은 김시언(金時言)이다. 증조부는 김언묵(金彦默)이며 조부는 김석(金錫)이다. 아버지는 비안현감을 지낸 김인갑(金仁甲)이며, 어머니는 홍이곤(洪以坤)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로 1581년(선조 14)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출생하였다. 부인은...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김익중(金益重)[1678~1740]은 1721년(경종 1) 무과에 급제했으며,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정구(金鼎九)[1680~1724]는 1723년(경종 3) 문과에 급제했으며, 남학훈도(南學訓導)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하구(金夏九)[1676~1762]는 1719년(숙종 45)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해남현감(海南縣監)·부호군(副護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남강서원(南江書院)은 1571년(선조 4) 남강서당(南江書堂)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서원으로 승격하면서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황(李滉)[1501~1570]을 제향하였다. 이언적의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회재(晦齋),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설 논쟁이라 할 수 있...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경룡(南景龍)[1725~1795]은 1783년(정조 7)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예조정랑(禮曹正郎)·함경도도사(咸鏡道都事)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경택(南景宅)[1725~1799]은 1765년(영조 41) 진사시에 장원으로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진사공일고(進士公逸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고(南皐)[1807~1879]는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1840년(헌종 6)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문집으로 『시암집(時庵集)』이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공수(南公壽)[1793~1875]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괴시리(槐市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치도(穉道), 호는 영은(瀛隱)이다. 아버지는 남일운(南一運)[남경원(南景元)], 어머니는 박평(朴玶)의 딸 무안박씨(務安朴氏), 할아버지는 남식만(南式萬), 증조할아버지는 생원(生員) 남...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구명(南九明)[1661~1719]은 1693년(숙종 1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제주판관(濟州判官)·순천부사(順天府使)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국주(南國柱)[1690~1759]는 경사(經史)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집으로 『봉주집(鳳洲集)』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국한(南國翰)[1667~1730]은 1699년(숙종 25)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자인현감(慈仁縣監)을 지냈다. 유고로 「와유당일고(臥遊堂逸稿)」가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기만(南基萬)[1730~1796]은 1774년(영조 50)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내며 정조에게 시폐를 구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기형(南紀衡)[1700~1756]은 1740년(영조 16)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생원공일고(生員公逸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길(南佶)[1595~1654]은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광산서원(光山書院)에 제향되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노명(南老明)[1642~1721]은 1684년(숙종 10)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거창현감(居昌縣監) 재임 중 선정을 베풀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대만(南大萬)[1721~1797]은 1756년(영조 32)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인와유집(忍窩遺集)」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명흠(南命欽)[1676~1740]은 1723년(경종 3)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진사공일고(進士公逸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남몽양(南夢陽)[1771~1850]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길(應吉), 호는 야은(野隱)이다. 남필대(南必大)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증(贈) 좌승지(左承旨) 남경렬(南景烈),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순도(趙純道)의 딸 증(贈) 숙부인(淑夫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인데, 숙부 남경희(南景熙)와 안상침(安尙沉)의 딸...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붕익(南鵬翼)[1641~1687]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괴시리(槐市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자거(子擧), 호는 입천(卄川)·회수(晦叟)이다. 아버지는 사재감참봉(司宰監參奉)을 지낸 남두원(南斗遠), 어머니는 주부(主簿)를 지낸 오경직(吳敬直)의 딸 낙안오씨(樂安吳氏), 조부는 훈...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남상소(南尙召)[1634~1709]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주보(周輔), 호는 광계(光溪)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남길(南佶), 어머니는 첨정(僉正)을 지낸 신효남(申孝南)의 딸 영해신씨(寧海申氏), 조부는 진사 남경훈(南慶薰), 증조부는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지낸 남의록(南義祿)이며, 부인은 장용견(張龍見)의 딸 인동장씨(仁同張...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상운(南相運)[1759~1814]은 1792년(정조 16)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호와유고(濠窩遺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상주(南尙周)[1626~1688]는 영덕 출신의 처사형(處士型) 학자로서, 유고로 「한계유고(閒溪遺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제명(南濟明)[1668~1751]은 영덕 지역의 처사형 학자로 『수약당집(守約堂集)』을 비롯해 여러 저술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준명(南峻明)[1659~1718]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서(德瑞), 호는 석천(石川)이다. 아버지는 남상규(南尙圭), 어머니는 오이건(吳以建)의 딸 함양오씨(咸陽吳氏), 조부는 남숙(南俶), 증조부는 진사(進士) 남경훈(南慶薰), 부인은 류균해(柳均海)의 딸 전주류씨(全州柳氏)이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준형(南峻衡)[1703~1778]은 1753년(영조 29)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괴정유고(槐亭遺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진만(南震萬)[1697~1773]은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심안당유고(審安堂遺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필대(南必大)[1608~1666]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태릉참봉(泰陵參奉)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필명(南弼明)[1660~1732]은 학문과 효성으로 명성이 있었으며, 출계(出系)하여 영양남씨 종통을 이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하명(南夏明)[1658~1715]은 1693년(숙종 1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삼례도찰방(參禮道察訪)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휘만(南彙萬)[1725~1777]은 1777년(정조 1)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생원공일고(生員公逸稿)」가 전한다....
-
경상북도 영덕군에 세워진, 사방을 넓게 볼 수 있는 다락 구조의 건축물.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합친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부 문헌에서 누(樓)·정(亭)을 비롯하여 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단산서원(丹山書院)은 1608년(선조 41) 건립된 서원으로 우탁(禹倬)[1262~1342]·이곡(李穀)[1298~1351]·이색(李穡)[1328~1396]을 배향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된 후 복설되지 않았다. 제향자 우탁의 본관은 단양(丹陽), 호는 역동(易東)으로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지냈으며, 역학(易...
-
1813년 편찬된 경상도 영해도호부의 읍지. 『단양부지(丹陽府誌)』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의 읍지로서 1813년경에 편찬되었다. 생진(生進) 편에 1840년에 진사시에 합격한 남고(南皐)가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일부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단양부지』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과 영해 지역 유교문화의 전개 양상과 관련된 이야기. 조선시대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는 고려 이래로 동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궁마지향(弓馬之鄕)’으로 일컬을 만큼 무향(武鄕)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여말선초에는 영덕·영해 지역에서 무과 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고, 영덕·영해 지역에 정착한 주요 가문의 입향조(入鄕祖)나 현조(顯...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미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대봉재사(大峯齋舍)는 1847년 권자신(權自愼)[?~1456]·권책(權策)[1442~1457]·권상길(權尙吉)[1610~1674]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권자신의 본관은 안동(安東),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단종의 외숙부로서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죽...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동권씨 종택. 권경(權璟)[1604~1666]의 종택이다. 권경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옥(景玉), 호는 대은(臺隱)이다. 『대은문집(臺隱文集)』이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은종택 소장 조선 후기 전적. 대은종택소장 전적(臺隱宗宅所藏典籍)은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영해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은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적(典籍)을 총칭하는 말이다. 대은종택에는 고서 122종, 고문서 4점 등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보관 중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박의장(朴毅長)[1555~1615]의 묘를 수묘하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청신재(淸愼齋),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무관으로서 관직은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의 전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구봉서원(九峯書院)에 제향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산리에 있는 근대 사찰. 덕흥사(德興寺)는 1938년에 박수경(朴壽鏡)이 창건한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末寺)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제617호]인 「영덕 덕흥사 제석탱화(盈德德興寺帝釋幀畵)」와 창건 당시의 탱화 4점을 소장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송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돈수재(遯峀齋)는 김덕유(金德裕)[1694~176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김덕유의 자는 주언(周彦)이고, 호는 돈수(遯峀)이다. 1804년(순조 4) 김덕유의 후손인 김정련(金鼎鍊)[1783~1862]의 주도로 수안김씨(遂安金氏) 부장공파(部將公派)와 지역 유림의 공론으로 건립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류자영(柳自榮)[?~?]은 1624년(인조 2) 천거를 받아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에 임명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에 있는 살림집과 별묘. 이주원(李周遠)[1714~1796]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이주원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거보(巨甫), 호는 면운재(眠雲齋)이다. 1754년(영조 30)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고, 수직(壽職)으로 첨추(僉樞)에 제수되었다. 저서로 『익도편문(翼道編門)』과 『면운재집(眠雲齋集)』이 전한다....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목사공종택(牧使公宗宅)은 박홍장(朴弘長)[1558~1598]의 살림집이다. 박홍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임(士任), 호는 농아당(聾啞堂)이다. 아버지는 현감 박세렴(朴世廉)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며, 형은 박의장(朴毅長)이다. 박홍장은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지냈다. 1596년(선조 29)에는 통신부사(通信副...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물소와서당(勿小窩書堂)은 조선 후기 좌승지에 추증된 물소와 남택만(南澤萬)[1729~1810]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남택만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혜중(惠仲), 호는 물소와(勿小窩)이다. 유고로 『물소와일고(勿小窩逸稿)』가 전한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박기봉(朴岐鳳)[1643~1712]은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이며, 유고로 『해은유고(海隱遺稿)』가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담(朴潭)[1655~1694]은 이휘일(李徽逸)[1619~1672]·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문인(門人)이며, 문집으로 『우계집(迂溪集)』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박돈복(朴敦復)[1584~1647]은 문과 급제 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김해부사(金海府使) 등의 관직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선(朴璿)[1596~1669]은 영덕 출신의 학자로 문집으로 『도와집(陶窩集)』이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숙(朴潚)[1665~1748]은 이현일(李玄逸)·이재(李栽) 부자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문집으로 『농와집(農窩集)』이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박신지(朴身之)[1629~1705]는 1675년(숙종 1) 문과 급제 후 예조정랑(禮曹正郎)·울산도호부사(蔚山都護府使)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용상(朴龍相)[1680~1739]은 1721년(경종 1)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문집으로 『기헌집(畸軒集)』이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박유(朴瑜)[1573~1618]는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했으며, 장기현감(長鬐縣監)·거제현령(巨濟縣令)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정걸(朴廷杰)[1683~1746]은 이현일(李玄逸)·이재(李栽)의 문인이며, 문집으로 『남포집(南浦集)』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태주(朴泰胄)[1666~1731]는 1699년(숙종 25) 생원시에 입격한 향유(鄕儒)이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돈(白暾)[1647~1717]은 이휘일(李徽逸)·이현일(李玄逸)의 문인(門人)이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동현(白東賢)[1597~1668]은 이명준(李命俊)의 문인으로 『예회기람(禮會己覽)』을 저술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득인(白得仁)[1570~1627]은 장수현감(長水縣監)을 지냈으며 선정을 베풀었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백민수(白民秀)[1558~1621]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효자. 백사복(白思復)[1745~1795]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성초(性初)이다. 아버지는 백광욱(白光頊), 어머니는 이유당(李維堂)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 조부는 백시웅(白時雄), 증조부는 백세경(白世經)이며, 부인은 조석형(趙錫衡)의 딸 증(贈) 영인(令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재종숙 윤화(白潤華...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사윤(白思潤)[1697~1766]은 1741년(영조 17)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삼례찰방(參禮察訪)에 올랐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세흥(白世興)[1630~1699]은 1675년(숙종 1) 문과에 급제했으며, 강진현감(康津縣監)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수렴(白受廉)[?~1622]은 가학(家學)을 통해 학문을 익혔지만 수령과 함께 학제를 논의할 만큼 학식이 뛰어났던 인물이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시승(白始升)[1680~1758]은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문장·서법·그림에 뛰어났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원발(白源發)[1597~1671]은 유고로 「양몽재유고(養蒙齋逸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문신. 백원진(白源進)[?~?]은 문과 급제 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의병. 백인경(白仁鏡)[?~?]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현룡(白見龍)[1543~1622]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백중립(白中立)[1563~1655]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정유재란 때 화왕산성(火旺山城)[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322]을 지켰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학자. 백진흥(白震興)[1632~1701]은 1660년(현종 1)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구암유고(寠庵逸稿)』를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표[1605~1684]는 백현룡(白見龍)의 문인으로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해운(白海運)[1804~1879]은 1831년(순조 31)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은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올랐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1677년(숙종 3) 건립된 조선 후기 무신 박의장(朴毅長)[1555~1615]의 신도비이다.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강(士剛)이다. 김언기(金彦機)의 문인으로 경사(經史)에도 밝았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해 주부(主簿)가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주판관으로 있으면서 경주성의 탈환에 큰 성...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사. 봉주정사(鳳洲精舍)는 남국주(南國柱)[1690~1759]가 세운 강학소이다. 남국주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하중(廈仲), 호는 봉주(鳳洲)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재능을 보였으며, 20세 때에는 시(詩)로 명성을 높였다. 남국주는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고, 후진 양성과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
조선 후기 비변사에서 제작한 『영남지도』에 수록된 영덕현·영해부 지도. 18세기 비변사(備邊司)에서 제작한 『영남지도(嶺南地圖)』는 정확한 연대를 단정할 수 없겠지만 몇 가지 단서를 통해 대략적인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먼저 하동군(河東郡)의 읍치는 1745년(영조 21) 이전되었는데 지도에서는 옮겨진 위치에 표현되어 있다. 이를 통해 지도는 1745년 이후의 상황을 담고 있음을...
-
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문신 권만두가 사례의 중요한 부분만을 뽑아 편찬한 책. 『사례집요(四禮輯要)』는 권만두(權萬斗)[1674~1753]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여러 학자들의 변설(辨說)을 붙여 관혼상제의 상례(常例)와 변례(變例)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6권 2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송천리에 세워진 근대 교육기관. 송천정사(松川精舍)는 권득여(權得輿)[1636~1716]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권득여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득초(得初), 호는 송천자(松川子)이다. 1682년(숙종 8)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93년(경종 19) 경릉참봉에 제수되었다.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송천자독오록(松川子獨娛錄)...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신광열(申光烈)[1658~1730]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풀고자 1689년(숙종 15) 도성으로 올라가 격쟁(擊錚)[조선 시대에,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임금이 거둥하는 길에서 꽹과리를 쳐서 하문을 기다리던 일]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신규년(申虬年)[1544~1592]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덕수(德叟), 호는 풍림(楓林)이다. 아버지는 선략장군(宣略將軍) 신응룡(申應龍), 어머니는 허충량(許忠良)의 딸 김해허씨(金海許氏), 조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신종회(申從澮), 증조부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신명령(申命齡)이며, 부인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백미...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길휘(申吉暉)[1604~1663]는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문집으로 『유헌집(幽軒集)』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대원(申大元)[1777~1831]은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지냈다. 1830년(순조 30) 사간원정언으로 있으면서 노론 벽파(僻派) 인사를 두둔한 신의학(愼宜學)을 탄핵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망규(申望奎)[1641~1701]는 영덕 출신의 처사(處士)로 「송와일고(松窩逸稿)」를 남겼다....
-
1871년 신미년에 일어난 영해동학란에 대해 기록한 일기. 1871년(고종 8) 3월 10일 이필제(李弼濟)의 봉기로 일어난 영해동학란(寧海東學亂)에 관해 향촌 양반의 입장에서 기록한 일기로, 1책 25쪽의 필사본이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신영남(申英男)[?~?]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괄(李适)[1587~1624]의 난 때 공을 세웠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이겸(申履謙)[1606~1661]은 윤선도(尹善道)의 문인으로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이경(申履慶)[1609~1681]은 이명준(李命俊)의 문하로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신재형(申在衡)[1649~1697]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백흠(伯欽), 호는 쌍청당(雙淸堂)이다. 아버지는 신성구(申聖龜), 어머니는 이구(李榘)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 조부는 진사(進士) 신길휘(申吉暉), 증조부는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낸 신활(申活), 부인은 남유건(南有鍵)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와 류균해(柳{...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신홍례(申弘禮)[1761~1833]는 효성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여러 군직을 역임하였다.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안동도회』에 수록된 영덕현·영해부의 지도. 『안동도회(安東都會)』 지도는 18세기 말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750년대 초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를 저본(底本)으로 삼아 편찬하였다. 해당 책은 영덕현과 영해부를 포함하여 경상좌도 21개 군현의 지도가 담겨져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에 살았던 이유원의 조선 후기 문집. 『안릉세전(安陵世典)』은 조선 정조 때 이유원(李猷遠)[1695~1773]이 재령이씨(載寧李氏) 문중의 역대 문집에서 예설(禮說)만을 뽑아 공총자(孔叢子)를 본떠서 엮은 문집이다. 7권 3책의 목판본이다....
-
1786년 경상도 영덕현에서 편찬된 읍지. 신치달(申致達)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이며, 자는 사극(士剋)이다. 김하구(金夏九)의 문인으로 문행(文行)이 있었다고 하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향촌에서 학문에 힘썼다....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실린 영덕현·영해부의 지도. 『여지도(輿地圖)』 는 영조 재위 기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海東地圖)』와 전체 구성이 비슷하다. 지도의 구도와 몇몇 지명을 제외하고는 『해동지도』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동지도』를 필사한 계통으로 생각된다. 이 밖에 청나라 수도였던 심양(瀋陽)의 「성경여지전도(盛京輿地全圖)」...
-
1760년 편찬된 영덕현과 영해도호부의 읍지. 1760년(영조 36)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수록되어 있다. 총 55책에 이르는 『여지도서』는 총 313개 지지[읍지 295개, 영지(營誌) 17개, 진지(鎭誌) 1개]로 구성된 전국 읍지이다. 『여지도서』는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하였고, 2009년 전주대학교에서 번역본을...
-
경상도 영덕현과 영해도호부의 읍지. 1871년(고종 8) 의정부(議政府)의 지시에 따라 경상도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에서 편찬한 읍지이다. 「영덕읍지(盈德邑誌)」는 1832년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의 보유 편에도 재필사하여 수록되어 있다. 1832년 편찬된 영덕현의 읍지가 분실되었기 때문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영덕 괴시동 대남댁(盈德槐市洞台南宅)은 남준형(南晙衡)[1703~1778]이 살림집으로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준형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진숙(鎭叔), 호는 괴정(槐亭)이다. 1693년(영조 19) 생원·진사시에 입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영해부 상해청(常惠廳)의 재물을 서...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괴시리 호지마을의 남유진(南有鎭)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이 마을은 영양남씨(英陽南氏) 집성촌이다. 고려 후기 함창김씨(咸昌金氏)가 입주한 이후 명종 대 수안김씨(遂安金氏), 영해신씨(寧海申氏), 신안주씨(新安朱氏), 인조 대 영양남씨가 입향하였다. 다른 성씨는 점차적으로 이거해 가고 영양남씨만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남극만(南極萬)이 살림집으로 건립하였다. 남극만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회중(會仲), 호는 해촌(海村)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남유용이 건립한 고택. 영덕 괴시리 내앞댁(盈德傀市里-宅)은 남유용(南有鏞)[1842~1899]이 괴시리 호지마을에 건립한 살림집이다. 괴시리 호지마을은 고려 후기 함창김씨를 시작으로 조선 명종 때 수안김씨, 영해신씨를 비롯해 인조 때 영양남씨가 이거한 영덕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이후 다른 성씨는 이주하고 영양남씨만 세거하고...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용이 건립한 고택. 영덕 괴시리 사곡댁(盈德槐市里沙谷宅)은 괴시리 전통마을 내에 자리한다. 이 마을은 400여 년 된 영양남씨 단일 집성촌으로, 영덕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영덕괴시리스므나골재사는 남준형(南峻衡)[1703~1778]의 묘소를 관리하고자 1780년대에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남준형의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괴정(槐亭)이다. 김덕오(金德五)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1753년(영조 29)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이후 양사재(養士齋) 창립, 양로회(養老會) 개최 등 고향 영해(寧海...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흥수가 건립한 살림집. 영덕괴시리영감댁은 남흥수(南興壽)[1813~1899]가 건립한 살림집이다. 남흥수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치유(穉猶), 호는 호은(濠隱)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되었다. 경목재(景牧齋)를 중수하고 입천정(卄川亭)과 만서헌(晩棲軒)을 건축...
-
경상북도 영덕군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공수가 건립한 살림집. 영덕괴시리영은고택은 남공수(南公壽)[1793~1875]가 건립한 살림집이다. 남공수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치도(穉道), 호는 영은(瀛隱), 만호(晩號)는 농산(聾山)이다. 마을에 침수정(枕漱亭)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한묵초결(翰墨抄訣)』, 『계훈촬요(溪訓撮要)』, 『금릉일록(金陵日錄)』, 『행우...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영덕 난고종택(盈德蘭皐宗宅)은 원구전통마을에 세거하는 영양남씨 종택이다. 영양남씨는 남준(南峻)[1474~1550]이 평해에서 원구리로 이거한 이래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난고종택은 남경훈(南慶薰)[1572~1612]의 큰아들인 안분당 남길(南佶)[1595~1654]이 건립하였다. 남경훈의 자는 응화(應和), 호는 난고...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산리 덕흥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 후기 불화. 「영덕 덕흥사 제석탱화(盈德德興寺帝釋幀畵)」는 덕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불화이다. 1828년(순조 28)에 수화사(首畵師) 금겸(錦謙)을 비롯하여 5명의 보조 화사가 제작하였으며, 2014년 1월 13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무안박씨 가문의 고택. 영덕도곡동충효당(盈德陶谷洞忠孝堂)은 박선(朴璿)[1596~1669]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박선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계헌(季獻), 호는 도와(陶窩)이다. 1655년(효종 6) 조산대부 동몽교관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학 양성에 주력하였다. 1689년(숙종 15) 유림들이 공의를 모아 도계서원(陶溪書院)에 제...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영덕만괴헌(盈德晩槐軒)은 1843년 신재수(申在洙)[1798~1855]가 매입한 후 거주한 전통 가옥이다. 신재수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희중(犧重) 또는 성숙(聖叔), 호는 만괴헌(晩槐軒)이다. 신재수는 영해 지역에 큰 흉년이 들자 이듬해 봄까지 굶주리는 지역민들에게 백미를 나누어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정에서...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영덕 만송당(盈德晩松堂)은 권경(權璟)[1604~1666]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권경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옥(景玉), 호는 대은(臺隱)이다. 『대은문집(臺隱文集)』이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盈德務安朴氏武毅公派宗宅)은 무의공 박의장(朴毅長)의 후손이 대대로 거주하는 집이다.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강(士剛), 호는 청신재(淸愼齋),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김언기(金彦璣)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군공을 세워 선무...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호지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고택. 남곤수(南崑壽)가 건립한 살림집이다. 남곤수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치묘(穉昴), 호는 백회재(百悔齋)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안동권씨 가문의 조선 후기 살림집. 영덕번호댁(盈德樊湖宅)은 관어대마을에 현 소유자 권기항(權奇恒)의 8대조가 18세기 말에 건립하였다. 마을은 1509년(중종 4) 안동권씨 권의철(權宜喆)·권의협(權宜悏) 형제가 마을을 개척한 이후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영덕 사존재는 신경제(申經濟)[1555~1614]와 신의제(申義濟)를 추향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신경제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열(景說), 호는 운계(雲溪)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군자감 판관을 제수받은 뒤 신안리로 이주하였다. 신의제의 호는 삼우정(三友亭)으로 신경제의 중형이다. 백주 신인상(申麟祥)의 후손이...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인량리에 정착한 영천이씨 하연공파(賀淵公派) 이중량(李仲樑)[1504~1582]의 종택이다. 이중량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공간(公幹), 호는 하연(賀淵)이다. 아버지는 이현보(李賢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효성(權孝誠)의 딸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영덕 상의당(盈德尙義堂)은 백충언(白忠彦)[1538~1609]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백충언의 본관은 대흥, 자는 언지(彦之), 상의당(尙義堂)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錄勳)되었다. 1874년(고종 11)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송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안동권씨 부정공파 영해문중이 정착한 괴시리 관어대에서 인근 병곡면 송천리로 이주해 1700년대에 지은 살림집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영덕 수정재(盈德水晶齋)는 신희(申禧)·신종부(申從簿)·신규년(申虯年)을 모시는 재실이다. 신희는 구미리 입향조로 조선 성종 때 전상서 주부(主簿)를 지냈다. 신종부는 중종 때 한성판관을 지냈으며, 신규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절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양남씨 남고의 살림집. 영덕 시암고택(盈德時庵古宅)은 원구리에 세거하는 영양남씨 일족의 살림집이다. 택호는 남고(南皐)[1807~1879]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남고의 자는 중원(仲元), 호는 시암(時庵)이다.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시암선생문집(時庵先生文集)』 등 많은 서책을 편찬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영덕 안동권씨 옥천재사(盈德安東權氏玉川齋舍)는 충순위(忠順衛) 권희언(權希彦)[1500~1549]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17세기 전후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齋室)이다. 권희언의 안동권씨(安東權氏) 가문은 단종의 육촌 형제인 권책(權策)[1444~?]이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인...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안박씨 가문의 살림집. 박중상(朴重相)[1692~1752]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박중상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우경(虞卿)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에 있는 영덕 우계당 소장 고지도. 영덕 우계당(愚溪堂) 소장 고지도는 박중산(朴重山)[1680~1758]이 소유하였던 것으로 전하며, 13장의 지도와 앞뒤 표지로 묶인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9.5×16㎝이다. 지도를 펼쳐 보려면 우선 책을 양면으로 펼친 후 상하로 접은 면을 제치고, 좌우 날개를 펴면 지도를 볼 수 있도록 접혀 있다. 천하도·...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이시형(李時亨)[1586~1612]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이시형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태숙(泰叔), 호는 우계(愚溪)이다. 아버지는 이함(李涵)이다. 효도와 우애가 극진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의 부속 건물. 영덕운산서원강당(盈德雲山書院講堂)은 1812년(순조 12) 백문보(白文寶)[1303~1374]와 백현룡(白見龍)[1543~1622]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운산서원(雲山書院)의 강당이다. 현재 강당 건물은 1899년(광무 3)에 새로 복설한 것이다. 백문보의 본관은 대흥(大興), 호는 담암(淡庵), 시호는 충간(忠...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영덕 이전재(盈德泥田齋)는 임진왜란 선무원종공신인 남희록과 남희록의 아들이자 임진왜란 창의의병장인 남경훈을 배향한 재사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장육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화. 「영덕 장육사 영산회상도(盈德藏陸寺靈山會上圖)」는 장육사 대웅전 석가모니 삼존불의 후불탱화이다. 1764년(영조 40)에 조성된 조선 후기 불화이며, 2005년 11월 7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장육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화. 「영덕 장육사 지장보살도(盈德藏陸寺地藏菩薩圖)」는 장육사 대웅전 내부 우측 벽면에 봉안된 탱화이다. 1764년(영조 40)에 조성된 조선 후기 불화이며, 2005년 11월 7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영양남씨 가문의 누정. 인량리에 세거하는 영양남씨 가문에서 건립한 누정이다. 영양남씨 인량리 입향조는 남수(南須)로 1395년(태조 4) 울진에서 태어났다. 인량리에 세거하는 대흥백씨(大興白氏)와 혼인을 하면서 인량리로 이거한 것으로 보인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영덕 초수재사(盈德椒水齋舍)는 박영기(朴榮基)[1483~1583]와 박영기의 부인 단양신씨(丹陽申氏), 박영기의 아들 박세렴(朴世廉)[1535~1593]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건립된 재사이다. 박영기의 본관은 무안, 자는 희경(熙卿)이다. 무안박씨 영해 입향조 박지몽(朴之蒙)[1445~1555]의 3남이다. 용양위우부장(龍驤衛...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영덕 흥교당(盈德興敎堂)은 박선(朴璿)[1596~1669]과 권경(權璟)[1604~1666]을 기리는 재실이다. 박선의 본관은 무안(務安)이고, 자는 계헌(季獻), 호는 도와(陶窩)·송와(松窩)이다. 아버지는 박의장(朴毅長), 어머니는 영천이씨로 알려져 있다. 부인은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손녀이다. 박선은 1629년 관찰사의...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유원이 건립한 살림집. 영덕오촌리냉천고택(盈德梧村里冷泉古宅)은 이유원(李猷遠)[1695~1773] 건립한 살림집이다. 이유원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굉보(宏甫), 호는 냉천(冷泉)이다. 이휘일(李徽逸)의 증손으로 작은할아버지 이재(李裁)에게 수학하였다. 저서로 『안릉세전(安陵世典)』, 『가승(家乘)』, 『연총(聯叢)』, 『존갈...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영리 미륵불(榮里彌勒佛)은 보곡마을 미륵당(彌勒堂)에 봉안되어 있으며, 1689년(숙종 15)에 제작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호지마을에 있는 영양남씨 가문의 종택. 17세기 말 남붕익(南鵬翼)[1641~1687]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붕익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자거(子擧), 호는 입천(卄川) 또는 회수(晦叟)이다. 권경(權璟)의 문인이다. 1673년(현종 14)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예조좌랑(禮曹佐郎), 영산현감(靈山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비와 부도. 영운당대선사비(影雲堂大禪師碑)와 부도(浮屠)는 1806년(순조 6)에 건립된 영운당의 부도비와 부도이다. 영운당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비문에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며 어머니가 달성서씨(達城徐氏)라고 새겨져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영해 영양남씨 난고종가 소장 조선 후기 전적 및 고문서 일체. 난고(蘭皐) 남경훈(南慶薰)의 아들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이 1624년(인조 2)에 지은 난고종가 정침(正寢)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 및 고문서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신안주씨 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후기 고문서. 영해 신안주씨 종택의 고문서는 모두 3종 7점이며, 문서의 종류는 분재기 5점, 교지 1점, 예조입안 1점[5건 연접]으로 구성되어 있다. 16세기 초에서 18세기 초까지의 영해 지역 재지사족의 재산상속과 조상봉사 의식의 변화와 가문의 입후 사례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영해입천정(寧海卄川亭)은 남붕익(南鵬翼)[1641~1687]이 1680년경에 건립한 누정이다. 남붕익의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입천(卄川)이다. 1673년(현종 14) 문과에 급제했으며, 예조좌랑(禮曹佐郎)·영산현감(靈山縣監) 등을 지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영해주곡댁(寧海注谷宅)은 괴시리 호지마을에 있는 전통 가옥이다. 주곡댁이라는 택호(宅號)는 소유자의 선조인 남경괄(南景适)[1863~1942]의 처향인 경상북도 영양군 일원면 주곡리에서 연유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호지마을에 있는 영양남씨 가문의 조선 후기 살림집. 영해경주댁(寧海慶州宅)은 남세하(南世夏)[1490~1574]가 인량리에서 분가하여 괴시리로 이주할 때 수안김씨가 살았던 건물로 전한다. 남세하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경(禹卿)이다. 영양남씨 영해 입향조 남수(南須)의 증손이다. 용양위 부호군으로 상장(上將)에 제수되었으며 통정대부에 증직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경악이 건립한 고택. 영해구계댁(寧海邱溪宅)은 남경악(南景岳)[1763~1821]이 건립하였다. 남경악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종오(宗五), 호는 졸헌(拙軒)이다. 『졸헌유고(拙軒遺稿)』가 전해진다....
-
경상북도 영덕군에 거주하였던 영해신씨 인사들의 실기와 사적을 엮어 간행한 조선 후기 문집. 『예주세록(禮州世錄)』은 1855년 신현(申賢)[1298~1377], 신용희(申用羲), 신연(申演)[1534~1595] 등 34인의 영해신씨 인사들의 실기와 사적을 엮어서 만든 문집이다. 책판이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현일이 건립한 살림집. 오촌리갈암고택(梧村里葛庵古宅)은 이현일(李玄逸)[1627~1704]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字)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이다. 아버지는 참봉 이시명(李時明)이며, 어머니는 안동장씨 장흥효(張興孝)의 딸이다. 인량리에서 출생하였다.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황(李...
-
고려 후기에 박문용이 신천(新川)의 자연경계를 읊으면서 지은 가사. 「우국가」는 박문용(朴文鏞)[1838~1930]이 살던 신천(新川)의 자연경계를 읊으면서, 1871년 3월 11일에 영해부에서 일어난 '갑오동학혁명'을 언급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계서원(雲溪書院)은 1824년(순조 24)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박제상(朴堤上)·박세통(朴世通)·박응천(朴應天)[1556년~1603]을 제향한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대의 충신으로 영해박씨(寧海朴氏) 가문의 시조이다. 그 후손 박세통은 고려 고종 연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
-
조선 후기 영해도호부에 세거한 대흥백씨 가문 인사의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문집. 『원고세고(元皐世稿)』는 조선 시대 영해도호부 원구리에 세거한 대흥백씨 가문 7인의 작품을 엮은 것이다.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대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육구당(六懼堂)은 신이경(申履慶)[1607~1681]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신이경의 본관은 평산, 호는 육구당이다. 지품면 신안리에서 달산면 대지리로 이건하였다....
-
조선 중기의 문신 ·시인.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이다. 생부는 예빈시 부정(禮賓寺副正) 윤유심(尹唯深)이며, 양부는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백부 윤유기(尹唯幾)이다. 부인은 남원윤씨이다....
-
조선 후기 영덕으로 유배 온 문신. 이명준(李命俊)[1572~1630]의 본관은 전의(全義)로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 또는 진사재(進思齋)이다. 증조부는 이공달(李公達)[1464~1519]이고, 조부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를 지낸 이문성(李文誠)[1503~1575]이다. 아버지는 함경북도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를 지낸 이제신(李濟臣)[1536~1...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상일(李尙逸)[1611~1678]은 1633년(인조 11)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장릉참봉(長陵參奉)에 천거되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이숭일(李嵩逸)[1631~1698]은 천거로 출사하여 의령현감(宜寧縣監) 등을 지냈으며, 문집으로 『항재집(恒齋集)』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원직(李元直)[1597~1672]은 17세기 무렵 경상도 영해도호부 일대에서 정치·사회 활동을 전개한 재야 학자이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이유원(李猷遠)[1695~1773]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굉보(宏甫), 호는 냉천(冷泉)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휘일(李徽逸)이고, 할아버지는 이의(李檥)이며, 아버지는 이지확(李之𤌍)이다. 이의는 원래 이현일(李玄逸)의 아들인데, 이휘일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어머니는 안동권씨 권수원(權壽元)의 딸이다. 부인은 여강이씨 이덕정(李德...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재(李栽)[1657~1730]는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학자로 문집 『밀암집(密菴集)』이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주원(李周遠)[1714~1796]은 1754년(영조 30)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문집으로 『면운재집(眠雲齋集)』을 남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태환(李台煥)[1697~1744]은 1733년(영조 9)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안동에서 훈장(訓長)과 서원 원장(院長)을 맡는 등 강학에 힘썼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이해(李楷)[1618~1661]는 1657년(효종 8) 문과에 급제했으며, 봉상시봉사(奉常寺奉事)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문신. 이현일(李玄逸)[1627~1704]은 숙종 연간 퇴계학파를 이끌었으며, 정치적으로는 남인(南人)의 산림(山林)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당쟁의 여파 속에 갑술환국 이후 명의죄인(名義罪人)으로 낙인찍히며 정치적 고초를 당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이화춘(李華春)[1572~1655]의 본관은 영천(永川), 초명은 종인(宗仁), 자는 덕부(悳夫)·회원(晦元), 호는 천재(川齋),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증조부는 부사용(副司勇) 이지형(李枝亨), 조부는 생원(生員) 이학(李鶴), 아버지는 공조 정랑(工曹正郎) 이여우(李如瑀), 어머니는 유원지(兪遠之)의 딸 기계유씨(杞溪俞氏)이며, 부인은...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휘일(李徽逸)[1619~1672]은 장흥효(張興孝)의 문인으로 동생 이현일(李玄逸)과 함께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문집으로 『존재집(存齋集)』이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희익(李希榏)[1622~1710]은 1675년(숙종 1) 영양현(英陽縣)이 독립할 때, 이를 반대하는 상소의 소수(疏首)로 활동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산서원 관련 자료. 『인산록(仁山錄)』은 1696년(숙종 22) 현재의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창건되어 1737년(영조 13) 모지동(茅池i同)으로 이건(移建)되었다가 1741년(영조 17) 훼철된 인산서원에 관한 기록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인산서원(仁山書院)은 1696년(숙종 22) 창건된 서원으로 이휘일(李徽逸)[1619~1672]·이현일(李玄逸)[1627~1704] 형제를 배향하였다. 이휘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호는 존재(存齋)이다. 문집으로 『존재집(存齋集)』을 남겼다. 이현일은 이휘일의 아우로 호는 갈암(葛庵)이다. 17세기 후반 퇴계학파(退溪學派)의...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김씨 가문의 종택. 인양리용암종택(仁良里龍巖宗宅)은 김익중(金益重)[1678~1740]이 살림집으로 건립하였다. 김익중의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자는 상삼(尙三)이며 호는 용암(龍庵)이다. 아버지는 참판으로 증직된 김천길(金天吉)이다. 1721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 겸 선전관(宣傳官)을 지내고 미조항과 우수영(右水營...
-
1592~1598년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은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길을 빌림]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1598년(선조 31)까지 7년간 임진왜란이 조선에서 치러졌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을 이루는 조선 시대 영해부(寧海府)와 영덕현(盈...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장윤경(張允慶)[1552~1632]은 부모의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죽으로 연명하였으며, 세 번의 국상(國喪)이 있는 동안 상복을 입고 지내어 충효(忠孝)로 정려 받았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장지건(張智謇)[1709~1780]은 국상(國喪)을 당하자 부모의 상례처럼 치렀으며, 도적을 막다가 해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전광옥(田光玉)[1694~1761]은 1747년(영조 23)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유곡도 찰방(幽谷道察訪) 등을 지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비. 정담(鄭湛)[1548~1592]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정담의 본관은 야성(野城), 자는 언결(彦潔), 호는 일헌(逸軒), 시호는 장렬(壯烈)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한 뒤, 경원판관(慶源判官)·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도사(都事)·청주목사(淸州牧使)·김제군수(金堤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정종구(鄭宗龜)[1761~1837]는 1795년(정조 19) 응제시(應製詩)를 지어 차상(次上)을 한 영덕 출신의 학자이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조덕린(趙德鄰)[1658~1737]은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 1691년(숙종 17) 문과에 급제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조덕순(趙德純)[1652~1693]은 1690년(숙종 16) 문과에 급제했으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지도책인 『조선지도』에 수록된 「영덕·영해」 지도. 『조선지도(朝鮮地圖)』는 영조 재위 기간인 1767년(영조 43)에서 1776년경(영조 52)에 중앙정부에서 제작한 전국 단위의 군현 지도집이다. 전라도 지역을 제외한 7개 도의 군현 지도가 실려 있으나 주기(注記)가 기재되지 않고 방안의 개수도 군현마다 차이가 있다. 다만, 방안의 크기는 4.2㎝로 규격을 통...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주건(朱楗)[1556~1637]은 경상북도 영덕군[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무신이다. 임진왜란 때 치러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수문장(守門將)에 올랐다....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인 『지승』에 실린 영덕현·영해부의 지도. 『지승(地乘)』은 조선의 군사 관방처(關防處)와 전국 군현을 그린 지도책으로 총6책으로 편성되어 있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태와 구성 및 내용이 『해동지도(海東地圖)』, 『광여도(廣輿圖)』, 『여지도(與地圖)』, 『안동도회(安東都會)』와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된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지족당(知足堂)은 권만두(權萬斗)[1674~1753]가 건립하였다. 권만두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용경(用卿)이고, 호는 지족당(知足堂)이다. 장수현감을 사임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에 힘썼다. 유생들과 함께 『사례절요서(四禮節要書)』를 짓고, 『영해읍지』를 편찬하였다. 장수현감 재직시에 일어난 무신의...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청간정(聽澗亭)은 충순위(忠順衛) 권희언(權希彦)[1500~1549]을 추모하기 위하여 1808년(순조 8) 후손들이 건립한 누정이다. 권희언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15세기 중반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인량리(仁良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입향한 권책(權策)의 증손자이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대림의 시와 산문을 모아 간행한 시문집. 『칠우정문집(七友亭文集)』은 권대림(權大臨)[1659~1723]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1894년 7대손 권진모가 편집,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침수정(枕漱亭)은 1857년(철종 8) 남공수(南公壽)[1793~1875]가 건립한 누정이다. 남공수는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이며, 문집으로 『영은집(瀛隱集)』을 남겼다....
-
경상북도 영덕군 달서면 옥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침수정(枕漱亭)은 손성을(孫星乙)[1724~1796]이 건립한 정자이다. 손성을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천경(天卿), 호는 침수재(枕漱齋)이다. 손성을은 18세기 중엽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옥계리로 이거하였다. 작품으로 옥계 37경 시가 전해지며, 유고(遺稿)가 있다. 경주손씨 옥계 입향조이다....
-
퇴계의 정맥을 계승한 경상북도 영덕군의 학자 이현일의 이야기. 이현일(李玄逸)[1627~1704]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인량리(仁良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나랏골 본가에서 태어났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1590~1674]의 7남 3녀 중 3남이다. 재령이씨 영해파(寧海派)는 이현일의 고조부인 이애(李璦)...
-
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실린 영덕현·영해부의 군현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8세기 영조 재위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며, 제작 경위는 조선 정부가 지방 군현의 통치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된다. 지도는 채색 회화식(繪畫式)으로 만들어졌고 총 8책으로 구성되었다. 그중에서 「영덕현·영해부 지도」가 실린 편은 5책인 영남전도이다. 『해동지도』는...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재실 및 강당. 화재(花齋) 및 육영루(毓英樓)는 영양남씨 일족이 남수(南須)[1395~1477]의 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남수의 본관은 영양, 호는 송정(松亭)이다. 남수는 영양남씨의 인량리 입향조이다. 창수면 인량리 사족 백승(白昇)의 딸 대흥백씨와 혼인하면서 울진에서 인량리로 이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