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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곡식을 펴서 널고 고르거나 씨를 뿌린 뒤 흙을 긁어 덮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 발고무래는 멍석에 곡식을 말릴 때 쓰는 고무래와 흙덩이를 깨는 곰뱅이보다 능률적으로 긁거나 밀어서 고를 수 있도록 그 기능이 발전된 농기구다. 즉 곰뱅이의 몸체 아래쪽 면에 4~6개의 구멍을 뚫고 그곳에 5~10㎝ 길이의 손가락 굵기만 한 나무막대나 대나무를 깎아 만든 발을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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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곡식을 펴서 널고 고르거나 씨를 뿌린 뒤 흙을 긁어 덮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 발고무래는 멍석에 곡식을 말릴 때 쓰는 고무래와 흙덩이를 깨는 곰뱅이보다 능률적으로 긁거나 밀어서 고를 수 있도록 그 기능이 발전된 농기구다. 즉 곰뱅이의 몸체 아래쪽 면에 4~6개의 구멍을 뚫고 그곳에 5~10㎝ 길이의 손가락 굵기만 한 나무막대나 대나무를 깎아 만든 발을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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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에 있었던 섬 나불도(羅佛島)는 영암군에 딸린 6개의 섬[나불도·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준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섬이었을 때 면적은 0.34㎢, 해안선 길이 3㎞로 전국적으로는 408번째 순위의 섬이었다. 위치상으로는 전라남도 목포시 석현동 국도 2호선의 출발점에서 영암 방면으로 5㎞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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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에 있었던 섬 나불도(羅佛島)는 영암군에 딸린 6개의 섬[나불도·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준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섬이었을 때 면적은 0.34㎢, 해안선 길이 3㎞로 전국적으로는 408번째 순위의 섬이었다. 위치상으로는 전라남도 목포시 석현동 국도 2호선의 출발점에서 영암 방면으로 5㎞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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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에 전해 오는 나불도, 계도, 목포 갓바위에 얽힌 이야기. 「후궁에게 하사한 나불도」는 고려 충렬왕(忠烈王)[1236~1308]이 후궁에게 나불도(羅佛島), 계도(鷄島), 문도(文島, 門島)를 선물한 이야기이다. 바다를 사이에 둔 이들 섬은 뱃길을 통해 왕래하던 시절에는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던 공동 생활권이었다.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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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한 나불도의 주민들이 영산호 국민 관광지 조성 계획에 따라 삶의 터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긴 일. 나불도는 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등과 함께 영암군에 딸린 여섯 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준공되면서 육지가 된 곳이다. 1970년대까지 이 섬에는 두 개 마을에 53가구[농가 23가구, 반농반어(半農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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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영산강 하굿둑 공사 전까지 나불리(羅佛里)는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나불도(羅佛島), 외도(外島), 문도(文島, 門島), 계도(鷄島), 오가리섬[吾可里島] 중에서 제일 크고 중심인 섬이 나불도인데, 1914년 중심이 되는 이 섬의 명칭을 따서 나불리(羅佛里)라 했다. 나불도라는 명칭은 섬의 모양이 나발같이 생겨서 나불도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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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에 있었던 섬 나불도(羅佛島)는 영암군에 딸린 6개의 섬[나불도·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준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섬이었을 때 면적은 0.34㎢, 해안선 길이 3㎞로 전국적으로는 408번째 순위의 섬이었다. 위치상으로는 전라남도 목포시 석현동 국도 2호선의 출발점에서 영암 방면으로 5㎞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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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나성화(羅成化)[1881~1910]는 나주(羅州) 왕곡(旺谷) 출신으로,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무안(務安), 영암(靈岩), 남평(南平)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나성화(羅聖化), 나상집(羅相集)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07년에 박영근(朴永根)·유종환(兪鍾煥)과 함께 나주에서 의병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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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나성화(羅成化)[1881~1910]는 나주(羅州) 왕곡(旺谷) 출신으로,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무안(務安), 영암(靈岩), 남평(南平)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나성화(羅聖化), 나상집(羅相集)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07년에 박영근(朴永根)·유종환(兪鍾煥)과 함께 나주에서 의병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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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나성화(羅成化)[1881~1910]는 나주(羅州) 왕곡(旺谷) 출신으로,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무안(務安), 영암(靈岩), 남평(南平)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나성화(羅聖化), 나상집(羅相集)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07년에 박영근(朴永根)·유종환(兪鍾煥)과 함께 나주에서 의병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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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개항기 때 효열부 나주 나씨의 행적비. 나주 나씨(羅州 羅氏)는 통정대부 나도현(羅燾炫)의 딸이자 경주 이씨 이경우(李絅雨)의 부인이다. 조선 고종 대의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출가한 후에는 남편을 공경하고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였다. 또한 순한 말과 바른 행동으로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고 한다. 영암 지역 유림들이 나주 나씨의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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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이 속했던 행정 구역. 나주목은 983년(성종 2) 전국에 설치된 12개의 목(牧) 중 하나이다. 1018년(현종 9)에 지방 제도를 완비하면서 12목을 8목으로 조정할 때에도 주목(主牧)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암군은 나주목의 영군(領郡)이었다. 영암은 지방 제도가 재정비되던 성종 때에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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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미암면 일대에서 서식하던 낙지. 한국·일본·대만·남중국해·미얀마·말레이 제도 등 서부 태평양의 열대 해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며 다양한 수심에서 서식하는 낙지과의 연체동물이다. 옛날부터 원기를 돋우는 음식 재료로 여겼으며,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갯벌에 사는 연체동물로 크게 몸통 부분과 다리로 구분된다. 몸길이는 30㎝ 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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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미암면 일대에서 서식하던 낙지. 한국·일본·대만·남중국해·미얀마·말레이 제도 등 서부 태평양의 열대 해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며 다양한 수심에서 서식하는 낙지과의 연체동물이다. 옛날부터 원기를 돋우는 음식 재료로 여겼으며,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갯벌에 사는 연체동물로 크게 몸통 부분과 다리로 구분된다. 몸길이는 30㎝ 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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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과 미암면 일대에서 갯벌을 파내 낙지를 잡았던 어구. 갯벌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낙지는 갯벌 바닥을 깊게 파서 잡는데, 전통적으로 좁은 삽 모양의 도구를 이용하였다. 이 삽 모양 도구를 영암군 지역에서는 ‘낙지가래’라 불렀고, 전라남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낙지삽’으로 불렀다. 육지의 땅을 파는 도구인 삽과 유사하다. 낙지가래는 독천 시장이나 인근 철물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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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과 미암면 일대에서 갯벌을 파내 낙지를 잡았던 어구. 갯벌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낙지는 갯벌 바닥을 깊게 파서 잡는데, 전통적으로 좁은 삽 모양의 도구를 이용하였다. 이 삽 모양 도구를 영암군 지역에서는 ‘낙지가래’라 불렀고, 전라남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낙지삽’으로 불렀다. 육지의 땅을 파는 도구인 삽과 유사하다. 낙지가래는 독천 시장이나 인근 철물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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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한우 갈비와 낙지를 함께 끓여 먹는 향토 음식. 전라남도 영암군은 예로부터 쇠고기와 낙지가 유명한 곳이었다. 영암군 독천면 독천 우시장은 함평, 장흥과 함께 질 좋은 한우가 거래되는 최고의 우시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영암만 개펄에서는 나는 세발낙지도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 맞게 낙지와 소갈비를 함께 요리해 먹는 것이 독천 갈낙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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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낙지를 통째로 대나무 젓가락이나 볏짚에 말아 양념장을 발라 굽거나 쪄서 만든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 살아 있는 세발낙지를 젓가락이나 볏짚에 감아 양념장을 발라 살짝 굽거나 쪄 먹는 것을 낙지호롱구이라 한다.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올리는 귀한 음식인데, 비린내가 나지 않고 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영암군은 예로부터 세발낙지가 유명한 곳이다. 낙지는 얕은 바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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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영암군에 속하였던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등에 있었던 수군진. 한반도의 서남 끝단에 위치해 있는 송지 어란은 고대부터 한중일 국제 해상로뿐만 아니라 제주도 해로와 조운로의 중간 기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어란포진은 조선 시대 수군 만호진이 머물렀던 곳인데, 두 차례 이동되어 현재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정착하였다. 첫 번째는 해남현 화산면 연곡리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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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저두리(猪頭里), 매산리(梅山里), 난대리(蘭臺里), 도음전(道音田), 윤덕리(允德里), 검길리(檢吉里), 당두리(堂頭里)를 병합하면서 난대리의 난(蘭) 자와 도음전의 전(田) 자를 따서 난전리(蘭田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이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곤일종면 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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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 삼봉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삼포리(三浦里) 삼봉(三峰) 고인돌 떼는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 삼봉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지방 도로 810호선 변에 있는 장전 초등학교와 삼봉 마을 중간 지점의 남원 윤씨 세장천비(南原尹氏世葬阡碑)가 있는 구릉 상에 민묘(民墓)와 함께 3기가 분포하고 있다. 나군은 지방 도로에서 삼봉 마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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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와 한대리, 금정면 연소리의 경계인 활성산에 있는 산성 터. 활성산성(活城山城)이 입지하고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 때부터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내군(月奈郡)[월나군]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成宗)[960~997]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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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조선 시대 누정. 수성사(壽星社)는 원래 60세 이상의 전직 관리와 학자들의 수양처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청유(淸遊)의 장소이었다. 수성사라는 액호(額號)는 1655년(효종 6) 향토 주민의 귀감이 되는 장소라 하여 조정으로부터 하사 받은 것이라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다. 영암 버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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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연소리와 영암읍 농덕리·한대리 경계에 있는 산. 활성산(活城山)[498m]이라는 이름은 정상에 있던 활성산성(活城山城)에서 유래하였다. 임진왜란 때 궁성산과 함께 활 쏘는 훈련장으로 쓰였다고 전하며, 토성(土城)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활성산 정상에 서면 월출산과 함께 영암 읍내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남궁성산’이라는 별명이 있다. 활성산은 무등산에서 국사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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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논일 노래.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서 전승되어 온 「영암 갈곡리 들소리」는 영산강 유역인 나주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농요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나주 루트를 통해서 동쪽 화순 지역의 세화자 소리 및 북쪽 장성군의 장원질 소리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으며, ‘우야 헤헤야’ 소리라는 풍장소리를 창출해 낸 영산강 하류 문화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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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역리에 있는 한국 SGI 소속 종교 단체. 한국 SGI 전남 제2 방면에 속하는 한국 SGI 영암 문화 회관은 니치렌[日蓮]의 불법을 수행하고 실천하는 종교 단체이다. 한국 SGI는 현실 속에 고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 속에 있는 ‘부처의 생명’을 솟아나게 하는 불교 철학과 실천을 통해 자신의 생명 변혁과 민중 구제 그리고 사회 번영을 추구하고 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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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곤미현(昆湄懸)의 남쪽 산 밑에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하여 남산(南山)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남산리(南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는데,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쳐서 곤일시면(昆一始面)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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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을 흐르는 지방 2급 하천. 남산천(南山川)은 남산리(南山里)에서 유래되었다. 남산(南山)은 남쪽에 두억봉을 비롯한 산등성이가 있어 유래되었고,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곤일시면(昆一始面) 남산리로 기록되었는데, 1928년 곤일시면이 미암면(美巖面)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미암면 남산리가 되었다. 남산천은 영암군 미암면 남산리 흑석산에서 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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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송리(南松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이 지역의 옛 이름이었던 남송(南松)에서 이름을 따 왔다.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으로 남송이라고 불렸으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입석리(立石里), 지초리(芝草里), 용반리(龍盤里), 요동(堯洞), 반계리(盤溪里), 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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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었던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남송리(南宋里) 반계(盤溪) 선돌은 ‘선독거리’로 불리기도 하며,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해 세워졌다. 마을 입구에 위치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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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었던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남송리(南宋里) 반계(盤溪) 선돌은 ‘선독거리’로 불리기도 하며,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해 세워졌다. 마을 입구에 위치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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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인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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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남송리에 있는 쌍계사 터. 쌍계사는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백운 대사(白雲大師)가 창건하고 그 뒤 1065년(고려 문종 19)에 호연 대사가 중창했다고 하나 쌍계사가 어느 시기에 폐사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남송리 쌍계사 터는 ‘남송리 쌍계사지’라고도 불린다. 남송리 쌍계사 터는 금정면(金井面) 남송리(南松里) 인곡 마을 뒤편 국사봉(國師峰)과 덕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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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남송리에 있는 쌍계사 터. 쌍계사는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백운 대사(白雲大師)가 창건하고 그 뒤 1065년(고려 문종 19)에 호연 대사가 중창했다고 하나 쌍계사가 어느 시기에 폐사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남송리 쌍계사 터는 ‘남송리 쌍계사지’라고도 불린다. 남송리 쌍계사 터는 금정면(金井面) 남송리(南松里) 인곡 마을 뒤편 국사봉(國師峰)과 덕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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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용반 마을은 50호(戶), 반계 마을은 15호, 인곡 마을은 20호 정도였지만, 2013년 현재는 용반 마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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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용반 마을은 50호(戶), 반계 마을은 15호, 인곡 마을은 20호 정도였지만, 2013년 현재는 용반 마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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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장. 신예교(辛禮敎)[?~1908]는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출신으로, 구국 결사대를 조직한 뒤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일본군과 교전 중에 순국하였다.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남시(南市)이고, 본명은 신재빈(辛在彬)이다. 신석황(辛錫璜)의 3남으로 태어났다. 신예교는 1902년 영암에 온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구국 강론(救國講論)을 듣고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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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의 재실. 남은재(南隱齋)는 창녕 조씨(昌寧曺氏)의영암 입향조인 남은처사 조세풍의 재실이다. 조세풍은 부제학 조상치(曺尙治)의 6세손이다. 조세풍은 경상도에서 살다가 1580년(선조 13)경에 지금의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평리 마을로 들어와 강당을 짓고 학문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고,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 물자를 모으고 의병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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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였던 해남군 북일면 남창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선소. 선소(船所)는 배를 정박하거나 수리하는 포구를 말한다. 고달도 선소(古達島 船所)는 남창 마을 해월루의 남쪽에 있는데, 고달도는 현재는 전라남도 해남군 남창 마을에 속하나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에 속하였다. 또한 고달도는 달량, 이진, 남창 등으로 불리었다. 고달도는 조선 초기에는 달량이라고 하였다가,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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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의 정부 세곡 창고. 이진창(梨津倉)이 있었던 지금의 해남군 북평면은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해남군에 편입되었다. 이진창은 지금의 해남군 북일면, 북평면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정부 세곡을 저장하는 창고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창고 조에 의하면 “이진창은 영암에서 남쪽으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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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맹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제20대 왕인 자비 마립간 때의 인물로 남평현[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출신이었다.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진지왕 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남평 문씨(南平文氏)의 시조가 되었다.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처인 서흥 김씨(瑞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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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영암군 군시면(郡始面) 지역으로 영암읍성의 남문(南門) 밖에 위치하고 있어 남문밖, 남바께, 남외리(南外里)라 불렸다. 1914년 남외리, 옥정리를 통합하면서 남문을 남풍문(南豊門)이라 하였고 법정리 명칭을 남풍리(南豊里)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영암군 군시면 지역으로 1914년에 시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영암면 남풍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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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신덕리에서 시작되어 금정면 월평리를 지나 강진군 성전면으로 연결되는 고속 도로. 한반도의 남해안을 따라 영암군 학산면 신덕리에서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을 연결하는 총연장 273.1㎞의 고속 도로이다. 남해안을 따라 주요 거점 도시들을 연결하기 때문에 남해 고속 도로라고 칭한다고 전해진다. 1972년 1월 착공하여 1973년 11월 14일 순천에서 산인 구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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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신덕리에서 시작되어 금정면 월평리를 지나 강진군 성전면으로 연결되는 고속 도로. 한반도의 남해안을 따라 영암군 학산면 신덕리에서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을 연결하는 총연장 273.1㎞의 고속 도로이다. 남해안을 따라 주요 거점 도시들을 연결하기 때문에 남해 고속 도로라고 칭한다고 전해진다. 1972년 1월 착공하여 1973년 11월 14일 순천에서 산인 구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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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전라남도 영암군의 사당. 전라남도 영암군 남해신사(南海神祠)는 우리나라 3대 해신제 중 하나인 남해신사 해신제를 올렸던 곳이며, 나라의 안녕과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남해신사라는 이름은 『고려사(高麗史)』·『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남해신 사당(南海神祠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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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전라남도 영암군의 사당. 전라남도 영암군 남해신사(南海神祠)는 우리나라 3대 해신제 중 하나인 남해신사 해신제를 올렸던 곳이며, 나라의 안녕과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남해신사라는 이름은 『고려사(高麗史)』·『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남해신 사당(南海神祠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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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제의를 행하던 신사의 터. 남해당지(南海堂址)는 남해신사(南海神祠)의 제의를 행하던 신사 터로, 고려 시대 전라남도 지방의 국가 제사 중의 하나를 모시던 곳이다. 조선 시대의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국사(國祀)를 모신 삼대 해신사(海神祠)를 기록하고 있다. 동해를 수호하는 동해묘(東海廟)를 강원도 양양에, 서해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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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전라남도 영암군의 사당. 전라남도 영암군 남해신사(南海神祠)는 우리나라 3대 해신제 중 하나인 남해신사 해신제를 올렸던 곳이며, 나라의 안녕과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남해신사라는 이름은 『고려사(高麗史)』·『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남해신 사당(南海神祠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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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전라남도 영암군의 사당. 전라남도 영암군 남해신사(南海神祠)는 우리나라 3대 해신제 중 하나인 남해신사 해신제를 올렸던 곳이며, 나라의 안녕과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남해신사라는 이름은 『고려사(高麗史)』·『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남해신 사당(南海神祠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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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제의를 행하던 신사의 터. 남해당지(南海堂址)는 남해신사(南海神祠)의 제의를 행하던 신사 터로, 고려 시대 전라남도 지방의 국가 제사 중의 하나를 모시던 곳이다. 조선 시대의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국사(國祀)를 모신 삼대 해신사(海神祠)를 기록하고 있다. 동해를 수호하는 동해묘(東海廟)를 강원도 양양에, 서해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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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신사 마을의 남해신사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남해신사 해신제는 남해신사 제례 보존 위원회 주관으로 시종면 옥야리 신사 마을에서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지내는 공동 제사이다. 옥야리 신사 남해당제, 해신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2001년에 복원된 남해신사에서 남해신[신당 대왕]에게 지내는 제사로서 지역 주민들이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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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던 포구. 남해포(南海浦)는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다.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갯고랑이 삼포천으로 변하였는데, 이 삼포천의 하류에 남해포가 있다. 남해포의 동쪽 언덕에 남해신사(南海神祠)[남해당]가 있다. 남해신사는 조선 시기 국가에서 비용을 부담하여 바다의 안녕을 위하여 해신에게 제사[中祀]를 지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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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낫을 던져 꽂히는 것으로 승부를 정해 놀던 민속놀이. 낫치기는 낫을 다룰 수 있는 사람 2명 이상이 하는 놀이로, 자신의 낫을 던져 땅바닥에 꽂히면 이기는 놀이이다. 단판 승부일 수도 있고, 약속한 횟수만큼 던져서 땅에 꽂힌 횟수가 많은 사람이 이기기도 한다. 심심풀이로 할 수도 있지만, 나무나 풀을 걸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 낫치기의 구체적인 연원을 알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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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김준연(金俊淵)[1895~1971]은 영암 출신이며, 독립운동 당시 본적은 전라남도 영암군 서남리(西南里) 32번지이다. 일제 강점기에 언론 활동을 통한 항일 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 의원과 법무부 장관 등을 지냈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낭산(朗山)이다. 아버지는 김상경(金相逕)이며, 어머니는 청주 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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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영암군은 고대 국가 성립기에는 대형 독무덤의 분포로 보아 마한 54국 중 하나로 중심권이라 할 수 있다.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4세기 후반에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남북국 시대에 이르러 757년(경덕왕 16)에 영암군이라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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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지금의 영암 지역인 낭주에 설치되어 1012년(현종 3)까지 유지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 낭주 안남 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는 고려 940년(태조 23)에 처음 등장한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가 995년(성종 14)에 지금의 영암군에 해당하는 낭주(朗州)에 옮겨 설치된 것이다. 1012년(현종 3)에 고부(古阜)로 옮겨갈 때까지 약 17년간 영암을 거점으로 서남 해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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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흔을 시조로 하고 최진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영암군에 기반을 둔 낭주 최씨(朗州 崔氏)는 신라 말 인물인 최흔(崔昕)을 시조로 하였다. 최흔의 아들 최지몽(崔知夢)[907~987]은 구림[현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서 태어나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서 고려 개국에 힘썼다. 최지몽이 죽은 뒤 신라계가 고려 왕실의 주도권을 가진 후부터 동족 기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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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리는 낮은 산의 안쪽이라 하여 안굴[내동]이라 하였다. 내동리 쌍무동 마을은 내동리의 으뜸 마을로서 주변에 고분인 쌍무덤이 있어 마을 이름이 붙었다. 내동리는 본래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이었다. 조선 고종 32년(1895)에 영암군에 편입되어 시종면 내동리라 명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도군의 화산리(花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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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고대 고분군. 내동리(內洞里) 고분군(2)는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다. 구산리 회정 마을 6거리에서 동쪽에 위치한 야산의 서쪽 구릉과 밭 일대에 3기 정도의 고분이 있다. 옹관 조각 및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내동리 고분군(2)은 ‘내동리 고분군 나’로도 불린다. 내동리 고분군은 구산리와 내동리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 있는데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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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내동리(內洞里) 고분군은 내동리 쌍무덤과 함께 영암 지역 고대 문화를 대변하는 중요한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개의 봉분을 이룬 무덤들이 발굴 조사되었으며 무덤 내부에서 옹관을 주 묘제(墓制)로 한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영산강을 포함한 영암 지역은 이러한 봉분의 형태를 가진 무덤들이 산재하고 있는데 대부분 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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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고대 고분군. 내동리(內洞里) 고분군(2)는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다. 구산리 회정 마을 6거리에서 동쪽에 위치한 야산의 서쪽 구릉과 밭 일대에 3기 정도의 고분이 있다. 옹관 조각 및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내동리 고분군(2)은 ‘내동리 고분군 나’로도 불린다. 내동리 고분군은 구산리와 내동리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 있는데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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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원내동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내동리 원내동 유물 산포지(內洞里 元內洞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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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초분골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내동리(內洞里) 초분골 고분군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초분골 마을에 있다. 내동리와 와우리 여천 마을의 경계가 되는 마을 입구에서 약 30m 떨어진 내동리 산6-3에 위치한다. 내동리 고분군의 분포권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평지성의 낮은 구릉 말단부에 조성되어 있다. 내동리 초분골 고분군은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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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정기 시장. 시종장은 내동리에 있어 내동장이라고도 하며, 2일과 7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26-23번지 일원에 있다. 일제 강점기 후기에 신북장과 함께 등장한 재래시장이다. 시종장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장과 약 6㎞ 거리에 있다. 시종장은 시종 군내 버스 정류소와 연결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신작로 주변에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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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외출 후 몸이 아플 때 행하는 의례. 집 밖으로 외출하여 다녀왔는데 몸이 아픈 경우에 내전주기를 한다. 접시에 밥을 조금 담고 소금도 한 접시 담아서 그것을 들고 방을 세 바퀴 돈 후에, 그대로 밖으로 나가 길거리에 던지면서 “오신 양반 많이 잡숫고 가시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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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에 있는 저수지. 냉천 저수지는 저수지를 만들기 전에 이곳에서 샘물이 솟아 냉천(冷泉)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백룡산의 북서쪽 기슭이므로 찬 샘이 분포한 듯하다. 이천리에는 천동(泉洞) 마을과 냉각동(冷角洞) 마을도 있다. 또한 명동리 옥정제 마을 명동제(明洞堤)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다. 이목동지라고도 한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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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었던 저수지. 냉천제라는 명칭은 저수지가 있었던 영보리 냉천동(冷泉洞) 마을에서 기원한다. 1789년에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북일시면(北一始面) 냉천동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병합하여 개설한 영보리에 편입되었다. 동네 중앙인 영보리 365번지에 찬 샘이 있고, 남서쪽으로 200m 지점에 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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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이상 저온이나 일조량 부족으로 농작물이 자라는 도중에 당하는 피해. 냉해는 작물에 따라 피해 정도가 다르며 저온의 정도와 기간, 생육 정도 등도 영향을 준다. 일반적으로 난대성 작물이 냉해에 더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영암군에서는 2006년 장흥댐 담수 이후 갑자기 늘기 시작한 이상 저온 및 서리로 말미암아 무화과 및 대봉감 같은 지역 특산물이 심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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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교동리·송평리에 걸쳐 있는 평야. 누릿들은 영암군청 소재지의 서쪽에 있는데 너릿들이라고도 한다. 누릿들은 추더리들과 함께 고대부터 영암 읍치 발전의 기저가 되는 들판이라 할 수 있다. 남북 폭이 약 1㎞, 동서 폭은 약 1㎞로 규모가 작은 들판이다. 넓은 들이라는 의미의 너른 들의 와음(訛音)으로 불리게 된 듯하다. 누릿들의 남쪽에 월출산이 있고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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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널판 양쪽에 사람이 올라가 서로 번갈아 뛰면서 즐기는 민속놀이. 널뛰기는 두툼하고 긴 널빤지 한복판의 밑을 짚단이나 가마니로 괴어 중심을 잡은 다음, 널빤지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뛰어올랐다가 내려오면 그 반동으로 다른 편 사람이 뛰어오르는 놀이다. 널뛰기의 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여항의 부녀들은 맨 널빤지 짚단 위에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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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생활 조건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해 행하는 조직적인 운동. 근대적인 노동자 계급은 형성의 초기 단계부터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 운동을 발전시켜 왔다. 1898년 개항 직후 목포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1920년대 이후 공장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노동 운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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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밀양 김씨 집성 마을. 밀양 김씨 집성촌인 청용리 노동(蘆洞) 마을은 갈대가 많다고 해서 청용리 입향조인 김홍발(金弘發)[1582~1643]이 붙인 이름이다. 그 전에는 마을을 감싼 은적산에 위치한 옥룡암이 있기 때문에 옥룡동(玉龍洞)으로 불렸고, 지형이 바짓가랑이를 연상하게 해서 윗 가랫골이라고도 했다. 16세기 초에 김윤신(金潤身)[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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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노동 마을에 있는 밀양 김씨 유남공파의 사우. 1936년에 밀양 김씨(密陽金氏) 김병규(金炳圭)가 선조를 배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祠宇)로 김견을 중심으로 김경발, 김종환을 배향한다. 김견(金堅)[1565~1608]의 자는 중실(仲實), 호는 신제(愼齊)로, 1585년에 무과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 의거(義擧)하여 이순신의 휘하에서 당항포 대첩과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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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의 월출산 지역에서 서식하는 족제비과의 포유동물. 담비는 한반도·중국·인도네시아·인도·대만·일본·러시아 남부 등 서아시아를 제외한 아시아 전역에 걸쳐 분포하며, 숲이 우거진 삼림이나 계곡 주위에 많이 서식한다. 삵과 더불어 생태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남한의 대표적인 중형 포식 동물로 노란목도리담비라고도 부른다. 2012년 5월 31일에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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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내동에서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재라는 이름은 고개가 황사출림(黃蛇出林)의 명당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고 한다. 영암 지역에서 전라남도 강진군·해남군 등 남쪽으로 갈 때 주로 사용했으며,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배를 갈 때 넘어갔던 고개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의 지리지에서는 노루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호남 지도(湖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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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내동에서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재라는 이름은 고개가 황사출림(黃蛇出林)의 명당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고 한다. 영암 지역에서 전라남도 강진군·해남군 등 남쪽으로 갈 때 주로 사용했으며,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배를 갈 때 넘어갔던 고개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의 지리지에서는 노루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호남 지도(湖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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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에 있는 폭포. 누릿재 폭포는 인근의 고개인 노루재[누릿재]에서 따온 이름이다. 노루재[누릿재]라는 이름은 고개가 황사출림(黃蛇出林) 형의 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노릿재 폭포라고도 한다. 누릿재 폭포는 물통거리골의 하류에 있는 소규모 폭포로 사자 저수지 부근에 있다. 폭포의 높이는 약 3m 정도이다. 작은 폭포이지만 주변 숲과 함께 청량한 기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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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에 있는 저수지. 노송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있는 선황리의 노송(老松) 마을에서 기원하였다. 노송 마을은 1789년에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곤일시면(昆一始面) 노송정(老松亭)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당시 선황산에서 딴 선황리(仙皇里)에 편입되었으며, 1928년 면의 이름이 바뀌면서 미암면 선황리 노송 마을로 개편되었다. 농업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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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강학소. 노송당(盧松堂)은 밀양 김씨 문중에서 세운 강학소다. 문중의 재실 역할도 겸했으며 다른 성씨들도 이곳에서 공부하였다.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산기슭에 위치한 도동 마을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우측에는 1783년에 창건한 밀양 김씨 강학소인 고반재(考槃齋)가 있고 또한 그 옆에는 1930년대에 창건한 노동사(蘆洞祠)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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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송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류천리(柳泉里), 송외리(松外里), 송내리(松內里), 노노리(老老里), 홍암리(紅岩里), 부항리(夫項里), 신동리(新東里), 옥동리(玉洞里)를 병합하면서 노노리의 노(老) 자와 송내리의 송(松) 자를 따서 노송리(老松里)라 하였다. 송내리는 1438년 연촌 최덕지가 남원 부사를 사직하고 귀향하여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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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거창 신씨 집성 마을. 영암의 거창 신씨(居昌愼氏)는 신수(愼脩)[?~1101]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愼後庚)을 입향조로 한다. 신후경이 전주 최씨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사위로 덕진면 영보리에 입향하면서 영암 지역에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신희남(愼喜南)[1517~1591], 신천익(愼天翊)[1592~1661] 등 화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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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노송리(老松里) 노노동(老老洞) 고인돌은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영암-금정 간 819번 지방도에서 노노동 마을로 진입하여 약 100m 가면 노송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에서 동쪽 야산으로 약 200m 올라가면 산 중턱의 평탄지에 노노동 고인돌 가군 10여 기가 있다. 나군은 노노동 마을의 남서쪽 말단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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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노송리(老松里) 노노동(老老洞) 고인돌은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영암-금정 간 819번 지방도에서 노노동 마을로 진입하여 약 100m 가면 노송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에서 동쪽 야산으로 약 200m 올라가면 산 중턱의 평탄지에 노노동 고인돌 가군 10여 기가 있다. 나군은 노노동 마을의 남서쪽 말단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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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송내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송내 마을에서 매년 정월 초사흘에 마을의 평안을 비는 뜻에서 지내던 공동 제사이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모실 대표자를 선정하고 비용을 걷어 제물을 장만해서 당산제를 지냈는데, 지금은 더 이상 지내지 않는다. 1986년부터 당산제를 더 이상 지내지 않고 있어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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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아로곡현(阿老谷縣)은 백제 때 지금의 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세지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치소는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마을이다. 백제의 아로곡현은 당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노신(鹵辛)으로 개칭하여 동명주에 딸린 영현으로 삼았다. 757년(경덕왕 16)에 야로현(野老縣)으로 개칭되어 반남군에 딸린 현(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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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역리 영암 공원에 있는 김인신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노체정 영당(老體亭 影堂)은 김인신(金仁臣)을 기리는 영당이다. 김인신의 본관은 김해, 자는 원식(元植), 호는 노체정(老體亭)이다. 영암 출신으로 도사공 김련의 후손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였으며 사서오경을 통달하고 무예가 출중하여 순조 때에 무과에 올라 위도 첨사와 오위부의 여러 관직을 거쳤고 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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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원식(元植), 호는 노체정(老體亭)이다. 김해 김씨 중시조인 도사공(都事公) 김휘연(金諱連)의 17세손이다. 김인신(金仁臣)[1775~?]은 1799년(정조 23) 24살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위도 첨사(蝟島僉使),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을 지냈다. 1805년(순조 5)에 만경현[현 전라북도 김제시] 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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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액 서원. 녹동 서원(鹿洞書院)은 원래 존양사(存養祠)라는 이름으로 1630년(인조 8)에 건립되어 1713년(숙종 39)에 ‘녹동(鹿洞)’이라는 사액을 받은 영암 유일의 사액 서원이다. 창건 당시에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를 배향하다가, 1665년(현종 6)에 최덕지의 손자인 산당(山堂) 최충성(崔忠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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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하여 전라남도 서부권 8개 축협에서 생산하는 한우 브랜드. 녹색 한우는 전라남도 서부권의 신안·완도·광주·나주·영암·장성·해남·화순 축협 등 8개 축협과 1,250여 농가가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 청정 한우 브랜드다. 전라남도에서는 2007년 ‘서부권 한우 광역 브랜드 개발 동의 협약’을 체결하여 참여 조합장 협의회를 개최하고, 광역 브랜드 개발 소위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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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일차 산업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경제 활동이며, 곡물, 채소, 과일, 화훼 등 유익한 식물의 재배와 생산 그리고 가축의 품질 관리와 생산에 관련된 온갖 활동과 연구가 포함된다. 영산강 하구가 열리고, 영암천(靈岩川)·도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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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을 거쳐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과 부산광역시 중구를 연결하는 일반 국도. 국도 2호선은 신안군 장산면에서 부산광역시 중구를 연결하는 도로로 총연장 476.2㎞에 이른다. 대한민국 남쪽 지역의 동과 서를 잇는 도로이다. 영암군 구간은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학산면 학계리까지로 강진군 성전면과 바로 연결된다. 도로의 명칭에 부여되는 번호의 경우 홀수는 남북 축의 도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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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 있었던 저수지. 녹암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위치한 회문리 녹암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1789년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군시면(郡始面) 녹암(鹿巖)이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의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 地方行政區域 名稱一覽)』에는 녹문리(鹿門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암면 회문리(會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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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일원에서 소수의 개체가 관찰되는 올빼미과의 여름 철새. 솔부엉이는 세계적으로 아시아 동남부·러시아 우수리·히말라야·스리랑카·말레이 반도·보르네오·자바·수마트라·필리핀·인도·중국·한반도·일본 등에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여름 철새로 서울의 창경궁·비원·남산 등에서 번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1982년 11월 4일에 천연기념물 제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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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서식하는 개구리과에 속하는 양서류. 참개구리는 한국·중국·티베트·타이완·러시아·일본 등지에 널리 서식하는 종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개구리로 식용이나 사료, 실험동물 등으로 쓰인다. 논개구리라고도 부른다. 과거에는 참개구리와 형태가 매우 유사한 금개구리(Rana plancyi chosenica) 아종(亞種)으로 취급되다가, 한국산 양서류를 연구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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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모내기를 끝낸 후 초벌부터 세벌까지 논매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김매기 소리」는 논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밭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논맴 소리’, ‘지심매는 소리’ 등 지역에 따라 달리 부른다. 이 가운데 논일을 하면서 부르는 「김매기 소리」를 통해 영암 지역 농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영암군 갈곡리는 들노래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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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역리에 있는 농산물 품질 검사와 농업 통계를 관리하는 행정 기관. 영암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품질 관리 및 검사·유통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국립 농산 품질 관리원 전남 지원 영암 출장소는 1932년 10월 1일에 조선 총독부 곡물 검사소 영암 출장소로 출범하여 광복 이후인 1949년 1월에 농산물 검사법 제정에 따라 농산물 검사소 영암 출장소로 명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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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영암군 군종면(郡終面) 지역이었던 농은정(農隱亭), 백운정(白云亭), 둔덕정(屯德亭), 농내리(農內里), 월정리(月亭里)를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하면서 농은정의 농(農) 자와 둔덕정의 덕(德) 자를 합하여 농덕리(農德里)라고 하였다. 농덕리는 조선 후기에는 영암군 군종면 지역이었던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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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 둔덕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농덕리(農德里) 둔덕(屯德) 고인돌 떼는 둔덕 마을 주변 6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둔덕 마을에서 농덕 저수지를 지나 둔덕 마을 북쪽의 산길을 따라 약 400m 떨어진 야산의 중턱에 해당하는 길 우측 논둑에 4기가 있다. 나군은 둔덕 마을 남동쪽 끝에 둔덕재 쪽으로 올라가는 소로(小路)를 따라 약 2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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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농민들이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식적,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사회 운동. 직접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지배 계급이나 국가에 대한 저항을 벌이는 일은 고대부터 자주 있었지만, 농민 스스로 자신의 독자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싸우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였다. 1894년의 동학 농민 운동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봉건적 수탈로부터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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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쇠·징·장구·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행하는 놀이. 매구는 농악이나 풍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영암을 비롯한 호남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매구[농악]는 연행 목적에 따라 축원 농악, 두레 농악, 걸립 농악, 연예 농악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영암 지역에서는 축원과 걸립, 두레의 목적이 강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매구패의 악기와 치배 구성은 기수,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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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김해 김씨 도사공파의 사우. 농암사(農巖祠)는 김연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우(祠宇)이다. 김연은 고려 후기 충신으로,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입향하였다. 김해 김씨(金海金氏) 도사공파(都事公派)의 시조이다.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다. 영암읍 춘양 교차로에서 영암로를 타고 약 300m를 이동한 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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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일차 산업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경제 활동이며, 곡물, 채소, 과일, 화훼 등 유익한 식물의 재배와 생산 그리고 가축의 품질 관리와 생산에 관련된 온갖 활동과 연구가 포함된다. 영산강 하구가 열리고, 영암천(靈岩川)·도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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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교동리에 있는 농림 수산 식품부 산하 위탁 집행형 준정부 기관의 영암 지역 지사. 한국 농어촌 공사 영암 지사는 농업 기반 시설의 종합 관리와 환경 친화적 농업 생산 기반 구축, 농업인의 영농 규모 적정화 촉진으로 농업 생산성을 증진하는 농림 축산 식품부 산하 기관이다. 한국 농어촌 공사 영암 지사는 농어촌 관리 사업과 농업 시설의 체계적인 관리, 환경 친화적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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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농협 협동조합 전남 지역 본부 산하 영암군 지부. 1961년 8월 15일에 농업 협동조합법[법률 670호, 1961년 7월 29일 제정]에 의해 개별 회원 농업 협동조합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회원 조합의 공동 이익 증진과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농업 협동조합 중앙회가 설립되었다. 1999년 3월 발표된 협동조합 개혁 방안에 따라 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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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교동리에 있는 농림 수산 식품부 산하 위탁 집행형 준정부 기관의 영암 지역 지사. 한국 농어촌 공사 영암 지사는 농업 기반 시설의 종합 관리와 환경 친화적 농업 생산 기반 구축, 농업인의 영농 규모 적정화 촉진으로 농업 생산성을 증진하는 농림 축산 식품부 산하 기관이다. 한국 농어촌 공사 영암 지사는 농어촌 관리 사업과 농업 시설의 체계적인 관리, 환경 친화적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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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내동에서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재라는 이름은 고개가 황사출림(黃蛇出林)의 명당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고 한다. 영암 지역에서 전라남도 강진군·해남군 등 남쪽으로 갈 때 주로 사용했으며,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배를 갈 때 넘어갔던 고개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의 지리지에서는 노루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호남 지도(湖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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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교동리·송평리에 걸쳐 있는 평야. 누릿들은 영암군청 소재지의 서쪽에 있는데 너릿들이라고도 한다. 누릿들은 추더리들과 함께 고대부터 영암 읍치 발전의 기저가 되는 들판이라 할 수 있다. 남북 폭이 약 1㎞, 동서 폭은 약 1㎞로 규모가 작은 들판이다. 넓은 들이라는 의미의 너른 들의 와음(訛音)으로 불리게 된 듯하다. 누릿들의 남쪽에 월출산이 있고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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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내동에서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재라는 이름은 고개가 황사출림(黃蛇出林)의 명당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고 한다. 영암 지역에서 전라남도 강진군·해남군 등 남쪽으로 갈 때 주로 사용했으며,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배를 갈 때 넘어갔던 고개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의 지리지에서는 노루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호남 지도(湖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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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에 있는 폭포. 누릿재 폭포는 인근의 고개인 노루재[누릿재]에서 따온 이름이다. 노루재[누릿재]라는 이름은 고개가 황사출림(黃蛇出林) 형의 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노릿재 폭포라고도 한다. 누릿재 폭포는 물통거리골의 하류에 있는 소규모 폭포로 사자 저수지 부근에 있다. 폭포의 높이는 약 3m 정도이다. 작은 폭포이지만 주변 숲과 함께 청량한 기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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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포괄하는 용어로, 조선 시대 유교 문화가 낳은 사대부들의 지적 교류의 공간이다. 대개 덕망이 있는 향촌 인물이나 또는 정계에서 물러난 후 향리에 내려온 인사들이 소요, 은둔, 교류, 강학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풍광이 좋은 곳에 누정을 지었다. 이러한 누정은 특히 전라남도와 영남 지방에 많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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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을 상징하는 군목(郡木)으로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 전라남도 영암군에서는 군민들의 기상을 높이기 위해 천 년 동안 뿌리 깊게 자라고 아름다운 수형을 유지하며, 마을마다 정자나무로 이용되고 있는 느티나무를 군목(郡木)으로 지정했다. 느티나무는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높이 30m, 지름 3m까지 자란다. 곧은 뿌리와 곁뿌리가 잘 발달되어 있고, 뿌리가 나는 힘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