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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푸르고 넓은 논에는 한창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도시화가 되어 땅값이 올라도 이곳에서 농사가 계속 될 수 있는 이유는 관개시설이 잘 되어서 농사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동이 처음부터 관개 시설이 완벽하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관개 시설이 되기 전에는 이곳에서도 물이 없어 가뭄으로 인해 고생이 매우 많았었다고 한다. 우리는 명곡마을 이자무 이장님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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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설날과 더불어 제일 큰 명절로, 중추절(仲秋節)·한가위·가위·가배일(嘉俳日)이라고도 한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농사일도 거의 끝나는 때로 햇곡식 등이 풍부해 예부터 농경사회에서는 1년 중 가장 즐거운 명절로 지켜왔다. 송편과 햇곡식과 과일을 조상님에게 차례 지내고 성묘하는 명절로서, 유래는 신라의 유리왕 때부터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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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앞쪽에서 가산리를 쳐다보면, 작은 능선이 횡으로 가로질러 있어 이 능선 두 개가 시릉대 같다고 하여 시릉대 ‘가(架)’ 자를 붙였고, 동쪽은 금정산 고당봉 북서쪽의 배면으로 산이 많아 ‘산(山)’ 자가 붙어 가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삼한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근거는 없고 약 800년 전인 고려 말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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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여래입상. 소발(素髮)의 머리에 둥글고 높직한 육계(肉髻)가 표현되었으나 전체적으로 희미한 편이다. 눈썹은 깊이 새겨 뚜렷하게 남아 있으나 눈은 가늘게 반개(半開)한 듯 잘 드러나지 않는다. 코는 큰 편이며 입은 작다.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어깨는 약간 각이 졌다.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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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요도구(窯道具). 15세기에 제작된 요도구로 도침, 갑발, 태토비짐이다. 대접·접시·종지·병·항아리 등의 생활 용기와 제기로 쓰였던 보·향로 등의 특수 용기를 만들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도침은 원통형을 이루며 바닥은 한쪽이 사선으로 되어 있다. 갑발들은 내화토로 만들어졌다. 주로 공납용으로 납품하였던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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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수령 250년의 포구나무. 포구나무는 평지에서 자라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팽나무라고도 한다. 포구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양산시를 비롯하여 경상남도에 흔하게 자생하는 데, 정자나무 또는 노거수가 많다. 높이는 20m에 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타이완, 중국 남부, 베트남, 태국 등지에 분포한다. 마을 부근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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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가산마을은 삼한시대부터 사람이 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본격적으로 주거가 형성된 시기는 지금부터 800여 년 전인 고려시대 말에서 조선시대 초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복세부락 앞의 들과 초지는 약 500년 전에는 낙동강 유역으로 갈대와 모래밭이었다. 여기에도 1500년대 초부터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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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있었던 나루. 가야진은 본래 경상남도 밀양군 하동면 검세리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산군 원동면 용당리에 편입되었다. 가야로 건너가는 나루라는 뜻에서 가야진이라 하였다. 위치상으로 양산군 용당리에서 김해군 상동면 여차리 용당으로 건너가는 나루 터이기 때문에 용당나루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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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후 김종직 등이 가야진 용당의 풍광과 그에 대한 감회를 읊은 한시. 「가야진 용당 제영(伽倻津 龍堂 題詠)」의 대상이 되는 가야진 용당은 삼국시대부터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면서 시작된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는 사당으로 국가에서 해마다 봄과 가을에 향과 칙사를 보내어 국가의식으로 제사를 올려 장병의 무운과 낙동강의 순조로운 수운과 범람을 막고자 하였다. 가야진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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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용신제. 가야진 용신제는 삼국시대 이래 국가의식으로 전해져 오던 제의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잡지1 제사조에는, “신라 종묘의 제도를 상고해 보면 남해왕 3년 봄에 비로소 시조 박혁거세묘를 세우고 춘하추동 4시에 제사하되 친누이 아로(阿老)를 주제자(主祭者)로 삼았다. 삼산(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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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신라시대 용신 사당. 양산의 자연 숭배는 대천 숭배와 고산 숭배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대천 숭배는 용신 사상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용왕을 숭배하는 신앙이다. 용신, 용왕할머니, 수신이라고도 부르며, 비를 내리게 하는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용신제나 용왕굿은 대표적인 민간신앙이다. 특히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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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소재 가야진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는 토속 종교의 대상인 용신을 모신 사당으로, 지금도 매년 음력 3월에 시제와 기우제를 같이 지내고 있다.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한 『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 나루에 자리 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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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진사는 용신을 모시고 있다. 용신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용당에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중리 이장의 설명을 각색하여 보았다. 옛날에는 양산을 옥당고을이라고도 했는데, 그 시절에 양산을 다스린 사또가 경상도의 가장 높은 관리인 감사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하여 마을의 총각 조씨를 대구로 보냈다. 그런데 이 총각은 대구로 가는 도중에 누군가가 자기를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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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가야진 용신제를 보존하기 위해 창립된 예술 단체. 가야진용신제(伽倻津龍神祭) 는 가야진사(伽倻津祠)의 제례를 바탕으로 형상화한 용신제이다. 가야진사는 장병의 무운을 빌며 제사를 올리던 사당이며 가야진사에서 모시는 신은 용신이다. 가야진 용신제는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례로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며 당시에는 국가 의식으로 행해졌다고 전해진다. 일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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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설날과 더불어 제일 큰 명절로, 중추절(仲秋節)·한가위·가위·가배일(嘉俳日)이라고도 한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농사일도 거의 끝나는 때로 햇곡식 등이 풍부해 예부터 농경사회에서는 1년 중 가장 즐거운 명절로 지켜왔다. 송편과 햇곡식과 과일을 조상님에게 차례 지내고 성묘하는 명절로서, 유래는 신라의 유리왕 때부터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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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리를 찾아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통도사 나들목(IC)에서 시작한다. 통도환타지아를 지나 홀로 오롯이 자리한 외길을 따라 들어오면 지산마을은 통도사의 후문과 연결되어 있고, 평산마을은 통도사와 철조망을 경계로 위치한다. 아래 위 만복재가 동네를 둘러싸고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마을 뒤쪽의 영취산에 흐드러지게 핀 붉은 단풍은 가히 장관이다. 단풍이 흐드러지게 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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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집 안에 개별적으로 신을 모시는 신앙. 개인이 개별적으로 신을 모시고, 제사를 드리며, 기복을 하는 신앙으로서, 그 대상신에는 성주·업·조왕·터주·천륭·측신(廁神)·문신(門神)·칠성님·용왕님·외양간신·삼신·시준 등 다양하다. 주로 자손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거나 집안의 안녕을 위하여 모신다. 가정신앙과 관련된 보고는 그리 많지 않다. 양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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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혼인이나 혈연 또는 입양의 유대로 맺어진 집단. 가족은 단일 가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남편과 아내,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과 딸, 형제와 자매라는 각각의 역할 수행을 통해 상호 작용하면서 공통의 문화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집단으로 간단하게 정의하면 부부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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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과에 속한 새. 몸길이 약 45㎝, 부리 2.9~3.9㎝, 날개 18.6~22.1㎝, 꼬리 19.7~26.4㎝, 부척(跗蹠: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의 부분) 4.7~5.5㎝, 몸무게 190~287g이다.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더 길다.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은 흰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주색 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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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가촌리의 명칭은 가자방(加資坊)이었다. 가자방의 가자(加資)는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말하는 것으로 백공이라는 사람이 1671년(현종 12) 호조참판으로 가자가 되어 가촌에 거주하였으므로 가자로 불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가자(佳自)·가촌(嘉村)·가촌(佳村)으로 변했는데, 이것은 절의를 지키고 예절바르고 착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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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삼국시대 제철 관련 취락군. 가촌리 수혈유구는 1995년과 1996년에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양산시의 문화 유적에 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또한 토지개발공사에서 시행한 물금 신도시 택지 조성 사업지에 포함됨에 따라 1997년과 1998년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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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삼국시대 제철 관련 취락군. 가촌리 수혈유구는 1995년과 1996년에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양산시의 문화 유적에 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또한 토지개발공사에서 시행한 물금 신도시 택지 조성 사업지에 포함됨에 따라 1997년과 1998년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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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복합 유적. 가촌리 유적은 해발 533m의 오봉산(五峰山)의 동쪽과 남쪽 자락이 완만하게 경사져 내려오는 지점에 위치한다. 유적은 평탄면에 조성되어 있다. 이 유적의 아래쪽 주변에는 현재 주택단지가 밀집해 있다. 가촌리 유적은 1995년과 1996년에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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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복합 유적. 가촌리 유적은 해발 533m의 오봉산(五峰山)의 동쪽과 남쪽 자락이 완만하게 경사져 내려오는 지점에 위치한다. 유적은 평탄면에 조성되어 있다. 이 유적의 아래쪽 주변에는 현재 주택단지가 밀집해 있다. 가촌리 유적은 1995년과 1996년에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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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양산 지역에서 제작된 회청색 경질 고배. 가촌리 유적지에서는 세 종류의 고배가 출토되었다. 첫째, 각부편으로서 배신부가 결실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황갈색을 띠고, 각부는 2단으로 되어 있으며, 하단부에만 세 개의 장방형 투창이 배치되어 있다. 잔고 4㎝, 각부 저경 6.5㎝, 두께 0.4㎝이다. 둘째, 각부편으로서 대부분 파손된 상태로 출토된 것이다. 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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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과에 속한 새. 몸길이 약 45㎝, 부리 2.9~3.9㎝, 날개 18.6~22.1㎝, 꼬리 19.7~26.4㎝, 부척(跗蹠: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의 부분) 4.7~5.5㎝, 몸무게 190~287g이다.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더 길다.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은 흰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주색 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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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과에 속한 새. 몸길이 약 45㎝, 부리 2.9~3.9㎝, 날개 18.6~22.1㎝, 꼬리 19.7~26.4㎝, 부척(跗蹠: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의 부분) 4.7~5.5㎝, 몸무게 190~287g이다.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더 길다.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은 흰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주색 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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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에 행하는 세시풍속. 납일(臘日)은 중국 하(夏)나라에서 시작된 세시풍속으로, 한(漢)나라에 와서 납일이라 하였는데, 짐승을 사냥하여 백신(百神)에 제사를 올리던 의례가 후에 조상에 대한 제사로 바뀌게 되었다. 궁중에서는 납향(臘享)이라 하여 새나 짐승을 잡아 종묘사직에 공물로 바치고 대제(大祭)를 지냈다. 납일에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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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가홍정은 천성산 자락에 있는 흥룡사 앞쪽에 위치한다. 가홍정은 양산 대석에 살던 가선대부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이 노병을 치유하고 난 66세이던 1918년에 죽우(竹友) 권순도(權順度)와 함께 자신의 소유지였던 홍동의 흥룡폭포 아래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 이재영이 남긴 「가홍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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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재영 등이 가홍정을 짓고 주변 풍광에 대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가홍정 제영(駕虹亭 題詠)」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던 가홍정을 두고 읊은 시들을 가리킨다. 가홍정은 천성산 중턱의 홍룡폭포(虹龍瀑布) 주변에 있던 정자로 지금의 건물은 근래에 재건한 것이다. 권순도와 이재영, 그리고 이들의 시에 차운한 김조현과 조긍섭의 시는 칠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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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토지대장에 등재된 경상남도 양산 지역 하천 주변의 저습지. 노전(蘆田)은 하천의 퇴적 작용으로 인해 하류 지역에 형성되는 저습지로 갈대를 비롯한 습지성 식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의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에 노전이 전답(田畓)·저전(楮田)·죽전(竹田)·송전(松田)·저전(苧田)·과전(果田)·채전(菜田) 등과 함께 주요 토지 항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노전은 황해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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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인공 저수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일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45년 양산천의 상류로 흘러드는 소지류의 상류 계곡에 길이 201m, 높이 4m의 둑을 쌓아 만들었다. 유역 면적은 86㏊, 만수 면적은 1㏊이다. 현재는 수자원 관리를 받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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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속한 자연 마을.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 전씨가 마을 계곡에서 옹기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박씨 및 여러 성씨가 살았으나 후손이 모두 없어지고, 임진왜란 전 충주지씨(忠州池氏)가 새로이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2년 9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효감마을에서 분리되었다. 감결마을은 면소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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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2005년에 개최한 특별 전시회. 감로탱화(甘露幀畵)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영가천도(靈駕薦度) 의식 때 주로 봉안하는 의례용 불화로서 조선시대에 성행하였으며 죽은 이에게 감로(甘露) 같은 법문을 베푼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에 따라 감로탱화에는 민중의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을 주제로 한 대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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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80년(고종 17) 통도사 백련암에서 간행된 불교 경전.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 사상 확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법화경』의 주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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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후기에 간행된 불교 경전.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周本)』은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경전이며, 소의경전(所依經典) 가운데 하나로 불교 전문 강원의 대교과(大敎科) 과정에서 학습이 되어 왔던 최고의 경전이다. 『화엄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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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에 있었던 한약방. 한약방은 한약업사가 한약을 판매할 수 있는 소매업의 한 형태로 구 ‘약사법’ 제26조 제3항에 의거하여 한약을 판매하는 일을 담당하는 일종의 약국이다. 여기서 한약업사란 한약을 판매할 수 있는 소매업자로서 한의사나 약사가 아닌 자를 가리킨다. 서양 의학에 기초한 의사와 약사가 부족하던 시절은 물론이고, 양의와 약사가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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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과에 속한 새. 몸길이 약 45㎝, 부리 2.9~3.9㎝, 날개 18.6~22.1㎝, 꼬리 19.7~26.4㎝, 부척(跗蹠: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의 부분) 4.7~5.5㎝, 몸무게 190~287g이다.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더 길다.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은 흰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주색 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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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농민운동가. 1931년 4월 4일 창립된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다가 1932년 3월 16일 양산농민조합의 간부가 구속당하자 탈환 작전에 가담하였다. 강만수는 300여 명의 조합원과 함께 경찰서 정문에서 대치하면서 구속한 간부를 무조건 석방하라고 외치다가 검거되어 1932년 10월 13일 벌금 50원의 형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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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양산천 변의 아파트 마을이라는 뜻에서 ‘강변마을’이라고 칭하였다. 강변마을은 1991년 9월 20일 협성강변타운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면서 형성되었다. 1992년 1월 1일 자치 관리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94년 7월 1일자로 강변마을이 회현마을에서 분동되었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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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삼국시대에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많은 전투가 일어났다. 많은 병사와 사람들이 보고픈 가족들을 뒤로 하고 전장에 나가서 죽음을 맞이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슬픔을 뒤로 하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용소에 제를 올렸다. 용소는 신라와 가야국 사이의 강을 중심으로 한 접전지로 보인다. ‘용’은 물의 신으로 청룡, 황룡, 백룡, 인룡이 있는데, 수장된 군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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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유산동·어곡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양산시청을 중심으로 양산천 서쪽에 위치한 동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1807년부터 1936년 이전까지는 양산군 상서면에 속하였으며, 1936년부터 1979년까지는 상서면이 개칭된 물금면에 속하였고, 법정리로는 교리·유산리·어곡리로 분류되었다. 그 뒤 1983년 교동리·유산리·어곡리가 물금면에서 양산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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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강서동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강서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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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식용 우렁이를 사용하여 만드는 음식. 낙동강 지류에 위치에 있는 양산은 경상남도의 곡창 지대 중의 하나인 울산 평야에 속하는 지역으로 예부터 논농사가 발달하였다. 논에서 자라는 고둥은 연체 동물로 논우렁이, 논고둥, 강우렁이 등으로 명명되는 식용 우렁이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모내기가 끝난 후 6~7월경부터 논고둥이 많이 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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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재호는 유년 시절 윤현진으로부터 항일 정신을 배웠다. 이후 1919년 3월 27일 양산군 양산읍에서 장이 선 날을 이용하여 엄주태, 박삼도, 전병건, 정주봉 등과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강재호는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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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산군수를 지낸 인물.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일보(一甫), 호는 강좌(江左). 권벌(權橃)의 6세손이다. 권만은 일찍부터 박학하고 문장에 능하여 이른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1747년(영조 23)에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당시 양산은 오봉산(五封山)[하북의 영축산, 상부의 천성산·석장산, 물금의 어곡산, 원동의 내포산] 설치로 여러 가지 폐단을 겪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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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세 명의 장수가 태어난 마을이라서 삼수(三帥)마을이라 칭하였다. 삼수마을이 속한 하북면은 685년(신문왕 5)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을 때 삽량주의 일부였다. 756년(경덕왕 16)에는 삽량주가 량주로, 고려 태조 때에 이르러서는 량주(良州)는 다시 양주(梁州)로 개명되었다. 995년(성종 1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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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명곡동 명곡천변에 있는 조선 중기 양산군수 이여익이 고을 유생들에게 강학하던 대(臺). 강학대는 1832년(순조 32)에 간행된 『경상도읍지』에 의하면, 이여익(李汝翊)이 1644년(인조 22)~1649년(인조 27) 양산군수로 재임하면서 고을 유생들을 인솔하여 강학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라고 한다. 이여익은 창녕 사람으로, 자는 비경(棐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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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정인휘 등이 강학대의 자연 풍경을 감상하며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강학대 제영」이란 경상남도 양산시 명곡동 입구 지역에 있는 강학대를 읊은 시를 가리킨다. 강학대는 건물이 아닌 바위로 사인암(舍人巖)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의 인물인 정인휘(鄭寅暉)는 「사인암」이란 이름으로「강학대 제영」을 지은 뒤, 최황(崔滉)[1529~1603]이 노닐던 곳이라는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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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강후(康候). 고려시대 문정공(文貞公) 최승로(崔承老)[927~989]의 후손이다. 최흥국은 1588년(선조 21)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서 서사원(徐思遠), 이윤우(李潤雨), 손처눌(孫處訥), 곽재겸(郭再謙), 박수춘(朴壽春) 등과 더불어 화왕산성(火旺山城) 전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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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리의 소노마을은 동래정씨가, 율리마을은 광주안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소노마을 지명은 작을 소(小)와 나라 노(魯), 즉 작은 노나라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작은 나라라는 뜻에 맞게 동리를 중심으로 밖의 마을을 외리, 안 골짜기에 있는 내리, 마을 뒷산 이름을 ‘하늘 만딩’이라고 불러왔다. 소노마을은 동래정씨 문중을 중심으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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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 개곡마을에서 매해 음력 3월 초3일에 마을 수호신에게 베푸는 민속 의례. 당산제의 주목적은 마을의 안녕과 풍농 및 마을 주민들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데 있다. 개곡마을에서는 당산신에 대한 신앙심이 강한 까닭에 당산나무로 섬기는 나무를 신성시하여 평소에 함부로 손대지 않으며, 자연 재해로 나뭇가지가 꺾여 땅에 떨어졌더라도 손을 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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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곡리는 천성산의 맥을 이은 큰골과 맞밭골의 두 개의 곡(谷)이 뻗어 합쳐진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두 개의 계곡이 합쳐 벌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개곡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출토되는 유물, 유적으로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골에는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에 절이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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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있는 수령 250년의 소나무. 소나무는 솔나무·적송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 내륙에 널리 분포하는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 교목이다. 소나무와 유사한 종으로는 반송과 금강소나무가 있으며, 해안 지방에는 곰솔(해송·흑송)이 자생한다. 개곡리 소나무는 높이 10m, 가슴 높이 둘레 3.2m, 가슴 높이 지름 1.02m, 나무갓 너비 18m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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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두 개의 계곡이 합쳐 벌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개곡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개곡마을의 형성 시기는 출토되는 유적·유물들을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골에는 신라 말이나 고려 전기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古)기왓장·주춧돌·구들장 등이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대밭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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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김수로왕(金首露王)의 49세손 김관(金管)[1250~1348]은 자가 희범(希範), 호가 정성헌(靖醒軒)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고려 말의 문신이다. 김관의 5세손 김극일의 여섯 아들에 와서 문중은 다시 6개의 지파(支派)로 나뉘어졌다.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는 중시조 김관의 9세손이고 녹사공의 4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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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있는 인공 저수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 일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45년 길이 130m, 높이 4m의 둑을 쌓아 만들었다. 유역 면적은 30㏊, 만수 면적은 2㏊이다. 현재는 수자원 관리를 받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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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부귀영화와 번창을 기원하는 뜻으로 ‘대성’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개구마리’라고도 하는데, 고개 오르막의 지형이 어미개가 새끼 여덟 마리를 품은 형상과 비슷하다고 하여 ‘개구마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곳의 할머니들은 밀양박씨 집에서 개가 새끼를 아홉 마리 낳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개구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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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서식하는 개미탑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0~30㎝, 둘레는 10㎜ 정도이다. 줄기는 적갈색이며 밑 부분이 옆으로 기면서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길이 7~15㎜, 너비 5~10㎜로 마주나지만 윗부분에서는 일부가 어긋나며 달걀 모양, 넓은 달걀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잎 가장자리는 연골질로 되어 다소 투명하며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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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서식하는 개미탑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0~30㎝, 둘레는 10㎜ 정도이다. 줄기는 적갈색이며 밑 부분이 옆으로 기면서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길이 7~15㎜, 너비 5~10㎜로 마주나지만 윗부분에서는 일부가 어긋나며 달걀 모양, 넓은 달걀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잎 가장자리는 연골질로 되어 다소 투명하며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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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산림청에서 희귀식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이다. 높이는 25~40㎝이다. 줄기는 곧게 선다.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마디에서 뿌리를 내린다. 잎은 길이 8~20㎝, 너비 5~8㎝이고 3~5개가 어긋나며 타원 모양이다. 잎에는 털이 드문드문 나고 아래쪽은 잎집이 된다. 꽃은 5~7월에 길이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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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반발하는 종교개혁에 의해 성립된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와 그 이후에 형성된 감리교, 성결교 등 기독교의 여러 종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도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교 등 개신교의 다양한 종파가 활동하고 있다. 이 중 장로교(長老敎, Presbyt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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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개신교회의 신학이나 신앙을 기초로 조직된 단체. 여타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개신교회의 경우에도 개신교의 역사나 신학, 신앙,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단체들이 존재한다. 유형별로 본다면, 교회 간 연합체, 선교 단체들, 학문 기관이나 학회나 연구기관들, 직능별 단체들, 사회 봉사 단체들, 난민 후원 단체들, 친목 단체들, 기타 성경 공부와 전도를 위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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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외떡잎식물 벼목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1.5m이다. 뿌리줄기가 짧고, 수염뿌리가 크게 무리를 이루어 뭉쳐난다. 줄기는 빽빽이 나고 딱딱하며 곧게 서고, 5~8개의 마디가 있다. 줄기에 달린 잎은 길이 30~40㎝, 너비 5~15㎜이다. 잎집은 길이가 2~10㎝로 줄기를 헐겁게 둘러싼다. 꽃은 8~10월에 피는데, 줄기 끝에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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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기초·기본 학력이 튼튼한 창의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3년 1월 학교법인 웅상학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11월 6학급을 편성하여 개운중학교로 학교 문을 열었다. 1976년 8월 정관을 변경하여 효암학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8년 3월 제4대 채현국 이사장이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3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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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개화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한『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원동면 신주마을에 사는 노인 내외가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할머니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집 뒤의 큰 암석에 아이가 있음을 알려주고, 그 아이가 15세가 되는 해의 5월 5일에는 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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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약했다고 추정되는 장군. 거도의 활약상은 『삼국사기』 거도열전에 잘 나타나 있으나, 가계와 성씨는 전하지 않는다.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에 벼슬하여 간(干)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국경의 이웃에 있어서 자못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는데, 거도가 변경의 지방관이 되어 그 곳을 병합할 생각을 품었다. 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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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모심기 중에 흥겹게 부르는 노동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모심는 소리는 경상도 교창식 모심기 노래와 잦은 모심기 노래로 나눌 수 있다. 경상도 교창식 모심기 노래는 긴 소리이며, 잦은 모심기 노래는 긴 모심기 소리에 이어 부르거나 쉴 참에 부르는 짧은 소리이다. 잦은 모심기 소리에는 잦은 모노래, 설설이, 왕거무(거무노래), 이리흔들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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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과에 속한 새. 몸길이 약 45㎝, 부리 2.9~3.9㎝, 날개 18.6~22.1㎝, 꼬리 19.7~26.4㎝, 부척(跗蹠: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의 부분) 4.7~5.5㎝, 몸무게 190~287g이다.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더 길다.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은 흰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주색 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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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당리는 이웃 고을 밀양의 삼랑진과 천태산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천태산(630.9m) 남쪽에 위치한 천태사[천태정사)에서 용연폭포에 이르는 계곡은 장사바위, 수자굴바위 등 기암절벽과 더불어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 산은 임진왜란 때 승려들의 훈련장이었으며, 천태정사와 수자굴 바위, 장사바위가 계곡폭포 뒤에 위치하고 있다. 오의정 전설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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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석리에 있는 동래정씨 재실. 경구재는 동래정씨 경상도관찰부주사(慶尙道觀察府主事) 및 통정비서감승(通政秘書監丞)인 구계(龜溪) 정인휘(鄭寅暉)를 받드는 재실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새롭게 축조되었다. 경구재는 본래 고려 공양왕 때 승정원 비서를 역임한 정인휘의 묘실(墓室)이었다고 한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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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있는 섬유 제조 및 판매 업체. 1959년 8월 27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에서 창업하였으며, 1993년 4월 3일 현재의 공장으로 신축·이전하였다. 2000~2004년에는 상시 종업원 수가 216~283명이었으나 2005년에 159명, 2006년에 122명, 2007년에 116명으로 감소하였다. 매출액도 2000년에 532억 5300만 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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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어곡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자주적·창의적으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개발시키고, 근면함과 성실성 그리고 봉사 정신을 통하여 겨레와 인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중견 영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87년 10월 양산외국어학교 설립을 인가 받았다. 1988년 2월 설립자인 전천수가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였고, 3월 제1회 입학식 때 240명의 신입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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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 경덕재는 1983년 경주이씨 물금 입향조인 이경덕(李敬德)의 후손들이 이경덕과 그 후손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재명은 입향 선조의 휘를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경덕재라 하였다. 현재 60위를 모시고 있다. 경주이씨의 시조 이알평(李謁平)은 호가 표암(瓢巖)이며 신라좌명공신(新羅佐命功臣)을 지냈다.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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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대(臺). 1939년 박재화(朴宰華) 형제가 그의 선조 박치형(朴致亨)을 우모하여 축조하였다. 금산리 거주민의 구전에 의하면, 이곳은 200여 년 전부터 놀이터로서 자리매김하여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백중놀이 때 마을 사람들이 화전놀이를 하는 장소로 정해진 마을에서 가깝고 경치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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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사기골에 있는 밀양박씨 재실. 경모재는 밀양박씨 양산 입향조인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 박진립(朴振立)과 그의 후손인 박애달(朴愛達)·박종달(朴從達)·박준달(朴俊達)·이우당(二憂堂)·묵헌(黙軒) 등을 모시기 위해 1987년 착공하여 1988년 준공된 사당 겸 재실이다. 박진립은 자가 입지(立之), 호가 강좌(江左)이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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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아파트를 건설한 회사의 이름을 따서 ‘경민’이라 칭하였다. 1978년 유산공단의 유치와 산막·북정·어곡공단 등의 공업화에 따른 택지 수요의 급증으로, 대한주택공사에서 범어지구를 택지 조성 지구로 지정하면서 경민마을이 탄생하였다. 198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93년 12월에 범어리 뒤의 양 산과 논·밭을 개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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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경보(擎甫).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의 후손이다. 임도의 증조부는 광해군 때 정인홍의 미움을 받아 양산 지역으로 유배를 왔다가 인조반정 후 광주목사가 되었으나, 이괄의 난 때 적에게 사로잡혀 죽은 임회(林檜)이다. 임도의 손자는 양산 지역에서 유일(遺逸)로 알려진 임경택(林景澤)이며, 증손자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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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전해 내려오는 경기 민요 「경복궁 타령」의 변화된 소리. 1991년 이소라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서 김말엽(남, 당시 75세)의 창을 채록하였다. 일인 창으로 전통적인 경기 민요 「경복궁 타령」의 본사와 다소 변화된 가사를 부르고 후렴이 두 줄 붙는 형식이다. 아침에 경복궁의 남문이 열리고 파루를 치는 광경을 전하고, 난봉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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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과 하북면을 경유하는 고속국도. 서울~부산 간 고속국도 또는 경부고속국도라고도 한다. 1968년에 개통된 경인고속국도에 이어 두 번째로 건설된 고속국도이다. 총 길이는 417.48㎞로 이 중 4차선이 263.22㎞, 6차선이 46.78㎞, 8차선이 107.48㎞이다. 신갈 분기점에서 영동고속국도가, 회덕 분기점에서 호남고속국도가, 남이 분기점에서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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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서 동면 가산리를 경유하는 철도 노선. 서울과 부산을 잇는 복선철도로 총 길이는 444.5㎞이다. 1904년 12월 27일에 완공되고 1905년 1월 1일에 전 구간을 개통하였다. 2006년 12월 8일에 전 구간이 전철화로 개통되었다. 서울의 옛 명칭인 경성과 부산을 잇는 철도로 경성과 부산의 앞 글자를 따서 경부선이라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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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금성나씨 재실. 경북재는 1941년 금성나씨 양산 입향조인 북간처사 북헌(北軒) 나이인(羅以仁)과 그 후손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후손 나진규와 나기흥이 중심이 되어 나이인을 비롯한 금성나씨 143위를 모시는 재실을 북정과 분암 사이에 세웠다. 금성나씨의 시조는 나총례(羅聰禮)로 고려 혜종과 정종 때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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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유학자. 자는 여윤(汝胤), 호는 경산(耕山). 나이인(羅以仁)의 후손이다. 성품이 엄격하면서도 너그럽고 온화하였으며, 마을에서 유학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고종(高宗)이 나라 일을 살피기 위해 돌아다닐 때 불러서 마주 대하였다.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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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있는 양산시 관할 교육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교육지원청은 교육자치의 일환으로 양산 지역의 교육 환경 개선 및 발전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일선 학교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학생들의 교육 복지와 학습권 실현에 중점을 두고 지원 활동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52년 6월 4일 교육자치제 시행으로 양산교육구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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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있는 경상남도 양산교육지원청 산하 특수 교육 전담 지원 센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 학생들의 특수교육 서비스를 확대하고 특수교육 연수·상담 및 홍보 활동 등을 통하여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설립하였다. 2006년 양산초등학교 내에 특수교육지원센터가 설치되었다. 2007년 경상남도 양산교육지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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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있는 도립노인전문요양병원. 경상남도립양산노인전문병원은 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늘어나는 노인성 질환 환자에 대한 요양과 진료를 위하여 경상남도로부터 의료법인 우산의료재단이 병·의원 시설을 수탁 받아 노인성 질환에 대한 치료, 간병, 재활 등을 위한 전문적 의료 서비스와 최적의 요양 병원 시스템을 구현하여 노인 삶의 질 향상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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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양산군민이 동래부로 넘어간 구포의 관할권을 양산군에 돌려달라고 의정부에 올린 진정서. 1873년 양산군이 담당했던 구포 관할권이 동래부로 넘어가자 1874년 양산 군민은 진정서를 작성하고 41명이 연서하여 의정부에 진정서를 올렸다. 의정부는 내용을 심리하고 결정 내용을 기록하여 양산 군민에게 돌려주었다. 1장이며 양산 군민이 집단으로 진정서를 작성하고 41명이 연서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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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경상남도 양산군에서 작성한 출두리와 사덕리의 전답 양안. 양안은 군 단위 양전(토지 측량)의 결과를 기록한 일종의 토지대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1720년에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일시에 도별로 양전이 행해졌다. 이를 ‘경자양전(庚子量田)’이라 한다. 경자양전 이후로는 도별로 양전을 행한 적은 없고, 필요할 경우 군현별로 정부의 허가를 얻어 양전을 시행하였다. 군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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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옛 양산군 관아 터에 있던 조선시대 폐문루 터. 경성루는 조선시대 양산군 관아에 있던 폐문루(閉門樓)로서 새벽과 밤에 취타(吹打)하여 관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루가 건립되고 없어진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0년(철종 11) 가을 양산군수 이휘정(李彙廷)이 부임하여 폐문루가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황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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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경옥재는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49세손 김관(金管)[1250~1348]을 중시조로 하는 녹사공파(錄事公波) 후손의 재실이다. 김관은 자가 희범(希範), 호가 정성헌(靖醒軒)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고려 말의 문신이다. 김관의 자손인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문민공(文愍公)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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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효순(孝順), 호는 경와(耕窩). 정재(正齋) 정지송(丁之松)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양산 지역의 유일(遺逸)로 이름난 정득(丁得)으로 임진왜란 때 김해 지역에서 양산 지역으로 피난해 와서 정착하였다. 형은 양산의 유행(儒行)으로 알려진 정명희(丁鳴稀)이다. 정명석은 평소에 효성과 우애가 깊고 덕행이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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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육영사업가.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경운(耕雲). 현감 윤홍(尹洪)의 아들이다. 형은 고성군수와 울산군수를 역임한 윤명은이며, 사촌으로 양산 지역 출신의 윤상은과 윤현진 등이 있다. 윤영은은 1907년(순종 1)에 문중의 재산으로 구명학교(龜明學校)[현재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2동의 구포초등학교]를 창립하였으며, 1908년(순종 2)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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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경원(敬元), 호는 경재(敬齋).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백유익(白有翼)이고, 아버지는 백사정(白思正)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무과 조에 의하면 “효성과 우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과 덕행이 있었다. 남는 시간에는 집안일을 다스렸다. 성품과 마음 씀씀이는 소박하였지만, 생각은 넓은 세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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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김녕김씨 재실. 경의재는 김녕김씨 충의공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인 김재연(金在衍)·김재간(金在衎)·김재형(金在衡)·김우권(金禹權) 등의 재사이다. 경의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 중 하나이다. 그의 후손인 김재연은 자는 영보, 호는 양심재이며, 성품이 순수하고 인정이 많고 검소하였다. 늙어서는 성리학을 연구하였는데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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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경인(敬仁), 호는 인수당(忍叟堂). 고려시대의 훈신(勳臣)인 이인복(李仁復)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하사받은 이석복(李錫馥)이다. 이홍민은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계모를 몸과 마음으로 극진히 섬겼으며, 평소에 남에게 화를 내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이에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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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경원(敬元), 호는 경재(敬齋).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백유익(白有翼)이고, 아버지는 백사정(白思正)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무과 조에 의하면 “효성과 우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과 덕행이 있었다. 남는 시간에는 집안일을 다스렸다. 성품과 마음 씀씀이는 소박하였지만, 생각은 넓은 세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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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영천이씨 재실. 영천이씨 이구(李鳩)는 고려 말 절의자 남곡(南谷) 이석지(李釋之)의 후손이다. 구체적으로는 남곡공파(南谷公派)의 지파인 서파공파(西坡公派)의 후손이다. 이구는 임진왜란 때 양산에서 이수생(李秀生)·최흥국(崔興國) 등과 창의하여 의병 활동을 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송담(松潭) 백수회(白受繪)[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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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공동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 경제 단체가 설립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동일업계나 동일 조직 공동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때로는 정부가 일정한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나 노동자들이 단체를 구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는 경제 단체가 구성될 경우 업계나 조직의 목소리가 통일되어 정부가 산업 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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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된 활동과 영역. 경상남도 양산 지역은 경상남도 동·남단부에 위치한 산업·주거 도시로 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 북쪽과 동쪽으로는 울산광역시, 서쪽으로는 밀양시, 김해시와 각각 접해 있다. 부산에서 내륙으로 향하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부산의 위성 도시로서 양 지역 간에는 오래전부터 일상적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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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나주오씨의 제단(祭壇). 나주오씨의 제단으로 주위에는 나주오씨 조상묘가 있다. 이전에는 단의 이름을 치등제단(治登祭壇)이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는 나주오씨의 집성촌이다. 중시조인 진사공 오속규의 후손인 오손을 일대로 하여 8세 오명한이 울산에 입거하고 12세 오세윤에 이르러 양산에 이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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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옥근과 김수운을 입향조로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경주김씨는 김알지를 시조로 하여 경순왕 이후 여러 본관 성씨로 분파했다. 경주 본관을 계속 유지한 집안은 영분공파 파조인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과 대안군파 파조인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 집안이 대표적이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10여 개의 지파가 생겨났다. 중시조인 42세손 김균(金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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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시에서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원령·이형규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 시조는 이알평(李謁平)으로 신라의 좌명공신(佐命功臣)이다. 중시조는 신라 때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이거명(李居明)이다. 우리나라 이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경주이씨 이알평의 후손에서 분관한 것이다. 시조 이알평은 『경주이씨대종보』상계편에 박혁거세(朴赫居世) 때 아찬(阿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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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상연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경주정씨(慶州鄭氏) 시조 지백호(智伯虎)의 5세손 동충(東沖)이 정씨로 사성(賜姓)된 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경주정씨족보(慶州鄭氏族譜)』는 모두가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있다. 경주정씨는 120여 본에 달하는 정씨의 ‘큰집’ 격이라고 할 수 있다. 통정대부 정상연(鄭相然)의 후손이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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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공공 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 작용. 경찰은 넓은 의미로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고 범죄의 예방과 수사, 피의자의 체포, 공안 유지 등과 관련되는 특수 행정 작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법의 집행 및 범죄 수사를 통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국가 조직이나 국가 기관 또는 그 구성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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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경주이씨의 재실. 경주이씨는 현재 도정(都正) 이종운(李種運)의 후손은 화제리에, 가선대부겸이조참의(嘉善大夫兼吏曹參議) 이중우(李仲雨)의 후손은 내포리에, 병조참판(兵曹參判) 이순곤(李順坤)의 후손은 용당리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경춘재는 경주이씨 중시조 이거명(居明)의 17세손인 익제(益齊) 이제현(李齊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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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대(臺). 경파대는 조선 고종조 사인(士人) 정임교(丁壬敎)가 향토의 사우(士友)들과 수창(酬唱)하던 승경지(勝景地)다. 정임교는 이황(李滉)의 문인인 고암(顧庵) 정윤희(丁胤禧)[1531~1589]의 후손으로, 자는 남서(南瑞), 호는 매촌(梅村), 일명 규열(奎烈)이라고도 하며, 효행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정임교는 양산향교의 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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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정임교가 경파대의 내력과 자신을 최치원에 빗대에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매촌(梅村) 정임교(丁壬敎)는 나주정씨(羅州丁氏)로 자는 남서(南瑞)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임경대(臨鏡臺)에서 수백 보 아래에 있는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낙동강 변에 있던 경파대(鏡波臺)는, 임경대에서 노닐던 정임교가 우연히 발견하고 이름을 붙인 곳이다. 정임교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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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 백련암에서 소장하고 있는 1900년 제작된 승려 경허(鏡虛)의 친필 방함록. 「경허필범어사총섭방함록(鏡虛筆梵魚寺總攝芳啣錄)」은 「경허필방호함록(鏡虛筆芳護啣錄)」이라고도 한다. 방함록(芳啣錄)이란 안거(安居)를 들어갈 때 수행자들의 이름 등을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안거할 때에 안거객들의 직명(職名)과 성명, 법명, 나이, 본사명(本寺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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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 백련암에서 소장하고 있는 1900년 제작된 승려 경허(鏡虛)의 친필 방함록. 「경허필범어사총섭방함록(鏡虛筆梵魚寺總攝芳啣錄)」은 「경허필방호함록(鏡虛筆芳護啣錄)」이라고도 한다. 방함록(芳啣錄)이란 안거(安居)를 들어갈 때 수행자들의 이름 등을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안거할 때에 안거객들의 직명(職名)과 성명, 법명, 나이, 본사명(本寺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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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동한 문신. 송정렴의 정치적 행적은 송시열에 대한 치죄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숙종 즉위 초에는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였고 이에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장악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송시열이다.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축출이 일어나 서인이 정국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의 송정렴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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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에 있는 산. 계명이란 닭 울음이란 뜻이다. 유래에 대해서는 옛날 의상대사가 이 부근에서 절 터를 모색하던 중 한 밤중에 느닷없이 닭 울음을 들었기 때문에 이곳에 암자를 불사, 계명암이라 하고, 산 이름을 계명봉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새벽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라는 뜻으로 밤 기도를 위해 밤을 세워 기도하던 납자(衲子)들에게 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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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에 있는 산. 계명이란 닭 울음이란 뜻이다. 유래에 대해서는 옛날 의상대사가 이 부근에서 절 터를 모색하던 중 한 밤중에 느닷없이 닭 울음을 들었기 때문에 이곳에 암자를 불사, 계명암이라 하고, 산 이름을 계명봉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새벽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라는 뜻으로 밤 기도를 위해 밤을 세워 기도하던 납자(衲子)들에게 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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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 계석마을에서 매해 음력 1월 14일 자정 무렵에 마을 수호신에게 베푸는 민속 의례. 계석마을에서는 당산나무를 모시고 있으며, 마을 수호신인 당산나무를 당산할배·할매라 칭하고 있다. 당산제를 모시는 이유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 및 마을 주민들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데 있다. 구전에 의하면 계석마을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모셔온 것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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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계석마을 당산은 정북을 향하고 있어 옛날부터 양산 지역의 대표적인 당산으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을 ‘제석(祭釋)’이라고 부르다가, 차츰 변하여 지금의 계석마을이 된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한편 지금의 북방 지역에 돌이 많아 ‘제석’이란 이름도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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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가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 계원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로 사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사찰의 유래와 관련하여 옛날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계원사에서 양산시가지를 향해 서서 왼쪽을 바라다보면 가까운 능선 끝에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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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재 또는 영(嶺)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패스(pass)라고 하는 데, 그 어원은 패서블(passable), 즉 통과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산등성이의 낮은 곳으로 길이 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의 양쪽 사면에 계곡이 발달하여 양쪽으로부터 침식이 진전되면 등성이 부분이 낮아져서 안부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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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 길이는 1m이다. 줄기 윗부분은 비스듬히 서고, 아랫부분은 능선을 따라 밑을 향한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달려 다른 물체에 달라붙는다. 잎은 길이가 4~7㎝, 너비가 3~7㎝이고 윗부분의 것은 잎자루가 없다. 중앙의 열편(裂片)은 달걀 모양이면서 끝이 뾰족하고 옆쪽의 열편은 서로 비슷하게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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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의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양산 지역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삼한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향을 받다가 5세기 이후 신라에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삽량(歃良)으로 불리다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양주로 개칭되었다. 양산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그 시기에 대해서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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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읍성의 처음 축성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양산의 옛 지명이 삽량주이므로 성의 이름도 삽량성이었다. 고대 문헌에서 등장하는 삽량성의 기록에서 조선시대 이전의 양산읍성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 권3, 463년(자비마립간 6) 2월에 ‘왜인이 삽량성을 침범했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라는 기록이 있어서, 현재의 석성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463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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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변에 위치한 용당은 역사가 깊은 지역이다. 용당리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경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신라, 가야 역사로부터 시작된다. 이곳 용당은 당시 황산강(낙동강)을 경계로 동쪽은 신라의 영역이고, 서쪽은 가야의 영역이다. 신라와 가야는 5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에 따라 황산강(낙동강)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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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중등 교육 기관. 중등 교육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고등학교의 입학 자격은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법령에 의해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에 한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는 교육 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나, 일반계와 실업계를 동시에 운영하는 종합 고등학교도 있다. 그외 특수 목적 고등학교인 과학 고등학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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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있던 철강선 제조 및 판매 업체. 1978년 3월 4일 고려제강과 벨기에 트레일알베드와 50대 50 합작투자로 고려·트레일알베드를 설립하였고, 1979년 7월 3일에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 134번지[유산공단7길 15]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1987년 2월 경상남도 창원시 성주동에 창원공장을 건립하였고, 1989년 4월 고려강선으로 상호를 변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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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있는 철강선 제조 및 판매 업체. 1969년 8월 22일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에 고려상사를 설립하였으며, 1980년 4월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으로 이전하였다. 1982년 5월 서울 사무소를 설립하였다. 1990년 1월 독일 뒤셀도르프에 현지법인을, 1995년 1월 미국 뉴저지에 지사를 각각 설립하였다. 1995년 6월 일본 오사카와 도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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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역사. 양산의 고려시대 지명은 양주인데, 김인훈 등의 호족 세력이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적극 동조한 이후 지역 행정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아울러 양주에는 울주와 함께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는데, 이는 양주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 지역임을 말해준다. 일시적으로 동래현과 기장현을 속현으로 관할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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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고려제강의 강선(鋼線) 제조 공장. 고려제강 양산공장은 1972년 11월 22일 현 위치인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건립되었다. 고려제강은 1945년 9월 22일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서 선구용품 무역업체인 고려상사로 창업하였고, 1952년 12월 고려상사주식회사로 법인을 전환하였다. 1961년 3월 부산광역시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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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있는 고려제강의 강선(鋼線) 제조 공장. 고려제강 유산공장은 1979년 7월 현 위치인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건립되었다. 고려제강은 1945년 9월 22일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서 선구용품 무역업체인 고려상사로 창업하였고, 1952년 12월 고려상사주식회사로 법인을 전환하였다. 1961년 3월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고려제강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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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득을 시조로 하고 김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고령김씨는 경주김씨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시조 김남득(金南得)은 경순왕의 11세손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장손(長孫)으로 고려 때 전리좌랑(典理佐郞)을 역임한 김의(金宜)의 첫째 아들이다. 시조 김남득의 본명은 김기지(金麒芝)였다. 사은사(謝恩使)로 원(元)나라에 가서 예부상서(禮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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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 길이는 1m이다. 줄기 윗부분은 비스듬히 서고, 아랫부분은 능선을 따라 밑을 향한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달려 다른 물체에 달라붙는다. 잎은 길이가 4~7㎝, 너비가 3~7㎝이고 윗부분의 것은 잎자루가 없다. 중앙의 열편(裂片)은 달걀 모양이면서 끝이 뾰족하고 옆쪽의 열편은 서로 비슷하게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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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 길이는 1m이다. 줄기 윗부분은 비스듬히 서고, 아랫부분은 능선을 따라 밑을 향한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달려 다른 물체에 달라붙는다. 잎은 길이가 4~7㎝, 너비가 3~7㎝이고 윗부분의 것은 잎자루가 없다. 중앙의 열편(裂片)은 달걀 모양이면서 끝이 뾰족하고 옆쪽의 열편은 서로 비슷하게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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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 길이는 1m이다. 줄기 윗부분은 비스듬히 서고, 아랫부분은 능선을 따라 밑을 향한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달려 다른 물체에 달라붙는다. 잎은 길이가 4~7㎝, 너비가 3~7㎝이고 윗부분의 것은 잎자루가 없다. 중앙의 열편(裂片)은 달걀 모양이면서 끝이 뾰족하고 옆쪽의 열편은 서로 비슷하게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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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달성서씨 재실. 달성서씨 감찰공파(監察公派) 증산 문중(增山門中) 절충장군겸지중추부사(折衷將軍兼知中樞府事) 서두망(徐斗望)[1686~1746]을 기리기 위한 재사이다. 달성서씨는 입향조인 서몽호가 임진왜란 때에 창의하여 주부를 제수 받고 후에 증산사에 배향되었으며 이후 울산으로부터 와서 매곡에서 살았다. 이후 증산문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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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층층나무목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30~80㎝이다. 전체에 털이 없으며 강한 향기가 난다. 뿌리에서 돋은 잎과 아랫부분의 잎은 잎자루가 길고 3회 깃꼴겹잎으로 갈라진다. 열편(裂片)은 선형이고 윗부분에서는 잎자루 전체가 잎집으로 되어 굵어진다. 꽃은 8~9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 겹산형꽃차례로 달린다.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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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층층나무목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30~80㎝이다. 전체에 털이 없으며 강한 향기가 난다. 뿌리에서 돋은 잎과 아랫부분의 잎은 잎자루가 길고 3회 깃꼴겹잎으로 갈라진다. 열편(裂片)은 선형이고 윗부분에서는 잎자루 전체가 잎집으로 되어 굵어진다. 꽃은 8~9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 겹산형꽃차례로 달린다.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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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고봉(高峰). 회암 안유(安裕)의 후손이다. 안처익은 향촌사회에서 후진들에게 학문을 권장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가르치며 자연 속에서 은거하며 살았다고 한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의하면 ‘호는 고봉(高峰)이고, 본관은 순흥으로 회암 안유(安裕)의 후손이다.’라고 하였다. 경현당(景賢堂)은 양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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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무덤. 양산의 고분은 5세기 이전에는 양산시 북쪽에 위치하는 해발 약 50m 내외의 구릉부에 해당되는 소토리에 축조되었다. 매장 시설은 목관묘·목곽묘·옹관묘 등 다양한 묘제를 사용하였다. 이 가운데 목곽묘는 지배층이 채용한 매장 시설로 세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평면 형태를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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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마을을 감싸는 산 가운데 오른쪽 신인 백호에 해당되는 야트막한 능선이 있다. 부드럽게 마을을 남쪽으로 감싸 돌면서 평지로 잦아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산이지만 이곳에서 옛날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이 일명 ‘명곡리 고분군’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주로 4~5세기의 토기류가 발굴되었다. 토기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용기이므로 당시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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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과 하북면을 경유하는 고속국도. 서울~부산 간 고속국도 또는 경부고속국도라고도 한다. 1968년에 개통된 경인고속국도에 이어 두 번째로 건설된 고속국도이다. 총 길이는 417.48㎞로 이 중 4차선이 263.22㎞, 6차선이 46.78㎞, 8차선이 107.48㎞이다. 신갈 분기점에서 영동고속국도가, 회덕 분기점에서 호남고속국도가, 남이 분기점에서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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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양산분기점과 김해시 대동면 대동분기점을 연결하는 고속국도 지선. 고속국도 551호선은 서울~부산 간 고속국도 1호선(경부고속국도)과 부산~춘천 간 고속국도 55호선(중앙고속국도)을 연결하기 위해 1996년 6월 28일 건립하여 개통하였다. 고속국도 551호선 개통 당시 고속국도 번호를 19-2호선, 명칭을 부산~대구 고속국도 지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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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1804년에 제작된 통도사 개산조인 자장율사의 진영(眞影). 「자장율사 진영」은 통도사 개산조당(開山祖堂)에 봉안되어 있다. 자장율사는 통도사의 창건주로 널리 알려졌는데, 신라 진골 출신으로 속명은 선종랑이며 법호는 자장이라 하였다. 「자장율사 진영」의 제작은 성인(成仁) 계한(戒閑)을 비롯하여 3명이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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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정자. 일명 고운대, 최공대(崔公臺)라고 하는데, 황산강(현 낙동강의 옛 이름) 서쪽 절벽 위에 있다. 벽에는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래되어 조감하기 어렵고, 시만 전할 뿐이다. 임경대는 오봉산 제1봉의 7부 능선에 있는 바위 봉우리로 낙동강과 건너편의 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산천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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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내음 풍기며 살짝 굽어진 소노마을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어느새 딱 트인 논이 푸른 물결치며 오는 이를 반긴다. 온통 너무 푸르러서 초록 바다가 출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공장들이 가까이 들어서 있어도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논농사를 하고 있다. 소노 이장님 말씀으로는 논농사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300~400마지기 정도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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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물이끼가 많은 습원. 습지는 식물의 생산량이 분해량을 초과할 때 만들어지며, 습원의 형성이나 유지에는 물의 양이나 질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지수함양성이냐 아니면 강수함양성이냐에 따라 습원의 성격이 결정된다. 고층습지는 강수함양성으로 저온다습하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평지나 산지 사면에 발달해 있다. 토질은 양분이 부족하고 미분해 유기질의 부식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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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물이끼가 많은 습원. 습지는 식물의 생산량이 분해량을 초과할 때 만들어지며, 습원의 형성이나 유지에는 물의 양이나 질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지수함양성이냐 아니면 강수함양성이냐에 따라 습원의 성격이 결정된다. 고층습지는 강수함양성으로 저온다습하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평지나 산지 사면에 발달해 있다. 토질은 양분이 부족하고 미분해 유기질의 부식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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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천성산에서 자생하는 외떡잎식물 화본과 갈대속 다년생 식물. 갈대는 2~4m쯤 자란다. 줄기의 속은 비어 있으며 근경은 길게 뻗으면서 마디에서 수염뿌리가 내린다. 원줄기는 속이 비고 마디에 털이 있는 것도 있다. 잎은 2줄로 호생하며, 긴 피침형으로 끝이 길게 뾰족해지고 처진다. 잎집은 원줄기를 둘러싸고 털이 있을 때도 있으며 길이는 20~50㎝, 너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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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음력 3월 중에 지내는 절기. 곡우는 24절기 중 6번째로, 봄비가 백곡(百穀)을 윤택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청명(淸明)과 입하(立夏)의 중간인 4월 20일경에 든다. 봄의 마지막 절기로, 음력으로는 3월 중이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0°에 있을 때이다. 조기잡이가 성하고 나무에 물이 오르는 시기로, 한 해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곡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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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었던 나루. 원래는 구읍포(仇邑浦)로 불렀다. 양산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 터로 낙동강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수운의 요지였다. 그러나 내륙 수송이 발달하고 잦은 홍수로 수로가 바뀌자 차차 쇠퇴하였다. ‘굽개’는 ‘굽은 개’로 강의 형태가 여러 번 꺾어지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즉, 양산천은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시살등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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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해서 ‘교동마을’이라고 칭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1807년(순조 7)까지는 양산군 서면에 속하여 곡포리(曲浦里)·별양곡리(別良谷里)·유산리(由山里)·어곡리(魚谷里)로 형성되었다. 1807~1936년까지는 양산군 상서면에 속하여 곡포리가 교동리와 회현리(會賢里)로, 별양곡리는 양동리로 개칭되었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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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국가의 감독 아래 공공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기관이나 단체 중 공공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자 사행정, 사조직, 시민 사회 단체, 민간 단체, 기타 사설 기관 등과 구분되는 공조직으로 공공 서비스와 공공 재화를 생산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관공서로 통칭하는 국가 행정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법인으로 분류되는 정부 투자 기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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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상북 소토리 인근 야산 소나무들이 집단 고사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를 두고 주민들은 인근 공장 가동 후부터 고사되었다고 주장하고, 회사 관계자들은 소나무 재선충이라며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상북면 소토리에 조성된 공단 인근 야산에서 지난해(2007) 12월부터 한두 그루씩 소나무들이 죽어가기 시작해 최근에는 200여 그루 이상이 집단 고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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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에서 타작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공상타작 소리」는 참나무 개상에다 볏단을 내리쳐서 낱알을 떨어뜨리는 작업을 할 때 외치는 소리이다. 1989년 이소라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에서 김기홍(남, 당시 85세)의 창을 채록하였다. 볏단을 둘러매고 내려칠 때의 동작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어허 두름이야"를 반복한다. 논농사가 이루어졌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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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공암마을은 예부터 많은 애환이 있었던 마을임에도 아파트 등의 조성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는 마을이다. 공암이라는 마을 이름은 일제강점기 당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아래 구멍이 뚫린 바위굴이 있어 공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 전에는 공암로 불려오다가 공암마을로 바뀌어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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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공집(公執), 호는 서벽(棲碧). 아버지는 우재(又齋) 엄석주(嚴錫主)이며, 엄국영(嚴國永)이 형이다. 엄신영은 음직으로 가감역겸기장군수(假監役兼機張郡守)에 임용되었으며,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시사(時事)가 날로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 관직을 그만두었다. 엄신영은 부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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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지도는 향토의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볼 수 있는 도구이다. 이는 지도가 종합과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양산의 모든 것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양산의 고지도는 제작 당시의 위치 정보를 이미지로 전달하기 때문에 텍스트로 쓰인 지리서보다 위치 파악에 효율적이다. 따라서 양산의 고지도는 양산 지역의 향토 문화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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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출신으로 관리 선발 시험에 합격한 인물들. 관리를 채용할 때 시험을 보게 된 것은 중국의 한(漢)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한국은 신라 원성왕 4년(788)에 실시한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가 시초이다. 고려시대에는 과거제가 시행되는 가운데에도 상류층에게 특혜를 주는 음서제(蔭敍制)가 병행되기도 하여 과거제의 불완전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과거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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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서 과부의 신세 한탄과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민요.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에서 태어나 19세에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으로 시집 온 백경순(여, 당시 82세)의 창을 1989년 이소라가 채록하였다. 노랫말은 전체적으로 4·4조가 중심을 이루어 두 마디씩 반복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에는 달거리가 삽입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과부로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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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재배되고 있는 생식하거나 가공해서 식용으로 쓰이는 과실. 산야에서 원예 기술로 생산하지 않고 식용이나 공업용 원료로 쓰이는 과실을 맺는 나무들을 유실수라고 한다. 유실수 중에 식용이 가능하고 집약적으로 재배되는 나무는 과수에 포함시킬 수 있다. 과수는 재배 지대에 따라 온대 과수와 열대 과수로 분류되며 겨울철의 낙엽 여부에 따라 낙엽 과수와 상록 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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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자연과학·응용과학·공학 및 생산 기술을 일괄해서 논하거나 취급할 때 쓰이는 총칭.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은 신석기시대의 토기 제작, 철기시대의 도검 제작 기술 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삼국시대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독특한 분묘 문화와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진 첨성대는 우리 조상의 과학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751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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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둘러보는 유람 활동. 양산은 부산과 울산의 대도시적 배경과 김해 및 밀양의 촌락적 배경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으므로 양산의 근원적 기능 뿐만 아니라 배후 지역의 수요에 대처하여 발전해야만 한다. 특히 양산은 주택 기능, 공업 기능, 도시민의 관광 휴양 기능 등을 고려하여 도시 기능을 선택하고 선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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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으로 진입하는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통과의례. 가족의 일원에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의미 있는 행사로, 남자는 관례(冠禮), 여자는 계례(笄禮)를 치른다. 남자는 상투를 짜고, 여자는 쪽을 찐다. 우리나라 전통 사회에 있어서 성인식은 관례와 계례로 통용되어 왔다. 결혼을 앞둔 남자에게 의관을 갖춘 예복을 차려 입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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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후기 경상남도 양산에 있던 지역의 보발(步撥) 역참(驛站). 조선 전기의 역참 제도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기능이 거의 마비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원인은 말 값이 뛰어 역마 확보가 어려워졌고, 역리의 도망과 그에 따른 역호의 쇠망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역마의 남발과 역전의 사유화, 그리고 국가 기강의 해이로 찰방 등의 작폐가 심했던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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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서예 관련 문화 예술 단체. 관설당(官設堂)은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호이다. 박제상은 신라 제19대 눌지왕 시절 왜국에 볼모로 잡혀 있던 눌지왕의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지략으로써 구하고 대신 붙잡혔다. 왜국의 왕은 박제상을 신하로 삼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회유했으나, 박제상은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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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인구 증가로 인하여 반회마을을 분동할 때 인근 천성산 고목곡에서 발원한 가제천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윗반회라 하였다. 마을의 지층은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옛날에는 마을 앞까지 강물이 흘렀다고 한다. 윗반회 이전에는 창리라고도 하였다 하며 상선이 낙동강을 거쳐 양산천 상류인 이 곳까지 왕래하였으므로 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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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조선 후기 박문수·김성발·황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세불망비. 관찰사 박문수(朴文秀)와 황선(黃璿), 양산군수 김성발(金聲發), 손명대 등은 피폐해진 통도사를 위해 잡역을 면제해 주고 복구까지 시켜주었다. 이에 대해 통도사에서 그 선정을 기리고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다짐으로 비석을 세웠다. 비두 없이 비신과 비좌로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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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양산향교 앞 비석군에 있는 조선 후기 홍재철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홍재철(洪在喆)은 1840년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며, 진심을 다해 백성을 보살펴 피폐한 고을을 개혁하였으며,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해주었고, 재물을 불려 국방에도 힘써 백성들을 보호하였다. 이에 홍재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양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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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인구 증가로 인하여 반회마을을 분동할 때 인근 천성산 고목곡에서 발원한 가제천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윗반회라 하였다. 마을의 지층은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옛날에는 마을 앞까지 강물이 흘렀다고 한다. 윗반회 이전에는 창리라고도 하였다 하며 상선이 낙동강을 거쳐 양산천 상류인 이 곳까지 왕래하였으므로 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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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양산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관필(觀必), 호는 향산(響山). 이황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대사성 이휘준(李彙濬)이며, 이휘철(李彙澈)에게 입양되었다. 1866년(고종 3)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전적·병조좌랑·사간원정언을 지냈다. 이후 홍문관부수찬·장령·지평·병조정랑·교리·응교·사간·집의 등을 역임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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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산업 중 광업과 공업을 포함하는 업종. 광공업은 광물을 탐사, 채굴, 선광하여 제련하는 광업과 1차 산업에서 얻어진 수확물을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제조업을 함께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산업분류표의 중분류에 의하면 모두 21개 업종을 광·공업에 포함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석탄·원유 및 우라늄광업, 비금속 광물광업, 음·식료품 제조업, 섬유 제품 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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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있는 대(臺). 금호(琴湖) 이수생(李秀生)의 후손인 조선시대의 문신 이일녕(李一寧)이 글 읽기를 좋아하여 쌓은 누각이다. 이수생은 조선 명종 대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 금산리에서 출생하여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으로 첨정에 올랐고, 선무원종공신 삼등훈을 받았다. 이수생의 후손인 이일녕은 천성이 후덕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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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리는 영축산 아래 첫 동네이다. 등산로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하루에 15차례 정도 이곳에서 신평을 오가는 마을버스에서 내리면 먼저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의 ‘지산 만남의 광장’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에 ‘마을구판장’이라는 글씨도 눈에 띈다. ‘수퍼’ 또는 ‘수퍼마켓’이 흔한 요즈음 ‘구판장’이 왠지 정겹게 느껴진다. 구판장 앞에는 지친 나그네들이 쉬어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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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광장에서 김명관(79)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6·25 참전 용사이다. 6·25가 발발하던 1950년 9월 30일 입대했다. 군번은 ‘0207833’, 부산 군번으로 훈련소 안 가고 부산에서 3개월 있다가 제9사단이 창설되면서 전속되었다. 그 후 휴전이 될 때까지 전투에 나섰고 1956년에 일등중사로 제대했다. 제대 명령은 ‘육특을 306호’ 군번이며 입대일자, 제대명령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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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 등 등산객이 있는 날에는 만남의 광장 한쪽에는 푸성귀를 가지고 나와서 팔고 있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다. 토요일인데도 할머니는 단 두 사람밖에 보이질 않는다. 알고 보니 다들 들꽃 축제가 열리는 서운암으로 가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만 만남의 광장에 남았다. 강복숙(76) 할머니도 가지 못했다. 그는 6·25 참전 용사인 김명관 할아버지와 부부지간이다. 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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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다시 찾은 만남의 광장에는 등산객들이 타고 온 승용차가 많다.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수도 토요일보다 늘었다. 이쪽으로 할머니 한 분이 걸어온다. 눌러 쓴 모자 위 에 덮힌 수건 아래로 살짝 가려진 고운 얼굴이 보인다. 곁에 가서 말을 건네 본다. 17살에 28살 신랑을 따라 시집 온 초산댁 김백수(87) 할머니다. 서운암 들꽃 축제에서 가져간 것 다 팔고 돌아오는 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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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 “취나물 사러 오소.”를 외치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갑술생 개띠 이순조(75) 할머니의 목소리다. 이름이 좋다고 하자, “이름이 좋는교. 이전에사 책 보고 짓나. 친정아버지가 지었겠지.” 아주머니 한 명이 다가와 “콩 얼맙니까?”라고 묻자 “콩 한 되에 8천원인데 할매 한 키가 ‘7천원에 팔아라.’해서 냈다. 7천원에 사 가소.”라고 대답했지만 가격이 맞지 않는지 그냥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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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강복숙 할머니는 등산객에게 여전히 “머구 하나 사 가소. 간장 부어가 조래기 해 놓으면 맛있심더. 돌냉이는 갈아서 요구르트에 넣어 먹으면 참 맛있다. 요거 이천 원. 산나물은 데쳐가지고 버물려 먹으면 맛있심더.”라며 나물 선전에 한창이다. 그러면서 “이 할매가 통도사 신도다. 절에 많이 다닌다.”며 심상희(80) 할머니를 소개한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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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의 세거 성씨.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으로 광주군에 봉해진 안방걸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판사공 안몽득의 손자 안우(安宇)가 입향하여 형성된 봉사공파이다.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大將軍)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광주의 어떤 사람이 지방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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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에 있었던 자동차용 시트 생산 업체. 1982년 6월 20일 광진직물을 설립하고 1989년 5월 23일 주식회사 광진을 설립하였다. 1993년 5월 광진직물에서 광진공업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99년 2월 6일 회사 통폐합 후 광진산업으로 법인을 전환하였다. 2001년 4월 벤처기업으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8월 광진기술연구소를 건립하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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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교동(校洞)이라는 마을 이름은 1397년(태조 6)에 향교가 양산에 건립된 후 여러 차례 옮겨져 오다 1828년(순조 28)에 현 위치에 건립되면서 향교가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1807년(순조 7)까지는 양산군 서면(西面)에 속하였고 곡포리(曲浦里)로 불렸다. 1807년부터 1936년까지는 양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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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해서 ‘교동마을’이라고 칭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1807년(순조 7)까지는 양산군 서면에 속하여 곡포리(曲浦里)·별양곡리(別良谷里)·유산리(由山里)·어곡리(魚谷里)로 형성되었다. 1807~1936년까지는 양산군 상서면에 속하여 곡포리가 교동리와 회현리(會賢里)로, 별양곡리는 양동리로 개칭되었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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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는 일이다. 교육은 역사 발전에 따라 그 전개 양상을 달리해 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최초의 고대 국가인 고조선시대로부터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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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교육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단체. 교육기관은 교육 사업이나 교육 관계 종사자의 연수·보건·권리·후생 등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체이다. 구체적인 것은 법률로 정해져 있으나 좁은 의미로는 학교를 말하며 넓은 의미로는 교육 행정 기관도 포함된다. 경상남도 양산시의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과 같은 유아 교육기관,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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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주요 도로, 교통 수단 및 관련 시설. 양산시는 동남부에 위치한 내륙 도시로서 북쪽으로는 울산광역시와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밀양시·김해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와 인접한 지역이다. 1. 도로 교통 고속국도 1호선[경부고속국도], 고속국도 551호선(양산~구포 간)을 비롯하여 국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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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신평 지역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설립되었다. 1956년 3월 19일 서금숙의 집에서 한의룡 장로를 비롯한 6명의 신자들이 첫 예배를 보면서 시작되었으며 신평교회로 설립되었다. 같은 해 교회 설립과 함께 편노범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1958년 12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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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춘추공원에 있던 조선 후기 재실 터. 충렬사가 국명으로 철폐될 때 재실(齋室)로 바뀌었다. 1877년(고종 14)에 양산군수 이만도(李晩燾)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학자 김상효(金相孝)의 시문집 『경재유고(敬齋遺稿)』의 잡저 중에 양사재에 관해 기록된 「양산현학양사재기(梁山縣學養士齋記)」를 보면 선비를 양성하는 방법과 제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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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조선 후기 구룡당 천유의 영정. 「구룡당 천유 영정」은 세로 126㎝, 가로 85.5㎝ 크기의 액자형 영정이다. 승려 천유는 19세기 초기 통도사 불화 「화기」에 홍명 궤관, 우계 염일과 함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1818년(순조 18) 「극락암 신중탱」에 헌사(軒事) 비구로, 1821년 「극락암 아미타후불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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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지라 천변 영산신씨(靈山辛氏)의 재사인 삼강사 앞에 위치해 있다. 옛날 지라천(旨羅川)에 큰 소(沼)가 있었는데, 그 소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살았던 신용권(辛容權)이 부친 신도일(辛道日)의 유상처(遊賞處)로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구룡대라고 이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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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병풍. 「구룡도육곡병풍(九龍圖六曲屛風)」의 재질은 한지 혹은 상지(桑紙)이고, 한 폭의 가로는 63.8㎝, 세로는 122.4㎝이며, 전체 너비는 412.2㎝인 여섯 폭 짜리 병풍이다. 홀수 폭인 1, 3, 5폭에는 용이 한 마리씩 그려져 있고, 짝수 폭인 2, 4, 6폭에는 두 마리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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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병풍. 「구룡도육곡병풍(九龍圖六曲屛風)」의 재질은 한지 혹은 상지(桑紙)이고, 한 폭의 가로는 63.8㎝, 세로는 122.4㎝이며, 전체 너비는 412.2㎝인 여섯 폭 짜리 병풍이다. 홀수 폭인 1, 3, 5폭에는 용이 한 마리씩 그려져 있고, 짝수 폭인 2, 4, 6폭에는 두 마리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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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구소석마을에서 매해 음력 3월 3일에 마을 수호신에게 베푸는 민속 의례. 구소석마을의 당산나무는 앞 당산나무와 뒷 당산나무 두 그루이며 앞 당산나무 옆에는 돌무더기가 있고, 뒷 당산나무 옆에는 산신 제단이 있다. 당산나무에 대한 신앙심이 대단하여 음력 3월 초순과 7월 그믐에 마을 주민들이 당산나무 주위를 깨끗이 청소한다. 평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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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구전에 의하면 1,500년 전 신라시대에는 소석마을이라고 불렸으나, 일제시대 동산 관계 소송으로 인하여 마을이 분리되어 구소석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의 장제마을 및 제리당마을이 소석마을로 되었다고 한다. 구소석마을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한때 남양리라고도 불렸다. 광복 이후에는 위천마을과 한 마을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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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호는 구암(龜庵).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안우(安宇)의 손자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성을 떠나 피난을 가자, 두 아들 안시명(安諟命)·안이명(安以命)과 조카 안신명(安信命), 사촌 안도수(安導琇)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병사를 모집하여 양산을 지켰다. 구포산과 금정산에서 왜적을 베었고, 양산시 동면 석산리의 은동석굴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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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었던 나루. 원래는 구읍포(仇邑浦)로 불렀다. 양산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 터로 낙동강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수운의 요지였다. 그러나 내륙 수송이 발달하고 잦은 홍수로 수로가 바뀌자 차차 쇠퇴하였다. ‘굽개’는 ‘굽은 개’로 강의 형태가 여러 번 꺾어지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즉, 양산천은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시살등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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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내원사 입구에 있는 세 비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한『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1869년(고종 6)에 당시 양산군 소속이던 구포면이 동래군에 탈속되게 되었다. 양산군민들이 양산군으로 환속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사림 우석규·서상로·이기수 세 사람이 직접 한양에 가서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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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었던 나루. 원래는 구읍포(仇邑浦)로 불렀다. 양산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 터로 낙동강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수운의 요지였다. 그러나 내륙 수송이 발달하고 잦은 홍수로 수로가 바뀌자 차차 쇠퇴하였다. ‘굽개’는 ‘굽은 개’로 강의 형태가 여러 번 꺾어지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즉, 양산천은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시살등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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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해서 ‘교동마을’이라고 칭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1807년(순조 7)까지는 양산군 서면에 속하여 곡포리(曲浦里)·별양곡리(別良谷里)·유산리(由山里)·어곡리(魚谷里)로 형성되었다. 1807~1936년까지는 양산군 상서면에 속하여 곡포리가 교동리와 회현리(會賢里)로, 별양곡리는 양동리로 개칭되었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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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 대저도에 설치한 둔전(屯田). 둔전은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설치해 군량에 충당한 토지이다. 고려 시대에 처음으로 설치했는데, 농사도 짓고 전쟁도 수행한다는 취지 아래 부근의 한광지(閑曠地)를 개간·경작하여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하였다. 이로써 군량 운반의 수고를 덜고 국방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조선 초기에 국방 문제가 제기되고 그에 따른 군자(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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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서 하북면 순지리 구간을 통과하는 일반 국도. 국도 35호선은 전국 30개 남북 노선 가운데 하나로, 부산광역시 북구~울산광역시 언양읍~경상북도 경주시~봉화군~강원도 태백시~정선군~강릉시까지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도로로서 태백산맥의 산간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도로 연장은 총 421.1㎞이다. 우리나라 일반 국도 번호의 경우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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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서 하북면 순지리 구간을 통과하는 일반 국도. 국도 35호선은 전국 30개 남북 노선 가운데 하나로, 부산광역시 북구~울산광역시 언양읍~경상북도 경주시~봉화군~강원도 태백시~정선군~강릉시까지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도로로서 태백산맥의 산간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도로 연장은 총 421.1㎞이다. 우리나라 일반 국도 번호의 경우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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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서 주남동 구간을 통과하는 일반 국도. 국도 7호선은 전국 30개 남북 노선 가운데 하나로,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경상남도·경상북도, 강원도를 거쳐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까지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도로로서 동해안의 저평지를 따라 개설되어 있다. 도로 연장은 총 513.4㎞이다. 국도 7호선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통행은 불가능하지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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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서 주남동 구간을 통과하는 일반 국도. 국도 7호선은 전국 30개 남북 노선 가운데 하나로,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경상남도·경상북도, 강원도를 거쳐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까지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도로로서 동해안의 저평지를 따라 개설되어 있다. 도로 연장은 총 513.4㎞이다. 국도 7호선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통행은 불가능하지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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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에 전해오는 한글 글자 풀이에 관한 민요. 한글의 음소를 외우기 위하여 하던 노래로, 특히 아녀자들이 수시로 부르면서 한글을 익혔던 노래이다. 1991년에 이소라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 배봉림의 창을 채록하였다. 하나의 한글 음소의 이름을 부른 뒤 그 음소를 가진 단어를 부르는 형식이다. 기역니은 디글 리을/ 기역자에다 집을 지아/ 지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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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김수로왕(金首露王)의 49세손 김관(金管)[1250~1348]은 자가 희범(希範), 호가 정성헌(靖醒軒)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고려 말의 문신이다. 김관의 5세손 김극일의 여섯 아들에 와서 문중은 다시 6개의 지파(支派)로 나뉘어졌다.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는 중시조 김관의 9세손이고 녹사공의 4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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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양산지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양산지사는 지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 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양산시민의 건강을 향상하고 사회 보장 증진을 목적으로 ‘국민건강보험법’ 및 ‘동법’ 시행령에 규정된 사업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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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국빈(國賓),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박중미(朴中美)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박주한(朴柱漢)이고, 할아버지는 박동석(朴東奭)이다. 박정빈은 창원부사 외에도 현감·영장·방어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금정산성을 축조한 공으로 길이 잘 든 말을 하사받았다. 금정산성은 경상도관찰사 조태동이 1702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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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마을 신당. 국사당의 발생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구전되어 오는 것을 종합해 보면 원시 신앙의 구심점인 천신 신앙에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정에 국사를 모셔 놓고 지역 수호신으로 섬기고, 호랑이로부터의 환난을 막을 수 있도록 석마를 모시기도 했는데 서리 국사당에는 석마를 모셔 호환을 막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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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양산향교 앞 비석군에 있는 양산군수 송태림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송태림(宋台霖)이 1840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하여 백성들의 근심을 덜어주고 편안하게 살게 한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의지를 담아 비석을 세웠다. 양산향교 앞 양쪽 비석군 가운데 오른쪽 비석군의 뒷줄, 정문 담장으로부터 일곱 번째에 놓여 있다. 비두 없이 비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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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양산향교 앞 비석군에 있는 양산군수 이휘정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1860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한 이휘정(李彙廷)이 청렴하고 총명하여 장학 사업을 최우선으로 하고, 세금을 적게 받아 피폐한 양산을 살기 좋게 만든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양산향교 앞 양쪽 비석군 가운데 오른쪽 비석군의 뒷줄, 정문 담장으로부터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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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양주에 속했던 옛 지명. 하곡현은 원래 굴아화촌이었는데, 후에 신라가 점령한 후에 굴아화현으로 바꾸었다. 이 지역은 신라 경주로 들어가는 동남쪽 관문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외적으로부터 경주를 보호해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신라가 전국을 9주로 재편하였을 때 굴아화현이 하곡현(河曲縣)으로 바뀌어 양주에 속했다. 하곡현은 태화강을 끼고 있어 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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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었던 나루. 원래는 구읍포(仇邑浦)로 불렀다. 양산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 터로 낙동강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수운의 요지였다. 그러나 내륙 수송이 발달하고 잦은 홍수로 수로가 바뀌자 차차 쇠퇴하였다. ‘굽개’는 ‘굽은 개’로 강의 형태가 여러 번 꺾어지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즉, 양산천은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시살등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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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있는 조선 후기 권돈인(權敦仁)의 영세불망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권돈인이 수군절도사 윤영배(尹永培), 군수 오하철(吳夏哲)과 양산을 방문하여 여러 잡역들을 없애준 은덕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두 없이 비신과 비좌로 이루어져 있고, 비신은 상부가 둥글게 마름질된 원수(圓首) 형태이다. 비석의 재질은 백색 화강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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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산군수를 지낸 인물.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일보(一甫), 호는 강좌(江左). 권벌(權橃)의 6세손이다. 권만은 일찍부터 박학하고 문장에 능하여 이른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1747년(영조 23)에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당시 양산은 오봉산(五封山)[하북의 영축산, 상부의 천성산·석장산, 물금의 어곡산, 원동의 내포산] 설치로 여러 가지 폐단을 겪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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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순부(順富), 호는 죽우(竹友). 별좌(別坐)의 관직을 역임하였던 권경의(權敬義)의 후손이다. 권순도는 양산 출신의 인물로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다. 음직(蔭職)으로 주사(主事) 승승훈랑(陞承訓郞)에 올라 문묘(文廟)의 직원(直員)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과 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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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본 센슈[專修]대학 법과에 재학 중이던 1942년을 전후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의 주장은 일본은 반드시 패망할 것이므로 일본이 패전하여 혼란기에 봉착했을 때 봉기하여 독립을 완수하자는 것이었다. 궐기한 민중을 지휘하여 방화·진화·방해·교통 노선 파괴·식량 창고 소각 등의 세부 계획 등을 설정해 놓고 활동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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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여성 운동가. 권은해는 1903년에 지주였지만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부친 권상중(權商重)과 모친 강처일(姜處一) 사이에서 1남 2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권은해의 아버지는 개인 재산으로 기장의 사립 학교인 보명학교와 명정의숙을 설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여 지역의 인재 양성 교육에 기여하였고, 지역의 유지, 지주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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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 서병희 의병부대는 박동의 의병부대에서 독립한 부대로, 양산 등 경상남도 전역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일본 수비 대원, 관공서, 일본 상인, 친일파 등을 공격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중에서 권중옥은 서병희 의병부대가 이동을 할 때 길을 인도하는 등 향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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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군수를 역임한 문신. 권중은은 1906년(순종 즉위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에 양산 최초의 근대학교인 양성학교(養成學校)를 설립하였다. 양성학교는 권중은이 전경무관(前警務官) 전태준(全泰準)과 일본 헌병대장 마쯔오[松尾]로부터 의연금을 받아내고, 이 의연금을 바탕으로 전의관(前醫官) 최현근(崔現根), 정지모(鄭智謀), 사인(舍人) 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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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양산향교 앞에 있는 조선 말기 양산군수 권중은(權重殷)의 치적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1906년 양산군수로 부임한 권중은이 첫해부터 교화에 힘써 민속이 검소해졌고, 봉급을 덜어 학문을 장려하였으며, 세금을 감해주는 등 백성의 피폐함을 구해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비를 세웠다. 양산향교 앞 양쪽 비석군 가운데 오른쪽 비석군의 앞줄, 정문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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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순종 1) 유진룡이 서당 귀복재의 기문을 짓고 나서 유순영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따라 문화유씨(文化柳氏) 칠현을 모신 칠현사가 훼철되고 이곳에 딸린 강당도 철거됨에 따라 문화유씨 문중에서 1907년(순종 1)에 칠현사가 있던 자리의 동쪽 기슭에 서당을 세웠다. 그런데 서당이 있는 곳의 지형이 마치 거북이 엎드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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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명박홍남(朴弘楠)의 재실. 고령(高靈) 김성도(金聲燾)가 지은 「귀후재기」에는 우풍현(虞風縣)의 명곡촌(椧谷村)에 우뚝 솟은 정사가 있는데, 이것이 선무공신(宣武功臣) 훈련원 봉사 박홍남의 묘소 아래 재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후손 김장식(金長植), 김명수(金明守), 김정건(金正鍵) 등이 여러 친족들과 조상의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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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초명은 규열(奎烈), 자는 남서(南瑞), 호는 매촌(梅村). 조선 중기의 인물인 고암(顧庵) 정윤희(丁胤禧)의 후손이다. 정임교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강을 건너 묘지를 살피러 가는데, 얼어붙은 얼음이 저절로 녹아 배로 건너갈 수 있게 된 기이한 일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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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있는 윤활유·그리스 제조 업체. 1979년 12월에 부산시 감전동에서 세창산업을 설립하였다가, 1985년 1월에 극동유화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5월에 현재 위치에 공장을 설립, 이전하였다. 1990년 12월 유동파라핀 생산 설비를 확장하였고, 1996년 9월 양산 북정공장을 건립하였으며, 2000년 1월부터 방수용 시트 사업을 시작하였다. 윤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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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4년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창건된 사찰. 극락암은 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다. 현재 이 사찰에 선원(禪院)을 설치하였는데, 극락호국선원이라고 한다. 극락암은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창건했으며, 창건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1758년(영조 34)에 지홍대사(智弘大師)가 중건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서 1980년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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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백련암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통도사 극락암의 시주자 명단 기록. 만일회기(萬日會忌)란 만일염불결사(萬日念佛結社)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일만일(一萬日)을 기한으로 잡고 행한다고 하여 만일회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결사를 시작할 때는 염불 수행을 위하여 별도로 전답을 마련하고 재정을 충실히 한 뒤에 행해진다. 따라서 「만일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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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한국군은 북한군에 의해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려나게 되어, 결사항전지역으로 맞붙었던 곳이 바로 낙동강 전선이었다. 양산은 낙동강 하구에 해당되는 지역이므로 이곳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전쟁이라고 하면 서로 총을 겨누며 살생만 한다고 생각하여 군인들의 희생만 언급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민간인에게도 큰 피해를 주게 된다. 그래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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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소속 지사. 근로복지공단 양산지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과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복귀 촉진을 위한 보험시설의 설치·운영, 그리고 재해예방 기타 근로자의 복지증진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경상남도 양산시·김해시·밀양시 등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다.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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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일명(一名)은 근윤(根允), 자는 문익(文益), 호는 송정(松亭). 조선 전기에 『고려사』, 『세조실록』, 『예종실록』 등의 편찬에 참여한 문양공(文襄公) 양성지(梁誠之)의 후손이다. 양재근은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경상남도관찰부주사(慶尙南道觀察府主事)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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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었던 초중등 단계의 사설 교육기관. 서당은 조선시대 서민 자제의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원형은 고려시대부터 설립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변화하면서 발전하였으나 현존하는 서당은 없다. 교육 내용은 글의 뜻을 익히는 강독, 글을 짓는 제술, 서체를 익히는 습자의 세 가지였다. 서당의 인적 구성은 스승인 훈장, 학도 중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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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금강산 풍경을 읊은 민요. 1991년 이소라가 유만종이 젊은 시절 북한에서 들었던 노래를 재연한 것을 채록하였다. 풍경을 좇아가며 사진을 나열하듯 묘사하고 있다. 중간쯤에서 창부타령 곡풍으로 변한다. 금강산이 좋을씨고/ 금강산이 좋을씨고/ 동해 끼고 솟은 산이/ 일만이천 봉우리를/ 구름같이 솟았으니/ 천하명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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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불교 경전. 『금강경(金剛經)』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을 줄여서 부르는 것으로 중국 후진 때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번역한 경전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에는 부처님이 사위국(舍衛國)에서 십대(十代) 제자 중 한 사람인 수보리(須菩提)로부터 주(住)·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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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80년(고종 17) 통도사 백련암에서 간행된 불교 경전.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 사상 확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법화경』의 주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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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산리는 금산리(琴山里)·금진(琴津)·금호(琴湖) 등으로 불려져 왔다. 금정산 장군봉에서 뻗어 내려 하단 부에 산맥을 좌우로 하여 금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좌우에 냉정천과 고천천의 두 개울이 흘러 마을이 형성된 부분에 용추폭포와 금호폭포가 있어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폭포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고요한 밤이면 거문고 소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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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있는 수령 200년의 팽나무.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양산시를 비롯하여 경상남도에 흔하게 자생하는 데, 정자나무 또는 노거수가 많다. 높이는 20m에 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타이완·중국 남부·베트남·태국 등지에 분포한다. 마을 부근 및 낮은 산과 하천 주위의 비옥한 저습지에서 자생한다. 뿌리가 발달하여 강풍과 해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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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산의 옛 이름은 금산리(琴山里)·금진(琴津)·금호(琴湖) 등이었다. 1914년 이전까지만 해도 금산리(琴山里)·금산동(琴山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거문고 ‘금(琴)’자가 붙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금정산 장군봉에서 뻗어 내린 산맥을 좌우로 금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좌우에 냉정천과 고천천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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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에 있는 약사가 없이 일반 의약품을 판매하는 약방. 약방의 역사적 유래를 보면 약방이란 명칭은 오늘날의 약방 의미보다는 약업을 관장하는 관청으로서 존재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전의감(典醫監) 소속 내약방(內藥房)이 있었고, 내약방은 임금이 쓰는 약재를 관장하던 관청이었다. 내약방은 내의원(內醫院)의 전신으로 약방(藥房)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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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나주정씨 재실. 나주정씨(羅州丁氏) 고암공파(顧菴公派)의 36대 정지태(丁志泰)부터 40대까지의 선조를 모시는 재실이다. 「금수재기(金水齋記)」를 통해 살펴보면, 나주정씨 41대 정용섭(丁龍燮)의 자는 해룡(海龍)이고, 호는 춘전(春田)이며 조상의 유업을 받들어 이곳에서 살았다. 시대의 변천과 종교, 사상의 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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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조선시대 나주임씨 재실. 금영재는 나주임씨(羅州林氏) 김해문중이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조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재실이다. 임비(林庇)는 고려 충렬왕 때의 대장군 충청도지휘사판사재시사(忠淸道指揮使判司宰寺事)이고, 임비의 9대손 임탁(林卓)은 벼슬이 봉순대부해남감무(奉順大夫海南監務)에 이르렀다. 현관 입구에는 ‘경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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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 있는 김녕김씨 재실. 김녕김씨 문중의 중시조인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15세손인 이용(利用) 김국기(金國夔)는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이거, 김녕김씨 양산 입향조가 되었다. 금원재는 김국기를 추모하는 재사다. 남양산 IC를 나와 양산시 동면 방향으로 우회전한 후 400m 정도 가면 석산해강이 보이는데 그 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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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화폐의 수요와 공급 관계. 금융이란 일반적으로는 자금의 융통, 화폐의 대차(貸借)를, 구체적으로는 대부증권에 의한 자금의 대부나 참가증권(參加證券)에 의한 자금의 출자를 말한다. 이러한 금융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은 중앙 은행인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일반 은행과 특수 은행 등 은행 금융 기관과 투자 금융 회사, 종합 금융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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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통화 수급을 중개하는 기관. 금융 기관은 예금 취급 기관과 기타 금융 기관으로 구분된다. 예금 취급 기관은 다시 은행과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으로, 기타 금융 기관은 보험 회사 및 연금 기금, 기타 금융 중개 기관(증권 회사, 여신 전문 기관 등), 금융 보조 기관(증권 선물 거래소, 브로커, 환전소, 보증 기관 등)으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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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서 어린아이를 재우면서 부르는 노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 도륜대에서 김말엽(남, 당시 75세)의 창을 1991년 이소라가 채록하였다. "금자동아 은자동아 둥둥 내사령아"로 시작하여, "은자동아 금자동아 어서어서 잠들어라"로 이어지고 있다. ‘~동아’로 반복되다가, 이후에는 ‘~거라’라는 부탁의 요사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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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과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걸쳐 있는 산. 금정(金井)은 금빛의 샘 즉, 암상금정(巖上金井)에서 비롯되어 금정산이란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명봉이 고유어로 쇠울이 즉, 금정으로 해석되므로 금정산의 어원이 계명봉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신라시대 최치원의 『당법장화성전』에 의하면,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한 신라 화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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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북정동 금조총은 사적 제93호인 양산 북정리 고분군 내에 있는 소형 무덤이다. 양산 북정리 고분군은 양산IC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으며,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동편 북정리 주택단지의 동부아파트 뒷구릉에 위치한다. 북정동 금조총은 능선 정상부에 분포한 대형 고분 중의 하나인 부부총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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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다방동 금촌마을에서 매해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당산신에 베푸는 민속 제의. 금촌 당산신의 신체는 당산나무이며 당산할배라 칭했다. 구전에 의하면 당산제는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내왔다고 한다. 그러나 약 20년 전부터 무당을 청해 당산신을 천도하는 당굿을 거행하면서부터 당산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 당산나무는 당산신에게 더 이상 제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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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다방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촌(金村)’이란 마을 이름은 이 마을 앞산에서 쇠가 났다고 하여 쇠 ‘금[金]’자를 따서 ‘금촌(金村)’이라 하였다. 금촌마을은 양산읍 다방동(多芳洞)에 속해 있다가 1946년 다방동의 행정리인 다방마을에서 분동되었다. 외다방·바깥다방·쇠마을·새마을이라고도 한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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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안이씨 사당. 연안이씨(延安李氏) 중시조(中始祖) 판소부감공(判小府監公) 이현려(李賢呂)의 15세손인 금호공(琴湖公) 이수생(李秀生)의 향사를 봉행하기 위하여 1810년(순조 10) 연안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지하철 호포역에서 내려 양산 방면으로 300m 올라간 후 우회전하여 양산시 동면 방향으로 1㎞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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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달성(達成). 초명은 기륜(紀倫)이고, 자는 덕행(德行).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서중룡(徐仲龍)이며, 서정태의 아들은 영조 때에 가선대부를 제수 받은 서효기(徐孝基)이다. 서정태에 관련한 이야기는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효자조에 수록되어 있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났으며, 수오(睡獒) 서석린(徐錫麟)의 문인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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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는 남평문씨 재실. 기산재는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1층의 기단을 쌓았다. 재청은 강당 형식이며 마당은 자갈로 조성되어 있고 왼쪽에는 비가 3기 있다. 경모비, 공덕비, 추모비가 있으며, 뒤편에는 단을 쌓아 남평문씨 가족 묘소를 있다. 대문 앞에는 애국지사(문시한)의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다. 「기산재서(基山齋序)」의 확인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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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기여(琪汝).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 정언룡(鄭彦龍)의 후손이다. 정창수는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격일로 오한이 일어나는 학질에 걸렸는데 “이 병에는 사람고기가 제일 좋다.”는 의원의 말을 듣고 단(壇)을 쌓고 하늘에 기도하고 나서, 몰래 방에 들어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미음과 섞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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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비를 기원하며 용신이나 산신에게 베푸는 민속제의. 기우제는 비를 기원하며 민간신앙적 대상에게 제의를 베풀거나 주술적 방식에 의거해 비를 강구하는 주술의례이다. 양산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기우제는 우불산신사에서 베푸는 기우제와 가야진사에서 베푸는 용신제를 들 수 있다. 우불산신사와 가야진사는 기우제의 제터로 그 영험함이 일찍부터 전해지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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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지역에서 기온·비·눈·바람 등 대기의 종합 상태. 한반도의 동남단에 위치하는 데다 겨울 기간 찬 북서풍을 막아주는 영축산맥이 북북동에서 남남서로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어 기온은 대체로 온화하다. 강수량 또한 남해안 다우지역에 인접하고 있어 우리나라 기후 구분상 이른바 남해안형에 속한다. 그러나 내륙의 산간 분지 지방이어서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기후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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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40~70㎝이며, 둘레는 1~3㎝이다. 줄기는 곧추서고, 뿌리는 타원 모양이며 수염뿌리가 있다. 2~3개의 잎이 달린다. 잎은 줄 모양이며 길이가 10~20㎝, 너비는 3~6㎜이지만 점점 작아져서 꽃턱잎과 연결된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며 꽃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위쪽의 꽃받침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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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40~70㎝이며, 둘레는 1~3㎝이다. 줄기는 곧추서고, 뿌리는 타원 모양이며 수염뿌리가 있다. 2~3개의 잎이 달린다. 잎은 줄 모양이며 길이가 10~20㎝, 너비는 3~6㎜이지만 점점 작아져서 꽃턱잎과 연결된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며 꽃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위쪽의 꽃받침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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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전후에 대한청년단을 이끈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인물.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서룡리 신주마을에서 태어난 김갑조는 6·25전쟁을 전후하여 공비들의 출몰이 심해지자 의용경찰(대한청년단 전투대)에 앞장서 향토 방위에 힘쓰는 한편 공비 토벌 작전에도 참가하였다. 1951년 봄, 김갑조는 기습해 온 공비 몇 명을 기지로 유인, 생포하여 원동 지서에 인계하였다. 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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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울 유학생 도진호로부터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학생 강재호 등과 함께 1만 매를 인쇄하여 전국적으로 배포할 때 김경환은 경상북도 선산·상주 지역에서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이에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였다. 그러다 박장호 휘하에서 번시후[本溪湖] 총관으로 임명을 받아 활동하였다. 그 후 지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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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익장(益章), 호는 송암(松庵). 사육신의 한 명인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다. 선조인 김문기가 1731년(영조 7)에 복관되었고 1791년(정조 15) 정조가 규장각과 홍문관에 명하여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編定)할 때 삼중신(三重臣:민신·조극관·김문기)의 한 사람으로 선정된 것이 배경이 되어 김광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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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승려. 양산 통도사 주지, 명성학교 설립자, 원종 총무원 인사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동아불교회 회원으로서, 통도사의 군자 의연금을 독자적으로 출연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김구하는 자신의 논 19.8348m²을 처분하여 안창호의 밀사에게 5,000원, 백초월에게 2,000원, 월정사 이종욱에게 3,000원, 독립운동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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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봉은 1919년 9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각지의 부자들에게서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동시에 한쪽 면에는 태극기와 ‘독립 기념’이라 새기고 다른 한쪽 면에는 ‘민국 원년’이라 새긴 50전짜리 은메달을 건네는 대가로 군자금을 모집하던 김두현(金斗鉉)·김두옥(金斗玉)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였다. 또한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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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2년 김시학·성상호 등과 공모하여 1932년 5월 1일 노동절을 기해 부산 시내 노동자를 선동하여 시위를 감행하기로 한 뒤, 1932년 4월 27일 부산불교학원 내에 있는 등사판을 절취하고 격문 300장을 등사하여 부산 지역에 살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1932년 8월 1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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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행정 관료. 청도김씨(淸道金氏) 29세손으로, 1932년 3월 양산시 남부동에서 출생하여 양산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진주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45년 광복 후 학제 변경시에 경남고등학교로 전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1953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2학년 재학시 고등고시 행정과 제3부(외교행정)에 합격하였고 2년 뒤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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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별명은 두전(枓全)·두희(枓熙)이고 국적은 북한이다. 김약수는 휘문의숙, 경성공업학교와 니혼[日本]대학 사회과를 졸업하였다. 1918년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가 진링[金陵]대학에 입학하였다. 1920년 귀국하여 한국 최초의 노동 운동 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상무간사를 맡았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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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별명은 두전(枓全)·두희(枓熙)이고 국적은 북한이다. 김약수는 휘문의숙, 경성공업학교와 니혼[日本]대학 사회과를 졸업하였다. 1918년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가 진링[金陵]대학에 입학하였다. 1920년 귀국하여 한국 최초의 노동 운동 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상무간사를 맡았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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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김득인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기로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부친 시묘(侍墓)시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나 적병이 그 행의를 보고 효성에 감복하여 해채(海菜)와 미곡을 보내준 일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문달(聞達)되어 복호(復戶)를 받고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졌다. 정려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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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김려택은 양산 지역 웅촌(현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살았다.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할 때 호랑이와 개, 쥐 등 세 가지 동물이 김려택의 효성에 감동하여 도와주었다고 한다. 김려택의 효행과 관련한 소문이 널리 알려져, 사후에 나라에서 호조좌랑의 벼슬을 내리고 정려를 세워주었다고 한다. 현재 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동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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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말복은 조국의 광복에 헌신하고자 신학문을 배우며 항일 민족 의식을 키웠고, 불교에 귀의하였다. 통도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한용운(韓龍雲)의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사』 및 『님의 침묵』 등의 저서를 읽었고,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전수학교를 거쳐 1936년 동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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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산(梁山). 자는 정고(貞固). 할아버지는 김연(金衍), 아버지는 김지(金贄), 아들은 김덕부(金德符)이다. 김맹은 성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인으로 활동하였다. 1001년(성종 20) 흥료(興遼)가 거란을 배반하자 거란이 사신을 보내 고려의 구원을 청하였을 때 곽원이 왕에게 “압록강 동쪽 가에 있는 거란의 성(保障)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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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무력의 이름 표기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구형왕의 둘째아들 무력(茂力)으로 되어 있다. 구형왕의 셋째아들 무력(武力)으로 표기된 『삼국사기』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삼국유사』 김유신조에는 호력(虎力)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고려 혜종의 이름인 무(武) 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단양적성비에는 ‘사탁부(沙啄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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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9월경 중앙학림을 졸업하고 『혁신공보』를 발행하다가, 의용승군·대동단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민오로부터 대동단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동지 10여 명과 함께 활동하였다. 1919년 10월 1일 대동단으로부터 경부선·연변 제2차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라는 위임장과 함께 『독립신문』 7부, 경고문 5부, 인민 봉기 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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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범어사 승려로서 김법린, 김상헌 등과 함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다시 범어사로 돌아와서 3월 18일 범어사 만세 운동을 하다가 검거되어 1919년 4월 2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감형되어 1920년 1월 29일에 출옥하였다.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로 전향하였는데, 일명 김일성으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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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기(金相琦)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날 당시 범어사 지방학림의 학생이었다. 당시 범어사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명정학교(明正學校)와 중등학교 과정의 지방학림(地方學林)이 있었다. 한편 서울에서 거족적인 3·1운동이 계획되면서 불교계의 민족 대표 한용운이 양산에 내려와서, 주지 오성월(吳星月) 등과 만나 독립 만세 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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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 당시 범어사 지방 학림 학생으로서, 한용운의 밀지를 받아 통도사에 내려온 오택언과 함께 신평 만세 운동을 모의하였으나, 3월 7일 밀고로 인해 오택언이 압송당했다. 하지만 김상문은 예정대로 3월 13일 신평 장날 하북면 줄다리기 대회를 빙자하여 신평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때 함께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진옥은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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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군인. 김해김씨 수로왕 69대손으로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3월 영천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경남중학교와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2월 건국대를 졸업하였다. 1950년 11월 25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8사단 10연대장을 거쳐 1972년 1월 1일 육군 준장으로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33사단장 재임시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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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자는 인언(仁彦), 호는 초정(樵亭). 할아버지는 김종렴(金宗濂)이다. 김상영은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이후 복시(覆試)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평소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선사재(選士齋)에 거처하며 동학들과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수양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거상(居喪) 3년에 행실이 소박하기가 한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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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8년 불교학교인 중앙학림(中央學林) 학생으로서 민족 사상 고취 및 불교 연구를 목적으로 한 유심회를 조직하여 신상완(申尙玩)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김법린, 정병헌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유심회는 같은 해 11월 한용운의 지도를 받으면서 민족 운동 단체로 발전되었다. 1919년 2월 말에 한용운의 지시로 상경하여 「독립선언문」을 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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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삼국사기』김유신전과는 달리『삼국유사』가락국기조에 인용된 문무왕의 제서(制書)에는 김서현이 구형왕의 손자인 솔우공(率友公)의 아들 서운 잡간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김유신비」에는 김소연(金逍衍)으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본관은 김해(金海). 할아버지는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며, 아버지는 김무력이다. 부인은 신라 왕족인 숙흘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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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 서병희 의병부대 3초십장 정한수의 대원으로서, 경상남도 일대를 무대로 크게 활약하였다. 서병희 의병장은 1907년 음력 11월 허위의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임진강 유역에서 활동한 후 허위의 밀지에 따라 1907년 음력 12월 28일 해산군 51명을 인솔하여 경상남도로 잠입하였다. 또한 경주군 산내면의 윤정의와 제휴하여 울산군 복안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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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세호(金世鎬)와 손상일(孫相馹)의 선정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1869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김세호(金世鎬)와 1870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한 손상일(孫相馹)이 각각 6년과 3년의 치세 동안 외적을 물리치고 오랜 폐단을 없애는 등 선정을 베풀어 그 혜택이 승려들에게까지 미친 것을 통도사의 승려들이 영원히 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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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말복은 조국의 광복에 헌신하고자 신학문을 배우며 항일 민족 의식을 키웠고, 불교에 귀의하였다. 통도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한용운(韓龍雲)의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사』 및 『님의 침묵』 등의 저서를 읽었고,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전수학교를 거쳐 1936년 동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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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부. 박씨는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시명(金時鳴)의 처(妻)이다. 박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섬긴 것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이 들어 맛있는 버섯을 먹고 싶어 하였지만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뒤뜰의 뽕나무에 버섯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채취하여 드렸다. 버섯을 따면 그 자리에 또 다시 돋아나곤 하여 시부모님이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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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남북국시대 양주·강주·한주 태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유신의 현손이고 김윤중의 손자이다. 김암은 어릴 때부터 총명, 민첩하고 술법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젊어서는 이찬(伊飡)이 되어 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고 하는데, 틈을 내어 음양가(陰陽家)의 스승을 찾아가서 술법(術法)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매우 총명했기 때문에 하나를 들으면 세 가지를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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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별명은 두전(枓全)·두희(枓熙)이고 국적은 북한이다. 김약수는 휘문의숙, 경성공업학교와 니혼[日本]대학 사회과를 졸업하였다. 1918년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가 진링[金陵]대학에 입학하였다. 1920년 귀국하여 한국 최초의 노동 운동 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상무간사를 맡았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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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범어사로 출가하여 지방학림을 졸업하였다. 이후 불교 전문 강원을 다니면서 서울에서의 3·1운동에 범어사 대표로 김법린, 김상헌, 차상명, 김상기, 김한기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범어사 만세 운동 때 주동자로 체포되었다가 연행 중 차상명과 탈출하였다. 다음날 다시 만세 의거에 참여한 후 동래경찰서에서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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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가. 김영병은 1952년 동아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한국해외개발공사 전무이사를 지냈다. 1966년 경제담당 무임소장관의 경제담당 보좌관(차관급)을 맡았고, 1968년 민주공화당의장 보좌역과 민주공화당 훈련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제7대 민주공화당 김해지구 당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71년 제8대 국회의원(김해, 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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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字)는 성보(聖甫), 호(號)는 만취당(晩翠堂).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아들로 수문장(守門將) 김을생(金乙生)과 부장(部將) 김의상(金義祥)을 두었다. 김영호는 조선 중기 양산 지역 출신의 사람으로 임진왜란 당시 두 아들 김을생·김의상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선무원종(宣武原從) 1등공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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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익포(翼浦). 아들 김서생(金瑞生)은 문과에 올라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옥은 조선 후기 인조 때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인물이다. 부모에게 효성이 극진하였고 학문을 성심으로 닦아서, 효자와 박학다식한 인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양덕현령(陽德縣令)에 재임중 정사를 의롭게 다스린 공로로 나라에서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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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2년 양산군 동면 석산리에서 태어난 김외득은 서울 보성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1930년 3월 만세 시위 운동을 펼쳤다. 이 사건으로 구류 15일을 선고받고 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귀향하여 1931년 4월에 조직된 양산농민조합에 가입, 소년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양산농민조합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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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양주방어사를 지낸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서현(金舒玄)의 후손이다. 김원현은 『고려사』에 1044년(정종 10) 진사 을과에 합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산군수인 이만도가 찬한 비명에 의하면 문종 때 양주방어사에 임명되었을 때 왜적이 군선 190여 척을 이끌고 삼차강(三叉江)에서 양산으로 진격하자, 김원현은 전투복을 갖추고 힘써 싸워 많은 적을 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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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0년 진주농림학교 2학년 재학 중 기숙사 학생 48명으로 구성된 토론 연구회의 회장을 맡아 3·1운동 당시의 진주 읍민과 진주농림학교 학생들의 활약과 항일 독립 사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1920년 5월 29일 동급생 문위동(文渭東), 신영안(申英安) 등과 모의하여 제2차 진주 독립 만세 운동을 1920년 8월 30일 천장절(天長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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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규(金麟圭)가 동래중학교 5학년이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부산 제2상업학교 및 동래중학교의 학생 1,000여 명이 참가했는데, 일본인 심판진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일본인 학교가 우승을 차지하자 분노가 폭발하여 당시 금지곡이었던 「아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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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호족. 양산(옛 양주)은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9주 5소경의 하나가 되어 지방 지배의 거점 역할을 하였다. 신라 말기 사회적 혼란을 틈타 각 지역에서 호족세력이 등장하였으며, 양산에는 김인훈이 중심이 된 군소호족세력이 등장하였다. 김인훈은 903년 양주(良州) 수(帥)로 있을 때 다른 세력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하자 궁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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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범어사 승려로서 김법린, 김상헌 등과 함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다시 범어사로 돌아와서 3월 18일 범어사 만세 운동을 하다가 검거되어 1919년 4월 2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감형되어 1920년 1월 29일에 출옥하였다.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로 전향하였는데, 일명 김일성으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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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8년 3월 23일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4월 4일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의 소년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3월 16일 구속된 양산농민조합의 간부를 탈옥시키기 위해,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의 주동자 전병건(全秉健)의 지령에 따라 300여 명의 조합원을 동원하여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검거되었다. 193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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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준여(俊如), 호는 둔재(鈍齋). 제숙공(齊潚公) 김곤(金稇)의 후손이다. 형은 고종 대에 무과에 합격하여 영장(營將)을 지내고 장수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의 품계를 받은 김재현(金載鉉)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중형(仲兄) 김재현을 부모처럼 섬기며 학문을 연마하였다. 1872년(고종 9) 흉년이 들자 사재를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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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정여(鼎如), 호는 암서(巖棲). 제숙공(薺肅公) 김곤(金梱)의 후손이다. 집안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일찍부터 학문이 깊었다.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였다. 고종(高宗)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조선시대 각 진영의 으뜸 장수인 영장(營將)으로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수직(壽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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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순경(舜卿), 호는 몽천(蒙泉), 삼옥당(三玉堂).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며, 김재연(金在衍)의 동생이다. 학문에 힘써 성리학의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에 밝았다. 유정재(柳定齋)의 문인(文人)이다. 양산(陽山) 조충식(趙忠植), 동계(東溪) 한긍인(韓兢人), 성재(性齋) 허전(許傳)이 『몽천재운(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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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김정해는 부모가 돌아가시자 6년 상을 치렀다. 남들은 3년 상도 잘 치르지 않는데 여기에 3년을 더하였으니 그 어려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원래 3년 상을 치르게 되어 있는 부모상을 6년이나 치렀으니, 이러한 행동 또한 예에 어긋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은 김정해의 효성이 남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양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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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대한독립단에서 함경도로 특파된 박경구 등과 함께 함경남도·함경북도를 한 구역으로 하는 대한청년단 연합회 함경도 의용대를 조직하여, 연락·군자금 모금·단원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1년 2월 7일 공갈 혐의와 출판법 위반으로 함흥경찰서에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12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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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본관은 김녕. 세례명은 시몬.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의공(忠毅公)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24세손이다. 부인은 지씨(池氏)이고, 아들은 김형조(金炯祚)이다. 김종권의 직계 후손들은 김해, 부산, 서울 등지로 흩어져 현재까지 신앙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김종권은 양산군 동면 금산리(현 양산시 동면 금산리) 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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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서울에서의 3·1운동에 참여한 오택언(吳澤彦)이 한용운의 밀지에 따라 3월 5일 「독립선언서」를 지닌 채 통도사에 도착하여 승려·유림 등과 함께 거사를 모의하여, 3월 13일 신평 장터에서 장꾼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때 김진옥은 김상문(金祥文)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약하다가 검거되어 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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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철수의 호는 청제(淸齊)이다. 기장초등학교 등을 거쳐 1913년 부산 제2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7월 일본 게이오[慶應]대학에 입학하여 유학생 모임인 재 동경 한국학생학우회에 가입하였고, 『학지광(學之光)』 발간에 참여하였다. 1919년 동경에서의 2·8독립선언에 대표위원 최팔용, 백관수, 김도연, 윤창석, 서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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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승려. 양산 통도사 주지, 명성학교 설립자, 원종 총무원 인사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동아불교회 회원으로서, 통도사의 군자 의연금을 독자적으로 출연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김구하는 자신의 논 19.8348m²을 처분하여 안창호의 밀사에게 5,000원, 백초월에게 2,000원, 월정사 이종욱에게 3,000원, 독립운동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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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어머니가 눈병을 앓다 시력을 잃어 오랫동안 회복하지 못하자 온갖 약을 쓰고 정성을 다하여 북두칠성에게 제사를 지냈더니, 어머니의 눈이 갑자기 밝아졌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효성에 감천(感天)하였다”라고 말하였다. 경상도에서 김칠득(金七得)의 효행을 조정에 알려 조세와 부역을 면제받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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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1년에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에 최달수(崔達守) 등의 권유로 소년부에 가입하였다. 1932년 3월 15일 양산경찰서에서 ‘소작료 4할 결의’를 하였다는 이유로 조합원 간부 17명을 구류 처분하자, 전병건(全秉健)의 지시에 따라 16일 조합원 300여 명이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였다. 김태근도 주동자 김장호(金章浩) 등과 함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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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활동한 국회의원. 김택수는 1926년 9월 10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하였다. 1946년 경남고등학교, 195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경남수직공업주식회사 전무, 경상남도 체육회 회장, 경일중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제3공화국 출범 당시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1963년 김해 지역에서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당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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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를 시조로 하고 김치하와 김경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가락국(駕洛國)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수로왕의 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는 양산의 세거 성씨이다. 김해김씨는 신라 김씨의 알지계(閼智系)[경주김씨]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어 명문거족으로 번성하여 왔다. 중시조 김유신의 후대에서 가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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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응오(應五), 호는 송강(松崗).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다. 효성과 우애가 뛰어나 마을 사람들이 공경하여 우러러보았다. 무덤 옆에 오두막집을 짓고 시묘를 하였다. 조선 철종(哲宗) 때 충훈부·중추부·의금부에 속하여 벼슬아치의 감찰 및 규탄을 맡아 보던 종5품 벼슬인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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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기는 1919년 1월부터 재경성 의학전문학교 대표들과 함께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박희도(朴熙道)로부터 독립운동을 위한 학생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이에 김형기는 각급 학교 대표들과의 모임을 통하여 학생들의 결속을 공고히 하였다. 2월에는 민족 대표 중 한 사람인 이갑성에게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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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군인. 김현택은 1928년 출생하였으며, 부산해동중학교를 졸업한 뒤 1949년 3월에 부산수산대학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이던 1950년에는 육군에 입대하여 1950년 12월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72년 육군 대령으로서 육군화학기지창 창장을, 1974년에는 육군화학학교 교장을 지냈다. 1974년에는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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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신평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토기.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토기 중에서 외형이 심발형(深鉢形)을 이루는 토기는 여러 종류가 제작되었다. 보통 초기 심발형 토기 중에서 구연부 하단에 구멍이 있거나 각목이 있는 토기는 공렬형(孔列形) 토기 또는 구순각목(口脣刻目) 토기로 부르거나 발형(鉢形) 토기로 통칭된다. 그러나 엄밀히 정의하면, 심발형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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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과에 속한 새. 몸길이 약 45㎝, 부리 2.9~3.9㎝, 날개 18.6~22.1㎝, 꼬리 19.7~26.4㎝, 부척(跗蹠: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의 부분) 4.7~5.5㎝, 몸무게 190~287g이다.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더 길다.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은 흰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주색 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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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두해살이풀. 높이는 50~100㎝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전체에 털이 없으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뿌리잎은 14~40㎝이며, 너비는 5~30㎜이다. 꽃이 필 때 쓰러지거나 남아 있으며 양 끝은 좁은 피침 모양이고 양면에 털이 없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줄기잎은 길이가 7~14㎝, 너비가 4~10㎜이며 마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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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전해오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에 관련된 민요. 창자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이소라가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채록하였다. 꼬부랑 할머니의 행동을 서사적 구조로 노래하였다. 꼬구랑 할머니가 꼬구랑 짝지를 짚고/ 꼬구랑 길을 가다가 꼬구랑 산에 올라가서/ 꼬구랑 똥을 누니 꼬구랑 강생이가 와서/ 꼬부랑 똥을 먹다가 꼬부랑 짝지로/ 꼬부랑 할머니가 때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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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이다. 높이는 60~120㎝, 둘레는 5~12㎜이다. 줄기 전체에 털이 없고 때로는 가지가 갈라진다. 뿌리줄기는 갈색섬유로 덮여 있으며 갈라진다. 잎은 길이 20~60㎝, 너비 5~12㎜이며 주맥이 뚜렷하다. 꽃은 6~7월에 원줄기 또는 가지 끝에 달리며 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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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서식하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이다. 높이는 60~120㎝, 둘레는 5~12㎜이다. 줄기 전체에 털이 없고 때로는 가지가 갈라진다. 뿌리줄기는 갈색섬유로 덮여 있으며 갈라진다. 잎은 길이 20~60㎝, 너비 5~12㎜이며 주맥이 뚜렷하다. 꽃은 6~7월에 원줄기 또는 가지 끝에 달리며 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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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전해오는 꿩을 의인화하여 부르는 노래. 1991년에 이소라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 김말엽(1916년생, 남)의 창을 채록하였다. ‘묵지마소’가 한 단락마다 반복되면서 꿩에게 경계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묵지마소 묵지마소/ 어짓밤 꿈을 꾸니/ 묵지마소 묵지마소/ 그콩을 왜 묵구로 하노/ 기집년이 요망하먼/ 도장에 범이든다/ 배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