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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광석동의 자연마을인 둔터골에서 모내기와 김매기 때 활동했던 공동 노동 조직. 시흥 지역의 논은 크게 방죽논과 물논으로 나눌 수 있다. 방죽논은 바닷가의 방죽을 막아서 물을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논이며, 물논은 빗물에 의지한 천수답(天水畓)을 말한다. 방죽논은 주로 은행동, 미산동, 광석동, 도창동, 매화동, 하상동 등의 호조벌 일대와 장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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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민과 노동자들의 다양한 문화. 다문화는 '많을 다(多)' 자에 '문화(文化)'라는 말이 붙어 '여러 나라의 생활양식'이라는 뜻이다. 다문화 사회는 한 국가나 한 사회 속에 다른 인종·민족·계급 등 여러 집단이 지닌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사회를 말한다. 다문화주의는 민족마다 다른 다양한 문화나 언어를 단일의 문화나 언어로 동화시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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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서 문화 류씨가 5대째 거주하고 있는 전통 가옥. 류종환 가옥은 시흥시 군자동 가옥 중에서도 부농(富農) 가옥에 속한다. 안채의 상량문을 통해 1925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고, 바깥채에는 상량문이 없으나 안채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지역의 집을 많이 지었던 목수 차선일이 지었다. 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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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소 주인이 우시장에 왕래할 때 소를 먹이고 식사를 하며 머무는 집. 시흥 지역에는 우시장이 컸던 뱀내장 주변과 뱀내장으로 가는 길목의 금이동 거멀에 마방이 있었다. 거멀에서 뱀내장까지 소를 끌고 가면 한 시간 반 거리였다고 한다. 뱀내장 주변에는 서씨·노씨·안씨·박씨가 운영하는 마방 네 곳이 있었는데, 소 20마리가 묵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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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농사 규모가 큰 집에서 품삯을 받고 일을 해 주는 고용 일꾼. 머슴은 보통 일 년 단위로 고용되는 '머슴'과 두어 달 정도만 고용되는 ‘달머슴’의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논 한 섬지기 이상 농사를 짓는 집에서 보통 머슴을 한 명 고용했으며, 농사 규모가 커지면 두 명에서 세 명까지 고용하기도 했다. 조사에 따르면 시흥 지역에서 머슴을 고용했던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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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집을 짓는 과정 중 마룻대를 올릴 때 지내는 고사. 집을 지을 때 건물 골격의 최상부를 종도리 또는 마룻도리, 마룻대라고도 한다.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종도리를 얹는 것을 상량(上樑)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내는 의례를 상량고사라고 한다. 상량을 하는 것은 집의 골격이 완성되어 내부 공사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동안의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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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성행했던 우시장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소 주인 대신 소를 흥정하여 적정한 가격에 팔아 주는 일. 시흥 지역에서 소의 매매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우시장은 뱀내장과 삼거리장 두 곳이 있었다. 뱀내장은 지금의 시흥시 신천동에 있었던 옛 장터이다. 소래농협 본점 건너 파출소가 있는 곳이었으나, 길을 넓히는 바람에 원래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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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주민들이 광복 이후 군자염전과 소래염전 등에서 유출된 소금을 사서 인근 지역에 팔았던 일. 광복 이후 몇 년 동안 시흥 지역 주민들 상당수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나 경기도 안양시·광명시·과천시 등지로 소금을 팔러 다녔다. 이 시기 시흥 주민들이 소금 장사를 활발히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과 1936년에 각각 군자염전과 소래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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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농촌 마을에서 소가 논이나 밭을 가는 일을 하도록 가르치고 다루는 일. 전통 사회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소가 필요하였다. 특히 논이나 밭을 갈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가 필요한데 일반적으로 앞니가 빠지기 전의 생후 2개월 된 중송아지 때부터 일을 가르쳤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시흥 지역 대부분의 농촌 마을에서는 거주 호수의 1/5 정도만 소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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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시화국가산업단지와 정왕동 주거단지 사이에 조성된 완충녹지 공간. 시흥시는 1989년 시로 승격되면서 안산시와 함께 서울의 공업 기능을 분담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 서해안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시흥~안산 간 고속도로 등의 완공으로 시흥 지역과 서울 간의 교통로가 확충되면서 시화 지구 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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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 설립된 택시 운수 회사. 양지교통은 1993년 6월 1일 시흥시 은행동에 설립된 택시 운수 회사로 이명재 사장은 자신이 태어난 양지편마을의 이름을 따서 회사명을 ‘양지교통’이라 지었다. 설립 초에는 30대의 택시와 75명의 기사로 시작하였으나, 매년 증차를 거듭하여 2001년에는 78대의 택시와 200여 명의 기사가 근무하게 되었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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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의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에서 소금을 채취·저장·운반하는 등의 염전 노동을 했던 사람. 시흥 지역의 염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자본으로 개발되었다. 군자염전은 1924년 오이도와 정왕동 일대 해안가를 중심으로, 소래염전은 1936년 월곶동·장곡동·방산동·포동 일대에 형성되었다. 시흥의 염전 개발은 시흥의 마을 생성과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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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과림저수지 근처에 있던 흑연을 추출하던 작은 광산. 오류광산은 흑연을 채취할 목적으로 1910년경에 개장되었으며, 광산에서 채취한 흑연은 주로 쇠를 녹이는 데 쓰이는 도가니를 만들 때 사용되었다. 오류광산은 1910년경에 처음 개장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인에 의해 다시 채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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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관내 오이도와 정왕동 부근의 어업권과 어획물 관리 및 집산을 위한 어업인 단체. 오이도어촌계는 오이도와 정왕동 부근의 어업권과 어획물 관리 및 집산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오이도어촌계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송도어업조합 소속이었다가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 옹진수산업협동조합에 속하게 되었다. 1970년대 말 오이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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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갖지 않으면서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시화지구 개발 사업의 진행으로 경제 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시흥시의 인구는 청·장년층을 중심으로 증가하였으며 1990년대 들어 외국인 산업 연수생 및 노동자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다. 1989년 26명뿐이었던 외국인의 수가 2004년 1만 2320명으로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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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관내 월곶 앞바다의 어업권과 어획물 관리 및 집산을 위한 어업인 단체. 1997년 어민들이 결집하여 구성되었고, 2001년 시흥시청의 인가와 옹진수산업협동조합[옹진수협]의 인증을 받아 월곶어촌계가 설립되었다. 다양한 어선으로 여러 가지 어물을 잡았지만 인근 어촌계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 않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규모가 커졌다. 택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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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서 칠기 공예 장인 오평숙이 운영하는 공방. 옻칠 공예는 옻을 입혀 여러 가지 기물이나 장식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공예이다. 하나의 칠기 공예품이 완성되어 나오기까지는 약 15~20여 차례의 공정을 거쳐야 할 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으뜸칠기공방은 이러한 전통 칠기 기법을 그대로 계승하여 실생활에 유용한 칠기 제품을 만들고 있다. 전통 칠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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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흉년 또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빌려준 곡식의 절반 이상을 한 해 이자로 받는 것. 장리쌀은 흉년 또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풍년이나 추수기에 돌려받는 조선시대 구휼(救恤) 제도인 환곡(還穀)에서 비롯되었다. 환곡이 처음에는 곤궁한 농민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였으나, 곡식을 갚을 때 이자를 붙이기 시작하다가 부패한 관리들이 빌려준 곡식의 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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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서 1900년대 건립되어 현재까지 보존되었거나 폐쇄 혹은 철거된 가옥. 2000년대 초반까지의 보고에 의하면 시흥시에는 여덟 채의 전통 가옥이 조사되었다. 이들 가옥은 당시 시흥에 존재했던 전통 가옥들에 비해 건립 시기, 가옥의 형태와 구조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평가를 받은 가옥으로 그중 일부는 경기도 인정 종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흥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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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거주하는 청주 한씨 문익공파의 종택. 영동고속도로 군자 요금소 우측에 있는 동보아파트 뒤쪽 논길로 들어가 가장 모퉁이에 있다. 청주 한씨(淸州韓氏) 문익공파(文翼公派)의 종택(宗宅)은 예전에는 99칸 규모의 대저택이었으나 가세가 이울어 지금의 소유자 한걸택의 조부 대에 이르러서는 이 집만 남았다고 한다. 안채는 한걸택의 조부가 지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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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 한홍석이 거주하였던 전통 가옥. 경기도 시흥시 금오로 327번길 22[과림동 635]에 있었던 전통 가옥으로 1945년 건립되어 2000년대 초까지 한홍석이 거주하였다. 한홍석 가옥이 있었던 과림동은 예전에 과일나무가 많아 목과동(木果洞)이라고 불렀으며 모갈마을이라고도 부른다. 경기도 건축 문화유산 조사 사업[1999~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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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매화동 새터마을의 강릉 함씨가 거주하고 있는 전통 가옥.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 새터마을에는 함홍식의 7대조 5형제가 입향하였고, 이후 마을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강릉 함씨(江陵咸氏)가 많이 살았다. 이 가옥은 강릉 함씨가 거주하였던 가옥 중 하나로, 이전 가옥주였던 함홍식의 생전 증언으로는 1925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