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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와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산명재와 능선을 함께 하며 하산티[下山峙]로 불렸기 때문에 아랫산명재라고 불린다. 아랫산명재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며,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아랫산명재 북쪽에 산명재와 윗산명재가 있으며, 서쪽은 일음골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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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방한민은 1920년 『조선일보』 창간을 주도했으며, 편집 및 사회부 기자로 재직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제의 잔학성을 폭로 규탄하는 「골수에 맺힌 조선인의 한(恨)」이란 배일(排日) 연재 기사를 게재하였다. 일제의 간섭과 압력으로 조선일보에서 해고를 당하고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정창선(鄭昌先)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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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일대에 서식하는 매과에 속하는 새. 편 날개의 길이는 수컷 30㎝, 암컷 37㎝ 정도로 독수리보다 작다. 암컷과 수컷은 배 쪽이 푸른 잿빛으로 머리꼭대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랫면의 바탕색은 크림색 또는 녹슨 황색이며 잿빛이나 붉게 녹슨 색을 띠지 않는다. 아랫면의 검은색 가로 얼룩무늬는 가늘고 엷은 색이다. 날개의 폭은 넓고 길다. 눈 밑의 검은 무늬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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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과 부적면 아호리를 연결하는 다리. 아호대교는 총 연장이 236.7m이고, 폭은 10m이며, 왕복 2차선의 교량이다. 아호대교는 1981년 국도 1호선 확·포장 공사에 따라 계백교 준공으로 논산시에서 인수, 인계받아 도시계획도로로서 논산천(論山川)을 가로질러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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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논산천의 지류인 아호(阿湖)가 동쪽 벌판에 있는데, 물이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애오랏 또는 아호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적사곡면(赤寺谷面) 주천리(注川里)·평리(平里)·신교리(新橋里)의 일부, 화지산면(花枝山面) 주천리(注川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아호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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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1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예부터 부적면 아호1리에서는 마을 입구 장승 앞에서 장승제를 지내 왔다. 일제강점기 때 장승이 소실된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매년 장승제를 지내며 시화연풍(時和年豐)을 빌고 마을의 단합을 다지고 있다. 장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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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1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예부터 부적면 아호1리에서는 마을 입구 장승 앞에서 장승제를 지내 왔다. 일제강점기 때 장승이 소실된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매년 장승제를 지내며 시화연풍(時和年豐)을 빌고 마을의 단합을 다지고 있다. 장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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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의 큰뜸 마을에 박씨(일명 아호리박씨) 부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부부는 정안수를 떠다 놓고 산신령한테 빌었다. “신령님, 저희에게 자식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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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안동김씨의 시조는 김숙승(金叔承)이다.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이며 공부시랑을 지냈다. 그 뒤 경순왕의 9세손 충열공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하여 후대를 잇고 있다. 안동김씨는 김방경 이후 가문이 번성하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과 손자가 계속 재상의 지위에 올라 고려 후기에 최고 가문의 지위를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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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명옥은 참판 안사묵(安思黙)의 장손으로 출생하였으며, 1886년에 선공감 감역을 지냈다. 1910년 일제로부터 한일합방에 대한 회유책으로 노인은사금(老人恩賜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송병준과 김지수가 각각 영동과 연산에서 이를 거절하고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진향교에서 일본의 악행과 을사오적의 매국행위를 규탄하며 자신도 단식 자결하려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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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심, 호는 죽계(竹溪). 아버지는 안신길(安信吉)이다. 안사묵은 석당 정귀석에게 배웠고, 고매한 학행으로 돈령부봉사로 천거되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오직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효성을 다하여 섬기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1860년(철종 11) 학행과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가 내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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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안홍록(安弘祿)이다. 1629년(인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이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추호도 어김이 없었으며 도학이 높았다. 당시 유림과 은진현감·연산현감이 안신길의 효행을 조정에 알렸고, 조정에서는 효행을 표창하고 이조참판에 추증하였다. 논산시 지산동에 효행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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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고장이라 하여 안심리 또는 안심동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皮堤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상리(九相里)·삼거리(三巨里)·신리(新里)·죽산리(竹山里)·사천리(沙川里)·신기리(新基里)·신화리(莘華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안심리라 하여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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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고장이라 하여 안심리 또는 안심동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皮堤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상리(九相里)·삼거리(三巨里)·신리(新里)·죽산리(竹山里)·사천리(沙川里)·신기리(新基里)·신화리(莘華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안심리라 하여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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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안심정사는 1991년 5월 19일 승려 이법안(李法眼)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었으나 1992년 10월 한국불교 법륜종으로 변경하였다가 다시 한국불교 태고종으로 변경하였다. 2004년부터 서울특별시 강서구 등촌동에 백상선원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안심정사는 주로 불치병과 난치병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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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제향된 종친. 이방의는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서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이다. 형은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아우는 태종 이방원(李芳遠)이다.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키고, 평소에 시사를 말하지 않았다. 1392년 조선이 개창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이방의는 익안대군(益安大君)에 봉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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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안여택의 정려. 안여택(安汝宅, 1691~1783)은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자는 인숙이며, 문성공 안향(安珦)의 17세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모가 살았을 때 효성을 다하였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3년간 시묘하였다고 전한다. 안여택은 어머니가 병환에 있을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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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안여택의 정려. 안여택(安汝宅, 1691~1783)은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자는 인숙이며, 문성공 안향(安珦)의 17세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모가 살았을 때 효성을 다하였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3년간 시묘하였다고 전한다. 안여택은 어머니가 병환에 있을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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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안신길(安信吉)이다. 예학(禮學)의 대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학행으로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어 왕세자를 호위하다 홍문관수찬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생 학문에만 힘을 기울여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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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종운은 백부 안명옥의 유언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명치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으며, 귀국 후 1917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8년 조직이 노출되면서 일본 경찰을 피해 은신생활을 하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상하이[上海]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동지들과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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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안호의(安好義)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고 의리에 강했으며 학문을 즐겼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외직으로 아산현감·정산현감·석성현감을 역임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고 지방 토호들을 엄히 다스려 기강을 바로잡았다. 또한 미신을 타파하는 한편 학교를 부흥시키는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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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安宅)은 글자 뜻 그대로 집안을 평안하게 하는 굿을 말한다. 대개 독경(讀經)을 하는 앉은굿 법사(法師)가 주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부녀자들이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을 위로하고 치성을 드리는 ‘첫무리’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첫무리란 가을걷이를 마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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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安宅)은 글자 뜻 그대로 집안을 평안하게 하는 굿을 말한다. 대개 독경(讀經)을 하는 앉은굿 법사(法師)가 주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부녀자들이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을 위로하고 치성을 드리는 ‘첫무리’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첫무리란 가을걷이를 마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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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벌곡면사무소에서 두마 쪽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왼쪽에 조령1리 안터마을이 나온다. 안터 사지는 안터마을 뒷산 남쪽 계곡 중턱에 있다. 현재 절터는 황폐해지고 잡목만 우거져 있어 정확한 건물의 형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사찰을 지을 때 축조한 1m의 축대석과 자연 초석 형태의 석재가 남아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와 조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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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안치화(安致和)이다. 안홍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사(經史)에 밝았다. 사마시에 급제하여 전주판관·금산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힘썼다. 후에 조정에서 학행(學行)으로 천거하여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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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성규, 호는 규정(規亭). 증조할아버지는 중추부사를 지낸 안여택(安汝宅)이다.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은 증조할아버지 안여택의 효행을 본받아 부모 섬기는 데 평생 변함이 없었다. 효행뿐만 아니라 성품이 온화하고 순박하여 동기 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이웃 간에도 화목하여 남의 모범이 되었다. 품행이 알려져 주민들과 유림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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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과 부적면, 강경읍을 흐르는 논산천 수계에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7~9㎝이다. 머리와 몸통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입은 주둥이 밑에 달려 있으며 밑에서 보면 말굽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는 약간 튀어나와 있다. 눈은 작고 두 눈 사이가 넓으며 머리 중앙보다 약간 앞과 위쪽에 있다. 입은 작고 위턱은 밑으로 길게 늘어뜨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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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달걀을 받기 위해 농가의 닭장 안에 짚으로 만들어 둔 보관용 도구. 통구리라는 말은 통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통가리란 쑥대나 싸리, 뜸 등을 새끼로 엮어 땅에 둥글게 둘러치고 그 안에 감자나 고구마 따위의 곡식을 채워 쌓은 더미를 말한다. 알통구리를 닭의 알을 담아 두는 저장 도구라는 의미에서 알통가리라고도 부른다. 또한 달기(닭) 둥가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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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달걀을 받기 위해 농가의 닭장 안에 짚으로 만들어 둔 보관용 도구. 통구리라는 말은 통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통가리란 쑥대나 싸리, 뜸 등을 새끼로 엮어 땅에 둥글게 둘러치고 그 안에 감자나 고구마 따위의 곡식을 채워 쌓은 더미를 말한다. 알통구리를 닭의 알을 담아 두는 저장 도구라는 의미에서 알통가리라고도 부른다. 또한 달기(닭) 둥가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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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남측 암벽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문. 암각 해조문은 하루 유동인구 10만을 헤아리는 거대 시장이었던 강경 지역의 풍부한 경제력과 임리정(臨履亭), 팔괘정(八卦亭),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대표되는 흥륭(興隆)했던 학문적 분위기가 어우러져 1860년(철종 11) 강경포구에 새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글은 송심두(宋心斗)가 쓰고, 서항순(徐恒淳)·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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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청주양씨 시조.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암곡(巖谷). 양기(楊起)는 중국인으로 원나라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과 중서성정승을 지냈다. 1351년(충정왕 3) 공민왕이 연경에 머무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고려로 돌아갈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고려에 정착하였다. 그 후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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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1492년(성종 23) 이산(尼山) 암천(巖川)에 은거한 무안박씨논산 입향조. 본관은 무안(務安).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 어머니 창녕성씨(昌寧成氏)이다. 어머니 창녕성씨는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성삼문(成三問)의 딸이다. 박증의 아버지 박임경은 1456년 병자사화(丙子士禍)로 장인이 참화를 당하자 그 시신을 김시습(金時習) 등과 수습하여 노량(露梁)에 매장하고 두문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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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증이 낚시를 즐겼던 바위. 박증(朴增)[1461~1517]의 자는 익지(益之), 호는 암천(巖川)이며,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이(朴頤)[1402~1478]이고,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1436~?]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풍채가 빼어나며 대인장자 같다고 하여 기린(麒麟)이라 불렸다. 효심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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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논산천에 서식하는 잉어과 민물고기. 몸길이는 7~9㎝ 정도로 돌마자와 비슷하나 더 가늘고 길다. 몸높이는 낮고 옆으로 약간 납작하고 뒤로 갈수록 더 납작하다. 머리는 약간 크고 배는 납작하여 전체적으로 방망이 모양을 한다. 눈은 머리 위쪽에, 입은 말굽 모양으로 주둥이 아래에 있고 1쌍의 입수염이 있다. 등지느러미는 몸의 중앙보다 약간 앞쪽에 삼각형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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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논산천의 지류인 아호(阿湖)가 동쪽 벌판에 있는데, 물이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애오랏 또는 아호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적사곡면(赤寺谷面) 주천리(注川里)·평리(平里)·신교리(新橋里)의 일부, 화지산면(花枝山面) 주천리(注川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아호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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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똥을 거름으로 쓰기 위해 옮길 때 쓰는 농기구. 주로 봄에 변소에서 삭힌 똥을 바가지로 퍼 똥장군에 담고, 짚으로 된 뚜껑을 닫아 똥지게로 옮긴다. 논이나 밭에 가서 뚜껑을 열고 작은 바가지로 퍼서 뿌린다. 논산 지역에서는 똥장군을 앵병, 얭병이라고도 부른다. 현재는 똥을 거름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똥장군을 사용하지 않는다. 똥장군은 흙으로 구운 옹기단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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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몸길이는 70㎝ 정도의 대형 야행성 맹금류이다. 귀깃이 매우 특이한데, 크기가 칡부엉이의 2배 정도 된다. 겉으로는 암수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보통 수컷보다 암컷이 약간 크다. 깃털은 진한 갈색에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있고 눈은 붉은색이다. 머리꼭대기는 갈색을 띤 검은색이고, 각 깃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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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출신의 시인이자 불교학자. 박희선은 1943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의 고마자와대학 불교학과에서 수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 일본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에서 복무하던 중 일본군을 탈출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46년 정훈, 박용래 등과 시동인지 『동백』을 창간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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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이선익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셔 왔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에 좋다는 약을 백방으로 구해다가 손수 달여 드리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는 10여 년 동안 추운 겨울에는 물고기를 잡아다 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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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들판에 있다 하여 들말 또는 야촌이라 하였다. 마을 모양이 배의 형국이라 하여 마을에 우물을 파면 침몰된다고 우물을 파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하두면(下豆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정리(柯亭里)·두강리(杜江里)의 각 일부, 상두면(上豆面) 육곡리(六谷里)·강청리(江淸里)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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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되어 온 농촌계몽운동 또는 문맹퇴치운동. 야학은 야간에 수업을 하는 비정규적 교육 기관을 말하며 야간에 운영되는 정규적 교육 기관인 야간학교와는 구별된다. 야학은 일제강점기에 크게 발달하였으며 이 시기의 야학은 식민지교육정책에 따른 교육 시설의 부족과 생활의 빈곤으로 정규학교의 취학이 어려운 시기에 민중들에 대한 초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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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들꽃이 많이 핀다 하여 들꽃미 또는 야화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현리(石峴里)를 병합하고 야화리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야화1리와 야화2리, 야화3리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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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붕어는 몸길이 20~43㎝에 이른다.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꼬리자루의 너비는 넓은 편이다. 머리는 짧고 눈은 작다. 콧구멍은 서로 맞붙어 있고 앞 콧구멍은 작다. 주둥이는 짧으며, 입은 작고 입술은 두껍다. 아래턱은 위턱보다 짧으며 편평한 후피습(後皮褶)이 앞 콧구멍의 주위에 솟아올라 있다. 뒷지느러미는 짧고, 등지느러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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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청주양씨 시조.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암곡(巖谷). 양기(楊起)는 중국인으로 원나라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과 중서성정승을 지냈다. 1351년(충정왕 3) 공민왕이 연경에 머무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고려로 돌아갈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고려에 정착하였다. 그 후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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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기하는 구한말에 공주군수를 역임하였으며, 1910년 일제 강점이 시작되자 만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남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교통부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20년에는 광복군사령부 선전부장, 정보국장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에는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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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이성현감(利城縣監) 김극조(金克祧)이다. 김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의 휘하에 들어갔다. 같은 해 여름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고언백(高彦伯)의 막하에 있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李光岳)을 따라 남원에 갔다. 이때 아버지 김극조를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韓德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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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공신 김완의 영정을 모신 사당. 본관이 김해인 김완(金完, 1577~1635)은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복남 휘하에 들어갔다. 이때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막하로 갔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을 따라 남원으로 갔다가 부친을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가 병력을 점검하자 칼로 찔러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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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양반 마을에 여성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향덕(58) 씨가 있다. 그녀는 마을 최초의 여성 이장으로 2008년 2월, 주민의 추천으로 육곡2구 이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부여에서 태어나 지금의 남편을 만난 후 결혼 일 년 만인 1977년에 육곡리에 자리 잡게 되었다. 결혼 당시 남편 이진화(63) 씨는 부여 양조장에서 술을 만드는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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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라 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를 보고, 좌청룡 우백호로서 북서쪽은 높은 지대이고 동남쪽은 낮은 지대여서 수원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므로 거주지로서 신선지라 하여 양지 쪽의 양(陽)자와 산맥의 산(山)자를 따서 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에 사는 단양이씨가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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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라 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를 보고, 좌청룡 우백호로서 북서쪽은 높은 지대이고 동남쪽은 낮은 지대여서 수원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므로 거주지로서 신선지라 하여 양지 쪽의 양(陽)자와 산맥의 산(山)자를 따서 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에 사는 단양이씨가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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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김장생의 서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생전에 관직에 나가는 것보다 연산이나 연산과 가까운 곳에 서재(書齋)를 짓고 문인들과 강학하며 지내는 것을 즐겼다. 양성당은 1602년(선조 35)에 정인홍(鄭仁弘)의 용사(用事)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연산에 내려와 아한정(雅閑亭)의 유지(遺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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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장유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돈암서원의 양성당을 소재로 지은 제영. 양성당(養性堂)은 임진왜란 후 김장생(金長生)이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하였을 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양성당 십영(養性堂 十詠)」이라는 동명의 시가 여러 수 있으나 여기서는 당대의 명문장가인 장유(張維)가 사계 김장생에게 바친 시를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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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김장생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건립된 양성당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는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인 김계휘(金繼輝)가 건립한 경회당(慶會堂)이 있어 당시 문풍(文風)이 크게 진작되었다. 김장생은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한 뒤에, 경회당 인근에 양성당(養性堂)을 세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1634년(인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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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사립학교. 문화운동이 확산되면서 대한제국 이후 교육열은 고조되었으나 학교가 부족하여 만성적인 입학난이 계속되면서 급한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공립보통학교는 입학시험을 통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등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는데, 입학 지원자 가운데 30~40% 정도만 수용할 뿐이었다. 학령아동(學齡兒童) 구제를 위한 강습회 운영도 일시적인 미봉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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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양오(養吾). 아버지는 감역(監役) 박흔(朴訢)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박수진의 아버지 박흔은 1631년(인조 9) 호남에서 양천식(楊天植) 일당이 권대진(權大進)·조철(趙澈) 등과 함께 정한(鄭澣)을 추대하며 반역을 모의하다 사전에 발각된 소위 ‘정한추대사건(鄭澣推戴事件)’ 때 허위로 유포한 기록으로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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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내수는 1860년 8월 22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416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홍주(洪州) 지역의 민종식(閔宗植) 의진(義陣)에 참가하여 국권회복운동에 힘을 쏟았으며, 1916년 7월에는 이내수 자신의 집에서 홍주 의진 출신인 이용규(李容珪)·이만직(李晩稙)·윤병일(尹炳日)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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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여 논산에 정려가 세워진 문신, 의병장.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경(仁卿), 호는 도곡(道谷). 양응춘은 회덕현감을 지내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趙憲)을 따라 청주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이어서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후 이조참의로 증직되었고, 1720년 충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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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8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양응춘에게 내려진 정려. 양응춘은 청주양씨로, 자는 인경(仁卿)이고, 호는 도곡(道谷)이다. 회덕현감을 지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청주성의 탈환전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이어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왜적을 베었으나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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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양홍씨 논산 입향조. 남양홍씨는 홍세구(洪世耇)의 논산 입향 이후 논산 지역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성장했으며, 노당사·초포사 등의 문중사우를 건립하여 매년 제향을 드리는 등 사족으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세구(洪世耇)는 윤증과 함께 어려서는 보인당(輔仁堂)에서, 자라서는 양정재(養正齋)에서 동문수학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선경(善慶),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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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사설 교육기관. 양지서당은 도덕윤리, 인의예지, 효제충신, 인성예절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한문, 서예, 검도 등을 교육함과 동시에 우리의 전통 문화와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청소년의 정신 교육에 선구자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에 양지서당을 개원하였다. 2002년 7월 논산시 연산면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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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매화산(梅花山) 아래 양지 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편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리(馬山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지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고,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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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양지리에 있는 양돈단지. 양지리 양돈단지는 1994년 「농촌근대화촉진법」에 의거해 농림부 지원 사업으로서 정부지원금을 지원받아 건립되었다. 논산시 지역은 육군 제2훈련소 연무대를 비롯한 군부대에서 반입된 음식물 찌꺼기를 사료로 활용하면서 양돈단지가 활발히 형성되었다. 양지리 양돈단지 축사는 총 135동이 있으며, 축사의 총 면적은 약 37,934㎡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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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매화산(梅花山) 아래 양지 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편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리(馬山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지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고,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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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양지 쪽에 있어서 양지편 또는 양촌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촌리(蘆村里)·가정리(柯亭里)·동구리(洞口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 구만리(九萬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촌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양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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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묘비. 양천허씨는 17세의 나이에 당시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천허씨는 이미 김철산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있었던 연산면으로 내려와 아들을 낳고 가문이 번창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양천허씨의 아들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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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설립되어 1950년대까지 충청남도 논산에 있던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양촌감리교회는 1907년 12월 1일 박일래 목사에 의해 인천교회로 설립되었으나 1921년 큰 홍수로 인해 대파되었다. 이후 1947년까지 교역자 없이 김정숙 전도사가 홀로 교회를 지키면서 운영해왔으나,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양촌 지역을 장악한 공산당이 교회를 접수하여 민청회관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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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도평2리에서 생산되는 감식초. 예부터 논산시 양촌면 일대는 대둔산 기슭에 위치하고 논산천이 흐르고 있어 품질 좋은 감의 주산지였다. 양촌감식초는 이곳에서 나는 감을 원료로 재래식 방법으로 발효 숙성시킨 전통식품이다. 양촌면 도평2리에 사는 이봉왕은 감식초 생산 기술을 개발하여 양촌식품이라는 기업을 설립하여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양촌식품은 1994년 농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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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서 생산되는 감을 이용하여 만든 곶감. 양촌면은 지리적으로 북서 계절풍이 강해 통풍이 잘되고 산으로 둘러싸여 먼지가 날리지 않아 깨끗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수령이 30년 이상인 감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껍질을 깎아 건조해야 하는 곶감 생산지로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양촌곶감은 건조할 때 훈증 처리하여 강제 건조하지 않고 자외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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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서 매년 11월에 열리는 곶감축제. 양촌감이 달고 맛있는 이유는 양촌 지역 감나무들의 수령이 최소 30년 이상 된 고목으로서 감의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또한 양촌 지역은 북서계절풍이 강하여 통풍에 유리하고, 산지로 둘러싸여 먼지 등이 날리지 않는 청정한 자연 조건으로 인해 천일건조에 알맞은 지역이다. 양촌면은 양촌곶감의 품질을 인정받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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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의 양촌보통학교 학생들이 단행한 동맹휴학. 양촌보통학교 맹휴사건은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의 양촌보통학교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통해서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발한 학생운동이다. 양촌보통학교는 일제강점 직후에 설립된 양촌면을 대표하는 공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식민지교육의 취지에 부합하는 충량(忠良)한 신민(臣民)을 육성하는 교육에만 혈안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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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양촌인천시장은 1950년 개설되어 5일장으로 이어온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주변 인구가 많지 않아 시장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2000년 이후 교통이 편리해지고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시장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상설시장과 함께 현재도 매월 2일과 7일 등 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고 있다. 양촌인천시장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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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양촌인천시장은 1950년 개설되어 5일장으로 이어온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주변 인구가 많지 않아 시장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2000년 이후 교통이 편리해지고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시장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상설시장과 함께 현재도 매월 2일과 7일 등 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고 있다. 양촌인천시장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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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고 실력 있는 학생, 개성 있는 학의 육성을 교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재미있게 가르치고 신뢰받는 교원, 꿈과 사랑을 가꾸는 행복한 배움터를 지향하고 있다. 교훈은 ‘착하고 슬기롭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생활하자’이다. 1919년 4월 1일 양촌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48년 4월 1일 양촌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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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딸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는 36년의 딸기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국 최대의 딸기 주산지이다. 이 일대는 비옥한 토양과 맑은 물, 풍부한 일조 조건을 갖추고 있어 딸기의 맛과 향, 당도 등이 우수하며,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양촌딸기는 1967년 다나 품종을 도입하여 밭에서 짚 멀칭 노지 재배를 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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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가정자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양촌리 가정자 목신제는 가야곡면 양촌리 입구 둥구나무 앞에서 약 70여 년 전부터 부녀자들이 제(祭)를 주관하여 지내 오고 있다. 양촌리의 가정자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5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둥구나무가 있다. 둘레 각 720㎝와 420㎝인 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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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가정자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양촌리 가정자 목신제는 가야곡면 양촌리 입구 둥구나무 앞에서 약 70여 년 전부터 부녀자들이 제(祭)를 주관하여 지내 오고 있다. 양촌리의 가정자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5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둥구나무가 있다. 둘레 각 720㎝와 420㎝인 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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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양지 쪽에 있어서 양지편 또는 양촌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촌리(蘆村里)·가정리(柯亭里)·동구리(洞口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 구만리(九萬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촌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양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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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내[川]의 양쪽으로 갈라져 있어 양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리(新里)·임하리(林下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고산군 운북면(雲北面)의 하고리(下高里) 일부를 병합하고 양촌리라 하여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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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양량소면의 ‘양(陽)’자와 촌면의 ‘촌(村)’자를 따서 양촌이라고 하였다. 백제시대에는 황등야산군에 속하였다가 신라시대에 황산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연산현에 속하였다가 고려 후기 은산현에 속하게 되었다. 그후 조선시대에는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방축(防築)·신평(新坪)·송정(松亭)·차곡(磋谷)·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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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있던 청년 계몽운동단체. 양촌면 인천청년회는 주민 계몽과 회원 상호간 지식계발을 통한 새로운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자 설립되었다. 1921년 설립된 양촌면 인천청년회의 초기 임원진은 회장 이재호(李在鎬), 부회장 강영식(姜永植), 총무 서기훈(徐琦勳) 등이었으며, 회원은 64명으로 각 동리 유망한 청장년을 망라하였다.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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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양촌면에서 전개된 농민조합운동. 양촌면 적기시위는 1930년대 초반까지 농민조합의 결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논산 지역 양촌면의 지역 활동가들과 지주들에게 예속된 머슴들인 농민노동자들이 합세하여 농민조합의 일종인 머슴계를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개한 혁명적 노동운동이다. 일제강점기 전반의 논산 지역의 농민운동은 삼남 지역에 비해 비조직적이었으며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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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당산에서 발원하여 양촌리, 임화리를 흘러 논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양촌리를 흐르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2010년 말 현재 양촌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며, 제1지류는 논산천이다. 유로 연장은 3.57㎞이고, 유역 면적은 9.34㎢이다. 양촌천은 논산시 남동부의 남당산(376m)에서 발원한 하천이다. 크게 동쪽과 서쪽의 소하천이 임화리 평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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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다. 함창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申砬)과 함께 충주 탄금대 아래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맞아 악전고투하면서 마지막까지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전사하였다. 묘는 노성면 가곡리에 있다. 당시 양함은 29세로 시신도 거두지 못한 채 장사지냈는데, 이때 나라에서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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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조선 말기 충신 양함의 정려. 양함(1564~1592)은 본관이 남원으로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고, 함창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신립과 함께 충주 탄금대 아래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맞아 최후까지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 양함이 죽은 후 300여 년이 지난 1886년(고종 23)에 명정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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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똥을 거름으로 쓰기 위해 옮길 때 쓰는 농기구. 주로 봄에 변소에서 삭힌 똥을 바가지로 퍼 똥장군에 담고, 짚으로 된 뚜껑을 닫아 똥지게로 옮긴다. 논이나 밭에 가서 뚜껑을 열고 작은 바가지로 퍼서 뿌린다. 논산 지역에서는 똥장군을 앵병, 얭병이라고도 부른다. 현재는 똥을 거름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똥장군을 사용하지 않는다. 똥장군은 흙으로 구운 옹기단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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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골짜기에 길게 늘어져 있다 하여 느락골 또는 어라동·어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풍리(新豊里)·서근야미리(西斤夜味里)·내어곡리(內於谷里)·사삼암리(思三岩里)·외어곡리(外於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어곡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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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방법. 어덕매기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자연을 이용한 고기잡이로 전통적인 ‘어살[漁箭]’ 어법을 내수면 어법으로 변용한 것이다. 어살이란 물고기를 잡는 장치로, 고기가 들도록 물이 드나드는 곳에 싸리·참대·장나무 등을 둘러 꽂아 둔 울타리를 일컫는다. 금강 하구에 속한 강경읍 주변에서는 예전부터 물이 드나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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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시장의 상인회는 연산시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상인회는 2006년에 연산재래시장이 설립되고 상가들이 하나둘씩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되었다. 16개 상점에 24명으로 재래시장에 점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가입이 된다. 시장이 생긴 바로 직후에는 상가의 번영회장이 상인회의 회장직까지 겸해서 일을 처리하였다. 그러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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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골짜기에 길게 늘어져 있다 하여 느락골 또는 어라동·어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풍리(新豊里)·서근야미리(西斤夜味里)·내어곡리(內於谷里)·사삼암리(思三岩里)·외어곡리(外於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어곡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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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 얼개미는 본래 곡식이나 가루 등을 치는 큰 체로서 곡물을 선별할 때 쓰이는 도구이다. 논산 지역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냇가에서 작은 민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였다.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얼개미를 이용하여 냇가에 있는 고기를 떠내는 방식은 가장 원시적이면서 손쉬운 어로 방식의 하나였다.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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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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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8일 아침. 부녀회원들은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고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동계 임원들은 전체 행사의 진행을 위해 분주히 돌아다닌다. 이날은 어버이날이자 주곡리 마을의 노인잔치 날이다. 이제 행사가 1시간 남짓 남았다. 곧 있으면 동네 모든 이들이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일 것이다. 올해에는 부녀회에서 특별히 생선회와 떡을 비롯한 돼지고기, 홍어, 과일 등 많은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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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시화로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 관상용·산울타리용으로 많이 재배하며 4월에 노란꽃이 피는 개나리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는 꽃이기도 하다. 논산 시화(市花)로서의 개나리는 새날을 연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논산시민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높이는 3m 내외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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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탑정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왕건이 남하하여 견훤을 정벌할 때 탑정리에 주둔하여 어린사를 짓고 절 주변에 성을 쌓았다고 하나 일제강점기에 탑정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수몰되었다. 탑정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수몰되어 규모나 크기를 알 수 없다. 지금은 당시 절 안에 있었던 논산 탑정리 석탑만이 저수지 제방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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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작물이나 거름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농기구. 어림이는 삼태기의 일종으로 주로 고구마·감자·토란 등과 같이 크기가 있는 농작물을 담아 가까운 거리로 옮길 때 지게에 짊어지거나 또는 우마차에 실을 때 사용하던 농업용 작업 도구이다. 거름을 담아서 지게에 지거나 논밭에 흩뿌릴 때도 사용하였다. 논산 지역에서는 보통 싸리삼태미라고 불렀다. 1970년대까지 농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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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은골 또는 어은, 어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현리(沙峴里)·송리(三松里)·산소리(山所里)·일음리(日音里)·탄동리(炭洞里)·덕곡리(德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어은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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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은골 또는 어은, 어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현리(沙峴里)·송리(三松里)·산소리(山所里)·일음리(日音里)·탄동리(炭洞里)·덕곡리(德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어은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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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1리에 있는 돌탑. 논산시 연산면 어은1리 일은골로 접어드는 어은지(漁隱池) 북동쪽 끝자락 옆에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길 양쪽에 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기만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은 그냥 ‘탑’이라고 부른다. 어은리 일은골 방사탑은 높이 2.7m, 둘레 3.6m의 둥근 기둥 모양의 돌탑이다. 마을 공동 의례는 없으나, 외지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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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매체를 통하여 여론을 형성하거나 인쇄물을 제작·복제하여 출간하는 일의 총칭. 일반적으로 언론은 담화·토론·연설·연극·방송·음악·영화 등 구두(口頭)를 통한 사상 발표를 말하며, 출판은 문서·서적·도화·사진·신문·잡지·조각 등 문자 및 상형(象形)에 의한 사상 발표를 의미한다. 그러나 두 용어 모두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이나 사상을 외부에 발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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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음성이나 문자의 사회관습적인 체계. 언어란 특정의 계층 또는 지리적 공간의 언어 집단에서 쓰이면서 다른 언어 집단의 언어 체계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한 언어의 변이체이다. 지역 언어란 표준어를 기준으로 한 음운, 어휘, 문법에서 크든 작든 차이가 있는 언어를 뜻한다. 언어학에서는 지리적·사회적으로 분화되어 생겨난 분화체로서 특정 지역이나 특정한 사회 계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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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언효(彦孝). 아버지는 박이현(朴而絢)이다. 박영서는 무과에 급제하여 옥구현감에 창성부사가 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선봉장이 되어 남이흥(南以興), 정충신(鄭忠信) 등과 난을 토벌하다 포로로 잡혔는데, 이괄의 회유에 굴하지 않아 사살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며, 사후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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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 얼개미는 본래 곡식이나 가루 등을 치는 큰 체로서 곡물을 선별할 때 쓰이는 도구이다. 논산 지역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냇가에서 작은 민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였다.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얼개미를 이용하여 냇가에 있는 고기를 떠내는 방식은 가장 원시적이면서 손쉬운 어로 방식의 하나였다.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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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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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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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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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산성리 논산천과 금강에 서식하는 동사리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얼룩동사리는 동사리와 구별하기 어려우며 심하게 납작하지 않은 점과 무늬가 약간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동사리와 구별하지 않는다. 산란기에 ‘구구’ 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구구리라 부르기도 한다. 몸길이는 약 10~15㎝이다. 몸의 앞부분은 단면이 거의 원통형이지만 뒤로 갈수록 옆으로 납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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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김매기를 할 때 부르던 농업노동요. 볏모를 이식하고 나서 활착하게 되면 논에 난 잡풀을 제거하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잡풀 제거 작업을 ‘김맨다’고 하였다. 「얼카산이냐」는 이 김매기를 할 때 부르던 노동요이다. 이소라가 조사·채록하여 2005년에 출간된 『논산시지』에 수록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의 자료는 주민 박명종이 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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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엄창섭은 1892년 12월 12일 전라북도 익산군[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4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전라북도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 강금옥의 권유를 받고 강경에서 이른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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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소설가. 엄흥섭은 1906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서 태어났다. 경남도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습작시대』, 『백웅(白熊)』, 『신시단』 등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1929년 카프(KAPF)에 가담하고 같은 해에 『조선문예』에 「세 거리로」를 발표하였다. 또 이듬해 『조선지광(朝鮮之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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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집안의 재복과 행운을 관장하는 가신의 하나. 업은 다른 가신(家神)과는 달리 흔히 동물의 형상으로 상징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종류는 구렁이업과 족제비업이 가장 흔하지만, 이밖에도 두꺼비업, 인업(人業), 송아지지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업신의 좌정처는 뒤꼍이나 광에 있다고 관념된다. 형태는 특별한 신체(神體)를 모시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만 가정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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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요보호 아동을 위한 보육 시설. 에덴보육원은 「아동복지법」 제1조, 제2조 1항과 2항에 근거하여 18세 미만의 아동 중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양육하기에 부적당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을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3년 11월 12일 재단법인 에덴영아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64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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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논을 매면서 바숨형 논맴소리 뒤에 풍장굿을 쳐가며 부르던 농업노동요. 「쌈 소리」는 농부들이 논을 다 매 갈 무렵, 선소리꾼이 처음에 ‘우-아-아-’ 하고 소리 내는 것을 신호로 에염을 싸 가면서 하던 소리이다. 따라서「쌈 소리」를 논산 지역의 「옹골 소리」처럼 일반적인 「에염 싸는 소리」로도 이해할 수 있다. 2002년에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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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인터넷신문. 엔에스아이뉴스는 급속한 정보 통신 사회에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도하고, 수용자가 원하는 내용을 원하는 시간에 수용할 수 있게 하며, 보급자와 수용자 간 의사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전국 뉴스는 물론 지역 뉴스 및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2005년 9월 8일 설립되었다. 엔에스아이뉴스는 신개념 열린 인터넷 신문을 지향하여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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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 호는 석호(石湖).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세자시강원설서·예조좌랑·병조좌랑을 거쳐 제천현감·춘추관수찬관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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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이다. 여산송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송유익의 선계는 중국의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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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여산송씨 묘역. 여산송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연산면 화악리에 입향하여 연산 지역에서 토착 세력으로서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697호선을 따라 3㎞ 가면 오른쪽으로 국도 1호선과 만난다. 국도 1호선을 따라 3㎞가량 가다가 계백로에서 화악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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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관한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에서는 「神農遺業」(신농유업)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인 농기가 있다. 이 농기의 크기는 가로 240cm, 세로 360cm 정도이며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깃대는 그 높이가 무려 15~17m에 이르렀다고 하니, 당시 농번기마다 들썩였을 두레의 규모를 상상해 볼 만하다. 1906년에 만들어졌다는 바로 이 농기가 다름 아닌 주곡리 마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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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천. 자는 여수(汝粹). 아들은 박영서이다. 박이현은 남명 조식과 덕계 오건에게 경학을 배웠으며, 창애서실을 지어 경전을 연구하고 성정을 도야하였다. 평소 충절의 의기가 높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경상북도 성주와 전라북도 무주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적을 쫓아 대교평에 이르렀다가 치열한 전투 끝에 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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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서 여수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여수란 ‘여우’의 방언으로 강원도·경상남도·전라도·충청도 지방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 고개가 하나 있는데, 이 고개를 여수고개라 한다. 옛날에 이 고개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었고 민가도 드물어 밤에는 혼자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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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제 때 덕은(德恩)이란 고을이 있었던 곳으로. 태봉산을 등지고 뻗어 내려온 야산에 낮은 골짜기 6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백제의 덕은고을이 있던 곳으로 조선 3대 태종 때 은진(恩津)에 속했다가 상두면(上豆面)에 편입되어 여수울·여술·육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두면(下豆面) 야촌리(野村里)의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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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제 때 덕은(德恩)이란 고을이 있었던 곳으로. 태봉산을 등지고 뻗어 내려온 야산에 낮은 골짜기 6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백제의 덕은고을이 있던 곳으로 조선 3대 태종 때 은진(恩津)에 속했다가 상두면(上豆面)에 편입되어 여수울·여술·육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두면(下豆面) 야촌리(野村里)의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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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에서 여우골짜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에 논산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는 평화로운 산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불여우 두 마리가 나타났다. 불여우가 나타나기 시작한 후부터 매일 닭이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중론을 모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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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 김장생의 현손이며, 할아버지는 참판 김익훈(金益勳)이다. 아버지는 김만채(金萬埰)이며, 어머니는 이항(李杭)의 딸이다. 김진상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으며, 1712년(숙종 38)에 정시문과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설서·지평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720년(숙종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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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백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주이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세 파가 있다. 이들 세 파는 이인덕(李仁德)을 시조로 하는 교위공파와 이은백(李殷伯)을 시조로 하고 이규보(李奎報)를 중시조로 하는 문순공파, 이세정(李世貞)을 시조로 하는 경주파이다. 이 세 파의 여주이씨는 다 같이 고려 중기에 경기도 여주에 정착하여 대대로 호장(戶長)·향공진사(鄕貢進士) 등 향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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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주. 자는 여호(汝豪). 청송당(靑松堂) 도응(都膺)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참의 도수례(都守禮)이다. 도진민은 종형과 함께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1년(선조 24)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청북도 옥천에서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듣고 도군민·도호민·도우민 등 형제와 다른 종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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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신종교 단체. 여호와의증인은 천년 왕국 신앙, 성서적 엄격주의 등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독특한 흐름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기독교 종파의 하나로, 공식 이름은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이다. 여호와의증인은 「이사야서」 43장 10절에 기록된 “너희가 바로 나의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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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화(汝和), 호는 기기재(棄棄齋)·묵계(默溪). 광성군(光城君)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하겸(金夏兼)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중과(李仲科)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큰아버지 김용겸(金用兼)에게 입양되었다. 김상연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배웠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6년(숙종 42) 부친상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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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의 변천 과정과 과거의 사실. 현재까지 조사·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에 의하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의 인간 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하여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다. 논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동고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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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로에 세워져 국가가 경영한 여관. 역원에서의 '역'은 전근대시대에 중앙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며, 원은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의 일종이다. 역과 관련되어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논산 지역에서는 남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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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표정리에 있는 매봉의 역적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에 매봉이란 이름의 산이 있다. 산의 모양이 매를 닮은 데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데, 산의 상봉을 중심으로 좌우의 산줄기가 마치 매가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다. 이 매봉의 한쪽 날개 부분을 역적날이라고 한다.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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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곡물의 겉을 싸고 있는 깍지를 두드려 알곡을 빼내는 데 쓰는 농기구. 먼 옛날 보리의 겉껍질을 벗기거나 콩깍지로부터 콩알을 분리할 때 작은 막대기로 두들기던 것이 발전하여 도리깨가 생겨났을 것이다. 탈곡기가 일반화되기 이전까지는 농가에서 직접 도리깨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탈곡기가 일반화되고 농촌의 작물 재배 경향이 벼농사와 특용작물로 재편되면서 보리, 콩, 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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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시화로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 관상용·산울타리용으로 많이 재배하며 4월에 노란꽃이 피는 개나리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는 꽃이기도 하다. 논산 시화(市花)로서의 개나리는 새날을 연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논산시민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높이는 3m 내외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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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연을 날리며 노는 민속놀이. 연날리기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정월의 대표적인 전래놀이이다. 연날리기를 하는 장소는 장애물이 없는 넓은 공터나 제방, 언덕 같은 곳이 안성맞춤이다. 연은 형태와 명칭에 따라 무려 7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주로 방패연·가오리연·꼬리연 등이 사용되었다. 연은 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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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진취적인 자세와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있는 창의인, 예절이 바르고 자주적으로 실천하는 품성을 지닌 도덕인, 이웃을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는 협력인, 튼튼한 몸으로 밝고 아름답게 사는 습성을 지닌 건강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계획하여 실천하고 반성하자’이다. 1975년 11월 24일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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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 있는 2급 관광호텔. 1993년 11월 5일 에버그린관광호텔 건물을 착공하여 1995년 3월 28일 준공하였다. 1995년 7월 5일 개관하였으며 다음 날인 6일 숙박업 허가를 취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에버그린관광호텔은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로 한실·스위트룸·트윈룸 등 50여 개의 객실, 한식당, 커피숍, 사우나, 대형 웨딩홀, 중대형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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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죽본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연무농공단지는 공장입지를 마련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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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공공 도서관. 연무도서관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가야곡면, 은진면 지역의 주민을 위한 정보의 공간 및 생활문화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96년 7월 1일 도서관 건물을 착공하고 1997년 8월 6일 준공하였다. 1998년 4월 3일 정식으로 개관하였으며, 2001년 7월 20일 연무읍장을 도서관장으로 임명하였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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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연무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 지역의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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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서 열리는 전통 재래시장. 연무안심시장은 육군 제2훈련소가 있는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1950년대 훈련소가 세워지면서 군인 가족이 이주해 오자 자연스레 시장이 들어선 뒤 규모가 확대되어 1960년 정식으로 개설되었다. 연무안무시장의 대지면적은 9,542㎡이고, 연면적은 5,891㎡이다. 전체 상점 수는 135개이다. 점포는 98개, 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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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사립 여자중학교. 올바른 국가관과 시대의식을 확립한 학생, 봉사정신과 절제력을 가진 학생, 창조적인 정신과 진취적인 자세를 갖춘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진(眞)·선(善)·미(美)’이다. 1969년 2월 25일 힐째인 초대 이사장이 취임하였으며, 1970년 3월 3일에 순의도여자중학교로 개교하였다. 1973년 3월 19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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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슬기롭게 해결하는 실력 있는 학생, 고운 심성으로 예절을 실천하는 학생, 건강한 몸으로 안전하게 생활하는 학생, 이치를 탐구하고 도전하는 학생, 우리 문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5년 9월 1일에 연무중앙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1965년 9월 7일에 연무중앙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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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공동체 의식과 민주시민 의식을 갖춘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고 도덕성을 지닌 사람, 자기주도적으로 노력하여 실력 있는 사람, 창의적인 학습능력을 지닌 사람, 건강한 심신을 지닌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자율’이다. 1960년 1월 8일 3학급의 황화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60년 4월 9일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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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개성을 추구하는 학생,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9년 4월 20일 연무대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1년 3월 9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연무대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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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 훈련병 양성소. 육군훈련소는 6·25 전쟁 당시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가 훈련장과 병영 시설 등 제반 여건이 미비하고 보급 및 수송에 불편함이 있어, 기본전투 수행 능력을 구비한 보충 병력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1951년 11월 1일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으며, 1960년 4월 1일에는 제2군사령부에 예속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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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 앞에는 연무로터리가 있으며, 연무읍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에 있다. 한편, 천안논산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논산 지역에서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의 역할을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 앞의 연무로터리가 하고 있다.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은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에 매표소가 있다. 2008년 현재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의 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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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실업계 공립 고등학교. 바른 생활 습관을 바탕으로 한 예절 바른 사람, 기초학력을 튼튼히 하는 창의적인 사람, 기술인의 꿈을 키우며 탐구하는 사람, 심신이 건강하고 정서가 풍부한 조화로운 사람,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7년 3월 13일에 연무대중학교와 병설로 연무대공업고등학교가 개교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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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기차역. 연무대역은 1958년 5월 1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역명은 인근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 연무대의 명칭을 따서 지었다. 1963년 11월 5일 1.5㎞에 이르는 군전용선을 개통하였다. 1992년 8월 28일 군전용선 내 역사를 준공하였고, 1994년 12월 24일 성신양회 전용선 영업을 개시하였다. 2002년 12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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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연무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 지역의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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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연무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 지역의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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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에 있는 채운역과 연무읍 안심리 연무역을 잇는 군용 철로. 전체 길이는 약 6.1㎞이며, 논산시 채운면과 연무읍을 가로질러 남동 방향으로 부설되어 있다. 총 공사비는 내자 약 1억 6000만 원과 외자 24만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연 40,420명의 근로자와 2,570명의 교통부 직원 및 군 병력 2개 대대가 동원되었다. 연무선은 육군 제2훈련소(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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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기차역. 연무대역은 1958년 5월 1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역명은 인근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 연무대의 명칭을 따서 지었다. 1963년 11월 5일 1.5㎞에 이르는 군전용선을 개통하였다. 1992년 8월 28일 군전용선 내 역사를 준공하였고, 1994년 12월 24일 성신양회 전용선 영업을 개시하였다. 2002년 12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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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읍. 6·25전쟁이 끝난 후 육군 제2훈련소가 구자곡면 지역에 창설되고, 군인들이 훈련받는 곳이라는 뜻으로 연무대(鍊武臺)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다. 백제와 신라시대 때는 덕은군과 여산군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시율현·피제현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대은진현·공촌면으로 불렸다. 그 후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으로, 서촌(西村)·무동(武洞)·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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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율리에서 배와 도라지, 생강을 넣어 달여 상품화한 배즙. 예부터 배는 한방의 주요 약재로 활용될 만큼 인체에 유익한 과일로 알려져 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배는 맛은 달고 차가우며 무독하고, 즙을 내어 복용하면 좋다고 하였다. 논산시에서는 광석면을 중심으로 소득 작목으로서 신고배를 재배해 왔다. 그동안 품질이 우수한 논산배의 가공 식품화를 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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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귀부석. 연산공원 귀부석은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 낮은 구릉 진입로 입구에 있는데, ‘연산공원’이라고 새긴 비신을 얹고 있다.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는 아닌 듯한데, 본래는 연산공원 일대 관아 터 유적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연산공원 귀부석은 네 발이 구부러져 있고 발톱무늬가 선명하며, 꼬리는 ㄴ자로 꺾여 있다. 전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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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양촌면에 결성되어 활동한 항일 비밀 결사 단체. 1941년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일제는 전시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조선에 대한 인적·물적 수탈을 감행하였다. 인적 수탈로는 이전의 지원병제도를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제로, 1944년에는 징병제로 바꾸어 강행하였으며 물적 수탈로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여 전시에 필요한 물자를 강제 징발하였다. 연산국수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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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연산농공단지는 연산면과 두마면(현 계룡시) 일대의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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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특산 대추. 연산대추는 연산면 인근의 벌곡면, 양촌면, 전라북도 운주면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을 연산에 사들여와 다른 지방에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이름이다. 이후 연산면을 중심으로 대추 거래가 활발해져 전국적인 대추 집산지가 되었고, 이로써 대추 구입을 위해 연산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좋은 품질의 대추는 연산대추’라는 이미지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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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대추 축제. 1965년 전후로 논산 지역의 연산, 벌곡, 양촌에는 아름드리 대추나무가 많이 있어 가을에는 집집마다 대추 따는 소리가 메아리를 울렸고, 또한 그 밑에서 돌을 던져 대추를 따먹고 놀던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수확한 대추는 수레로 운반하여 주로 논산에서 매매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연산의 상인들은 논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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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연산에서 공주 방향 도로를 따라 약 8㎞ 정도 가면 연산면 덕암리에 이른다. 덕암리 고분군은 덕암리 행경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서쪽 방향으로 흘러내린 구릉 남사면의 비교적 경사가 심하게 이루어진 곳에 입지해 있다. 199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대부분 입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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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과 은진면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 폭동 사건. 조선 말기 삼정(三政)의 문란과 지배층의 과중한 착취, 세도정치의 불합리성, 문호개방 이후 급속히 증가한 국가지출 등은 농민에게 2중 3중의 부담을 지웠다. 여기에 더하여 조세의 징수관인 아전(衙前)의 행패 또한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862년(철종 13) 2월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나 삼남 전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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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매년 백중에 열리는 두레먹이. 연산 백중놀이는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지금의 계룡시]를 중심으로 하는 열두 두레의 ‘합두레먹이’로 전승되었던 놀이인데, 1989년 연산면 청동리에서 연산 백중놀이로 새롭게 복원되었다. 이 놀이는 두레먹이[호미씻이]의 특징이 잘 녹아 있는 대동놀이이자 지역 축제의 성격을 띤다. 흔히 두레먹이는 자연 마을 단위로 베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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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대전 방향으로 3㎞쯤 가면 송정리 하송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의 서쪽 산 능선에 있다. 지리적 위치로 보면 계룡산 줄기의 남단에 해당한다. 연산 송정리 마애삼존불 앞 왼쪽에 개태사가 있다. 높이 4.3m, 너비 3.5m의 수직 화강암 벽에 선각한 입상의 삼존불이다. 불상의 높이는 본존불 3.2m, 우협시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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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연산시장(일명 연산장)은 1911년에 개설된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1950~1960년대만 해도 연산면은 물론 인근의 양촌면, 벌곡면, 부적면, 노성면 등에서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대전광역시가 팽창됨에 따라 면세(面勢)가 점차 위축되면서 연산시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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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 관아를 출입하였던 정문.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6㎞쯤 가면 구 연산면소재지 인 연산리가 나온다. 이곳 농촌지도소 연산지소 서쪽에 연산아문이 자리하고 있다. 연산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 양식 2층 목조누각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직사각형의 돌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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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 1908년 논산 지역에는 사립학교가 다수 설립되었는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1908년 6월 연산에서는 민성학교가 처음으로 개교하였다. 뒤이어 동년 7월 18일에는 논산 돈암서원에 연산여명학교가 개교하였다. 이날 입학한 학생은 50여 명이었고, 각종 경비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종중에서 전담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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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극유의 처 의령남씨의 재실. 연산 영사재 뒤쪽 50m 정도 거리의 구릉에 의령남씨의 묘소가 있으며, 묘역에는 묘비·문인석·석등·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상석은 최근의 것이다. 묘비명은 1689년(숙종 15)에 세워진 것으로 호패형이고, 앞면에 ‘유명조선정부인의령남씨지묘(有明朝鮮貞夫人宜寧南氏之墓)’라 새겨져 있다. 연산 영사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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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가치관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합리적 사고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능동적인 사람, 성실한 자세로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자주·진실·노력’이다. 1951년 12월 4일 6학급으로 연산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51년 12월 31일 초대 박창서 교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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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용화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용화사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는 구 개태사지(開泰寺址)에서 출토된 것으로, 처음 발견했을 때 불두가 파손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보수되었다.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높이 110㎝로, 화강암으로 조상하였다. 왼쪽 무릎을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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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개성을 추구하는 학생,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12년 5월 10일 4년제 연산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23년 4월 1일 6년제 연산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1946년 9월 30일에는 백석국민학교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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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 처음 설립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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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대성전.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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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강당.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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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사육하는 꿩과에 속하는 척추동물. 일반적으로 오계는 외형이 닭과 큰 차이가 없으나 머리는 작은 편이며, 볏은 닭과 달리 딸기 모양의 관을 가진 것이 보통이고, 때로는 복관·삼매관·장미관도 눈에 띄는데, 어두운 자색 또는 어두운 붉은색을 띠고 있다. 부리는 청백색 또는 검은색, 얼굴과 몸은 자색 또는 청백색, 눈조리개는 갈색 또는 검은색, 귓볼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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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연산군은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시대에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 또는 황등야군으로 불렸으며, 신라의 삼국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는 황산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연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공주 임내에 병합되기도 했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에는 연산현이 되었으나 164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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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에서 대추와 찹쌀, 참깨 등을 이용하여 만든 한과. 논산시 연산면은 전국 대추 유통의 30%를 차지하는 대추 집산지로, 연산대추는 열매가 크고 실하며 맛이 달다. 대추는 노화를 방지하고 독을 제거하며, 특히 신경 완화 작용으로 긴장을 풀어 주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 705번지[논산평야로820번길 66-8]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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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산현의 소재지여서 읍내리 혹은 연산읍내로 불리다 연산리라 하였다. 본래 연산현 소재지로 현내면이 되어 구아동(舊衙洞)·백애(白厓)·월양대(月陽垈)·일양대(日陽垈)·신암(莘岩)·옥계리(玉溪里)·백림동(栢林洞)·옥전리(玉田里)·중리(中里)의 9개리를 관할하다 1894년(고종 31) 군내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촌리(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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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연산리 석탑은 구연산(舊連山)이라 불리는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석탑은 비교적 밀집된 주택지의 동쪽인 분지형 구릉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연산리 석탑은 높이 3.8m에 4층의 탑신(塔身)을 지닌 화강석으로 꾸민 것인데 약화된 기단(基壇)과 탑신부, 복발(覆鉢: 상륜 등의 노반 위에 있는 발을 엎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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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70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은 문석진(67) 할아버지는 마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2006년부터 시장의 자치부위원장, 연산면 번영회 부회장 등의 요직을 맡고 있으며 연산면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함께 해오고 있다. 마을의 사정은 물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다 알고 있는 연산리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연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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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면. 삼국시대 황산군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된 뒤 연산이란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현내면(縣內面) 지역으로, 황령(黃嶺)·신곡(莘谷)·남촌(南村)·북촌(北村)·신암(莘岩)의 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성면(外城面)의 소계(巢溪)·개정(盖井)·부황(夫皇)·청림(靑林)·중외(中外)·하외(下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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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연산면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면 면민들이 같은 해 4월 7일인 장날을 이용하여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독립만세운동을 말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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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의 가로를 따라서 형성된 촌락. 가촌(街村)은 봉건시대의 주막거리나 저잣거리처럼 가로(街路)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또 상업적 기능이 높다. 산지가 바다에 임한 좁은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는 가도 등에서는 한쪽으로만 형성된 가촌을 많이 볼 수 있다. 토지의 분할은 가도와 직각 방향으로 좁고 길게 한다. 연산면 연산리 가촌이란 명칭은 연산리 주민들에게 널리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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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연산면은 조선시대 연산현 지역으로서, 연산리는 연산현의 행정 업무를 집행하던 관아가 있던 구읍취락이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읍취락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연산현은 은진, 니산, 석성과 함께 충청도 공주진(公州鎭)에 소속되어 있었고, 공주목사 관할 하의 연산현감이 있었다. 연산현은 진산군(현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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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재래시장 에는 분식집, 약초상회, 미용실, 반찬가게, 생선가게, 순대집 등 각기 다른 품목의 16개의 점포가 들어 서 있다. 그 중에서 약초상회와 건강원의 2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정태윤 씨가 연산시장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점포의 사장님이다. 시장에 개점하면서부터 약재 일을 시작한 정태윤 씨는 원래 연산면 송산리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그러나 어려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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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1911년 7월 11일 대전·연산 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7년 7월 18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다. 1977년 11월 1일 특급열차 여객을 취급하였고, 1990년 8월 1일 전산단말기를 설치하였다. 1991년 9월 1일 소화물 취급을 중지하였고, 1999년 11월 26일 역사를 개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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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오계 사육 농장. 오계(烏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가금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오골계는 살, 가죽, 뼈가 어두운 자색(紫色)이며 털은 보통 흰색, 검은색, 붉은 갈색을 띤다. 아시아가 원산지로, 체질이 약하고 산란 수가 적다. 이에 비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나는 우리나라 특산종인 오계는 깃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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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아문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돌계단이 나타난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면 눈앞으로 어느 동네에나 있을법한 공원이 펼쳐진다. 그러나 연산리의 연산시민공원은 이곳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원이다. 연산공원의 계단을 올라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애국지사 농암(濃巖) 곽성진(郭性鎭) 선생 추모비이다. 곽성진 지사는 논산 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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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연산시장(일명 연산장)은 1911년에 개설된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1950~1960년대만 해도 연산면은 물론 인근의 양촌면, 벌곡면, 부적면, 노성면 등에서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대전광역시가 팽창됨에 따라 면세(面勢)가 점차 위축되면서 연산시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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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리 입구는 늘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거린다. 농협을 비롯하여 현대식 마트, 우체국, 버스정류장이 밀집되어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연산재래시장 때문이다. 이곳에는 옛날 장터의 모습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의 편의에 맞추어 16개 점포들이 하나의 공간에 밀집되어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장 입구 앞쪽으로는 예전 연산 장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점상들이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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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동부와 중남부를 흘러 오산리에서 노성천으로 유입되는 하천. 연산면을 흐르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연산천의 하곡은 북남 방향의 상류로부터 연산리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비교적 좁은 직선상의 곡지를 이루며, 이에 따라 비교적 좁은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이에 직각으로 꺾이는 동서 방향의 구간에서는 점차 넓어져서 상류부보다 훨씬 넓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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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각 지리지 읍지들은 형식과 방식에 차이를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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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 터.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로 읍치의 중심인 객사에서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따라서 객사는 수령의 집무청인 동헌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관아 시설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전망 또한 좋은 곳에 자리하였는데, 이 때문에도 관아 안에서는 가장 위압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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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관아 터. 관아(官衙)란 조선시대 읍치에 있던 관청건물을 통칭하며 연산현 관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헌, 국왕의 위패를 모셔 둔 객사, 고을 양반들의 대표자 격인 좌수와 별감이 있는 향청, 아전들이 근무하던 질청, 기생과 노비들이 있는 관노청 등이 있었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연산현지』에 따르면, 연산현 관아에는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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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리가 조선시대에 연산현의 소재지로서 연산의 중심마을이었다는 사실은 현재 연산리에 남아있는 동헌 터와 아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산4리에 위치한 연산공원의 서편자락에 위치한 연산아문(連山衙門)은 1973년 12월 24일에 시도유형문화재 9호로 지정되었으며, 관아건축물로 1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연산아문과 비석군, 건물의 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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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옥거리 앞에 연꽃이 만발한 연못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연정(蓮亭)이라 불렀으며, 이 연정의 서쪽에 마을이 있어서 연서리(蓮西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대조곡면(大鳥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홍문리(弘門里)·북문리(北門里)·용와리(龍臥里)·백양리(栢楊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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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낚싯줄에 여러 개의 바늘을 달아 고기를 잡기 위해 만든 어업용 도구. 주낙은 땅주낙·뜬주낙·선주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땅주낙은 물속의 땅 가까이에서 생식하는 고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뜬주낙은 표층이나 중층에 있는 어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낚시가 수면 아래 적당한 깊이에 있어야 한다. 선주낙은 낚싯줄을 수직으로 늘어뜨렸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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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연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안이씨의 시조는 이무(李茂)로, 본래 당나라 출신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나당연합군 대총관 소정방(蘇定方)의 부장(副將)이 되어 신라에 들어와 백제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신라에 귀화하여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지고 연안을 식읍으로 받아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이무를 시조로 받들어 세계(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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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산하 논산 지역 지부. 한국연예예술인협회 논산지부는 회원 상호간의 친선과 단결을 통하여 회원의 권익 옹호와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연예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9년 1월 29일 회원 20여 명이 모여 한국연예협회 충남남부분실로 설립되었으며 분실장에 송중빈이 선출되었다. 2003년 1월 27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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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리는 삼국시대에는 황산군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연산을 감싸고 있는 천호산의 산세가 계룡산과 대둔산과 연이어져 있기 때문에, ‘연이은 산이다’라는 뜻에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마을 주민들 중에도 이러한 연유에서 연산리라는 이름으로 붙여졌다고 기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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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의례적으로 거행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이란 예부터 전해지는 농경사회의 풍속이며, 매년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慣例)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와 의례를 가리킨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새로운 시작과 더불어 농사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한해의 시작을 조상께 고하고 본격적인 농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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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지역에 연고를 둔 절개 높은 여자를 일컫는 말. 열녀(烈女)는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열녀 중에는 또 ‘마당과부’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조혼(早婚)이 예사였던 시절에 혼례만 치르고 미처 시가(媤家)로 가기 전에 신랑이 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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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산성리의 논산천 수계에 서식하는 잉어과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8~10㎝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고 길게 늘어나 있다. 긴몰개보다 크게 자란다. 주둥이는 다소 둥글고 큰 편이며 입도 매우 크고 입구석이 눈의 앞 끝에 닿는다. 1쌍의 입수염은 참몰개의 입수염보다 짧아서 눈의 반지름보다도 짧다. 옆줄은 몸 양쪽 옆 중앙부를 달리며 앞부분이 배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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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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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상오는 1885년 11월 26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 646번지[항월1길 68]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손필규(孫弼奎), 김태오(金泰午), 이백순(李伯純), 이근옥(李根玉) 등이 주도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논산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강경에서부터 논산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논산읍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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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염성필은 1919년 3월 12일 손필규(孫弼奎), 김태오(金泰午), 이백순(李伯純), 이근옥(李根玉) 등이 주도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논산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강경에서부터 논산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논산읍내에 이르러 시위대가 1,000여 명으로 불어나자 일본 경찰은 실탄을 발사하는 등 무력 진압에 나섰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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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의 재실. 염수재는 유학자 김장생(1548~1631)을 모신 사당의 앞면에 있는 재실이다. 염수재의 건축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염수재 정문에 걸린 김재경 정려의 연대가 1864년(고종 1)인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염수재 뒤쪽으로 김장생 사당과 연결된 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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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상오는 1885년 11월 26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 646번지[항월1길 68]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손필규(孫弼奎), 김태오(金泰午), 이백순(李伯純), 이근옥(李根玉) 등이 주도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논산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강경에서부터 논산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논산읍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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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강경포가 마을 앞에 있어서 소금배가 드나들면서 소금을 쌓아 둔다고 하여 염촌(鹽村)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염대리(鹽垈里)·강변촌(江邊村) 일부를 병합하고 염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염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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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읍은 논산시의 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논산시 채운동, 서쪽으로는 부여군 세도면(世道面), 남쪽으로는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望城面), 북쪽으로는 논산시 성동면(城東面)과 접하고 있다. 강경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강경은 전국 최대의 젓갈시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강경전통맛깔젓 축제를 개최하는 등 전국으로 신선하고 다양한 젓갈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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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강경포가 마을 앞에 있어서 소금배가 드나들면서 소금을 쌓아 둔다고 하여 염촌(鹽村)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염대리(鹽垈里)·강변촌(江邊村) 일부를 병합하고 염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염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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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 훈련병을 소재로 윤봉춘이 제작한 기록 영화. 「영광의 길」은 육군 제2훈련소의 모습을 담은 기록 영화로 촬영 김명제, 음향 조종국, 감독·편집·기획·제작은 윤봉춘이 하였다. 1953년 12월 15일에 극장 개봉을 하였다. 6·25전쟁 때 북한군의 만행으로 부친을 잃은 면장의 아들은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부유한 가정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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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 영당에서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지내는 윤증 추모제.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윤증 사후 1744년(영조 20)에 이르러 윤증 문인들이 스승의 영당과 경승재를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춘추로 제향을 봉행하여 왔는데, 현대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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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이나 지역의 유림들이 특정 조상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에서 매년 기일에 거행하는 제향. 영당이란 향사(鄕祠)·사(祠)·이사(里祠) 등과 같은 곳이지만 위패가 아닌 특정 조상의 영정(影幀)을 봉안한 사우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조선 건국 후에 국가적 차원에서 사전(祀典)의 정비를 단행하면서 사대부가는 가묘를 설치하였고, 향촌에서는 기존의 무속적이거나 불교적인 제사를 음사로 규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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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로서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1625년(인조 3)에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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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환 선생 고택 내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1543~1593)의 아들로 동부승지와 이조참의 등 여러 요직을 역임했으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 아들은 윤선거이고, 손자는 숙종 대 소론의 거두였던 명재 윤증이다. 윤환 선생 고택은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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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국광과 김겸광 형제가 세운 사당. 김국광은 조선 세조와 성종 때 원종공신, 적개공신, 좌리공신 등에 책봉되었다. 건주위 정벌과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관여하였다. 영사암은 김국광과 김겸광 형제가 부모 사망 후 3년간 무덤을 지킨 자리에 세운 사당으로 1475년(성종 6)에 세워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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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지금의 영사암이 있는 터에 처음 절이 세워진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나 언제 없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재 영사암지에 있는 암자는 조선시대 1465년(세조 11) 문인 김철산(金鐵山)이 부모의 묘를 모시기 위해 건물을 짓고 암자에 ‘영사암(永思庵)’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1875년(고종 12)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한다. 부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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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익겸(金益謙)이고, 어머니는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4세손이자 영의정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의 증손녀이며 예조참판 윤지(尹墀)의 딸로서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숙부는 김익희(金益熙), 동생은 『구운몽(九雲夢)』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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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한국불교 법륜종 소속 사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영암사가 들어서기 오래 전 이곳에 고려 때 세워진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법당 뒤쪽으로 약 40m 지점에 산신각이 있고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밑에 ‘산왕대신지위(山王大神之位)’라 새겨져 있는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폭 40㎝, 두께 20㎝, 높이 1m로 고려 말기 또는 조선 초기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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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시신을 장지로 운반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구. 상여는 사람의 시체를 실어서 장지까지 나르는 도구로, 마을마다 마련해 두기도 하고 초상이 나면 개인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상두꾼·영구꾼·영여꾼·운상꾼·이정·향도라 하며, 대개 천민이 메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후에는 동네 청년들이나 망인의 친구들이 메기도 한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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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영은사지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의 바랑산 북곡(北谷) 내에 위치하는 영주사는 최근에 새로 조성된 사찰로, 영은사(靈隱寺)라는 구사지(舊寺址) 위에 건축된 것이다. 사역 내의 대웅전 전면 북측에 부도 1기가 남아 있는데, 이 부도는 영은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영은사지 부도는 석종형(石鐘形)으로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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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전통가옥에서 사용된 문. 옆으로 밀고 닫는 문이라 하여 미닫이라고 부르는데, 구개음화에 따라 미다지라고도 한다. 또한 논산 지역에서는 문을 밀어서 연다고 하여 밀창이라고도 하며 영창, 이응창이라고도 부른다. 미닫이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손잡이는 파여 있고 주 재료는 나무이다. 나무로 틀을 짜고 가운데를 송판으로 막거나 문살을 넣고 그 위에 종이를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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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시화로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 관상용·산울타리용으로 많이 재배하며 4월에 노란꽃이 피는 개나리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는 꽃이기도 하다. 논산 시화(市花)로서의 개나리는 새날을 연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논산시민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높이는 3m 내외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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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던 기독교계 사립여학교. 3·1운동 이후 개신교는 여학교 설립을 통한 여성교육 보급에 박차를 기하였다. 또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는 여성운동 진전과 더불어 여성들의 사회적인 존재로서 의미를 일깨웠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충청남도 지방도 공주 영명여학교, 논산 영화여학교, 강경 만동여학교 등 여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들 여학교는 일제강점기 지역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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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위하여 무대와 객석 등을 설치한 건물이나 시설. 논산 지역에서 극장은 주로 영화 상영관으로 사용되었다. 가끔 창극·쇼 등의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순수 연극을 공연한 경우는 없었다. 군민회관이 없던 시절인 1980년대 중후반까지 극장은 정당, 사회단체의 창립총회, 정기총회, 또는 새마을지도자대회 등의 행사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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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딸기는 키가 20㎝ 정도 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작고 흔해보여도 예민하기가 인삼 못지않다고 알려져 있다. 딸기농가에서 농장 체험행사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딸기의 예민한 성질 때문이다. 딸기가 견디는 기온이 5도에서 25도까지라 냉해에는 강한 편이지만, 잎과 줄기를 건드리면 스트레스를 받고 눈에 띌 정도로 성장이 더뎌진다. 딸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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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지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는 논산의 예술문화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의 권익을 옹호하며 향토 예술의 창달로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4년 2월 19일 한국문인협회 논산지부 김영배 지부장, 한국국악협회 논산지부 송중빈 지부장, 한국사진작가협회 논산지부 박태진 지부장, 한국미술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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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예의 본질과 의의 및 시비를 탐구하는 유학의 한 분야. 오늘날 충청 지역은 충절과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한 상징의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잡았던 기호학파의 존재가 드러나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논산 지역에 뿌리내린 호서사림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전기 경기 지역의 사림에 종속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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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건양대학교에서 부설하여 운영하고 있는 예학 관련 연구원. 예학교육연구원은 예학에 관한 모든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여 한국 전통예학을 정리 심화시키고, 현대사회에 적합한 예문화를 정립하며, 예의 교육에 노력함으로서 한국의 학술문화 창달과 보급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10월 개원하였으며, 2000년 3월 예절마당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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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묘골과 황골 등지에서는 ‘고려장’ 또는 ‘고린장’이라 부르는 옛 사람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산속에 나무가 우거져 찾아 볼 수도 없고, 어떤 모양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도 없지만,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을 앉혀놓고 고려장 지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 들려주곤 하였다. 언뜻 돌로 만든 무덤 같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의 무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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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다섯 개의 강물(냇물)이 마을 앞에서 합류한다고 하여 오강(五江)이라 하였는데, 노강서원(魯岡書院)이 여기에 있어 오강(五岡)이라 하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전리(平田里)·서변리(西邊里)·율리(栗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오강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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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나는 오계로 만드는 탕. 오계(烏鷄)는 뼈가 까마귀처럼 검은 닭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고려시대 문인이자 학자였던 제정 이달충(1309~1385)의 『제정집(霽亭集)』에 오계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오계란 본래 검지만 흰색 솜털을 가진 일본의 실크오골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국의 오계가 뼈, 깃털, 피부, 발톱까지 온통 검은 것과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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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열나흗날 저녁에 보리, 콩, 팥, 조, 수수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옛날부터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이면 각 가정에서 지난해에 수확한 잡곡으로 밥을 지어 먹었는데, 다섯 가지 잡곡을 넣고 지은 밥이라 하여 오곡밥이라고도 한다. 오곡은 19세기까지 기장[黍]·피[稷]·콩[菽]·보리[麥]·삼[麻]을 일컬었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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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구산(鰲龜山)이 있으므로 오구미(五口味) 또는 오산·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오리(上梧里)·하오리(下梧里)·송산리(松山里)·부황리(夫皇里)의 각 일부와 노성군(魯城郡) 하도면(下道面) 노오리(魯五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오산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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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에서 석축산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에 한 초막집이 있었는데, 그곳에 어머니와 남매가 살고 있다. 남매는 남달리 힘이 장사였다. 아들은 강직할 뿐 아니라 의협심이 강했고, 딸은 매사에 치밀하고 활동적이었다. 둘은 무엇이든 지기 싫어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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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염천리에는 20여개, 강경 전체에는 약 140여개 가까운 젓갈상점들이 성업 중이다. 이렇게 많은 젓갈상점 가운데 강경젓갈시장 초창기부터 젓갈상점을 운영해온 젓갈상회는 신진상회와 형제상회 그리고 함열상회 세 곳이다.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있긴 하지만, 신진상회가 가장 빠르고 다음이 형제상회와 함열상회가 비슷한 시기에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 3개 상점이 현재까지 강경에서 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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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에서 오목내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에 ‘오목내다리’라고 부르는 다리가 있었다. 고려 때 오목내다리 근처에 주막이 있었는데 주모가 과년한 딸 하나를 데리고 살았다. 그녀는 남편 없이 홀몸으로 살면서 딸 하나만을 위해 술장사를 하며 살림을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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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남부 및 영국을 포함한 유럽 등 유라시아의 온대에 불연속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삼림이 우거지거나 절 인근 노거수 밑동의 파인 구멍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38㎝이다. 외형적으로는 암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암컷이 수컷보다 조금 크다. 머리는 둥글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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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 있는 산지·구릉 등의 고지로 둘러싸인 분지.. 오산리 분지는 버팽이천을 끼고 동서 방향으로 둥글게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을 통해 논산천의 상류인 장선천의 충적지에 이어지고 있다. 오산리 분지는 대체로 해발고도 200~500여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데, 대표적으로 북쪽의 바랑산(555.4m), 동쪽의 월성봉, 무수재 등이 있다. 분지의 지질을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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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는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 있는 가운데 낮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오미 또는 오산(鰲山)이라 하였다. 그 뒤 학자 이명봉(李鳴鳳)이 내려와 살면서 자신의 호(號)를 따서 오산(梧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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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구산(鰲龜山)이 있으므로 오구미(五口味) 또는 오산·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오리(上梧里)·하오리(下梧里)·송산리(松山里)·부황리(夫皇里)의 각 일부와 노성군(魯城郡) 하도면(下道面) 노오리(魯五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오산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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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기와점이 있어서 오얏골 또는 와야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송산면(松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촌리(校村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와야리라 하여 논산군 은진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은진면 와야리가 되었다. 서부와 남부는 20여m의 낮은 구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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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에 민속원에서 출간한 『구전설화』13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병석에 누워 있는 어머니와 청년이 살았다. 오월(五月)에 어머니가 “홍시를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였다. 그때는 막 감꽃이 피어날 무렵이어서 홍시를 구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청년은 홍시를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산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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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의병. 오일경은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 출신이다. 1910년 일본의 강점이 본격화되자 나라를 되찾으려는 결심을 하고 의군(義軍)을 모집하고 지휘하여 근처 산에서 일본군 기마부대와 전투를 벌여 일본군 90명을 사살했다. 이후에도 논산 지역 일대를 돌아다니며 의병 활동을 이어가다 밀고로 일본헌병에게 검거되어 전주에서 사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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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 판관 오일영의 불망비. 1888년(고종 25)에 판관을 지낸 오일영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망비이다. 원두형 단갈로,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다. 비신의 높이는 100㎝이고 폭이 42㎝이다. 비의 앞면에 ‘판관오후일영영세불망비(判官吳侯鎰泳永世不忘碑)’라 기록되어 있다. 인천리 은정자 밑에 세워져 있는 오일영 불망비는 작은 단갈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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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오화지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채운산에 하늘에서 다섯 선녀가 내려왔다. 그들은 옥황상제로부터 “너희들은 땅으로 내려가 사람의 씨앗을 퍼뜨리고 하늘나라로 올라오도록 하여라.”라는 명령을 받았다. 채운산에 내려온 다섯 선녀는 산 아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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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왕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을 멸망시키고 대망의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 태조 왕건은 부처의 가호로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도선 국사의 도움을 받아 천호산 기슭에 개태사를 창건하여 삼국 통일을 기념하고, 국태민안(國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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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군. 옥녀봉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금강이 옥녀봉 앞에서 휘돌아 흘러 넓은 강폭을 이루며, 잔잔한 물가에 물고기들이 노닐며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자연 경치를 즐기며 곳곳에 암각을 새겨 놓은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암각 해조문은 선박들의 왕래를 돕기 위해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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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에 걸쳐 있는 산. 산봉우리가 마치 옥녀처럼 단정하다 하며, 옛날 선녀들이 여기에 내려와 놀다 가곤 했다고 한다. 옥녀봉은 높이가 411.7m이며, 논산시 가야곡면과 완주군 화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왕암천의 발원지이다. 기반암은 옥천층군의 문주리층으로 주로 편암이 분포하고 있다. 옥녀봉 남서쪽에는 석회암이 협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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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있는 산. 옥녀봉은 논산시 강경읍 금강 변에 있는 낮은 야산이나 주변 일대가 금강 변의 넓은 평야 지대여서 실제보다 높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은진현 서쪽 금강에 접한 지리적 요충지로서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고, 아래에는 포구와 은진현의 세곡이 모이는 강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옥녀봉의 봉화는 남쪽으로는 익산군 용암면의 광두원산의 봉수, 북쪽으로는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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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이 부여 방면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서해로 들어가기 위해 방향을 남동쪽으로 크게 굽어 돌아가는 부분에 위치한 강경은 지리적 위치가 낮은 산지인 구릉과 하천 주변의 편평한 지형인 범람원(犯濫原) 상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의 옥녀봉(玉女峰)과 남쪽 4㎞지점에 위치한 채운산(彩雲山) 등의 구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0m 이하의 논산평야와 강경평야로 이루어진 평야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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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과 노성면 교촌리에서 옥녀봉과 무동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농부가 살고 있었다. 농부에게는 힘이 장사인 아들과 딸이 있었다. 남매는 힘이 셌지만 서로 다투지 않고 부모에게 순종하며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남매는 서로 자기가 힘이 세다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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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0일의 제1차 옥녀봉 만세운동은 강경읍의 장날인 오후 3시경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여 500여 명의 군중이 강경의 옥녀봉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하산하여 일본인이 거주하는 본정통(本町通)을 경유하여 강경시장을 일주하며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날이 일본의 육군기념일이라 재향군인과 소방조를 동원하여 주동인물들을 체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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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채광리에서 채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옥동자와 채동」은 유씨부인이 자식을 얻고자 부처에게 1년 동안 기도를 올렸다는 기자담이며, 또한 유씨부인이 ‘나물’을 캐서 먹고 아들을 낳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채동’이라 하였다는 지명유래담이기도 하다. 1992년 논산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실려 있다. 옛날 채동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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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서 발원하여 읍내리에서 노성천에 합류하는 하천. 2010년 말 현재 옥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고, 제1지류는 논산천이며, 제2지류는 노성천이다. 유로 연장은 2.4㎞이고, 유역 면적은 3.34㎢이다. 옥천은 논산시 북부의 노성산(348.1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1㎞ 정도 흐르다 동쪽으로 유로를 변경하여 노성천에 합류하는 비교적 짧은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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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배기와 우물을 청소하고 금줄을 치는 동안, 톱을 든 마을사람 양성직 씨와 몇 해 전부터 장승 깎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 문화재 조각 기능인 김태길 씨를 필두로 마을 청년들 몇몇이 장승으로 쓰일 나무를 베러 간다. 원래는 나무를 고를 때에도 소나 말, 닭 또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깊숙이 찾아 들어가 적당한 곳에 다다르면 술 한 잔을 붓고 엄숙하게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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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시신을 장지로 운반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구. 상여는 사람의 시체를 실어서 장지까지 나르는 도구로, 마을마다 마련해 두기도 하고 초상이 나면 개인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상두꾼·영구꾼·영여꾼·운상꾼·이정·향도라 하며, 대개 천민이 메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후에는 동네 청년들이나 망인의 친구들이 메기도 한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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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남부 및 영국을 포함한 유럽 등 유라시아의 온대에 불연속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삼림이 우거지거나 절 인근 노거수 밑동의 파인 구멍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38㎝이다. 외형적으로는 암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암컷이 수컷보다 조금 크다. 머리는 둥글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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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남부 및 영국을 포함한 유럽 등 유라시아의 온대에 불연속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삼림이 우거지거나 절 인근 노거수 밑동의 파인 구멍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38㎝이다. 외형적으로는 암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암컷이 수컷보다 조금 크다. 머리는 둥글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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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8월에 햅쌀로 밥을 지어 조상과 집안의 여러 가신에게 감사하며 올리는 의례. 음력 팔월 즈음이 되면 햅쌀이 생산된다. 그 해에 처음 생산된 것을 사람이 먹기 이전에 먼저 신령께 올린다. 이를 햅쌀 천신[新穀薦新]이라 한다. 햅쌀로 지은 밥은 집안에서 기제(忌祭)를 올리는 조상과 집안 곳곳에 모신 가신(家神)에게 올린다. 조상보다는 가신에게 올리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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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남부 및 영국을 포함한 유럽 등 유라시아의 온대에 불연속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삼림이 우거지거나 절 인근 노거수 밑동의 파인 구멍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38㎝이다. 외형적으로는 암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암컷이 수컷보다 조금 크다. 머리는 둥글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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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남부 및 영국을 포함한 유럽 등 유라시아의 온대에 불연속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삼림이 우거지거나 절 인근 노거수 밑동의 파인 구멍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38㎝이다. 외형적으로는 암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암컷이 수컷보다 조금 크다. 머리는 둥글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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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남부 및 영국을 포함한 유럽 등 유라시아의 온대에 불연속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삼림이 우거지거나 절 인근 노거수 밑동의 파인 구멍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38㎝이다. 외형적으로는 암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암컷이 수컷보다 조금 크다. 머리는 둥글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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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남부 및 영국을 포함한 유럽 등 유라시아의 온대에 불연속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삼림이 우거지거나 절 인근 노거수 밑동의 파인 구멍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38㎝이다. 외형적으로는 암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암컷이 수컷보다 조금 크다. 머리는 둥글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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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기와점이 있어서 오얏골 또는 와야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송산면(松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촌리(校村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와야리라 하여 논산군 은진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은진면 와야리가 되었다. 서부와 남부는 20여m의 낮은 구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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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서 의적 와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고려 초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와촌이란 의적이 봉기하여 관군과 3년을 싸워 이기고 자진 해산하였다. 와촌은 해산 이후 그가 싸우던 곳에 머물렀는데 이로 인하여 마을 이름을 와촌이라고 했다는 지명유래담이자 와촌의 의적담(義賊談)이다.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실려 있다. 양촌면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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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연산군 외성면 지역으로, 덕평·부황·다오개·관학·목동·용구산·신외·서당동·상외·분동·잔포·중외·하외·정외의 14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외리·븐동·잔포(잔포)·중외·하외·정외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의 감곡리 일부, 부인처면의 산소리·신삼거리를 병합하여 외성리라 하고 논산군 부적면에 편입하였다. 외성리와 상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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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연산군 외성면 지역으로, 덕평·부황·다오개·관학·목동·용구산·신외·서당동·상외·분동·잔포·중외·하외·정외의 14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외리·븐동·잔포(잔포)·중외·하외·정외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의 감곡리 일부, 부인처면의 산소리·신삼거리를 병합하여 외성리라 하고 논산군 부적면에 편입하였다. 외성리와 상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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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에서 발원하여 오산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윗산명재 서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연산면 북부에서 남쪽으로 흘러 장전리에서 동쪽으로 유로를 바꾼 뒤 오산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한다. 주변이 200~300여m 산지와 낮은 구릉, 하안단구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곡저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고, 하천의 양안에는 인공제방이 축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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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골짜기에 큰 바위가 깔려 있어서 왕바위 또는 왕암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하두면(下豆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강리(斗江里)·가동리(柯洞里)의 각 일부와 상두면(上豆面) 육곡리(六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왕암리라 하여 구자곡면(九子谷面)에 편입하였다. 1962년 11월 21일 가야곡면에 편입되었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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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에서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가야곡면 왕암리 산골에는 약 1㎞쯤 되는 골짜기가 있는데 항상 맑은 물이 흘렀다. 옛날에 노승이 근처를 지나가는 도중에 피로하여 잠시 쉴 장소를 찾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한참 쳐다보더니, “참으로 물이 맑기도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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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골짜기에 큰 바위가 깔려 있어서 왕바위 또는 왕암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하두면(下豆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강리(斗江里)·가동리(柯洞里)의 각 일부와 상두면(上豆面) 육곡리(六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왕암리라 하여 구자곡면(九子谷面)에 편입하였다. 1962년 11월 21일 가야곡면에 편입되었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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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호수. 왕암호 주변 지형은 동쪽의 증토산과 서쪽의 통박산 지류에 둘러싸인 산악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암호 주변 증토산의 산세가 험함에도 불구하고 0~15°가 50.4%를 차지하여 주로 산악지형을 제외한 대부분이 남~북 방향으로 5° 이하의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 주변의 임상은 주로 혼효림·침엽수림·소나무림이 골고루 분포하며, 남~북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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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은진면 성덕리에서 논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왕암천은 가야곡면 왕암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서부 일대에 곡저충적지를 전개시킨 뒤, 연속해서 은진면과 부적면의 면계를 이루면서 은진면 성덕리 근처에서 논산천에 흘러든다. 왕암천 상류부에는 하천 유역을 따라 배후습지 및 하성단구면에 나타난다. 2010년 말 현재왕암천의 유로 연장은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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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호수. 왕암호 주변 지형은 동쪽의 증토산과 서쪽의 통박산 지류에 둘러싸인 산악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암호 주변 증토산의 산세가 험함에도 불구하고 0~15°가 50.4%를 차지하여 주로 산악지형을 제외한 대부분이 남~북 방향으로 5° 이하의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 주변의 임상은 주로 혼효림·침엽수림·소나무림이 골고루 분포하며, 남~북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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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네발나비과에 속하는 나비. 편 날개의 길이는 약 7.5~10.5㎝로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네발나비과 나비에서 가장 크고 강인하면서 아름답다. 날개의 윗면이 햇빛에 반사되면 남색과 보라색이 서로 어울려 오색의 광택으로 빛나기 때문에 왕오색나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컷은 날개 윗면이 기부에서 중앙까지 짙은 보라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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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서 왕전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왕전리 또는 왕밭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전투를 하기 위하여 황산벌에 진을 치고 있었다. 연일 계속된 싸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왕건은 진영을 둘러보고 난 후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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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인성으로 꿈을 키워가는 학생,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학생, 자기의 소질을 계발하는 학생,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학생, 공동체의 발전에 참여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왕전초등학교는 1952년 5월 3일에 광석국민학교 왕전분교로 개설되었으며, 1953년 4월 30일에 왕전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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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군과 격전을 벌일 때의 일이다. 하루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철관을 쓰고 바다에 들어가자 닭이 울고 수만의 집에서 방망이 소리가 요란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지금의 부인리에서 살던 무당이 해몽을 하기를,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진 것은 임금 왕(王) 자를 의미하며, 철관 방망이 소리는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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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3리 말머리마을에서 매년 정월 초이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왕전리 말머리 산신제의 준비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가가호호 걸립을 돌아 충당했다. 이 기금으로 논산장에 가서 제물(祭物)을 구입했는데, 장을 보러 갈 때는 부정을 피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가되 값을 깎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제관은 마을회의에서 생기복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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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3리 말머리마을에서 매년 정월 초이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왕전리 말머리 산신제의 준비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가가호호 걸립을 돌아 충당했다. 이 기금으로 논산장에 가서 제물(祭物)을 구입했는데, 장을 보러 갈 때는 부정을 피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가되 값을 깎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제관은 마을회의에서 생기복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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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의 총칭.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을 총칭하여 왜구라고 한다. 일찍이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일본의 해적이 침입한 바 있지만 침입 규모나 피해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친 시기에는 거의 해마다 침입했고 피해도 막대하여 ‘왜인(倭人)들이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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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논산천에 서식하는 잉어과 민물고기. 몸길이는 7~9㎝ 정도로 돌마자와 비슷하나 더 가늘고 길다. 몸높이는 낮고 옆으로 약간 납작하고 뒤로 갈수록 더 납작하다. 머리는 약간 크고 배는 납작하여 전체적으로 방망이 모양을 한다. 눈은 머리 위쪽에, 입은 말굽 모양으로 주둥이 아래에 있고 1쌍의 입수염이 있다. 등지느러미는 몸의 중앙보다 약간 앞쪽에 삼각형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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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산성리 논산천에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6~8㎝이며 모래무지와 비슷하게 생겼다. 몸은 가늘고 길며 원통형에 가깝고 위아래로 약간 납작하다. 배는 편평하고 주둥이는 짧고 둔하며 눈 앞부분은 오목하다. 입은 주둥이 끝 아래에 있으며 입술에는 돌기가 없으나 작은 주름이 있고 두껍다. 1쌍의 입수염은 길이가 매우 짧다. 입은 발굽 모양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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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외성감리교회는 1907년 배세라가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경천교회 소속 신현구로부터 전도를 받아 건립하였으며, 건립 당시 교회의 명칭은 기독교 미연회 조선감리회 공주지방 외성교회였다. 1936년 3월 24일 배세라는 자신의 집에다 예배소를 정하여 남녀 10여 명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함석으로 된 면적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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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외성산성이 있어 외잣·외재 또는 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덕평(德坪)·부황(夫皇)·다오개(多五介)·관학(觀學)·묵동(墨洞)·용구산(用九山)·신외(新外)·서당동(書堂洞)·상외(上外)·분동(粉洞)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외리·분동·잔포리(殘浦里)·중외리(中外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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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논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국도 4호선을 타고 약 4㎞ 정도 가다 보면 연산면과의 경계 직전에 부적면 외성리 분동마을이 나온다. 외성산성은 분동마을의 뒤쪽에 있는 해발 120m의 토성산에 위치한다. 외성산성은 다른 일반적인 산성과 달리 성벽이 안팎으로 남아 있는 이중성(二重城)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다. 산봉(山峰)을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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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논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국도 4호선을 타고 약 4㎞ 정도 가다 보면 연산면과의 경계 직전에 부적면 외성리 분동마을이 나온다. 외성산성은 분동마을의 뒤쪽에 있는 해발 120m의 토성산에 위치한다. 외성산성은 다른 일반적인 산성과 달리 성벽이 안팎으로 남아 있는 이중성(二重城)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다. 산봉(山峰)을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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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연산군 외성면 지역으로, 덕평·부황·다오개·관학·목동·용구산·신외·서당동·상외·분동·잔포·중외·하외·정외의 14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외리·븐동·잔포(잔포)·중외·하외·정외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의 감곡리 일부, 부인처면의 산소리·신삼거리를 병합하여 외성리라 하고 논산군 부적면에 편입하였다. 외성리와 상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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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외성산성이 있어 외잣·외재 또는 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덕평(德坪)·부황(夫皇)·다오개(多五介)·관학(觀學)·묵동(墨洞)·용구산(用九山)·신외(新外)·서당동(書堂洞)·상외(上外)·분동(粉洞)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외리·분동·잔포리(殘浦里)·중외리(中外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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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외성산성이 있어 외잣·외재 또는 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덕평(德坪)·부황(夫皇)·다오개(多五介)·관학(觀學)·묵동(墨洞)·용구산(用九山)·신외(新外)·서당동(書堂洞)·상외(上外)·분동(粉洞)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외리·분동·잔포리(殘浦里)·중외리(中外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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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 요동마을에 있는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논산에서 공주 방면의 국도 23호선을 따라 5.5㎞ 정도 가면 두고랭이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을 통과하는 소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요동마을에 이른다. 하도리 요동 고분군은 요동마을 북측에 있는 구릉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하도리 요동 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낮은 야산지로 이곳에서는 백제 토기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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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초나 정월 14일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의례. 논산 지역에서 용왕제는 흔히 요왕제·유왕제·유황제·샘고사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용왕이란 수신(水神)의 상징적인 존재인 용(龍)을 지칭한다. 따라서 용왕제를 지내는 장소는 물과 관련된 곳, 즉 마을의 공동우물을 비롯하여 깨끗한 샘이나 시냇물, 방죽, 계곡 등 매우 다양하다. 용왕제는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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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터. 요지는 토기·도자기·질그릇·오지그릇·기와 등을 구워내는 시설로서 가마터·가마사지·점터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에는 토기를 가마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맨 땅 위에 쌓은 후, 그 위에 많은 장작이나 섶을 덮고 불을 질러 구워내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일찍부터 도자기가 발달하였다. 원시적 개방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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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계룡산 줄기인 향적산 국사봉(國師峰)의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용국사는 1946년 승려 박보명에 의해 창건되었다. 1946년 해방을 맞아 귀국한 박보명이 절터로 적합한 곳을 찾다가 토굴을 만들어 거주하면서 예불을 올리기 시작했다. 몇 년 후 박보명이 세상을 떠나고 승려 최진공이 오면서 대웅전, 삼선각, 요사채 등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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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꽃이 많이 피는 용머리 산이 있다고 하여 용꽃·용화 또는 상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순촌(筍村)과 대조곡면(大鳥谷面) 토현(兎峴)의 일부를 병합하고 용화리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 용화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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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장전리에서 용머리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머리산」은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용궁에 살고 있던 용 두 마리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산천초목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기만 하였다. 이러한 마음을 안 용왕은 두 마리의 용에게, “인간 세상에 내려가 선행을 베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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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부터 마을 뒤에 있는 산이 마치 용이 누워 있는 형국처럼 보여서 용산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대조곡면(大鳥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직리(山直里)·용와리(龍臥里)·세피리(世被里)·백양리(栢楊里)의 각 일부와 송산면(松山面) 교촌리(校村里)의 일부, 가야곡면 두월리(斗月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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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산리 아기장수」는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은진 고을에 단란하게 살아가는 한 부부가 있었다. 집 옆에는 수백 년 묵은 큰 나무가 서 있었다. 부부는 이 나무를 정성껏 위하였다. 비록 가난하였지만 부부간의 사이가 좋아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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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 아버지는 시강원필선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 윤주(尹拄)·윤유(尹揄)·윤부(尹拊)와 손자 윤시교(尹時敎)는 학행이 높기로 이름이 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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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황리에 있는 파평윤씨 충헌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윤원거·윤유·민준의 문집 판각. 조선 중기의 유학자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 1601~1672)와 그의 아들 봉계(鳳溪) 윤유(尹揄, 1647~1721), 제자 성재(省齋) 민준(閔晙, 1642~1776)의 문집 판목 150판으로, 윤원거의 『용서집』, 윤유의 『봉계집』, 민준의 『성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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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영조 51)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학자 윤원거의 문집. 윤원거(尹元擧, 1602~1672)의 시문은 윤원거가 죽은 직후 아들 윤유(尹揄) 등이 수집하여 윤증(尹拯, 1629~1711)의 산정(刪定)을 거쳐 2편으로 엮어 정사(精寫)하여 집안에 보관해 왔다. 이 고본(稿本)을 바탕으로 증보하여 1775년에 족현손(族玄孫) 윤광소(尹光紹)가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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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두레 일에 앞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농신에게 지내는 제의. 과거에 김매기는 보통 마을 장정들로 구성된 두레를 통한 집단 협업방식으로 행해졌다. 농신제는 정기적 제의는 아니었으며 일꾼들이 두레 일을 시작하기 전에 풍년을 농신(農神)에게 기원하는 제사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용신제라고도 하며, 기우제의 일종으로 지내기도 하였다. 두레가 시작되면 이장이 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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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서 용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암」은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먼 옛날 지금의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 용암마을에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받으며 다녔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넉넉한 시주를 받은 노승은 해가 질 무렵에 마을 떠나갔다. 시주 망태를 짊어지고 마을을 벗어나던 노승은 산골짜기에 이상하게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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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용암사의 연혁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제 말엽인 660년경 채운향(彩雲鄕)에 낙안사(落雁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이 용암사의 전신(前身)이었다고 한다. 낙안사는 고려 말기에 강경 옥녀봉에 옮겨 세워졌고, 절 명칭을 용암사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5년 후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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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시신을 장지로 운반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구. 상여는 사람의 시체를 실어서 장지까지 나르는 도구로, 마을마다 마련해 두기도 하고 초상이 나면 개인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상두꾼·영구꾼·영여꾼·운상꾼·이정·향도라 하며, 대개 천민이 메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후에는 동네 청년들이나 망인의 친구들이 메기도 한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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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초나 정월 14일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의례. 논산 지역에서 용왕제는 흔히 요왕제·유왕제·유황제·샘고사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용왕이란 수신(水神)의 상징적인 존재인 용(龍)을 지칭한다. 따라서 용왕제를 지내는 장소는 물과 관련된 곳, 즉 마을의 공동우물을 비롯하여 깨끗한 샘이나 시냇물, 방죽, 계곡 등 매우 다양하다. 용왕제는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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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여럿이 논을 매면서 부르던 농업노동요. 이소라는 1987년·1989년·1992년·2002년에 논산 지역에서 민요 조사·녹음을 실시하였다. 그중 논산의 토박이 농민으로부터 논맴 소리를 녹음한 지역은 강경읍, 연무읍, 가야곡면, 광석면 득윤리·이사리, 두마면, 벌곡면 사정리·신양리·도산리, 부적면 등이다. 논산 일대에서 1960년대 이전에 불렸던 논맴 소리로는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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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꽃이 많이 피는 용머리 산이 있다고 하여 용꽃·용화 또는 상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순촌(筍村)과 대조곡면(大鳥谷面) 토현(兎峴)의 일부를 병합하고 용화리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 용화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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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절터. 상월면 산성리에서 상도리를 거쳐 신원사 방면으로 도로를 따라 5㎞가량 가면 오른쪽에 용화사지가 있다. 신원사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계룡산 서쪽 줄기의 남쪽 비탈면에 해당한다. 절터에 새로 조영된 용화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절터 가운데 암벽에는 마애불 1구가 새겨져 있다. 절터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기와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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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용화사지 주변에서 확인된 시대 미상의 불상 머리 부분. 용화사지 불두는 용화사지의 사역(寺域) 뒷면 계룡산 서쪽 사면에 약 165.29㎡ 규모의 평탄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용화사지 불두는 본래 현 위치에서 위로 5m 떨어진 거리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목 부분 이하는 결실되었고, 머리에 육계(肉髻)의 형태가 있는데 절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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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있는 산의 형태가 마치 소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소골이라 불리다 후에 우곤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월외리(月外里)·포전리(浦田里)와 서당동(書堂洞)의 각 일부와 비당면(碑堂面)의 옥산리(玉山里) 일부와 현내면(縣內面)의 창리(倉里)·남산리(南山里)의 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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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우곤리 아기장수」는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백제 말엽 지금의 우곤리 마을에 농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부는 열심히 일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림을 꾸려갔으나 한 가지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을 항상 아쉬워하였다. “아기 하나만 있으면 부러울 게 없을 텐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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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부터 신선객의 요람지로 꼽히던 곳으로, 이상적인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 때 도읍지로서 임금터가 될 것이라고 전해 오는 말에 따라 마을 이름도 임금터 또는 우기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도곡면(道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화리(梨花里)·토양리(土良里)의 각 일부와 대조곡면(大鳥谷面) 방축리(防築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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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곡리 마을 초입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느티나무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육곡리를 찾는 사람들의 이정표다. 원래 이 자리에는 수령이 200년 넘었다고 알려진 고목이 있었는데, 나무가 죽고 썩어버리자 1988년경 주민들이 다시 이 느티나무를 심었다. 나무의 나이가 30여년에 불과해도 나무 그늘은 육곡리 사람들의 최고의 휴식 공간이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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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술마을은 논산시로 부터 동남쪽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며 가야곡면 면소재지이므로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다. 논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가야곡면, 병암리, 산노리, 등리를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20분을 달리면 육곡리에 도착한다. 마을을 지나는 버스는 아침 6시 10분부터 출발하는 버스가 있으며, 막차는 10시까지로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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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백중놀이의 전수관은 연산 상설시장 옆쪽에 자리해 있다. 백중놀이 전수관은 국비와 도비, 시비의 지원을 받아 2006년 8월 31일에 제17회 연산백중놀이 행사와 함께 문을 열었다. 연산백중놀이 전수관은 440여 평으로 2층 건물로 지어졌다. 전수관은 연산 백중놀이가 1991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으면서부터 전수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 후로 15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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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재래시장에는 16개 점포가 전부이지만, 그 입구에는 옛 시장을 연상시키는 노점상들과 가게들이 연산재래시장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가 허가한 16개의 점포만이 연산재래시장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16개 점포주들을 비롯하여 연산 주민들은 하나같이 모두 입구의 상점들도 연산재래시장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연산재래시장의 입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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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토양리에 있는 동물용 의약품 제조 업체. 우성양행은 가축의 성장을 촉진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우수한 사료 첨가제를 생산하여 사료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우수한 품질의 동물약품과 페트 푸드(PET FOOD)를 보급하여 축수산업 및 페트(PET)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9년 8월 주식회사 서광양행으로 창립하였다. 같은 해 10월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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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로서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1625년(인조 3)에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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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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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로서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1625년(인조 3)에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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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이선익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셔 왔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에 좋다는 약을 백방으로 구해다가 손수 달여 드리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는 10여 년 동안 추운 겨울에는 물고기를 잡아다 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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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출신의 시인. 김관식은 1934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서 출생하였고, 논산시 강경읍의 중앙보통공립학교를 거쳐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강경상업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남한의 여러 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후 충남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고려대학교로 전학하고, 다시 동국대학교로 편입하였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정인보, 오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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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서북광산에서 채광하는 규산염 광물. 운모는 화강암 가운데 많이 들어 있는 규산염 광물의 하나이다. 단사 정계에 속하는 결정으로, 흔히 육각의 판(板) 모양을 띠며 얇은 조각으로 잘 갈라지는 성질이 있다. 백운모와 흑운모·견운모 등이 있는데, 백운모는 유리의 대용·전기 절연체 따위로 널리 쓰나 흑운모는 그다지 잘 쓰지 않는다. 운모는 오늘날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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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상여를 운구하면서 부르는 행상 소리의 하나. 「줄행상 소리」는 상월면 대명리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인데, 「짝 소리」처럼 상여꾼이 상여의 앞뒤의 두 패로 나뉘지 않고, 일반 행상때처럼 상여의 좌우에 상여꾼들이 늘어서서 운구하며 부르는 의식요이다. 메기고 받는 멕받 형식으로 되어 있다. 2002년 9월 23일에 이소라가 논산시 상월면 대명1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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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의령. 자는 운약(雲若), 호는 취은(醉隱). 아버지는 부위(副尉) 남응곤(南應坤)이며, 아들은 남두건(南斗建)이다. 남명한은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 군량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아 철저하게 완수하였다. 조정에서 남명한의 공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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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휴정서원에 배향된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판관 송사련(宋祀連)이다. 송익필은 할머니 감정(甘丁)이 안돈후(安敦厚)의 천첩 소생으로 신분이 미천하였으나 아버지 송사련이 안처겸(安處謙)의 역모를 조작 고발하여 공신에 책봉되고 당상관에 올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송익필은 재능이 비상하고 문장이 뛰어나 아우 송한필(宋翰弼)과 함께 일찍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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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운제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운제사지에 남아 있는 논산 덕평리 석조여래입상의 건축 양식이 남원 만복사지 석불입상(보물 제43호)과 비슷하고, 1382년(우왕 8)에 죽은 고려의 무신 정공권의 시에 석조여래입상이 언급된 점으로 미루어 고려 후기 이전에 창건된 것이 확실하다. 2m나 되는 석조여래입상의 크기로 보아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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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왔다가 울고 나가는 동네’가 육곡리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면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버스조차 잘 다니지 않아 사는 게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어서 오지마을과 다르지 않으니 처음 이사 들어온 사람은 힘들어서 울고, 전출할 때엔 마을 사람들에게 정이 들어 서운한 맘에 울고 나간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송옥희(79) 씨는 3남매의 맏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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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과 채운면 장화리를 연결하는 다리. 웃강경다리라고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상(上)자를 사용하여 상강경교(上江景橋)라 이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강경교는 총 연장이 140m이고, 폭이 11.7m이며, 왕복 2차선의 교량이다. 상강경교는 1985년 국도 23호선의 확장과 포장에 따라 논산시에서 인수·인계하여 강경천(江景川)을 가로질러 도시계획도로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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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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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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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와 벌곡면 검천리 경계에 있는 고개. 곰치재의 특별한 명칭유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산직리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인 곡막 또는 골막을 상웅티라고도 하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명칭이 변하여 웅티 또는 웅재 등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고개를 중심으로 서쪽 사면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석영반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 사면은 시대미상인 옥천 누층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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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서부를 지나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강.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금강은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古城津江) 등으로 불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굽이치며 흐르는 강의 물결이 비단결 같다는 뜻으로 금강(錦江)이라 부르게 되었다. 금강 외에 호강(湖江)으로도 불린다. 금강 하류가 폭이 넓어 호수로 연상해서였을 것이다. 소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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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검천리와 양촌면 산직리 장골 사이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논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국도 1호선을 타고 동쪽으로 약 12㎞ 정도 가면 연산면 청동리에 이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난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약 6㎞ 정도 가면 양촌면 신흥리가 나온다. 다시 동북쪽으로 난 지방도 68호선을 따라 4㎞ 정도 가면 산직리 장골에 닿는다. 곰티산성은 산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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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성동면에 행인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수탕원(水湯院)을 두었는데, 이 수탕원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원북면(院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동리(下東里)·하서리(下西里)·중리(中里)·소죽리(小竹里)의 각 일부와 우곤면(牛昆面) 상리(上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원남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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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성동면에 행인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수탕원(水湯院)을 두었는데, 이 수탕원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원북면(院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동리(下東里)·하서리(下西里)·중리(中里)·소죽리(小竹里)의 각 일부와 우곤면(牛昆面) 상리(上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원남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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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으로 새해의 첫날인 정월 초하룻날에 지내는 명절. 논산 지역에서 설은 흔히 ‘구정(舊正)’ 또는 ‘설날’이라고 한다.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므로 추석과 함께 최고의 명절로 친다. 논산 지역에서는 경기도와 달리 떡국에 만두를 넣지 않으며, 이월에 나이떡도 쪄먹지 않는다. 명재 윤증의 후예가 살고 있는 노성면의 교촌리, 사계 김장생의 14세손 종손이 거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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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야촌리에 있는 한국불교 법륜종 소속 사찰. 1960년대 승려 여연이 수도를 하러 왔다가 물과 경치에 감흥하여 불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신도 수가 적어 1998년 즈음에 원등암으로 개명하여 2008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8년 현재 원등암이 위치한 곳은 1960년대 원등암이 건립되기 전부터 사찰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변부 약 2,000㎡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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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영조의 아낌을 받아 백일헌(白日軒)이라는 호를 받았다. 함평군 이사길(李師吉)과 남양전씨 사이에서 1677년(숙종 30)에 태어났다. 이삼의 가계는 상계로 올라가면 무반 가문의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고조 이후는 문반으로서의 성향이 더해져, 이삼이 ‘문무겸전’의 인물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삼은 윤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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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정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을 알고 바르게 실천하는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창의적인 학생, 소질을 찾아 꿈을 키워가는 학생, 서로 돕고 사랑하며 봉사하는 학생,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학생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0년 4월 23일 원봉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2년 3월 8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현재의 원봉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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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안에 원형인 산봉우리가 있어 두리봉 또는 원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中里)·하리(下里)·화정리(花亭里)·야동(冶洞)의 각 일부와 은진군(恩津郡) 성본면(城本面) 해창리(海倉里)의 일부와 노성군(魯城郡) 광석면(光石面) 입석리(立石里)·논산리(論山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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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원봉리 고인돌은 논산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1.5㎞ 거리에 있는 성동면 원봉리에 있다. 원봉리는 논산천 북서쪽에 인접해 있는 곳으로 해발 25.7m 안팎의 나지막한 봉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고인돌은 마을 한가운데 능선 상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봉리 고인돌은 1977년 마을 주민이 집을 짓다가 발견하여 신고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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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봉1리 대미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원봉리 대미 다리제(거리제)는 오래 전부터 부녀자들의 주도로 마을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지내오던 마을 제사였다. 6·25전쟁 이전에 중단되었는데, 이후 마을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주민들의 근심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사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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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봉1리 대미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원봉리 대미 다리제(거리제)는 오래 전부터 부녀자들의 주도로 마을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지내오던 마을 제사였다. 6·25전쟁 이전에 중단되었는데, 이후 마을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주민들의 근심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사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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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봉리 선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왕재나무(느티나무)에 지내던 마을 제사. 원봉리 선돌 목신제는 오래 전부터 지내오던 마을 제사였으나 6·25전쟁 무렵 중단되어 상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지금도 마을에서는 왕재나무를 영험한 존재로 생각하여 절대 손을 대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고사목이 있어도 집으로 가져 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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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수탕원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원북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산리(缶山里)·장상리(壯上里)·양상리(陽上里)·갈산리(葛山里)·음상리(陰上里)·도리(島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원북리라 하여 성동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성동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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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조선 전기 기와 가마터. 원북리 와요지는 논산시의 북서쪽으로 광석면 득윤리와 성동면 원북리 사이 약 4.5㎞ 내외의 범위에 위치하고 있다. 장축 방향은 나지막한 구릉의 남사면에 북을 기준으로 24° 편동하여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는 남북 방향으로 두고 있다. 원북리 와요지는 국도 4호선 부여~논산 간 도로를 확·포장 공사하는 구간 내에서 확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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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장뚝골에서 음력 정월 14일 장군석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원북리 장뚝골 장승제는 해방 이전에 중단된 마을 제사를 1985년에 부활한 것이다. 이후 노인들과 부녀자가 중심이 되어 몇 해 동안 장승제를 지냈으나 다시 중단되었다. 이 마을의 장군석은 음기를 제어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비보풍수(裨補風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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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장뚝골에서 음력 정월 14일 장군석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원북리 장뚝골 장승제는 해방 이전에 중단된 마을 제사를 1985년에 부활한 것이다. 이후 노인들과 부녀자가 중심이 되어 몇 해 동안 장승제를 지냈으나 다시 중단되었다. 이 마을의 장군석은 음기를 제어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비보풍수(裨補風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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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청동기 및 백제시대 유적. 원북리 주거지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천안논산고속도로 인접 지역에 물류 단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돌널무덤, 초기 철기시대 돌덧널무덤 및 백제시대 주거지와 저장 구덩, 그리고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토광묘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편과 석기,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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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교 계통의 신종교. 원불교는 소태산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의 대각으로 1916년 4월 창립된 한국의 민족 종교이며, 그 연원은 불법에 두되, 종교개혁·인간개혁·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신종교이다. 원불교의 기본 교리는 일원상(一圓相)·사은(四恩)·사요(四要)·삼학(三學)·팔조(八條)·사대 강령 등이다.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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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강경교당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인근 지역의 원불교 포교와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949년 이리교당 박영종 교도의 연원으로 입교한 백관선 교도가 1956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으로 이주하면서 교당 설립의 뜻을 갖게 되었다. 1967년 백관선 교도와 이리교당 이정은 교무가 교당 설립을 약속하고 기반을 다져나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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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죽평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군종센터는 논산훈련소에 입대한 원불교 신도들의 종교 활동을 돕는 동시에 원불교의 군내 포교 활성화를 주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또한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일대의 신도들의 포교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2006년 12월 군대 내에서 원불교의 종교 활동이 인가됨에 따라 1대 교무인 김홍기가 부임하였으며, 현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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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반월동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논산교당은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원불교 교화와 군인들에 대한 포교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5년 원불교 중앙총부 교화부와 강경교당 주관으로 교당이 설립되었고, 같은 해 11월 14일에 봉불식을 거행였으며, 초대 교무로 이경심이 부임하였다. 설립했을 당시에는 논산군 논산읍 화지3리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리교당 교도 김정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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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원불교 산하 수련기관. 원불교 삼동원은 원불교 교조 박중빈 대종사의 일원대도를 바탕으로 하고 제2대 정산 종법사가 제창한 삼동윤리 정신을 실천하여 모든 종교와 민족과 사상의 장벽을 트고 누구나 수도할 수 있는 도량 건설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1959년 정산 종법사의 지시로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의 신도안 대궐터를 매입하여 1960년 9월 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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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의 왕암저수지와 가야곡면·부적면의 탑정저수지에 서식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원앙은 전국의 산간 계류에서 번식하는 흔하지 않은 텃새이나, 겨울에는 겨울을 나려는 무리들이 내려옴으로 봄·가을 이동 시기에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러시아 사할린 섬, 일본, 타이완, 중국 북동부, 영국 등지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43~51㎝이고, 몸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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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의 왕암저수지와 가야곡면·부적면의 탑정저수지에 서식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원앙은 전국의 산간 계류에서 번식하는 흔하지 않은 텃새이나, 겨울에는 겨울을 나려는 무리들이 내려옴으로 봄·가을 이동 시기에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러시아 사할린 섬, 일본, 타이완, 중국 북동부, 영국 등지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43~51㎝이고, 몸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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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의 왕암저수지와 가야곡면·부적면의 탑정저수지에 서식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원앙은 전국의 산간 계류에서 번식하는 흔하지 않은 텃새이나, 겨울에는 겨울을 나려는 무리들이 내려옴으로 봄·가을 이동 시기에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러시아 사할린 섬, 일본, 타이완, 중국 북동부, 영국 등지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43~51㎝이고, 몸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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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서 오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원오산」은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 원오산이란 산이 있다. 조선 전기에 시조를 읊으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왕족(王族)이 있었다. 왕족은 풍류를 즐기며 시조를 읊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저기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 시조를 읊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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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원풍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4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논산의 민속』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때의 일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일대에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논밭의 곡식이 타들어가고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졌다. 농민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민심도 흉흉해져 좀도둑이 극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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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에 있는 조선 말기 원항교를 재건하면서 세운 비석. 채운면 야화리 방축천 위를 지나는 호남선 철교 아래 북쪽에 조선시대의 다리인 원항교가 있고, 다리의 동쪽에 원항교 개건비가 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1900년(고종 37) 4월에 큰비로 원항교가 무너지자 군수 이범선의 주도로 온 고을 사람들이 힘과 재물을 모아 다리를 개건하고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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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에 있는 조선시대 돌다리. 다리 앞에 대리석으로 된 원항교 개건비(院項橋改建碑)가 서 있는데, 비문에 따르면 1900년에 4명의 승려가 기금을 내고 민간인이 협조하여 모금한 4,130냥으로 다리를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논산 원목다리(원항교)가 처음 세워진 때는 강경의 미내다리와 같은 시기인 1730년경으로 추정된다. 논산 원목다리는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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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아버지는 이조참의를 역임한 강찬(姜燦)이고, 외할아버지는 김은휘(金殷輝)이다. 딸이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이 되었다. 큰아버지인 강돈(姜焞)에게 입양되었다. 강석기는 김장생의 문하에서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예학(禮學)을 공부하였으며, 훗날 입신양명하여 김장생 문하의 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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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의례적으로 거행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이란 예부터 전해지는 농경사회의 풍속이며, 매년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慣例)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와 의례를 가리킨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새로운 시작과 더불어 농사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한해의 시작을 조상께 고하고 본격적인 농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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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덕곡리·수락리에 걸쳐 있는 산. 월성봉은 월성봉이라는 봉우리 이름보다 월봉성, 다리성 등 성채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고려 때 토적(土賊) 달리(達里)가 이곳에 웅거하며 노략질이 심하여 관군이 포위한 지 한 해가 지나서야 겨우 토벌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토성(土城)에 달이 비치면 그 고요함이야말로 숨을 죽이는 듯했고, 성벽에 비친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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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월오리를 흘러 노성천에 합류되는 하천. 계룡산지 서편은 남북 방향의 구조곡이 형성되어 있으며, 월산천은 이 구조곡의 서쪽 산지를 개석하고 있다. 노성천과 합류 지점에 중평들로 불리는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2010년 말 현재 월산천은 본류는 금강이고, 제1지류는 논산천이며, 제2지류는 노성천이다. 유로 연장은 3.69㎞이며, 유역 면적은 6.3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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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성벽에 비추어진 달빛의 수려함이 으뜸이라 하여 월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원북면(院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상리(東上里)·서상리(西上里)·송촌리(松村里)와 삼산면(三山面) 대하리(大下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월성리라 하여 성동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2월 17일 월성3리가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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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월성리 월명산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월성리 산성이 자리한 월성리 일대는 논산 강경 일대에 펼쳐져 있는 이른바 논강평야의 일부로, 주변 지역이 드넓은 평야로 되어 있다. 이 평야 지대에 해발 70m의 월명산이 있다. 월성리 산성은 월명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월명산은 해발 70m에 불과하지만 주변 지역이 온통 평야로 되어 있어 주변을 손쉽게 내려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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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덕곡리·수락리에 걸쳐 있는 산. 월성봉은 월성봉이라는 봉우리 이름보다 월봉성, 다리성 등 성채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고려 때 토적(土賊) 달리(達里)가 이곳에 웅거하며 노략질이 심하여 관군이 포위한 지 한 해가 지나서야 겨우 토벌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토성(土城)에 달이 비치면 그 고요함이야말로 숨을 죽이는 듯했고, 성벽에 비친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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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월성봉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달이산성이 있는 월성봉의 월(月)과 달이(達伊)는 같은 음이며, 성(星)은 성(城)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논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0㎞ 정도 가면 연산면 연산리에 이른다. 여기서 동쪽으로 난 지방도 68호선를 타고 다시 12㎞ 정도 더 가면 벌곡면 수락리 신고운마을이 나온다. 달이산성은 수락리 신고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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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는 계룡산(鷄龍山)의 모양이 마치 달과 같이 보인다고 하여 다리실 또는 월오동이라 불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월오면(月午面) 지역으로, 산성(山城)·원동(院洞)·주막(酒幕)·학당(鶴塘)·통산(通山)·중리(中里)·낙동(樂洞)·신리(新里)·충보(忠洑)·당산(當山)·산소(山所)·왕정(旺井)의 12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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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는 계룡산(鷄龍山)의 모양이 마치 달과 같이 보인다고 하여 다리실 또는 월오동이라 불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월오면(月午面) 지역으로, 산성(山城)·원동(院洞)·주막(酒幕)·학당(鶴塘)·통산(通山)·중리(中里)·낙동(樂洞)·신리(新里)·충보(忠洑)·당산(當山)·산소(山所)·왕정(旺井)의 12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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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월은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 말기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의 유혼을 달래기 위해 절을 지었다는 설을 바탕으로 백제 말기나 통일신라기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절의 역사를 증명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으나, 경내에 창건 당시 심은 것으로 보이는 괴목의 수령으로 미루어 상당히 오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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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강복중이 나라를 걱정하는 심정을 노래한 가사. 강복중(姜復中, 1563~1639)의 자는 재기(載起), 호는 청계(淸溪)이다. 벼슬은 참봉(參奉)에 그쳤으며, 일생을 시골에 묻혀 논산 지역에서 지냈다. 강복중은 1639년(인조 17)에 칠십이 넘은 노구의 몸으로 상경하여 서울 궁궐을 두루 구경하고 고향인 논산으로 돌아와 「위군위친통곡가」를 지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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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여흥. 자는 분충(奮忠). 할아버지는 여원군 민백훤(閔伯萱)이고, 아버지는 좌찬성 여강군 민수산(閔壽山)이다. 여흥민씨 위양공파의 파조이다. 민발은 1437년(세종 19)에 음보로 내금위에 속하였다가 여러 벼슬을 거쳐 부사직에 이르렀다. 1450년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3년(단종 1)에는 사복시대호군으로 있다가 무과에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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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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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의 윗뜸, 아랫뜸, 망가리는 청주양씨(淸州楊氏), 함평이씨(咸平李氏), 전주이씨(全州李氏)의 터전이기도 하다. 주곡리에 처음 터를 잡은 것은 윗뜸의 청주양씨로 전해지는데 입향조인 첨정공 양춘건이 중종 연간에 신도내에서 이곳 주곡리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그 후, 터를 잡고 살던 청주양씨와의 혼인으로 인해 함평이씨와 전주이씨가 각각 주곡리에 들어와 아랫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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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와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산명재와 능선을 함께하며 상산티[上山峙]로 불렸기 때문에 윗산명재라고 불렸다. 윗산명재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며,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북쪽에 산명재, 남쪽에 아랫산명재가 있다. 윗산명재의 서북쪽 사면에는 계룡산 남부 능선에서 발원한 주천과 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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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초명은 유(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 청송당(靑松堂). 도응이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 은거하면서 성주도씨가 충청도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아들 도사면(都思勉)은 다시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로 낙향하였고, 손자 도경손(都慶孫)은 여산송씨의 사위가 되어 처가에서 가까운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로 이주하여 세거하였다. 도응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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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할아버지는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수안군수를 지낸 유대경(兪大敬)이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유양증(兪養曾)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병조참판 남이신(南以信)의 딸이며, 부인은 세종대왕 9세손 이산악(李山岳)의 딸 전주이씨(?~1667)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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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공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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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중(敬仲), 호는 남애(南厓)·유당(柳塘). 증조할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윤혜교(尹惠敎)이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해주판관으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5년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부수찬·사간원헌납 등을 거쳐 1748년 홍문관부교리·홍문관수찬,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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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던 명절. 유두(流頭)인 음력 6월 15일은 흔히 유월명절이라고 한다. 유두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로, ‘미끈유월’이라는 말처럼 이맘때가 되면 두레의 김매기로 짬이 없다. 밭농사도 마무리 손길로 분주한 때이다. 현재 유둣날의 세시풍속은 오래 전에 소멸되어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는 논산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별미로 먹던 밀국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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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던 명절. 유두(流頭)인 음력 6월 15일은 흔히 유월명절이라고 한다. 유두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로, ‘미끈유월’이라는 말처럼 이맘때가 되면 두레의 김매기로 짬이 없다. 밭농사도 마무리 손길로 분주한 때이다. 현재 유둣날의 세시풍속은 오래 전에 소멸되어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는 논산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별미로 먹던 밀국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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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던 명절. 유두(流頭)인 음력 6월 15일은 흔히 유월명절이라고 한다. 유두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로, ‘미끈유월’이라는 말처럼 이맘때가 되면 두레의 김매기로 짬이 없다. 밭농사도 마무리 손길로 분주한 때이다. 현재 유둣날의 세시풍속은 오래 전에 소멸되어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는 논산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별미로 먹던 밀국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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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계룡산 지류에 서식하는 네발나비과에 속하는 나비. 앞날개의 편 길이는 약 6.7~7.3㎝이다. 수컷은 암컷에 비하여 약간 작고 앞날개와 뒷날개 모두 주황갈색 바탕에 흑색의 무늬가 뚜렷하다. 암컷은 붉은 자주색 바탕에 대체로 어두운 색채가 깔려 있어 쉽게 구별된다. 암수 모두 앞날개의 끝부분에 투명한 막질의 무늬가 있어 유리창나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성충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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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휴계(休溪).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아버지는 유신민(柳信民)이다.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종백부이며, 유문원(柳文遠)은 종질이다. 유무는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연산에 칩거하였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잠시 찰방에 봉직한 후 곧 사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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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숙부이며, 유무(柳懋)의 종질이다. 유문원은 원래 유무가 배향된 연산의 휴정서원(休亭書院)에 배향되어 있었다. 휴정서원은 처음에 유무만 배향하였으나 뒤이어 유문원을 배향하였고, 1735년에는 이항길(李恒吉)을, 1751년에는 김정망(金廷望)과 권수를 배향하였다. 휴정서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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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명재 윤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3㎞를 가면 병사교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유봉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에 유봉 영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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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 영당에서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지내는 윤증 추모제.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윤증 사후 1744년(영조 20)에 이르러 윤증 문인들이 스승의 영당과 경승재를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춘추로 제향을 봉행하여 왔는데, 현대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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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1663년(현종 4) 35세에 공경(公卿)과 삼사(三司)가 함께 그를 천거하였다. 이듬해 내시교관에 제수되고, 이후 공조랑·사헌부지평에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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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연의 묘소 앞에 세워진 묘표. 유연(柳淵)은 통정대부를 지내고 노성면 병사리로 낙향하여 살았다. 아들이 있었지만 후사가 없었다. 두 딸을 두었는데 한 명은 청주한씨에게, 다른 한 명은 파평윤씨에게 출가하여 재산을 두 딸에게 분재하였다. 병사리에는 파평윤씨들이 오래전부터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연의 묘와 큰사위인 한여헌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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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초나 정월 14일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의례. 논산 지역에서 용왕제는 흔히 요왕제·유왕제·유황제·샘고사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용왕이란 수신(水神)의 상징적인 존재인 용(龍)을 지칭한다. 따라서 용왕제를 지내는 장소는 물과 관련된 곳, 즉 마을의 공동우물을 비롯하여 깨끗한 샘이나 시냇물, 방죽, 계곡 등 매우 다양하다. 용왕제는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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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던 명절. 유두(流頭)인 음력 6월 15일은 흔히 유월명절이라고 한다. 유두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로, ‘미끈유월’이라는 말처럼 이맘때가 되면 두레의 김매기로 짬이 없다. 밭농사도 마무리 손길로 분주한 때이다. 현재 유둣날의 세시풍속은 오래 전에 소멸되어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는 논산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별미로 먹던 밀국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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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유치만은 1919년 3월 12일 손필규(孫弼奎), 김태오(金泰午), 이백순(李伯純), 이근옥(李根玉) 등이 주도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논산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강경에서부터 논산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논산읍내에 이르러 시위대가 1,000 여명으로 불어나자 일본 경찰은 실탄을 발사하는 등 무력 진압에 나섰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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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학령기 전 어린이 교육 담당 기관. 유치원은 「교육법」에 의해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하기 전까지의 유아를 교육하고자 설치, 운영되는 교육부 관할의 교육기관이다. 유치원은 재정 형태에 따라 공립과 사립으로 구분된다. 공립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주를 이루며, 사립은 개인, 법인, 종교단체 등 설립 주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다. 세계 최초의 유치원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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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박종후이다. 박성일은 1750년(영조 26) 식년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는데, 『사마방목(司馬榜目)』에 거주지가 니산(尼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정에서 박성일의 아버지가 충신의 손자임을 알고 재릉참봉으로 특채하였다. 그후 평시서직장을 거쳐 귀후서별제·귀후서도정·귀후서도랑을 지내고 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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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감곡리에 있는 폴리에틸렌 제품 제조업체. 1990년 유니온포리마케미컬(주)로 창업하였다 1997년 유피씨(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5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자본총금액은 52억 8769만 원, 매출액은 422억 5055만 원이며, 일본·미국·유럽·중국·동남아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유피씨에서는 1회용 기저귀와 생리대에 사용되는 통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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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초나 정월 14일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의례. 논산 지역에서 용왕제는 흔히 요왕제·유왕제·유황제·샘고사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용왕이란 수신(水神)의 상징적인 존재인 용(龍)을 지칭한다. 따라서 용왕제를 지내는 장소는 물과 관련된 곳, 즉 마을의 공동우물을 비롯하여 깨끗한 샘이나 시냇물, 방죽, 계곡 등 매우 다양하다. 용왕제는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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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육곡감리교회의 시작은 논산 지역의 토착 세력이었던 부여서씨 서기훈·서일선·서성선 등 종중의 청년들과 장남진 등이 1904년 3월 15일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직접 남장로교의 황화정교회와 접촉한 다음 예배인도자들을 초청하여 대종가(大宗家) 집을 빌려 예배를 올리면서 설립되었다. 초기 육곡감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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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시내에서 가야곡 방향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육곡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정류장 뒤편에 있는 복지회관이 보인다. 이곳은 2008년 10월부터 주민자치센터가 들어서 스포츠댄스, 풍물, 노래교실에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육곡리 뿐만 아니라 가야곡면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공간인 ‘에덴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가야곡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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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제 때 덕은(德恩)이란 고을이 있었던 곳으로. 태봉산을 등지고 뻗어 내려온 야산에 낮은 골짜기 6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백제의 덕은고을이 있던 곳으로 조선 3대 태종 때 은진(恩津)에 속했다가 상두면(上豆面)에 편입되어 여수울·여술·육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두면(下豆面) 야촌리(野村里)의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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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귀걸이. 금동제 이식은 육곡리 고분군 가운데 2호분과 6호분에서 각각 한 쌍씩 출토되었다. 모두 같은 형태로 동지금장(銅枝金裝)된 중간식이나 수하식이 전혀 없는 고리형의 세환식이다. 백제고분에서 일반적으로 출토되는 형태이다. 금동제 이식은 주로 횡혈식 석실분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육곡리 고분군 출토 금동제 이식은 백제 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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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관모(冠帽) 장신구. 육곡리 고분군 7호분에서 출토된 은제 장신구로, 은판의 가운데를 접어 꽃봉오리와 줄기 모양이 나도록 오려서 만들었다. 곁가지 없이 중심 줄기를 기준으로 중앙의 꽃봉오리와 좌우 각각 2개의 꽃봉오리를 포함하여 모두 5개의 꽃봉오리가 있다. 줄기의 끝부분은 모자의 정면 테두리에 꽂히는 부분이다. 은제 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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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관모(冠帽) 장신구. 육곡리 고분군 7호분에서 출토된 은제 장신구로, 은판의 가운데를 접어 꽃봉오리와 줄기 모양이 나도록 오려서 만들었다. 곁가지 없이 중심 줄기를 기준으로 중앙의 꽃봉오리와 좌우 각각 2개의 꽃봉오리를 포함하여 모두 5개의 꽃봉오리가 있다. 줄기의 끝부분은 모자의 정면 테두리에 꽂히는 부분이다. 은제 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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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서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육곡리는 시냇물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골짜기가 있다 하여 육곡(六谷) 또는 여섯 개의 자연마을이 ‘육두레’를 형성하는 까닭에 육곡이라 부른다. 육두레란 서풍골·산정너머·행정·고사뜸(음지뜸)·큰두레·양지뜸 등을 일컫는다. 산신제와 다리제는 이들 여섯 마을이 매년 음력 정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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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과수원으로 개간된 곳에 기와 가마 3기가 있었음이 확인되었으나 지표면 조사에서는 가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논으로 개간된 가마터 전방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기와 조각이 수습되었다. 기와 조각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주로 선조문과 청해파문 무늬가 새겨진 회청색 경질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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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서씨 집안의 대표적 인물이자 육곡리 봉례공파 후손들의 자랑인 서익 선생은 논산에 이거해서 뿌리를 내리고 대표적인 큰 가문으로 성장하는데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서익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 또는 만죽헌(萬竹軒)이다. 1542년 태어나 1569년 처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던 중 1585년 의주 목사 재직 당시 정여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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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고종 2)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 세거한 서필원의 문집. 서필원(徐必遠, 1614~1671)의 아들인 서경조(徐敬祖)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중에서 저자의 소장(疏章) 70편과 계사(啓辭) 12편을 찾아내고, 또한 남은 시문을 수습해서 선사(繕寫)하여 집안에 보관해 두었다. 1790년(정조 14) 서필원의 증조부인 서익(徐益)의 『만죽헌집(萬竹軒集)』이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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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 훈련병 양성소. 육군훈련소는 6·25 전쟁 당시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가 훈련장과 병영 시설 등 제반 여건이 미비하고 보급 및 수송에 불편함이 있어, 기본전투 수행 능력을 구비한 보충 병력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1951년 11월 1일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으며, 1960년 4월 1일에는 제2군사령부에 예속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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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 훈련병 양성소. 육군훈련소는 6·25 전쟁 당시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가 훈련장과 병영 시설 등 제반 여건이 미비하고 보급 및 수송에 불편함이 있어, 기본전투 수행 능력을 구비한 보충 병력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1951년 11월 1일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으며, 1960년 4월 1일에는 제2군사령부에 예속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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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있는 6·25전쟁 참전 용사들을 위한 보훈단체. 6·25참전전우회 논산시지회는 6·25전쟁을 재조명하여 참전용사의 명예 선양과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해외 참전 국가의 유대를 강화하며, 전후 세대의 국가관 확립 및 호국안보 의식을 고취시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9년 3월 6·25참전호국동지회가 결성되었다. 1990년 3월 창군 및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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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시에서 익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9.71㎝ 가면 강경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약 0.72㎞ 가다보면 황산리가 나온다. 죽림서원은 황산리에서 북쪽에 솟은 동산을 두고 금강 쪽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세워졌다. 1663년(현종 4)에 중건하였으며 그로부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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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경교의 묘비. 윤경교는 파평인으로 자는 양일, 호는 장호이다. 윤황의 증손이며, 윤변의 아들로 1632년(인조 10) 9월 18일에 태어났다. 1657년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1663년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지평에 이르렀으며, 1670년(현종 11) 문학이 되었다. 남인 허적을 탄핵하다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1681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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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노종 오방파 중 설봉공파로 5대조는 윤순거(尹舜擧)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덕포 윤진(尹搢), 할아버지는 윤무교(尹懋敎)이다. 아버지는 윤동휴(尹東休), 외할아버지는 권필형(權弼衡)이다. 1783년(정조 7) 식년시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이듬해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8년 홍문관교리로서 경기감사 김사목(金思穆)과 파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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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치승(稚繩), 호는 소곡(素谷). 노종파의 설봉공파로 5대조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수찬공 윤절(尹晢)이다. 아버지는 윤동로(尹東輅)이고,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목사 양익주(陽翊周)의 딸이다. 이조판서 윤동규(尹東奎)에게 입후하였다. 부인은 청주한씨(淸州韓氏)로 한사만(韓師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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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이술(而述). 증조부는 윤절(尹晢), 조부는 윤인교(尹仁敎)이다. 아버지는 윤동로(尹東輅)이며, 어머니는 이익주(李翊周)의 딸이다. 부인은 이하집(李夏集)의 딸이다. 1726년(영조 2)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입학하여 서재(西齋) 장의로 활동하였다. 1733년 영조가 성균관에 거둥하여 시학례(視學禮)를 베풀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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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교병은 1881년 8월 28일 현재의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17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말부터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의 연락요원인 나상필과 함께 충청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650환을 수합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1921년 4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공갈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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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출신의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윤백남은 1888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서 태어났다. 윤백남은 예명이며 본명은 윤교중(尹敎重), 아명은 윤학중(尹學重)이다. 그는 1901년 경성학당 중학부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일본의 와세대대학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에 진학하였다가 동경고등상업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그는 동경 유학 시절에 일본 현대문학을 섭렵하면서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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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평(坡平). 팔송(八松) 윤황(尹煌)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예절을 익히고 실천하여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다. 장성하여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비록 집안이 가난하여도 부모를 효성으로 모심이 남달라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자 묘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살았다. 묘소는 논산시 광석면 사월리에 있다.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효자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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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서 아흔아홉 칸 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윤대감과 아흔아홉칸집」은 2005년 논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때에 지금의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노성초등학교가 있는 곳에 윤대감이라고 하는 큰 부자가 아흔아홉 칸이 되는 큰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윤대감은 재력도 풍부하고 세도도 당당하여 전국에서 그를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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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파평윤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분재기. 「윤돈 화회문기」는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 입향조인 윤돈(尹暾)과 관련되어 당시 양반가의 경제 사정을 자세하고도 정확히 전해 주는 유일한 문서이다. 「윤돈 화회문기」는 총 세 부가 만들어져 재산을 상속받은 각각의 집안에 보관되어 왔으나 두 부는 모두 소실되고 한씨 집안에서 보관하던 한 부만이 전해져 오다가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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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중(敬仲), 호는 남애(南厓)·유당(柳塘). 증조할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윤혜교(尹惠敎)이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해주판관으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5년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부수찬·사간원헌납 등을 거쳐 1748년 홍문관부교리·홍문관수찬,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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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동만은 1898년 현재의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서 출생하여 자전거 상점을 운영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강경 지역의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 엄창섭(嚴昌燮)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이른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윤동만은 엄창섭, 추병갑(秋炳甲), 고상준(高相俊) 등 시위주도자들과 함께 10일 오후 3시가 되자 옥녀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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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정(士正), 호는 일암(一庵). 증조할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 할아버지는 윤증(尹拯)이다. 아버지는 대사헌를 지낸 윤행교(尹行敎)이며,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장령 송기후(宋基厚)의 딸이다. 1722년(경종 2)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사옹원주부·사헌부지평·한산군수·홍주목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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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임(士任). 증조할아버지는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윤덕교(尹德敎)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으로 1713년(숙종 39) 진사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사간원사간을 역임하였다. 이어 의정부사인·사간원대사간·공조참판 등을 지냈고, 1753년(영조 29) 한성부판윤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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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봉동리에서 윤두병의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조선 말기 연무읍 봉동리에 윤두병이란 소년이 살았다. 윤두병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며 지냈다. 윤두병은 총명하고 슬기로운 소년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남달리 지극하였고 책 읽기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장차 훌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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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 호는 석호(石湖).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세자시강원설서·예조좌랑·병조좌랑을 거쳐 제천현감·춘추관수찬관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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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문거의 묘비. 윤문거의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며, 본관은 파평으로 팔송 윤황의 아들이다. 김집의 문인으로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었고, 1633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과의 화의가 그릇됨을 주장하고 끝까지 싸워 나라를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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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문거의 묘소. 윤문거는 본관이 파평(坡平)이고 자는 여망(汝望)이며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의 딸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과 교유하였으며, 조익(趙翼), 김상헌(金尙憲) 등에게도 배웠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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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상정마을에 있는 윤문거의 신도비. 윤문거의 본관은 파평으로,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다. 대사간 윤황의 아들로 태어나 1633년(인조 1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친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임금을 호종하였다. 1639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상을 마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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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출신의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윤백남은 1888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서 태어났다. 윤백남은 예명이며 본명은 윤교중(尹敎重), 아명은 윤학중(尹學重)이다. 그는 1901년 경성학당 중학부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일본의 와세대대학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에 진학하였다가 동경고등상업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그는 동경 유학 시절에 일본 현대문학을 섭렵하면서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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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태병은 1889년 9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월 백남식·임종귀 등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여 중국 길림 지방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 단체 북로군정서를 도와 조국 독립을 달성하자는 데 뜻을 같이 두었다. 이를 위하여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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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긍은 1893년 11월 9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93번지[상월로 610-32]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0월 11일 광복단(光復團) 전라, 경상, 충청 3도의 책임자 김국경과 함께 조선총독부 정무총감(政務總監)을 암살하기 위해 논산에 온 충남지단장 박재옥을 만나 광복단 단원으로 가입하였다. 이때 충남지단 통신원으로 임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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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기는 1889년 5월 3일 현재의 논산시 광석면 천동리 17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월 중국 길림 지방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 단체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군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충청남도 지역에서 백남식, 임종귀, 윤태병 등과 함께 비밀조직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한 뒤 전국을 다니며 인쇄물 배포를 통해 독립과 항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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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원고개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윤상정의 정려. 윤상정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자는 익삼(益三)이며, 생원에 합격한 인물이다. 어머니가 병으로 누웠을 때 항상 어머니의 분뇨를 직접 처리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1891년(고종 28)에 명정하여 효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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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원고개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윤상정의 정려. 윤상정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자는 익삼(益三)이며, 생원에 합격한 인물이다. 어머니가 병으로 누웠을 때 항상 어머니의 분뇨를 직접 처리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1891년(고종 28)에 명정하여 효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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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길보(吉甫), 호 미촌(美村)·노서(魯西)·산천재(山泉齋).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윤문거(尹文擧)가 형이며, 윤증(尹拯)이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형 윤문거와 함께 급제하였다. 1636년 청나라 사신이 입국하자 성균관의 유생들을 모아, 사신의 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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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공주(公州). 아버지는 이장백(李長白)이며, 남편은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로서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윤선거 처 공주이씨는 윤선거에게 시집을 와서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신을 하였다. 청군의 공격으로 강화도가 함락되고 포로로 잡힐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자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자결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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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선거 처 공주이씨에게 내려진 정려. 노서 윤선거(1610~1669) 처 공주이씨는 공주의 토성이자 명문가인 생원 이장백(李長白)의 딸로 태어나 19세가 되던 1626년(인조 4)에 윤선거와 혼인하였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편 윤선거와 함께 강화도로 피난하였는데, 1637년 강화도가 함락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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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명숙(明叔), 호는 설봉(雪峰). 할아버지는 윤돈(尹暾),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다. 훗날 설봉공파를 이루었다. 1590년(선조 2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3년 아버지 윤창세가 죽자 시묘를 살았다. 1600년(선조 33)에 능참봉(陵參奉)을 제수 받았으며, 160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임명되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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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수의 묘표. 윤수는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장남이다. 자는 명숙, 호는 운봉으로, 아들이 없어 윤황의 아들 윤순거가 양자로 들어와 대를 이었다. 명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죽주도호부사를 지냈고 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윤수가 죽은 지 17년 지났을 때 묘표를 세워 자손들이 알아보도록 하게 해달라는 윤덕요의 요청에 윤순거가 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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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로 당대의 명유인 성혼(成渾)의 딸이다.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었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아버지 윤황이 척화 죄로 귀양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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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순거의 묘역.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煌)이나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윤순거는 파평윤씨의 정신적 전통과 인물 양성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파평윤씨 종학당을 건립하고 집안의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병사 종중과 규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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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순거의 신도비. 윤순거(1596~1668)는 자는 노직(魯直)이고, 호는 동토(童土)이다. 윤황의 아들로서 어려서는 성문준에게 수학했고, 시는 강항에게, 예는 김장생에게 배웠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아버지 윤황이 귀양가고, 숙부는 강화도 싸움에서 순절하자 집안과 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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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봉곡서원에 있는 조선시대 선비 윤용병의 청렴비. 윤용병은 청렴한 선비로, 도박과 내기를 싫어하고 청렴하게 살았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은진현 유림들이 연무읍 고내리 봉곡서원 바깥마당에 다른 비들과 함께 나란히 청렴비를 세웠다. 비의 형식은 귀접이 단갈로, 비의 규모는 높이 100㎝, 폭 40㎝, 두께 16㎝이다. 비의 앞면에 ‘사인윤용병견도청렴비(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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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 아버지는 시강원필선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 윤주(尹拄)·윤유(尹揄)·윤부(尹拊)와 손자 윤시교(尹時敎)는 학행이 높기로 이름이 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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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이병은 1885년 11월 1일 현재의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영선사주사(營繕司主事)로 있을 때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여러 차례 복수토역소(復讐討逆疏)를 올렸다. 한편 고종의 밀령을 받아 명성황후 시해의 진상을 조사 보고하고 정부 내의 친일세력을 숙청하려다 실패했다. 1903년 5월에는 청국(淸國) 동순태(同順泰)의 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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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찬(燦), 자는 정숙, 호는 후촌(後村).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형은 윤황(尹煌)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이후 승문원저작이 되었다. 1613년 유생 이위경(李偉卿)이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아 폐모소를 올렸을 때 한림 엄성(嚴惺)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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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전의 신도비. 윤전은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아들이고 팔송 윤황의 아우이다. 성혼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하여 왕을 공주까지 호송하여 공조정랑이 되었다. 정랑을 지내다가 필선이 되었고, 병자호란을 만나 강화도에서 전사하였다. 윤전은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충헌의 시호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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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한송(寒松). 증조할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할아버지는 팔송(八松) 윤황(尹煌)이다. 아버지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이고,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구완(九畹) 이춘원(李春元)의 딸이다.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와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의 조카이다. 부인은 남원윤씨(南原尹氏)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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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절과 부인 남원윤씨의 묘표.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구찬을 지낸 윤절과 그의 부인인 남원윤씨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표로서, 1716년(숙종 42)에 묘표를 세워 묘의 주인을 밝히고 그의 행적과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웠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2.8㎞ 정도 가면 도로 왼쪽에 병사리 1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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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1663년(현종 4) 35세에 공경(公卿)과 삼사(三司)가 함께 그를 천거하였다. 이듬해 내시교관에 제수되고, 이후 공조랑·사헌부지평에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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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명재 윤증의 고택. 논산 명재 고택은 논산시청에서 약 6㎞ 북쪽 지점의 노성면사무소 인근 교촌리 노성산 남쪽 기슭에 노성향교, 노성 궐리사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논산 명재 고택은 조선 후기 숙종 대에 건립되어 후대에 수리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안채와 사랑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멸실되었던 사당은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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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증 종가에서 행해지는 기제사. 윤증(尹拯, 1629~171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할아버지는 팔송 윤황(尹煌)이며 아버지 미촌 윤선거(尹宣擧)는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일찍이 송시열(宋時烈)·윤휴(尹鑴)·박세채(朴世采) 등 당대의 명유들과 함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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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학자 윤증이 그려진 조선 후기 초상화 5점과 문서. 윤증 초상 일괄은 조선 중기 송시열(宋時烈)과 쌍벽을 이루었던 문신 윤증(尹拯)을 그린 초상화 5점과 『영당기적(影堂紀蹟)』 1점을 말한다. 윤증 집안에서 관리하던 윤증 초상 일괄은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49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충남역사박물관에 기증되어 그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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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의 꾸밈새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위치한 윤증의 고택(古宅)에서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였던 그의 유품이 다량 발견되면서 개략적으로나마 조선 후기 사대부의 복식(服飾)과 이를 통한 생활 및 풍속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윤증의 유품들은 윤증의 생전 고고한 모습과 숨결을 느끼게 함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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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노종파 윤증가의 책판. 윤증가 책판은 윤선거의 『노서유고』를 비롯하여 『명재연보』, 『가례원류』 등을 널리 보급하고 길이 보존하고자 만든 것이다. 198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책판은 『노서유고』 573판, 『명재연보』 119판, 『명재언행록』 45판, 『일암유고』 111판, 『의례문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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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노종파 윤증가에서 사용했던 물건들과 문중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로 성리학과 예학에 밝고 학업과 행실이 뛰어났다.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마다하고 논산군 이산에 머물며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1970년 12월 29일 중요민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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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경(子敬), 호는 덕포(德浦). 아버지는 장령 윤순거(尹舜擧)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관찰사 함춘원(咸春元)의 딸이다. 1652년(효종 3)에 생원시에 합격한 뒤 10년이 지나 빙고별제(氷庫別提)와 종부직장(宗簿直長)·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상의주부(尙衣主簿) 등을 지냈다.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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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진의 신도비. 윤진은 1631년(인조 9)에 태어나 1698년(숙종 24)에 사망하였다. 윤진의 자는 자경이고 호는 덕포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윤순거의 아들로 1652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빙고별검으로 있다가 1666년(현종 7)에 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평, 이조좌랑, 수찬, 병조정랑 등을 거쳐 부교리가 되었다. 왕에게 붕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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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흥백(興伯). 고려 태사 윤신달(尹莘達)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대사성 윤탁(尹倬)이고, 아버지는 윤돈(尹暾)이다. 윤창세는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첫째는 윤수(尹燧)로 설봉공파를 이루었고, 둘째는 윤황(尹煌)으로 문정공파, 셋째는 윤전(尹烇)으로 충헌공파, 넷째는 윤흡으로 서윤공파, 다섯째는 윤희(尹熺)로 전부공파를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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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창세의 묘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는 노종 5방파의 아버지이며, 파평윤씨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윤창세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윤창세는 처음 논산으로 이거한 파평윤씨 윤돈의 아들로 노성면 병사리로 처음 터전을 옮긴 인물로서, 평소 효심이 깊어 자손과 제자들로부터 효렴공(孝廉公)이라 불렸으며, 나라에 대한 충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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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시대 파평윤씨 묘역과 묘비. 윤창세 선생 묘소 일원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가 진중에서 전사하여 훗날 이조참판으로 추증된 윤창세의 묘소가 제일 먼저 자리 잡은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와우형(臥牛形)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묘소가 마련된 이후 윤창세의 자손들은 노종 5방파로 발전하였다. 묘역에는 노종 5방파 직계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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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태병은 1889년 9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월 백남식·임종귀 등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여 중국 길림 지방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 단체 북로군정서를 도와 조국 독립을 달성하자는 데 뜻을 같이 두었다. 이를 위하여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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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태병은 1889년 9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월 백남식·임종귀 등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여 중국 길림 지방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 단체 북로군정서를 도와 조국 독립을 달성하자는 데 뜻을 같이 두었다. 이를 위하여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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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출신의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윤백남은 1888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서 태어났다. 윤백남은 예명이며 본명은 윤교중(尹敎重), 아명은 윤학중(尹學重)이다. 그는 1901년 경성학당 중학부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일본의 와세대대학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에 진학하였다가 동경고등상업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그는 동경 유학 시절에 일본 현대문학을 섭렵하면서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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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장문(長文). 증조할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윤선거(尹宣擧)이다. 아버지는 소론의 영수인 우의정 윤증(尹拯)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한성부우윤 권시(權諰)의 딸이다. 부인은 병조좌랑 박태소(朴泰素)의 딸이다.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록에 선발되었다.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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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행교의 묘표. 윤행교의 묘는 원래 공주 작곡에 있던 것을 전주 팔봉산 아래로 이장하였다가 후에 다시 지금의 노성면 하도리로 이장하였다. 윤행교 묘표는 묘를 이장한 후 1697년(숙종 23)에 윤행교의 가계, 성품, 행적을 기록하여 후손들이 본받을 수 있게 하였다. 공주-논산 간 구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노성면 하도리 노성비행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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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홍중은 1875년 8월 18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257번지[노성로 321-13]에서 출생하였다. 1898년 일제의 강제 단발령에 저항하여 항일시위를 한 이후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07년에는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고 결사대를 구성하여 항일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때 윤홍중은 체포되어 1개월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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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홍중은 1875년 8월 18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257번지[노성로 321-13]에서 출생하였다. 1898년 일제의 강제 단발령에 저항하여 항일시위를 한 이후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07년에는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고 결사대를 구성하여 항일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때 윤홍중은 체포되어 1개월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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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아버지는 윤창세이며, 장인은 성혼이다. 슬하에 8형제를 두었는데 후손들이 매우 번성하여 14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윤순거·윤문거·윤선거·윤증 등 호서 유림의 큰 줄기를 이룬 이들이 모두 이 가계에서 나왔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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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황의 묘비.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파평윤씨 노종 5방파 중의 한 사람인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의 묘비로, 가계와 행적, 그가 올렸던 상소문의 내용들이 새겨져 있다. 윤황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글씨를 잘 썼다. 인조 때 문신으로 활약하였는데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 등과 척화를 강력히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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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소와 묘비.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장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 봉상시정(奉常寺正)·군기감정(軍器監正)을 거쳐 동부승지·이조참의·전주부윤을 지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과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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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역. 윤황은 노성면 병사리에 세거의 기반을 마련한 윤창세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노성의 파평윤씨 가문은 우국충절의 사족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윤창세의 다섯 아들은 노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노성 오방파로 불렸으며, 오방파 중에서도 윤황의 직계들이 가장 번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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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파평윤씨 문정공파 종중에서 행하는 윤황의 불천위제사. 윤황(尹煌, 1572~163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01년 전적(典籍)에 이어 감찰·정언(正言)을 지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사간으로서 극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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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고택. 윤황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자는 덕요(德耀)이고, 호는 팔송(八松)으로,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주화(主和)를 반대해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 등 주화론자의 유배를 청하고, 항장(降將)은 참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화는 항복이라고 했다가 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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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밤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해서 밤골이라 부르다가 후에 율리로 바뀌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직리(山直里)를 병합하고 율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광석면 율리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율1리와 율2리, 율3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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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이나 명절에 윷가락을 던지고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 윷놀이는 주로 마을회관이나 공터에 모여서 한다. 윷놀이에는 윷판과 윷이 필요한데, 논산 지역에서 사용되는 윷은 길이 15~20㎝쯤 되는 ‘장작윷’이다. 또한 길이 3㎝ 내외의 ‘종발윷’도 있다. 이는 윷가락을 작은 종지나 종발에 담아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다가 바닥에 뿌리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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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은골 또는 어은, 어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현리(沙峴里)·송리(三松里)·산소리(山所里)·일음리(日音里)·탄동리(炭洞里)·덕곡리(德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어은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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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붕어는 몸길이 20~43㎝에 이른다.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꼬리자루의 너비는 넓은 편이다. 머리는 짧고 눈은 작다. 콧구멍은 서로 맞붙어 있고 앞 콧구멍은 작다. 주둥이는 짧으며, 입은 작고 입술은 두껍다. 아래턱은 위턱보다 짧으며 편평한 후피습(後皮褶)이 앞 콧구멍의 주위에 솟아올라 있다. 뒷지느러미는 짧고, 등지느러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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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나는 바다빙어목 뱅어과에 속하는 물고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백어(白魚),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빙어(氷魚)로 기록되어 있다. 죽으면 몸 빛깔이 하얗게 변한다 하여 백어(白魚)라 하였다. 예부터 우리말로는 뱅어라고 불렀고, 어린 뱅어는 실 가닥처럼 생겨서 실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몸이 전체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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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고려 시대 불상. 은진 관촉리 비로자나석불입상은 높이 340㎝의 화강석으로 만든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이다. 낮은 육계(肉髻)를 지닌 머리는 윤곽이 뚜렷하며, 귀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풍만한 모습을 지녔는데, 이마의 정중앙에는 백호공이 선각되어 있고, 눈썹을 선명하게 음각으로 표현하였으며, 그 아래 은행알 형태의 눈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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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토양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은진농공단지는 농촌 유휴 인력을 산업 인력으로 활용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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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거정이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은진동헌을 소재로 지은 한시.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이다. 조선 전기의 학자로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약 등에 정통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저서에 『동인시화(東人詩話)』, 『동문선(東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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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있던 조선 후기 은진 미내에 석교를 세운 것을 기념한 비. 조선 전기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옛길이 있었고, 큰 냇물이 흘러 작은 돌다리를 놓아 통행하였다. 어느 해 큰 홍수가 나고 다리가 유실된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의 통행에 많은 불편을 주었다. 관청에서도 손을 대지 않자 이 고을 석설산과 송만운을 중심으로 황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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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원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은진송씨는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한다. 본래 은진송씨는 여산송씨의 시조인 송유익(宋惟翊)의 동생 송천익(宋天翊)에서 비롯되나 송천익 이후의 계보가 실전되어 송천익의 후손으로 고려 후기 판원사를 지내고 은진군에 봉해진 송대원을 시조로 해서 은진(현 논산시 은진면)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전한다. 은진송씨는 조선시대 재상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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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미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은진임씨는 임자미(林自美)를 시조로 하는데, 임자미는 고려 숙종 때의 인물로 본래는 평택임씨였으나 시진군에 봉해진 후 은진을 본관으로 삼아 분적하였다. 은진(현 논산시 은진면)은 조선시대 들어서 시진과 덕은이 합쳐 된 덕은이 세종 때 개칭된 이름이다. 임자미 이후 계보를 밝힐 수 없어 고려 후기 조청랑(朝請郞)·태상박사를 역임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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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이치를 탐구하는 어린이, 아름답게 표현하는 어린이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0년 4월 6일 은진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60년 4월 6일 성덕국민학교로 분리 개교하였으며, 1973년 12월 27일에는 시묘국민학교로 분리 개교하였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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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 은진초등학교에 있는 조선시대 귀부석. 은진초등학교 소재 귀부석은 은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두 그루의 고목 사이에 놓여 있다. 귀부석은 한 개의 석재에 조각되어 있는데, 아래 3분의 1 가량은 땅에 묻히는 부분으로 자연 석재 그대로 남아 있다. 머리는 90도 옆으로 돌린 형태로 눈, 코, 입, 이빨이 조각되어 있다. 입에는 구슬을 물고 있고, 눈과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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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논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2.36㎞ 가다 보면 은진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은진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0.75㎞ 가면 향교길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면 은진향교가 나온다. 은진향교는 15세기 익성군의 묘소가 있는 은진면 용산리에 세워졌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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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면. 조선 전기 덕은군과 시진현이 합하여 은진현(慇津縣)이 되었다. 덕은군은 백제시대에 덕근군(德近郡)이라 하던 것을 신라 경덕왕 때 덕은군(德殷郡)이라 개정하고 고려 전기에 다시 덕은군(德恩郡)이라 고쳤다. 시진현(市津縣)은 본래 덕은군(德殷郡)의 영현(領縣)으로 가지내현(加知奈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시진현이라 하고 고려 현종 9년에 덕은(德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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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은진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은진면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충청남도 논산의 은진면 면민들이 같은 해 4월 1일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횃불만세운동을 말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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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연정(蓮亭)의 서쪽에 위치하여 연서라 부르게 된 연서리는 은진면의 면소재지로 조선시대에는 현감이 집무하는 동헌이 있었던 구읍취락(舊邑聚落)이다. 지금은 은진면사무소·은진치안센터·은진보건소·농촌지도소·은진농업협동조합·은진초등학교·은진우체국 등 각종 기관이 들어서 있다. 은진면은 조선시대 은진현이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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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서 은진미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은진미륵 설화」는 박종익이 민속원에서 펴낸 『구전설화』14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북쪽 오랑캐의 침략이 빈번할 무렵, 오랑캐가 고려를 정복하고자 다시 압록강을 건너려 하였다. 그러나 압록강의 깊이를 알지 못하였던 적장은 강 앞에서 머뭇거렸다. 때마침 한 중이 오더니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압록강을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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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된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기술한 형식과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나 연혁,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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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던 조선 전기 은진현 관아 터. 일제강점기 관아에 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관아 유적이 많이 파괴되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작성된 『은진지도』에 의하면, 외삼문·내삼문·아사·외노방·군고·형청·누상고·사령방·책실·내아문·내아·읍창·창고·향청·관청·장청병현사·작청·삼문·객사·옥 등의 관아 관련 시설물이 표기되어 있다. 이 지도를 통하여 관아시설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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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간 서예 단체. 은천서회는 회원들의 창작 역량 강화와 논산 지역 서예 발전을 위해 설립하였다. 서예가 은천(恩泉) 윤여익(尹汝益)이 논산 지역에서 운영해 온 은천서실에서 문하생으로 수학했던 서예인들이 중심이 되어 1984년 은천서회가 결성되었다. 역대 회장으로는 이용교, 한윤택, 윤용하, 윤여신, 박희성, 김철기 등이, 역대 부회장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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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와 연산면 임리 경계에 있는 고개. 을목재는 대체로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능선 부분에는 시대 미상의 석영 반암 및 규장암이 관입되어 있다. 북쪽으로 성태봉(119.3m)에 이어지며, 남쪽으로 수락산(150m), 고정산(145m)에 이어지고 있다.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고개이며, 북쪽에 연산천이 흐르고 있다. 을목재는 논산시 시가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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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노성현(魯城縣)의 소재지여서 읍내(邑內)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현(魯城縣) 읍내면(邑內面)으로 교촌(校村)·신촌(新村)·죽촌(竹村)·천아동(天牙洞)·송아(松牙)·송당(松堂)·월명(月明)·왕림(旺林)·상반(上盤)·무정(武亭)·남산(南山)·홍문(紅門)의 12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정리·남산리·홍문리·상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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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19개의 비석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번영회관 앞에 비석 19기가 북동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시멘트 바닥에 일렬로 세워 놓아 아랫부분의 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비석의 형태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호패형(戶牌形)으로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2. 행현감이후승기영세불망비(行縣監李侯承紀永世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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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의령남씨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원래 당나라 봉양부 여남(汝南) 사람이었다. 신라에 귀화하였는데, 신라 왕이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이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는 등 가문의 격을 올렸다. 의령남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의 개국공신 남재(南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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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천. 자는 여수(汝粹). 아들은 박영서이다. 박이현은 남명 조식과 덕계 오건에게 경학을 배웠으며, 창애서실을 지어 경전을 연구하고 성정을 도야하였다. 평소 충절의 의기가 높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경상북도 성주와 전라북도 무주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적을 쫓아 대교평에 이르렀다가 치열한 전투 끝에 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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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의백(義伯).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며,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며, 처는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김극뉴는 처음 음사로 청진전직이 되었다가 찰방이 되었고 1468년(세조 14) 춘장방 문과에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종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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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을 물리치기 위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직되어 활동했던 민병. 의병은 국가가 외침으로 인해 위태로울 때 정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웠던 민병을 말한다. 유사 이래 외침을 많이 당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의병의 역사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의병은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및 구한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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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착용해 온 의복 및 이와 관련된 풍속. 논산 지역은 우리나라의 다른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의생활 양식이 현대식으로 양복화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나 현재는 대부분 일상복으로 양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결혼식의 폐백 때나 잔칫날 등 아주 특별한 날에만 전통 복식을 착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역마다의 특수성의 감소는 산업화된 현대 생활에서 대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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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와 양촌면 오산리에서 의적 달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의적 달이」는 2005년 논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전기의 일이다. 나라의 기틀이 잡히기 직전인지라 나라 안 여기저기에서 도적들이 우글거리며 남의 물건을 약탈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이러한 도적을 소탕하기 위해 군사들을 풀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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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던 파평윤씨 노종파 의창지. 윤순거가 이이(李珥)의 석담사창지법(石潭社倉之法)의 예에 따라 불의의 재난과 일가집의 궁핍에 대비하는 대비책으로 의창(義倉)을 창설하였다. 즉 의창제를 문중 운영에 도입한 것이다. 윤순거는 문중의 선산과 재실의 운영, 묘사를 위하여 마련된 재정 조치로 의전을 마련하였다. 처음 의전(義田)은 윤순거가 5방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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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논산 출신의 효자. 이건두는 1882년 아버지 이상효와 어머니 순흥안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건두는 평생을 시골에 살면서 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셨으며, 부모님이 병들자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가 고아드리고, 병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을 해드렸다. 1916년에 부친이 죽자 장례를 예대로 정성껏 모시고 3년 동안 한 번도 상복을 벗지 않고 성묘를 다녔다. 1923년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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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공겸 부부의 정려. 이공겸은 왕실의 종친으로 옥계도정(玉溪都正) 이현동(李賢童)의 증손이다. 이공겸과 그의 아내 민씨는 양촌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공겸 내외는 부친을 등에 업고 공주를 향하여 피난하기 시작했다. 연산 백석리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왜병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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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와 열녀. 이공겸과 처 여흥민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현재의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살면서 시아버지를 지극히 모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논산까지 이르게 되자 이공겸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피난길에 올랐는데 공주를 향하여 가다가 연산면 백석리에서 왜적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의 아버지는 아들 내외를 살리려고 빨리 피신하기를 재촉하였으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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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효자 이관연의 비각. 이관연은 가평이씨(加平李氏)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후에는 3년간을 하루같이 곡을 했으며, 어머니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병들자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 때와 똑같이 행하니 효자 중의 효자라고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 후에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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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효자 이관연의 비각. 이관연은 가평이씨(加平李氏)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후에는 3년간을 하루같이 곡을 했으며, 어머니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병들자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 때와 똑같이 행하니 효자 중의 효자라고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 후에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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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세조의 후손인 덕원군의 후손이다.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이광근은 집안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봉양하고자 머슴살이를 하였으며 좋은 음식이 생기면 자기가 먹지 않고 부모님께 먼저 갖다 드렸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병이 더욱 심해졌다. 병이 위중하자 대변의 맛을 보며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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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광좌의 불망비. 이광좌는 경주 사람으로 호는 운곡(雲谷)이다. 이항복의 고손으로 1697년에 별시문과에 장원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신임사화 후에 노론을 제거하고 소론 정권이 수립되자 예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1755년 나주의 벽서사건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 이광좌가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노성 지역을 지나면서 군민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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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근오는 1901년 3월 22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으며,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이근오는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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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이근석은 1898년 3월 23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면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이근석은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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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근오는 1901년 3월 22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으며,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이근오는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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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근옥은 충청남도 논산 지역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논산읍내에서 벌어진 독립 만세 운동에 태극기 제작 단계부터 참여하였다. 이근옥은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논산 지역에서 손필규·이백순·김태오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우선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1919년 3월 12일 오후 3시경에 강경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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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송재기·이근석·이봉세 등은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근태는 1919년 3월 20일 오후 5시경에 강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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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담.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이기팔은 형제 5명과 우애가 남다르게 깊었으며 평생 부모님에게 효도하다가 부친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혼신의 정성을 다하여 간병했으며 돌아가자 비통함이 극에 달해 실신할 정도였다. 장례 후에도 3년간 성묘를 정성껏 하여 인근에 효성이 자자하였다. 이기팔이 죽은 뒤 유림에서 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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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여. 효령대군 후손으로 형 이기팔과 함께 효행을 행하였다. 이기호는 유학의 예법을 몸소 실천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고 서로 도와가며 살았으며 부모님을 모시고 정성껏 봉양하였다. 부친이 병들자 온 힘을 다하여 간병하였다. 그러나 별로 효험이 없자 손가락을 베어서 수혈을 해드려 수일을 연명하게 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한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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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남규는 1878년 9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등리 47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3년 고종으로부터 소모사(召募使)의 직어(職禦)를 받아 국권회복의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 임철규·이응숙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로 결의하고 충청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남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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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내수는 1860년 8월 22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416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홍주(洪州) 지역의 민종식(閔宗植) 의진(義陣)에 참가하여 국권회복운동에 힘을 쏟았으며, 1916년 7월에는 이내수 자신의 집에서 홍주 의진 출신인 이용규(李容珪)·이만직(李晩稙)·윤병일(尹炳日)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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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이자 가평이씨 논산 중시조. 가평이씨는 신라 말엽에 8세 이기문(李起文) 선대에 의거 조종(朝宗)으로 본관이 바뀌었고, 다시 조선 전기에 31세 이다림(李多林) 중시조(中始祖)에 의거 가평(加平)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관은 가평(加平). 할아버지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이며, 아버지는 도평의사사를 지낸 이침이다. 이다림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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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은진현감 이도선의 불망비. 이도선이 은진현감의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은진현 주민들이 이도선의 선정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이도선 불망비는 연서리의 은진면사무소 마당에 세워져 있다. 이도선 불망비는 원래 은진면 교촌리 비석거리에 있던 것을 2004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140㎝,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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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부사 이두현의 불망비.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48㎞를 가면 논산시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2.94㎞를 가다 보면 고내리가 나온다. 이두현 불망비는 고내리 효죽골에 자리 잡고 있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황화정비, 김상식 불망비 등과 함께 세워져 있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으로, 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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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검천리와 양촌면 산직리 장골 사이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논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국도 1호선을 타고 동쪽으로 약 12㎞ 정도 가면 연산면 청동리에 이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난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약 6㎞ 정도 가면 양촌면 신흥리가 나온다. 다시 동북쪽으로 난 지방도 68호선을 따라 4㎞ 정도 가면 산직리 장골에 닿는다. 곰티산성은 산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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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논산 출신의 의병. 이명선은 1856년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서 출생하였다. 1909년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의 무력 항쟁이 전국적으로 계속될 때 이명선은 54세의 나이에도 군자금 모금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1909년 8월 20일 밤 정학서와 함께 전라북도 만경군(萬頃郡) 동일도면 남당리(현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지역) 김순기의 가택에 군자금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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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은진현감 이민제의 불망비. 이민제가 은진현감으로서 지역민에게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은진현 주민들이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망비이다. 이민제 불망비는 원래 교촌리 비석거리에 있던 것으로, 2004년 은진면사무소 마당으로 이건, 보존하고 있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110㎝, 폭 50㎝이다. 비의 앞면에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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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공신.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자선(子善), 호는 백봉(白峯). 19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분개한 이민진은 의병을 조직하였는데 그 수가 3,000여 명이나 되었다. 의병을 이끌고 당시 연산현감이었던 김홍익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다. 출전 당시 이민진은 검은 행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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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민진의 묘비.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 당시 외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민진의 증직과 행적을 새겨놓은 묘비이다.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이 끝난 지 200여 년이 지난 1838년(헌종 4)에 세워졌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200여 년이 지난 후인 1838년(헌종 4)에 이민진의 충절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정려를 하사받게 되었다.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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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민진의 정려. 이민진의 본관은 가평, 자는 자선, 호는 백봉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의병 3천 명을 모아 연산현감 김홍익과 함께 전장에 나가 싸웠다. 당시 29세의 이민진은 출전할 때 죽기를 맹세하고 검은 행전과 버선을 신고 나갔다. 그러나 광주 험천 지방에 이르러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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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제향된 종친. 이방의는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서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이다. 형은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아우는 태종 이방원(李芳遠)이다.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키고, 평소에 시사를 말하지 않았다. 1392년 조선이 개창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이방의는 익안대군(益安大君)에 봉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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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백순은 1885년 5월 9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236번지[대둔로1189번길 58-9]에서 출생하였다.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일제의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퇴직하고 1914년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 지역으로 돌아왔다. 이백순은 논산 지역으로 돌아와 학당을 세워 청소년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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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주는 1894년 1월 20일 현재의 논산시 강경읍 산양리 7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연희전문학교 학생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2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병주는 출소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국외에서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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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봉세는 1899년 4월 29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이봉세는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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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함평(咸平). 아버지는 부사 이양, 어머니는 진주강씨이다. 세 번 혼인했는데, 양씨와 민씨와 전씨이다. 슬하에는 두 딸과 외아들 이삼, 서자 이송이 있다. 1639년(인조 17)에 이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학업을 잇지 못하였다. 장성하여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의 사위가 되어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들어가 살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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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사길의 묘비. 이사길(李師吉)은 1639년(인조 17)에 이양의 아들로 태어나 사산감역관을 지내고 임기를 마칠 즈음에 병을 얻어 사망하자 노성 술골(주곡리)에 장사하고 후에 묘비를 풍비로 세워놓았다. 이사길은 1703년(숙종 29)에 사망하였는데, 1711년(숙종 37)에 아들이 출세를 하여 가선대부 사헌부대사헌에 증직되었다.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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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숫골에 있는 조선 후기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 이사길의 묘소. 이사길(李師吉, 1639~?)은 부사 이양과 진주강씨 사이에서 1639년(인조 17)에 태어났다. 훗날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의 사위로 상월면 주곡리에 들어와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가 되었다. 윤선거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노강서원 건립에 협력하였고, 사산감역을 제수받았다. 아들 이삼이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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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배나무가 많아서 배꽃이 만발하는 봄이면 천하일품의 풍경이었다고 한다. 또한 절[寺]을 배꽃이 감싸듯 피어 있어 배절·백절·이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광석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대리(新垈里)·신촌리(新村里)·수항리(水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이사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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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영조의 아낌을 받아 백일헌(白日軒)이라는 호를 받았다. 함평군 이사길(李師吉)과 남양전씨 사이에서 1677년(숙종 30)에 태어났다. 이삼의 가계는 상계로 올라가면 무반 가문의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고조 이후는 문반으로서의 성향이 더해져, 이삼이 ‘문무겸전’의 인물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삼은 윤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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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삼의 묘표. 이삼(李森)은 1677년(숙종 3) 상월면 주곡리에서 감역을 지낸 이사길(李師吉)의 아들로 태어났다.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705년(숙종 31) 무과에 급제하여 정주목사·수원부사·한성부우윤을 거쳐 벼슬이 훈련대장에 이르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올라 함은군(咸恩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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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이 지은 고택. 이삼 장군 고택은 1727년(영조 3) 이삼이 훈련대장으로 있을 당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로부터 2등공신 함은군에 피봉되고, 건립비를 하사받음에 따라 지은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이다. 1985년 충청남도에서 안채와 사랑채를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하였다. 국도 23호선 노성면 나들목을 통해 지방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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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묘소. 이삼은 감역을 지낸 이사길의 아들로 자는 위백이다. 1677년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1735년 59세로 사망하였다.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05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대장을 거쳐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함은군에 봉해졌다. 논산시에서 공주 계룡산 서쪽에 있는 신원사 앞으로 나 있는 지방도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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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의 이삼 장군 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유물. 이삼(李森, 1677~1735)은 조선 영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다. 상월면 주곡리에서 출생하여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05년(숙종 31) 무과에 올랐다. 힘이 세고 지략이 많으며 기계 제조법과 도창(刀槍) 기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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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의 이삼 장군 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유물. 이삼(李森, 1677~1735)은 조선 영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다. 상월면 주곡리에서 출생하여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05년(숙종 31) 무과에 올랐다. 힘이 세고 지략이 많으며 기계 제조법과 도창(刀槍) 기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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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에 함평이씨가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함평군 이사길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사길이 언제 어떠한 이유로 양주에서 주곡리로 들어와 살게 된 것인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며, 후손들에게도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이사길이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 1616~1677)의 사위라는 점만이 그의 입향을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로 아마도 처향을 따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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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백파 이상 영당에서 매년 이상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지내는 제사. 백파(白波) 이상(李常)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3남인 익안대군의 손자이다. 단종을 옹호하던 이상은 세조가 등극하자 초야로 피신을 하여 은둔생활을 하다가 사망했다. 백파도정(白坡都正) 영당은 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당이다. 현재 영당에 걸린 영정은 이상의 아들인 옥계 이현동(李賢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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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이선익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셔 왔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에 좋다는 약을 백방으로 구해다가 손수 달여 드리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는 10여 년 동안 추운 겨울에는 물고기를 잡아다 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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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이선익의 정려. 이선익(李善益)의 자는 우현(友賢), 호는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가평이다. 어린 시절부터 효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겨울철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홀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10여 년 동안 손수 탕약을 끓여 올렸으며, 병이 위독해지자 양손의 손가락을 잘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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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이선익의 정려. 이선익(李善益)의 자는 우현(友賢), 호는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가평이다. 어린 시절부터 효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겨울철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홀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10여 년 동안 손수 탕약을 끓여 올렸으며, 병이 위독해지자 양손의 손가락을 잘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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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전주(全州). 남편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선일(李善一)이다. 이선일 처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18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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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이선일의 처 전주이씨의 정려.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 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 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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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송당리와 상월면 신충리·월오리에 걸쳐 있는 산. 노성면은 1656년(효종 7) 때부터 노성현(魯城縣)으로 불렸는데, 노성산은 이 지명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측된다. 기반암은 편마암 및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마암인 지역들은 대부분 150m 이상의 산지를 이루고 있어 상대적으로 해발 고도가 높다. 그러나 화강암이 분포하는 곳은 50~60m 이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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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행림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구(光九), 호는 도애(桃崖).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이며, 외조부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다. 그러나 광해군 즉위 뒤 정치의 문란함에 회의를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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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은진현감 이소의 선정비. 이소는 전주 사람으로 주계군과 이소재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우계 성혼과 교의을 맺었다. 선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옹원주부에 이르고, 광해군 때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인조반정 후에 이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은진현감으로 내려와 선정을 베풀어 부임한 지 8개월 만에 고을 인심이 순화되었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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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이술(而述). 증조부는 윤절(尹晢), 조부는 윤인교(尹仁敎)이다. 아버지는 윤동로(尹東輅)이며, 어머니는 이익주(李翊周)의 딸이다. 부인은 이하집(李夏集)의 딸이다. 1726년(영조 2)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입학하여 서재(西齋) 장의로 활동하였다. 1733년 영조가 성균관에 거둥하여 시학례(視學禮)를 베풀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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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와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승기의 영세불망비 두 기. 이승기는 한산 사람으로 자는 기경(紀卿)이다. 은진현감과 연산현감, 노성현감 등을 지냈다. 이승기 불망비는 두 기로, 한 기는 연산면 연산리에 있고 또 한 기는 노성면 읍내리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다.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이승기 불망비는 1882년(고종 19) 9월 23일에 연산현감으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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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노성군참사를 지낸 이시우의 기념비. 1915년 노성군참사를 역임한 이시우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 이시우 기념비는 원래 신충3리에 있던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었는데, 1983년 상월면사무소를 현재의 자리인 신충리 53-2[백일헌로 1049]에 짓고 나서 담장 밖 도로 변에 옮겨 세웠다. 이시우 기념비 외에도 김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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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이언섭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님을 봉양하는 데 남달랐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할 때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고 양친이 병들어 요구하는 것을 백방으로 구해 드리니 병이 낫기도 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실천하며 불우한 이웃을 보면 자기가 곤궁하여도 도와주니, 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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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거사1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열녀 이완경을 기리는 비. 이완경은 이원린의 딸로, 염재훈의 처이다. 남편을 잘 모시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주위에서 부러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비록 남편이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의 몸이었지만 부부 간의 금실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난 맹수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 병든 남편을 덮치려 하자 몸을 던져 맹수를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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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용규는 1859년 10월 6일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06년 홍주(洪州)(현 충청남도 홍성군 지역)의 민종식의진에 참모사로 참가하며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홍주성이 함락되자 탈출하여 변장을 하고 다녔으며, 1906년 7월에 다시 청양 지역 축치(杻峙)에 모여 군사를 수습하였다.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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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양지리에 있는 자동차 시트 제조업체. 이원컴포텍(주)는 현대자동차(주) 전주공장에 자동차 시트 및 내장재를 납품하기 위해 전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논산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1994년 11월 현대자동차(주) 전주공장 신축과 함께 (주)현대공업의 상용차 시트 사업 부문을 분리하여 충청남도 논산에 이원산업(주)을 설립하였다. 1995년 8월 첫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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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전통가옥에서 사용된 문. 옆으로 밀고 닫는 문이라 하여 미닫이라고 부르는데, 구개음화에 따라 미다지라고도 한다. 또한 논산 지역에서는 문을 밀어서 연다고 하여 밀창이라고도 하며 영창, 이응창이라고도 부른다. 미닫이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손잡이는 파여 있고 주 재료는 나무이다. 나무로 틀을 짜고 가운데를 송판으로 막거나 문살을 넣고 그 위에 종이를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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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의령(宜寧). 남편은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인덕(李仁德)이며, 아들은 사헌부감찰을 지낸 이조순(李曺純)이다. 이인덕 처 의령남씨는 남편 이인덕이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아들에게 남편의 유언을 전하고 자결하였다. 의령남씨의 아들 이조순이 사헌부감찰에 있을 때인 1863년 명정이 내려져 논산시 두마면 엄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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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경의 비석. 이장경 묘갈은 가평이씨 후손들이 예산현감·안음현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던 이장경의 행적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칭송하기 위해 1537년(중종 32)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건립하였다. 연산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600m를 가면 연산중학교가 나온다. 연산중학교의 전면에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데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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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가평(加平). 어버지는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이다. 할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이다. 이장생은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활쏘기를 좋아해 가평군이 그의 장점을 취하여 무예를 익히게 하였다. 1490년에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을 제수하였다가, 선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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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생의 비석. 이장생(李長生)은 1467년(세조 13)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0년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에 제수되었다가, 선전관으로 발탁되고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이 되어 사은사로 중국 연경에 다녀오고, 병조판서를 거쳐 평안도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동생은 이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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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장생의 묘소. 이장생은 가평인으로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1467년에 태어나 1522년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를 좋아하여 1490년(성종 21) 갑과에 급제하였고 용양을 거쳐 선전관을 지냈으며,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으로 있을 때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오고 평안도절도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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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양현직 씨는 말했다. “안 힘드냐고? 힘들지, 그래도 하면 좋아, 바쁘고 귀찮아도 다들 알아주니께...” 이장은 행정구역의 최말단인 ‘리(里)’를 대표하여 모든 마을 일을 맡아보는 마을 대표이다. 양현직 씨(61)는 주곡리 15대 이장으로 마을 안팎으로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있다. 60세 이하의 주민이 거의 없는 주곡리로서는 그나마 젊은 편에 속하는 양현직 씨가 행정업무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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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이정보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에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눕자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고 병세를 짐작하기 위해 어머니의 변을 맛보았다. 의식 없는 어머니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수혈하는 등 지극 정성으로 효를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모친이 주무시고 있는 집에 불이 났는데, 이정보는 누워 있는 모친이 놀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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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등리 대실뜸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정보의 정려. 이정보(李廷輔)는 본관이 합천(陜川)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에 이름이 나 있었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고 변을 맛보았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한테 수혈을 하는 등의 효를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난 일이 있었다. 이정보는 병석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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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등리 대실뜸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정보의 정려. 이정보(李廷輔)는 본관이 합천(陜川)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에 이름이 나 있었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고 변을 맛보았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한테 수혈을 하는 등의 효를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난 일이 있었다. 이정보는 병석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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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연산도토리묵이 최고일 것이다. 현재는 도토리묵 가게가 연산재래시장과 연산 일대를 아무리 눈을 씻고 뒤져도 단 한 곳밖에는 없지만 불과 1980년대만 해도 연산의 도토리묵거리는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연산리에 스무 집 정도에서 도토리묵 장사로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고 하니, 뒤집어 생각해보면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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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종덕의 기념비. 일제강점기에 마름을 지낸 이종덕이 재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베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경비를 마련하여 세운 비이다. 이종덕 시혜비는 원래 신충3리에 있던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었는데, 1983년 상월면사무소를 현재의 자리인 신충리 53-2번지[백일헌로 1049]에 짓고 나서 담장 밖 도로 변에 옮겨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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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육곡리는 면소재지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전통시대에는 호남에서 서울로 갈 때에 반드시 지나는 큰 길목이었다. 오늘날처럼 여러 갈래 도로가 발달하기 전인 1970년대만 해도 논산, 강경, 대전을 가려면 반드시 육곡리를 거쳤다. 이 같은 지리적 환경 덕분에 육곡리는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행정중심지의 역할을 하였고, 독립적인 군현지역으로서 행정체제가 마련될 수 있었다.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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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불부. 할아버지는 병조판서인 이다림이며, 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 어머니는 순안현령 우원구의 딸이다. 전주최씨 충의위 최희보의 딸과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함경도절도사를 지낸 이장생이다. 1449년에 태어나 1503년에 세상을 떠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30세에 통훈대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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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철근의 묘표. 이철근은 1449년 가평군 이형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경기수운관·포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통훈대부의 관직에까지 이르렀다. 1491년 충주판관으로 북정에 참여하였으며 진산군수·봉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이장생과 이장경이다. 이철근 묘표는 1508년(중종 3) 후손들에게 이철근의 행적을 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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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이초(而初), 호는 서윤(庶尹). 세조의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에 3등에 책록된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김진일은 어릴 적부터 행실이 올바르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영릉참봉을 지냈으며, 헌릉령과 사재감 첨정을 거쳐 통정대부 한성부서윤을 역임하였다. 1721년(숙종 46)에 일어난 신임사화로 인해 조정이나 관직에 회의를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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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감을 지낸 이초로의 거사비. 이초로는 전라남도 함평 사람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50년(효종 1) 2월 연산현감으로 취임하여 동년 8월에 사직하였다. 이초로가 연산현감을 사직한 뒤 연산 주민들이 그가 재임 당시 행했던 치적을 기리고자 거사비를 세웠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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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충규는 1891년 7월 14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부터 시작된 독립 만세 운동은 다음 달인 4월에도 계속되었다. 1919년 4월 4일 당시 전라북도 이리 지역에서 문용기와 박도현 등 기독교 인사들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이리시장에서 일어났다. 독립 만세 시위대가 이리 시내로 행진하자 3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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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학순은 1843년 현재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 지역에서 출생하여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한양촌(韓陽村)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활달하였으며, 실천에 힘썼던 선비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을 병합하려고 1910년 8월 22일에 이완용으로 하여금 데라우치와 조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민족적 저항을 염려하여 공포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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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이항국의 공적비. 은진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농촌 특산물로 복숭아 나무를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래종은 복숭아 수확 시기가 똑같아 한꺼번에 출하가 되기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여 농촌 수익이 줄어들게 마련이었다. 황해도 황주 태생으로 1947년 2월에 은진 지역에 정착한 이항국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1950년 3월, 일찍 수확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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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구(子久), 호는 과암(果菴). 이항길은 김장생의 이웃에 살면서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므로 송시열과 송준길, 성혼 등이 스승을 찾아 공부하러 올 때면 먼저 이항길을 찾아 선생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이항길은 80세의 노친을 효성을 다해 모셨으며, 이러한 이항길의 학행과 행동 범절을 김장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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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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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종친 이향령의 묘소. 익성군 이향령은 조선 중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손자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뒤따라 호위하여 1597년(선조 30) 정의대부익성군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 진릉군을 추대하였다는 이이첨(李爾瞻)의 무고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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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농맹아(聾盲啞). 증조부는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이며, 아버지는 백파도정(白波都正) 이상(李常)이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이현동은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왕손의 몸일지라도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金叔滋)의 문인으로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과 도의(道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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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이현동의 묘소. 이현동의 본관은 전주, 호는 농맹아(聾盲啞)이다. 태조의 3남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의 증손이며, 백파(白波) 이상(李常)의 아들이다.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를 한탄하며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평생을 조령리에 살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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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가평. 자는 창백(昌伯). 아버지는 가평이씨의 중시조인 첨지중추원사 이다림(李多林)이며, 어머니는 지금주사 송리(宋理)의 딸이다. 1436년(세종 18) 무과갑과에 급제하고 1447년에 중시장원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455년(세조 1) 12월 판관으로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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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형손의 비석. 신도비(神道碑)는 조선시대 임금이나 2품 이상의 관직에 있던 사람의 무덤 앞이나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묘갈(墓碣)은 신도비와 비슷하지만, 3품 이하 관리의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둥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제와 규모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이형손은 14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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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이홍묵의 처 전씨는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편 이홍묵은 의병에 자원하게 되자 의복에 붉은 색실로 꾀매어 행장을 차려 주었다. 얼마 후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참패했다는 비보를 듣고 부인은 집에서 기르던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격전장에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다가 의복에 붉은 실로 꿰맨 흔적을 보고 남편임을 확인하고는 시신을 수습하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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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1리 장골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이홍묵의 처 전씨의 정려. 전씨는 이홍묵의 부인이다. 병자호란 때 남편이 종군하여 광주 험천에서 전사하자 몸소 격전장에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아 마을까지 운반해 장례를 치렀다. 남편의 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팔 때 인부들에게 남편의 성격이 광활하였으니 묘를 넓게 파달라고 하고, 하관은 혼자 하겠다며 사람들을 물리친 후 비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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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우기리에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이화감리교회는 1924년 2월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토양리 소재 김창완의 집에서 채운면과 은진면 지역 교인 40명이 모여 예배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강경감리교회 토양리 기도처라고 불렸다. 1926년 4월 김창완, 손정석, 조중구 등 여러 교인의 주선으로 토양리에 초가 42.9㎡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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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로 돕고 바른 예절을 실천하는 학생, 기초 능력을 길러 새로움을 탐구하는 학생, 다양한 학습 경험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학생, 소질을 계발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의지가 굳센 학생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0년 4월 1일 이화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3년 1월 6일 병설유치원 설립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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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이희갑의 선정기념비.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노성군이 논산군으로 편입되어 노성면이 되었다. 이희갑은 9대 면장으로 장기간 재임하면서 노성면의 발전과 노성 주민들의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해 주고 주민들의 화합을 위하여 힘을 썼는데, 이때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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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남규는 1878년 9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등리 47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3년 고종으로부터 소모사(召募使)의 직어(職禦)를 받아 국권회복의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 임철규·이응숙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로 결의하고 충청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남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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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수리과에 속하는 새. 새매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시베리아 중부 및 동부, 쿠릴열도, 알타이산맥 등지에 분포한다. 북부 지역에서 번식하는 집단은 중국 남부나 인도차이나, 미얀마, 인도 등지에서 겨울을 나고 남부 지역에서 번식하는 집단은 텃새로 산다. 몸길이는 수컷 32㎝, 암컷 40㎝ 정도이다. 암컷이 수컷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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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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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익성군 이향령의 신도비와 무인석. 이항령은 선조의 형인 하원군(河原君) 이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선조의 행재소가 있는 의주까지 여러 달 만에 호행해 선조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1596년(선조 29) 익성군으로 봉해지고 승헌으로 승진하였다. 선조의 세자인 순화군이 후사가 없자 익성군의 3자 진릉군을 후사로 삼았다.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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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제향된 종친. 이방의는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서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이다. 형은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아우는 태종 이방원(李芳遠)이다.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키고, 평소에 시사를 말하지 않았다. 1392년 조선이 개창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이방의는 익안대군(益安大君)에 봉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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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재실에서 행하는 익안대군 부인의 불천위제사. 익안대군 배위 제사는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중이 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 부인에게 음력 11월 18일에 올리는 불천위제사이다. 불천지위(不遷之位)는 예전에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를 말한다. 사당과 재실, 영당을 모두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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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중에서 행하는 익안대군의 불천위제사. 익안대군(益安大君, ?~1404)은 조선 태조 셋째 아들로 이름은 방의(芳毅), 시호는 안양(安襄)이며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 소생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益安君)에 봉해졌다. 1398년(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정종 2)의 제2차 왕자의 난에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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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시대 익안대군 이방의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익안대군 영당은 원래 경기도 여주에 있었는데, 1958년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가가 논산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영정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는 태조의 셋째 아들로 정종의 아우이며 태종의 형이다. 1392년(태조 1)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에 봉해지고 1398년 개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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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익안대군 영당에서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지내는 익안대군 추모제. 익안대군 이방의는 태조의 셋째 아들로 정종의 아우이며 태종의 형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에 봉해지고 1398년 개국공신 1등에 추록되었다. 이성계의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 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켰고, 태종이 즉위하자 대군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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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있는 익안대군 이방의의 초상화. 「익안대군 영정」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를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316번지에 있는 익안대군 영당인 원훈각(元勳閣)에 보관되어 있다. 이방의는 고려 공양왕 때 판밀직사사가 되었고,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대군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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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아버지는 찰방 김적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1614년(광해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많은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며, 1630년(인조 8)은 장악원직장이 되었다. 1631년(인조 9) 감찰을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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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여 논산에 정려가 세워진 문신, 의병장.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경(仁卿), 호는 도곡(道谷). 양응춘은 회덕현감을 지내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趙憲)을 따라 청주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이어서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후 이조참의로 증직되었고, 1720년 충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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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거주하는 주민수 또는 집단. 인구 구성은 각종 구성 요소를 파악하여 그 편성에 의해 표현된다. 인구 구성 요소로는 성(남녀)·연령·인종 등 개인의 의지로 좌우할 수 없는 요소와 개인의 의지가 나타나고 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산업·직업·노동 등의 경제적 요소와 거주지·결혼 상태·학력 등의 사회적 요소, 국적·언어·종교 등의 문화적 요소 등이 있다. 인구 구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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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흐르는 내의 이름이 인내여서 마을 이름을 인내 또는 인천(仁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장리(越場里)·본장리(本場里)·동산리(東山里)·도정리(道井里)·하광리(下光里)의 각 일부와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남산리(南山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인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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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지역적 관점에서 지표에서 발생하는 인간 활동의 모든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논산 지역의 인문지리는 문화지리학·사회지리학·경제지리학·정치지리학·역사지리학 등으로 나누어지며, 인구·민족·취락·도시·농업·공업·상업·교통 등에 관하여 이들의 지리적 분포, 지리적 구조,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한다. 논산시는 2개 읍·11개 면·2개 동 등 총 15개 행정구역으로 구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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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이상의 노인회 회원 수만 120여명에 달해 어둡고 침체된 마을 분위기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마을이지만 오히려 다른 마을보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 농촌 마을들이 젊은이들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지만 육곡리처럼 70대 이상의 노인인구가 많은 지역은 논산에서도 드문 광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를 마을의 터가 좋기 때문이라고 여성 노인회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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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기하는 구한말에 공주군수를 역임하였으며, 1910년 일제 강점이 시작되자 만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남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교통부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20년에는 광복군사령부 선전부장, 정보국장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에는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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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문신. 어려서부터 마음씨가 착하여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온순한 성품과 웃어른을 대하는 예의범절이 남달라 주위에서 칭송이 대단하였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숭릉태봉(崇陵泰封) 벼슬에 올랐으나 홀로 계신 모친을 모시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연산으로 내려왔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모친은 노쇠하여 병석에 눕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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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의 왕암저수지와 가야곡면·부적면의 탑정저수지에 서식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원앙은 전국의 산간 계류에서 번식하는 흔하지 않은 텃새이나, 겨울에는 겨울을 나려는 무리들이 내려옴으로 봄·가을 이동 시기에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러시아 사할린 섬, 일본, 타이완, 중국 북동부, 영국 등지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43~51㎝이고, 몸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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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흐르는 내의 이름이 인내여서 마을 이름을 인내 또는 인천(仁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장리(越場里)·본장리(本場里)·동산리(東山里)·도정리(道井里)·하광리(下光里)의 각 일부와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남산리(南山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인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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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추의 30% 이상이 모이는 집산지인 연산에서는 매년 가을이 되면 ‘황산벌 연산 대추축제’가 열린다. 2008년 10월 31일(금)부터 11월1일(토)까지 연산 체육공원(연산천 둔치)에서 연산대추축제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축제의 모토는 ‘온누리엔 오곡 풍년!!, 황산벌엔 대추 풍년!!’이다. 축제기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최고의 대추를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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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노동의 능률을 높이거나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논산의 노동요는 남성들의 일노래, 그 중에서도 1960년대 이전 농업 노동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 노래란 여럿이 함께 일할 때 일을 질서 있게 능률적으로 하기 위해 부른다. 논산의 여성들은 주로 가내나 텃밭에서 단독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요로서의 형성과 전승이 미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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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이후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일본인들이 소유한 농장.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불하정책에 의해 전국적으로 급속히 증가하였다.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일본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농토를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 걸쳐 많은 농장을 조성할 수 있었다. 1909년 6월 전국적으로 있었던 일본인 지주는 총 692명이었고, 소유 면적은 52,426정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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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역(正易)』을 집대성한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심(道心), 호는 일부(一夫). 부인은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김항은 어릴 때부터 어질고 너그러운 도량과 재능으로 모습이 비범하였으며, 글 읽기를 좋아하여 성리학에 깊이 침잠하고 예문(禮文)에 조예가 깊었다. 또 한(漢)·당(唐)·송(宋)·명(明)의 문장(文章)과 이학(理學)에 이르기까지 정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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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정(士正), 호는 일암(一庵). 증조할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 할아버지는 윤증(尹拯)이다. 아버지는 대사헌를 지낸 윤행교(尹行敎)이며,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장령 송기후(宋基厚)의 딸이다. 1722년(경종 2)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사옹원주부·사헌부지평·한산군수·홍주목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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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합병으로부터 1945년 8·15 해방에 이르는 기간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한일합병은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사건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일제병탄(日帝倂呑)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말살정책과 식민지 수탈정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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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우기리에서 임금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운면 우기리에 임금터가 있는데, 본래 각종 꽃들이 만발한 오화지지(五花之地) 또는 만인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아늑한 고장이라 하여 만인가활지지(萬人可活之地)라고 불린 피난지였다. 이 터에 의자왕이 도읍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실현하지 못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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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부터 신선객의 요람지로 꼽히던 곳으로, 이상적인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 때 도읍지로서 임금터가 될 것이라고 전해 오는 말에 따라 마을 이름도 임금터 또는 우기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도곡면(道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화리(梨花里)·토양리(土良里)의 각 일부와 대조곡면(大鳥谷面) 방축리(防築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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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숲이 울창하므로 숲말 또는 임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산리(九山里)·신림리(新林里)·남리(南里)·학정리(鶴汀里)·상림리(上林里)·중림리(中林里)·하림리(下林里)와 내적면(內赤面) 상범리(上凡里)를 병합하고 임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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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임리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원래는 황산정(黃山亭)이라고 하였으나,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의하면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어름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구절을 따라 임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임리정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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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현(金尙鉉, 1811~1890)의 「임리정기」를 새긴 비석. 임리정(臨履亭)은 1606년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최명룡·송흥주·윤운구와 집을 지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강경의 황산(黃山) 산기슭에 있다. 이로 인하여 네 사람은 이이(李珥)의 묘당을 세우고자 약속하였으나 당시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162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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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병완은 1887년 6월 23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교리 6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9월 말 임시정부 요원 김탁(金鐸)으로부터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에 동참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여기에 찬성하여 김강(金剛)·홍태우(洪泰祐) 등과 행동을 같이하기로 하였다. 우선 임병완은 선산을 문중의 허락 없이 임으로 매각하여 임시정부 군자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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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양반 가옥. 임수택 가옥은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부적면, 연산면의 경계가 만나는 연산면 오산리 마을회관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다.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노성의 파평윤씨 집안에서 1703년에 윤원거의 손자인 윤임교의 처에 의해 건립된 가옥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정은 지붕 곳곳에 있는 막새기와에 새겨진 ‘숭정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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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임리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원래는 황산정(黃山亭)이라고 하였으나,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의하면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어름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구절을 따라 임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임리정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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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임준상의 선정비. 임준상(林準相, 1856~?)은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임택수(林宅洙)의 아들로 태어나 1885년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조선 말기 노성현감을 역임한 임준상은 「노성향교 선생안」이 유실되어 정확한 재임 기간은 알 수 없으나 선정비에 의하면 임준상이 재임할 당시 선정을 베풀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많은 현감들이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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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전투.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의 제2차 침략전쟁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이라고 한다.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도 특히 제2차 침략전쟁을 계기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격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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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기하는 구한말에 공주군수를 역임하였으며, 1910년 일제 강점이 시작되자 만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남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교통부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20년에는 광복군사령부 선전부장, 정보국장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에는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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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교리(新郊里)·백촌리(柏村里)·계동리(桂洞里)·무수동(無愁洞)·상고리(上高里)·하고리(下高里)·구만리(九萬里)와 은진군 가야곡면의 석서리(石西里), 양촌리(陽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한 뒤 폐합 대상 자연마을 중의 하나인 고산임화의 이름을 따서 임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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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4리 토끼재에서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선돌에 올리던 마을 제사. 방축리 토끼재 선돌은 일설에 백제와 신라의 경계 표시로 세워졌다고 하나 전혀 확인할 길이 없고, 입지로 미루어 보아 애당초 마을의 허한 방위를 비보(裨補)하기 위한 풍수상의 목적으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토끼재 선돌은 은진면 방축4리 마을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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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입춘에 대문이나 기둥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면 글귀를 붙이는 세시풍속.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춘이 되면 입춘이 드는 시간에 맞추어 좋은 글귀를 쓴 종이를 집안 곳곳에 붙였다. 예전에는 집안 어른이 입춘첩을 직접 묵서하여 써 붙였으나, 최근에는 평소 다니는 절에 가서 얻어 오기도 한다. 천장 위에 ‘세재○○만사형통(歲在○○萬事亨通)’이라 쓴 종이를 붙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