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산재래시장 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반갑게 우리들을 맞이해 주는 분은 다름 아닌 문복규 씨이다. 연산재래시장에 관심과 애착이 많기도 하겠지만, 인정이 너무 그리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로서 그저 사람만나는 일이 반갑다고 한다. 문복규 씨는 연산리의 토박이로 연산리에서 태어나 지금껏 80년이라는 세월을 연산시장과 함께 한 터줏대감이다. 현재 연산재래시장...
-
예전에는 산신제가 일 년 중 동네의 가장 큰 행사였기 때문에, 주민 전체가 참여하여 제물을 준비했고, 산신제가 끝나면 준비했던 제물을 다 같이 나누어 먹으며 풍성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진행되던 마을축제는 점차 산신계원들, 특히나 산신계의 임원들을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게 되었고, 따라서 산신제의 제물준비도 산신계원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2000년 이전까지는 산신제의...
-
시장 길목에는 예전의 시장을 연상하게 하는 노점상들이 시장 앞에 나란히 늘어서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노점상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했다는 윤희훈 씨(75)를 만나 많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내가 여기서 장사한 지 벌써 40년이 넘었나봐. 아니다. 50년 정도 되었나보다. 나 노점상 아냐.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노점상이 어쩌구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과 광석면을 연결하는 다리. 논산대교는 총 연장이 272.7m, 총 폭이 20m이며, 높이는 8m로 왕복 4차선의 교량이다. 논산대교는 1983년 논산천(論山川)을 가로질러 준공됨으로써 논산에서는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1999년 논산신대교가 건립되기 전까지 논산의 가장 대표적인 교량이었다. 2011년 현재까지 다른 보수공사 없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논산시외버스터미널은 1990년대 무렵 천안·아산·공주·예산 지역 등의 시외버스터미널과 비슷한 시기에 건설되었는데, 충청남도의 다른 시외터미널에 비하여 상당히 넓은 면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3층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에 대합실이 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도로 서북방의 철길 변에 있고, 시외터미널은 도로 남동방의 철길 반대편에...
-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과 광석면을 연결하는 다리. 논산대교의 역할과 같지만 후에 새롭게 생겼다는 의미에서 논산신대교라 이름지어졌다. 논산신대교는 총 연장이 475.3m이고, 총 폭이 20.8m이며, 높이는 15.2m로 왕복 4차선의 교량이다. 1983년 논산대교가 건립된 후, 시외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교통량 증가로 인하여 1999년 논산천(論山川)을 가로질러 새롭게 논산신대교가 건...
-
이틀간 정성껏 준비한 산신제는 음력 1월 5일 밤 8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산신제를 지낼 산신계 임원 7명이 산제당이 다 같이 모여 옷을 갈아입고, 산신제를 준비하는데 밤 8시에 산제당 앞에서 세 번 울린 징소리에 축관이 산신제의 축문을 비롯한 소지 올릴 명단을 작성한다. 밤 8시에 징 3번, 밤 9시에 징 3번, 밤 10시에 징 3번, 밤 11시에 징 3번을 치고, 밤 11...
-
산제당은 연산리 4구의 뒤편에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영천봉(靈天峯), 마을 주민들이 ‘영실봉’이라고 하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빨간 벽돌과 파란 기와지붕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이러한 모습을 갖추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산제당은 영천봉의 동북쪽 끝자락, 마을입구에서 봤을 때 동산의 왼편쪽에 있는 큰 둥구나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로 지어놓은 제당은...
-
1991년에 백중놀이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 되면서, 매년 ‘연산 백중놀이 축제’를 통해 옛 모습을 재현해오고 있다. 매년 음력 7월 15일에 벌어지는 축제는 백중놀이 보존회에서 주관을 하고 있으며, 초대회장 송인수 씨를 시작으로 김용만 씨를 거쳐 2008년 현재 강대혁 씨가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처음에 120명으로 시작된 보존회는 현재 회원이 180명이 될 정도로 20...
-
현재까지 백중놀이가 열리고 있는 지역은 김해와 서울, 연산 지역이 전부이다. 그 중에서도 연산의 백중놀이는 효자와 효부에게 상을 주고, 불효자를 응징하며 농사짓는 머슴에게 상을 주어 충·효·근면을 장려하는 민속놀이로 527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연산의 백중놀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논산문화원에서 발행한 『논산의 민속』이라는 책과 연산백중...
-
드라마와 책에서 보았던 옛 장터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길바닥에 천을 깔고 물건들을 늘어놓고, 보따리 가방을 등에 짊어진 사람들이 짚신을 신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옛날의 시골 장터의 모습이 오늘날 연산의 재래시장 모습이었다. 연산1리와 연산4리에 걸쳐 장이 열리던 시장은 매달 5일과 10일, 15일과 20일, 25일과 30일로 5일장이 열렸던 논...
-
산신계의 역사는 산신제의 100여년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산신계가 몇 년에 시작되었고, 누가 시작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산제당의 현판에는 1936년 이영호 씨를 비롯하여 열한 명의 산신계원들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 계원들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1월 3일 풍장을 치고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쌀을 비롯한 각종 음식을 걷었다. 이렇게 모은 쌀과...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과 채운면 장화리를 연결하는 다리. 웃강경다리라고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상(上)자를 사용하여 상강경교(上江景橋)라 이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강경교는 총 연장이 140m이고, 폭이 11.7m이며, 왕복 2차선의 교량이다. 상강경교는 1985년 국도 23호선의 확장과 포장에 따라 논산시에서 인수·인계하여 강경천(江景川)을 가로질러 도시계획도로로 건...
-
연산 사거리에서 벌곡으로 가는 길 옆인 연산3리에는 노송 한 그루가 우산살처럼 가지를 펼치고 있고 그 아래에 소나무 이름을 딴 ‘송불암’이라는 석불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연산리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송불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초에 광산김씨 가문이 연산 땅에 살고 있었다. 그는 글 공부에 매진하여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고, 벼슬길에 오르면서 개경에 있는 좋은...
-
KBS 네트워크(2008년 5월 방영), 대전일보(2003, 2004년, 2005년 보도) 등 정말 여러 차례 맛집으로 소개된 ‘연산순대’집을 찾아갔다. 연산재래시장에서 대추거리로 조성된 길가의 맞은편에 위치한 가게는 대로변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연산순대집의...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과 부적면 아호리를 연결하는 다리. 아호대교는 총 연장이 236.7m이고, 폭은 10m이며, 왕복 2차선의 교량이다. 아호대교는 1981년 국도 1호선 확·포장 공사에 따라 계백교 준공으로 논산시에서 인수, 인계받아 도시계획도로로서 논산천(論山川)을 가로질러 건립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 앞에는 연무로터리가 있으며, 연무읍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에 있다. 한편, 천안논산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논산 지역에서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의 역할을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 앞의 연무로터리가 하고 있다.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은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에 매표소가 있다. 2008년 현재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의 센...
-
연산아문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돌계단이 나타난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면 눈앞으로 어느 동네에나 있을법한 공원이 펼쳐진다. 그러나 연산리의 연산시민공원은 이곳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원이다. 연산공원의 계단을 올라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애국지사 농암(濃巖) 곽성진(郭性鎭) 선생 추모비이다. 곽성진 지사는 논산 강경에서...
-
연산리가 조선시대에 연산현의 소재지로서 연산의 중심마을이었다는 사실은 현재 연산리에 남아있는 동헌 터와 아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산4리에 위치한 연산공원의 서편자락에 위치한 연산아문(連山衙門)은 1973년 12월 24일에 시도유형문화재 9호로 지정되었으며, 관아건축물로 1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연산아문과 비석군, 건물의 초석...
-
연산리는 삼국시대에는 황산군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연산을 감싸고 있는 천호산의 산세가 계룡산과 대둔산과 연이어져 있기 때문에, ‘연이은 산이다’라는 뜻에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마을 주민들 중에도 이러한 연유에서 연산리라는 이름으로 붙여졌다고 기억하...
-
연산재래시장에는 16개 점포가 전부이지만, 그 입구에는 옛 시장을 연상시키는 노점상들과 가게들이 연산재래시장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가 허가한 16개의 점포만이 연산재래시장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16개 점포주들을 비롯하여 연산 주민들은 하나같이 모두 입구의 상점들도 연산재래시장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연산재래시장의 입구의...
-
연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연산도토리묵이 최고일 것이다. 현재는 도토리묵 가게가 연산재래시장과 연산 일대를 아무리 눈을 씻고 뒤져도 단 한 곳밖에는 없지만 불과 1980년대만 해도 연산의 도토리묵거리는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연산리에 스무 집 정도에서 도토리묵 장사로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고 하니, 뒤집어 생각해보면 도토리...
-
미신이라는 이유로 현대인들에게는 잊혀져가는 산신제. 6·25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 산신제, 장승제, 유왕제 등 전통 민간신앙은 살아있었지만,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 사업으로 그 맥은 거의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산신제를 아직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는 마을이 연산리이다. 산제당에 걸려있는 현판의 기록에 의하면 수백 년 전부터 산신제...
-
연산리를 관통하는 마을 중간의 도로를 걸어 연산리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대추거리이다. 연산이 예전에는 대추의 생산지로 유명했고, 지금도 특화구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연산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구사거리’를 중심으로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대추거리에는 대구상회를 시작으로 연산시장 쪽으로 들어가면서 충남대추상회, 연산상회, 호남대추상...
-
대한민국에 있는 어느 마을이 그러하지 않았겠냐마는 연산마을에도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특히 충남에서 험하기로 이름난 대둔산과 가까이에 위치했던 여건 때문에 대둔산에 숨어있던 무장공비들에 의해 많은 주민들이 희생을 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유엔군과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를 차단하게 되...
-
연산리는 다른 어느 마을에 비해 많은 행사를 치루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10월 말에 있는 대추축제는 모든 주민이 손꼽아 기다리는 마을 전체의 행사이다. 대추축제는 이틀간 진행되면서 첫째 날 연산면의 40개리의 주민들이 리별 체육대회를 함께 개최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겹경사인 셈이다. 2008년 축제가 열리는 10월 한 달 동안은 연산리 주민은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
연산도토리묵이 그토록 유명하지만, 2008년 현재 연산에서 직접 손수 도토리묵을 제조하여 파는 곳은 이제 단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 시장 한편에 김성금 씨의 가게로 2006년에 ‘기능성 도토리묵’을 특허출원을 하여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도토리묵을 제조할 때에 한약재 추출물을 사용함으로써 현대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감소시키기 위하여 특허를 받았다는 기능성 도토리묵은 이미...
-
제주도에서도 순대를 맛보기 위해 들른다는 그 유명한 ‘연산할머니순대’집을 찾았다. 가게 입구에 붙어있던 텔레비전 방영화면사진이 그 명성을 상징하고 가게 안은 신문 기사 사진들이 빼곡하다. 가게의 카운터에 앉아 계신 강윤찬 씨(51)가 이 가게의 사장님이다. 그리고 주방에서 바쁘게 순대를 썰고 계신 손복례 할머니(73)가 강윤찬 씨의 어머니이다. 연산할머니 순대의 창조자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과 부여군 세도면을 잇는 다리. 황산벌을 지난다는 의미를 담아 황산대교라 하였다. 교량 형식은 PSC 상자형, 하부 형식은 벽식 교각, 기초 형식은 우물통 기초이다. 충청남도에서 발주하여 삼부토건에서 시공하였으며, 설계는 영국 스트롱홀드 인터내셔널과 동일기술공사에서 시행하였다. 건설 기간 3년 3개월, 건설 비용 76억 원이 들었다. 1987년 6월 논산과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