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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인천역에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제물포역·도화역·주안역을 거쳐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5동 구로역까지 연결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이자 수도권 전철. 경인선은 한국 최초의 철도로 1897년 3월 29일 인천 우각현(牛角峴)[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공사에 착수하여 1899년 9월 18일 제물포(濟物浦)에서 노량진(鷺梁津) 사이의 33.2㎞를 개통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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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있는 고개는 다음과 같다. 기당재는 문학 초등학교 북쪽에서 승학산을 넘어 주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곳에 번개가 치면 비가 온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대처닛 고개는 학익동에서 문학동으로 넘어오는 데 있는 고개로, 본 이름은 도천 고개이다. 대처닛 고개의 서쪽 아래에 도천단(禱天壇)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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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관청 마을이 자리하고 있던 관교동과 문학동은 고려 시대 이전부터 인천의 중심지였으며 인천도호부 관아 소재지였다. 예부터 인천도호부 관아와 그 부속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관청 마을이라고 불렸다. 이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 현재의 관교동이다. 관교란 관청과 향교가 있었음을 뜻한다. 1906년 인천읍 읍내리가 관청리와 향교리로, 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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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인천도호부 병사들이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활쏘기 연습을 했던 곳. 관혁(貫革)은 과녁의 한자어로 조선 시대 인천도호부에 속한 병사들이 활쏘기 연습을 했던 활터이다. 1999년 간행된 『인천의 지명 유래』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13-1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주민 자치 센터 남쪽 200m 지점이 관혁 터라 한다. 지금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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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문학동으로 넘어가는 데 있는 고개. 대처닛 고개의 서쪽 아래에 도천단(禱天壇)이 있어서 도천단 고개라 불렀는데, 이름이 오래 되면서 대처닛 고개로 불리었다. 대처닛 고개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문학동으로 넘어가는 데 있는 고개로, 본 이름은 도천 고개이다. 도처닛 고개, 대천이 고개, 도천이 고개, 문학 고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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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의 인천 향교 주변에 있었던 우물. 우물의 모양이 항아리처럼 깊으면서 물이 잘 나온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4년 이강로의 「인천시 남구 지역 땅 이름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당시에도 독우물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주택 단지 개발로 인해 우물이 없어졌다. 독우물은 인천 향교의 남쪽 논 가운데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현재 그 정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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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광물이나 준광물이 자연적으로 모여 이루어진 고체. 바위 혹은 암석(巖石)은 광물이나 준광물이 자연적으로 모여 이루어진 고체를 가리킨다. 지구의 지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는 생성 방법에 따라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으로 분류된다. 화성암은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바위이고, 퇴적암은 풍화와 침식에 의해 기존의 암석에서 떨어져 나온 광물이나 준광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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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문학산의 다른 이름에 대한 유래를 설명한 이야기. 1999년 8월에 인하 대학교 국문학과 설화 채집반이 문학산 일대의 전설과 민담을 수집했다. 당시 지도 교수 최인학과 대학원생 염희경, 심명숙, 신세윤 등이 답사하는 중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거주하는 맹건호[남, 당시 68세], 이홍식[남, 당시 72세] 제보자로부터 채록하였다. 「봉화뚝과 배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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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문학동 주민 센터에 따르면 2012년 1월 현재 예전의 산성 마을 지역에는 모두 1,209세대에 2,20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산성 마을은 문학산성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학동은 옛날에는 성촌(城村), 남산(南山)으로 불렸다. 1903년 8월에 서촌산성리(西村山城里), 남산리(南山里)로 구분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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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학산 마을 뒤 배 바위 아래에 있었던 우물. 이강로의 「인천시 남구 지역 땅 이름의 조사 연구: 남촌·선학·연수·청학·동춘·문학·관교동」에 의하면, 산신 우물은 학산 마을 뒤 배 바위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희강의 『향토 인천의 안내-고적, 명승, 천연기념물』에는 산신 우물이 향교 뒷산 수챗골에 있었으며 물이 잘 나고 물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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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전해지는 신화, 전설, 민담의 총칭. ‘옛이야기’의 준말로 ‘이야기’라 한다. 이야기의 참 뜻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신화, 전설, 민담을 말한다. 원래 신화, 전설, 민담의 삼분법은 서구 학자들이 구비문학을 연구하면서 편의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삼분법에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어떤 이야기가 신화에 속할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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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 승기내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발원하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승기리 앞을 지나 서해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승기리 앞을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승기내는 주안 지역의 시가지가 확산되고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복개되어 만수로가 되었다. 승기내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수봉산에서 시작하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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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던 자연마을. 승학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뜸의 마을을 일컫는다. 승기리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신비 마을’로 불린다. 이 마을의 이름은 한때 없어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생겼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시 이어서[承] 생긴 마을[基]’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내용이며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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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신비 마을 앞에 있던 들. 신비 마을은 과거 승기리였다. 승기리는 승학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뜸[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의 마을을 일컫는다. 승기리 지명 유래는 한때 없어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생겼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하여 ‘다시 이어서(承) 생긴 마을(基)’이라고 한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지명 유래는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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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 7동에 있던 자연 마을. 인천광역시청 앞에서 경원로를 따라 인천광역시 중구 쪽으로 가다 보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신기 사거리와 만난다. 이 동네 일대를 예전에 신기촌이라고 불렀다. 신기촌은 한자어이며, 우리말 이름은 새터말이다. 신기촌은 시의 중심이었던 관청말 뒤쪽에 새로 터를 잡아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새터말을 한자로 바꾼 것이 신기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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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산. 연경산(衍慶山)은 학익산(鶴翼山) 혹은 청명산이라고도 한다. 학익산이라고도 불리는 것은 멀리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문학산은 이전 이름이 학산(鶴山)이었는데, 학익산과 문학산 주봉(主峰)이 두 날개처럼 펼쳐져 동네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라 한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학골, 핵굴 등으로 불렸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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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인천도호부 관아의 감옥이 있던 자리. 우리나라에서 미결의 피의자를 가두어 두던 장소를 옥(獄)이라 하는데, 미결수 외에도 기결의 수인(囚人), 즉 오형(五刑)의 하나인 도형자(徒刑者)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중앙의 의금부나 형조를 비롯하여 지방 관아와 감영에도 각각 옥이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화도진도(花島鎭圖)』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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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다리에서 유래된 지명. 옥다리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동회 앞 100m 지점에 있었던 다리이다. 관청은 관청 마을에 있고 옥(獄)은 개울 건너에 있었으므로 옥사(獄舍)로 왕래하는 다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학동 주민인 김무웅에 의하면, 문학 초등학교와 문학 출장소를 가기 위해서 건너 다녔던 돌다리로 ‘출장소 가는 다리’ 또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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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문학산의 이전 이름이 ‘학산(鶴山)’이었다. 학산 마을은 문학산의 기슭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옛 이름은 남산리(南山里)였다. 학산 마을에는 학산 서원 터가 남아 있다. 학산 서원은 정관재·이단상을 모신 서원으로, 1768년 ‘학산(鶴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788년(정조 10) 이단상의 아들 간암 이희조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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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조선 시대 유생들이 공부하던 인천 향교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향교 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1호로, 사적 사료가 분명치 않아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근세에 와서는 읍내, 승기 부락으로 구분되고 1903년 8월에 동·리명 개정으로 읍내리, 동촌승기리가 되었다. 19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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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인천도호부의 화약고 자리. 조선 시대에 화포가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화포를 발사하는 데 사용되는 화약도 함께 보급되었다. 화약은 자칫 소홀히 취급하면 폭발이나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보관에 신중을 기해야 했고, 지방마다 별도의 화약고를 지어 화약의 관리에 힘썼다. 이때 인천도호부에도 화약고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