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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송곡리(松谷里), 인담리(麟淡里), 금동어리(金冬於里), 성을산리(省乙山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금동어리는 송곡리에 합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나누었다. 1832년(순조 32)에는 인담리를 성을산리에 합하여 송곡리, 금동어리, 성산리(省山里)라 하다가 1864년(고종 1)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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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속사리에 있는 금선봉(琴仙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 대여촌리(代如村里), 월아미리(月牙彌里), 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여촌리과 월아미리는 금산리에 합하여 금산리(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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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후기의 축곡리와 내동리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내동리에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축곡리(杻谷里), 말동리(末洞里), 내평리(內坪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말동리와 내평리를 축곡리에 합하였다가 1832년(순조 32)에 축곡리와 내동리라 하였다.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유곡면과 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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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면 내에 위치하고 있는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이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대곡리(大谷里), 오곡리(吳谷里), 그리고 북면(北面) 사죽리(沙竹里), 설매곡리(雪梅谷里), 월배곡리(月背谷里), 잉옥리(芿玉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大谷里), 설매곡리(雪梅谷里)라 하였다가 18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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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대평면은 예로부터 한들 또는 큰들이라고 불리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서면(西面)의 서신대리(西申大里), 침곡리(針谷里), 가을동리(加乙洞里), 대평리(大坪里)이던 것이 임진왜란 후에는 대평리로 통합되고 조선 후기에는 침곡면(針谷面)과 대평면(大坪面), 또 조선 말기에는 침곡면(針谷面), 신풍면(新豊面), 마동면(馬洞面),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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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위치한 면(面). 명석면 신기리에 있는 자운석 또는 운돌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신기리에 자웅(雌雄)을 상징하는 한 쌍의 암석이 있는데 이 돌을 운돌 혹은 울돌이라고 한다. 본 자웅석은 고려 23대 고종18년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집현산의 암석이 석성 축조공사로 힘든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가던 중 승려로부터 축성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신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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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읍(邑).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법륜리(法輪里), 굴곡리(屈谷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법륜리와 굴곡리는 조동리(槽洞里)에 합하여 조동리라 하였다. 1832년(순조 32) 이래로는 소촌리(召村里), 갈곡리(葛谷里), 조동리(일부)라 하였고, 1864년(고종 1) 이후 조선 말기까지는 소촌면(갑오개혁 이후 文山面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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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부에 위치한 면(面). 전설에 의하면 세 고을(동향, 오방, 상미)로 흐르는 세천(細川)이 배암처럼 너울거려 흐르고 있어 지나가던 어느 스님이 사천(蛇川)이라 이름지어 부르다가 지역에서 연도는 알 수 없으나(융희 2년경으로 추정) 뜻있는 선비들이 사(蛇)는 혐오감을 준다 하여 아름다울 미(美)자를 붙여 미천이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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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부다리(副多里), 상사리(上寺里)라 하였다. 1832년(순조 32) 이래로는 상사리라 하다가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상사면이라 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상봉면(上奉面), 하봉면(下奉面), 상사면(上寺面)이라 하다가 1906년(광무 10)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의하여 함안군(咸安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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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남쪽에 위치한 면(面). 수곡면 대천리에 큰 샘인 찬새미(한새미)가 있는데, 수곡면은 그 수계 지역으로서 물이 많은 곳이라는 뜻에서 수곡(무실)이라 불렸다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서면(西面) 수곡리(水谷里)·원당리(元堂里)·이하리(蘺下里)·자매곡리(自梅谷里)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자매곡리(自梅谷里)가 이하리(蘺下里)에 합하여졌다.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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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단에 위치한 면(面).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으로 불렸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반성현으로 불렸다. 이후 1864년(고종 1)에 반성면이라 하였다가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반성현(班城縣)이라 하다가 동면(東面) 반성리(班城里), 가수개리(柯樹介里), 정수개리(丁樹介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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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위치한 면(面).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으로 불리웠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반성현으로 불렸다. 이후 고종 1년(1864)에 반성면이라 하였다가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반성현(班城縣)이라 하다가 동면(東面) 반성리(班城里), 비라동리(非羅洞里)라 하였고,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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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면(面). 정촌면의 전신인 정촌면(鼎村面)의 정(鼎)자에서 目을 지우고 정촌면(井村面)이라고 하고, 원 정촌면(鼎村面)은 정동(鼎洞)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정촌리(鼎村里), 지공리(枝貢里), 가차례리(加次禮里), 두모곡리(豆毛谷里), 진수개리(陳樹介里)였고, 임진왜란 이후에 두모곡리는 정촌리에 합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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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지수면 청원리에서 발원하는 지수천(智水川)에서 유래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용봉리(龍奉里), 청원리(淸源里), 승어산리(勝禦山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청원리와 승어산리는 용봉리에 합해져 이후로는 용봉리라 하였다. 고종 1년(1864) 이래로는 용봉면(龍奉面)이라 하다가 갑오경장 이후는 하봉면(下奉面),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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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진성리(晋城里), 가좌촌리(加佐村里), 반동산리(班東山里), 이천리(耳川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이천리는 진성리에, 반동산리는 가좌촌리에 합하여 각각 진성리, 가좌촌리라 하였다.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이(里)가 면(面)으로 개칭되어 가좌촌면과 내진성면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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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북부에 위치한 면(面). 집현면(集賢面)은 지역 내에 있는 집현산(集賢山)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집현산(集賢山)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진주목읍지(晋州牧邑誌)』, 『진양지(晋陽誌)』의 산천(山川)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북면(北面)에 속해 동물곡리(冬勿谷里), 모태곡리(毛台谷里), 정곡리(井谷里), 신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