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시대 산성.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갈월산성(葛月山城)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안성인·홍계남이 의병 수천 명을 모집하여 이 성을 중심으로 싸워 왜군을 대파하였다.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고 홍계남을 수원부사로 임명했다는 설이 있다. 갈월산성의 건립경위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뒷산에 있는 삼국시대 보루 터. 삼국시대에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보루로 추정되며, 남쪽의 엽둔재를 지키는 초소와 같다. 임진왜란 때 안성의 선비 홍계남(洪季男)이 의병을 이끌고 왜군을 막았던 곳이라 전해온다.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5리 엽둔재의 북쪽 산봉우리에 있다. 해발 371.7m의 봉우리 외...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가마 유적. 갈월리 유적(葛月里 遺蹟)은 대중골프장 건설과 관련하여 해당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2지점에서 조선시대 숯가마 1기 및 소성유구 2기, 8지점에서 통일신라 기와가마 1기 등 총 4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진천군 진천읍에서 백곡면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峰)·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 증조할아버지는 강인(姜璘)이고,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다. 아버지는 강주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부인은 김광수(金光燧)의 딸로 안동김씨이다. 아들은 강선(姜銑)과 강현(姜鋧)을 두었다. 강백년(姜栢年)[1603...
-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添齋)·표옹(豹翁)·노죽(路竹)·산향재(山響齋)·표암(豹菴), 시호는 헌정(憲靖). 1713년(숙종 39) 한양에서 태어나 1791년(정조 15) 세상을 떠났다. 시(詩)·서(書)·화(畵)의 삼절로 불렸으며, 식견과 안목이 뛰어난 사대부 화가였다.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와 인물화를 유행시켰으며...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강주(降州)는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을 말하는 것으로, 고려 초기 제정된 이름이다. 995년(성종 14)에 지방관으로 자사(刺史)를 파견하였고, 1005년(목종 8)에 그것이 폐지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청주목에 소속되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1, 청주목(淸州牧)조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충비(忠婢). 개덕은 문백면 파재에 살던 유의직 집안의 종이었다. 유의직이 태어나기 5개월 전에 유의직의 아버지가 죽고, 또한 유의직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어머니 최씨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개덕은 젖먹이 자식에게는 미음을 먹이고 유의직에게는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 그 후 개덕은 유의직이 성장하자 채지홍(蔡之洪)에게 학문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구릉지 야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걸미산성(榤尾山城)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옹정마을 위에 있는 해발 약 80m의 낮은 구릉지 야산에 위치한다. 동쪽에 ‘덕문이들’로 속칭되는 넓은 들판을 끼고 있고, 북쪽으로는 백곡천(栢谷川)을 사이에 두고 진천 대모산성(大母山城)과 마주보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도당산성(都堂山城),...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원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역사와 문화. 고대를 일컫는 데에는 역사학적·정치학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설이 있으나, 한국사에서는 흔히 원삼국(原三國)시대부터 후삼국의 병립기까지를 이른다. 원삼국시대[B.C. 1세기~A.D. 3세기경]는 삼국시대의 원초적인 단계로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성장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백제·가야·신라의 모태인 마한·변한·진한의...
-
918년부터 1392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고려는 건국 후 후백제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특히 고려와 후백제와의 대결은 양국의 접경지대인 보은·회인·문의·청주·제천·충주 일대의 충청북도 지역과 상주·김천·성주 등지의 경상북...
-
충청북도 진천군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조영된 무덤. 고분(古墳)은 사전적 의미로는 옛무덤 혹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을 말하며, 고고학에서는 개념을 한정하여 선사시대부터 삼국통일 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성행하고 고분축조가 쇠퇴한 시기까지의 무덤을 말한다. 고분은 무덤 자체의 양식 및 규모와 부장된 유물의 양상을 통해, 만들어진 당시의 정치·사회·문화에...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 고인돌은 종종 지석묘(支石墓)라는 한자어나 돌멘(dolmen)이라는 영어 이름으로도 불린다. 고인돌은 거석 기념물의 일종으로 무덤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계적으로 고인돌은 서유럽, 지중해 연안, 근동,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해안, 영국, 중부 유럽의 스위스 등 각지, 동양권에서는 남인...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삼국시대 수혈유구 및 도랑유구.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94번지 일원에 진천군에서 추진하는 진천생활체육공원 조성 부지[약 35,730㎡] 내에서 지표 조사 결과 토기편·기와편·자기편 등 많은 양이 수습되어 매장 유구의 존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 약 12.994㎡에 대하여 2003년 12월 2일부터 2004년 1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삼국~조선시대 유적. 교성리 유적에서는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의 유구가 발굴되었다. 고분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석축묘 25기는 삼국시대 중 신라와 관련된 것이고, 토광묘 1기는 고려시대, 토광묘 5기는 조선시대에 속한다. 삼국시대 유구는 교성리 유적 발굴의 계기가 되었고, 실제 발굴을 통해서도 가장 많은 유구가 확인...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에 걸쳐 있는 신라시대 토축 산성. 국사봉산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이 없어 산성의 명칭과 유래 및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다만 임진왜란 당시 인근 주민이 국사봉에 둥근 보루를 쌓고 난을 피하였다는 기록이 보일 뿐이다. 국사봉산성의 정상부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이 조망되는데, 특히 진천의 남서쪽, 즉 천...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적지. 진천~두교리 도로 공사 구간 내에 있는 금곡리 모치울 유적은 발굴 조사 결과 주거지 12기, 수혈유구 6기, 아궁이 1기, 숯가마 5기, 석곽묘[돌덧널무덤] 6기, 토광묘[널무덤] 66기, 석렬유구(石列遺構) 2기, 구상유구(溝狀遺構) 1기 등 99기가 조사되었다. 12기의 주...
-
고구려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충청도(忠淸道) 진천현(鎭川縣)」 조에는 금물노군은 고구려 지명으로 만노군(萬弩郡),...
-
삼국시대 충청북도 진천 서쪽 지역에 있던 백제의 성. 금현성은 550년(백제 성왕 28년, 고구려 양원왕 6년) 백제가 고구려 영토에 있던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고구려가 이에 대응해 함락시킨 백제의 성이다. 오늘날의 충청북도 진천군 서쪽이라는 설이 있고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과 전의면의 경계에 있는 금이성(金伊城)이라는 설도 있다. 금현성과 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계 시설. 『여지도서(輿地圖書)』 진천현(鎭川縣) 제언(堤堰)에 기지제(機池堤)는 “현의 북쪽 40리에 있다. 주위는 562척 2촌이고, 길이는 282척, 너비는 243척, 깊이는 4척 5촌이다[在縣北四十里周回五百六十二尺二寸長二百八十二尺廣二百四十三尺水深四尺五寸]”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지리지의 기록에 나타나는...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일제강점기 유학자 김긍현의 불망비. 김긍현(金肯鉉)은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에서 출생한 유학자로, 1923년 초평초등학교 설립 당시 4,000평의 부지를 기부하여 학교 설립에 공이 큰 인물이다. 김긍현 불망비는 초평초등학교 설립 당시 부지가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전답을 희사한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2...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전라·충청·경상·해서 관찰사를 지낸 공평공(恭平公) 김영유(金永濡)의 6세손이다. 고조는 김홍필(金洪弼)이고, 증조는 숭의전참봉을 지낸 김자(金磁)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도병마절제사를 지낸 김연경(金延慶)이고, 아버지는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였던 김립(金岦)이다. 김내현(金...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문울(文蔚), 호는 절정. 아버지는 고려 후기의 무신 총랑 김광갑이다. 김사혁(金斯革)은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피난하는 등 위기에 처하였을 때 이들을 막은 공으로 이등공신이 되었다. 부모와 처에게 봉작하고 아들에게 7품 관직을 주었으며,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였다. 1376년 왜구가 부여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鑛山). 아버지는 전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지낸 김질원(金質元)이다. 김상하(金尙夏)가 활동하던 시기는 광해군 대로 정치적으로 혼탁한 시대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적장자가 아니고, 명의 책봉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자를 바꾸자는 논의가 척신과 소북 세력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에 이이첨(李爾瞻...
-
삼국시대 만노군(萬弩郡) 태수를 역임한 신라의 귀족. 본관은 김해(金海). 일명 김소연(金消衍).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12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주군주(新州軍主)를 역임했던 김무력(金武力)이며, 아내는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손녀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아들은 삼국 통일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김유신(金庾信)이고,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비가 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 출신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장수. 본관은 김해(金海). 가야국 김수로왕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만로군 태수 김서현(金舒玄)이고, 어머니는 입종 갈문왕인 숙흘종(粛訖宗)의 딸 만명부인(万明夫人)이다. 김유신(金庾信)[595~673]은 609년(진평왕 31)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을 수양하였다. 629년(진평왕...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후(而厚). 김익견(金益堅)[1599~1668]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에서 태어났다. 1624년(인조 2)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 이괄이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정치적 무고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괄의 군대가 한양을 점령하자 인조는 공주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익견이 임금을 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우천(牛川). 안찰사(按察使) 김사렴(金士廉)의 7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철(金轍)이고, 할아버지는 김석명(金碩鳴)이며, 아버지는 김효건(金孝騫)이다. 외조부는 이박(李璞)이며, 장인은 우희보(禹熙輔)이다. 김적(金適)[1564~?]은 1610년(광해군 2) 치러진 별시 을과에 1등으로 급제한 뒤 이조...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정길(金廷佶)[1581~?]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12세의 나이로 왜병에게 사로잡혔다. 포로가 된 그가 사흘 밤낮을 울자, 왜병의 장수가 사유를 물었다. 이에 김정길은 고향에 살고 계신 부모님 때문이라고 답변하였는데, 왜병 장수가 글을 아느냐고 묻...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10세손이며, 형은 김천주(金天柱)이다. 아들로 김성옥을 두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가 주동이 되어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탄(坦)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무신란이 일어났다. 이인좌가 이끄는 반군은 청주성을 함락하고 신천영을 충청병사로 삼은 뒤 북진하여 진천에 이르렀다. 당시 진천현...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왜적은 빠르게 북상하면서 여주와 양근을 거쳐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진격하였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은 죽산과 용인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5월 2일 동대문에 주둔하였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수백(壽伯). 남연년(南延年)[1653~1728]은 1653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과 고부군수를 역임하였으며, 한때 당파 싸움에 휘말려 파직되기도 했다. 다시 벼슬길에 올라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과 황해도우후(黃海道虞候)로 있다가 이산군수·박천군수·안동부진영장(安東府鎭營將)을 역임하...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영의정 충경공 남재(南在)이며, 아버지는 병조의랑을 지낸 남문경(南文景)이다. 아들로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남윤(南倫), 손자로 남흔(南忻)과 남칭(南稱)을 두었다. 남지(南智)[1400~1452]는 17세인 1425년(세종 7) 음보로 사헌부감찰이 되었으며, 그 후 경상도관찰부 경...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주거지 및 건물지. 진천~두교리 도로 공사 구간 내 내촌리 당골 유적은 국도 17호선 중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월리에서 광혜원면 실원리를 잇는 총연장 9.4㎞ 구간 중 시굴 조사 결과 유구가 확인된 5개소 유적을 말한다. 현재 내촌리 당골 1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만이 진행되었다. 발굴 조사...
-
충청북도 진천군 내촌리에 위치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주거 및 분묘 유적지. 내촌리 유적(內村里 遺蹟)은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안성-음성 간 8공구 고속도로 공사 문화재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2005년 4월 11일부터 7월 9일까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되었다. 조사 지역은 충청북도 음성군 미곡리, 진천군 미잠리·내촌리 지역이다. 발굴조사 결과 내촌리 유적에서는 조선...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거석 기념물로 알려져 있으나, 축조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도 많다. 전국에 걸쳐 고루 분포하며 보통 1~2m 높이의 자연석을 그대로 혹은 일부를 다듬어 세운다. 대부분 단독으로 존재하지만 쌍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 경우 윗부분이 뾰족하면 남성 선돌로, 둥글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의 도당산과 행정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석축 산성. 도당산성은 진천군내 서편의 낮은 구릉지에 축조된 산성으로서 넓은 평야 지대를 이루는 진천 지역의 외곽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만노군의 치소(治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문헌 기록은 없고,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원 터.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동주원(東注院)은 조선시대 죽산현 관할의 원으로서, 원래는 경기도 죽산군 남면 동주원리에 있었다. 동주원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실원리에 소속되었다. 동주원 터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는 알 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임연의 전설이 깃든 연못 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의 덕문이 방죽은 동호지로 알려져 있다. 동호지는 고려 후기 무신 임연(林衍)[?~1270] 장군과 관련된 유적이다. 임연은 자신의 고향인 이곳에 농장을 경영하였는데 그의 사후 집터를 연못으로 만들어 동호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 관개시설이 마련되면서...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신통리·용정리 두타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삼국시대의 ‘도서성’으로 비정하는 설이 있다. 도서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만노군(萬弩郡), 즉 지금의 진천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 후기에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두타산에 있다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장군 실죽(實竹)이 도서성을 쌓고 백제...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신통리·용정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의 방어 시설. 두타산 보루는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와 신통리에서 용정리까지 걸쳐 있는 해발 581.1m의 봉우리에 위치한다. 두타산 보루는 봉우리에 있는 보루와 외곽으로 이루어진 성터이다. 두타산에서 서쪽으로 낮아진 후 다시 솟은 봉우리 위에 산불 감시 초소가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 사이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만노산성(萬弩山城)은 문헌 기록에 만노성(萬弩城)·만뢰성(萬賴城)·이을성 등으로도 나타나는데, 현재는 만노산성 또는 만뢰산성으로 불린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표기된 바에 따라 이을산성이라 칭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만노산성의...
-
신라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만노군(萬弩郡)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에 처음 나타난다. 진평왕 때 김서현(金舒玄)을 고구려와의 접경 지역인 만노군 태수로 파견하였는데 여기서 김유신(金庾信)이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와 사석리 문안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문안산(文案山)[420m]은 사방의 전망이 대단히 좋은 전략적 요충지로, 문안산성(文案山城)은 삼국시대에 이미 축조되어 주로 진천의 남쪽 방면을 방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진천군으로 진입하다 보면 진천읍 문봉리와 사석리 사이의 속칭 ‘잣고...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생활 유적지. 미잠리 유적은 상산초등학교 근처 최통마을과 갯말로 들어가는 소로를 따라 들어가면 계곡이 나오는데 그 남서쪽에 있는 밭 일대에 해당한다. 수습되는 유물은 회청색 경질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평행타날문이 주로 시문되어 있고 회전손질 흔적이 있다. 회청색 경질토기의 구연부에는 2줄의 횡침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여흥(驪興). 영의정을 역임한 여흥부원군 묵헌공 민청(閔清)의 14세손이다. 민진동(閔鎭東)[1660~?]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영조의 즉위를 두고 소론을 중심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반란을 모의하자, 영조가 반란 모의 세력을 색출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에 이인좌 등이 1728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적. 진천 읍내에서 청주로 향하는 국도 17호선을 따라가면 벽암리 진천 길상사(吉祥祠)가 보인다. 진천 길상사 방향으로 200m 가다 보면 국궁장이 보이는데, 벽암리 유적은 국궁장 사무실 오른쪽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1999년 오창-진천 간 도로 확장포장공사 구간 지표조사에서 회청색 경질 타날문토기[두드림무늬토...
-
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지역 관아에서 긴급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烽燧)는 사전적 의미로 높은 산정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써 변경의 정세를 중앙에 급히 전달하는 군사 통신 시설을 말한다. 봉수제의 유래를 보면 중국에서는 25~27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이미 상당히 정비된 봉수제도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삼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와 사석리 사이 봉화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 봉수 터. 봉화산 봉수는 남쪽의 청주 것대산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의 음성 망이산 봉수로 연락을 취하던 간봉으로, 서쪽에는 문안산성(文案山城)이 있고 북쪽으로는 도당산성(都堂山城)이 있어 전략상 요충지에 세워진 봉수대였다. 『상산지(常山誌)』에 1731년(영조 7) 이인좌의 난...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횡구식 석곽묘. 사곡리 유적은 오창-진천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 지역의 문화유적을 조사한 결과 사곡리와 중산리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다양한 유적이 발굴되었고 특히 토기가 밀집해 있었다. 발굴 결과 횡구식 석곽묘[앞트기식 돌덧널무덤]가 대부분 파괴된 상태여서 유구의 전체가 쉽게 드러났다. 한편 유물은 석곽...
-
충청북도 문백면 사양리와 문덕리에 위치한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 주거 및 분묘 유적. 사양리 유적(思陽里 遺蹟)은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문덕리 일원에 전기·전자 농공단지를 조성하게 됨에 따라 조성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의 입지는 해발 350.2m의 양천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해발 76m 내외의 낮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에 있는 분묘. 삼국시대 석곽묘 1기, 탄요[숯가마] 1기, 고려시대 이후 토광묘[널무덤] 14기 등 16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토·도류 13점, 금속류 21점, 옥석류 2점 등 36점이 출토되었다. 산수리 유적의 석곽묘는 인근 교성리 유적, 음성 문촌리 유적 등과 유사한 양식을 띠며, 출토 유물로 보아 6세기대로 판단된다. 산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 삼덕리 고분은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산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산 정상부의 평탄한 지형에 입지하고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진천 대모산성(大母山城)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백곡천(栢谷川)이 범람하여 형성한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삼덕리 고분과 같은 백제시기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개 시설. 상고척 제언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위치와 크기가 자세하여 조선 후기 이전부터 사용하던 관개 시설임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 진천현(鎭川縣) 제언(堤堰)에는 상고척제(上古尺堤)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둘레는 663척이고, 길이는 280척, 너비는 180척, 깊이는 4척 2촌이...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조선시대 제언.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는 상몽미동 제언과 하몽미동 제언(下蒙未洞堤堰)이 있다. 두 제언은 덕산읍 용몽리 안구말 동-서에 위치하는데, 상몽미동 제언은 하몽미동 제언과 구분하여 상몽미동(上蒙未洞) 제언이라 불린다. 순채(蓴菜) 자생지로 유명하며, 몽촌지·상몽촌지라고도 부른다. 『여지도서(輿地...
-
고려 성종 때 별호로 제정된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옛 이름. 신라 말에 진천 지방의 유명한 산으로 상산(常山)이 있었고, 이 산에 세워진 사찰이 상산사였다. 진천의 명칭이 통일신라 이래로 자주 바뀌었고, 특히 후삼국시대에 들어서도 두 차례나 바뀌었음을 볼 때 당시 진천의 명산인 상산이 이 지역의 명칭으로 병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말부터 불려오던 ‘상산’이라는 지명...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신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생활 유적지. 상신리 유적은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첫째 구역은 진천읍에서 음성으로 가는 국도 21호선을 따라가다 진천여자중학교를 지나면 오른편으로 낮은 구릉 지대가 나오는데 이곳이 대모산성이다. 구릉을 따라 나 있는 작은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약 500m 들어가면 선명산업이란 공장이 나온다. 이 공장의 북...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금속기 발명 이전 돌을 이용하여 도구를 제작·사용했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석기시대는 근대고고학의 성립기에 톰센[C. J. Thomsen, 1788~1865]이 삼시대법을 통해 제안한 데에서 유래한다. 이후 석기시대를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로 나누고, 두 시대 사이에 중석기시대를 첨가하는 편년안이 완성되었다. 구석기시대는 최초로 인류가 등장하는 7...
-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선사는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로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이른다. 현재 진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은 발견되지 않아서 당시의 구체적인 문화상을 가늠해 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유적은 미호천 주변의 초평면 연담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 1점이 발견됨으로써 신석기인이 이곳에 거주하였을 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군사상의 목적으로 흙이나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성(城)이란 보통 성벽(城壁)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매우 넓다. 처음에는 흙을 파서 도랑을 만들거나 흙으로 쌓았으나 사람들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나무로 만든 목책(木柵)과 돌로 쌓은 석축(石築), 벽돌로 쌓은 전축(磚築)이 생겼다. 전형적인 성곽은 네모꼴로 쌓은 성과 다시 그 바깥에 네모꼴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성석리 고인돌은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산3-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 1㎞쯤 가다 보면 진천읍 성석리 지석마을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 ‘지석’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소개하는 유래비가 있다. 약 70여 년 전까지 백곡천(栢谷川)의 합수머리에 2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
조선 전기 세종대왕이 행차하다 유숙하였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고을 이름.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청주의 초정(椒井)에 행차하다가 하룻밤을 머물다가 갔다고 하여, 북평(北平)을 성평(聖平)이라고 하였다. 1444년(세종 26)에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고자 물이 좋다는 청주 내수의 초정에 행차하기 위하여 서울을 떠났다. 세종은 죽산을 거쳐 진천을 지나다가 진천읍내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와 사석리 소이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소이산성(所伊山城)은 소을산 봉수를 보호하기 위해 봉수대 주위에 두른 작은 산성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산성이라기보다는 봉수대의 외곽에 두른 보루 형태이다. 소을산 봉수는 청주 것대산 봉수와 음성 망이산 봉수를 연결하는 봉수대로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이용되었던 제2직봉 노선의 간봉...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의 7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송지백(宋之伯)이고, 아버지는 평리(評理)를 지낸 송소(宋玿)이다. 형제로는 전서(典書) 벼슬을 지낸 송광우(宋匡祐), 낭장(郎將)이었던 송광도(宋匡度)가 있다. 송광보가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지고, 그 후손들은 안성공파로 분파하였다...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를 지낸 송원겸(宋元謙)이다. 형제는 평장사 송순(宋恂)과 전리판서 송희(宋憘)가 있다. 송국첨(宋國瞻)[?~1250]은 1212년인 강종 즉위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直司館)이 되었다. 1226년(고종 13)...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증(宋世曾)이고, 할아버지는 송찬(宋贊)이며, 아버지는 사섬시봉사(司贍寺奉事)를 지낸 송응일(宋應一)이다. 외할아버지는 박응현(朴應賢)이다. 아들로 송섬(宋暹), 손자로 송정필(宋廷弼)을 두었다. 송도남(宋圖南)[1576~1627]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생활 유적지. 송두리 유적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시행한 진천-진천IC 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 구간 내 구석기 유적에 대한 구제발굴[도로나 댐건설 등 유적파괴 사유 발생시 행하는 발굴]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송두리 유적의 발굴 조사 결과 모두 2개의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기반암 풍화층 바로 위에...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8세손이고, 아버지는 예부상서를 지낸 송광보(宋匡輔)이다. 5촌 당숙인 송면(宋勉)의 양자로 들어갔다. 장인은 김유량(金有良)이다. 송반(宋盤)[1416~?]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문장과 시에 능숙하였다. 17세 때인 1432년(세종 14) 생원과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 16)...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증조할아버지는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이고, 할아버지는 송원겸(宋元謙)이며, 아버지는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순(宋恂)이다. 아우인 송언상(宋彦祥)은 대장군으로 몽고침입 때 귀주성과 죽주성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인물이다. 이때 진천 출신으로 무인 집정의 최고 자리에 오른 임연이...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진천송씨의 시조로, 송인(宋仁)이 상산백(常山伯)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상산으로 하였다. 상산이 후에 진천으로 바뀌면서 진천송씨가 되었다. 아들로 송원겸(宋元謙), 손자로 송순(宋恂)·송희(宋憘)·송국첨(宋國瞻)을 두었다. 송인(宋仁)[?~1126]은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 두루지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려 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17세손이며, 송광보(宋匡補)의 10세손이다. 송재태(宋載泰)는 숙종이 죽음에 임박하여 병약한 경종의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노론의 영수 이이명과 독대하여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에 책봉되도록 하였다. 경종이 승하하자 영조가 노론의 뒷받침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소론은 정치적 주도권...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진천송씨의 시조인 상산백(常山伯) 송인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송광도(宋匡度)이다. 아들로 송석동(宋石同), 손자로 송일창(宋日昌)과 송일녕(宋日寧)·송일안(宋日安)을 두었다. 송저(宋儲)[?~1445]는 문과에 급제하고 1417년(태종 17) 홍천현감이 되었다가 1422년(세종 4)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4...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할아버지는 송응국(宋應國)이고,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송원(宋瑗)이다. 아들로 송하년(宋河年)을 두었다. 송주빈(宋周賓)[1551~1592]은 1583년(선조 16) 계미년 별시 병과에 10위로 급제하여 벼슬이 호조좌랑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포로로 잡혀 항복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하자 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평산(平山).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에 봉해진 충헌공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6세손이다. 신대기(申大驥)는 낙향하여 향학 발전에 노력했던 신잡의 영향으로 그 역시 지방의 향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신잡이 진천으로 낙향하여 향학 발전에 힘쓰고부터 집안에서 대대로 이에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생활 유적지. 신월리 유적은 2003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 이후 청동기시대 주거지 9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9기, 토광묘 2기, 수혈유구 6기, 고려시대 이후 토광묘 9기, 조선시대 기와가마 2기, 고상유구(高床遺構) 5기, 생활 유적 1기가 조사되었다. 9기의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미호...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백준(伯峻), 호는 독송(獨松). 고려의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이다. 아버지는 신화국(申華國)이며,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첫째 동생은 신급이고, 둘째 동생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결사항전하다 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이며, 셋째 동생은 임진강 전투에서 추격해 오는 적을 막다 전사한 신갈(申硈)이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구석기와 원삼국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적. 구석기에 관련된 유물은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선진아파트 단지 입구의 도로 맞은편에 남아 있는 구릉의 끝부분 해당하는 신정리 377-13[전], 377-14[전], 377-15[전], 377-8[전], 377-9[전], 377-11[전], 377-12[전], 399-1[전], 399-2[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관개시설. 진천읍 신정리 새끼미마을 앞쪽 백곡천 변에 있었던 저수지로, 조선 후기까지 인근 농경지에 관개를 했으나 현재는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신지(新池)는 조선 후기까지 주변 농경지에 관개하였던 사실이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남아 있다. 『여지도서』 진천현(鎭川縣) 성지(城池)조에 ‘신지는 현의...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외교가. 신헌(申櫶)은 1810년(순조 10) 출생하여 1884년(고종 21) 사망하였다. 근대로의 전환의 상징적 사건인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대표인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무관 가문의 하나인 평산신씨 문중에서 태어나서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신화국의 행적을 적은 묘지(墓誌). 신화국(申華國)[1517~1578]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덕부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아들 신잡(申磼)과 신립(申砬)의 공으로 평주부원군(平洲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신화국 묘지가 소장된 곳으로 가려면 진천읍에서 이월면 방면으로 7㎞쯤 가면 이...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거석 기념물로 알려져 있으나, 축조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도 많다. 전국에 걸쳐 고루 분포하며 보통 1~2m 높이의 자연석을 그대로 혹은 일부를 다듬어 세운다. 대부분 단독으로 존재하지만 쌍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 경우 윗부분이 뾰족하면 남성 선돌로, 둥...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규(洛圭), 호는 다전(茶田).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철중(安徹中)[1869~?]은 성품이 온순하고 과묵하나, 과감하였고 재주가 뛰어났다. 12세에 “새들이 저 먼 봉우리에서 지저귀니 산 그림자가 사리지고, 지나는 길손이 다리를 밟으니 물소리가 들리는구나[原峀鳥穿山影去 短橋客踏水聲來]”라는 시...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성종대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5도로 개편하였다. 이때 양주와 광주 소속의 기존 군현과 청주·충주 소속의 군현들을 합하거나 나누어 편성하면서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충숙왕 때는 양광도로 만들었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
-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영제원은 고려·조선시대 진천현 소속의 원이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는 영제원(永濟院)이 진천현 동쪽 14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오갑리...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와 이월면 노원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한국지명총람』에 옥녀봉산성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동암 북쪽 해발 260m의 산 위에 있는 성터로 옛날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으로 전해 온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동암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고도는 해발 456.5m로 많은 차이가 있다. 고문헌 기록에 나타나지 않...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옥동리 고인돌은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양암마을 75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가다가 점촌마을에서 오른쪽으로 지방도 51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2.5㎞ 내려가면 양암마을이 나오는데, 옥동리 고인돌은 마을 안 옥동초등학교 동쪽의 지방도 513호선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 위치는 199...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위치한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유적지. 옥동리 유적(鎭川 玉洞里 遺蹟)에서는 석곽묘[돌덧널무덤] 1기, 토광묘[널무덤] 9기, 수혈유구 10기 등 20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토도류 4점, 금속류 12점 등 16점이 출토되었다. 옥동리 석곽묘는 벽석 축조 양상이 인근 산수리 석곽묘의 축조 수법과 상이하며, 출토된 유물이 없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방어 시설. 옥성리 보루는 9세기 이후 충청북도 진천과 청주 사이의 옛길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옥성리 보루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 입구에 있는 해발 91.8m의 독립된 봉우리에 위치한다. 태산천 동측에 솟아 남북의 교통로를 차단한 위치에 축성되어 있으며, 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삼국~고려시대 보루. 1992년 청주박물관에 의해 문백면 오미마을에서 회청색 경질토기 등이 채집되었다. 채집 유물과 입지 조건을 고려할 때 누각이나 정자 등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2002년 발굴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옥성리 유적은 고려시대에 일시적으로 사용된 방어 시설, 즉 보루로 추정되었다. 유적 내에서는 저장 시설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의병장 한봉수의 항일 전적지.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부터 1910년까지 충청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34회에 걸쳐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의 한 사람이다. 1910년 한봉수는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서울 남대문역에서 체포되어...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기리 구암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구암마을 774-3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면 용정리 생목마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약 15㎞ 가면 오른쪽으로 지방도 510호선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다가 나오는 구암마을 노인회관 뒤쪽 언덕 밭 가운데에 있...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방죽안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무덤의 일종으로, 세계 곳곳의 선사 및 고대 거석 기념물(巨石 記念物) 건립과 비슷한 맥락에서 축조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외형에 따라 크게 탁자식(卓子式)[북방식], 기반식(碁盤式)[남방식], 개석식(蓋石式)[무지석식], 위석식(圍石式)[제주도...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기리 용전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용전마을 643-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면 용정리 생목마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15㎞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지방도 510호선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약 2㎞ 가다가 왼쪽으로 넓은 논이 보이면서 나오는 용전마을 동쪽...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무덤의 일종으로, 세계 곳곳의 선사 및 고대 거석 기념물(巨石 記念物) 건립과 비슷한 맥락에서 축조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외형에 따라 크게 탁자식(卓子式)[북방식], 기반식(碁盤式)[남방식], 개석식(蓋石式)[무지석식], 위석식(圍石式)[제주도식] 등 네...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정리 생곡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612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용정교를 지나면 초평면사무소가 있는 생곡마을에 이르는데, 용정리 생곡 고인돌은 초평면사무소 뒤 언덕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19...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궁터.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궁골은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황제의 황후였던 오씨(吳氏)의 출생지라고 한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진천군 고적조에 의하면, 원황후궁 터는 원나라 황후 오씨가 자신의 부모를 위해 궁골에 지어 주었다는 궁터를 말한다. 그러나 학술적인 조사가 진행되지 못해 정확한 실체는 알 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원덕리 고인돌은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 원동마을 129번지[원동길 92]에 있다. 진천읍에서 진천상업고등학교 남쪽으로 난 길을 가다가 원동마을 어귀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m 가면 오른쪽 밭 가운데에 서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판석(板石)[널돌] 모양의...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월성리에 있는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로 알려져 있는데, 축조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전국에 걸쳐 고루 분포하며 보통 1~2m 높이의 자연석을 그대로 혹은 일부를 다듬어 세운다. 대부분 단독으로 존재하지만 쌍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 경우 윗부분이 뾰족하면 남성 선돌로, 둥글면...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광전(光前), 호는 쌍청(雙淸) 또는 청당(淸堂). 문간공(文簡公) 유권(柳權)의 14세손이고, 정신공(貞信公) 유승(柳陞)의 11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유종수(柳宗壽)이며, 아버지는 유헌민(柳憲民)이다. 유기문(柳起門)은 1589년(선조 22) 생원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1601년(선조 34) 식년 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양숙(養叔), 호는 물재(勿齋).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6세손이다. 유득배(柳得培)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특히 『소학(小學)』의 강론에 힘썼다. 덕성이 중후하고 문장이 뛰어나 고을에서 이름이 났다. 향공(鄕貢)으로 천거되었으나, 요절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화(子和), 호는 물기재(勿欺齋). 아버지는 유심원(柳心源)이다. 유수응(柳秀應)은 1864년(고종 1) 증광진사시에 3등 98위로 입격하였으며, 수직으로 동지(同知)에 올랐다. 전심으로 경학을 연구하였으며, 유고(遺稿)가 있다고 전해진다. 『상산지(常山誌)』에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8세손이다. 유심원(柳心源)은 어려서부터 품행이 어른스러웠는데, 일찍이 15세 때부터 부모님께 어른으로서 하는 효도를 행했다. 할머니가 70세가 되어 괴질을 앓았는데 의원이 뱀을 잡아먹는 메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자, 그물을 들고나가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메기 한 마리를 잡아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문화(文化). 고려 고종 때의 대사성 유경(柳璥)의 후손이다. 유창국(柳昌國)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들을 거느리고 진천 만노산성(萬弩山城)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성에는 인근 7읍에서 모여든 수천 명의 피난민이 통솔자가 없는 무질서 상태에 있었다. 이에 유창국은 포의(布衣)의 신분이었으나 조감(趙...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유풍노(柳豊魯)는 철종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어영군초관(禦營軍哨官)으로 있다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를 맞아 광성진(廣城鎭)전투에 참가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신미양요 때 미군이 강화도 광성진에 침입하자 수비사령관 어재연(魚在淵) 장군 휘하의 어영군초관으로 군병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먼저 총격을 가하여 군함 몇 척을 물리쳤으나,...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1269년(원종 10)에 진천임씨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을 제거하고 최고 집정자가 되자, 왕이 임연의 고향인 진주[창의현(彰義縣)]을 고쳐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시켰다. 지방관으로 지의녕군사(知義寧郡事)를 두었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양광도 진주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259년(고종...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 호는 청허당(淸虛堂) 또는 청허자(淸虛子).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6세손으로 문간공 이정(李挺)의 넷째 아들이다. 이거이(李居易)는 1348년(충목왕 4)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관직이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경선(李慶善)은 1624년(인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2년(인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성균관박사·저작·전적 및 호좌좌랑을 지냈다.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재직하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달부(達夫), 호는 추월재(秋月齋). 고려 태조 때의 공신인 이희능(李希能)의 6세손이다. 이공승(李公升)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문장이 탁월하였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으며, 뒤이어 우정언(右正言)을 지냈다. 1148년(의종 2)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서 사신이 되어 금...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대건의 신도비. 이대건(李大建)의 본관은 경주로, 고려 후기 유학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아들이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시발(李時發)이다. 이시발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朴春茂)를 따라 공을 세운 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가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몽량(李夢良)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경상도병마우후에 이르렀다. 경상도병마우호로 근무하다가 선전관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명의 신종(神宗)이 사신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금은을 하사하였는데...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자릉(子陵), 호는 행원(杏園, 杏院). 증조할아버지는 부정(副正) 이신(李晨)이고, 아버지는 사과(司果) 이금(李嶔)이며, 어머니는 사맹(司猛) 최윤태(崔允泰)의 딸이다. 이부(李阜)[1482~1555]는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중어(仲魚) 이타(李鼉)의 후손이다. 이성문(李成文)[1703~1728]은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용맹하고 효성스러워 고을에 이름이 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이 의병을 모집하여 방어하려는 계책을 세...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후(仲厚).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며, 할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와 진사 신필한(申弼漢)의 딸인 고령신씨(高靈申氏)가 있다. 형으로 이재곤(李載...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고조할아버지는 이원(李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며,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 아버지는 진사 오촌(梧村) 이대건(李大建)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부인은 여흥민씨이고, 아들로 이분이 있다. 이...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긍확(肯穫), 호는 송애(松厓).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사(李思)이고, 할아버지는 이공순(李公淳)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인로(李仁老)이며, 외할아버지는 박지생(朴枝生)이다. 부인은 이안민(李安民)의 딸이다. 형으로 이치(李菑)가 있다. 이여(李畬)[1503~1544]는 일찍이...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 할아버지는 음죽현감(陰竹縣監)을 지낸 이계보(李季寶)이며, 아버지는 창신교위(彰信校尉)를 역임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영남(李英男)[1563~1598]은 1563년(명종 18)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22세인 1584년(선조 17) 별시(別試) 무과에서 병과(丙科) 제1...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장(仲章), 호는 매산(梅山).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서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다. 생곡(生谷) 이인환(李仁煥)이 형이며, 동생으로는 이인욱(李璘煜)·이인찬(李寅燦)·이인희(李寅熹)·이인식(李寅烒)이 있다. 이인혁(李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생곡(生谷).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지제교(知製敎)·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고, 어머니는 심대복(沈大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경연(李慶衍)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으로 매산(梅山) 이인혁(...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春吉), 호는 사암(思庵). 문정공(文貞公) 이공승(李公升)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聰郞) 이창우(李昌祐)이고, 아버지는 낭성군(琅城君) 이계함(李季瑊)이며, 어머니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叅理) 김련(金聯)의 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通禮副使) 김계초(金繼貂)의 딸이다. 아들로 이거이(李居易)가 있다...
-
임진왜란시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호는 회헌(晦軒). 이정영(李廷英)[?~1592]은 1592년(선조 25) 음죽현감으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을 맞았다. 4월 일본이 15만 8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여 침범해 왔다. 왜군은 조총을 가지고 북상하며 4월 24일 상주에서 이일의 군을 격파하고, 16일에는 조령을 넘어 이튿날 충주로 쳐...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인재(麟齋).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이자성(李自成)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가정(稼亭) 이곡(李穀)이다. 외할아버지는 권중달(權仲達)이며, 아버지는 문하시중에 오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종덕(李種德)이 있다. 부인은 이춘부(李春富...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중휘(仲輝), 호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이다.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이고 조부는 이석로(李錫老)이며, 감역 이진원(李進源)의 아들이고 부인은 권세모(權世模)의 딸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1774년[영조 50] 식년시를 통해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별시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장서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재대(載大)이며, 호는 담헌(澹軒)·소금산초(小金山樵)·무우자(無憂子)·금산병부(金山病夫)·담옹(澹翁)·담헌거사(澹軒居士)·담암(澹庵).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셋째 아들인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며, 아버지는 문형(文衡)이었던 이인엽(李寅燁)이고,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인천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아버지는 임봉의(林鳳儀)이다. 임경원(林慶源)은 도암(陶庵) 이재(李滓)와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공부에 독실(篤實)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양호(養浩)라는 당호를 써 주었다. 『진천군지』에 임경원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득여(得汝), 호는 영서거사(穎西居士). 판서 임방(任埅)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임종주(任宗周)이다. 임로(任魯)[1755~1828]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의 명리화색(名利貨色)에는 일절 욕심이 없었다. 1777년(정조 1) 음서로 관직에 나갔으나 아버지가 당대의 세도가 홍국영(洪...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아들로 임경원(林慶源)을 두었다. 임경원은 도암(陶庵) 이재(李縡)와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두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그의 믿음이 두텁고 성실하다고 크게 칭송하면서 당호(堂號)를 양호(養浩)라 붙여 주었다. 임봉의(林鳳儀)는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에게 수학하였는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상산(常山). 사헌부집의를 지낸 임수경(林秀卿)의 6세손이다. 아들로 임현(林賢)이 있다. 임수전(林秀筌)[?~1592]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기상이 늠름하고 재질이 비범하여 6세 때 ‘인생천지간(人生天地間) 충효이자선(忠孝二字先)’이라는 시를 지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권신. 본관은 상산(常山)[진주(鎭州), 현재의 진천]. 초명은 승주(承柱).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며, 어머니는 이씨로 진주(鎭州) 주리(州吏)의 딸이다. ‘상산’이라는 본관은 상산임씨의 시조인 임희가 상산백(常山伯)에 봉작된 것에서 유래한다.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임연(林衍)[?~...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 또는 상산(常山). 아버지는 효자 임광언(林光彦)이며, 임호철(林昊喆)의 동생이다. 임우철(林禹喆)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였다. 어버이를 모시는 데 형 임호철과 더불어 지극하여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을 섬기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상을 당해서는 예절을...
-
충청북도 진천으로 낙향한 후 도학을 연마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는 치은(稚殷), 호는 현계(玄溪) 또는 청서(靑墅)이다. 녹문 임성주(任聖周)의 문인인 영서(穎西) 임로(任魯)의 아들이다. 1789년[정조 13]에 태어났으며, 1835년[헌종 원년] 음사(蔭仕)로 가감역(假監役)을 시작으로 벼슬에 나가 전라도 창평(昌平)현령·금천(金...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진천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본과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의 제1번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산포 침략을 시작으로 1598년(선조 31) 11월 노량해전(露粱海戰)을 끝으로 사실상 종결될 때까지 무려 7년간 한반도를 전화(戰禍)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한 중세 동북아시아 세계의 국제전적 교전이었다. 전쟁의 전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채근(林彩根)은 아버지가 중병이 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고,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는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손가락의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다. 결국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상례에 어긋남이 없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常山).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임수전(林秀筌)이다. 임현(林賢)[?~1619]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임수전이 임진왜란에 의병장으로 참전하여 비명에 돌아가신 것을 애통하게 여겨 남쪽을 향해 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전사한 경기도 죽산 봉성(鳳城)을 지날 때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호는 극재(克齋)이다. 임형(林灐)는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효성이 지극하여 향천(鄕薦)을 세 차례, 도천(道薦)을 한 차례 받았는데, 이에 대하여 1932년 진천군에서 펴낸 『상산지(常山誌)』「학행(學行)」 편에 ‘임형호극재상산인수업우전재임선생지문유효행삼입...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호족이자 권신. 본관은 진천(鎭川). 임희(林曦)는 진천임씨[진천은 상산 또는 진주]의 시조로 고려 2대 왕인 혜종의 장인이다. ‘상산’이라는 본관은 임희가 상산백(常山伯)에 봉작된 것에서 유래한다.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임희(林曦)는 신라 말기 진천 지방에 자리 잡았던 호족으로 일찍이 왕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에 위치한 청동기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주거 및 분묘 유적. 2007년 6월 26일부터 2007년 7월 30일까지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의 조사 면적 56,225㎡에 대하여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구가 확인된 면적 11,031㎡에 대하여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을 A, B지구로 나누어 조사했는데, A지구는 면적...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와 이월면 노원리·송림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장군봉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토성으로서 진천 지역의 북부 지역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장군봉산성은 차령산맥(車嶺山脈)의 한줄기이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과 이월면의 경계를 이루는 무제산[573.7m] 줄기의 장군봉 정상부를 감싸고 있고 해발 481m의 봉...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장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역참 터. 장양역(長楊驛)은 고려시대에는 충청도에 속한 주요 역참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충청좌도 율봉도(栗峰道) 찰방 소속이었다. 1751년(영조 41)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진천현 역원 방리조에 의하면, 장양역은 말 15필과 역리 38명, 남자 노비 66명, 여자 노비 30명이 있었고...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 판관 장승(張丞)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사종(張嗣宗)이고, 아버지는 장근(張謹)이다. 장필무(張弼武)[1510~1574]는 1543년(중종 38) 무과에 급제하여 부산진첨절제사·제주목사·만포진첨절제사를 지냈다. 종사관(從事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온성판관으로 나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옥천(沃川).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인 전승업(全承業)의 고손자이다. 유학자로 학문이 뛰어나고 경학(經學)에 몰두하여 여러 차례 향천(鄕薦)을 받았다. 이에 관한 내용이 『상산지(常山誌)』와 『진천군지』 등에 실려 전하고 있다....
-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옥천(沃川). 호는 쌍암(雙岩). 아버지는 상주목사를 지낸 전팽령(全彭齡)이다. 전엽(全燁)[1505~?]은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별세하자 60세 가까운 늙은 몸으로 3년간 시묘하면서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시묘하는 도중에 산소 부근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고, 하얀색 제비...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치정(致正), 호는 명와(明窩).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17세손이다. 정규해(鄭糾海)는 타고난 품성이 청렴결백하고 강직하였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모셔 소문이 났다. 회당(晦堂) 윤응선(尹應善)[1854~1924]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높았다. 공부한 것을 토대로 정주(...
-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7세손이다. 정덕환(鄭德煥)은 삼환재(三患齋) 채지홍(蔡之洪)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행동에 무게가 있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일평생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부족한 편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와 『상산지(常山誌)』, 『진천군지』 등에 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천당(聽天堂).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옥(鄭在玉)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자세로 나이가 들수록 더욱 독실하게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정산(貞山) 김정묵(金正黙)은 “백수(白首)로 경서를 깊이 탐구하였으며, 집에 깊이 파묻혀 시정(市井)에 나오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였다. 늙어서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잉수재(仍樹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응(鄭在應)은 일찍부터 문경공(文敬公) 송환기(宋煥箕)의 제자로 들어가 유학을 깊이 공부하였다. 만년에는 쌍계산(雙溪山)에 들어가서 서재를 짓고 ‘잉수재(仍樹齋)’라는 편액을 걸어 놓았다. 그 때문에 잉수재라는 호가 붙었는데, 그곳에서 오로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육육당(六六堂). 증조할아버지는 정인환(鄭寅煥)이다. 정해용(鄭海容)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글과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진천군지』에 정해용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평양(平壤). 호는 백파(栢坡). 대제학 조정수(趙廷壽)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충청절도사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이다. 조감(趙感)[1604~168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9세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 유폐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유배 보냈다가 죽인 이른바 폐모살제(...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양(平壤). 충청절도사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의 후손이며, 손자로 조한욱(趙漢旭)을 두었다. 조재숙(趙載琡)은 철종 때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 경사에 널리 통한 학자이자, 교육가였다. 늘 집안을 효(孝)와 우애로 다스리고 사람을 예로 대하였다. 또한 노계의숙(蘆溪義塾)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
-
조선 후기 이인좌의 반란 때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대제학 조정수(趙廷壽) 및 충청도절도사 조맹손(趙孟孫)의 후손이다. 병자호란 때 당시 충청북도 진천군의 만노산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한 백파(栢坡) 조감(趙瑊)의 후손으로, 진천에서 거주하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영조 4년(1728) 이인좌(李麟佐)가 청주(淸州)에서 반란을 일으켜 진천을...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에 있는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분묘 유적군. 죽현리 유적은 토광묘(土壙墓)·회곽묘·석곽묘(石槨墓) 등이 확인된 분묘 유적이다.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된 유구는 토광묘[널무덤] 3기에 불과하여 다소 무리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에서 근대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해당하는 것은...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에 있는 고려 중기 가마터. 죽현리 청자요지는 ‘고속도로 제40호선 안성~음성 간[8공구] 건설 공사’와 관련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 중 발견되었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청자 가마 1기, 관련 폐기장 3개소, 석곽묘[돌덧널무덤] 1기, 토광묘[널무덤] 1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1,500여 점으로 대접·발·접시·...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중원도는 995년(성종 14)에 설치된 10도(道)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지방에 대한 체계적인 통제를 통하여 중앙 집권화를 굳히려는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 국가체제 정비에 나서게 되었고, 그 결과 983년(성종 2)에 12목(牧)을 설치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지장사 터에 있는 조선 전기의 맷돌.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의 옛 절터인 지장사 터에 있는 맷돌로 1576년(선조 9)에 제작되었다. 지장사 터 맷돌의 짧은 쪽 길이는 153㎝, 긴 쪽 길이는 163㎝이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맷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매판까지 같은 돌로 제작하였다. 이 맷돌이 중요한 것은 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잠덕산 지장사 터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지장사 터 부도는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산 40-8번지 옛 절터인 지장사 터에 있는 석종형 부도로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부도는 묘탑을 가리키는 것이며, 묘탑은 사리를 봉안한 탑이므로 이와 같은 종류의 탑은 모두 묘탑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묘탑, 곧 부도라는...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고려 태조가 궁예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청주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진천에 군사를 파견하여 청주 세력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청주를 진압하였던 전초기지였다는 의미에서 진주(鎭州)라고 명칭을 변경하였다. 진주는 고려군이 청주세력을 ‘진압(鎭壓)한 곳’, 혹은 고려군이 ‘진수(鎭守)한 곳’이라...
-
조선 후기 및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교 학파의 하나. 강화학파(江華學派)는 정제두(鄭齊斗) 이후 가학(家學)으로 양명학을 전수해간 일련의 관료 유학자들이며 하곡학파(霞谷學派)라고도 한다. ‘강화학(江華學)’이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양명학의 정립자인 하곡(霞谷) 정제두가 강화에서 가학으로 학문을 전수했던 것에 착안하여, 후대의 연구자들이 붙인 용어이다. 강화학파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생가와 태실.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은 김유신(金庾信)[595~673]이 태어난 곳과 그의 탯줄을 보관한 태실을 가리킨다. 김유신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595년(진평왕 17)에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당나라군과 연합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남지의 묘소 및 신도비. 남지(南智)[?~?]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지숙(智叔)이다. 세종~단종 대의 문신으로, 영의정 남재(南在)의 손자이다. 좌의정으로 있을 때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문종으로부터 단종을 보필하라는 고명(顧命)을 받았으나 풍질로 낙향하였다가 병사하였다. 남지가 죽은...
-
1862년 충청도 진천현에서 발생한 농민항쟁. 1861년 7월에 부임한 전임 현감 이호신(李鎬臣)에 의해 과도하게 책정된 결가(結價) 20냥을 축소해 달라는 청원이 1862년 1월에 부임한 신임 현감 김병유(金炳儒)에 의해 거부당하고, 오히려 징수 집행에 들어가자 진천현의 군민들이 항거하여 일으킨 농민항쟁이다. 1862년(철종 13)에 일어난 농민항쟁, 이른바 1862년 농민항쟁[...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일대 마을에 전래되어 온 동계 관련 고문서. 진천 산우물 대동계 문서 및 관련 자료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한 동성리, 가산리, 송두리, 상신리 일대의 12개 마을에 관계된 동계(洞契) 관련 문서와 김익동(金翼東)의 관직 임명 교지(敎旨) 및 시권(試券)이다. 2013년 5월 31일 충청북도 민속 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고대 철 생산 유적.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서는 고대의 제철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제철은 철광석과 연료를 이용해 철을 분리해 내는 과정이다. 철광석은 잘게 부수어져 목탄과 함께 제철로에 투입되는데,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미리 예열하기도 한다. 진천 석장리 유적은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옥동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 송인의 묘소. 송인(宋仁)[?~1126]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서 태어났으며,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 인종을 호위하다가 척준경(拓俊京)이 이끄는 난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난이 평정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추증되고 상산백에 봉해졌다. 진천읍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 금왕...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비. 진천 연곡리 석비(鎭川蓮谷里石碑)는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에 세워진 비석이다. 비신에 아무런 명문이 새겨져 있지 않아 ‘연곡리 백비’라고도 부른다. 건립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진천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다가 사석삼거리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 천안 방면으로 가다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거이의 묘소. 이거이(李居易)[1348~1412]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건국에 공이 있으며, 1398년(태조 7년)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공을 세워...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이영남의 묘소. 이영남(李英南)[1547~1598]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옥포만호로서 원균(元均)을 도와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에게 왕래하며 군사를 요청하는 등 여러 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고려 후기 이정 부부의 묘소. 이정(李挺)[1297~1361]의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 김계초의 딸이다. 이정은 1326년(충숙왕 13)에 병과2등으로 급제하여 봉거직장(奉車直長)·경상도찰방(慶尙道察訪)에 나갔다가 낙향하여 10년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은거하였다. 1353년(공민왕 2)...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묘소. 정철(鄭澈)[1536~1593]의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시인이다.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공적비.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조선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진천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공적을 적은 비석이다. 진천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사후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본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옛 지명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경과 정인옹주 부부의 묘소. 홍우경(洪友敬)[1590~1625]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부(敬夫)이다. 1603년(선조 36) 선조와 정빈 민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혼인하여 당원위(唐原尉)에 봉해졌다. 1618년(광해군 10)에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이첨(李爾瞻)의 음모를 성토하다 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진천 대모산성은 616년(진평왕 38)에 백제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모산성(母山城)으로 비정하려는 설이 있으나 대모산성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의 지리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일제강점기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상산지(常山...
-
충청북도 진천군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진천현(鎭川縣)은 조선왕조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전국적으로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하면서 폐지되었다. 1413년의 전국적인 지방제도, 즉 군현제 개혁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의 읍격(...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과 함께 최의를 제거하고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임연의 고향인 진주(鎭州)를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켜 그의 공훈에 대해 포상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지 양광도 청주목 진주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종 46년 임연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 또는 지비자(知非子). 증조할아버지는 채흥선(蔡興先)이고, 할아버지는 채정간(蔡廷侃)이다. 아버지는 진사 채진형(蔡震亨)이며, 어머니는 김몽정(金夢禎)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아버지 채진형이 우거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이 가문의 근거지이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채영용(蔡領用)이다.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는데, 8세 때 “달이 동산 위에 떠오르니 그 모습이 태극과 같구나[月出...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철을 이용해 도구를 제작·사용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철기시대라는 명칭은 인류 선사문화의 발달을 석기-청동기-철기문화의 순서로 정리한 톰센[C. J. Thomsen, 1788~1865]의 삼시대법[Three Age System]에서 연원한다. 그러나 삼시대법은 선사시대에나 적용된 것이므로 문자를 사용하거나 당시의 모습을 알려줄 문헌이 많이 남아 있...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을 이용하여 도구를 제작·사용한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시대라는 명칭은 인류 선사문화의 발달을 석기-청동기-철기문화의 순서로 정리한 톰센[C. J. Thomsen, 1788~1865]의 삼시대법[Three Age System]에서 연원한다. 금속기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기술적 진보 외에도, 청동기시대가 되면 세계 몇몇 지역에...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속해 있던 행정 구역. 청주(淸州)는 919년(태조 2)에 청주로 이름 붙여졌고 983년(성종 2)에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했을 때 청주가 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 후 1018년(현종 9) 8목으로 정리되었을 때도 청주목(淸州牧)은 충청권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신라 말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화된 틈을 타 호족이라 불리는...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왕조 개국원종공신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9세손이며, 효자 최사립(崔斯立)의 증손이다. 최사립 이후 최면성에 이르기까지 자손이 모두 효행으로 이름을 얻었다. 최면성(崔勉誠)은 사마시(司馬試)의 양과, 즉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대의 혼란기를 맞이하여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완산이다. 호는 복재(服齋)이다.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1811~1876]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平山里)에서 살면서 평생 유학 연구에 종사하였다. 사후(死後) 임헌회의 제문을 받았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만(錫萬), 자는 여시(汝時)·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명곡(明谷). 증조할아버지는 최기남(崔起南)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한성좌윤 완릉군(完陵君) 최후량(崔後亮)이다. 어머니는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응교(應敎) 최후상(崔後尙)에게 입양되었다....
-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할아버지는 선부전서 상호군을 지낸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 박씨로 군부정랑을 지낸 박윤류(朴允鏐)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이 되어 각도의 의염(義鹽...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출생하여 활동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며 효자.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성습(聖習)이다. 조선왕조 개국원종공신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13세손으로 부친은 최수남(崔守南)이다. 진천에 거주하였으며 1852년(철종 3) 식년 생원시에 56세로 합격하였다.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어머니가 숙환을 앓게 되자 몇 해 동안...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원 터. 태락원 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진천현 관할의 옛 원(院)이 있던 자리이다. 원은 고려·조선시대에 역과 역 사이에 두어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던 공공 여관이다. 마을 노인의 말에 의하면 “옛날 장사꾼들이 청주장을 보고, 진천장으로 가다가 묵어가던 곳이었으며,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이 원...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역참 터. 고려시대에 충청주도(忠淸州道)에 속한 역참의 하나로 퇴량역(堆糧驛)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충청좌도 율봉도 찰방 소속의 대랑역(臺郞驛)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진천현조에는, 민간에서 추량역(推糧驛)을 태량(台量) 또는 태랑(台郞)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와 문봉리 태령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태령산(胎靈山)의 정상부를 감싸고 돌로 축조한 산성인데, 이 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군중면 문봉리와 상계리 사이의 태장산에 있는 성지로, 국유림이며 봉평리 부락의 서쪽 작은 구릉에 있다. 석축으로서 둘레 150간, 높이 4척으...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평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평산리 고인돌군은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평사마을 12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신정리를 거쳐 문백면으로 가다 보면 성주머리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좁은 밭 한 가운데에 고인돌이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총...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개 시설. 하고척 제언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위치와 크기가 자세하여 조선 후기 이전부터 사용하던 관개 시설임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 진천현(鎭川縣) 제언(堤堰)에는 하고척제(下古尺堤)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둘레는 467척이고, 길이는 250척, 너비는 108척, 깊이는 4척 5촌이...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던 조선시대 관개 시설. 하몽미동(下蒙未洞) 제언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위치와 크기가 자세하여 조선 후기 이전부터 사용하던 관개 시설임을 알 수 있다. 하몽미동 제언을 달리 아래몽촌못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곳의 지명은 몽촌(夢村)이라고도 하는데,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선비가 꿈에 잘못을 저질러 용왕의 미움을 산 용왕의...
-
신라가 삼국통일 후 설치한 9개 주의 하나. 한산주(漢山州)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와 「지리지(地理志)」,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한산주는 삼국통일 후 신라가 설치한 9개 주의 하나로 오늘날의...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고려시대 특수 행정구역 터. 부곡(部曲)은 신라 때부터 고려 말까지 있던 특수한 말단 지방 행정구역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지방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인구가 적어서 군현에 미치지 못한 지역을 ‘향(鄕)’ 또는 ‘부곡(部曲)’이라 하여 군현에 딸리게 하였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향이나 부곡의 주민을 특수 천민 집단으로 단정하지...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활동 흔적이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고위 문신. 조선후기 현종·숙종 대 온건파 남인세력인 탁남(濁南)의 영수로 활약한 고위 문신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여차(汝車)이고, 호는 묵재(默齋)·휴옹(休翁)이다. 허초(許礎)의 증손으로 조부는 허잠(許潛)이고, 아버지는 부사 허한(許僩)이다. 24세인 1633년(인조 11) 생원·진사시의...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협탄원(脇呑院)은 고려시대에 처음 설치되었던 원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 진천현 서쪽 36리에 협탄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원 제도가 점차 쇠퇴하면서 협탄원 역시 폐지되고 대신 이곳에 개인이 운영하는 서수원(西水院)...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홍정명의 묘에 묻은 판석. 홍정명(洪正明) 지석(誌石)의 주인공인 홍정명[1692~1748]은 선조의 부마(駙馬)인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의 4대손으로 1692년(숙종 18)에 출생하여 1715년(숙종 41)에 성균관에 들어가고 1725년(영조 원년)에 정시 병과(庭試丙科)에 급제하였다. 1733...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와 진천읍 지암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고문헌 기록에 환희산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축조 경위 등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1932년에 간행된 『상산지(常山誌)』에 환희산(歡喜山)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산성의 존재는 기록되지 않았고, 그 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산성의...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와 계산리 환희산에 있는 삼국시대 보루. 환희산 보루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 사이의 환희산 남쪽 해발 384.7m의 봉우리에 위치한다. 환희산성(歡喜山城)의 남쪽 끝에서 400m의 남쪽으로 산의 능선이 이어진 곳이다. 봉우리 외곽을 삭토하여 테를 두르듯 감돌고 있어서 둘레가 약 200m에 이른...
-
통일신라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흑양군(黑壤郡)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신라의 한주(漢州)에 속한 지역으로 처음 나온다.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개칭한 것이며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