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901년 제주 민란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명단을 수록한 명부. 제주목에서 평리원 안종덕 검사에게 보고한 문서이다. 안종덕이 뮈텔 주교에게 보낸 서한을 보면, 『삼군평민교민물고성책(三郡平民敎民物故成冊)』이 평리원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제주 민란 당시 민군과 교회는 제주성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을 전개하였고,...
-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운양 김윤식(金允植)의 일기. 김윤식은 자신이 체험한 사건들을 한문 일기로 기록해 두었는데, 그것이 『음청사(陰晴史)』와 『속음청사(續陰晴史)』이다. 이 일기집은 김윤식의 다른 저술과 함께 그 원문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료총서에 실려 있다. 김윤식은 을미사변 때 황후 폐위 조칙에 서명한 일로 1897년 12월 제주도에 귀...
-
1909년 3월 3일 제주도에서 의병장 고승천과 이중심의 주도하에 전개하려던 항일 의병 운동. 의병이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조정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백성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하는 일종의 민군(民軍)을 말한다. 의병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한말이라 할 수 있다. 한말의 의병은 1894년의 청일 전쟁과 갑오개혁을 통하여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경찰이 시위 군중에게 오인 발포하여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 1945년 해방 후 제주도에서는 주민 자치 조직인 제주도 인민 위원회가 구성되어 자주 독립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정이 진주하면서 한국에 대한 모든 통치권은 미군에 의해 귀속되었다. 미군정은 38선을 기점으로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고자 남한 내 모든 사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4·3사건과 관련한 유적. 1. 잃어버린 마을: 1948년 11월 이후 토벌대에 의해 전소된 후 현재까지 복구되지 않은 마을이다. 당시 가호수가 10호 이상인 마을을 이 범주에 넣었다. 2. 성: 1948년 12월 이후 무장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마을 주변에 쌓은 성을 쌓았다. 성은 당시 쌓았던 것 중에서 현재 남아 있는 곳을 지칭한다. 3....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강필주(姜弼周)이다. 딸은 2007년 현재 광복회 제주특별자치도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강혜선이다. 한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협재소년회에 가입하였고, 한글 잡지 『어린이』를 읽으면서 민족 의식이 싹텄다. 1931년 6월 윤한진(尹漢珍)의 단추 공장에 취직하였으며, 1933년 1월 독서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서적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우도에 있는 사립 영명의숙(永明義塾) 4년 과정을 마치고, 1926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영명의숙 교사로 재직하면서 계몽극을 만들어 공연하고 야학에서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1931년 3월 조선공산당원 신재홍(申才弘)·오문규(吳文奎)·문도배(文道培)·김시곤(金時坤)·김성오(金聲五) 등과 함께 사회주의 항일 단체인 혁...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호는 문소(文巢)·소범(素凡)이다. 아버지는 강모수(姜毛遂)이며 어머니는 한정순(韓貞順)이며 부인은 임남철(林南喆)이다. 3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화북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를 따라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삼열리 815번지로 이사하여 어려운 소년기를 보냈다. 12세 때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저사구(猪飼區)에 있...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8년 3월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3월 강기찬은 고병희(高秉禧)·조대수(趙大洙)·고영희(高永禧)·김형수(金炯洙)·임상국(任祥國)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연구에 필요한 문고(文庫)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문고 마련을 위해 각자 월 3원씩 갹출(醵出)하여 사상 서적을 구입하였고, 매달 1회 회합하여 공동으로 연구하였다. 동지를 규...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어릴 때 2년간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922년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일신학교(日新學校)에서 1년 동안 배웠다. 1926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 있는 금구소학교(金歐小學校) 야간부에서 5년 동안 공부하였다. 전기제작소 공원으로 일하던 중 일본 공산당 당원 김귀영(金貴榮)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사상에 공감하였다.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강현순(姜炫淳)의 아들로 제주읍 삼도리 58번지에서 태어났다. 1932년 충청북도 예산농업학교 재학 시 비밀 결사체를 조직하고 동맹 휴업을 주도하는 등의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강봉주는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와 제주공립농업학교를 거쳐 1930년에 예산농업학교로 옮겼다. 예산농업학교 4학년 재학중인 1932년 5월 1일에...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강수오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선봉대장 강창규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거사에 참여하였다. 이때 체포된 사람들은 1919년 2월 4일 첫 재판에서 선고를 받았으나 강수오는 이 재판이 있기도 전인 1918년 12월 27일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거물급 주동자인 형을 붙잡지 못하자 더 심한 고문을 하다 숨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1996년...
-
1901년에 일어난 제주민란의 주도자. 일명 강오백(姜五百)이라고도 한다. 대정군 하원리에서 출생하였지만 주로 인근 월평리에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강시양(姜時陽)이다. 1898년(고종 35) 대정군을 중심으로 방성칠(房星七)이 주도하여 일어난 민란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천주교 예비 신자로서 성당을 드나들었으나 나중에는 반천주교 운동에 앞장섰다. 1901년(고종 38) 제주민란 당시...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아버지 강기업(康基業)은 민족 교육에 뜻을 두고 화북사립보통학교 설립에 기여한 인물이었다. 광주보통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300여 명의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투쟁하였다. 이 사건으로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진주. 가명은 강양일(姜良一)이다. 아버지는 강제원(姜齊元)이며, 항일운동가강창보(姜昌輔)의 아우이다.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25년 4월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제주공립농업학교 2학년 재학 중 일본인 교사 야나기다(柳田彦二)의 조선인 학생 차별에 항거하여 동맹 휴학을 하였다가 주모자로 지목되어 퇴학당하였다. 1...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강제원(姜齊元)이며 부인은 김윤성(金允聲)이다. 김석익(金錫翼)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서울에 있는 중동학교에서 중등 과정을 수료하였다. 1921년 제주도에서 반역자구락부를 조직하여 항일 운동에 나선 이래 평생 항일 투쟁으로 일관하였다. 1925년 송종현(宋鍾炫)·김택수(金澤銖) 등과 함께 제주도 최초의 사상 단...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춘근은 평소에 법정사 인사들과 교류가 있던 관계로 법정사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거사 당일인 1918년 10월 7일에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체포된 사람들은 1919년 2월 4일 첫 재판에서 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일제의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재판에까지 가지 못하고 1918년 1월 6일에 사망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 본관은 진주. 본명은 강년국(姜年國)이며 세례명은 아가다이다. 아버지는 강두훈(姜斗勳)이며 어머니는 홍소사(洪召史)이다. 1910년 신성여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3월 졸업하였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전라남도에 있는 진도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21년 제주에서 최정숙(崔貞淑)과 함께 여성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만든 군사 시설. 일본군이 제주도에서 결7호작전을 준비하면서 제주의 오름이나, 해안가, 한라산 고지대 깊숙한 곳에 구축해 놓은 방어 시설이다. 일본군은 위장 진지, 전진 거점, 주저항 진지, 복곽 진지 등 네 종류의 진지를 구축하였다. 우선 위장 진지는 적의 포 폭격의 흡수, 교란 등 적의 전투 진행 방향을 교란하기...
-
1945년 제주도에서 일제가 준비했던 일본 본토 방어 작전.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중 제주도에서의 작전은 결7호 작전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
-
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 김봉각(金奉珏)이 일본에서 조직했던 비밀 결사 단체. 김봉각은 조천면 신흥리 출신으로 계림 동지회를 조직하여 동지들을 규합하다가 검거되어 실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조국에 잠시 돌아왔다가 1946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의 주요 간부직을 맡아 활동했으며 사업가로도 성공하였다. 1991년 조천만세동산에 3·1 만세 운동 기...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고경수가 제주공립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1931년은 일제의 황민화 정책이 시작되고 있던 시기였고, 특히 황민화 교육이 강도 높게 실행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조선인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제주공립농업학교 1931년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는 교내 행사에서 일황(日皇)의 칙어를 낭독하면 묵념을 하게 되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판관을 지냈던 고경준(高景晙)의 거사비(去思碑). 고경준은 1839년 9월 29일에 중구부사(中柩府事)였던 고영주(高渶柱)의 차남으로 제주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영운(靈雲), 자는 진경(晋卿)이다. 제주 지역의 발전과 유학 발전에 힘쓰다가 1897년 12월 5일에 향년 50세로 별세했다. 고경준은 1833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가명은 김민우(金民友)·차석동(車石東)·남해명(南海明)·김영두(金永斗)이다. 아버지는 한학자 고성집(高性輯)이다. 항일운동가 고순흠(高順欽)과는 가까운 인척 사이이다. 서울에 있는 정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23년 4월 경성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25년 제주의 첫 사상 단체인 신인회(新人會)를 창립하였고, 19...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조천공립보통학교 6학년 재학 중이던 1931년 1월 학교 신년식 행사의 불참을 주동한 주모자로 지목되어 졸업 사정회에서 제외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항일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주오대학교[中央大學校] 법학부에 입학하였다. 주오대학교 재학 중이던 1938년 학우 고운봉 등 5명과...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8년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하였다. 세이소쿠영어학교 재학 중 조선 유학생들의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인 형설회(螢雪會)와 박렬(朴烈)이 조직한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하였다. 흑도회가 박렬이 주도하는 흑우회(黑友會)와 김약수(金若...
-
조선 말기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생. 본관은 제주. 자는 경지(景志), 호는 초광(樵㹰), 초명은 고구훈(高龜訓)이다. 일명 고승천(高承天)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고영길(高永吉)이다. 고사훈은 나이 30살에 이르러서야 한학에 열중하고 북학을 배워 이용후생을 실천하려 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체결되자 육지에서 의병장...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도대불. 고산리 도대불은 한경면 고산리 자구내 선창가에 있는 신호 유적으로, 선창의 위치를 알리고 배들을 안전하게 유도했던 시설이다. 마을마다 형태가 다양한데 고산리 도대불인 경우에는 사다리꼴 형태를 띠고 있다. 도대불은 처음에는 돌을 이용하여 축조되었고, 이후 쇠를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해풍으로 부식되어 온전하게 남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고서흥(高瑞興)의 공덕비(功德碑). 제주시 건입동 기상청 북쪽에 있는 바위 언덕길을 속칭 ‘공덕동산’이라고 한다. 고서흥 공덕비는 이 바위 언덕길을 뚫은 고서흥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말기 당시 건입포 주민들은 동문 밖으로 나가려면 북문과 동문을 거쳐 우회해야 했기 때문에 이동이 아주 불편하였...
-
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는 자유(自由), 호는 죽암(竹岩). 아버지는 성균관 교수였던 능봉(菱峰) 고성겸(高性謙)[1856~1899]이며,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고경흠(高景欽)[1910~?]의 8촌 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 23-1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고순흠의 묘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4년 구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6학년 때 일본인 교장 나카야마[中山重義]가 조선어 사용을 억제하는 것에 항의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심상고등소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노동 현장에서 조선인에 대한 극심한 차별을 체험한 후 항일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42년 4월 중학교 동창 윤병윤(尹...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장환이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1919년 3월 16일 제주에 도착하였다. 조천 지역 유지인 김시범(金時範)을 만나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김시범은 거사를 결심하였다. 김시범은 김시은(金時殷)·김장환과 함께 3월 17일부터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를 발의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3월 19일까지 14명의 동...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0년 협성청년회가 운영하던 노동 야학에서 제주청년동맹 회원 김두성(金斗性)·김일준(金日準) 등과 함께 마을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31년 1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사망한 동향 출신의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의 시신이 1월 19일에 도착하자, 제주청년동맹은 동지장(同志葬)으로 치루기로 하였다. 상가(喪家)...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양두옥(梁斗玉)·신창진(愼昌珍)에게 유급 조치를 내렸다. 이들이 학교 의식에서 천황의 칙어를 낭독할 때 묵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1931년 3월 7일 김원요가 일본인 담임교사에게 부당한 조치를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항의하자, 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제주 4·3 당시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는 마을. 곤을동은 화북천이 바다를 향해 흐르다 별도봉 동쪽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하천 안쪽에 있던 안곤을, 하천과 하천 사이에 있던 가운데곤을, 그리고 밧곤을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밧곤을과 가운데곤을 주민들은 ‘덕수물’ 이란 용천수를, 안곤을 주민들은 ‘안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제주 4·3 유적지. 관음사 군주둔지 옛터는 1949년 3월부터 잔여 무장대 토벌을 위한 2연대의 작전이 강화되면서 2연대 2대대(대대장 이석봉 대위) 병력이 주둔했던 곳이다. 관음사 근처는 4·3 발발 당시부터 무장대의 본부가 있었다는 증언으로 보아 무장대 측에게도 전략적 요충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무장대는...
-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되어 1930년 1월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 항일 운동. 1929년 광주 지역의 중등학교에는 비밀 결사 성진회에서 대중 단체 독서회 중앙부로 이어지는 조직이 있었다. 독서회 중앙부는 1929년 11월 3일의 우발적인 한일 학생간의 충돌 소식을 듣고, 곧 투쟁 방향을 일제에 대한 독립 투쟁으로 돌릴 것을 학생들에게 지시했다. 1929년 11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1945년 일본 육군이 만든 특공부대용 비밀 비행장. 교래리 비행장은 특공부대용 비밀 비행장으로 만들어져, 당시 지역 주민들도 이 곳에 일본군 비행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는 비행장 시설이 맨땅이나 풀밭을 단단하고 평탄하게 다져서 활주로 등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깊숙한 산중에서 일본군의 삼엄한...
-
1952년 건립되어 현재 제주시 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옛 제주도청사. 구 제주도청사는 한국 전쟁 중인 1952년 준공된 건물로, 1980년 4월 제주도청이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제주시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주의 근대 건축물로 2005년 4월 15일 등록 문화재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 1176-1번지에 있다. 현 제주시청 본관 건물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에 있는 도대불. 구엄리 선창은 엄장포라 불리는데, 이 선창 동쪽의 해안 암반 위에 도대불이 세워져 있다. 도대불이 축조되기 이전에는 나무를 세워 그 위에 잠망등을 달아 선창의 위치를 알리곤 했다. 구엄리 도대불은 1950년대에 상자형 도대불을 축조하고 상단에 철제탑을 세워 호롱불로 불을 밝혔다. 조업을 나가든 나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도대불. 1930년경 마을 사람들에 의해 축조되었다. 귀덕리 도대불 윗부분에는 호롱불을 놓기 위한 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관망을 겸비할 수 있도록 윗면을 넓게 하여 놓았다. 불을 켜거나 관망시에 위로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 도대불의 등화는 호롱불을 이용하였다. 등화 담당자는 ‘불칙’이라 하여...
-
1919년 제주도에서 구우면을 중심으로 서당 훈장들이 격문을 붙이다 발각된 사건. 1919년 3월 21일부터 3월 24일까지 신좌면 조천리(현재의 조천읍 조천리)에서 일어났던 독립 만세 시위는 제주도 전역에 독립 운동의 의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 운동에 영향을 받은 구우면 저지리(현재의 한경면 저지리)의 서당 훈장 박세현, 낙천리(현재의 한경면 낙천리)의 김여석·조무빈, 신좌면...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3년 12월 제주공립보통학교 5년을 중퇴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의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공산주의 항일 지사 이익우(李益雨)를 만나 공산주의 계열의 비밀 조직에 가담하였다. 1929년 9월 귀향하여 한림리에서 양화상(洋靴商)을 운영하면서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다. 1932년 5월경 양병시(梁秉時)·장한호(張漢鎬) 등과 함...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1운동 당시 제주도 조천 지역에서 만세 시위 운동을 촉발시킨 사람은 김장환(金章煥)이었다. 김장환은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다 쫓기게 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에 제주에 도착하였다. 김장환은 김시범(金時範)을 찾아 거사를 논의하고, 김경희를 비롯하여 고재륜(高載崙)·황진식(黃鎭式)·김용찬(金容燦)·백응선(白...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 제주판관(濟州判官) 김구(金坵)의 공덕을 기리는 비. 김구의 본관은 부안이며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고려시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원부사록(定遠府司錄)과 제주판관이 되었다. 원종 때는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어 원나라와 관련한 문서 관계 일을 하였다. 제주민속박물관 관장이었던 진성기(秦聖麒)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제주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김장환(金章煥)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제주에 도착하여 김시범(金時範)과 협의하여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3월 17일부터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때 동지로 참여한 사람은 김년배를 비롯하여 김시은(金時殷)·고재륜(高載崙)·김형배(金瀅培)·황진식(黃鎭式)·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도대불. 도대불은 배를 선창으로 안전하게 유도하는 신호 유적이다. 밤에 조업을 하던 배를 유도해야 하므로 도대불은 선창의 방파제 끝이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되었다. 원래의 김녕리 도대불은 마름모꼴의 상자형 도대불로 판단되지만, 1960년경에 태풍으로 허물어져 버리자 1961년 군청의 지원을 받아 원뿔 형태로 재축조되었다. 안정...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1929년 5월 최규문(崔圭文)·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 등과 함께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이 독서회는 광주 지역의 항일 학생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결성된 독서회 중앙본부의 하부 조직이었다. 독서회는 전 회원을 5개조로 나누었고, 김대원을 비롯한 오쾌일·김상환·김보섭·윤창하(尹敞夏)...
-
일제강점기 제주 츨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안동. 호는 철초(鐵草). 아버지는 한성전보사 주사를 지낸 김병원(金炳元)이며, 어머니는 양갑생(梁甲生)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서 태어났다. 제주공립보통학교(제주북초등학교의 전신)를 거쳐 1929년 3월에 부산사립실업중학교를 졸업한 뒤 귀향해 농사를 지었다. 1931년 6월에 제주청년동맹 제주읍지부에 가입하여 같은...
-
조선 말기 때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선비. 당시 의병장이었던 고사훈(高仕訓)[1871~1909]은 1908년 7월에 제주도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간다는 소문을 당시 제주군수였던 윤원구(尹元求)로부터 전해 듣고 의병 활동을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김석윤(金錫允)[1877~1949], 노상옥(盧尙玉)과 함께 제주읍 이도리 광양에 대장간을 차려 무기를 제조하는 한편 황사평에서는 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제주공립보통학교(제주북초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의 전신)를 다녔다. 문제가 된 제주공립농업학교의 부당한 졸업사정사건의 발단은 교내 행사에서 일황의 칙어 낭독을 거부한 김원요(金源堯)와 일제의 황민화 교육과 민족적 차별에 대해 모멸감과 저항심을 갖고 있던 양두옥(梁斗玉)[1914~1966]과 신창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경덕(景德), 호는 송산(松山) 또는 솔뫼. 아버지는 정의현감이었던 김문주(金汶株)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소재하고 있던 의흥학교(義興學校)에서 초등과정을 마쳤다. 1908년(순종 2)에 한성고등보통학교(경기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고, 1911년 4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전문...
-
1919년 제주3.1운동을 주도했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목우(木牛). 아버지는 김중진(金重珍)이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3월에 사립 의신학교(義信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12년에 제주공립농업학교(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였다. 1915년에는 경기도 수원의 조선총독부 수원고등농업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졸업 동기생으로 백남...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삼만은 법정사에 살면서 인부일을 하던 사람으로 법정사 항일운동의 사전 준비단계부터 참여하였다. 1918년 9월 14일부터 봉기에 쓰일 곤봉, 깃발, 그리고 각 마을에 배포할 격문 등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8년 10월 7일에는 후군대장으로서 군중의 후미에서 지휘하였다. 체포된 뒤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일명 김읍언. 제주시 외도동 1715번지에서 태어났으며, 법정사의 주지로서 교도들에게 항일사상을 고취하였다. 김상언은 법정사의 항일 운동에 참여하여 1918년 10월 7일 강창규와 함께 중문 경찰관 주재소의 건물과 기구·문서 등을 파괴하고 불태웠으며, 일본인을 구타하여 부상을 입혔다. 강창규의 명령을 받아 전선과 전주를...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7년 제주 광양서재 김병규 문하에서 통감, 사서, 사략 등을 사사하고 1891년에는 같은 광양서재에서 김설월에게 금강반야경을 마쳤다. 18세가 되던 1894년에는 전주 위봉사에서 박만하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1898년 해남 대흥사에서 내전 초등과를 수료하였고, 1902년 통영군 용화사에서 사교과를 수료하였다. 1916년 범어사에서 이회현 강...
-
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한학자이자 향토사학자. 본관은 광산. 자는 윤경(胤卿)·윤경(允敬)·홍점(鴻漸), 호는 심재(心齋)·일소도인(一笑道人)·해상실사(海上佚史). 초명은 김석조(金錫祚)이다. 아버지는 김창규(金昌圭)이며, 조선 말기에 의병운동을 벌였던 김석윤(金錫允)[1877~1949]의 동생이다. 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의 기초를 배웠으며, 열세 살 때 할아버지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용익(金用益)이다. 일제강점기 우도에서 강관순·신재홍과 더불어 항일 운동의 삼천재(三天才) 또는 삼총사라 불리웠을 만큼 우도 출신의 대표적인 항일운동가이다.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신재홍·오문규(吳文奎) 등과 함께 비밀 결사 혁우동맹을 결성하였다. 1931년 4월 혁우동맹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혁우동맹을 해체하였다....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직공으로 일하는 동안 제주 출신의 문맹(文盲) 교포들이 일제로부터 부당한 착취와 압박을 받는 것에 분개하였다. 1938년 1월경부터 이봉춘(李奉春)·김주삼(金柱三)·고갑평(高甲平) 등과 함께 한인야학교 성심야학(誠心夜學)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문맹 퇴치와 민족 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성심야학에서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사진 작가. 김수남은 제주도의 굿에서부터 아시아 각국의 굿 사진을 통해 삶의 본질과 원초적 생명력을 담아냈던 사진 작가였다. 연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까지 월간지 『세대』의 기자가 되었으며, 1976년부터 1985년까지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1981년에는 신영연구기금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익성(翼成), 호는 고봉(孤峰). 아버지는 김용서(金龍瑞)이다.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사회주의 사상 고취 및 대중 계몽 운동을 벌이기 위한 비밀 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이 결성될 때 참여하였다. 혁우동맹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신재홍(申才弘)이 주도하는 급진적인 단체였으며, 소집 책임은 김순종이 담당하였다. 1931년 음력...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8년부터 하도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신재홍(申才弘)·문도배(文道培)·오문규(吳文奎)·강관순(康寬順)·김성오(金聲五)·김순종(金順鐘) 등과 함께 혁우동맹을 조직하였다. 혁우동맹은 사회주의 이념 아래 민족 해방을 목표로 내걸었던 비밀 결사였다. 1930년 11월...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선구(善驅), 호는 양오(養吾). 김진호(金振鎬)의 4남이며, 김주호(金周鎬)에게 입양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제주시 조천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차례 걸쳐 연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지역도 조천에서 함덕·신흥·신촌 등으로 확대되었다. 최초의 거사일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석연(石淵). 아버지는 월방(月舫) 김창호(金昌鎬)이다. 태어난 지 4일 만에 아버지를 잃었고 4세 때에 어머니마저 여의었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6월 선배가 부당한 이유로 퇴학당하자 동맹 휴학을 단행하였고, 동맹을 주도한 대표 학생 25명과 함께 퇴학당하였다.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여성 항일운동가. 숙부 김문주(金汶株)에게 “책 속에 세계가 있고 글 속에 개화 문명이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40살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조천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갓 스무 살이 지난 친척 동생과 조카가 만세 운동을 이끄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25년 최정숙(崔貞淑)·강평국(姜平國)·이재량(李載良)·고수선(高...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태호(金泰鎬), 어머니는 고유흠(高柔欽)이다. 외숙부는 제주의 대표적인 무정부주의 사상가 고순흠(高順欽)이다. 1925년 5월 1일 노동절을 기하여 김시균(金時均)·김성온(金成溫) 등과 함께 오일회(五一會)를 조직하고 노동 야학을 운영하였다. 부친이 설립한 조천의 신명의숙(新明義塾)을 졸업하고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농산(聾山). 아버지는 김봉호(金奉鎬)이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제주에도 그 영향이 미쳐왔다. 제주 출신 김장환(金章煥)은 휘문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여 쫓기게 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조천으로 왔다. 조천 지역 유지 숙부 김시범(金時範)에게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김시범은 거사를 결심하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의 맹원으로서, 소년 운동 지도, 여성 계몽 운동 등 활발한 사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 맹원들은 신좌문고(新左文庫)의 운영과 노동 야학을 통한 계몽 활동에 주력하였다. 또한 금주 운동에도 앞장서서 밀주를 금지시켰다. 1929년 초 일제는 금주 운동이 항일 운동으로 발전할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금주...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9년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한국인 학생에게 모욕적인 언동을 한 것이 발단이 되어 양쪽 학생 간에 폭력 충돌이 발생하였다. 일제가 이를 불공정하게 수습하려 하자, 동맹 휴학과 집단 시위가 전국에서 발발하면서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광주고등보통학교에 비밀 결사로 조직되어 있던 독서회 회원...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여석은 서당 훈장으로서, 1910년 한일병합 때 제주도 유림이 조선총독부에서 주는 기로금(耆老金)을 받은 것을 보고 노쇠한 유림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민족 의식을 담은 한문 교육을 실시해왔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김여석은 저지리 서당 훈장 박세현(朴世賢), 낙천리 서당 훈장 조무빈(趙武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현대 민속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현지(玄旨)이다. 1932년 2월 22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에서 태어났다. 제주도의 민속 분야를 집대성한 김영돈은 2001년 9월 『제주도민요연구』의 원고를 교정하던 중 향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돈은 제주 민요에 관한 자료 수집과 지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제주 민요...
-
제주 4·3사건 당시 제주경찰 토벌대장. 중국 상하이 성요한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인천상업전수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다가 1947년 3월 31일 강인수 후임으로 제주도 경찰 감찰청장에 임명되었다. 1947년 4월 9일 공식 취임할 당시 제주는 3·1절 기념 시위 사건 및 3·10총파업 등의 여파로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치안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해강(海岡). 가명은 김제민(金濟民)이며 호적상의 이름은 김신배(金申培)이다. 아버지는 김희수(金熙穗)이다. 일찍이 한문을 익혔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시즈오카[靜岡]에서 군밤 장수를 하면서 공부하고자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지 않자 귀국하여 민중 계몽 운동에 힘썼다. 1919년 3월 조천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고, 동지들이 체포되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동에 있는 김윤식이 제주도에 유배되어 5년여 동안 적거했던 유허지. 외무대신으로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운양 김윤식은 을미사변 뒤 1989년(광무 1) 제주도에 유배되어 1901년 5월 이재수의 난을 계기로 전라남도 지도로 이배될 때까지 제주에서만 5년 가까이 유배 생활을 하였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 그는 『속음청사(續陰晴史)』를 저술하고, ‘귤원시...
-
1948년 제주 4·3사건 때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을 역임한 군인.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위에 임관되었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일본군 학병으로 귀환하였고, 1946년 1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되었다. 1947년 9월 제9연대 부연대장(소령)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1948년 2월 제9연대장(중령)으로 승진한 직후 제주 4·3사건이...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7년 3월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10월 서울의 중동학교를 중퇴하였다. 1930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신문 배달을 하면서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며 민족 의식을 키웠다. 1930년 11월 귀향하여 조국 광복을 위한 동지로 송건호(宋健浩)·김유환 등을 규합하였다. 1931년 일본에서 병으로 죽은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
-
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홍지(金洪祉)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297번지[세화남길 8-7]에서 태어났다. 1932년 3월에 사립 하도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2년 4월에 협성실업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학년 때 사립 경신학교로 전학하여 1학년을 수료하였다. 이후 경성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1학년 때 퇴학당하였다...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항일운동가인 김시학(金時學)[1881~1949]의 장남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 일어난 조천 3·1만세운동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고등학교의 전신)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천 출신 김장환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귀향하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조천에서는 이미 김시범(金時範)[1...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1월 15일 도쿄에서 함덕리 출신의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이 사망하여 1월 19일에 시신이 고향에 도착하자 동지장(同志葬)으로 할 것을 결의하였다. 1월 22일 한영섭의 할아버지 한정권(韓程權)의 집에서 대흘리 장지까지 운구하면서 동지들과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하고 ‘한영섭 만세’를 삼창하였다. 1931년 5월 6일 조천읍 경찰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 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 목사 김정의 흥학비. 김정이 제주 지역 교육에 끼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처음에는 제주시 일도 2동, 지금의 선일건재(鮮一建材) 자리에 세워졌으나 1958년 삼천 서당(三泉書堂)이 헐리고 김정 흥학비마저 훼손될 상황에 놓였다. 이때 뜻있는 인사들이 오현단에 옮겨 세웠다. 높이는 91㎝이고,...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일명 김정익(金精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김원규(金元圭)이다. 두모리 서당에서 3년 간 한글과 한자를 수학한 후 한림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하였다. 1930년 여름 신창리 출신의 사회주의 항일운동가 좌응신(左應信)의 권유로 신창독서회에 가입하였다. 1931년 5월 5일 한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홍창주(洪昌柱)와 함께 1일...
-
1890년 김지(金志)가 제주목사의 탐오에 분노하여 제주목 관아를 점거하고 관원을 추방한 사건. 1890년 12월 7일하귀리 사람 김지는 제주목사 조균하가 탐오하고 부정한 것에 분노하여 도민을 선동하여 제주목 관아를 점거하고 관원을 추방하였다. 조균하로부터 뇌물을 받은 김지가 스스로 군중을 해산시킴으로써 군중들은 더욱 분개하였다. 1896년 송계홍 사건 때 송계홍은 관에...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1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함덕리 출신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이 사망하여 1월 19일 시신이 고향에 도착하자 동지장(同志葬)으로 치룰 것을 결의하였다. 1월 22일 한영섭의 할아버지 한정권(韓程權)의 집에서 대흘리 장지까지 상여를 운구하면서 동지들과 함께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하고 ‘한영섭 만세’를 삼창하였다. 또한 한영섭 추모비를...
-
조선 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관인. 1901년 2월 17일에 제주군수로 임명되어 김희주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1901년 1월에 제주목사였던 이상규(李庠珪)가 불법으로 돈을 거둔 죄로 면직되어 있던 상태여서 제주목사 서리를 겸직했다. 같은 해 3월 유배와 있던 천주교도 이범주(李範疇) 구속 사건으로 1900년 6월에 제주 담당 신부로 와 있던 프랑스 신부 구마슬(具瑪瑟, Marcel...
-
제주도지사를 역임한 정치인. 1910년 의신학교를 거쳐 서울의 보성학교에 재학 중 한일합방이 되자 1911년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하였다. 구좌읍에 있는 사숙(私塾)에서 1년 동안 교사로 일하였고, 외도동에 희문의숙(熙文義塾)을 개설하여 숙장으로서 후학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며 청년 운동을 주도하였다. 1949년 11월 15일 제5대 제주도지사로 부임하여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피해...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서울의 보성전문학교 1학년을 수료하고 돌아와 주류 판매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명신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1921년 제주도 최초의 청소년 항일 단체인 반역자구락부를 창립하였다.1922년 제주청년수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명신학교의 경영 지원에 힘썼다. 1924년 3월 11일 제주도 최초의 사상...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할아버지는 항일운동가 김희정(金羲正)이며 아버지는 전 명월만호 김항유(金恒裕)이다. 항일운동가 김평원(金平遠)·김지원(金志遠)는 모두 종형제(從兄弟)이다.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리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항일 운동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김장환(金章煥)이 서울 3·1운동에 참가한 뒤 3월 15일...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형수는 제주공립농업학교 동창인 고병희(高秉禧)·조대수(趙大秀)를 비롯해 고영희(高永禧)·강기찬(康箕贊)·임상국(任祥國) 등과 함께 1927년 3월경에 무정부주의 연구에 필요한 문고(文庫)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또한 매달 1회 모여 공동으로 연구 발표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조직을 확대하기로 하였다. 1928년 4월경 비밀 결사 독서회의...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 만세 시위 운동이 일어났다. 이 항일 운동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김장환(金章煥)이 서울 3·1운동에 참가한 뒤 3월 15일 귀향하여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 등에게 서울의 소식을 알리면서 구체화되었다. 김시범을 주축으로 하여 14명 동지를 규합하는 것으로부터 거사가 준비되었고,...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었던 조선 말기에 세워진 사설 교육 기관. 조선 말기에 접어들면서 사설 교육 기관 설립이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833년(순조 33)에 한응호(韓應浩) 제주목사가 남학당을 세웠다. 1846년(헌종 12) 이의식(李宜植) 제주목사는 군역의 폐해를 이유로 남학당과 우학당 등 삼학당(三學堂)을 폐지하고 학당의 학생들을 고강(考講: 강경(...
-
19세기 후반 제주도 대정군에 소속된 각종 군사들의 성명, 나이, 거주지 등을 기록한 명부. 대정군은 조선 시대 제주 3읍의 하나로 현 서귀포시 대정읍에 치소(治所)가 있었다. 도안(都案)은 정기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소속된 각종 군사들을 조사하여 성명, 나이, 거주지 등을 기록한 명부로 군안(軍案) 또는 군적(軍籍)이라고도 한다. 『대정군 군병 도안』은 대정군에서 작성하여 올린...
-
1907년 제주성 내 일도리 객사동에 설립되었던 『대한매일신보』를 보급하기 위한 제주 지역 지사. 『대한매일신보』는 노일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특파되었던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Daily Chronicle)』지의 특별 통신원 배설(裵說, Ernest Thomas Bethell)이 같은 신문사 특별 통신원이었던 토마스 코웬(Thomas C. Cowen), 그리고 영...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제주 4·3 유적지. 도립병원 옛터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0년 관립 자혜의원으로 개설되어 1927년 전남도립 제주의료원으로 불리다가 1946년 제주도가 도로 승격되어 제주도립병원이 되었다. 2001년부터 제주대학교가 인수하여 운영 중이다. 제주도립병원은 현재 ‘제주의료원’으로 개칭하여 산천단 쪽으로 이전하였으나 아직도 대학 병원을...
-
1919년에 제주도에서 독립군 육성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한 사건. 1919년에 상해 임시정부가 국내에 군자금을 모금하여 줄 것을 요청하자 제주 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군자금을 모아 송금하려는 목적이었다. 1919년에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 육성 군자금으로 5천 원을 모금하여 줄 것을 국내에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독립희생회의 연락원이었던 김창규는 「임시정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에 있는 도대불. 두모리연대는 조선 세종 때 축조되었으며, 납작한 상자 형태를 하고 있었다. 두모리 도대불은 이 연대 위에 1920~1930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대불의 등화 담당자는 어부들 중에 한 사람이 맡았고, 다른 어부들은 석유값을 대주었다. 등화는 조업을 나가는 날에만 어두워지면 켜고, 선박들이 모두 입...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 오름 일대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구축했던 방어 시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미군의 공세에 맞서 제주도에서 결7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 일환으로 1945년 4월경부터 명도암 오름 일대에 저항 진지를 구축하였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에게 전쟁의 주도권을 빼앗긴 후 일본 본토마저 위협...
-
1920년 제주성 내 이도동에 제주도지사의 인가로 개교한 4년제 사립 초등학교. 제주 지역의 문맹 퇴치와 교육 보급을 통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10년대 제주성 내에는 제주 보통학교라는 한 곳의 초등 교육 기관만이 있었는데 제주 보통학교 한 곳으로는 제주 지역의 취학 아동을 온전히 수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에 따라 제주 지역 내 민족주의 성향의 청년...
-
1936년 제주도에서 무극대도교 교조 강승태가 조선 독립을 주장하는 포교 활동으로 일제에 탄압당한 사건. 무극대도교는 제주 중문 대포리 출신 강승태가 보천교 및 정감록 풍수설 등과 무속신앙을 혼합하여 우주만물의 흥망성쇠는 무극대도교의 법리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는 논리로 창설한 종교이다. 1935년 이래 중국에서는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이에 19...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일본 선박의 선원으로 강제 징용되어 상하이·홍콩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1940년 탈출하여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1940년 중국의 광시성 유림(柳林)과 계림(桂林) 전투에 참가하였다. 1942년 10월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비대원에 임명되었으며, 1943년 10월 2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표의원으로 선출되었다....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3월 신재홍(申才弘)·오문규(吳文奎)·강관순(康寬順)·김성오(金聲五)·김순종(金順鐘)·김시곤(金時坤)·부대현(夫大炫) 등은 문도배의 집에서 혁우동맹을 조직하였다. 1930년 11월 초순 혁우동맹 조직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1931년 1월 하순 해체를 논의하여 1931년 4월 혁우동맹을 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었던 조선 말기 서당인 문연서당이 있던 터. 1891년(고종 28) 귤암 이기온이 칠봉서당을 창설하고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며 성균관 교수로 있던 고성겸을 강사로 초빙하여 교육을 개시했다. 1899년(광무 3) 화재로 고성겸과 제자 한 명이 불에 타 숨지고 칠봉서당이 소실되는 불행을 겪었다. 그 뒤 이 자리에 다시 문연서당을 세우고 아들 이응호가...
-
1945년 11월 11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행해진 미군정의 제주 통치. 한국 현대사에서 미군정기는 미 육군 제24군단이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포고에 따라 1945년 9월 8일 ‘재조선 미국 육군 사령부 군정청’[미군정청]을 수립한 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까지 남한을 통치했던 시기를 의미한다. 일본...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의 삼무 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텐더식 증기 기관차. 1944년 일본에서 제작되고 조선 총독부 철도국 경성 공장에서 조립한, 탄수차가 뒤에 달린 텐더식[연료와 물을 공급하는 탄수차를 별도로 연결한 방식] 증기 기관차이다. 처음에는 부산과 신의주 사이를 운행하였고 분단 이후에는 경부선과 호남선을 운행하는 등 전국 철도의 주요 간선을 총...
-
광복 직후 초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정치인. 본관은 밀양. 호는 우석(友鉐). 아버지는 제주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을 지낸 박종실(朴宗實)이다. 동생은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박충훈(朴忠勳)이다. 일제강점기 경성공립중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호남은행에 입사하여 순천지점의 차장을 거쳐 전라남도 광주 본점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후 1946년 8월 1일 미군정에...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순창. 아버지는 박이민(朴离旼)이며 형은 항일운동가 박교훈(朴喬壎)이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일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앞에서 전단 60여 매를 살포하고 만세 시위를 벌여 3월 8일 하숙집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경성고등보통학교 동창생이자 제주 출신 홍형표(洪亨杓)에게 “2천만의 대표자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6년 3월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목포공립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다. 1929년 11월 16일 이광우(李光雨)의 집에서 학우들과 함께 목포공립상업학교 학생을 규합하여 동맹 휴학을 결행하고 항일 시위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총독부 폭압 정치 절대 반대’, ‘치안유지법 즉시...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어릴 때 2년 동안 한문을 배우고 1926년 8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에서 금구소학교(金甌小學校) 야간부를 졸업하였다. 화하류전기제작소(靴下留電氣製作所)에서 공원으로 일하던 중 일본 공산당 당원 김귀영(金貴榮)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에 공감하였고, 무산 아동에게 항일 의식을 교육하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다...
-
조선 말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자순(子純), 호는 춘고(春皐) 또는 현현거사(玄玄居士). 초명은 박무량(朴無量)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역임한 박원양(朴元陽)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한말 개화파를 대변하는 인물로 개화 운동을 이끌었으나, 한일합방 후에는 일제의 후작 작위를 받는 등 일제강점기 동안 친일파로 활동하였다. 1872년(고종 9) 철종의 부마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박영효의 적거 터. 1907년 8월 일제에 의한 고종의 선위가 강행되자 박영효는 궁내부 대신으로서 이를 반대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제주도에 감금되었다. 1년의 감금형이 풀린 뒤에도 박영효는 독짓골에 과원을 조성하여 제주도민에게 원예 작물 재배를 권장하고 근대교육과 근대 사상 계몽에 힘쓰다가 1910년 6월에 제주를 떠났다...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대표적 기업가. 본관은 밀양. 호는 청암(晴巖). 아버지는 박원길(朴元吉)이며 어머니는 탐라최씨이다. 부인은 진주강씨이다. 아들은 초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박경훈(朴景勳)과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박충훈(朴忠勳)이다. 5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큰댁이 있는 전라북도 부안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큰댁의 형제들과 어울려 한학을 공부하며 유년 시절을 보내다...
-
제주 4·3 때 사건 진압을 주도한 군인. 박진경은 일본 오사카의 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일제 말기에 제주도에서 일본군 소위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해방 후 국방경비대 사령부 인사과장을 거쳐 남한 단독 정부수립 반대를 명분으로 발생한 4·3사건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8년 5월 6일 김익렬 중령에 이어 제9연대장에 임명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으로 제주도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제주 4·3 때 죽은 박진경을 기리는 비. 아흔아홉골의 제주시 충혼묘지에는 제주 4·3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희생된 군 전사자와 경찰 전사자들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원래 이 유해는 사라봉 자락의 사라봉 충혼묘지에 안장돼 있다가 1985년 10월 26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충혼묘지 안의 좌측은 경...
-
제주 출신의 경제 관료.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제주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을 지낸 박종실(朴宗實)이다. 동생은 초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박경훈(朴景勳)이다. 박충훈은 제주도 출신 가운데 국무총리 서리와 대통령 권한 대행을 역임하여 최고위 관직에 오른 인물이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일본 교토의 도시샤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 1948년 상공부 무역국장을 거쳐 1953...
-
1921년 제주성 내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제주 지역 최초의 진보적 청년 단체. 사회주의 사상 연구를 위한 사상 단체로 설립되었다. 3·1 운동 이후 1920년대 제주 지역에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됨에 따라 최초로 사회주의 색채를 띠고 결성된 모임으로, 중심 구성원에는 홍순일(洪淳日)·김택수(金澤洙)·한원병(韓元柄)·장종식(張鍾植)·장희순(張禧淳)·한상호(韓相鎬)·강창보(姜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백낙연(白樂淵)을 기리는 비. 백낙연은 무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77년(고종 14) 정월에 부임하고, 1881년(고종 18) 5월에 교체되었다. 흉년이 들자 조정에 요청하여 백성들을 진휼하였고, 동쪽과 남쪽의 두 문의 큰길을 내고 닦음에 그 공을 기려 비를 세웠다. 비신(碑身)의 너비는 142.5㎝이고...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백낙연(白樂淵)을 기리는 비. 백낙연은 무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77년(고종 14) 정월에 부임하고, 1881년(고종 18) 5월에 교체되었다. 흉년이 들자 조정에 요청하여 백성들을 진휼하였고 동쪽과 남쪽의 두 성문 앞의 큰 길을 수리하였다. 백낙연이 부임하던 1877년에 제주도에서는...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수원. 호는 천야(天耶). 아버지는 백찬규(白燦奎), 부인은 안요원(安堯媛)이다.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 만세 시위 운동에서 주동자 9명이 체포된 후, 백응선은 박두규(朴斗圭)·김필원(金弼遠) 등과 더불어 3월 22일 제2차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제2차 시위에서 박두규·김필원이 체포되었다. 3월 23일 제3차 시위가 조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기미년 조천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투옥된 백응선을 기리는 묘비.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제주도에서도 3월 21일 미밋동산에서, 22일 조천리에서, 23일 조천리 장터에서, 24일 함덕리에서 만세 운동이 펼쳐졌다. 일본 경찰은 주동자 23명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으며, 이때...
-
1947년 1월 11일 제주 지역에서 복시환(福市丸)이 밀수선으로 경찰 당국에 의해 적발된 사건. 1945년 8월 해방 이후 제주 지역의 공업은 가내 공업·수공업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고구마를 원료로 하던 주정 공장, 수산물 가공 공장, 식료품 제조 공장 등이 가동되고 있었으나 그나마도 해방 직후 원료 공급이 끊겨 가동이 중단되었다. 생산품이 거의 없어 생필품이 귀해지자 도민들은...
-
일제강점기 해녀의 항일 투쟁을 주도한 해녀. 13세부터 잠수를 하였다. 하도강습소에서 하도리 출신 김순종(金順鐘)·오문규(吳文奎)·부승림 등으로부터 한글·산수·농민 독본 등을 배우면서 항일 의식이 싹텄다. 1930년대 일제가 해녀에 대한 착취와 인권 유린을 일삼자, 이에 항거하여 부춘화(夫春花)·김옥련(金玉蓮) 등과 함께 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1932년 1월 7일 세화리 5일장...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아버지는 부병익(夫秉益), 어머니는 김종윤(金鍾允)이다. 동생은 항일운동가 부장환(夫章煥)이다.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9월 일본으로 건너가 피혁공장 공원으로 일하면서 1931년 6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화학노조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였다. 1932년 7월 구로주미[黑住剛]의 권유로 일본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부두전(夫斗栓)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부기남(夫基楠)이며 어머니는 김태규(金太圭)이다. 부인은 한옥순(韓玉順)이다. 일본에 있는 니혼대학 부설 오사카전문학교에 재학 중 1940년 5월 김봉각(金奉珏)·강금종(姜金鍾)·김병목(金丙穆) 등과 함께 흥아연구회를 조직하였다. 흥아연구회는 1940년 5월 26일 계림동지회라고 개...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호는 백도. 일명 부건(夫鍵)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한학자 부정규(夫正奎)이며 부인은 한월계(韓月桂)이다. 동생은 항일운동가 부기준(夫己準)이다. 11세 때 조기 결혼하였으나 신식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전문부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니혼대학 재학 중 민족주의에 눈을 떴고 1년 후 서울로 돌아왔다...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는 화종(華鍾), 호는 설파(雪波). 아버지는 부만천(夫萬千), 어머니는 김완희(金完熙)이다. 1928년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서 노동을 하면서 열악한 노동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조선인들을 보면서 민족주의 의식이 싹텄다. 귀국 후 장사를 하면서 제주청년동맹 함덕지부에 가입하여...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는 자문(子文)이다. 아버지는 부병익(夫秉益), 어머니는 김종윤(金鍾允)이다.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중퇴하고 1931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1932년 2월 시마나카[島中信雄]의 권유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출판노조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여 오사카지부의 위원...
-
일제강점기 해녀 항쟁을 주도한 해녀.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보통학교 야학부에서 공부하였다. 1928년 제주도 해녀조합 산하 조직인 구좌면 해녀조합 대표로 선임되어 해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해녀조합은 어용화되어 해녀조합을 통한 일제의 수탈이 심하였다. 1931년 해녀조합이 하도리 해녀들이 수확한 감태와 전복 값을 터무니없이 강제로 싸게 매기려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북촌리에 있는 도대불. 북촌리 도대불 윗부분 오른쪽에는 도대불을 만들 때 세운 비가 있다. 이 비의 앞면에 ‘어즉 등명대 대정4년 십이월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15년 12월에 제작되었고 ‘등명대’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도대불이라 불렀다. 원래 북촌리 도대불 꼭대기에는 등피를 걸 수 있는 목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생원, 진사 등 사마시에 합격한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연마하던 사마재의 터. 학문 연마를 목적으로 세워진 사마재에 1876년(고종 16) 8월에 유배 온 이세직이 세를 내어 살면서 학생들을 모아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학문 연마, 강독 강론과 대과 준비를 위하여 1876년(고종 16)에 제주목사 백낙연이 사마재를 창건하였다. 당시 제주도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태평양전쟁 무렵 일본군이 구축한 군사 방어 시설. 새미오름으로도 불리는 삼의악은 제주시 산천단을 갓 벗어난 5·16도로변에 위치한 오름이다. 삼의악 진지는 관음사 진입로를 따라 1.1㎞쯤 가면 나오는 도깨비도로 일대 계곡 단애면의 단단한 암반과 송이층을 뚫고 만들어졌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삼의악 일대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새신오름에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구축한 방어 시설. 한경면 청수리 일대는 제주 서부 지역 중산간 마을로, 예전부터 ‘제주옹기’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기도 하다. 새신오름 진지가 있는 새신오름뿐만 아니라, 청수리 주변에 있는 가마오름과 굽은오름 등에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구축한 갱도진지가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
-
조선 말기 때 제주민란 수습에 나섰던 미국 외교관.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나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20대의 젊은 나이로 주일본공사관의 2등 서기관이 되었다. 1898년(고종 35) 1월경에 주한국공사관 서기관으로 발령되었다. 이때부터 1904년(고종 41) 러일전쟁 발발 때까지 고종의 고문관으로 재직하면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대결 과정...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1동에 있는 제주 4·3 유적지. 서북청년회는 월남한 함경도, 황해도, 평안도 출신 청년들을 주축으로 1946년 11월 선우기성을 단장으로 창립된 반공 청년 단체로서, 이승만과 미군정의 힘을 업어 좌익 세력 분쇄에 앞장섰다. 또한 미군정은 각 지방마다 서북청년회 조직원들을 파견한 후 정보원 역할을 맡겨 그 지역 좌익 세력들을 색출하는...
-
일제강점기 때의 세계적인 곤충학자. 1908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13세인 1921년에 평양 종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서울의 명문학교였던 숭실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지만, 이듬해 동맹 휴학으로 다닐 수 없어 중퇴하고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로 옮겼다. 졸업 후인 1926년 3월에 일본에서 손꼽히는 농업전문학교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를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합격하였다. 같은...
-
1896년에 제주도에서 송계홍(宋啓弘)이 군중을 이끌고 경무청에 난입하여 공문서를 불태운 사건. 1895년에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적으로 왜양축척(倭洋逐斥)을 주장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1896년 3월에 이연보(李淵寶)가 대중 앞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 등의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순검(巡檢)들에게 연행되었다. 이연보가 연행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송상순(宋祥淳)의 선정을 기리는 비. 송상순은 1879년(고종 16) 2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가 1880년(고종 17) 10월에 장령(掌令)으로 임명되어 떠났다. 송상순은 재임 중 문묘(文廟)의 생우전(牲牛錢) 대금 200냥을 마련해 두는 등의 선정을 베풀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
제주 4·3사건 때 조선경비대 제9연대장을 지낸 군인. 일본군 지원병 출신으로, 1946년 2월 군사영어학교를 제1기로 수료하고 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되었다. 광복 후 창군 당시 제5연대의 소대장과 중대장을 거쳐 제8연대 대대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7월 제주에서 재편된 제9연대의 연대장(소령)이 되었다. 연대장 재임 중인 1948년 10월 17일 “제주성의 해안에서 5㎞ 이상...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송해옥(宋海玉), 어머니는 고명주(高明珠)이며 부인은 고복진(高福珍)이다. 1921년 제주 최초의 항일 청소년 단체인 반역자구락부를 창립하였다. 명신학교(明新學校) 교사로 후진을 양성하였고, 김성숙(金成淑)이 설립한 가파도의 신유의숙(辛酉義塾)의 교사로도 있었다. 1925년 반역자구락부 구성원 중 사회주의 좌파들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수월봉에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해군이 구축한 동굴 기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해군이 미군 등 연합군의 함정을 목표로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만든 특공기지로, 진양(震洋)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수월봉 특공기지는 송악산과 수월봉, 삼매봉, 서우봉 특공기지와 유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특히 최근에 특공정 유도로 시설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설립되었던 근대식 사립 여학교. 제주 성당에서 활동하던 라크르(Lacrouts, Marcel)[1871~1929] 신부는 포교 활동의 일환으로 1909년 10월 18일 신성 여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1910년 5월 제주 읍내에 약 40명의 학생을 모아 신성 여학교[현 신성 여자 중학교·신성 여자 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라크르 신부는 샬...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우도(牛島)의 첫 기독교 신자로 목사 이경필(李敬弼)에게 세례를 받았다. 성안교회에 부설된 여아(女兒) 교육 기관인 영흥학교의 교사로 재임하였다. 1927년 8월 조선공산당원이며 고려공산청년회 전라남도 책임자였던 김재명(金在明)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0년 3월 구좌읍 일대에서 혁우동맹이 결성되었을 때 주도적인 역할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에게 제적 조치를, 신창진(愼昌珍)과 양두옥(梁斗玉)에게 유급 조치를 내렸다. 김원요·양두옥·신창진 등이 학교 의식에서 천황의 칙어가 낭독되었을 때 묵념을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7일 졸업식이 열렸을 때, 김원요는 교무실로 가서 담임 야마가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에게는 제적 조치를, 신창진과 양두옥에게는 유급 조치를 내렸다. 김원요·양두옥·신창진 등이 평소 일본 천황의 칙어를 학교 의식 때 낭독해도 묵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7일 졸업식에서 김원요는 교무실에 들어가 담임인 야마가와[山川助夫]에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으로 민선 1~3기를 역임했던 구 북제주군 군수. 신철주는 유년 시절부터 한학과 유학에 밝았던 선친으로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있는 법이다. 그러한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자라왔다. 신철주는 공사 생활에 있어 청신근(淸愼勤)의 생활 신조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있는 도대불. 신촌리 도대불의 등화 담당자는 선창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을 어부들이 선정하였다. 등화는 출항을 할 때에 어부들이나 등화 담당자가 했으며, 만일에 불이 꺼졌을 경우에는 등화 담당자가 다시 불을 켰다. 등화는 각지불을 이용하였는데, 연료는 어부들이 자금을 모아 구입한 석유를 사용하였다. 1968년 신촌리에 전기...
-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86년(고종 23) 5월, 홍규(洪圭)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88년(고종 25) 7월까지 재임하였다. 1886년 6월에 콜레라가 크게 유행하여 수 만 명이 죽었고, 7월에는 폭우가 쏟아져 민가와 분묘가 떠내려가고 남수구(南水口) 홍문이 쓰러져 개건하였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1887년(고종 24) 5월 제주목의 엄사인...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심원택의 흥학비. 심원택은 무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86년(고종 23) 5월에 제주도에 부임하였고 1888년(고종 25) 7월에 교체되었다. 남수구(南水口) 홍예(虹霓)를 개축한 공로를 기려 비가 세워졌다. 비신의 너비는 39.5㎝이고 두께는 14㎝, 높이는 87.5㎝이다. 비 앞쪽에는 “목사...
-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낸 무신. 1883년(고종 20) 5월 박선양(朴善陽)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6월 제주 유배인 백낙관(白樂寬)이 서울로 이송, 의금부의 남간(南間)에 수감되었다. 1883년 7월 함덕포 해변에 표착한 일본 상선의 선장과 선원 4명을 조사하여 보고하였다. 1883년 10월 삼읍(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마병도시(馬兵都試)를...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심현택을 기리는 비. 심현택은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83년(고종 20) 5월에 부임하였다가 1884년(고종 21) 12월에 교체되었다. 공진정(拱辰亭)을 개건하여 이를 기리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비신의 너비는 34.5㎝, 두께는 13.5㎝, 높이는 67㎝이다. 비의 앞쪽 가운데에는 “使相沈公賢澤愛...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죽산. 호는 근해(槿海). 일명 안요검(安堯儉)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안태환(安台煥)이다. 유년기에 고향의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후, 전라남도 광산군 하남면 장덕리로 가서 다시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에게 한학을 배웠다. 1914년 조천리에 근대식 서당인 신명사숙(新明私塾)이 개설되자 김순탁(金淳鐸)과 함께 사장(師丈)이 되어 후학을...
-
일제강점기 안중근 의사가 쓴 친필 휘호(揮毫).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여순 감옥에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이다. 이 휘호의 “天與不受反受其殃耳(천여불수반수기앙이)”는 “하늘이 준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벌을 받는다”는 뜻으로 안중근 의사가 항일 투쟁과 구국 운동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친필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遺...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도대불. 애월읍 애월리 애월포 일대는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서 항파두성을 쌓고 관군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애월목성을 축성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1581년(선조 14)에 김태정 제주목사가 애월진성을 석축하였는데, 그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지금의 애월리 도대불은 1930~1935년 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일제 강점기 때 마을 향사에 모여 한글과 산수 등을 익혔던 문맹 퇴치 운동. 야학 운동은 일제하 식민지 제도 교육으로부터 배제된 민중들의 의식화를 위한 민중 교육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운동이다. 제주도의 야학 운동은 3·1 운동 이후 제주 지역 청년들이 계몽 운동 차원에서 노동 야학을 개설, 교사로 참여하여 대중 계몽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8년 2월 신창리의 야광소년단에 입단하였으며 1928년 3월 한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신창진(愼昌珍)과 양두옥에게는 유급 조치를 내렸다. 평소 학교 행사에서 일황의 칙서가 낭독될 때 묵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
제주 4·3 사건 당시 신분을 증명하는 증서. 제주 4·3 사건 당시 도피자 및 도피자 가족, 피난 입산자, 요시찰인을 제외한 일반 도민에게 발급해 준 증명서이다. 이 증명서가 없으면 통행할 수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없었고 좌익이나 통비분자로 의심받았다. 유격대와 이른바 통비분자, 좌익 세력 및 그 가족들을 고립시켜 다른 주민들과 구분하여 처리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제주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양세현의 기념비. 양세현은 1771년(영조 47)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2년 동안 재임하였다. 재임하는 동안 1772년(영조 48) 제주 삼성혈에 바깥담을 쌓고 소나무를 심었으며 제주 삼성혈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또한 홍화각(弘化閣)을 중수하고 전사청(典祀廳)를 건립하였으며, 우암송시열적려유허비(尤唵...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아버지는 양달하(梁達河)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 1461에서 태어났다.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신창진(愼昌珍)과 양두옥(梁斗玉)에게 유급 조치를 내렸다. 이들이 평소 학교 행사에서 일본 천황의 칙어가 낭독되어도 묵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양헌수를 기리는 비. 양헌수는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64년(고종 1) 3월에 부임하였다가 1866년(고종 3) 8월에 승지(承旨)로 전출되었다. 부임한 해에 『훈민편(訓民篇)』을 저술하여 백성을 가르쳤다. 삼성사(三性祠)의 제전(祭田)을 별도로 설치해 주었고, 효열(孝烈)을 포상하고 폐막을 혁파하는...
-
조선시대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제주도 사람들의 이름을 연대순으로 수록한 인명록. 『사마선생안(司馬先生案)』이라고도 부르는 『연방록(蓮榜錄)』은 조선 시대 사마시인 생원과 진사과의 향시(鄕試)·회시(會試)에 합격한 사람의 성명을 적은 명부이다. 연방은 생원과 진사를 달리 이르는 말로, 사마라고도 하였다. 1892년(고종 29) 윤 6월 18일에 이루어졌으며 편자는 미상...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말기의 정자. 영은정은 1904년 제주목사 홍종우가 세운 정자이다. 영은정과 관련하여 1905년 사법(司法) 홍진국(洪鎭菊)이 쓴 「영은정기(泳恩亭記)」가 남아 있다. 현재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에 있는 ‘장사’. 예초리 장사는 추자면 예초리 마을 진입로 속칭 엄바위 밑에 세워져 있는 ‘장사’를 일컫는 말이다. 기존에 세워져 있던 것이 썩어버리자, 1992년경에 마을 청년들 주관으로 다시 만들어 세워졌다. ‘장사’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는 아무도 모르며, 예로부터 계속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나무가 썩으면 새롭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제주 4·3 시기에 쌓은 석성. 오드싱성은 제주시 오등동 주민들이 제주 4·3 사건 당시 해안 마을로 소개되었다가 1951년 마을을 재건할 때 오등동 마을을 둘러싼 석성의 일부이다. 오드싱은 오등생의 토박이 지명으로, 『제주읍지』(1783년)에 ‘오등생리(吾登生里)’라 적혀 있다. 이승만 정부에 의해 제주도 중산간...
-
제주 4·3사건의 마지막 무장대원. 고향인 구좌읍 송당리에서 칠순이 넘은 아버지와 아내 및 생후 8개월 된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후 1948년 가을, 국군과 경찰 합동 토벌대가 진압 작전을 전개할 때 송당리 마을이 소각되고 그 과정에서 아내를 잃었다. 토벌대에 의해 해안 지대로 소개되었으나 식량이 없어서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가 무장대에 가담하...
-
조선시대 문과에 급제한 제주도 사람들의 이름을 연대순으로 수록한 인명록. 1892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용방록(龍榜錄)』은 1414년에 급제한 고득종으로부터 1863년에 급제한 한석윤까지 총 56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용방은 『매천야록(梅泉野錄)』 갑우이전조(甲牛以前條)에 “문과를 용방, 무과를 호방, 소과를 연방, 대과를 주방이라 한다.”고 한 것처럼 문과를 달리 이르...
-
1929년에 제주도에서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했던 고병희(高秉禧)와 조대수(趙大洙)가 검거된 사건. 사회주의 운동이 소강 상태에 이른 1929년에 아나키즘 사상에 입각한 대중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아나키스트 고병희는 공산주의 사회 건설보다 무정부주의 사회 건설을 주장하였다. 우리계(宇利契)는 표면적으로는 친목계였으나 실제로는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여 교통기관, 생산기관 등...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제주 4·3 때 쌓은 석성. 이승만 정부에 의해 내려진 중산간 마을 소개령에 따라 군경은 1948년 11월 20일 해안동 주민들을 해안으로 내몬 뒤에 마을을 불태웠다. 해안 마을로 소개 갔던 해안동 주민들은 1949년 1차로 도평 하동에 전략촌을 형성하여 살다가 1950년 봄 무렵 해안동 하동에만 성을 쌓고 살았다. 위층성은...
-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본관은 해남(海南). 아버지는 윤덕언(尹德彦)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603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동 193번지로 이주한 후 제주에서 활동하였다. 제주 시내 중앙이발관의 이발사로 일하였고, 1939년부터 천주교를 믿어 제주성당에 다녔다. 제주에서 천주교의 항일 운동은 신부 패트릭 도슨(P...
-
일제강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문신. 1905년 조선시대 마지막 제주목사 조종환(趙鍾桓)이 이임한 뒤 제주목사는 폐지되고 제주군수로 바뀌었다. 1906년(광무 10) 동래군수이던 윤원구가 초대 제주군수로 부임하였다. 윤원구가 제주군수로 부임하던 때는 일본에 의해 조선의 행정제도가 개편되고 있던 시기였다. 목(牧)·현(縣)제도의 면 행정, 즉 풍헌(風憲), 경민장(警民長) 등의 명칭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제주의 의병 항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세운 탑. 1909년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자 제주 지역에서는 고사훈(高仕訓) 등의 유림들이 1909년 2월 25일 봉기를 결의하고 격문과 사발통문을 띄웠으나 일제에 곧 진압되고 말았는데, 의병 항쟁 기념탑은 1909년 당시 제주 의병들의 의로운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내에 설립되었던 근대 교육 기관. 교육을 통해 구제도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문화·문명 세계를 배움으로써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목표를 두었다. 1906년 2월 일제가 통감부를 설치하고 한반도 침략을 노골화하자 전국적으로 교육 구국을 목적으로 한 사학 건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제주 지역에서도 사학 건립 운동에 동참...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제주찰리사겸방어사 이규원을 기리는 비. 이규원은 1891년(고종 28) 9월 제주찰리사겸방어사로 부임하여 1894년(고종 31) 9월 군부대신에 임명되자 전출되었다. 재임 중 김지(金志)[1835~1896]의 난을 수습하고 오현단(五賢壇)을 귤림서원(橘林書院) 옛 터에 건립하였으며, 운주당을 중수하였다. 또한 흉년이 들자...
-
제주 4·3사건 때 제주도 인민유격대 지휘관.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장사를 하던 큰형 이호구 밑에서 둘째형 이좌구와 함께 공부하였다. 미오키모리국민학교와 상업고등학교를 거쳐 리츠메이칸대학 경제학과 4학년 재학 중에 학병으로 일본 육군에 입대해 광복과 함께 소위로 제대하였다. 해방 후 큰형 이호구는 고향에 신촌중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둘째형 이좌구는 1946년 11월 남조...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월 21일 오후 3시경 이문천을 비롯한 5,6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미밋동산에 모여들었을 때 김시범(金時範)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 김장환(金章煥)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문천을 비롯한 군중은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연창하면서 시가지를 향하여 시위하였다. 3월 23일의 시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이수동을 기리는 비. 이수동은 1520년(중종 21) 4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가 1522년(중종 23) 12월에 형조참의로 전출되었다. 이수동은 모흥혈(毛興穴) 내에 돌담장을 축조하고 붉은 대문을 세워 삼성(三姓)의 자손들이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며, 5방호소(防護所)에 귤유(橘柚)...
-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본관은 함평. 이계하(李啓夏)의 장남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870번지에서 태어났고, 18살 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읍 삼도동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제주에서 천주교의 항일 운동은 패트릭 도슨(Patrick Dawson)[일명 손 신부], 오스틴 스위니(Austin Sweeny)[일명 서 신부], 토마스 라이언(Th...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전주. 양부는 이한구(李漢九)이며 부인은 장경렬(張璟烈)이다. 조선 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김창호(金昌鎬)의 생질로, 김창호의 아들 김정순(金正舜), 김정로(金正魯)와는 외종형제(外從兄弟) 사이이며 모두 항일운동가이다. 한림공립보통학교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호세이대학교[法政大學校]를 졸...
-
1901년 제주민란(일명 이재수의 난, 신축민란, 제주교난)의 주모자. 본관은 고부(高阜). 아버지는 이시준(李時俊)이며 어머니는 송씨이다. 본래 대정군의 관노였으나 갑오개혁 이후 노비제가 폐지되자 관아의 급사이면서 향청의 우두머리인 오대현(吳大鉉)의 하예(下隸)가 되었다. 칼과 활 등 무예에도 뛰어났다. 1901년 5월 봉세관(封稅官)의 과중한 세금과 이와 결탁한 천주교도의 작폐...
-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901년(고종 38) 4월 이상규(李庠珪)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902년(고종 39) 6월까지 재임하였다. 주사 최창순(崔昌淳)과 함께 프랑스 군함을 타고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대정군수 채구석(蔡龜錫)[1850~1920]으로부터 유림 오대현(吳大鉉)과 관노 출신인 이재수(李在守) 등이 제주성을 점거하고 천주교...
-
조선 말기 제주 의병의 의병장. 1909년(순종 3) 2월 25일 이중심을 비롯한 고사훈·김석명·노상옥·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한영근(韓永根)·김만석(金萬石) 등이 조병생의 집에서 회합하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의병장에 고사훈·이중심을 추대하였다. 이들은 거사 날짜를 3월 3일로 정하고 대정군부터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제주도민들에게 격문과 통문을 돌렸다. 고사훈...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법률 공부를 한 뒤 1921년 8월 보통문관 시험에 합격하였다. 1924년 3월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0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1925년 10월 서울 기독청년회관에서 조선농민사가 결성될 때 김준연(金俊淵)·최두선(崔斗善) 등과 함께 이사로 선임되었다. 제주출신유학생후원회 회장,...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인다마을에 있는 제주 4·3 시기에 쌓은 석성. 이승만 정부에 의해 내려진 제주도 중산간 마을 소개령으로 군경은 1948년 11월 중순경 아라동 주민들을 해안으로 내몬 뒤에 마을을 불태웠다. 해안 마을로 소개갔던 아라동 주민들은 1949년 5월 알인다 공터를 중심으로 석성을 쌓고 전략촌을 형성하여 살았다. 이때 아라 2구인 걸머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1동에 있는 제주 4·3 유적지. 인민위원회 사무실 옛터에는 1945년 11월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어 1947년까지 제주 주민들의 자치, 행정 업무를 해 오던 제주도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인민위원회 사무실 옛터는 현 중앙로 교차로 동북쪽에 있었으며, 최근까지 나사로병원이 있던 자리이다. 2003년 제주도와 (사)제주4·3연구소가 공동...
-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제주인들이 벌였던 항일 운동. 일제 강점기인 1923년 12월 15일 제주도와 오사카 간에 정기 항로가 개설된 후 많은 제주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 이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사회 단체나 학교, 노동 현장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해방될 때까지 치열한 항일 운동을 벌였다. 일본으로 진출한 제주인들은 오사카에 많이 거주하였으며, 주로 여성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8년 제주청년동맹 화북지부의 활동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소년 단체에 대한 지원과 지도였다. 화북소년단의 단원들은 대부분 화북보통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1929년 5월 하순 화북보통학교 교사 문재순이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대하자, 임삼호를 비롯한 제주청년동맹 맹원들은 학생들과 함께 교사 배척 운동을 벌였다. 1931년 2월 12일 화북보통학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작은대나오름(절물오름) 일대에 구축한 일본군 방어 시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미군의 공세에 맞서 본토 결전 작전을 준비하면서 제주도에서도 결7호작전을 준비한다. 이 일환으로 1945년 4월경부터 제주시 봉개동 작은대나오름 일대에 주저항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 시설물에는 일본군 제96사단 소속 보병 제293연대가 주둔하여 일본 육군의 동비행장(...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인동. 일명 장석호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장문환(張文煥)이다. 구우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11살 때 협재소년회에 가입해 덕육부장을 맡았다. 1928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교토·오사카 등지에서 노동에 종사하다가 1930년 귀향하였다. 귀향 직후 윤한진(尹漢珍)의 집에서 고창순(高昌淳)·장정호(張楨鎬)·김이규(金二奎)·김승옥(...
-
조선 말기 정의군수를 역임한 관리이자 항일운동가. 본관은 인동. 자는 익중(翊中), 호는 정산(庭山). 장규열(張奎烈)이라는 이름도 썼다. 아버지는 장현호(張炫昊)이다. 김윤식(金允植)이 1896년 아관파천 후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 27세의 장용견과 교유하고 평하기를, “의(義)를 좋아하며 항상 귀양살이 하는 사람을 챙겼고 시회(詩會)에도 참가하였으며 어렵고 험한 일을...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6년 구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1930년 귀국하였다. 1930년 장병윤(張炳允)·고창순(高昌淳)·장정호(張楨鎬)·김이규(金二奎)·김승옥(金昇玉)·강공흡(姜公洽) 등과 함께 윤한진의 지도 아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31년 5월 5일 일어난 한림공립보통학교 동맹 휴학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이익우(李益雨)·최복렬(崔福烈...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3년 구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7살 때 한림소년회에 들어갔고 18살 때 한림청년회에 가입하였다. 한림청년회는 제주청년동맹 한림지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1년 4월경 제주청년동맹 간부이자 공산주의 항일운동가 이익우(李益雨)의 지도를 받아 김경봉(金京奉)의 주도로 결성된 독서회에서 활동하였다. 독서회는 1932년 3월 이익우 등이 조...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절부(節婦) 고씨(高氏)의 절개를 기리는 바위. 절부암은 1981년 8월 26일 제주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바위로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조난당한 남편을 기다리다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고씨 부인의 비통한 사연이 전해오는 곳이다. 옛날 용수리 마을에 강사철과 고씨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 처녀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만든 육군 비행장. 정뜨르 비행장은 당시 제주읍에 있었던 일본 육군 서비행장을 일컫는다. 정뜨르 비행장이란 이름은, 당시의 지역 주민들이 비행장 부지를 ‘정뜨르’라고 한 데서 연유한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 들어선 정뜨르 비행장과 교래리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 진뜨르 비행장들은 1944년 말부터 1...
-
1901년 제주 민란 직후 천주교의 폐단을 조사하여 작성한 문건. 1901년 제주 민란(이재수의 난으로도 불림)을 무마시키러 제주도에 왔던 찰리사(察理使) 황기연(黃耆淵)이 민란 참여자와 지방관들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하였다. 조선 말기 중앙에서는 제주 민란을 수습하기 위해 황기연을 내려 보냈다. 사건이 마무리되자 황기연은 내용을 조사하여 기록을 남기고, 중앙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하...
-
1919년 3월에 제주도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벌인 항일 운동. 제주 3·1 운동은 1919년 3월 21일부터 같은 해 3월 24일까지 4일간 조천 지역을 중심으로 인근의 함덕·신흥·신촌 등지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이다. 1919년 3월 1일에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 시위 운동의 영향을 받아 제주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 운동을 통해 독립 의지를 알리고자 하였다. 조천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가마오름에 태평양전쟁 무렵 일본군이 구축한 방어 시설. 한경면 청수리는 제주 서부 지역에 있는 중산간 마을이다. 가마오름을 비롯한 새신오름과 이계오름, 굽은오름 등, 청수리의 많은 오름에는 일본군 갱도진지가 구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군 주둔 실태를 보여 주는 「제58군배비개견도」 등에 따르면, 제주 가마오름 일제 동...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연자마(硏子磨) 1기(基). 신엄리에는 할망당이 있는데, 이 곳을 ‘당거리동네’라 불렀다. 이곳에 연자마가 위치해 있는데 이 지명을 따서 ‘당거리동네연자마’라 하였다. 말방아는 제주 농촌 지역에서 곡식을 찧거나 빻을 때 사용한 농기구로, 연자방아와 같은 형태이나 주로 말의 힘을 이용한 데서 비롯된 명칭으로...
-
1908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제주 향교에 부설되어 있던 민립 교육 기관. 제주 향교의 유림은 20세기 초 급속한 변화 속에서 향교의 한문 교육으로 현실에 대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숙의 끝에 제주 향교 부설 사립 제주 대동 보통학교를 개교하였다. 1910년 12월에 첫 졸업식을 거행한 이후 제주 공립 보통학교의 운영이 원활하게 됨에...
-
1898년(광무 2) 제주도에서 방성칠(房星七)이 주도한 민란. 방성칠은 본래 전라남도 동복군[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사람으로 남학교도였다. 1894년 동학 농민 전쟁 실패 후 제주도로 건너가 화전민으로 정착해 살다가 1898년 제주 민란을 주도하였다. 화전세와 마장세 등 조세 수취 구조의 폐단을 개혁하려는 목적이었다. 1898년 2월 7일 방성칠의 주도로 광청리...
-
1901년(고종 5) 4월 제주도에서 이재수(李在秀)가 주도한 민란. 천주교는 1886년 한불 수호 조약과 1896년 교민 조약 등을 통해 선교와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후 고종이 “신부를 나처럼 대하라”라고 선언함에 따라 특권 세력화되었다. 제주 지역에서도 1901년 인구의 2.5%가 천주교 신자가 되는 성장을 보이는데 이는 관리와 동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세금을 내지 않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일대에 1945년 일본군이 구축한 방어 시설. 일본군은 제주도에서 결7호 작전을 준비하며 진지의 성격에 따라 전진 거점, 주저항 진지, 복곽 진지, 위장 진지 등을 구축하였다. 이 중 전진 거점은 주저항 진지 전방에서 소규모 부대가 적의 공격을 1차 저지하기 위한 시설이다. 사라봉에 구축한 갱도는 공식적인 명칭은 없으나, 일...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서우봉 해안가에 1945년 일본 해군이 구축한 동굴 기지. 제주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 해군이 미군 등 연합군의 함정을 목표로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만든 특공기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송악산과 수월봉, 삼매봉, 일출봉에 있는 특공기지와 유사한 구조인데, 특히 왕(王)자형과 유사한 모양...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 어승생악에 1945년경 일본군이 구축한 군사 시설. 제주 어승생악 일제 동굴진지는 1945년경에 구축된 토치카와 동굴 형태의 군사 진지로 제주시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 주둔 일본군 최고 사령부가 거처한 지하 요새로서 산악 지대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 시설이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 1957년 이승만 대통령과 벤 플리트 UN사령관의 제주 방문시 축조하기로 협의하여 미군의 자재 지원을 받으며 국군 공병대가 축조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벽돌조 박공지붕 형태의 지상 1층 건물로, 연면적이 99㎡인 소규모 귀빈 숙사이다. 구좌읍 송당리 송당목장 안에 있으며, 민오름 가는 길 쪽...
-
1928년 제주 지역에서 발생한 일제가 공산당 당원들을 체포했던 사건. 1928년 8월에 제4차 조선 공산당 검거 사건이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공산당 당원이었던 김택수·송종현·강창보·김정로·윤석원 등이 체포되었다. 일제는 이로써 제주 청년 동맹과 지부의 활동을 간섭하고 집회를 봉쇄하였다. 또한 1929년 8월 열릴 예정이었던 제주 청년 동맹 제2회 정기 대회를 금지함으로써 제주 청...
-
1899년 간행된 전라남도 제주군 읍지. 1899년 조선왕조에서는 마지막으로 전국 군·현의 읍지 편찬 사업이 행해졌는데, 이 때 공포된 전국의 읍지 상송령(上送令)에 따라 전라남도 제주군에서 작성한 관찬 읍지이다. 1책 26장의 필사본이다. 대형의 흑백 지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뒷면에는 제주군수 김희주(金熙冑)의 관인이 찍혀 있다. 앞 시기의 읍지를 참고로 저술되었지만 시문 등...
-
1950년 제주 지역 유지들이 계엄사령부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던 사건. 1950년 8월 초순 제주 지역의 법원장, 검사장, 제주 읍장 및 변호사, 사업가, 교육자 등 유지급 인사 16명은 ‘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는 혐의로 제주 계엄사령부(사령관 : 신현준 대령)에 연행되었다. 연행된 이들 가운데는 고문으로 사망한 자가 있을 정도로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이들 제주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천진리에 있는 제주 해녀들의 항일 투쟁 기념비. 우도 해녀들은 세화리와 종달리, 하도리 해녀들과 함께 집단 봉기를 일으켰다. 해녀 항쟁은 거친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캐낸 부당한 해산물 수매 가격을 둘러싼 분쟁으로 시작됐다. 해녀들의 권익 옹호에 앞장서야 할 해녀 조합이 지정 상인을 설정하고 구전(口錢) 높은 입찰자에게 지정, 판매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민가(民家). 조규창 가옥은 1882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지며 이른바 조규창댁으로 불린다. 주위 지형보다 낮은 곳에 돌담을 두르고 건물을 따로 배치하였다. 이 조규창 가옥은 3칸의 안채는 기와집, 5칸의 밖거리는 전통적인 초가집으로 기다란 올레를 갖춘 제주 민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조규창 가옥...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한양. 아버지는 조휴주(趙休周)이며 부인은 이원랑(李元娘)이다. 1920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3~4월에 고병희(高秉禧)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연구 기관의 문고를 설치하여 사상 서적을 구입하여 서로 돌리며 읽었다. 1929년 5월 5일 우의돈목(友誼敦睦)·경조상문(慶弔相問·생활 향상 등을 위해 제주 지역 최초로...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어려서 서당을 다녔고 19세 때 서울로 유학하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설립한 기독교계 경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4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귀향하였고 1906년 23세 때 결혼하였다. 경신학교 재학 때 접한 기독교 신앙이 깊어 1908년(순종 2) 제주에 온 목사 이기풍(李基豊)과 신자 김재원·홍순흥·김행권·...
-
1929년 제주 출신의 김순희 등이 비밀 결사인 조선 학생 전위 동맹에 가입해 항일 투쟁을 벌인 사건. 비밀 결사인 조선 학생 전위 동맹의 맹원들은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이 발생하자 격문을 제작해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일제에 검거됐다. 조선 학생 전위 동맹의 맹원들 중에는 중앙 집행 위원이었던 김순희 등 제주 출신 유학생들이 다수 있었다. 1929년 전국의 중...
-
1927년 제주도 조천읍에서 결성된 소비조합의 주도로 일어난 항일운동. 신좌소비조합은 1927년 김류환(金瑬煥) 등 당시 조천리 청년 20여 명에 의해 창립되었다. 목적은 실비로 물품을 판매함으로써 리민(里民)의 경제적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역대 조합장 및 이사들로 김순탁(金淳鐸)·김시범·김운배(金沄培) 등이 있었고, 조천만세운동과 관련된 자가 많았다. 시간이...
-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평양. 자는 덕일(德一), 호는 학해당(學海堂). 아버지는 진사 조존영(趙存榮)이다. 1864년(고종 1)부터 3년간 죽산부사를 지냈으며, 1866년(고종 3) 12월 부령부사에 임명되었으나 1867년(고종 4) 병으로 교체되었다. 1868년 10월 이후선(李後善)[1813~?]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72년(고종 9) 5월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제주 4·3 때 소개된 중산간 마을. 죽성 마을은 오등리에 딸린 자연 마을로 4·3 이전만 해도 76호가 살고 있는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었다. 당시 제주읍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이 마을은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 176번지 일대, 243번지 일대, 6...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건설한 육군 비행장. 육군 동비행장이라고도 불렀던 진뜨르 비행장 건설은 1943년부터 시작되었다. 지역 주민들이 ‘진뜨르’라고 불렀던 넓은 평야 지대에, 제주도 주민들을 동원해 인근의 원당봉 등지에서 흙과 돌 등을 날라다 활주로 공사 등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던 1945년 4월 제주도 주둔...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평강(平康). 아버지는 채수용(蔡洙鎔)이다. 채수용은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 동맹 휴학 때 장용견(張容堅)·홍순녕(洪淳寧)과 함께 수습 실행위원으로 뽑혀 문제를 해결하였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서울 안국동에 있는 박태병 집에서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김종현(金宗鉉), 전라남도 함평 출신의 최강윤(崔康潤) 등과 함...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면암 최익현이 유배되어 적거하던 곳. 최익현은 1868년(고종 5) 경복궁 중건의 중지, 당백전 발행에 따른 재정의 파탄 등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하였다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 1873년 동부승지 때 반(反) 대원군 세력과 제휴, 서원 철폐 등 대원군의 정책과 실정 사례를 낱낱이 열거하며 왕의 친정, 대원군의...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탐진(耽津). 아버지는 초대 제주지방법원 법원장을 지낸 최원순(崔元淳)이다. 유치원에 다닐 때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1909년(순종 3) 4월 신성여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3월 강평국(姜平國) 등과 함께 제1회로 졸업하였다. 1915년 서울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3월 졸업하였으며, 1919년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
-
일제강점기 일본이 제주 지역의 토지조사사업을 위해 기초 자료를 마련한 사건.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대다수 제주 농민들의 농지를 몰수하거나, 세금부과 대상지를 확대하여 지역민들을 수탈한 사건이다. 일제는 1913년 8월 5일 제주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자는 토지조사령 시행규칙에 의해 신고서를 작성하여 1913년 8월부터 1914년 5월까지 제출하도록 조치하였다. 이에 토지 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있는 도대불. 하귀리 도대불이 위치했던 하귀리 선창은 일명 군항포로 불리는 곳이다.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제주로 들어올 당시 항파두성의 전초 기지 및 군항으로 이용되었던 선창이 바로 이곳으로, 지금도 그때의 역사를 증언하는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하귀리 도대불은 석유를 이용한 남포등을 켜서 불을 밝혔으나, 1970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있었던 도대불. 박천형의 『서계(書啓)』에도 별방진에 대해서 “동쪽과 북쪽이 바다에 임하였고 성안은 화북이나 조천에 비해 조금 넓으며 동·서·남에 세 문과 성 안에 두 우물이 있으나 포구의 공간이 몹시 좁고 뾰족 나온 돌 모서리가 창같이 날카로워 배를 정박할 수가 없다. 횃불을 비치해 경보하는 것이 좋을 듯하며 성을 설치하...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하태숙(河泰淑)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수동 114번지에서 태어났고, 1932년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동 108-1번지로 이사하였다. 1930년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며 제주중앙성당의 전도사장(傳道師長)으로 신부 패트릭 도슨(Patrick Dawson)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제주도 축항사무소의 인...
-
한국 전쟁 중 육지에서의 전화(戰禍)를 피해 제주로 몰려온 피난민.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7월 8일 전국적으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제주도에서는 4·3 사건의 마무리 토벌을 위해 주둔하던 해병대 신현준 사령관이 제주 지구 계엄 사령관을 겸임하였다. 정부는 7월 16일 제주 주정 공장에 육군 제5훈련소를 설치해 신병 양성에 나섰다. 8월 3일 중고생으로 조...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한라산 입산 금지를 해제한 기념으로 1954년에 세운 비. 4·3 사건 진행 중인 1948년 10월 17일에 해안으로부터 5㎞ 이상 벗어난 지역으로 통행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이러한 통행금지는 한라산을 전면 통제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954년 9월 21일 금지령이 해제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
-
1911년 일제가 새로운 산림령을 공포하여 제주도에서 단속을 강화한 사건. 일제는 한일 합방 이후 기존의 산림법을 폐지하고 삼림령을 새로 제정하여 공포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인은 함부로 벌채를 하지 못하는 대신, 일본은 자신들이 필요한 곳에는 마음대로 유출해가는 식민지 정책을 합법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일제는 영림창을 설치하고, 1908년 1월 24일 법률 제1호로 제정된 「산림...
-
구한말 일본 어민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를 침탈한 사건. 1883년 이후 일본 어민의 제주 침탈이 계속되자, 제주도민들은 중앙 정부에 시정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중앙 관료들은 오히려 일본 어민들의 뇌물을 받고 이를 묵인해주었다. 불만이 쌓인 제주 주민들은 1891년 문제 해결을 위해 제주에 내려온 중앙 관료를 배에 실어 내쫓았다. 개항 이후인 1883년 7월 25일 「한일 통...
-
일제 시대 제주에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한영섭의 죽음에 비문을 세우자 경찰이 관련 청년들을 검거한 사건.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한영섭의 장례를 치르면서 함덕리 지역 청년동맹원들이 선동적인 깃발과 비문을 세우자, 일본 경찰이 관련자를 모두 검거한 사건이다. 1931년 1월 15일 제주 함덕리 출신으로서 일본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운동가인 한영섭이...
-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전까지 제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의 역사는 타민족의 지배 하에서 더욱 심하게 왜곡되었으며, 이 시기 제주 사회는 한국의 다른 지역 못지않게 심한 식민지적 수탈과 착취, 민족적 차별을 받는 가운데 이전 시기보다 예속 상태가 더욱 심화되었다. 일제는 1912년부터 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해안 일주 도로 포장에 나서 1918년에 확장...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 운동을 한 사람들. 일제 강점기의 제주 지역 항일운동가들의 직업 구성을 보면, 농수산업·상업·신문기자의 순으로 나타난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민의 주업은 농업이었으므로, 주도 세력 가운데 농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농업을 제외하면 항일운동가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상업·금융업·해운업·자영업과...
-
1931년에 해녀 조합의 횡포에 항의하여 제주 해녀들이 벌인 시위. 1930년대 접어들어 해녀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어야 할 해녀 조합이 철저히 어용화되어 그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제주도 해녀들의 생존권 수호가 목적이었다. 1931년에 해녀 조합 측에서 하도리 해녀들이 캐낸 감태와 전복의 가격을 강제로 싸게 매기려 하자 이에 해녀들이 강력 항의하였다. 거센 항의에 부딪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향현사(鄕賢祠)의 유허지에 세워진 비석. 제주목사 이규원(李奎遠)이 1893년(고종 30) 정월에 향현사의 유허지에 세운 비석이다. 향현사는 1843년(헌종 9)에 이원조 제주목사가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靈谷) 고득종(高得宗)을 추향(追享)하기 위해 귤림서원 옆에 세운 사당을 말한다. 1849년(헌종 15)에는 참봉(參奉)...
-
1947년 3·1절 기념대회가 각 읍·면별로 치러졌고, 제주 북국민학교에는 제주읍·애월면·조천면 주민 3만여 명이 모였다. 제주읍에서는 북국민학교 행사가 오후 2시에 끝나자 곧바로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관덕정을 거쳐서 서문통으로 시위대가 빠져나간 뒤 관덕정 부근에 있던 기마 경찰의 말굽에 어린아이가 다치는 사태가 일어났다. 흥분한 관람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하자 곧바로 관덕정...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현대 국어학자. 본관은 연주(延州), 호는 연암(延岩)이다. 1920년 8월 16일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어도리 구몰동에서 태어났다. 2004년 1월 2일 제주도 제주시 용담동 자택에서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제주학의 제1세대로서 평생 제주도 방언 연구에 주력하여 그 기틀을 마련하였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 관서대학 전문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사진가이자 민속학자. 호는 만농(晩農)·영주주인(瀛州主人)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에서 태어났다.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제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도하였고 조천공립보통학교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한국 대학에...
-
일제강점기 제주읍장을 지낸 관리. 1894년(고종 31) 제주관찰부의 주사 및 제주지방재판소의 판임관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그만두었다. 1900년(고종 37)을 전후한 시기에 김윤식(金允植) 등의 유배인과 어울리면서 개화사상에 눈을 떴고 시 동인 모임인 귤회(橘會)의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김윤식은 홍종시에 대하...
-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화북보통학교 학생운동에 합세한 것을 빌미 삼아 화북지부 청년동맹원이 대량 검거된 사건.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 제주 화북보통학교에서 친일 교사와 학생들 간의 대립이 있었고, 제주청년동맹 화북지부 동맹원들은 이 일에 적극 개입했다. 그러자 일본 경찰은 청년동맹 화북지부 등을 수색하고 관련자를 비롯한 청년동맹원을 대량 검거했다. 1929년 5월 하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회천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 화천사(華泉寺)는 고려시대의 사찰이다. 이후 고려시대에 폐사되고 나서도 오석불을 조성하여 불법을 이어오며 절동산으로 불려왔다. 화천사 일대는 고려시대 사찰 터가 있는 곳으로 사찰이 폐사되자 마을 주민들이 오석불(五石佛)을 모시고 불법을 이어오다가 1912년 마용기가 만덕사(萬德寺)라는 사찰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 2동에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의 공원 묘지. 1903년 조선과 프랑스 공사와의 합의에 의해 이재수 난의 희생자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묘지로 황사평을 허가받았다. 1990년대 천주교 제주교구 공원묘지 조성 사업과 함께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여 확립되었다. 황사평 천주교성지는 이재수 난 또는 신축교안(辛丑敎案) 때 죽은 천주교 신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