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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경열사에 있는 고려 후기 정지 장군의 행적을 기록한 사적비. 정지(鄭地)[1347~1391]는 고려 말엽의 무장으로 수군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여 수군을 쇄신하였다. 1377년(우왕 3년) 순천도병마사로서 왜구를 크게 물리쳤으며, 그 공으로 해도대원수·문하평리가 되었다.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경렬공정지장군사적비는 정지 장군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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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경열사 경내에 있는 유허비. 정지(鄭地)를 배향한 경열사(景烈祠)의 유허비다. 정지는 고려 후기 문하평리(門下評理),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楊廣全羅慶尙道都節制體察使)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조선시대에 정지를 배향하였는데, 뒤에 7인을 추배(追配)하면서 팔현사(八賢祠)로도 불렀다. 추배된 7인은 유사(柳泗), 고중영(高仲英), 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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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박재룡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재룡(朴載龍)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이다. 박재룡은 본관이 함양(咸陽)이다. 지산마을 서쪽 산골짝에 논 수만 정보가 말라 있는 땅이었는데, 최홍진(崔鴻鎭)의 주선으로 양과제(良苽堤)를 쌓는 일에 함께 힘을 보탰다. 1967년 겨울 관청 지원금을 교섭하여 범위를 넓히고 두어 길의 땅을 파서 둑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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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 농막마을에 있는 김정수의 유허비. 김정수(金鼎洙)[1887~1936]의 유허에 세운 비이다. 최윤환(崔允煥)이 글을 지어 1973년에 세웠다. 김정수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영현(永賢), 호는 계남(桂南)이다 고광선(高光善)의 문인으로 이름난 효자였고, 땅을 주어 농민들의 기근을 줄여주고 병자들을 구제하였다. 1932년 관호정(觀湖亭)을 지어 문인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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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화유산은 불교문화유산, 역사인물유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불교문화유산은 불탑, 승탑, 석조 존상, 목조 존상, 석비, 석등 등이 포함된다. 역사인물유산은 무구류, 묘소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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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에 있는 광람계 기적비. 광람계(光藍契)는 1918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면장 범재풍(范在豊)이 우치면과 본촌면 일대 주민 61명으로 계원을 삼아 창계하였다. 광람계라는 명칭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도 중국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鄕約)의 전범에 따른 유교적 이상향을 건설해 보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계원의 거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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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만산마을에 있는 김정복, 김정열 형제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 1922년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정복(金廷福)·김정열(金廷烈) 형제의 효행를 기리기 위해 문중에서 세웠다. 김정복과 김정열은 김계문(金啓文)의 아들로 전라남도 광산군 유등곡면 향등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살았다.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의 병세가 위독하자 큰아들 김정복과 둘째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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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광곡마을에 있는 행주기씨 세거지. 행주는 본디 경기도 양주에 속하였던 고려 때 고을이름이다. 조선 초엽 고봉과 덕양을 합하여 고양이라 하였다. 그래서 광주광역시에 살면서 이름을 떨친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호가 고봉이다. 행주기씨들은 기자(箕子)의 48세손이 기순우(奇純祐)라는 주장이 있지만, 현존 기씨들은 기순우를 중조 기1세조로 하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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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직할시를 구성하는 각 동의 이름과 연혁, 현황을 밝혀 기록한 책. 『광주동연혁지(光州洞沿革誌)』는 광주직할시[1995년 1월 1일 광주광역시로 명칭 변경]에 속하는 각 동의 이름과 현황을 역사 기록의 하나로 남기기 위해 관련 정보를 수집·연구하여 편집한 지명 자료 및 유래를 집대성한 단행본이다. 『광주동연혁지』가 편찬된 1991년은 광주직할시에서 각종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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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에 있는 효자 김창환의 유허비. 김창환(金昌煥)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유허비(遺墟碑)이다. 김창환은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관직은 동몽교관(童蒙敎官)과 조봉대부(行朝奉大夫)를 역임하고 이조참판(吏曹叅判)에 증직(贈職)되었다. 기우만(奇宇萬)이 명(銘)을 짓고 오준선(吳駿善)이 찬(撰)하였다. 이중권(李重權)이 글을 짓고, 이재춘(李載春)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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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나주오씨 3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나주오씨(羅州吳氏) 오상림(吳相霖), 오상림의 아들 오덕환(吳德煥)과 오직환(吳直煥), 오상림의 손자 오영기(吳永基) 등 3대의 효행을 기록한 비이다. 명도동 지역은 원래 조선시대에 나주목 적량면에 속하였는데,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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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남구 관내의 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 32점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2점으로 보물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초기 석탑으로 성거산(聖居山)의 형세가 거북처럼 생겼다 하여 거북이 광주 지역을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의 등에 해당하는 자리에 성거사(聖居寺)를 세우고 거북의 목 부근에는 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국가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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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남산동(南山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적량면(赤良面)의 차남리(車南里)와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본량면(本良面)의 당산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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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 도촌마을에 있는 윤의순의 효행비. 윤의순(尹義順)은 조선 전기 형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윤효손(尹孝孫) 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윤병철(尹秉哲)이다. 타고난 자품이 순박 온후하고 자상하였다. 전라남도 광산군 대촌면 도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에 있는 삭녕최씨(朔寧崔氏) 최성한(崔成漢)에게 출가하였다. 윤의순은 시댁에서 남다른 부덕(婦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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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내산동(內山洞)의 명칭은 1914년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며 내동(內洞)과 용산리(龍山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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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류희달의 신도비. 류희달(柳希達)[1571~1631]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策錄)되었고 덕림사(德林祠)에 배향되었다. 신도비(神道碑)가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은 조선시대 때 나주목 장본면 지역이었고, 1906년 함평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나주군으로 다시 편입되어 본량면 동호리라 하였다.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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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대산동(大山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야리(大也里)의 '대'와 가산리(佳山里)의 '산'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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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덕림동(德林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장본면(獐本面)의 덕산리(德山里)와 을림리(乙林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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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류재만의 행적비와 모선기실비. 문화류씨(文化柳氏) 류재만(柳在萬)[1909~?]의 지극한 효성과 위선(爲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행적비(行蹟碑)와 모선기실비(慕先紀實碑)이다. 류재만은 양일묵(梁鎰默), 오필선(吳弼善)의 문하이고 선조(先祖) 현창(顯彰)에 헌신하였다. 1964년 모친상, 1968년 부친상을 당하여 예를 다하였다. 현재 덕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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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도덕동(道德洞)의 지명은 광암천에 놓여 있는 도덕교에서 유래하였다. 도덕교의 이름은 도림리(道林里)와 덕곡리(德谷里)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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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도림마을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나주오씨 세거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타나는 도림(道林)이라는 땅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 나주목에 속했던 면 이름으로, 나주오씨 집성촌인 도림(道林)마을과는 상관관계가 없었다. 오씨들이 많이 사는 도림마을은 1914년 전 나주목 삼가면에 속했던 당시 14 마을 이름 중 하나였다. 삼도면으로 통합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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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동곡동 분토마을에 있는 서산유씨 세거지. 충청남도 서산[옛 이름 서령]을 본관으로 하는 유씨는 본디 문화유씨(文化柳氏)라고 하지만, 공민왕 때 사람 유숙(柳淑)[1316~1368]이 홍건적 토평에 공을 세워 서령군[서산의 옛 이름] 군봉을 받아서 본관을 서산이라 하였다는 집안이다. 그렇더라도 이 집안만은 이미 서산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토반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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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 21점, 등록문화재 6점 등 모두 27점이다.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 5점,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 12점,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4점이다. 등록문화재는 국가등록문화재 6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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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동림동(東林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장본면(獐本面)의 동산리(東山里)와 작림리(作林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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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동산동(東山洞)의 지명은 조선시대 동산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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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동호동(東湖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장본면(獐本面)의 동촌리(東村里)와 용호리(龍湖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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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명곡마을에 있는 나주오씨 세거지. '명곡(明谷)'은 담양 고서면 산덕리에서 살았던 오희도(吳希道)[1583~1623]의 호이다. 오희도가 태어났던 명곡마을에서 호를 땄다. 오희도는 나주오씨 8세로 영의정을 지낸 오겸(吳謙)[1496~1582] 종손이고, 아버지는 오언표(吳彦彪)이고, 친할아버지는 오겸의 동생 오원(吳謜)[1511~159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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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명도동(明道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적량면(赤良面)의 명곡리(明谷里)와 감도리(甘道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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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명화동(明花洞)의 지명은 마을에 목화꽃이 많이 피는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나주군 관동면(官洞面) 명동(明洞)과 화동(花洞)에서 한 글자씩을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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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눌재 박상의 신도비.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은 1501년(연산군 7)에 문과에 입격하였고, 중종 폐비 신씨(愼氏)의 복위를 상소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학행이 뛰어나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문간박선생눌재신도비명은1859년(철종 10)에 조선 전기 문신인 박상의 묘소 입구에 세운 신도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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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박뫼동네에 있는 제주양씨의 세거지. 본디 박호동은 1914년 임곡면을 신설할 때 박뫼와 호산을 합쳐 만든 지명이다. 임곡면에 속하여 광주군에 소속되기 전에는 함평군 오산면이었으며, 1906년까지는 나주군에 속하여 있었다. 그러므로 임곡 광산에 살았던 고봉 기대승(奇大升)이나 박뫼마을 양응정(梁應鼎)[1519~1581]은 나주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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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 병천사에 있는 지응현 시혜비 등 13기의 비석. 병천사비군(秉天祠碑群)은 병천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13기의 비석이다. 1918년부터 1920년 사이 전라남도 광주 관내와 담양, 장성, 곡성 등지에 건립되었던 지응현(池應鉉)의 시혜비와 제하상모자비(祭鰕商母子碑)가 있다. 지응현의 자는 형숙(亨淑), 호는 붕남(鵬南)이다. 기우만(奇宇萬)이 거병하여 항일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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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복룡동(伏龍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광주군(光州郡) 복호리(伏虎里)와 황룡강(黃龍江)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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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생용동 생용마을에 있는 복룡사 유허비. 복룡사(伏龍祠)는 범세동(范世東), 범가용(范可容), 범천배(范天培), 범기생(范起生), 범기봉(范起鳳)을 배향한 곳이다. 범세동의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1369년(고려 공민왕 18) 과거에 합격하여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냈다.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고 두문동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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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본덕동(本德洞)의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며 광주군(光州郡)의 본촌리(本村里)와 유덕리(柳德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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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봉산사의 묘정비. 봉산사묘정비는 봉산사의 묘정(廟庭)에 세운 비이다. 봉산사는 현와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시는 사우(寺宇)이며, 봉산사묘정비에는 봉산사의 건립 취지와 고광선의 공적, 추숭(追崇) 내용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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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북산동(北山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적량면(赤良面)의 북성리(北城里)와 황산리(黃山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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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각종 비석. 광주광역시 관내의 비는 『광주의 문화유적』에는 신도비 9기, 유허비 18기, 효열비 45기, 기타비 44기 등 116기가 조사된 바 있고, 『광주금석문 아름다운 이야기』에는 모두 539기가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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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입석마을에 있는 선정비. 한 바위면에 구획을 하고 나주목사(羅州牧使) 2인의 비를 새긴 선정비(善政碑)와 유애비(遺愛碑)이다. 민치성(閔致成)은 1820년(순조 20) 4월 2일 나주목에 도임하여 1822년(순조 22) 7월까지 재임하였다. 이지연(李止淵)은 1830년(순조 30) 10월 1일에 도임하여 1831년(순조 31) 1월까지 재임하다가 한성판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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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산수동(山水洞)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여황면(艅艎面)의 용산리(龍山里)와 용수리(龍水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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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삼거동(三巨洞)의 명칭은 세 갈림길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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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태령동에 있는 삼상위친계의 기적비. 삼상위친계(三相爲親契)는 광주성(光州城) 북쪽 서산(西山)의 서쪽 니상산(尼上山) 아래 사는 주민들이 상부상조를 위하여 결성한 계이다. 주민들이 곗돈을 모아서 전토를 사들이고 운영하면서 매년 봄 3월에 강신(講信)[여러 사람이 모여 약법(約法)이나 계를 맺는 것]을 하고, 난정수계(蘭亭修稧) 고사(故事)를 본 떠 시회(詩會)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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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생룡마을에 있는 금성범씨 세거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이외의 고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중국 귀화성씨가 금성범씨(錦城范氏)이다. 금성범씨가 본디 나주목에 속하였던 복룡현[현재 광산구 평동, 삼도동 일대]에 정착한 것은, 원나라 때 고려에 시집온 원나라 공주를 배웅하여 고려에 왔다가 정착했을 때부터라고 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중국 주나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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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생룡마을 뒤편 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옛 성터. 생용동 성터는 후백제 시기[892~936년]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성곽으로 보인다.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생용동 성터는 '우치산성지(牛峙山城址)'라고 불리며 1894년(고종 31) 당시 국내외 정세에 대비한 피란처로 생룡마을의 범경준, 범윤길, 범윤기 등이 축조하였다.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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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 서강사에 있는 묘정비. 서강사(瑞岡祠)는 고려시대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을 주벽(主壁)으로 하고,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東北九城)을 개척한 영평현개국백(鈴平縣開國伯) 윤관(尹瓘), 호부상서(戶部尙書) 윤언이(尹彦頤), 남원백(南原伯) 윤위(尹威), 함안백(咸安伯) 윤돈(尹暾), 영평부원군(鈴平府院君) 윤보(尹珤) 등 6위를 배향하는 사우(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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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서구 관내에 있는 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 11점, 등록문화재 4점 등 모두 15점이다. 국가지정문화재는 아직 없다.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는 7점으로 유형문화재 4점, 무형문화재 2점, 기념물 1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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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정봉서· 정덕방 부자와 추성전씨의 정려비. 서산정씨(瑞山鄭氏) 정봉서(鄭鳳瑞)와 정봉서의 아내 추성전씨(秋城田氏), 정봉서의 셋째아들 정덕방(鄭德邦)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 이다. 정봉서의 자는 현거(賢舉), 호는 만오(晚悟)이다. 정봉서는 여섯 살 때 모친상을 당해 예를 갖추었고, 부친상 때 삼년 시묘살이를 하였다. 추성전씨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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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는 3기의 비석. 서창동 비석군(西倉洞碑石群)은 농선대시주비(農船大施主碑) 1기와 시혜비(施惠碑) 2기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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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사동]에 있는 충주박씨 세거지. 충청도의 대전에 살던 충주박씨 박지흥(朴智興)[1411~1489]이 광주에 살던 정지(鄭地)[1347~1391] 장군의 아들 정경(鄭耕)의 딸에게 장가왔다. 그 처가는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1462년 정씨부인이 죽자 당시 세하동 절골에 살던 이천서씨 서종하(徐宗夏)의 딸에게 다시 장가갔다. 그러므로 충주박씨가 절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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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선동(仙洞)의 명칭은 선돌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선동은 함평군(咸平郡) 여황면(艅艎面) 선암리(仙岩里)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명으로, 선암리의 ‘선암’은 ‘서 있는 돌’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선돌에서 유래한 지명임에도 실제로는 마을 내에 선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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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최홍진의 공을 기려 세운 공적비. 최홍진(崔鴻鎭)이 1941년 연간에 건천(乾川) 상류에 양과제(良苽堤) 저수지를 축조한 공적을 기려 세운 공적비이다. 1941년에 가뭄이 심했는데 최홍진이 앞장서서 민생을 좀먹는 사람들을 배격하고, 마을 부로의 명을 이어 당국과 교섭하여 몇 달 안에 저수지를 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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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송대동(松大洞)은 조선 후기 광주목(光州牧) 동각면(東角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광주군(光州郡) 동각면 복호리(伏虎里), 유림리(柳林里)와 방하동면(方下洞面) 대촌리(大村里), 구기리(舊其里), 송정리(松亭里), 고내상면(古內廂面) 수성리(水城里) 일부를 합하여 서창면(西倉面) 송대리(松大里)라고 하였다.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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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송산동(松山洞)의 지명은 송동리(松洞里)와 죽산리(竹山里)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다. 죽산(竹山)마을의 이름은 마을에 대나무가 많았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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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송촌동(松村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나주군(羅州郡)의 송록리(松綠里)와 신촌(新村)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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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송치동(松峙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함평군(咸平郡) 여황면(艅艎面)의 송림리(松林里)와 금치리(今峙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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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동 노대마을에 있는 김경두와 밀양박씨의 효열비. 김경두(金炅斗)[1812~?]와 김경두의 아내 밀양박씨(密陽朴氏)[1811~1840]의 효열 행적비이다. 김경두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중집(中集)이다. 호적상 아버지는 김창섭(金昌燮), 생부는 통정대부 김창익(金昌益)이다. 효심으로 양부모를 봉양하였고, 병환이 들자 손가락 피를 흘려 환을 지어 먹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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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송학동(松鶴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송계리(松溪里)와 봉학리(奉鶴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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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수원백씨충효정려각(水原白氏忠孝旌閭閣)은 충신 백홍암(白弘嵒)과 효자 백찬수(白讚洙)[1822~1858]의 충효 정신을 기려 세웠다. 백홍암은 병자호란 때 이흥발(李興勃)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나아갔다. 돌아와서는 부모님을 섬기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3년 동안 했는데 범이 늘 호위하였다 하여 호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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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임병룡의 은혜를 기린 비. 승지(承旨) 임병룡(林炳龍)의 공덕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이다. 임병룡은 귀래정(歸來亭) 임붕(林鵬)의 후손으로 호는 가헌(可軒)이고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음사(蔭仕)로 비서승(秘書丞)을 지냈고, 대환정(大歡亭)을 지어 유회소(儒會所)로 활용하였으며, 주민 구제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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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있는 일정 관품 이상 관리의 묘소 입구에 세우는 비석.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의 묘소 앞이나 묘소로 가는 입구에 세운 묘도문자(墓道文字)의 하나로 죽은 이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보통 묘소의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묘소 근처에 마을이 있으면 마을 가까운 곳에 세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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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신동(新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을 신설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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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양동(良洞) 지역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어 그 오랜 거주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양동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도림면(道林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도림면 마암리(馬岩里), 복만리(卜萬里), 월전리(月田里), 석암리(石岩里)와 함평군(咸平郡) 갈동면(葛洞面) 내기리(內基里), 월악면(月岳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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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양산동(良山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장본면(獐本面)의 양곡리(良谷里)와 월산리(月山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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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 양심당 이시원의 유허비. 이시원(李始元)[1410~1471]의 호는 양심당(養心堂)이며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의 큰아들로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지냈다. 아버지의 시묘살이를 마친 뒤 양심당을 지어 강학하였다. 양심당이선생유허비는 1957년 이시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유허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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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정락교의 구휼 정신을 기린 비. 양파(楊波) 정락교(鄭洛敎)[1863~1938]의 주민 구제활동을 기려 광산군 석곡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소작인들이 세운 비이다. 정락교는 온양정씨(溫陽鄭氏)로 참봉(參奉)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석서정(石犀亭)의 옛터에 양파정(楊波亭)을 건립하여 광주부[지금의 광주광역시]에 기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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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묘화광 서씨의 의연 행적을 기린 비. 묘화광(妙華光) 서씨(徐氏)의 의연(義捐) 행적을 기려 세웠다. 서씨는 법명이 묘화광이고, 침당의 액호가 우죽당(友竹堂)이다.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서치조(徐致祚)의 딸이다. 소학교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삼천 원(圓)을 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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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연산동(蓮山洞)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평리면(坪里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평리면과 관동면(官洞面)을 병합하여 평동면(平洞面)이라 하였으며, 평리면 평산리(平山里), 연계리(連溪里), 두산리(斗山里)와 동각면(東角面) 침산리(砧山里), 사룡리(巳龍里) 일부를 합하여 평동면 연산리라고 하였다. 1949년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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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열녀 창녕조씨의 비.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열행(烈行)과 정절(貞節)을 기려 세웠다. 비석이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은 조선시대 때 전라남도 광주군 지한면 주남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부동방면 월동리와 녹동리, 지한면 주남리를 합하여 지한면 월남리라 하였다. 1935년 효지면 월남리가 되었고, 1955년 전라남도 광주시 월남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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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천안전씨의 열행을 기린 비. 1974년 열부 천안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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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오운동(五雲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다섯 가지 오묘한 구름이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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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옥동(玉洞)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평리면(坪里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평리면과 관동면(官洞面)을 병합하여 평동면(平洞面)이라 하였으며, 평리면 옥동리(玉洞里), 용전리(龍田里)와 관동면 미곡리(尾谷里)를 합하여 옥동리(玉洞里)라고 하였다. 1949년 나주군 평동면, 삼도면(三道面), 본량면(本良面)이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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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왕동(旺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적량면(赤良面)의 왕산리(旺山里)와 내동리(內洞里)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다. 왕동은 용진산을 비롯한 이 지역의 산봉우리가 용처럼 솟아나며 왕동저수지 주변을 떠받들고 있다고 하여 붙인 명칭이며, 빛이 나고 번성할 마을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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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요기동(堯基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광주군(光州郡)의 요동리(堯洞里)와 신기리(新基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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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용곡동(龍谷洞)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관동면(官洞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평리면과 관동면을 병합하여 평동면(平洞面)이라 하였으며, 관동면 사곡리(巳谷里), 발산리(鉢山里), 용두리(龍斗里)를 합하여 평동면 용곡리(龍谷里)라고 하였다. 1949년 나주군 평동면, 삼도면(三道面), 본량면(本良面)이 광산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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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용동(龍洞)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관동면(官洞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평리면과 관동면을 병합하여 평동면(平洞面)이라 하였으며, 관동면 회룡리(回龍里), 용연리(龍淵里)를 합하여 평동면 용동리(龍洞里)라고 하였다. 1949년 나주군 평동면, 삼도면(三道面), 본량면(本良面)이 광산군(光山郡)에 편입되면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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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용봉동(龍峯洞)의 명칭은 마을의 지형이 용이 승천하려고 꿈틀거리는 모습과 닮았고, 뒤에 있는 평산이 용의 승천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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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 있는 성터. 운림동 성터는 무등산의 줄기인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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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대내마을에 있는 광산이씨 세거지. 광산이씨는 시조에 대하여 서로 이견이 있지만, 고려 말엽의 사람으로 삼형제를 내세우고 각각 상서공파(尙書公派)[기1세조, 이순백(李珣白)], 한림공파(翰林公派)[기1세조 이숙백(李淑白)], 제학공파(提学公派)[파조 이승백(李升白)]라 하여 세계(世系)를 정리하고 있다. 상서공파는 광주의 서남부인 옛 유등곡면[대촌동], 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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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월전동(月田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나주군(羅州郡)의 월정리(月丁里)와 춘전리(春田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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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유계동(柳溪洞)은 조선 후기 광주목(光州牧) 동각면(東角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광주군(光州郡) 동각면 본촌리(本村里), 관두리(官斗里), 유림리(柳林里), 서촌리(西村里), 분토리(粉土里), 서호리(西湖里)와 방하동면(方下洞面) 송정리(松亭里), 계촌리(桂村里), 농막리(農幕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동곡면 유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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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밀양박씨의 효열비. 유인(孺人) 밀양박씨(密陽朴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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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유인 행주기씨의 효열비. 행주기씨(幸州奇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행주기씨는 기권중(奇權仲)의 딸로, 장흥고씨(長興髙氏) 고경주(高庚柱)와 혼인하여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를 하였고 남편을 섬겼다. 고광은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건립 추진위원장은 박하만, 부위원장은 기세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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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의 오래된 건축물, 고분, 싸움터 등 옛사람의 생활 터전이 남아 있는 자취. 광주광역시 관내에는 자연유산, 선사유적, 불교유적, 도자유적, 관방유적, 유교유적, 역사유적, 민속유적, 근대유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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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공원에 있는 의병장 심남일의 순절비. 대한제국기 의병장 심남일(沈南一)[1871~1910]의 본명은 수택(守澤), 호는 덕홍(德弘), 본관은 청송(靑松),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장흥, 영암. 해남, 보성, 남평, 능주, 나주 등지에서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9년 능주 풍치(風峙)[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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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마을에 있는 광주노씨 세거지. 국내 성씨 중에는 본관을 광주로 쓰는 노씨(盧氏)와 광산을 쓰는 노씨가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나 『씨족원류(氏族源流)』 등은 다같이 본관을 광주라 하고, 시조를 노만(盧蔓), 노서(盧恕)로 각각 달리 쓰고 있으나, 실제로는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사는 노씨들은 광주노씨라 하고, 광주광역시나 전라남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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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장록동(長綠洞)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평리면(坪里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평리면과 관동면(官洞面)을 병합하여 평동면(平洞面)이라 하였으며, 평리면 장록촌(長綠村), 건촌(建村) 등을 합하여 장록리(長錄里)라고 하였다. 1949년 나주군 평동면, 삼도면(三道面), 본량면(本良面)이 광산군(光山郡)에 편입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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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 임정마을에 있는 전부일 장군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전부일(全富一)[1924~2004]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정길(丁吉), 호는 서봉(瑞峰)이다. 전방은(全邦殷)의 셋째아들로 임암마을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징병으로 입대하여 중국 만주(滿洲)에서 복무 중 부친상 비보를 들었지만 올 수가 없어서 땅을 치고 하늘을 보며 곡을 하였다고 한다. 광복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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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있는 충신·효자·열녀의 행적을 표창하기 위해 세운 비. 정려비(旌閭碑)는 충효열(忠孝烈)의 정신을 실천한 인물을 표창하는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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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었던 이용헌의 묘비. 이용헌(李龍憲)[1851~1895]의 묘비이다. 이용헌은 기정진(奇正鎭)의 제자로 학문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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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에 있는 최명구의 기념비. 죽헌최명구 기념비(竹軒崔命龜紀念碑)는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 죽헌농계원(竹軒農契員) 일동이 최명구의 공적을 기려 세웠다. 우치면은 1931년까지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지야동[건국동 관할] 일원에 있었던 면 이름이다. 1931년 4월 1일 우치면과 본촌면을 합해 지산면이라 하였다. 1935년 광주군을 광산군으로 개칭하여 광산군 지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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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지산동(池山洞)은 1914년 행정 구역을 신설하며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여황면(艅艎面)의 지동리(池洞里)와 산음리(山陰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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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지정동(池亭洞)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관동면(官洞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평리면(坪里面)과 관동면을 병합하여 평동면(平洞面)이라 하였으며, 관동면 수각리(水閣里), 평지리(平池里), 봉정리(鳳亭里), 오동(五洞)을 합하여 평동면 지정리라고 하였다. 1949년 나주군 평동면, 삼도면(三道面), 본량면(本良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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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지죽동(芝竹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나주군의 지로리(芝老里)와 죽천리(竹川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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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지평동(芝坪洞)의 지명은 지산리(芝山里)와 운평리(雲坪里)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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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고성운의 은혜를 기린 비와 정순환의 선행을 기린 비.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소작인들이 통정대부(通政大夫) 고성운(高聖運)[1857~1936]의 시은(施恩)에 보답하고자 세운 불망비와 효천면 주민 일동이 세운 효천면장 정순환(鄭淳煥)의 선행 행적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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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이조원의 행적을 기록한 비. 광산이씨(光山李氏)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1433~1510]의 행적을 기록한 유허비이다. 이조원은 필문(蓽門)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이선제의 학통을 이어 문장과 도학이 당대의 종사(宗師)라고 추앙을 받았다.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수암서원과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오현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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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청주한씨 부인의 효열비. 청주한씨(淸州韓氏)는 29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성심껏 간호를 하였고, 남편이 운명하려 하자 살을 베고 피를 주어 며칠을 연명하게 하였다. 남편이 운명하자 본인도 따르려 하였으나, 나이든 시부모를 모시기 위해 상례를 잘 치렀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하였고, 좌우 손가락을 베고[斷指] 피를 입으로 넣어 연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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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효자 2명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청주한씨쌍효비는 조선 후기 효자 한필오(韓弼五), 한필룡(韓弼龍)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2개의 비석이다. 한필오와 한필룡 형제는 본관이 청주(淸州)로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1760년 부친상을 당하자 두 형제는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어머니가 노망(老妄)이 나자 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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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신기마을에 있는 김순곤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 김순곤(金順坤)[1918~1979]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순이다. 김용관(金容權)의 3남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노대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 태어났다. 낙후된 고장의 발전을 위해 향토인이 함께 뭉쳐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남제지방(南堤池防)을 축조할 때 답 825평[약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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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충민사 경내에 있는 정려각. 조선 중기의 무신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충절을 기려 세웠다. 전상의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희원(希元) 또는 환중(桓仲)이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구성부사로 좌영장을 겸하였는데 적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저서로 『구성공실기(龜城公實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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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안마을에 있는 성터.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안마을 일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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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충효마을에 있는 광산김씨 세거지. 충효동(忠孝洞)에 정착한 인물은 광산김씨 낭장공파 김규(金珪) 14세의 후손 김문손(金文孫) 27세이다. 김문손은 오늘날의 서구 벽진동에서 살던 김자침(金自沈)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나 당시 석보면 성촌에 살던 노맹준의 딸에게 장가가서 처가살이를 하게 되어, 그 후손들의 정착지가 되었다. 김문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김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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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탐진최씨 네 효자와 두 열녀의 정려각. 탐진최씨사효이열정려는 탐진최씨의 네 효자와 두 열녀의 효열정신을 기려 세웠다. 처음에는 효자 최언광(崔彦光), 최세효(崔世孝), 최웅걸(崔雄傑), 최두걸(崔斗傑)과 열녀 최세효(崔世孝) 처 함풍이씨(咸豊李氏)를 모셨으나, 1917년 최홍순(崔弘淳)의 처 평산신씨(平山申氏)를 추가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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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평택임씨 삼강유허비. 평택임씨(平澤林氏) 임영수(林英秀)와 임영수의 아내, 임영수의 아들 임계(林桂)와 임계의 아내, 임영수의 손자 임광윤(林光胤), 임영수의 증손자 임은(林嶾)과 임두(林㞳) 등 4대에 걸친 충·효·열 삼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기우만(奇宇萬)이 1915년에 비문을 지었고, 후손 임철주(林哲周)가 1941년에 비문 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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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박노술의 광복을 염원하는 글을 새긴 석대. 풍천대(風泉臺)는 박노술(朴魯述)[1851~1917]의 항일 의적(義蹟)을 기념하는 삼층 석대(石臺)이다. 박노술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서 태어났다. 기정진(奇正鎭)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다. 항일의식 각성을 촉구하였고, 1917년 6월 광주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사흘 만에 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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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선제의 신도비.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보(家父), 호는 필문(蓽門)이다. 1419년(세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고, 『태종실록(太宗實錄)』편찬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찬에 참여하였던 집현전 학사로서 호조참판(戶曹參判),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 등을 지냈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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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함풍이씨의 효열 정려각. 정호직(鄭浩直)의 처 함풍이씨(咸豊李氏)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하동정씨 문중에서 세웠다. 함평이씨는 어버이를 섬기는 데 노력을 다하였고 남편을 잘 위하여 죽은 뒤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세우라는 특명이 있었다. 1830년 10월에 정민영(鄭旻濚)이 기록한 '제효열질부이씨정려병서(題孝烈侄婦李氏旌閭幷序)'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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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송제민의 비. 송제민(宋濟民)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송제민의 자는 이인(以仁),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송정황(宋庭篁)의 아들이며 정개청(鄭介淸), 이지함(李之菡)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산룡(梁山龍)·양산숙(梁山璹)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 의병장 막하에서 활동하였고, 김덕령(金德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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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주향교와 양사재의 전곡에 대한 경상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문서집. 『향교급양사재 전곡 응입응하 절목(鄕校及養士齋錢穀應入應下節目)』은 1886년(고종 23) 광주향교와 양사재의 전곡(錢穀)에 대한 응입(應入)·응하(應下) 절목 문서집이다. 응입은 규정에 따라 마땅히 들어와야 할 경상 수입, 응하는 마땅히 나가야 할 경상 지출이다. 원래 광주향교와 관련된 문서이지만 현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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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정석남의 실적비. 정석남(石南實)의 효행 행적을 기리려 세웠다. 정석남은 동래정씨(東萊鄭氏) 정운선(鄭云先)의 딸이며, 어머니는 추계추씨(楸溪秋氏)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정석남의 아들인 정재장(鄭載長)도 일찍 죽었다. 한결같은 효심으로 시부모를 섬기는 데 마치 남편을 섬긴 것같이 하였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10리[약 4㎞] 밖 옥녀봉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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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고성이씨의 기행비. 고성이씨(固城李氏)의 효행을 기려 세운 기행비(紀行碑)이다.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호송(金鎬松)에게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 해주최씨(海州崔氏)와 시할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를 20여년 간 봉양하고, 시어머니 간병을 4년 동안 하는 등 효행을 실천한 사실을 국한문 혼용체로 기록하였다. 위계도가 비문을 짓고 비문 글씨는 강인환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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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효열부 남평문씨의 비. 홍한주(洪翰周)의 아내 남평문씨(南平文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웠다. 홍한주의 호는 해옹(海翁)이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현감과 군수를 지냈으며, 문집으로 『해옹시문집(海翁詩文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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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 복수마을에 있는 문화유씨 행적비. 문화유씨(文化柳氏)는 고재열(高在烈)에게 16살에 시집을 왔는데 반 년도 못 되어 사별하였다. 이후 문화유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시부모가 세상을 뜨자 생존하였을 때와 똑같이 섬기며 예를 갖추고 조카를 승중손(承重孫)으로 세웠다. 문화유씨의 효열 실천을 기리기 위해 김준식(金駿植)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김정회(金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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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에 있는 진주강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진주강씨(晋州姜氏)는 강이회(姜以會)의 딸로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반두명(潘斗明)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잘 봉양하였고, 반두명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예를 갖춰 장례를 치렀다. 낮에는 땔감을 하고 밤에는 길쌈을 하여 어려운 시가를 일으키고 시부모를 공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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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풍산홍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행적비. 풍산홍씨(豐山洪氏)는 1922년 22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대변을 맛보아 차도를 징험했다. 단을 만들어 새벽마다 정화수를 올리고 축원을 하였으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예절에 맞게 장례를 치렀다. 시조부모 초상 때에는 몸이 수척하도록 서러워하며 옛 제도를 따랐다. 시어머니 초상을 치르고 나자 전답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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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엄의 정려비와 정려각. 문신 정엄(鄭淹)[1528~1580]의 효자 정려비와 정려각이다. 정엄은 본관이 광주(光州)로 정만종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4년(선조 7)에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나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면서 어머니의 병을 정성껏 돌보았으나 돌아가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례를 치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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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효자 김기삼을 기려 세운 비. 김기삼(金基三)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기적비(紀蹟碑)이다. 비각 안에 있으며 비각 상량문의 글은 오동수(吳東洙)가 지었다. 김기삼은 어른들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이때 동물들이 호위를 해 주었고 시묘 지역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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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윤광훈과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윤광훈(尹光訓)과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羅州林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실적비(實蹟碑)이다. 윤광훈은 어려서부터 효도하고 근면하였기에 가정이 비록 가난하였지만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고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는 등 효를 다하였다고 한다. 이때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의 내조가 지극하여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