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강윤하(姜允河)의 정려비. 강윤하는 진주인(晋州人)으로, 자는 자운(子運)이며,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으로 강봉삼(姜鳳衫)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병환으로 꿩탕을 먹고 싶어 하였으나 눈이 내려 구하지 못하다가 꿩이 집 처마에 날아들자 이것을 잡아 꿩탕을 만들었다. 또한 잉어를 원하자 얼음...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한 강호의 선정비. 강호(姜鎬)는 문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656년(효종 7)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57년(효종 8) 필선(弼善)으로 승배되어 떠났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의 선정을 기려 주민들이 비를 세웠다.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 입구에 인동 각지에 산재해 있던 역대 현감과 부사의 선정비...
-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과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는 조선시대 선비 이맹전의 유허비와 묘비. 이맹전은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벽진(碧珍)이고, 선산 출신이다. 길재의 제자이기도 하다. 1427년(세종 9)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부자와 평생을 가까이 지냈다. 승문원정자를 거쳐 1436년(세종 18) 정언에...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던 조선 말 유곡찰방(幽谷察訪) 고영석(高永錫)의 송덕비. 선산 지역 내에는 구미(仇尾), 안곡(安谷), 연향(延香), 상림(上林) 등 4역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 역들은 유곡찰방의 관할 하에 있었다. 이에 따라 옛 연향역이 있었던 해평에 유곡찰방인 고영석의 선정비가 세워졌다.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해평중학교 내 운동장 담장 아래에 장한 효자비와...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를 겪은 이후 내부적으로 쇄국의 의지를 다지고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면서 온 나라에 경고하기 위하여 서울 종로와 전국의 주요 도로변에 건립하였다. 구미 척화비의 경우 칠곡 사람들이 서울로 드나드는 길목인 지금의 위치에 건립하였다. 구...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국윤신의 애휼비(愛恤碑). 조선 후기 금오산성의 별장을 지낸 인물인 국윤신이 재임 중 백성들을 진휼(賑恤)한 공로를 칭송하기 위하여 선각한 비석이다.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성 내성 아래 동록 700m 기슭의 암벽에 새겨져 있다. 비석은 높이 120㎝, 너비 43㎝이며, 자연석의 암벽에 선각하였다. 비석의 형상과 비문은 박락이 심하여 선명...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금오산성을 수축한 후 세운 송덕비. 조선 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 후 유비무환의 자세로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전국의 여러 산성을 수축할 때, 금오산성도 함께 수축되었다. 송공비에 따르면 이때 내성을 수축했는데 누각 규모가 100여 칸에 이르렀고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아와 군창을 새로...
-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야은 길재 선생 추정 묘비. 길재의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며,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말년에는 선산의 향리에서 강학을 베풀어 그 학통을 김숙자(金叔滋)에게 전하고 이를 다시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이 이었다. 길재 묘비는 충의를 기리고, 학문적 성과를 기리기 위...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길재의 유허비(遺墟碑). 야은 길재는 고려 후기의 인물로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서 배웠으며, 벼슬이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개창된 후 태종이 태상박사(太常博士)라는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여 절의를...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고려 충신 길재(吉再)의 정려비. 길재 정려비는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자료인 삼강정려비각 내에 있다. 이 비각은 고려 충신 길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한 배숙기(裵淑綺), 정절을 지킨 조을생(趙乙生)의 처 약가(藥哥)의 정려비를 모아 1795년(정조 19)에 세웠다. 길재는 봉한리 마을 출신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던...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김경진의 선정비. 김경진(金敬鎭)은 음사로 관직에 진출하여 1853년(철종 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55년(철종 6) 상주목사로 이배되어 떠났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의 선정을 기려 비가 세워졌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효자 김광수(金光洙)의 정려비. 김광수는 일선인(一善人)으로 자가 사옥(士玉)이다. 선산 이문리(里門里)에 거주하였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육십 노모 병환에 약을 구하러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구하지 못했다. 근심 걱정으로 울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의원을 찾자 의원이 이르기를 “뱀을 구해서 달여 드리면 치료가 될 수 있다”고...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에 있는 개항기 동몽교관(童蒙敎官) 김광택의 효자정려비. 김광택은 김해인(金海人) 김희덕(金希德)의 후손이며, 양친의 병환을 당하여 정성을 다하였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러 넣었다. 부친상에 시묘(侍墓)하자 밤에는 범이 와서 지켜주었다고 한다. 고종 때에 정려되었고, 동몽교관(童蒙敎官)을 특증(特贈)하였다. 이에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정려비각...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김동태와 아들 김문환의 송덕비. 참봉 김동태와 그 아들인 김문환은 대를 이어서 지역의 주민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어 주었으며, 주민들이 그 공을 기려서 비를 세웠다.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 지방도 68호선 변에 3기의 선정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은 높이 100㎝, 너비 34㎝, 두께 14㎝의 비신에 높이 36㎝, 너비 60㎝,...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김명진의 선정비. 김명진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부사김후명진청덕선정비(府使金侯明鎭淸德善政碑)’는 김명진(金明鎭)은 나주목사로 재임하다가 조카인 김계온(金啓溫)이 전라감사로 부임함에 따라 1814년(순조 1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16년(순조 16) 이임한 인물로,...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개항기 인물 김명진에 대한 선정비. ‘순찰사김상국명진청덕선정비(巡察使金相國明鎭淸德善政碑)’는 1888년(고종 25)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여 도내를 순력하였으며, 이 해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해지자 이를 진휼(賑恤)하고 조세를 감면해 주도록 하였다. 경상도관찰사로서 치적을 쌓은 것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김보륜(金輔輪)의 정려비. 김보륜은 상산인(商山人) 대호군(大護軍) 김여(金旅)의 후손으로 구주(九州)의 목사(牧使)를 역임한 김명도(金明道)의 아들이다. 약관(若冠)에 중사마(中司馬)를 하였고 1519년(중종 14) 문과에 등과하여 안음현감(安陰縣監)을 거쳐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이르렀다. 효성과 우애가 뛰어났으며, 부친이 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내고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인물 김봉수의 송덕비(頌德碑). 김봉수는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하여 소규모의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저수 시설인 낙성보의 도감으로서 35년간 노력을 다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혜택을 받은 백성들이 이를 기려서 비를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내고리 매실교 북편 산기슭 아래의 비각 안에 있다. 팔작지붕 덮개돌의 높이는 40㎝,...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조선 말의 선산부사 김사철 송덕비. 김사철의 자는 자유(子由)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1878년(고종 15) 문과에 급제한 뒤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90년(고종 27) 9월 선산부사로 도임하여 1892년(고종 29) 8월 이임하였다. 1910년 일제에 병탄당한 뒤 일제로부터 남작 작호를 받았다. 김사...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는 비. 김선궁(金宣弓)은 후삼국 시대 왕건(王建)과 연결된 선산의 강력한 호족으로 고려 태조의 공신이다. 김선궁 신도비(神道碑) 및 유허비(遺墟碑)는 2009년 8월 31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54호로 지정되었다. 김선궁 신도비 및 유허비는 구미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인 선산 김씨(善山金氏)[일선 김씨(一善金氏)]의 시조 김선궁을 추모하기 위...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김세균의 선정비. 김세균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60년(철종 11)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여 도내를 순력하였으며, 백성들에 피해를 주고 있는 많은 폐단을 시정하여 주었다. 경상도관찰사로서 치적을 쌓은 것을 기려 백성들이...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도감(都監) 김수령의 송덕비. 김봉수는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 시설인 웅곡지의 도감으로서, 못의 축조에 기여한 공로와 혜택을 입은 몽리자(蒙利者)들의 발의로 비석을 건립하게 되었다.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 지방도 920호선 변 경사면에 세워져 있다. 높이 80㎝, 너비 34㎝, 두께 9.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김위의 선정비. 김위(金偉)는 남원 출신으로서, 성혼의 문인으로 이이(李珥)와 교유하였으며, 1558년(명종 1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내외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선산부사도 역임하였다. 벼슬이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이르렀으며, 그가 이임한 뒤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김응조의 선정비. 김응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640년(인조 18)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42년(인조 20)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이 이를 기려서 선정비를 세웠다. 김응조 거사비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공직자 상을 생각하게 한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에...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김응해의 선정비. 김응해(金應海)는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630년(인조 8)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32년(인조 10) 정주목사로 승배되어 떠났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133㎝, 너비 64㎝, 두께 19.5㎝의 비신을 세우고 그...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종무의 정려비. 상주 북천 전투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순변사 이일이 인솔한 중앙군 60여 명과 상주에서 창의한 의병 800여 명이 북상하는 왜군의 선봉 주력 부대 1만7,000여 명과 싸웠던 전투로, 적의 북진을 잠시나마 막을 수 있었지만 의병의 수가 너무 적어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때 전사한 인물들로서 충렬사에...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 농암마을에 있는 고려 충신 농암(籠巖) 김주(金澍)의 유허비. 김주의 관향은 일선(一善)으로, 호는 농암이다.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후손으로 백암(白巖) 김제(金濟)의 아우이다. 1392년(공양왕 4) 예의판서로 명나라에서 하절사(賀節使)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중 압록강에 이르러 조선 건국의 소식을 들었다. 이때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 김호겸의 선정비. 김호겸(金好謙)은 1888년(고종 25)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90년(고종 27)에 황주목사(黃州牧使)로 이임하였다. 선산부사로 재임하고 있던 1889년(고종 26) 춘분에 공곡(公穀)으로 굶주린 백성을 진휼(賑恤)하는 공진(公賑)을 행하여 헐벗고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였으며, 고종으로부터 이 공으로 숙마(熟馬)를 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노경건의 처 송씨의 정려비. 송씨는 사인(士人) 노경건의 처로 임진왜란을 당하여 1593년(선조 26) 5월 상주(尙州)의 산중으로 부부가 함께 피난하던 도중 적을 만났는데 적이 남편을 해치려 하자 송씨(宋氏)는 전력을 다하여 대항하였다. 적이 남편을 살해하고 다시 송씨를 겁탈하려고 하자 송씨는 자신의 목을 베더라도 그들의 뜻을 따를...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수리계장 노주한의 선정비. 수리계장은 수리계의 대표로서, 주로 저수지 관리를 하던 사람으로서 노주한은 선산군수로 부임한 이학귀가 시행한 독동들의 관개 및 수리 시설의 확충 과정에 수리계의 대표로서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를 기려 1939년에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높이 108㎝, 너비 37.5㎝, 두께 10.5㎝의 비신에 높이 34㎝...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다카키 쇼오지[高木昌治]의 칭송비. 다카키 쇼우지는 일본인으로서 인동우체국 근처에서 살았다. 인동 지방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탄 사람으로 잘 알려진 그는 곡물상을 운영하였는데, 특히 함경도까지 왕래하면서 조를 많이 취급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6년부터 흉년이 계속 들어 기근이 심했을 때, 곳간을 열어 빈민들을 구제해 주었다. 인...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완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사육신이던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의 유허비. 하위지의 자는 천장(天章), 호는 단계(丹溪)이다. 1412년(태종 12)에 선산 영봉리에서 출생하여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을과 제1인으로 급제, 부제학,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거사에 실패하여 1456년(세조 2)에 참형을 당하였...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대둔사에 있는 조선 후기 탑비. 옥성면 옥관리 복우산 동쪽 중턱에 있는 대둔사 경내에 위치한다. 중심 전각으로 올라가기 전 왼쪽 편에 있다. 자연석을 하대로 삼아 1매석의 비신이 있고, 그 위에 방형의 덮개돌이 조각되었는데 비신과 덮개돌은 한 돌이다. 덮개돌 앞면에는 2엽의 연봉문이 좌우로 양각되었다. 비의 높이는 176㎝, 비신 높이 135㎝, 폭...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민치서의 선정비. 민치서(閔致序)는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62년(철종 13) 장흥부사(長興府使)에서 선산부사로 부임하였으며, 1864년(고종 1) 공주판관이 되어 이임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서 베풀었던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인물 박근석의 송덕비(頌德碑). 박근석은 조선 말 중추원의관을 지낸 인물로서 여러 모로 백성들에게 시혜를 베풀었기에 주민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구미시 옥성면사무소 앞 공터에 박태훈 기념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높이 143㎝, 너비 45.5㎝, 두께 15.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의 덮개돌을 얹은 형태다. 덮개돌...
-
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낸 박도환의 송덕비(頌德碑). 구미시 지산동에 소재하는 계선각(繼善閣)은 중추원의관 박도환, 혜민원참서관(惠民院參書官) 박효달(朴孝達), 유학(幼學) 박조용(朴詔鏞) 등 3대에 걸쳐 자선을 베푼 밀양박씨 문중 세 인물의 송덕비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계선각이 세워진 후 신평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학생박동...
-
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있는 조선 말 인물 박동보의 송덕비. 구미시 지산동에 소재하는 계선각(繼善閣)은 중추원의관 박도환, 혜민원참서관(惠民院參書官) 박효달(朴孝達), 유학(幼學) 박조용(朴詔鏞) 등 3대에 걸쳐 자선을 베푼 밀양박씨 문중의 세 인물의 송덕비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계선각이 세워진 후 신평동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온 ‘학생박동보구황비(學生朴東輔救荒碑)’의...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말 박래민의 송덕비. 박래민은 본관이 밀양으로, 자는 숙후(叔厚), 호는 월파(月坡)이며, 1888년(고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부사과를 지낸 인물로서, 충과 효를 겸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박래민은 구미 지역 출신으로서 1903년(고종 40)에 인근 주민들이 곤궁한 지경에 처하자 집안 창고에 들어 있던 곡식을 내어줌으로써 굶주림을 구제...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인물 박명수의 송덕비. 낙동강은 영남의 젖줄이 되는 하천으로서 강의 연안에 해당하는 부분은 홍수 등의 재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항상 수로의 정비와 제방의 축조, 수리가 수반된다. 박명수 송덕비는 이러한 수로 정비와 제방 축조에 공헌한 박명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구미시 구포동의 천해사 아래 산록의 비각 안에 박명수 기념불망비와 함께 세워...
-
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물 박소용(朴韶鏞)의 송덕비. 박소용은 지산동에 거주한 밀양인(密陽人)으로, 박동보(朴東輔)의 증손자이다. 박동보의 구황비(救荒碑)에 의하면 그는 아들 박도환(朴道煥)에게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유언하였으며 박도환은 부친의 뜻에 따라 흉년에 많은 사람들을 구하였다. 이후 손자 박효달(朴孝達), 증손자 박소용(朴韶鏞) 대에 이르기까지 재난이...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료 박수홍의 묘비. 박수홍의 자는 유언(裕彦), 호는 봉곡(蓬谷)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권지부정자에 보임되었으며, 외직을 거쳐 성균관전적, 예조좌랑을 역임하였고, 예조정랑겸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강화로 호종하였으며, 그 뒤 경외직을...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지낸 박중규의 애휼비(愛恤碑). 박중규는 1701년(숙종 27) 3월 10일에 도임하여 이듬해인 1702년(숙종 28) 윤6월 29일까지 선산부사로 재임하면서 수령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애민(愛民), 진휼(賑恤)함으로써 읍민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이러한 그의 선정에 보답하고자 백성들이 금오산성 내의 암벽에 선각한 비이다. 구미시...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박진환(朴震煥)의 효자정려비. 박진환(1605~1650)의 자는 양백(楊伯)이며, 호는 남강(南岡)이고, 관직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부친 경주부윤(慶州府尹) 박수홍(朴守弘)의 급서(急逝)로 3년 동안 시묘 후 몸이 극히 쇠약하여 46세를 일기로 운명하여 1681년(숙종 7)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옥성면장을 지낸 박태훈의 송덕비. 박태훈은 일제강점기 때 행정의 최하부 단위인 옥성면의 면장을 지낸 인물로서, 면장으로서의 치적과 공덕에 대하여 기념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옥성면사무소 앞 공터에 박근석 실혜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높이 144㎝, 너비 47㎝, 두께 17.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
-
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인물 박효달의 송덕비. 구미시 지산동에 소재하는 계선각(繼善閣)은 중추원의관 박도환, 혜민원참서관(惠民院參書官) 박효달(朴孝達), 유학(幼學) 박조용(朴詔鏞) 등 3대에 걸쳐 자선을 베푼 밀양박씨 문중 세 인물의 송덕비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박효달은 고종 때 큰 흉년이 들자 백성들을 구제한 유학 박동보, 중추원의관 박도환의 손...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에 있는 조선 말의 인물 백용기 선정비. 백용기는 19세기말인 1889년(고종 26)에 통정대부 돈녕부도정에 임명된 바 있는 인물로서,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빈민을 구제하고 불가에 시주하는 등의 공로를 기려 백성들이 비를 세웠다.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 무수골의 새마을회관 뒤쪽에 있다. 높이 112㎝, 너비 40.5㎝, 두께 16.5㎝의 비신을 세우고,...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백중휘(白重暉)의 정려비. 백중휘는 수원인(水原人)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의 후손으로 모친상 때 부친이 살아 있어 여막을 지을 수 없게 되자 날마다 묘소에 가니 범이 수호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친이 병환 중 일 때 실화(失火)로 집이 타자 하늘을 우러러 비통해 하자 바람이 그쳐 화를 면했다고 한다. 고종 때 정려를 명하고 동몽...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인 서경순의 선정비. 서경순(徐經淳)은 1858년(철종 9)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60년(철종 11)에 이임한 인물로서, 선산부사를 역임하면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23㎝, 너비 41.5㎝,...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인물 서현주의 선정비. 서현주는 인동 출신으로서 가뭄이 극심한 해에 양곡을 풀어 가난한 주민을 구제하였는데, 이때 혜택을 입은 주민들이 이를 기려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팔작지붕의 덮개돌에 귀부를 갖춘 형태이다. 비신은 높이 126㎝, 너비 38㎝, 두께 18.5㎝이며, 덮개돌은 높이 43㎝, 너비 76㎝, 두께 56㎝이다. 귀부는 높...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심경택의 선정비. 심경택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대사헌으로서 오랜 기간 활약하였다. 1858년(철종 9)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여 도내를 순력하였는데, 이때 선산부 백성들의 민폐를 시정하는 데 노력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부임한 다음해인...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적비 2기. 아도화상 사적비는 아도화상이 고구려에서 신라로 와서 불교를 포교한 내력을 자세히 적은 비석이며,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는 비슷한 시대에 도리사 신도들이 논과 밭을 시주한 내역을 담고 있는 비석이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도리사(桃李寺) 남쪽 비탈진 송림(松林) 속의 평평한 대지에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와 함께 남쪽을 향해 나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의 인물 엄세영 불망비. 엄세영은 동학 농민 전쟁 때, 수령들의 정사를 살피고 백성들의 고통을 돌보는 임무를 맡은 삼남염찰사, 선무사(宣撫使)로 임명되어 민심을 수습하고 안집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 시기에 민폐를 많이 시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엄세영의 선정에 보답하기 위하여 비가 세워졌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 없이 윗부분이 평평...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인물 오일영의 선정비. 오일영(吳鎰泳)은 1887년(고종 24) 5월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그 해 12월에 관아에서 죽었던 인물로서, 백성들이 그를 기려서 일명 ‘타루비(墮淚碑)’라 하는 선정비를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44㎝, 너비...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선산군수 오재순의 선정비. 군수는 도(道)의 관할에 속하는 하급 지방자치단체인 군(郡)을 대표하고, 그 행정을 책임지는 장(長)으로서, 오재순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군수의 직임을 수행하였다. 군수로서 선산군의 행정을 책임지던 오재순이 6년간 재임한 후 영덕군수로 이임하자 주민들이 그의 공로를 기려 비를 세...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인물 박운(朴雲)의 정려비. 박운은 밀양인(密陽人)으로 자는 택지(澤之) 호는 용암(龍巖)이다. 고려시대 우정승(右政丞) 박화(朴華)의 후손으로 진사 박종원(朴宗元)의 아들이다. 1493년(성종 24) 해평 고리곡(古里谷)에서 출생하였다. 1519년(중종 14)에 진사(進士)에 입격하였으나 당시는 사화가 잦은 때라 관직에 나가지 말라...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원세정의 선정비.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55년(철종 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9년(철종 10)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였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비를 세웠다. 원세정 거사비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공직자 상을...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원세정의 불망비.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55년(철종 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9년(철종 10)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였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비를 세웠다. 높이 116㎝, 너비 54㎝, 두께 27㎝의 비신을 세우고 그...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대원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처사 원호식의 송덕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대원마을 지방도 916호선 도로변 숲속에 세워져 있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가 없고, 비석의 윗부분이 둥글게 되어 있는 원수(圓首) 형태의 비신만 남아 있다. 비신은 높이 74㎝, 너비 43㎝, 두께 12㎝이다. 비의 앞면에는 ‘처사원주원공호식만세불망지비(處士原州元公浩植萬世不忘之碑...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인물 유운용의 선정비. 유운용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菴)이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공을 세운 유성룡(柳成龍)의 형으로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경사(經史)를 통독함으로써 사문의 촉망을 받았다. 1572년(선조 5) 친명(親命)으로 음사(蔭仕)를...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유호원의 선정비. 유호원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26년(순조 2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30년(순조 30) 암행어사의 서계(書啓)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었으며, 재직 중에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비를 세웠다. 윗부분이 둥글게 생긴 원수(圓首) 형태의 비신만이 남아 있...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수리계장 윤배억의 선정비. 구장은 일제강점기 동이나 리의 사무를 관장하던 직이며, 수리계장은 수리계의 대표로서 주로 저수지 관리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서, 윤배억은 일제강점기에 원리의 구장 및 수리계장으로서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를 기려서 1945년에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원리 장아질마을 초입의 도로변에 윤병호 불망비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인물 윤병호의 선정비. 윤병호는 지역에 거주하면서 주민들을 위한 학문 장려와 수리 사업을 주도하여 이익되는 혜택을 주는 등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를 기려 지역 주민들이 발의하여 1932년에 비석을 세웠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장아질마을 초입의 도로변에 윤배억 송덕비와 함께 서 있다. 비석은 높이 87㎝, 너비 30.5㎝, 두...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윤봉소의 선정비. 윤봉소(尹鳳韶)는 1726년(영조 2) 12월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727년(영조 3) 8월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윗부...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말 의우총(義牛塚) 비. 의우총은 짐승으로서 의행(義行)을 한 소의 무덤이다. 조선 말기 봉곡 지역에 거주한 여양인(驪陽人) 진숙발의 처 밀양박씨는 빈곤한 처지에 일찍이 과부가 되었다. 이러한 형편에 암소 한 마리를 길러오던 중 송아지를 낳은 지 불과 사흘 만에 불행히 어미 소가 죽고 말았다. 밀양박씨는 어미를 잃은 송아지를 불쌍히 여겨 그대로...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교준의 선정비. 이교준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71년(고종 8)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75년(고종 12)에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이배되었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2기의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비석의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에 각이 있는...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의 암행어사 이만식 송덕비.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규명하고 민정을 살핀 임시 관직으로서, 이만식은 1879년(고종 16)에 경상좌도암행어사가 되어 인동부에 와서 민폐를 시정하고, 조세를 감면하는 등 백성들의 애로 사항을 덜어주는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비석을 세웠다. 윗부분이 평...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인동현감 이보의 송덕비. 이보(李輔)의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군위 소보 출신으로 유성룡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0년(선조 2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해(金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면서, 1594년 인동현에서 둔전관겸가수(屯田官兼假守)로 근무하...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의 군수 이소영 선정비. 이소영은 문과 출신으로 1896년(고종 33)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1899년(고종 36) 예천군수로 이배되어 떠났다. 거사비(去思碑)는 수령이 갈릴 때 전임자의 선정(善政)을 기리어 고을의 백성들이 세우는 비이지만 이소영의 재임 기간 동안 선정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으며, 객사 남쪽에 있던 찰미루(察眉樓)를 수...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에 있는 조선 말 이용직의 선정비.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에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규명하고 민정을 살핀 임시 관직으로서, 이용직은 1868년(고종 5)에 경상도암행어사가 되어 현재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 부근에 있었던 역원인 죽현원의 폐단을 시정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살도록 해주었는데, 이를 기려서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의배의 선정비. 이의배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한 무신으로서, 인조반정에 참가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되었고, 1626년(인조 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27년(인조 5) 1월에 신병으로 체임(遞任)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산군수를 지낸 이종수와 무을면장을 지낸 김영진의 선정비. 군수는 도(道)의 관할에 속하는 하급 지방자치단체인 군(郡)을 대표하고 그 행정을 책임지는 장(長)으로서, 이종수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군수의 직임을 수행하였고, 김영진은 이 시기에 무을면장이었다. 군수로서 선산군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던 이종수가 그의...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진화(李晉華)의 효자정려비. 이진화는 덕수인(德水人)으로 자는 명진(明進)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아우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후손으로 참의(參議) 이동로(李東魯)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다가 모친이 사망하자 묘 옆에 여막(廬幕)을 지어 3년 동안 시묘를 하루같이 하자 향리(鄕里)에서 추...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던 이탄의 선정비. 이탄은 1892년(고종 29)에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어 도정에 진력하였는데, 1894년(고종 31)에 순력 중 인동부에 와서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비석을 세웠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가 각이 있는 직수(直首) 형태의 비신만이 남아 있으며, 비신은 높이 146㎝, 너비 53㎝, 두께 1...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산군수를 지낸 이한귀의 선정비. 군수는 도(道)의 관할에 속하는 하급 지방자치단체인 군(郡)을 대표하고, 그 행정을 책임지는 장(長)으로서, 이한귀는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지금의 선산읍 독동들의 관개, 수리 시설을 확충하여 당시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를 기려 1939년 비석이 세워졌다. 비석은 높이 109...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있는 조선 말 상주군수 이한응의 송덕비. 이한응은 관립 영어 학교를 졸업하고 외교관으로서 주로 활약하였는데, 제1차 한일 협약이 맺어져 나라의 형세가 위축되고 대외적으로는 영일 동맹으로 정부의 지위가 떨어지자 이를 개탄하여 1905년 5월 12일 음독 자결한 인물이다. 이한응이 상주군수로 도임하여 있던 중 1902년(고종 39) 12월에 선산군수 정...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있는 조선 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이헌영의 선정비. 이헌영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신사유람단에 포함되는 등 개화파 관료로서 성장하였다. 벼슬이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에 이르렀다. 1902년(고종 39)에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어 도내를 순력하였으며, 당시의 선산군에도 들러 백성들을 보살피는 등 경상도관찰사로서...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이형회의 선정비. 이형회(李亨會)는 음사로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24년(순조 2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27년(순조 27)까지 3년여 동안 재임하다가 죽었다. 재임 기간에 그는 빙허각(憑虛閣)을 건립하였고,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선산향교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청아루(菁莪樓)를 다시 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선산부사 이호숙의 선정비. 이호숙(李鎬肅)은 음사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친 후 문경현감(聞慶縣監)으로 있다가 1874년(고종 11)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암행어사가 민정을 살핀 후 상을 줄 것을 청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876년(고종 13)에 선산부사에서 이임하였는데, 청주목사(淸州牧使)로 승진하였던 것으로 보아...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동부사 이희면(李熙冕)의 선정비. 비신의 앞면이 훼손되어 있어 영세불망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뒷면의 1840년(헌종 6) 즈음에 부임한 인동부사로는 1838년(헌종 4)에 부임하여 1842년(헌종 8)에 이임한 이희면(李凞冕)이 유일하므로 인동부사 이모는 이희면으로 추정된다. 인동부사 이희면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백...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희원의 선정비. 이희원(李熙遠)은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34년(순조 3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37년(헌종 3)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98㎝, 너비 42㎝, 두께 12㎝의 비신을...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임재의 정표비(旌表碑). 임재는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황간감무(黃澗監務)를 역임하였으며, 부모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조석으로 극진히 약을 달였고, 사망하자 슬픔이 극에 달했다.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면서 6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들른 적이 없었으며, 1472년(성종 3)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장방형의 자연...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인물 장극상의 송덕비. 학서지는 구미시 구평동에 소재하는 못으로서 1931년경에 축조되었다. 본관이 인동인 장극상이 못을 축조할 때에 많은 토지를 희사하였는데, 해방 후인 1948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구미시 구평동의 학서지 제방에 장돈상 송덕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은 높이 108㎝, 너비 48.5㎝이고, 팔작지붕의...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장돈상의 송덕비. 지역민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인 장돈상의 공을 기려 1922년에 건립하였다. 구미시 구평동의 학서지 제방에 장극상 불망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은 높이 126㎝, 너비 41㎝이고, 팔작지붕의 덮개돌은 높이 29㎝, 너비 57㎝, 두께 42㎝이며, 비좌는 높이 5㎝, 너비 90㎝, 두께 65㎝이다. 비문은 건립 시기...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장한(張翰)의 정려비. 장한은 조선시대 월호리에 거주한 사람으로, 어버이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고 모친이 사망하자 여막(廬幕)을 지어 3년간 시묘를 하면서 한 번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러한 극진한 효성이 알려져 조정에서 유곡찰방(幽谷察訪)을 제수하고 정려비를 세웠다. 자연석을 치석하여 전면을 평면화하였다. 규형(圭形)으로 높이...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전익희의 선정비. 전익희는 본관이 옥천(沃川), 호가 망일당(望日堂)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서 인조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지평, 정언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는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서예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전익희는 선산부사로서 역역(力役)과 부세(賦稅)를 경감토록 하는 등...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좌명의 묘비. 전좌명의 자는 충언(忠彦), 호는 성암(性庵)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양친 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하였다. 1472년(성종 3) 성종은 효자 정려를 내렸으며, 명종은 효행을 칭찬하는 어제시판(御製詩板)을 내렸다. 묘비의 뒷면에는 1762년(영조 38)에 해당하는 ‘숭정기원후삼임...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좌명 효자정려비. 전좌명은 연안인(延安人)으로 자는 충언(忠彦), 호는 성암(性庵)이며, 중정대부삼사좌윤 전목(田霂)의 증손자이다. 관직은 광흥창주부로,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을 추증받았다. 전좌명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의 상을 당하였을 때 6년간 시묘를 하였다. 후에도 계속하여 삭망(朔望)때 묘소를 찾아갔는데, 향...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있는 정방준의 처 초계변씨의 정려비. 초계변씨는 목사(牧使) 변세봉(卞世鳳)의 딸이며, 강령현감 정방준의 부인이다. 임진왜란 때 지아비는 종군(從軍)하고 초계변씨는 신곡 문암산에 숨어 있는데, 왜적이 이미 알고 찾아오자 욕을 면치 못하리라는 생각에 치마폭에 혈서를 써 던지고 6세 된 딸을 안은 채 언덕에서 뛰어내려 절개를 지켰다. 이에 조정에서 정려...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소의 선정비. 정소(鄭熽)는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43년(헌종 9)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45년(헌종 11)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111㎝, 너비 42㎝, 두께 16㎝의 비신을 세...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정시선의 선정비. 정시선(鄭是先)은 1692년(숙종 18)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693년(숙종 19)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17㎝, 너비 7...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옥의 선정비. 정옥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인동부사의 도임 및 이임의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백성들이 제때 내지 못하여 누적된 조세를 면제, 또는 감면해서 민생고를 덜어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에 각이 있는 직수(...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운기의 선정비. 정운기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51년(철종 2)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5년(철종 6)에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 없이...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홍채의 선정비. 정홍채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78년(고종 15)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82년(고종 19)에 임기가 만료되어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백성들을 애정으로서 보살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홍채의 선정비. 정홍채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78년(고종 15)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82년(고종 19)에 임기가 만료되어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백성들을 애정으로서 보살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조강하(趙康夏, 1841~1892)의 선정비. 조강하는 외척인 풍양조씨 문중의 인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예조판서,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에 이르렀다. 1883년(고종 20)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였다. 경상도의 진휼을 위하여 내탕전(內帑錢...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조박의 선정비. 조박(趙璞, 1577~1650)은 문과 갑과 3등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광해군 때의 대북파에 의해 여러 차례 탄핵을 받는 등 관직 생활이 순탄하지 못하였다. 배천현감, 무장현감, 평안도도사 등을 지낸 후 1623년(인조 1)에 선산부사에 부임하였으며, 부임한 지 2개월여 만에 파직되었다. 2개월여의...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 선산부사 조준구의 선정비. 조준구(趙駿九)는 1883년(고종 20)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85년(고종 22)에 이임하였다가 1890년(고종 27)에 다시 선산부사로 부임, 같은 해 9월에 이임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에 있는 조선시대 길의 거리를 표시하여 세운 표석. 오늘날 시골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장승, 정자목, 돌무지[積石], 흙둔덕[堠] 등은 모두 고대의 도로 측량과 관련되는 유물로서 후에 도로 표지로 기능이 전환된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노폭, 이정(里程), 노표(路標) 등에 관한 정비계획이 수립되어 정책적으로 이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려 세운 비. 야은 길재는 고려 후기의 인물로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서 배웠으며, 벼슬이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 태종이 태상박사(太常博士)라는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으...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시대 표석. 관결(官決)이라 함은 조선시대 관아에서 어떤 사안에 대하여 처분을 내리는 것을 말하며, 건립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토지의 경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관결표석을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표석은 자연석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 65㎝, 너비 38㎝, 두께 25㎝ 정도이다. 표석에는 ‘관결표석(官決標石)’이라 새겨져 있다. 표석은 구미시인동...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한홍열의 선정비. 한홍열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67년(고종 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70년(고종 7)에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 없이 비...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홍술조의 선정비. 홍술조(洪述祖)는 병자호란 때 청군에 항거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홍익한(洪翼漢)의 손자로서 음사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금천현감(衿川縣監)으로서 흉년에 봉록을 내어 진휼함으로써 선산부사에 승차하였다. 뒤에 순천부사로 있으면서도 진휼(賑恤)과 치적이 높이 평가받기도 하는 등 지방관으...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던 홍훈의 선정비. 홍훈은 음사로 벼슬길에 진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75년(고종 12) 경상도관찰사로 도임하였다. 관찰사로서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1875년에는 부민(富民)과 지방 사족(士族)에 대한 수탈과 침학이 극심하여 죄를 씌워 재물을 빼앗고, 수많은 세납물을 갖가지 방법으로 횡령, 남징(濫徵)하...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조선 말 황두선(黃斗善)의 효자비. 황두선은 장수인(長水人)으로 영상(領相)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황충로(黃忠老)의 아들이다. 양친이 병환에 있으면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고, 한 번도 병석을 떠나지 않았다. 노환으로 양친이 별세하자 피눈물을 흘리며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侍墓)를 한 후에도 초하루 보름에 묘를...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황중화의 정려비. 황중화는 평해인(平海人)으로 자는 응오(應五) 호는 국사(菊史)이다. 무을 웅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 부친의 병환 때 변을 맛보며 탕약(湯藥)을 조절하였고, 변을 보지 못하면 입으로 빨아주었다. 부친의 타계 후 3년 시묘를, 부모님 살아계실 때처럼 하였다. 황중화의 효행에 감동을 받은 선산 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