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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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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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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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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금평저수지에서 금산사를 연결하는 금산사로에는 터널처럼 늘어선 벚꽃나무에서 ‘순결’, ‘정신의 아름다움’ 등의 꽃말을 지닌 벚꽃이 함박눈처럼 휘날리며 장관을 이룬다. 전국 각지에 조성된 벚꽃길의 유래는 제각기 다르나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심어진 것이 많다. 인근의 군산 지역만 해도 1899년 개항과 함께 들어온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수탈의 전진 기지를 상징하듯 벚꽃이 심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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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에 있는 바람 공학 연구소. 바람공학은 공기 흐름과 바람이 물체와 환경에 미치는 힘과 영향 등을 연구하고 이를 생활에 적용하는 방안을 찾는 실용 학문이다. CKP 풍공학연구소는 고층 건물, 장대 구조물에 미치는 바람의 영향을 연구 분석하여 신 재생에너지원으로서의 풍력 발전단지 설계 등을 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연구소이다. 국내 바람공학 개척자인 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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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순직 경찰관. 박경조는 1961년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에서 태어나 익산시에 있는 남성고등학교와 군산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90년 순경으로 특채되어 2001년부터 목포해양경찰서에서 근무했으며, 2008년 2월부터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3003함에서 병기장으로 근무해 왔다. 특히 불법으로 조업하는 중국 어선 등을 나포한 공로가 인정되어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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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인화가. 박규환(朴圭晥)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향집(鄕執), 호는 표원(表園)이다. 1868년 지금의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으며, 1916년에 세상을 떠났다. 박규환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에 열정이 많았으며, 서예와 사군자에 뛰어났다. 당시 김제 지역에는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과 같은 대가가 있어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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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기업인. 박기남은 1941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용마리 39-35번지[용마로 429-9]에서 태어났다. 1971년 인천의 신포동에서 ‘우리집’이라는 6.6㎡ 남짓한 작은 만두가게로 출발, 고기만두와 쫄면을 대중 메뉴로 상품화한 뒤 경인 지역에 10개의 분점을 개설했다. 1987년에는 김제시 황산면에 신포우리식품이란 이름으로 공장을 설립하고 ‘신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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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박명수(朴命壽)는 본관이 함양(咸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백의창의(白衣倡義)하여 의병을 모집한 뒤 웅치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순절하였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장수와 양곡을 주청한 이순신(李舜臣) 등 18명은 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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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순동에 있는 효자 박명종의 정려. 박명종(朴命鍾)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무칠(武七)이며, 호는 만오(晩悟)이다. 널리 알려진 집안에서 태어난 박명종은 어려서부터 한 번도 부모 말을 어긴 일이 없고, 비록 작은 것이라도 맛있는 것을 얻으면 꼭 부모에게 먼저 올리는 등 효성이 극진하였다. 또한 매일 달고 연한 음식을 마련해 드리고자 힘썼으며, 부모가 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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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순경(順京)이고, 박정문(朴正文)으로도 불린다. 1880년 4월 26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서 태어났다. 박봉래(朴琫來)는 1905년 항일 투쟁을 목적으로 만주로 망명한 뒤, 1919년 3·1운동 이후 이범윤(李範允)이 인솔하는 독립운동 단체인 의군부(義軍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동지들과 함께 연해주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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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아버지는 박길중(朴吉中)이고, 어머니는 정랑(正郞) 최계진(崔季眞)의 딸이다. 동생으로 박헌(朴軒)과 박초(朴礎)가 있다. 동생인 박초가 김제시 입석동에서 태어난 것으로 미루어 박부(朴敷)도 김제 출신으로 보인다. 감무(監務)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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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일서(一瑞), 호는 굴지당(屈指堂).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고창현감을 지낸 박형(朴珩)이다. 어머니가 큰 돌이 떨어져 가슴에 안기는 꿈을 꾸고 낳아 석정(石精)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다. 박석정(朴石精)은 16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학문이 남달리 뛰어났으며, 많은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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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밀성(密城). 자허(子虛), 호는 정재(貞齋), 초명은 박실(朴實)이다. 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郞)인 박인기(朴仁杞)이다. 아들은 박경빈(朴景贇)·박경무(朴景武)·박경문(朴景文)이다. 박의중(朴宜中)[1337~1403]은 1362년(공민왕 11) 과거에서 장원에 뽑히고, 여러 차례 승진하여 헌납(獻納), 좌사의대부(左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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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목사. 박연세(朴淵世)는 1883년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서 대대로 농토를 일구어 온 박자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농사를 도우며 인근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다가 군산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전킨(W. M. Junkin)[개명 전위렴]이 세운 영명학교에 입학하여 4년 과정을 이수하였다. 이후 박연세는 당시 김제군 백구면 유강리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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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춘보(春甫). 이조판서를 지낸 박초(朴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參奉) 박효량(朴孝亮)이다. 박영란(朴英蘭)은 지금의 김제시 검산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지냈으며,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부장으로 의주 용만관까지 국왕을 호종하였다.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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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밀성(密城). 자허(子虛), 호는 정재(貞齋), 초명은 박실(朴實)이다. 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郞)인 박인기(朴仁杞)이다. 아들은 박경빈(朴景贇)·박경무(朴景武)·박경문(朴景文)이다. 박의중(朴宜中)[1337~1403]은 1362년(공민왕 11) 과거에서 장원에 뽑히고, 여러 차례 승진하여 헌납(獻納), 좌사의대부(左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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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순경(順京)이고, 박정문(朴正文)으로도 불린다. 1880년 4월 26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서 태어났다. 박봉래(朴琫來)는 1905년 항일 투쟁을 목적으로 만주로 망명한 뒤, 1919년 3·1운동 이후 이범윤(李範允)이 인솔하는 독립운동 단체인 의군부(義軍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동지들과 함께 연해주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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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화(孝華), 호는 신촌(薪村).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이(朴頤)이다. 박정영(朴廷榮)[1559~1592]은 지금의 김제시 흥사동 제내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재종숙인 굴지당(屈指堂) 박석정(朴石精)에게 글을 배워 11살 때 『주역(周易)』을 알고 경전(經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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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학생운동가.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서 태어난 박종운(朴鍾雲)은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1년 6월 17일 동맹 휴학(同盟休學)을 주도하였다. 당시의 동맹 휴학은 학생들이 교육상 제 문제나 또는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에서 동맹 휴학이 격화된 시기는 1920년대부터인데, 이는 1919년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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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금산의 웅치전투는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權悰)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진안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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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허(子虛), 호는 토헌(土軒). 아버지는 박길중(朴吉中)이고, 어머니는 정랑(正郞) 최계진(崔季眞)의 딸이다. 형은 박부(朴敷)·박헌(朴軒)이다. 박초(朴礎)[1367~1454]는 어려서부터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좌헌납·이조정랑·사복시첨정·사헌부장령·교서관판교·우부승지·대사간·병조참의 등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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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토헌(土軒) 박초(朴礎)의 후손이다. 박충길(朴忠吉)은 부장(部將)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피난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백관들은 권정례(權停例)로써 진하(陳賀)하였다. 왕은 사관에게 명하여 종묘와 사직의 주판(主版)을 받들고 먼저 떠나게 하고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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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박필현을 비롯한 소론과 남인이 영조의 집권에 반발하여 일으킨 반란. 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의 일부 세력과 남인의 과격 세력이 연합하여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 했던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는데, 호남 지역에서는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1680~1728]이 가세하였다. 박필현은 수천군을 영솔하고 전주성을 습격하려고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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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출신의 승려이자 불교 지도자. 박한영(朴漢永)의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子)이다. 1870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전주, 김제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한영은 어머니가 위봉사(威鳳寺)에서 들고 온 생사법문(生死法門)에 감명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였다. 19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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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출정하여 전사한 박석정(朴石精)의 손자이다. 박형(朴珩)은 중종 때 출사하여 참봉을 지냈으며, 고창현감이 되었다. 청백비(淸白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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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벽골제를 수축한 문신. 본관은 진원(珍原). 초명은 희종(熙宗), 자는 자인(子仁), 호는 위남(葦南).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박온(朴溫)이다. 박희중(朴熙中)은 생원으로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405년 이조좌랑이 되었다. 1406년(태종 6) 군자감승(軍資監丞)으로 전라도경차관(全羅道敬差官)에 임명되었다. 이어 세자부좌정자(世子傅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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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김제군 모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임상리·마교리·용지리 일부, 개토면 구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반교리(盤橋里)라 하고 김제군 용지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용지면 반교리가 되었다. 해발 고도 25m 안팎의 야산 아래에 마을이 들어서 있고, 마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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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희춘(柳喜春)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주부 유광복(柳光復)이며, 어머니는 승지 남치상(南致祥)의 딸이다. 유지화(柳志和)[1599~1680]는 1633년(인조 11)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叅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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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아녀자들이 그네를 뛰면서 즐기는 놀이. 그네뛰기는 큰 나무의 가지나 두 기둥의 가로 지른 막대에 길게 두 줄을 매어 늘이고, 줄 아래에 밑싣개[앉을깨]를 걸쳐 놓고 올라가서 몸을 날려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하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반선희(半仙戱)’, ‘추천(鞦韆)’ 등이라고도 한다. 그네뛰기는 중국에서는 한나라와 당나라 때부터 성행했으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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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쥐를 닮았고 앞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 모든 것이 넉넉할 것이라고 여겨 사람들이 반월산(半月山) 주위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마을 형태가 마치 반달[半月] 같아서 마을 이름을 반월리(半月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공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복리·석담리의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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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김제여자중학교에서 매년 5~6월에 열리는 과학 행사. 발명꿈나무를 위한 어울림 한마당은 김제교육지원청과 김제여자중학교에서 2005년 발명의 날인 5월 19일을 전후하여, 김제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어울려 다양한 발명과 과학 활동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발명 교육의 활성화와 발명 마인드를 조성하기 위해 개최하였다. ‘창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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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를 연결하는 고개. 밤티재는 원래 금산면 화율리 하화마을 동북쪽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밤티재를 한자로 옮겨 율치(栗峙)라고도 불린다. 모악기맥 국사봉(國師峰)과 모악산(母岳山)을 이어주는 산줄기의 고개이며, 모악산도립공원의 남단에 있다. 밤티재 서쪽으로는 율치마을이 있다.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와 완주군 구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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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앉을 때 밑에 까는 작은 깔개. 좌식 생활을 주로 해 온 우리 민족은 딱딱한 나무판자를 깐 마루나 돌을 깔고 흙칠한 뒤 장판을 깐 온돌방 바닥에 그대로 앉아 생활했기 때문에 방석을 마련해 사용하였다. 그런데 방석은 반드시 집안에서만 사용한 것이 아니어서 『삼국사기(三國史記)』「거기지(車騎志)」 신라조에 의하면, 말을 탈 때 안장이나 수레에 걸터앉는 자리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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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방송은 적절한 수신 장치를 갖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동시에 청취할 수 있도록 오락·정보·교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방송법 제2조 1항에서는 방송을 목적으로 지상의 무선국을 이용하여 행하는 지상파 방송, 전송·선로 설비를 이용하여 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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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토착어. 방언은 표준어와 대립되는 개념의 말이다. 한 언어를 형성하고 있는 하위 단위로서 하나의 국어가 지역에 따라 음운·어휘·문법 등에 다름이 있을 때, 그 다름에 의하여 분단되는 지역에 있어서의 언어 체계를 방언이라고 한다. 한국어는 현재 우리나라 전역에서 쓰이는 방언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고, 방언은 한국어의 변종이라고 정의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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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방저수지는 1945년 1월 1일 착공하여 그해 12월 31일 준공되었다. 방저수지의 제당 형식은 토언제균일형이며, 제당 체적은 782㎥이다. 제방의 길이는 115m이고, 제방의 높이는 3.2m이다. 총저수량은 12.74톤이며, 유효 저수량은 12.74톤이다. 취수 형식은 사통형이다. 유역 면적은 8㏊이며, 홍수 면적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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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밀려드는 조수(潮水)의 해를 막기 위해 만든 제방. 방조제는 해면 간척지에서 바다로부터 농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쌓는데 간척 전공사비의 50~70%를 차지하며 간척지의 생명선이 된다. 축제선(築堤線)은 지반의 고저 및 양부(良否)·조위(潮位)·풍향·인접지의 배수 계통 등을 고려하여 단위 면적당의 제방 연장이 최소로 되도록 선정한다. 방조제의 구조는 지반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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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배극렴의 불천위 사당. 배극렴(裵克廉)[1325~1392]의 본관은 성산(星山)이고, 자는 양가(量可)이며, 호는 필암(筆庵)·주금당(晝錦堂)이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성계 휘하에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파하였다. 1388년(창왕 1) 이성계 등과 위화도 회군을 결행하여 조선을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개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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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배달저수지는 1945년 1월 1일 착공하여 그해 12월 31일 준공되었다. 배달저수지의 제당 형식은 휠댐이며, 제당 체적은 31,927㎥이다. 제방의 길이는 215m이고, 제방의 높이는 9m이다. 총저수량은 75,000톤이며, 유효 저수량은 75,000톤이다. 취수 형식은 사통형이다. 유역 면적은 35㏊이며, 홍수 면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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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의 시화(市花). 백일홍(百日紅)은 김제시를 상징하는 꽃으로 곳곳에 심어져 있다. 특히 금산사 미륵전 앞에 붉게 핀 백일홍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으며, 귀신사 석탑 앞의 백일홍과 어깨를 견준다. 백일홍은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배롱나무 또는 백일초라고도 한다. 목백일홍은 껍질이 유별나게 생겨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높이는 3~7m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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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세동(裵世彤)은 1894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다.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배세동은 평소 나라를 빼앗긴 백성으로서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는데, 1919년 3월 13일 전주시장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배세동은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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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옥정리에 있는 자연마을. 김제시 부량면 옥정리의 고잔(古棧)은 일명 ‘배수지’ 또는 ‘나루터’라고도 했는데, 배가 닿는 곳이라서 부두에서 바다로 나가게 만들어 놓은 다리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고잔’이라 했다고 한다. 2009년 11월 현재 총 10가구에 19명[남자 8명, 여자 1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잔은 앞군개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보통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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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를 연결하는 고개. 김제 청룡사(靑龍寺)에서 완주군 구이면 배재울과 탑선을 넘어가는 배재는 옛적에 배가 넘어 다녔다는 전설 때문에 배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배재는 호남정맥 운암 초당골[막은댐]에서 분기한 모악기맥이 엄재, 국사봉, 밤티재, 화율봉을 지나 장근재를 가기 전에 있는 고개로 모악산(母岳山)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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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 있는 농민단체. 백구면 농민회는 김제시 백구면 농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2008년 7월 18일 김진섭 창립준비위원장 등 50명이 창립총회를 갖고 기존에 해체된 농민회를 새롭게 재편 및 재창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실제 영농에 필요한 정보 제공, 기자재 공동 구매 관리, 농작물 판촉 강화 등과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백구면 농민회에서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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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백구리에 있는 농경지. 백구들의 서쪽은 동계들과 이웃하고 있으며, 북쪽에서는 만경강(萬頃江)이 동에서 서류하고 있다. 백구들은 만경강을 젖줄로 삼고 있으며, 장마두평 들녘은 백구정보(白鷗亭洑)를 젖줄로 하여 농경을 하고 있다. 백구나루터는 김제시 백구면 백구리 동북쪽의 익산시로 이어진다. 국도 26호선이 북서 방향에서 남동 방향으로 백구들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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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정승 김현태가 전주부를 순시하러 가다가 이곳 정자에서 잠시 쉬었는데, 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보면 볼수록 흰 갈매기가 앉아 있는 모습과 같아 정자 이름을 백구정(白鷗亭)이라고 지은 데서 유래하여 마을 이름도 백구리(白鷗里)가 되었다. 만경강(萬頃江) 줄기 산 주변에 있던 백구정은 마을 노인들이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를 벗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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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신설된 면으로 백구정(白鷗亭)에서 이름을 따서 백구면(白鷗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정승 김현태가 전주부를 순시하러 가다가 이곳 정자에서 잠시 쉬었는데, 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보면 볼수록 흰 갈매기가 앉아 있는 모습과 같아 정자 이름을 백구정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전라북도 김제군 공동면(公洞面) 지역으로 마전(麻田)·난산(卵山)·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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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 있는 농민단체. 백구면 농민회는 김제시 백구면 농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2008년 7월 18일 김진섭 창립준비위원장 등 50명이 창립총회를 갖고 기존에 해체된 농민회를 새롭게 재편 및 재창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실제 영농에 필요한 정보 제공, 기자재 공동 구매 관리, 농작물 판촉 강화 등과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백구면 농민회에서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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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석담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생활을 스스로 실천하고 큰 꿈을 실현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진 도덕인, 기본 학력과 능력을 갖추어 새롭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생활 태도를 가진 창의인, 주인정신으로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며 보람을 가꾸는 태도를 가진 자주인, 보건 안전 교육을 생활화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활 태도를 가진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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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석담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생활을 스스로 실천하고 큰 꿈을 실현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진 도덕인, 기본 학력과 능력을 갖추어 새롭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생활 태도를 가진 창의인, 주인정신으로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며 보람을 가꾸는 태도를 가진 자주인, 보건 안전 교육을 생활화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활 태도를 가진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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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서 생산되는 포도. 백구포도는 1940년대 이전 부용역(芙蓉驛) 부근에서 일본인 시마모토가 처음 재배하였고, 1960년대 들어 재배 면적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백구농업협동조합 주관으로 백구포도축제를 개최하여 전국적으로 홍보하기도 하였다. 백구면 일대는 토질이 경사 5도 안팎의 사양토인데다 일조량이 풍부하여 포도 재배에 적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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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학동리에 있는 표고버섯 재배 단지. 전라북도 김제시는 벼농사 중심의 지역 농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2008년 읍·면·동별 특화 작물을 발굴하였다. 이 중 김제시 백구면은 지역의 특성이 고려되어 표고버섯이 특화 작물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2009년 2월 웰빙 문화 확대 및 소비 형태 변화로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13가구를 중심으로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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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학동리에 있는 표고버섯 재배 단지. 전라북도 김제시는 벼농사 중심의 지역 농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2008년 읍·면·동별 특화 작물을 발굴하였다. 이 중 김제시 백구면은 지역의 특성이 고려되어 표고버섯이 특화 작물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2009년 2월 웰빙 문화 확대 및 소비 형태 변화로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13가구를 중심으로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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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백석면(白石面)의 ‘백(白)’자와 연산면(延山面)의 ‘산(山)’자를 따서 백산면(白山面)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던 지역으로, 신라시대에 벽성군, 고려시대에 전주속현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석면의 금동·삼수·석정·사가·괴방·소음·황경·자학·상서·하서·요교·돌제·옥정·석정·상두악·하두악·상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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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서 생산되는 무청.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생산되는 무는 주로 단무지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무 잎은 그대로 버려지기 일쑤였고, 일부는 가정에서 시래기를 만들어 이용하곤 하였다. 이렇게 버려지는 무 잎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던 중 근래에 불어닥친 음식 웰빙 바람을 타고 우리의 전통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추세 속에서 김제시는 무 잎으로 시래기를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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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백산서원(白山書院)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청곡(靑谷) 윤찬(尹瓚)을 비롯하여 구봉(九峰) 윤여임(尹汝任), 죽계(竹溪) 백선남(白善男), 죽음(竹陰) 윤자선(尹滋善), 담재(澹齋) 윤자민(尹滋民)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윤찬은 영흥군(鈴興君) 윤지효(尹之孝)의 아들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어가(御駕)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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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백산저수지는 다른 저수지와는 달리 주변에서 집수된 물이 아닌 섬진강 수계인 운암호의 물을 간선 수로로 이동시켜 펌프로 퍼 올려 저수하는 양수저수지이다. 백산저수지는 호남 야산 개발과 함께 축조된 저수지로서 1969년 1월 1일 착공하여 그해 12월 31일 준공되었다. 백산저수지의 제당 형식은 휠댐이며, 제당 체적은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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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전망대. 두악산(斗岳山)[58m]은 김제시 흥사동과 백산면 하정리 경계에 위치한다. 두악산의 북서쪽에는 백산저수지가 있고, 남쪽은 신평천(新坪川)의 발원지가 된다. 두악산은 마치 말[斗]에다 쌀을 담아 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유래된 명칭이다. 흥사동은 1989년 김제시에 편입되기 전에 백산면에 속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두악산전망대를 일명 백산전망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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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백석서원(白石書院)에는 백석 유집(柳楫)[1585~1651], 창강 조속(趙速)[1595~1668], 반곡 유도(柳棹)[1604~1663] 등 향현 3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주벽에는 유집이 자리하고 있다. 유집은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와 찰방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당시 이흥발(李興跋)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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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학력이 충실하고 창의적인 어린이, 자연을 사랑하고 공동체 의식이 강한 어린이, 기초 체력 단련을 통한 진취적인 기상이 충만한 어린이,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는 개성 있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큰 뜻을 품고 새롭게 생각하며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이다. 1925년 4월 20일 백석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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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수여(秀汝). 고조할아버지는 첨사(僉使) 백장(白璋)이며, 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역임한 백광호(白光浩)이다. 백선남(白善男)[?~1636]은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의 패륜함을 목도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다가 인조 때 창원부사에 임명되어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다. 16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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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예가. 최규상(崔圭祥)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춘곡(春谷)·설송(雪松)·설하(雪霞), 자는 백심(伯心)이다. 초명은 규하(圭夏)로 지었으나 후에 보근(輔根)이라 불렀다. 호는 처음에는 춘곡(春谷)으로 불렀다가 전주로 이거하며 설송으로 불렀고, 말년에는 설하(雪霞)라 하였다. 당호는 노하당주인(老霞堂主人) 또는 취묵헌주인(醉墨軒主人)이라 하였다. 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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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자연마을. 백운동(白雲洞)이라는 명칭은 이 마을이 높은 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항상 흰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백운동은 한때 ‘제2전매청’이라 불렀다고 한다. 광복 후 담배 사기가 몹시 힘들었던 시절에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담배 마는 기계를 설치하고 담배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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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던 날에 행하는 풍속.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전 근대시기에는 아기를 낳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출생 후 아기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각종 전염병과 영양상의 이유로 영·유아기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아기가 태어난 후 일정한 시간 단위로 의미를 두어 일가친척이나 이웃들과 함께 아기가 건강하게 자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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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의 시화(市花). 백일홍(百日紅)은 김제시를 상징하는 꽃으로 곳곳에 심어져 있다. 특히 금산사 미륵전 앞에 붉게 핀 백일홍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으며, 귀신사 석탑 앞의 백일홍과 어깨를 견준다. 백일홍은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배롱나무 또는 백일초라고도 한다. 목백일홍은 껍질이 유별나게 생겨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높이는 3~7m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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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의 시화(市花). 백일홍(百日紅)은 김제시를 상징하는 꽃으로 곳곳에 심어져 있다. 특히 금산사 미륵전 앞에 붉게 핀 백일홍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으며, 귀신사 석탑 앞의 백일홍과 어깨를 견준다. 백일홍은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배롱나무 또는 백일초라고도 한다. 목백일홍은 껍질이 유별나게 생겨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높이는 3~7m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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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에 있는 자연마을. 백자를 굽던 마을이라 하여 백자동(白磁洞)이라고 부르다가, 도공들이 천대받는 사회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고 마을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고 해서 백자(百子)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당시 익산군 함라현에 살던 유군심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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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풍왕을 중심으로 백제를 다시 세우고자 한 운동.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공격하자 의자왕과 태자를 비롯한 왕족들은 웅진성으로 피난했다가 곧 항복함으로써 백제는 멸망하였다. 당은 백제 땅에 5도독부와 7주를 설치해 직접 지배하려 했으나 이는 백제 유민의 저항과 반감만 살 뿐이었다. 백제는 비록 수도가 함락되었지만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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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7월 15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백중은 농민들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 추수를 하기 전에 잠시 허리를 펴며 쉴 수 있는 날이다. 이를 ‘백종(百種)’, ‘중원(中元)’, ‘머슴날’ 등이라고도 한다. 백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음력 7월 중순이 되면 한 해 동안 공들여 지은 온갖 농산물들을 거둬들이기 때문에 백가지 종자가 풍성하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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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농주. 막걸리는 예부터 각 지방의 관인 양조장에서만 생산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제조하여 애용하기도 했다. 발효할 때 알코올과 함께 유산균이 생성된다.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하며, 6~7도로 알코올 성분이 적은 술이다. 막걸리는 탁주(濁酒) 또는 탁배기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두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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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7월 15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백중은 농민들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 추수를 하기 전에 잠시 허리를 펴며 쉴 수 있는 날이다. 이를 ‘백종(百種)’, ‘중원(中元)’, ‘머슴날’ 등이라고도 한다. 백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음력 7월 중순이 되면 한 해 동안 공들여 지은 온갖 농산물들을 거둬들이기 때문에 백가지 종자가 풍성하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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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실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백증(伯曾), 호는 해학(海鶴)·질재(質齋)·재곡(梓谷)·효산자(曉山子)이다. 이기(李綺)라고도 쓴다. 이기(李沂)[1848~1909]는 30대 중반부터 생활 근거지를 구하여 김제·대구·순창 등지를 전전하다, 44세에 황현(黃炫)의 주선으로 구례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학문과 세무에 뜻을 두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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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학성강당(學聖講堂)에서 사계절 꽃으로 담그는 전통주. 백화주(百花酒)는 밑술에 두 차례의 겹술[덧술]을 한 뒤 세 번째 겹술로 백 가지 꽃을 담아 최소한 40일에 걸쳐 만든다. 꽃은 이른 봄 매화에서부터 늦가을 감국까지 김제 들판에서 자라는 풀꽃과 꽃나무에서 채취하여 말린 것이다. 술 빛은 짙은 갈색인데 탁하진 않다. 도수는 14도쯤으로, 백화주는 도수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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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올리는 물대기 행사. 백파제는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에서 주관하여 김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풍년을 기약하는 전통의식으로, 영농철을 맞이하는 봄마다 호남평야의 고품질 쌀 생산을 기원하며 올리는 통수식이다. 한 해의 안전 영농과 풍년을 기원하고, 저수지를 비롯한 양·배수장 등의 수리시설물이 아무 문제없이 정상 가동·운영되기를 바라면서 실시하는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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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속하는 법정동. 백학(白鶴)은 백로가 밭에 내려앉는 형국인 백로하전혈(白鷺下田穴)의 산이 마을들을 감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입천면 백학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포내리, 선정리, 대덕리, 진관리, 용곳리, 대리와 금구군 일북면 난봉리, 이북면 두월리·홍천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김제면 백학리가 되었다.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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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에 있는 조선시대 일곱 개의 무덤군. 백학동 용자칠총에는 용녀(龍女)와 진표(陳表)의 신비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선인동마을에 진표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병에 걸리자 진표는 용하다는 의원을 모셔 왔지만 도무지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안타까움으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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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희보(趙希甫)이고, 어머니는 대언(代言) 홍림(洪琳)의 딸이고, 동생은 조의(趙義)이다. 조달(趙達)은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했다. 묘소가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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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학성강당(學聖講堂)에서 사계절 꽃으로 담그는 전통주. 백화주(百花酒)는 밑술에 두 차례의 겹술[덧술]을 한 뒤 세 번째 겹술로 백 가지 꽃을 담아 최소한 40일에 걸쳐 만든다. 꽃은 이른 봄 매화에서부터 늦가을 감국까지 김제 들판에서 자라는 풀꽃과 꽃나무에서 채취하여 말린 것이다. 술 빛은 짙은 갈색인데 탁하진 않다. 도수는 14도쯤으로, 백화주는 도수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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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과 성덕면, 죽산면에 걸쳐 있는 농경지. 남포들 주변으로 신평천(新坪川)이 남서류하여 공사중인 새만금간척지로 유입된다. 서북쪽으로는 해안 간척지인 광활들과 진봉들이 이어져 광활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남포들은 신평천의 하류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김제시 복죽동과 성덕면 대석리 하곡 충적평야와 성덕면 남포리, 죽산면 종신리·대창리 일대의 해안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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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에서 백구리까지 연결되는 도로. 전주와 군산을 잇는 번영로 벚꽃길은 일본이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 가고자 1908년에 건설한 도로이다. 전체 길이가 40㎞에 이르며,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 신작로이다. 당시에는 전군도로(全群道路)라고 불렀으며, 도로 양쪽에 벚나무가 늘어서 있어 벚꽃백리길이라고도 한다. 번영로 벚꽃길은 전주와 군산을 잇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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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와 용지면 봉의리에 걸쳐 있는 산. 봉의리(鳳儀里)라는 마을 이름도 봉의산(鳳儀山)에서 따왔으며 일명 범외산으로도 불린다. 용지면은 용(龍)과 관련된 연못[池]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봉의산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초당골[막은댐]을 지나 모악산기맥 분기점에서 전라남도 광양시의 백운산까지 뻗어가는 호남정맥에서 분기되어 북쪽으로 달리는 모악기맥이 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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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유가종(瑜伽宗) 승려. 본관은 경원(慶源). 아버지는 문하시중 이자연(李子淵)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이다. 혜덕왕사(慧德王師)[1038~1096]는 1048년(문종 2)에 출가하여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의 제자가 되었고, 이듬해 복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61년(문종 15)에 승과에 합격하여 대덕(大德)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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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에서 백구리까지 연결되는 도로. 전주와 군산을 잇는 번영로 벚꽃길은 일본이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 가고자 1908년에 건설한 도로이다. 전체 길이가 40㎞에 이르며,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 신작로이다. 당시에는 전군도로(全群道路)라고 불렀으며, 도로 양쪽에 벚나무가 늘어서 있어 벚꽃백리길이라고도 한다. 번영로 벚꽃길은 전주와 군산을 잇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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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무명·모시·삼베 등을 짜는 직조기. 베틀은 삼베나 명주·무명 등을 짜는 틀이다. 이러한 베틀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개발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시대 김제 지역에서는 삼나무 껍질을 실로 만들어 옷감을 만드는 삼베와 누에치기에 의한 명주를 베틀로 직조하였는데, 주로 목화솜을 따서 씨를 빼 물레를 돌려 실을 짜는 무명을 직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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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수확한 벼를 훑을 때 쓰던 농기구. 벼훑이는 지역에 따라 ‘훌치개’, ‘손그네’, ‘베훌깨’, ‘손홀깨’, ‘홀깨’, ‘가락홀태’로 부르며, ‘훌태’, ‘훌추이’, ‘벼치기’, ‘홀태’라고 하는 곳도 있다. 빗처럼 생긴 것은 ‘손홀태’라 하고 집게 같은 것은 ‘가락홀태’라고 부른다. 그리고 ‘손홀태’는 뒤에 ‘그네’로 발달 되었다. 이와 비슷한 것에 ‘짚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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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농경문화 테마파크. 벼고을테마파크에 속한 벽골제(碧骨堤)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로,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친 약 3㎞에 이르는 제방 및 수문과 1415년 건립된 벽골제 중수비를 포함하여,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1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총 463호의 사적 중 실제 기능을 수행한 유일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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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농경문화 테마파크. 벼고을테마파크에 속한 벽골제(碧骨堤)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로,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친 약 3㎞에 이르는 제방 및 수문과 1415년 건립된 벽골제 중수비를 포함하여,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1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총 463호의 사적 중 실제 기능을 수행한 유일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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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수확한 벼를 훑을 때 쓰던 농기구. 벼훑이는 지역에 따라 ‘훌치개’, ‘손그네’, ‘베훌깨’, ‘손홀깨’, ‘홀깨’, ‘가락홀태’로 부르며, ‘훌태’, ‘훌추이’, ‘벼치기’, ‘홀태’라고 하는 곳도 있다. 빗처럼 생긴 것은 ‘손홀태’라 하고 집게 같은 것은 ‘가락홀태’라고 부른다. 그리고 ‘손홀태’는 뒤에 ‘그네’로 발달 되었다. 이와 비슷한 것에 ‘짚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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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수확한 벼를 훑을 때 쓰던 농기구. 벼훑이는 지역에 따라 ‘훌치개’, ‘손그네’, ‘베훌깨’, ‘손홀깨’, ‘홀깨’, ‘가락홀태’로 부르며, ‘훌태’, ‘훌추이’, ‘벼치기’, ‘홀태’라고 하는 곳도 있다. 빗처럼 생긴 것은 ‘손홀태’라 하고 집게 같은 것은 ‘가락홀태’라고 부른다. 그리고 ‘손홀태’는 뒤에 ‘그네’로 발달 되었다. 이와 비슷한 것에 ‘짚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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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때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벽골군(碧骨郡)에 관한 기록은 부족하여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330년(비류왕 27) 벽골제 축조 기사로 보아 벽골제와 관련성이 있다는 설과 볏골[벼의 고을]이라는 말에 연원이 있다는 설이 있다.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무근촌(武斤村)·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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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문화예술회관에서 매년 개최되는 미술대전. 벽골미술대전은 서화(書畫)의 본고장이라는 김제의 자존심과 전통을 살리고 또한 이를 계승하고자 2000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 9월 제1회 벽골미술대전을 시작으로 총 10회의 행사를 이어 오는 동안 명실공히 신인 작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첫 회는 전국벽골한국화특별대전으로 시작하였으며, 차츰 공모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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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벽골제 단지 내에 있는 농악 전수관. 농악은 크게 웃다리농악[경기·충청 지역]·호남좌도농악·호남우도농악·영남농악·영동농악으로 나누어진다. 호남평야에서 발달한 호남우도농악은 잔가락이 많고 다채로워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를 전수하기 위한 우도농악전수관이 전라북도 정읍·영광 등 각 지역에 설치되어 있다. 벽골우도농악전수관도 그 중 하나이다.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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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벽골제 제4수문.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저수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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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벼고을테마파크 내에 있는 누각과 누정. 통일신라 제38대 원성왕 때 벽골제가 축조된 지 오래되어 나라에서는 토목 기술자인 원덕랑을 급파하였다. 원덕랑이 벽골제에 도착하여 보수 공사에 힘을 쏟는 동안, 지역 태수의 딸 단야(丹若)는 원덕랑을 흠모하게 되었다. 한편, 큰 공사에는 ‘용추(龍湫)에 사는 청룡과 백룡에게 제물을 바쳐야 공사가 순조롭다’는 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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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농경문화 테마파크. 벼고을테마파크에 속한 벽골제(碧骨堤)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로,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친 약 3㎞에 이르는 제방 및 수문과 1415년 건립된 벽골제 중수비를 포함하여,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1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총 463호의 사적 중 실제 기능을 수행한 유일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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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에서 단야의 설화를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 벽골제 쌍용놀이는 백룡과 청룡 두 용의 싸움과 이 과정에서 희생된 김제태수의 딸인 단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가 지금의 민속놀이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벽골제의 제방공사와 용의 이야기가 후대에 와서 인간들의 애정갈등과 함께 얽히면서 놀이화가 된 것이다. 쌍용놀이는 ‘벽골제’에 얽힌 다음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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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벽골제 제2수문.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저수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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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벽골제 제3수문.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저수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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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있는 문화시설. 김제시는 작가들에게는 작품 창작실을 지원하고 방문객들에게는 창작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문학과 예술을 아우른 공간을 조성하여 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김제시 창작스튜디오를 설립하였다. 김제시는 소설 『아리랑』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아리랑문학관 옆에 폐교된 백제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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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벽골제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유구석부. 유구석부(有溝石斧)는 홈자귀라고도 하는데, 나무를 깎거나 다듬는 데 사용하는 연모이다. 흔히 도끼가 전쟁이나 수렵, 나무를 벌채할 때 쓰였다면, 석부는 도끼로 여러 가지 용도에 맞게 재목을 자르거나 다듬어서 가공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또는 농사지을 때 땅을 파는 괭이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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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벽골제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유구석부. 유구석부(有溝石斧)는 홈자귀라고도 하는데, 나무를 깎거나 다듬는 데 사용하는 연모이다. 흔히 도끼가 전쟁이나 수렵, 나무를 벌채할 때 쓰였다면, 석부는 도끼로 여러 가지 용도에 맞게 재목을 자르거나 다듬어서 가공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또는 농사지을 때 땅을 파는 괭이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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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공립 박물관.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1호이자 고대 최대의 수리시설인 벽골제의 역사적 의의 및 발굴 경과, 그리고 수리와 치수(治水)의 역사 및 농경 도구를 비롯한 농경문화와 오래된 고을 김제를 주제로 하여 전시를 구현함으로써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전통 농경 사회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사적 벽골제를 만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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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대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과 질서를 잘 지키고 이웃을 생각하는 어린이, 규범을 존중하고 자율적이며 책임을 다하는 어린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탐구하며 창조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개성을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몸을 튼튼히, 행동을 바르게, 공부를 열심히’이다. 1936년 6월 15일 벽량공립학교로 설립 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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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던 마한 54소국의 하나. 벽비리국의 ‘비리’라는 말은 비리국(卑離國)·고비리국(古卑離國)·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내비리국(內卑離國) 등 마한의 소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백제의 부리(夫里)와 신라의 벌(伐)·불(弗)·불[火]처럼 평야, 읍락, 나라 등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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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년부터 199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가 멸망하면서벽골군은 757년(경덕왕 16) 중국식 한자명인 김제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현으로 격하되었고, 1403년(태종 3) 김제현에 지군사[1466년 군수로 개칭]를 두었고, 1466년(세조 12) 김제군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1670년 발간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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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 있었던 사립 전문대학. 벽성대학의 건학 이념은 ‘인재 육성, 흥국부민(人材育成 興國富民)’으로, 세계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각 산업 분야를 이끌어 갈 유능한 전문 기술 인력, 학생 개개인의 발전과 서해안 시대의 지역 발전 더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력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91년 10월 1일 벽성산업전문대학 설립 계획이 승인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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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 있었던 사립 전문대학. 벽성대학의 건학 이념은 ‘인재 육성, 흥국부민(人材育成 興國富民)’으로, 세계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각 산업 분야를 이끌어 갈 유능한 전문 기술 인력, 학생 개개인의 발전과 서해안 시대의 지역 발전 더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력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91년 10월 1일 벽성산업전문대학 설립 계획이 승인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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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서원. 서원은 나라 안팎의 훌륭한 분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지방의 청년들이 학문과 덕행을 연마하는 수도장이었다. 그러나 서원이 곳곳에 세워져 그 수효가 많아지자 갖가지 옳지 못한 일이 일어나 당파 싸움의 소굴이 되기도 하였다. 벽성서원(碧城書院)은 1965년 김해김씨 종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벽성서원의 구성은 외삼문인 어덕문(御德門), 정면 4칸,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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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 있는 박초의 영정을 모신 사당. 김제시 입석동에서 태어난 박초(朴礎)[1367~1454]는 본관은 함양, 자는 자허(子虛), 호는 토헌(土軒)이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15살에 진사로 태학에 입학하여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하였다. 전라도제찰사(全羅道提察司) 등을 거쳐 이조판서겸예문관대제학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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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국화가. 나상목(羅相沐)의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벽천(碧川)이다. 1924년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명 국전]에서 4회 연속 특선을 하는 등 산수화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나상목은 1939년 이리농림학교에 진학한 뒤 그림에 대한 재능을 나타내면서 독학으로 동양화 기법을 스스로 익혀 나갔다. 1945년 8·15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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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벽골제 단지 내에 있는 미술관. 벽천미술관(碧川美術館)은 한국 화단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나상목(羅相沐)[1924~1999]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미술관이다. 미술관 이름이기도 한 벽천(碧川)은 나상목의 호이다. 나상목은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출생했다. 대각선적 포치법(布置法)으로 화면에 자연사물을 배치하고 간결하면서도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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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예가. 조주승(趙周昇)의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장일(章日), 호는 벽하(碧下)이다. 1854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한학자이자 서예가로 이름난 조기석(趙沂錫)이다. 조주승은 어려서부터 예능에 대한 재주가 출중하였으며, 해서(楷書)와 사군자가 뛰어났다. 진(秦)·당(唐)·송(宋) 등 여러 나라 대가들의 글씨를 보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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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인간이 배설 행위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 뒷간은 인간의 배설물, 즉 오줌과 똥을 처리하기 위한 편의 시설이다. 이를 ‘해우소[근심을 푸는 장소]’ 또는 ‘변소[배설물을 처리하는 곳]’, ‘화장실’ 등이라고도 부른다. 옛 한국의 가옥 구조에서는 화장실을 대개 집의 뒤쪽에 두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며, 뒤를 보는 공간 또는 몸채 뒤의 으슥한 곳으로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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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에 있는 송기면을 모신 사당.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1882~1956]은 시(詩)·서(書)·화(畫)의 삼절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석정 이정직(李定稷)에게 글씨와 문인화 등을 배웠고, 대한제국 말기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인 간재 전우(田愚)의 제자로 글씨, 문인화, 문장에 뛰어났다. 병암사(屛巖祠)는 송기면의 제자들과 지역 유림들이 송기면의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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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화가. 김정기(金正基)의 본관은 언양(彦陽)이고, 초명은 병익(昞翼), 자는 성일(成一), 호는 운호(雲湖)·난사(蘭史)이다. 1904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성계리에서 태어났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밀양손씨(密陽孫氏) 제각인 염수재에 걸린 행서로 쓴 주련(柱聯)에 ‘모악산장’이란 직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이를 별호로 사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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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국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해 행해지는 제반 활동. 보건의료는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 사항으로 교육, 문화 등과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뉜다. 공적 영역은 중앙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중심이 되며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공중 보건과 보건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간 영역은 사설 의료 기관이 주가 되며 대학 병원과 의원을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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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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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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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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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예가. 최규상(崔圭祥)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춘곡(春谷)·설송(雪松)·설하(雪霞), 자는 백심(伯心)이다. 초명은 규하(圭夏)로 지었으나 후에 보근(輔根)이라 불렀다. 호는 처음에는 춘곡(春谷)으로 불렀다가 전주로 이거하며 설송으로 불렀고, 말년에는 설하(雪霞)라 하였다. 당호는 노하당주인(老霞堂主人) 또는 취묵헌주인(醉墨軒主人)이라 하였다. 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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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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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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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유가종(瑜伽宗) 승려. 본관은 경원(慶源). 아버지는 문하시중 이자연(李子淵)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이다. 혜덕왕사(慧德王師)[1038~1096]는 1048년(문종 2)에 출가하여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의 제자가 되었고, 이듬해 복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61년(문종 15)에 승과에 합격하여 대덕(大德)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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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보리의 줄기에서 이삭을 따내는 데 사용되는 농기구. 보리홀태는 보리의 알곡을 터는 농기구로 클, 보리훑이, 그네, 첨치, 천치(千齒)라고도 불리었다. 머리빗과 비슷한 모양으로, 쇠로 된 긴 이빨 20여 개를 틀에 박아 다리 4개를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단 다음 이빨 사이에 보리를 끼우고 잡아 당겨 훑음으로써 곡식의 알갱이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작업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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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보리의 줄기에서 이삭을 따내는 데 사용되는 농기구. 보리홀태는 보리의 알곡을 터는 농기구로 클, 보리훑이, 그네, 첨치, 천치(千齒)라고도 불리었다. 머리빗과 비슷한 모양으로, 쇠로 된 긴 이빨 20여 개를 틀에 박아 다리 4개를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단 다음 이빨 사이에 보리를 끼우고 잡아 당겨 훑음으로써 곡식의 알갱이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작업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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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필을 시조로 하고, 오옥린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보성오씨(寶城吳氏)는 오현필을 시조로 한다. 1216년(고종 3)에 거란군을 토평한 공으로 오현필의 큰형 오현보(吳賢輔)는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지고, 둘째 형 오현좌(吳賢佐)는 동복군(同福君)에, 오현필은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져 3형제가 파를 형성하여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입향조인 오옥린(吳玉麟)은 현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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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땅을 일구는 데 쓰는 농기구. 따비는 지방에 따라 따부, 따보, 때비, 탑, 보습으로도 부른다. 따비는 근래까지 서해안과 그 도서 지방 및 제주도에서 극젱이로 갈고 남은 구석진 땅이나 돌밭을 가는 데 사용되었다. 요즈음에는 솔뿌리나 청미래덩굴 등을 캐기도 하는데, 이를 솔따비라고 한다. ‘따비밭’이란 말은 따비로나 갈 만한 작은 밭을 말한다. 따비는 생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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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 전설에는 조선 말기에 성명 미상의 사람이 창건하고 승려 김태상이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좀 더 신빙성 있는 것은 1930년에 창건하고 1969년에 승려 최규상이 중건하였다는 설이다. 2002년 수해로 인해 사찰 입구 축대가 무너져 다시 정비했다. 보현사의 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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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신흥리에 있는 자연마을. 만경강(萬頃江)의 바닷물이 마을 앞뒤로 드나든다 하여 보안(洑岸),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뜻에서 복간(卜間)이라 했다고 한다. 한때 일본인들이 ‘신복’이라고 부르다가, 광복 후 다시 복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옛날 조수를 막기 위해 쌓았던 제방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보간(洑間)이라고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복간이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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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6월과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중복·말복을 가리키는 말. 삼복은 하지(夏至)로부터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立秋) 후 첫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고 한다. 이를 그냥 ‘복날’이라고도 일컫는다. 삼복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로서, 흔히 이때의 더위를 ‘삼복더위’라고도 한다. 따라서 복날이 되면 술과 반찬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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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날 김이나 취 등으로 싸서 먹는 음식. 쌈이란 명칭은 김, 상추, 배춧잎, 취, 호박잎, 깻잎, 생미역 등에 밥과 쌈장을 얹어 손으로 모아 싸서 먹는 데서 유래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정월 대보름날 나물 잎에 밥을 싸서 먹으니 이것을 복쌈[길쌈]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복을 싸서 먹는다는 뜻으로 복을 기리는 서민의 소박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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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복재(復齋). 증조부는 정인(鄭絪)이고, 조부는 정섬(鄭暹), 아버지는 정흥사(鄭興嗣)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 아내는 노숭(盧崇)의 딸이다. 정곤(鄭坤)은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고, 1386년(우왕 12)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조선 1414년(태종 14)에는 전주교수관(全州敎授官)으로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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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속하는 법정동. 자연마을인 상죽(上竹)과 죽산(竹山)에서 ‘죽(竹)’자를 따서 복죽(福竹)이라 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대촌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산면과 대촌면을 병합하여 월촌면이 되면서 김제군 월촌면 복죽리[신흥, 후우, 상죽, 중리, 전우, 죽산, 제내, 율교의 일부를 병합]가 되었다. 1989년 김제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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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복행(福行), 휘(諱)는 환복(煥福). 아버지는 조익성(趙翊成)이다. 조환용(趙煥容)은 1823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하던 조선 후기에는 지방의 납세 물품을 납세자들이 직접 지정된 창고가 있는 데까지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 배를 이용하여 물품을 운반하는 군현민은 그나마 고통이 덜하지만 김제와 금구, 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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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상가 밀집 지역의 옛지명. 본정통(本町通)은 일제강점기 때 김제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던 서독안경사거리[전북지업사, 과거 박약국 간이 배차장]~안경박사사거리~금만사거리 구간을 말한다. 금만쇼핑거리라 부르기도 하였다[박약국사거리까지를 말하기도 함]. 일제강점기에 혼마찌라고 하다가 해방 이후 본정통이라 불렀는데, 당시 김제에서 가장 번화했던 상가 밀집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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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제시 죽산면에서 활동한 의병. 김성언(金成彦)은 1847년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 마을에서 훈장으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06년 국운이 기울자 창원과 거창 등지에서 왜병과 항전하는 등 용맹을 떨쳤다. 그러나 왜병의 감시와 핍박이 심해지자 가족과 가산을 버려 둔 채 고향을 떠나 김제의 죽산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은둔 생활을 하면서 비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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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양전동과 서정동, 봉남면, 금산면 원평리에 걸쳐 있는 농경지. 봉남들 주변으로 원평천(院坪川)이 흐르고 있다. 봉남들은 원평천의 상류와 중류에 형성되어 있는 하곡 충적평야이다. 지방도 712호선이 봉남들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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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조선 말기 금구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구 읍내의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였다. 양정·만복·구호·신덕·대하·송내·평산·등용·주자·화암·하봉·용반·유산·소정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서면 신정·우산·성리·수월·회정·중리·도장 등 7개 리, 일북면 봉강리·덕조리 각 일부, 초처면 내광리·성덕리·유덕리 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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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행촌리 동령마을에서 음력 1월 3일에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봉남면 동령 당산제는 매년 음력 1월 3일 오시(午時)에 행촌리 동령마을의 북쪽 끝에 서 있는 당산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부락제이다. 당산제는 각 마을마다 지내는 형식과 기원의 대상에 따라 산신제, 산천제, 산제, 천제, 성황제, 수신제 등 제각각의 이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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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 성덕마을에 있는 수령 약 480년의 보호수. 버드나무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게 자라 왕버들이라고 한다. 개울가와 호수가 등지에 많이 서식하며, 습지에서 잘 자라 수원(水源)의 지표 식물이기도 하다. 한자어로 하류(河柳) 또는 귀류(鬼柳)라고도 한다. 높이는 20m, 가슴높이 둘레는 1m 넘게 자라며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깊게 갈라진다. 새 가지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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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대송리에 있는 주민 복지 시설. 봉남문화복지의집은 주민들의 건강, 오락, 교양 증진을 위한 다양한 문화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9년 5월 25일 김제시의 지원을 받아 봉남면에서 직접 운영하는 봉남문화복지의집이 개소되었다. 요일 별로 30~70명 규모의 요가교실, 노래교실, 난타교실을 연중 계속 운영하고 있다. 향후 수강생들로 팀을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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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대송리에 있는 주민 복지 시설. 봉남문화복지의집은 주민들의 건강, 오락, 교양 증진을 위한 다양한 문화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9년 5월 25일 김제시의 지원을 받아 봉남면에서 직접 운영하는 봉남문화복지의집이 개소되었다. 요일 별로 30~70명 규모의 요가교실, 노래교실, 난타교실을 연중 계속 운영하고 있다. 향후 수강생들로 팀을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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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대송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나라를 사랑하고 전통문화를 숭상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자주인, 예절을 존중하고 근검절약하며 질서를 생활화하는 도덕인, 면학 기풍을 조성하고 기초 학력을 증진하며 자학자습하는 실력인,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소질을 계발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인,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고 정서를 순화하며 심신을 단련하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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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대송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나라를 사랑하고 전통문화를 숭상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자주인, 예절을 존중하고 근검절약하며 질서를 생활화하는 도덕인, 면학 기풍을 조성하고 기초 학력을 증진하며 자학자습하는 실력인,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소질을 계발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인,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고 정서를 순화하며 심신을 단련하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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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신호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더불어 사는 어린이, 실력 있는 어린이, 창의적인 어린이, 즐겁게 일하는 어린이, 심미적인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새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실천하며 튼튼하게 자라자’이다. 1925년 4월 20일 4년제 하리보통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39년 4월 7일 6년제 인가를 받았다. 1941년 4월 1일 봉남국민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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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와 선암리에 걸쳐 있는 산. 봉두산(鳳頭山)은 봉황을 닮은 형상이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봉두산은 현 동쪽 이십리에 있다[鳳頭山在縣東二十里]’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통일신라시대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는 월전리 성터가 있어서 인지 ‘산성봉(山城峰)’으로 나와 있다. 봉두산의 산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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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난봉동, 백학동, 황산면, 금구면 산동리에 걸쳐 있는 농경지. 봉산들 주변으로 두월천(斗月川)이 흐르고 있다. 봉산들은 두월천 주변의 하곡 충적평야로, 고잔들 또는 역전평야라고도 한다. 지방도 714호선은 동서 방향으로 봉산들을 지나며, 호남고속국도는 남북 방향으로 봉산들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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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산이씨 종중 묘역. 선암리 봉산이씨 종중 묘역은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의 재넘어마을에서 영천마을로 지나가는 도로로 접어들면 나오는 오른쪽 산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묘역의 남쪽으로는 안동권씨 열녀비와 온덕기 효자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서도리 유물산포지가 위치하고 있다. 선암리 봉산이씨 종중 묘역에는 4기의 무덤이 산재해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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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봉성온씨 동성마을. 봉성온씨(鳳城溫氏)는 온달(溫達)을 시조로 하고 수신재(守愼齋) 온신(溫信)을 입향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후손들이 지금의 금구면 일대인 봉성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었으므로 달리 금구온씨(金溝溫氏)라고도 한다. 입향조인 온신은 1366년(공민왕 15) 12월 이존오(李存吾)·정추(鄭樞) 등과 더불어 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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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을 시조로 하고, 온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온씨(溫氏)의 시조는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이고, 금구온씨(金溝溫氏)는 온신(溫信)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온신의 호는 수신재(守愼齋)이며, 왕명으로 금구에 와서 살게 되면서 후손들이 금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김제시 금구면의 옛 이름은 봉성(鳳城)으로, 금구온씨는 봉성온씨(鳳城溫氏)라고도 부른다. 온신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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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국경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다른 지역의 변경에 알리기 위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외부로부터 적이 침입하였을 때에는 외적과의 격전지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는데, 평상시에는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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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성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관을 모신 영당. 김관(金瓘)[1425~1485]의 본관은 언양(彦陽)으로, 초명은 종동(終同). 자는 영중(瑩中), 호는 묵재(默齋)이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1479년 동지중추부사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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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월봉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김제 지역에 활발하게 복음이 전파된 배경 중 하나는 동학 혁명 직후, 기독교로 귀의한 동학도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다. 1900년에 세워진 입석리교회가 동학 세력의 개종으로 설립된 교회의 대표적인 예이다. 전의렴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곽성국 등이 월촌면 입석리에 기도처를 마련하여 1900년 10월 1일 설립한 입석리교회가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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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연봉의 ‘봉’자와 두월의 ‘월’자를 따서 봉월리(鳳月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이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월리·금마리 각 일부, 일북면 연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봉월리라 하고 김제군 쌍감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쌍감면을 황산면으로 개칭함에 따라 김제군 황산면 봉월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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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봉월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기와 가마터. 봉월리 기와요지는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암키와와 수키와 등의 기와와 토기편 등 유물 현황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어 인근 지역에 기와를 공급해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봉월리 기와요지는 해발 40m 정도의 구릉성 야산이 대체로 동서로 뻗어 있는 동측 사면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으로는 저평한 구릉성 야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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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봉월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기와 가마터. 봉월리 기와요지는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암키와와 수키와 등의 기와와 토기편 등 유물 현황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어 인근 지역에 기와를 공급해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봉월리 기와요지는 해발 40m 정도의 구릉성 야산이 대체로 동서로 뻗어 있는 동측 사면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으로는 저평한 구릉성 야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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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의산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봉의리(鳳儀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개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산리·신사리·영동리 일부, 목연면 월전리 일부를 병합하여 봉의리라 하고 김제군 용지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용지면 봉의리가 되었다. 모악산(母岳山)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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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와 용지면 봉의리에 걸쳐 있는 산. 봉의리(鳳儀里)라는 마을 이름도 봉의산(鳳儀山)에서 따왔으며 일명 범외산으로도 불린다. 용지면은 용(龍)과 관련된 연못[池]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봉의산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초당골[막은댐]을 지나 모악산기맥 분기점에서 전라남도 광양시의 백운산까지 뻗어가는 호남정맥에서 분기되어 북쪽으로 달리는 모악기맥이 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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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신천강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신천(信川). 호는 봉호(鳳湖).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삼중대광도첨의우정승(三重大匡都僉議右政丞)을 지낸 강숙(康叔)이고, 할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지낸 상산백(象山伯) 강서(康庶)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강윤(康允)이다. 강원기(康元紀)는 1348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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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산. 서해를 바라보는 봉화산(烽火山) 정상에 봉화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주춧돌과 자연석으로 쌓았던 담장의 흔적이 뚜렷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돌들을 흙으로 묻고 헬리포트를 만드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봉수대의 상단좌대는 가로 6m, 세로 10m의 직사각형이며, 서북쪽과 동북쪽은 능선이 있고 좌우는 절벽이다. 정상의 넓이는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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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오정동에 있는 농공단지. 봉황산업단지(鳳凰産業團地)는 신행정수도의 배후 중심지로 공업 입지 제공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1989년 1월 농공단지 기본계획이 수립되어 같은 해 12월 14일 농공단지로 지정 공고되었다. 1990년 10월 19일부터 1992년 5월 3일까지 총 사업비 57억 원을 투입하여 봉황농공단지가 조성되었다. 1992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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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에 있는 꾸지뽕나무 농장. 꾸지뽕나무는 뽕나무과에 딸린 낙엽작은키나무이다. 뽕나무를 닮았다 하여 꾸지뽕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줄기에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고 가을철에 오디를 닮은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돌이 많고 메마른 땅에서 잘 자라며 조선시대에는 거문고 줄이나 활을 만드는 데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꾸지뽕나무는 어혈(瘀血)을 없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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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봉황산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봉황산(鳳凰山) 안에 있어 봉황사(鳳凰寺)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절은 1968년에 한 보살이 불당을 짓고 창건한 암자형 사찰이다. 기도처로 이름 나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목조와가 3칸으로 지어진 법당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요사채는 1991년 승려 강귀석이 건립했는데, 콘크리트 벽돌로 된 ㄱ자형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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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부마을의 지형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국과 같아서 부거리(浮去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전혀 뜻이 다른 부거리(富巨里)로 고쳤다. 조선 말기 김제군 연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건리·점리·하건리·신리 일부, 백석면 장자리 일부를 병합하여 부거리라 하고 김제군 백산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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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가마터. 옹기는 삼국시대 이후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용구로서, 음식을 저장하는 용기로 널리 쓰였다. 옹기는 특히 우리나라 전통시대의 서민문화를 알 수 있는 독특한 자료이면서, 우리나라 문화의 우수성을 알게 해 주는 자산이기도 하다. 부거리 옹기요지는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소용되는 옹기를 만들었던 곳으로,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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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가마터. 옹기는 삼국시대 이후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용구로서, 음식을 저장하는 용기로 널리 쓰였다. 옹기는 특히 우리나라 전통시대의 서민문화를 알 수 있는 독특한 자료이면서, 우리나라 문화의 우수성을 알게 해 주는 자산이기도 하다. 부거리 옹기요지는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소용되는 옹기를 만들었던 곳으로,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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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교리의 으뜸가는 부교마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부교마을은 백제시대에 이미 형성된 마을로, 고려 말 너무 가난하여 비골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부교(父橋)로 고쳤다. 이웃 모산마을[母山마을]과 대비되는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1789년 발간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뜰 ‘부(浮)’자와 다리 ‘교(橋)’자를 써서 부교(浮橋)라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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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백자마을에서 일제강점기 옹기요지라고 전하는 터. 옹기는 전통적으로 발효 식품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인의 음식 문화에 가장 적합한 저장 용기이다. 일찍부터 우리 민족은 옹기를 조미료와 주식·부식물의 저장 용구, 주류 발효 도구, 음료수 저장 용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찰흙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그릇에 미세한 공기구멍을 만들고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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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자흥마을에서 일제강점기 옹기요지라고 전하는 터. 부교리 자흥마을 전 옹기요지는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자흥마을의 남측에 위치하는 구릉 말단부로, 맞은편 구릉의 곡간에 해당된다. 현재 부교리 자흥마을 전 옹기요지는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며, 주변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밭 주변으로 비닐하우스 3동이 위치하고 있다.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자흥마을 사람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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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 있는 농경지. 부량들의 북쪽으로는 원평천(院坪川)이 동에서 서류하여 공사중인 새만금간척지로 유입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진강(東津江)이 흘러 새만금간척지로 유입되고 있다. 부량들은 원평천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충적평야이다. 주요 들녘으로는 금강리에 말배미들·쇠똥거리들·새배미들·신평·앵두밭들·저그밭들·한똘들, 신두리에 대구들·대맹이들·벽겨들·빼지기들·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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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부량면(扶梁面)이라 부르기 시작한 때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량의 ‘부(扶)’자가 부령군[지금의 부안군]의 ‘부’자와 같고, ‘양(梁)’자가 들보 ‘양’자임으로 미루어, 벽골제를 만든 뒤 부령군으로 흐르는 수로[벽골제 제3수문인 중심거에서 부령군으로 흘렀다고 한다] 옆에 있는 지역이어서 백제시대부터 불린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시대에 야서이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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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대평리 대장마을에 세워져 있는 입석. 입석은 마을 어귀나 마을 안에 세운 일정한 형태를 갖춘 돌로서, 우리 조상들은 이 입석을 가정과 마을을 지켜 주는 신앙물로 생각하였다. 이에 우리 조상들은 매년 새해 정초가 되면 입석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당산제를 행하여 왔다. 김제시 부량면 대평리 대장마을은 벽골제 제방 아래의 외배미들 중앙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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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자연마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마을의 위치는 만경면 남쪽 13리이며, 백제시대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으로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무읍(武邑)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김제군 관할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부윤현(富潤縣)으로 바뀐 뒤 잠시 임피현에 속하였다. 그 후 만경현(萬頃縣)에 속하였다가 현이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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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김제에서 활동한 승려. 성은 진(陳),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이다. 부설은 경주 출신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났다. 20세가 되던 해에 불국사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찾아가 출가하게 되었다. 일심으로 인내하는 사찰 생활과 부처의 모습을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하여 염불하고 불경을 읽는 등 수도 생활에 정진하여 경학(經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날마다 그의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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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찹쌀로 빚은 맑은 술에 밥알을 동동 뜨게 만든 술. 동동주란 술 위에 밥알이 동동 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술 이름이다. 그 외에 맑은 술에 개미가 물에 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부의주(浮蟻酒), 나방이 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부아주(浮蛾酒), 또는 녹의주(綠蟻酒)라고도 한다. 『목은집(牧隱集)』에 의하면 부의주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술의 색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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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도정공장. 오오쓰미[大隅] 도정공장 또는 부용 도정공장이라고 부르는 월봉 도정공장은 일본이 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할 때 지어진 건물이다. 일제시대 김제 만경평야는 쌀과 돈이 넘쳐흘러 조선 식민지 침탈에 나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기에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일제는 김제 지역에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근처에 항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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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반월리 일대에 있는 농경지. 부용들의 북쪽으로는 만경강(萬頃江)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으며, 인근에 부용천(芙蓉川)이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백구들과 동계들이 이웃하고 있다. 부용들은 만경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충적평야로, 만경강을 젖줄로 삼고 있다. 주요 들녘으로는 소의 멍에처럼 생긴 들, 연못이 있는 둠벙배미, 대꼬지들, 한국전쟁 때 난민이 머물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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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용리(芙蓉里)라는 지명은 이 지역이 연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유래된 이름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김제군 목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가전리·내가전리, 공동면 반월리 일부를 병합하여 부용리라 하고 김제군 백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백구면 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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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부용사(芙蓉寺)의 미륵부처가 영험한 것으로 알려져 약사여래불상(藥師如來佛像) 앞에 엎드려 불공을 드리면 반드시 효과를 본다는 신기한 전설이 전한다. 단청기능보유자인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승려 김일섭(金日燮)이 1936년에 창건하였다. 당시 지금의 요사채인 초가 8칸을 구입하여 불상을 봉안해 오다가 1961년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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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호남선의 철도역. 부용리는 본래 김제군 목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외가전리·내가전리와 공동면의 반월리 일부를 합하여 ‘부용리’라는 이름으로 김제군 백구면에 편입된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이에 따라 역명도 지역 명칭에 따라 ‘부용역’이 되었다. 부용역은 익산역과 김제역의 중간에 위치한 역으로 1914년 1월 역사가 건립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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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부용저수지는 1945년 1월 1일 착공하여 그해 12월 31일 준공되었다. 부용저수지의 제당 형식은 휠댐이며, 제당 체적은 1,665㎥이다. 제방의 길이는 185m이고, 제방의 높이는 5m이다. 총저수량은 15.9톤이며, 유효 저수량은 15.9톤이다. 취수 형식은 사통형이다. 유역 면적은 42㏊이며, 홍수 면적은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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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 승반산과 용지면에서 발원하여 청하면 동지산리에서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부용천이 발원하는 김제시 흥사동은 흥복사(興福寺)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승반산과 승가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승반산 서북쪽으로 1㎞ 지점에는 두악산이 있다. 부용천이 만경강에 합류되는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는 내륙 지역 동쪽에 있어 앞산의 이름대로 동지산이라 불렀다. 동지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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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생활을 스스로 실행하며 더불어 생활하는 어린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지식을 쌓고 배움을 실천하는 어린이, 탐구 활동과 기능 교육의 심화로 배움을 실천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기초 체력을 연마하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다양한 학습 경험으로 아름다운 생활을 하는 심미적인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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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현재의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고현마을과 부서울마을 일대가 과거 부윤현의 위치이다. 성덕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부설각시’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부서울’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만경면 남쪽 13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이 지금도 고현과 부윤으로 부르는 점 등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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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농주. 막걸리는 예부터 각 지방의 관인 양조장에서만 생산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제조하여 애용하기도 했다. 발효할 때 알코올과 함께 유산균이 생성된다.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하며, 6~7도로 알코올 성분이 적은 술이다. 막걸리는 탁주(濁酒) 또는 탁배기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두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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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찹쌀로 빚은 맑은 술에 밥알을 동동 뜨게 만든 술. 동동주란 술 위에 밥알이 동동 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술 이름이다. 그 외에 맑은 술에 개미가 물에 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부의주(浮蟻酒), 나방이 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부아주(浮蛾酒), 또는 녹의주(綠蟻酒)라고도 한다. 『목은집(牧隱集)』에 의하면 부의주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술의 색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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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종이에 글씨나 그림 또는 기호 등을 그린 것으로, 재앙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 부적은 복을 빌고 재앙을 쫓는 주술물로서 하늘이나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증험하는 인표이다. 부적을 만들 때에는 택일을 하여 목욕재계한 후 동쪽을 향하여 정수(淨水)를 올리고 분향을 한다. 그리고는 이[齒]를 “딱 딱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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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행동에 스며들어 구석구석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행동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정신을 붙들기도 한다. 동곡마을 전 이장이자 3대째 증산 신앙을 믿고 있는 김재열 씨와 아내 김영애 씨 부부의 밭에는 향긋한 부추가 가득 심어져 있다. 김재열 씨가 간과 신장에 좋아 ‘간의 채소’라고도 불리는 부추를 재배하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믿었던 증산 신앙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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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있는 자연마을. 금을 많이 캐내어 부자가 된 마을이라는 뜻으로 부평(富坪)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금을 캔 구덩이를 메우고서 그 위에 집을 짓고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뜰 ‘부(浮)’자를 써서 부평(浮坪)이라고 했는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부자 ‘부(富)’자로 고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부평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사금(砂金)을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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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4세기 말로서, 당시 고구려·백제·신라는 부족 연맹체를 벗어나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주 국가로 도약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들어와 종래의 씨족 중심적 세계관과 종교관을 대체하는 보편적 윤리와 이념을 제공하였다. 고구려의 불교는 372년(소수림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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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풀무는 다른 말로 ‘궤풀무’라고도 하는데, 이는 생긴 모습이 마치 상자 모양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또한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쓰여 지는데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불메’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손풀무를 ‘불미’, 발풀무를 ‘발판불미’라고 한다. 또한 농사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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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풀무는 다른 말로 ‘궤풀무’라고도 하는데, 이는 생긴 모습이 마치 상자 모양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또한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쓰여 지는데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불메’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손풀무를 ‘불미’, 발풀무를 ‘발판불미’라고 한다. 또한 농사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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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의 시조(市鳥). 비둘기는 한 번 맺은 짝과 평생을 함께 한다. 번식 행동은 단순하여 수컷이 구구구 울며 목을 숙이거나 뒤로 젖히는 동작을 하며 암컷 곁으로 와서 부리를 벌리면 암컷은 그 안에 부리를 넣는다. 수컷은 먹이를 토해 주지만, 실제로 토하지는 않고 형식적으로 하는 종도 있다. 둥지는 수컷이 자리를 결정하고 재료를 나르면 암컷이 짓는다. 나무 위에 잔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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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신정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민주 시민 교육의 생활화로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고 깊이 탐구하는 어린이, 자주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의지가 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마음껏, 재주껏, 힘껏 푸른 꿈을 키우는 어린이’이다. 1963년 5월 10일 용동국민학교 비룡분교로 개교하였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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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손바닥 크기의 납작한 돌을 땅바닥에 세우고, 다른 돌을 던져 쓰러뜨리며 노는 놀이. 비석차기는 상대편의 비석을 일정선 상에 세워 놓고 자신의 비석을 운반해 상대 비석을 쓰러뜨려 승부를 가리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비석까기’, ‘비석치기’, ‘비사치기’ 등이라고도 한다. 돌을 이용한 가장 발달된 놀이로서 전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운동 효과가 높은 편이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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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손바닥 크기의 납작한 돌을 땅바닥에 세우고, 다른 돌을 던져 쓰러뜨리며 노는 놀이. 비석차기는 상대편의 비석을 일정선 상에 세워 놓고 자신의 비석을 운반해 상대 비석을 쓰러뜨려 승부를 가리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비석까기’, ‘비석치기’, ‘비사치기’ 등이라고도 한다. 돌을 이용한 가장 발달된 놀이로서 전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운동 효과가 높은 편이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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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손바닥 크기의 납작한 돌을 땅바닥에 세우고, 다른 돌을 던져 쓰러뜨리며 노는 놀이. 비석차기는 상대편의 비석을 일정선 상에 세워 놓고 자신의 비석을 운반해 상대 비석을 쓰러뜨려 승부를 가리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비석까기’, ‘비석치기’, ‘비사치기’ 등이라고도 한다. 돌을 이용한 가장 발달된 놀이로서 전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운동 효과가 높은 편이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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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손바닥 크기의 납작한 돌을 땅바닥에 세우고, 다른 돌을 던져 쓰러뜨리며 노는 놀이. 비석차기는 상대편의 비석을 일정선 상에 세워 놓고 자신의 비석을 운반해 상대 비석을 쓰러뜨려 승부를 가리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비석까기’, ‘비석치기’, ‘비사치기’ 등이라고도 한다. 돌을 이용한 가장 발달된 놀이로서 전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운동 효과가 높은 편이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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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비승(丕承).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중호(姜仲虎)이다. 강종립(姜宗立)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공을 세워 정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따르면 지중추에 올랐다고 되어 있는데, 증직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