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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위치한 당간지주.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둔다. 당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 주변에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어 이 주변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전하는 기록은 없다.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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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위치한 당간지주.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둔다. 당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강릉 수문리 당간지주는 옥천동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일대가 절터로 추정되나 지금은 주거지로 변하여 절터의 존재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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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서 7번국도를 따라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교량. 대관령에서 발원하여 강릉시 남쪽을 흘러 동해로 유입하는 남대천에는 내곡교·남산교·강릉철교·강릉교·포남교·월드컵교·공항대교가 놓여 있다. 강릉교는 이들 중 하나이다. 강릉시 옥천동과 노암동을 이어주는 교량이며, 강릉시 강남로의 연장이다. 1970년에 가설되었다. 길이는 180m, 폭은 18m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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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회원을 중심으로 전개된 항일학생운동. 독서회는 1925년 이후 광주 지역에서 고조된 분산적이고 개인적인 항일투쟁을, 기조적 교양(基調的敎養)과 추진력에서 체계적·통제적으로 배양시켜 나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서회중앙본부 밑에 각 학교에 단위 독서회를 조직하여 기반을 확대시켜 항일학생층을 폭넓게 수용하고 중앙에서 지도 통제함으로써, 막강한 항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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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강릉시 농민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 이익 증진을 위해 조합원에 의해 설립·소유·운영되는 협동조합. 1957년 설립된 농업 은행과 1958년에 설립된 농업 협동조합을 통합하여 1961년 8월 15일에 이동 단위 조합으로 설립되었다. 1969년 이동 단위 조합을 4개 조합으로 합병하였고, 1972년 1월에는 성덕 조합 사무소 및 연쇄점을 개설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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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일대에서 발견된 석탑의 부재. 석탑의 일부분으로 화강암 재질로 이뤄졌으며, 2기가 발견되었다. 석탑의 일층 옥신석의 한 면으로 보이는 것에는 여래좌상이 양각되어 있고 우주 한 개가 조각되어 있다. 상층기단의 한 면으로 보이는 것에는 팔부신상(八部神像)이 양각되어 있다. 여래좌상은 얼굴의 마모가 심해 정확한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강조된 양감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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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61번지에 있는 강원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된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落葉喬木)으로 암·수꽃이 따로 피는 암수딴그루의 나무인데, 강릉 옥천동 은행나무는 수나무로서 열매를 맺지는 않지만, 강릉의 명목(名木)이며 신목(神木)으로 관리되고 있다. 1993년 12월 23일 강원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시대의 한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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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강릉 사람인 효자 김덕장(金德璋)의 효행을 적은 효자비. 이 비석은 조선 중종 때 강릉 사람 김덕장(金德璋)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이 세웠다. 김덕장은 어릴 적부터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였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侍墓)를 살던 중, 하루는 산불이 나서 묘소에까지 이르자 통곡하며 하늘에 비니 돌연 비바람이 일어나 산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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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권사균(權士均)의 가계, 행적 등을 기록한 비. 권사균의 호는 보진당이다. 보진(葆眞)이란 마음이 자세하고 한결같아 공부에 전념하여 천심(天心), 즉 도심(道心)의 진리를 회복하여 그 진리를 효우(孝友)의 근본으로 삼고 자손훈계(子孫訓戒)로 남기고 행동의 모범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권사균의 명의(名義)를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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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서 성남동에 이르는 도로. 금성로는 강릉 읍성 동문 밖을 나와 강릉의 상가 밀집 지역인 옥천동과 성남동 사이에 있는 상가 도로이다. 강릉의 번화가인 금학동과 강릉 중앙 시장이 있는 성남동을 잇는 도로여서 두 행정동의 첫 글자를 따 금성로라고 이름 붙였다. 금성로는 상가 밀집 지역인 강릉 중앙 시장과 성남 시장을 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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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조선 초기 권사균(權士均)이 별당으로 지은 건물. 권사균의 자는 공보(公父), 호는 보진당(葆眞堂)이다. 권사균은 1484년(성종 15)에 태어났으며, 시조는 권행(權幸)이다. 권사균은 학문과 문장이 사림들 가운데 뛰어나 중종반정 다음 해인 1506년(중종 1)에 사마양시에 합격하였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문장과 덕행으로 추중(推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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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의 3·1절 기념식 행사 시 벌어진 좌·우익세력들 간의 대립·충돌 사건. 1946년 3월 1일 해방 후 첫 3·1절 기념식을 좌익은 강릉초등학교, 우익은 옥천초등학교에서 각각 개최하였는데, 좌익이 우익의 3·1절 기념식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우익 기념식장에 몰려와 서로 갈등을 빚었다. 3·1절 기념식은 1919년 3월 l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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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개교한 강릉지역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 당시에 팽배하던 민족주의 교육 사조 추세에 부응하여 민관(民官)이 협력하여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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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있었던 예국시대의 고대 성곽. 예국고성(濊國古城)은 강릉이 동예의 중심이었던 고대에 축조되었던 성곽으로 추정하며 명칭은 고대 부족국가의 명칭 ‘예(濊)’ 또는 ‘동예(東濊)’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강릉(江陵)은 본시 예(濊)의 고도(古都)로 철국(鐵國) 혹은 예국(蘂國)이라고도 하였으며 고구려의 하서량(何西良)이었다가 후에 신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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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오거리에서 교동 강릉역 육거리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지나가는 옥천동의 옛 속명을 옥거리, 옥가라 부른 데서 옥가로라고 이름하였다. ‘옥가’란 금옥상쟁(金玉相爭)이란 말에서 금옥가(金玉街)라 하였다가 ‘금(金)’ 자를 빼고 옥가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길이 723m, 폭 25m의 4차선 도로이다. 옥가로는 옥천 오거리에서 율곡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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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길거리. 옥거리[玉街]는 금과 구슬이 서로 다툰다는 금옥상쟁(金玉相爭)이라는 말에서 금옥가(金玉街)라고 하였다. 후에 ‘금’자를 빼고 그냥 옥가(玉街)라고 하다가 다시 우리 말로 옥거리라고 하게 되었다. 옛날 옥거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을 중심으로 길 북쪽에는 안동권씨들이 많이 살았고, 길 남쪽에는 강릉김씨들이 많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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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옥천(玉川)’이라는 이름은 옥천동 남쪽에서 수문리 쪽으로 흐르는 남대천 물이 구슬처럼 깨끗하고 맑아서 생긴 이름이다. 옥천동의 속명인 ‘옥거리’란 이름은 금과 구슬이 서로 다툰다는 금옥상쟁(金玉相爭)이란 말에서 금옥가라 하다가 ‘금’ 자를 빼고 ‘옥가’라 하다가 후에 순수한 우리말인 ‘옥거리’로 바뀐 것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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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남대천 수문에서 교동 강릉 대로에 이르는 도로. 옥천로가 지나는 옥천동 지역은 공공 기관, 금융·보험 업체 및 의료 기관이 밀집된 강릉시의 전통적 상업 중심 지역이다. 도로가 통과하는 지역이 옥천동이어서 옥천로라고 이름하였다. 길이 764m, 폭 12m의 4차선 도로이다. 옥천로는 남대천 수문-동부 시장-강릉 대로를 연결하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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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5거리로 강릉의 중심 도로. 옥천5거리는 이곳에서 다섯 지역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옥천5거리는 7번 국도가 강릉 시내로 지나가는 도로로서,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5거리가 생겼다. 옥천5거리에서 동쪽으로 가면 강릉여자고등학교가 있고, 서쪽으로 가면 강릉 시내 중심지가 있다. 남쪽으로 가면 남대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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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정선전씨의 시조는 전섭(全聶)이다. 전섭은 온조(溫祚)의 시종신하(侍從臣下)로서 부여에서 나라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십제공신(十濟功臣) 중의 한사람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전섭의 8세 손 전선이 백제에서 공주를 배종(陪從)하고 신라에 와서 봉익대부부지밀직사사전법판서(奉翊大夫副知密直司事典法判書)의 벼슬을 하였고 정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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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육성황신(肉城隍神)으로 봉안된 창해역사의 유허비. 중국 한나라의 장량과 함께 진시황을 저격한 역사를 창해역사로 보고, 그의 출생이 이곳 강릉의 대창리라는 주장을 밝혀주는 유허비이다. 조선 후기에 이미 유허비를 건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성사되지 못하였고, 1991년 옥포장학재단 최종찬 이사장의 주도로 건립되었다.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