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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구산의 마패성황에 괸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 사는 권오제[남, 65]가 1991년 5월 26일에 제보하였다. 「구산 마패성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산 위에 올라가면 성황당이 하나 있사. 그 질[길] 저쪽에 가면 그 성황당이 이름이 뭔가 하면 그게 마패성황이라 그러네야. 그 원인은 어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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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의 사당에 첨배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기문. 매월당 김시습의 일생, 이이를 비롯한 사림들의 흠모, 김시습의 영정 모사와 봉안, 첨배록 서두 기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동이라 불려지던 김시습은 스물한 살에 삼각산에서 공부하던 중에 노산손위(魯山遜位; 왕위 계승 이전에 노산군이었던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억지로 넘겨준 사건)의 소식을 듣고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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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을 모시는 영당의 창건에 관한 기록. 매월당 김시습의 일생, 영당의 창건경위, 영당전례(影堂奠禮)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려지던 동방의 현인(賢人) 김시습은 탁절지사(卓節之士)로 절개로 이름난 중국의 백이(伯夷)의 기풍이 있었으며 문장 역시 뛰어나 열성(列聖)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에 후손인 김종림(金宗霖)이 명주군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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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의 영정 봉안에 관한 기문. 매월당 김시습의 일생, 중종, 선조, 숙종, 정조의 매월당에 대한 충절과 학식 기림, 영정 모사와 봉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동이라 불려지던 김시습은 21세에 삼각산에서 공부하던 중에 단종손위(端宗遜位)의 소식을 듣고 평생 충절을 지키면서 『금오신화』 등 수많은 문적(文籍)을 남겼다. 이에 선조는 율곡 이이에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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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년(중종 36)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지은 한시. 「유대관령망친정시」는 신사임당의 아들 이이(李珥)가 지은 「선비행장(先妣行狀)」에 실려 전한다. 신사임당의 부모는 딸만 다섯 두었는데, 신사임당이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신명화(申命和)가 세상을 떠났다. 신사임당은 홀로 된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친정에서 지내는 때가 많았는데, 이 시도 어머니와 함께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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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마을. 가마골은 마을이 부중괘시형(釜中掛匙形) 즉, 큰 가마솥에 숟가락을 꽂아 놓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마골 뒤에는 웃제멩이가 있는데, 조선시대 이곳에는 대창역에 딸린 구산역과 횡계역 사이에 제민원이 있었다. 가마골은 대관령 아래 첫 번째 마을로, 귀새골에서 흘러온 물이 마을 앞을 지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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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고려 초기 개청(開淸)의 부도. 개청[834~930]은 고려 태조 13년에 보현사(普賢寺)에서 입적(入寂)하였다. 태조는 그에게 낭원대사(朗圓大師)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탑의 이름을 오진지탑(悟眞之塔)이라 하였다. 개청은 96세를 일기(一期)로 930년 9월 24일에 죽었다. 제자들이 같은 달 28일에 색신(色身)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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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고려 초기 승려 개청(開淸)의 탑비(塔碑). 비의 원명은 ‘고려국명주보현산지장선원낭원대사오진탑비’이다. 개청은 930년 9월 24일에 96세로 세상을 마감하였다. 입적한 지 5일 뒤인 28일에 보현사에서 300보쯤 떨어진 서봉(西峰) 석실(石室)에 장사를 지냈다. 신경(神鏡)·총정(聰靜) 등의 제자와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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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보현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시대의 목조보살좌상과 복장유물. 고려 시대 제작된 불상으로 제작 시기는 복장 다라니 조성 연대인 1292년(충렬왕 18) 보다 앞선 11~12세기로 추정된다. 2015년 3월 16일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강릉 보현사 목조보살좌상은 목재로 만들었으며, 그 위에 금칠을 하여 화려하다. 세장형의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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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보현사에 소장되어 있는 아미타 삼존불 좌상과 복장 유물. 2013년 1월 11일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된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불상 3구와 복장(腹藏) 유물 1점이다. 보현사는 지장사(地藏寺)라고도 하는데, 650년(신라 진덕 여왕 4)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신라 하대 경애왕 대에 범일 선사(梵日 禪師)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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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보현사에 소장되어 있는 흙으로 빚은 보살 좌상. 2013년 1월 11일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53호 지정된 강릉 보현사 소조보살좌상은 흙을 주재료로 하였으며, 현재 보현사에 소장되어 있다. 보현사는 지장사(地藏寺)라고도 하는데, 650년(신라 진덕 여왕 4)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신라 하대 경애왕 대에 범일 선사(梵日 禪師)의 제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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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에 있는 고려 시대 오층 석탑.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2리 안곡동 일원의 고려 시대 절터에 있다. 기단부(基壇部)는 2단 형식으로 하대중석의 각 면에 3구(具)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상대중석의 각 면석에는 우주(隅柱)와 1개의 탱주(撐柱)를 각출하였다. 상층기단 면석 위의 상대갑석은 부연(附椽)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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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 있는 국토 관리 기관. 영동 지역의 지속적인 교통망의 확충으로 유지·관리해야 될 국도가 증가하면서 국도 관리에 효율성을 기하고 신속한 업무 처리를 위해 원주 지방 국토 관리청의 산하 기관으로 강릉에 사무소를 설치하였다. 강릉 지역에 사무소가 설치됨으로써 영동 지역의 국토 관리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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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에 걸쳐 있는 고대 산성.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도읍지로 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축조하였다는 전설과 발해의 대씨(大氏)가 쌓았다 하여 대공산성(大公山城)이라 불리운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가까운 곳에 보현사가 있어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도 불린다. 전설로 전해 오는 백제의 온조왕이나 발해의 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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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는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조성된 저수지. 현 한국 농촌 공사인 구 한국 농업 기반 공사에서 조성한 농업용수 개발 사업의 저수지로서 구 명주군 성산면에 있었으나,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된 시설이다. 영동 고속국도가 1975년에 개통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식량 증산과 관련한 사업이 영동 지역에서도 펼쳐지게 되었다. 당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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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분청사기 도요지. 강릉시내에서 구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약 10㎞가면 우측으로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다. 그 포장길을 따라가면 삼왕동 명주군왕릉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북쪽의 좌측 소로를 따라 약 1㎞쯤 가면 베리안 마을이다. 이 마을의 산기슭에서 아래쪽 계곡에 닿는 경작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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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석불. 강릉보광리석조여래좌상은 성산면 보광리의 절터에 있다. 토지 소유자에 의하면 약 50년 전쯤 이곳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이 있었으며, 석조 여래 좌상은 인근에 봉학사란 암자가 자리한 곳에 묻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암자는 한 때 사찰명을 대원사로 바꾸었다가 최근 석불사로 다시 바꾸었다. 조성 시기는 통일 신라 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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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길 216-3[위촌리 579번지]에 있는 조선말기에 건립된 가옥. 사당 뒤에 수령이 500년을 넘었을 은행나무가 있으며 집 후원에는 왕대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1910년 현 소유자인 함대식의 할아버지 함영익이 신축하였다. 원래 툇마루는 없었으나 50년 전 현 주인이 시멘트 마루로 개조할 때 달아내었으며 오른쪽에는 사당을 지어 4대조 조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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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1리에 있는 마을. 마을 앞에 있는 땅봉의 줄기 모습이 개가 누워 자는 형국으로 되어 있어 생긴 이름이다. 개자리[狗宿洞, 可坐里]를 가좌리라 하는데, 마을에 많이 살고 있는 강릉김씨들이 개자리는 어감이 좋지 않고, 또 개가 누워 있는 형국이어서 마을이 번성하지 못한다고 하여 ‘가히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으로 고쳐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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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릉경찰서 병력과 북한군 패잔병들이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지역에서 벌인 전투.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결과 국군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였고, 북한군은 6개 사단 이상이 남한 내에 고립되어 전력이 분산되었다. 고립되어 잔류 중이던 북한군 패잔병들은 산악지대를 따라 북쪽으로 퇴각하거나 산악지역으로 숨어들어 남한 내의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교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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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의 옛 이름. 건금리는 조선조 중종 때 정봉 김광헌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생긴 이름인데 그 후 1916년에 장안동·제동·구동·성하를 합쳐 금산리(金山里)라 하였다. 건금리는 강릉최씨 최입지의 묘가 있는 지형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어서 금산(琴山)이라고 쓰다가 이 마을에 강릉김씨들이 많이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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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대관령 정상에서 송정동 견소동 마을에 이르는 도로. 경강로는 시도 간 협의 도로이며, 경기도에서 강원도 강릉으로 이어지는 도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에서 국도를 따라 강릉으로 이어지는 도로 가운데 강릉 구간 도로를 말하는데, 조선 시대부터 강릉에서 서울로 오고가는 관동 대로가 있던 도로를 확장하였다. 길이 2만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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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봉(七峯) 함헌(咸軒)을 제향하기 위한 재사(齋舍). 강릉함씨(江陵咸氏) 칠봉댁(七峰宅) 종중에서는 매년 음력 9월 20일 묘소와 재사에서 제향한다. 강릉부사 화교(華嶠) 조명하(趙命夏)가 쓴 「경모재사기(敬慕齋舍記)」에 의하면, 함헌의 행적과 정신을 본받고자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강릉시 성산면 칠봉로 252[산북리 152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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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최씨 필달계 최문옥(崔文沃), 최원량(崔元亮), 최안린(崔安麟), 최세번(崔世蕃), 최인언(崔仁彦) 등 다섯 명의 제향을 위해 건립한 재실 강릉최씨 필달계 동강공휘원량종중(東崗公諱元亮宗中) 소유로 동 문중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송북재실(松北齋室) 또는 송북전사청(松北奠祀廳)이라고도 한다. 선영 인근의 강릉시 성산면 송두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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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최씨 필달계 용연동파의 전사청.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는 이 재사는 강릉최씨 필달계 용연동파 정가(井街) 종중 소유로 최대흥(崔大興)을 제향한 곳이다. 최대흥[1564~1638]의 자는 자성(子性)이고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에 증직되었다. 1860년(철종 11) 후손들이 선조 전사 시 재실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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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송암리에 있는 산봉우리. 고봉은 송암리 마을 뒤에 높이 솟아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또는 너무 높아 사람들이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서 부쳐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봉은 성산면 송암리, 사천면 사기막리와 사천면 상노동리 경계에 있다. 고봉에서 서쪽으로 가면 사천면 사기막리가 되고, 북쪽으로 가면 사천면 상노동리가 되고, 남쪽으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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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괴일에 있는 작은 마을. 고습동은 괴일(古谷)에서 제일 오래된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또는 고습동으로 흘러오는 물이 다른 데로 흘러가지 않고, 한 곳에서 모여 고이는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습동은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고, 마을 한가운데로 냇물이 흐르고 있다. 고습동에서 내를 따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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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산봉우리. 곤신봉(坤申峰)은 높이 1,131m로 다른 봉우리와 다르게 풀밭이 형성되어 있으며 곤신봉에서 삼양목장 목초밭을 가로질러 갈 수 있다. 곤신봉은 예전에 강릉부사가 집무하는 동헌(칠사당)에서 볼 때 곤신방향 즉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곤신봉의 북쪽에는 소황병산, 남쪽에는 능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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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제일 안쪽에 있는 마을. 골아우(鯨岩洞)는 마을에 생김새가 고래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래바위는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송두 안쪽의 산 중턱에 있는데, 고래바위라는 바위 이름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고래바위가 줄어서 골바위로 되었다가 골바위가 변해 골아우로 되었다. 골아우에 있는 고래바위는 산기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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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서 홍제동 앞에 이르는 도로. 공제로는 조선 시대에는 서울과 강릉을 잇는 관동 대로였다. 성산면 구산리에서 강릉 시내로 오는 관동 대로를 경강로가 대신하고, 금산리와 홍제동을 거쳐 시내로 지나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존속시켜 농로를 겸하면서 성산면 구산리에서 홍제동 공제까지 이어지도록 하였다. 이 도로는 강릉 시내 지역과 서쪽 지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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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법정리. 관음 1리와 관음 2리의 행정리가 있는 성산면의 법정리이다. 성산면 한가운데 있으며, 동쪽은 금산리·구정면 제비리, 서쪽은 어흘리·보광리, 남쪽은 구산리, 북쪽은 보광리·위촌리와 접해 있다. 관음리는 본동 입구 북쪽 골에 관음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1916년 안곡[안국동]·개자리[가좌리]·괴일[고곡동]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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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 있는 서낭당에서 행해지는 제사.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의 서낭당은 대관령 국사 서낭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4월 15일 국사 성황의 행차 때에 이곳에 들러 특별히 주민들의 정성을 받는다. 옛날 구산에는 역원(驛院)이 있어 대관령을 넘나들 때의 관문 역할을 하였으며, 이곳의 서낭당을 대관령 국사 서낭님의 아들 서낭이라 한다. 과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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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행정리. 중국 노나라 때 공자의 어머니가 이구산(尼丘山)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공자를 낳아 공자의 이름이 구이다. 공자의 어머니가 치성을 드린 이구산과 비슷하게 생겨 ‘이구산’이라 부른 산이 있었다. 그 후 ‘니(尼)’ 자를 떼어 내고 그냥 ‘구산(丘山)’이라 하다가 성현의 이름은 함부로 쓰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고 하여 ‘구(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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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개설되었던 5일장의 하나. 조선 후기 강릉 지역에는 여러 곳에 5일장이 개설되었는데 대표적인 5일장이 강릉장[2, 7개시], 연곡장[3, 8개시], 옥계장[4, 9개시], 주문진장[1, 6개시], 강동장[1, 6개시], 망상장[5, 10개시], 구산장[1, 6개시]이 있었다. 이들 장시는 모두 지역민들의 수요와 공급의 필요에 따라 교통중심지대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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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마을. 굴면이(屈免洞)는 험준한 대관령 고갯길을 데굴데굴 굴러내려 오다가 이곳에 와서 ‘굴러 오는 것을 면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 마을에 있는 산줄기들이 험하지 않아서 험한 대관령 길을 힘들여 내려오다가 이 마을에 와서 편하고 쉽게 길을 걸었다고 한다. 굴면이는 대관령에서 내려온 산줄기 끝에 있고,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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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인 권사균(權士均)의 묘비. 권사균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1506년(중종 1)에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였다. 강릉으로 귀향한 후 강릉향교 교수직을 맡아 후진 양성을 하는 한편 보진당(葆眞堂)을 세워 명유들과 교류하면서 후학 계도(啓導)에도 기여하였다. 권사균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고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06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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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행정리. 금산리의 명칭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조선 11대 임금 중종 때 김광헌(金光軒)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갱금]라 하던 것을 나중에 금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강릉 최씨[평장공파]의 시조인 최입지의 묘가 있는 산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옥녀 탄금형]’이어서 금산(琴山)이라 하였다가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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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1리와 금산2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강릉김씨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 금산리(金山里)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조선 중종 대 김광헌(金光軒)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建金里)[갱금]라 하던 것이 1916년 장안동(長安洞), 제동(堤洞), 구동(鷗洞), 성하(城下)를 합하여 금산리라 했다. 금산리에는 강릉 최씨 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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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던 얼음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조선 시대의 창고. 조선 시대 강릉 관아에는 척번대(滌煩臺)가 있었는데, 객사 동북쪽에 있었으며,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였다. 이른바 이 척번대는 내빙고(內氷庫) 기능을 갖고 있었다면, 금산리 얼음 창고는 외빙고(外氷庫) 기능을 갖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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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정려를 받은 김경휘(金景暉)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김경휘[1553~1613]는 타고난 품성이 어질고 착했으며, 효도와 우애가 남달리 뛰어났다.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위급하자 김경휘는 울부짖으며 하늘에 고한 뒤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 드리자 아버지가 7일을 더 살았다. 돌아가신 뒤에도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선조 때 부사 조작(曺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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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광헌(金光軒)[1485~1539]의 묘비. 김광헌의 자는 중여(仲輿)이다. 조는 헌납 김지(金墀), 부는 군자감정을 지낸 생원 김반석(金盤石), 모는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인 진사 최유남(崔洧南)의 딸이다. 김광헌은 최치운의 손자인 현감 최세번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4남 3녀를 낳았다. 장남은 임경당 김열(金說)이다. 1540년 후손들이 김광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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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김반석(金盤石)의 묘비. 김반석(金盤石)의 자는 자안(子安), 1455년에 출생하였고, 1522년에 병으로 졸하였다. 아버지는 홍천훈도 김지(金墀), 할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 증조는 김윤귀(金允貴), 외조는 강릉최씨 최백종(崔伯宗)이다. 부인은 강릉최씨 최유남의 딸이다. 아들은 김광주(金光輳), 김광헌(金光軒), 김광로(金光輅), 김광복(金光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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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김연생(金演生)[1859~1921]은 강릉김씨 김병도(金秉鍍)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성심껏 공경하였으며,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 맛있는 나물이나 고기가 생기면 자기의 입에 대는 일이 없이 아버지에게 드렸으며, 혹간 밖에서 별미의 음식을 보게 되면 그것을 나무 잎사귀에 싸서 아버지에게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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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인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의 묘비. 김열은 1506년(중종 원년)에 출생하였으며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金周元)의 25세손으로 진사 김광헌(金光軒)의 장자이다. 관직은 평강훈도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세칭 임영처사(臨瀛處士)로서 강릉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1812년(순조 12)에 6세손 김처진(金處鎭), 김국명(金國嗚), 8세손 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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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436번지에 있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가옥. 현 소유자인 김원기 씨의 7대 조부가 건립하였다. 영동고속도로에서 강릉시에 진입하기 전에 있는 금산리의 하임경당에서 멀지 않은 산 밑자락에 위치한다. 넓은 정원을 통과하면 부엌과 외양간의 배면이 나타나고 오른쪽에 사랑채, 왼쪽에 남동향을 향한 안채가 있다. 안채의 우측에서 5m 떨어져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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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인(金訒)의 묘지석(墓誌石). 김인[1516~1571]의 자는 대인(大仁)이다. 본관은 강릉이며 김주원의 후손이다. 증조는 증통정대부 예조참의 행봉정대부 사간원헌납(贈通政大夫 禮曹參議 行奉正大夫 司諫院獻納)을 지낸 김대(金臺), 할아버지는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봉정대부 종부시첨정(贈嘉善大夫 吏曹參判 行奉正大夫 宗簿寺僉正)을 지낸 김세훈(金世勳),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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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왕족이며 강릉김씨의시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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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의 신도비. 1960년에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인 김주원의 묘역 입구에 김주원의 37대 후손인 김진만(金振晩)이 건립하였다. 신도비의 규모는 높이 317㎝, 비신 180㎝, 두께 36.5㎝, 폭 69㎝이다. 비문의 글씨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李承晩)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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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사굴산문의 선승. 경주 출생으로 속성은 김씨, 유차(有車)의 아들이다. 834년(흥덕왕 9)에 출생하였다. 8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유학을 익히다가 25세 때에 화엄사(華嚴寺)에 들어가 정행법사(正行法師)에 사사(師事)하고 승려가 되었다. 강주(康州)[지금의 진주] 엄천사(嚴川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금산으로 가서 암자를 짓고 혼자서 3년 동안 불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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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마을. 느러리[於屹]는 마을 뒤 대관령 쪽에서 내려온 산줄기들이 마치 나뭇가지처럼 서로 엉켜 만나고, 어우러져 늘어졌다고 하여 느러리·느르리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어흘리는 느러리의 뜻을 빌려 한자로 쓴 말이다. 느러리마을은 망월이에서 내려온 줄기 끝에 있다. 느러리마을 앞으로는 보광천이 흐르는데, 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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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고개. 대관령[832m]은 예로부터 고개가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대관령이 유래했다고 한다. 대관령을 경계로 동쪽으로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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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근대적 개념의 도로인 신작로가 생기기 이전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도로. 대관령에 산허리를 돌며 길이 넓어진 것은 조선 중종조, 정숙(靜叔) 고형산(高荊山)[1453~1528]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던 때인데 그는 민력을 빌리지 않고 도로를 개설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도로를 개설한 이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병자호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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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의 보건·휴양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조성한 산림. 강릉 영림서 강릉 관리소에서 관장하며, 1993년 5월 1일부터 임업 협동조합에 위탁 운영하여 유료화한 산림 휴양지이다. 1988년 산림의 보건·휴양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개설되었다. 대관령 휴게소를 지나 강릉 방향으로 8㎞ 거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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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시립 박물관. 홍귀숙(洪貴淑) 관장이 수집한 문화재를 전시하기 위해 1993년 5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374번지 대관령 옛길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2,380㎡[720평] 규모로 고인돌 형태를 본떠 지은 건물이 주변 자연 풍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생활 문화상과 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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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대관령 옛길에서 매년 10월 단풍철에 열리는 지역 축제. 대관령(大關嶺)은 강릉시와 평창군 사이의 고개로 길이가 13㎞나 된다. 오래 전부터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문화와 물화의 전달로이며, 자연의 경계지라고 할 수 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옛 사람들이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질끈 동여매고 오르내리던 애환이 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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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보광 1리, 보광 2리로 구성된 농산촌 테마 관광 마을. 대굴령마을 운영 단체는 영농 조합 법인 대관령 어울림 마을이다. 대관령에 인접한 태백 준령 기슭에 위치해 있는 어흘리, 보광 1리, 보광 2리의 3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산촌 테마 관광 종합 타운 대굴령마을’로 소개되고 있다. 대굴령마을은 보물로 지정된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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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릉시 성산면 대궁산성 터에서 공비들과 치른 전투. 1952년 1월 24일 조선노동당 제4지구당을 향하여 남하한 공비 18명을 대궁산성 터에서 기습하여 2명을 생포하였다.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38도선에서 방어에 주력하는 장기전 태세로 넘어갔으며, 1951년 7월부터는 휴전회담도 시작되었다. 이에 노동당은 남한 지역에서 제2전선 역할을 수행하던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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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주민들이 음력 정월 초이튿날 행하는 합동세배. 도배는 위촌리 주민들에 의해 전승된 합동세배로서 450년 동안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년 정월 초이튿날 행해지는데, 이때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결함이 없는 촌장 집에서 행해진다. 도배는 각각 집에 세배를 다니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고령의 촌장을 위해 동네 사람들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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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마을. 망월이[望月洞]는 이 마을의 묘 자리가 구슬같은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상인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망월이는 대관령 줄기에서 내려온 약간 높은 언덕에 있어, 달이 떠오를 때 달을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망월이는 대관령에서 내려온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는데, 동쪽으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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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위촌리 사이에 있는 재. 생김새가 소에게 씌우는 멍에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중에서 자연부락인 무1동에 아주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이 고개를 넘으면 하천 지류를 따라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를 연결하는 작은 옛길이 있다. 최근 대관령 터널의 개통으로 인해 새로운 영동고속도로가 고개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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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덕랑(通德郞) 김니(金柅)를 기리는 재실. 소실된 재실을 6·25사변 직후 몇 년 지나서 재건립하였으나 우중(雨中)을 제외하고는 재실 오른쪽 옆 산에 있는 묘소에서 제사(음력 3월 20일)을 지낸 까닭에 재실은 무명무실 한 채 오늘날까지 이른다. 재사는 목조와가(木造瓦家)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주위는 슬레이트로 벽을 두르고 있다. 형태는 남아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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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김씨 후손들이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의 능소에서 시조 군왕의 얼을 기리고 선양하는 행사. 신라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시중 겸 병부령인 김주원(金周元)은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쟁탈전에 패하여 785년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영동 지방의 9주를 다스리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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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묘. 신라 태종무열왕 5대 손으로 알려진 김주원이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封)해졌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이 후사(後嗣)없이 죽자, 신하들은 왕족 중에 김주원을 택하여 왕위에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침 경주에 내린 큰 비로 강을 건너지 못해 김주원은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 신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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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신라 하대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는 성. 신라 하대에 원성왕과의 왕위계승 다툼에서 실패한 김주원(金周元)이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한 이후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에 있다. 명주성(溟州城)은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의 북쪽 구릉(122m)을 정점으로 그 남사면의 2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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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본동마을과 성산면 보광리 삼왕 사이에 있는 골짜기. 무일(舞日)은 예전에 강릉김씨들이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의 잃어버린 묘(명주군왕릉)를 찾으러 다니다가, 이곳 숲에 와서 능을 찾게 되자 기뻐서 춤을 추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무일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곤신봉 줄기가 동쪽으로 내려오는 넓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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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대관령에 있는 마을. 구산역은 대관령 아래에 있는 역이고, 횡계역은 대관령 위에 있는 역이다. 예전에 강릉도호부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구산역을 지나 대관령 초입으로 들어와 제민원(濟民院)을 거쳐 반젱이로 오는데 반젱이에 주막이 있어 잠시 발길을 멈추고 쉬어갔다고 한다. 반젱이[半程]는 조선시대 역원 제도가 있었을 때 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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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에 있는 마을. 보겡이[普光]는 보현사가 있는 넓은 들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보겡이는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곤신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 끝에 있고, 보겡이 앞으로는 보현천이 흐르고 있다. 보현천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삼왕동이 되고, 보현천을 따라 내려가면 보현뜰·절골이 된다. 보현천을 건너 북쪽으로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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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법정리. 동쪽으로는 관음리와 위촌리 및 사천면 사기막리,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어흘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에 접해 있다. 신라 때에 낭원 대사가 세운 보현사(普賢寺)의 ‘보’ 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보광리(普光里)는 본래 강릉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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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종형 부도. 1828년(순조 28)에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청간사가 건립되면서 절터는 훼손되었다. 조선 명종 이후 김주원의 묘역이 확장되면서 부도만 남고 사찰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설에는 김주원 능의 수호사찰이었다고 한다. 이 부도는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김주원 능 입구의 청간사(淸簡祠) 담장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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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보광1리, 보광2리를 대상으로 한 농산촌 테마관광 종합타운이 조성된 마을. 보광리 산촌마을은 강릉시의 서부 산간 지역에 특화사업을 벌여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된 조성 사업이다. 도시민들에게는 농촌의 현장과 전통문화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건강 쉼터가 갈수록 필요하며, 이는 강원도의 역점사업인 ‘강원 그린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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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를 흐르는 남대천의 한 지류. 보광천은 강릉시 사천면과 성산면을 경계하는 곤신봉에서 뻗은 산줄기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오봉댐에서 흘러나오는 지류와 합하여 남대천으로 흘러들어간다. 보광천은 남대천 본류에 합류하기 전 대관령에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지류와 성산면 어흘리에서 마주친다. 보광천은 가장 상류부에 명주군왕인 삼왕릉에서 물이 흘러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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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月精寺)의 말사. 건립초기에는 보현산사 지장선원(普賢山寺 地藏禪院)이다. 일반적으로 산명을 사명으로 쓰면서 또 다른 사명을 쓰기도 한다. 즉, 산의 이름이 보현산이므로 보현산사라 하고 사명은 지장선원이라 하였다. 굴산문의 개산조인 범일국사(梵日國師)의 법(法)을 이은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개산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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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普賢寺) 입구에 건립된 조선시대 종형 부도 20기 부도밭. 종형부도 20기가 10기씩 2열로 세워져 있다. 별도로 세운 부도비는 없고, 15기는 부도 주인공의 이름을 부도 탑신에 새겨 놓았다.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보현사 입구의 길가 남측에 있다 한 줄에 10기씩 두 줄로 20기가 동-서축으로 건립되었다. 모두 조선후기의 종형부도 양식인데 1기만이 종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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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보현사에 있는 석조물로 불을 밝히는데 쓰이는 석등 부재. 보현사 대웅전의 어칸으로 오르는 중앙계단 서쪽에 있다. 석탑과 석등 부재의 양식으로 보아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석탑재의 지대석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이 석등 부재는 지대석과 하대석이 같은 돌로 만들어 졌다. 복련(覆蓮)이 조각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몇 잎이 모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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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보현사에 있는 부처님의 위엄 또는 사자후(獅子吼)를 뜻하는 사자 모양의 석등 부재. 보현사 대웅전의 어칸으로 오르는 계단 동측에 있다. 보현사 석사자상은 용도 미상의 부재 위에 올려져 있는데 엉덩이와 뒷발을 땅에 붙이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머리를 하늘로 향한 형태이다. 대좌는 양발과 엉덩이 주변으로 둥글게 연화문을 조식하였고 원래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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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보현사 내에 있는 3층 석탑 부재. 보현사 대웅전 어칸으로 오르는 중앙계단 서측에 있다. 탑재는 연화문이 조각된 사각방형의 석등 하대석 부재 위에 놓여 있다. 원래의 자리는 대웅전 앞 중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석은 좌상인 사방불이 모각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1층 탑신석이 확실하고, 위의 지붕돌[옥개석]은 탑신석의 폭과 최하단의 지붕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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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보현사의 대웅보전. 신라 진덕여왕(眞德女王) 4년(650)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며, 나말여초에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지장선원(地藏禪院)으로 중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퇴락하였다가 조선 후기에 중창된 것으로 파악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길 396[보광리 산 544번지]에 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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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 보현사 부근에서 일어난 전투. 1952년 7월 16일 조선노동당 강릉군당을 재건하기 위하여 강릉 지역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3명 중 1명이 주문진경찰서로 귀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강릉경찰서 병력이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시작하여 1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1952년부터 북한의 노동당은 남한 내의 빨치산을 지원하고 조선노동당을 재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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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산.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북쪽에 있는 해발 1,000m의 산이다. 강릉시의 주요 유적의 하나인 대공산성[일명 보현산성 또는 대궁산성]이 위치해 있으며, 산 아래에 보현사가 위치해 있다. 1952년 초 강릉 일대의 공비토벌과 관련된 전적지로 유명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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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에 있는 마을. 산두(山北)는 ‘새재산 뒤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산두는 칠봉산 서남쪽 낙맥과 새재산 북쪽 낙맥에 있어 사방이 산줄기에 막혀 있다. 산두에서 내를 따라 내려가면 버당말이 되고, 안으로 들어가면 새재가 되고, 동쪽으로 가면 구정면 제비리가 된다. 산두에는 좌망동·자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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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행정리. 성산면 면소재지인 구산리와 접해 있으며 구정면·왕산면의 경계 지역에 있다. 동쪽으로는 구정면 제비리, 서쪽으로는 오봉리, 남쪽으로는 왕산면 도마리, 북쪽으로는 구산리와 접해 있다. 강릉 시내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35번 국도와 인접해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산북리’라는 명칭은 칠봉산 서남쪽 낙맥과 새재[왕산면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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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앞에 있는 마을. 명주군왕(溟州郡王)인 김주원(金周元)과 그의 아들 두 분이 이곳에 있어 ‘삼왕(三王)’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처음에 ‘삼왕동(三王洞)’이라 하였지만 ‘왕(王)’자를 지명에 사용하지 못한다 하여 ‘왕’자와 음이 같은 ‘왕(旺)’자를 썼다. 삼왕동 사람들은 보광리[보겡이] 삼왕이라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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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계곡. 삼포암계곡은 협곡 사이에 있는 너래반석 위로 물줄기가 지나가며 폭포를 이루었다. 삼포암은 폭포물이 3번 떨어지는데 폭포의 높이가 약 20여m가 되고, 바위에는 계원들의 이름과 계의 이름들이 많이 새겨져 있다. 삼포암계곡은 성산면 어흘리 가마골 뒤쪽에 있는 계곡으로 이곳에 3층으로 된 폭포가 있어서 생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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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갈매간길 8-3[금산리 620번지]에 있는 별당 양식의 한옥 목조 건축물.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는 김열(金說)의 아호(雅號)를 딴 임경당(臨鏡堂)이 두 곳 있다. 강릉 가까운 쪽에 있는 것을 임경당’이라 하고 마을 위쪽에 있는 것을 상임경당이라 하며 임경당과 구분하여 ‘진사댁’으로 부르기도 한다. 강릉시 성산면 영동대학에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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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마당에서 새 쫓는 흉내를 내는 세시풍습. 새쫓기는 곡식을 축내는 새를 쫓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농경민들의 최대 기원은 한해 농사가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 것인데 새떼들의 극성으로 수확량이 적어지면 생산과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새떼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새를 쫓는 것이다. 새쫓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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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평창면, 도암면 횡계리 삼정평 사이에 있는 고개. 옛날 대관령에 길이 나기 전 영동 지역으로 가기 위해 나그네들은 선자령으로 넘나들었다. 선자령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 데서 선자령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선자령은 백두대간을 이루는 영동과 영서의 분수계 중 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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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위치한 사찰. 1976년 이 지역의 토지주 안봉원이 아들이 없어 이곳에 움막을 짓고 노승을 모셔다가 100일 기도를 하여 그 자리에 절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법당, 요사채, 칠성각의 건물 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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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면(面). 강릉시의 중서부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구정면,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남쪽으로는 왕산면, 북쪽으로는 사천면과 접해 있다. 고속 도로와 국도가 통과하고 대관령이 있는 강릉시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보현산성이 있어서 ‘성산’이라 하였다. 성산면은 1894년 행정 구역으로 획정되었으며, 1895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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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성산면에는 관음1리에 한 곳, 관음2리에 두 곳으로 모두 3 개의 서낭당이 있다. 관음1리 서낭당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1리 산261번지, 관음2리 서낭당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2리 150번지, 안곡마을 서낭당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2리 산46번지에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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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 놓은 당.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는 1개의 서낭당이 있다. 구산리 서낭당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556번지에 위치해 있다. 구산리 서낭당의 당집은 10여 년 전에 새로 건립되었으며 그 주위로 돌담이 있다. 구산리의 제의는 성황제(城隍祭)라고 하며 성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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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는 보광1리에 4곳, 보광2리에 2곳으로 모두 6개의 서낭당이 있다.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에는 1반, 2반[본동], 3반, 4반에, 강릉시 성산면 보광2리에는 1반과 3반[사동:뱀골]에 각각 위치해 있다. 보광1리 1반 서낭당 의 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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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성산면에는 산북1리에 1곳, 산북2리에 2곳으로 모두 세 곳에 서낭당이 있다. 산북1리 서낭당은 강릉시 성산면 산북1리 175-3번지, 산북2리 서낭당은 강릉시 성산면 산북2리 3반[자포동]과 강릉시 성산면 산북2리 4반에 각각 위치해 있다. 산북1리 서낭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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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송암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성산면 송암리에는 천제봉을 중심으로, 송암리 2반과 송암리 3반에 각 한 곳씩 3개의 서낭당이 있다. 천제봉 서낭당 은 강릉시 성산면 송암리 산36번지에 있고 강릉시 성산면 송암리 2반과 강릉시 성산면 송암리 3반에도 서낭당이 위치해 있다. 천제봉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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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는 굴면동, 느러리, 망우리, 가마골, 제민원에 각 한 곳씩 5개의 서낭당이 있었으나 현재는 마을의 가구가 줄어들면서 서낭제는 세 곳만 전승되고 있다. 굴면동 서낭당과 느러리 서낭당은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1반, 망우리 서낭당은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2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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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 91-4번지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는 한 곳의 서낭당이 있는데, 당집은 붉은 벽돌에 기와지붕을 얹었다. 오봉리의 제의는 고청제(告請祭)라고 하며 산신지신(山神之神)·토지지신(土地之神)·여역지신(癘疫之神)을 모신다. 제당은 성산에서 임계로 가다가 우측 산기슭에 위치한다. 원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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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 놓은 당.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는 위촌1리에 1곳, 위촌2리에 2곳으로 모두 세 개의 서낭당이 있다. 위촌1리 서낭당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1리 1반, 위촌2리 서낭당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2리 3반과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2리 4반에 각각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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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서 사천면 사기막리에 이르는 도로. 성연로는 성산면과 사천면 사이를 잇는 지방도 415호선에 속한다. 성산면의 구산리, 어흘리, 보광리, 사천면 사기막리의 2개 면 4개 리 산간 지역을 지나간다. 도로가 통과하는 지역의 행정 구역인 성산면과 연곡면의 머리글자를 따서 성연로라고 이름하였다. 성연로는 지방도 415호선의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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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는 마을. 솔안[松內]은 마을이 큰 소나무 숲 안쪽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솔안에는 골아우와 쑥고개가 있다. 솔안은 사실이재와 멍애재에서 내려온 줄기 사이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돌탑이 있다. 이 돌탑 옆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었고, 그 안쪽에 마을이 있다. 솔안 앞에는 물줄기가 구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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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2리에 있는 마을. 송두[松北]는 아름드리 큰 소나무의 뒤에 마을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송두 길가의 돌탑 부근에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소나무 안쪽에 있는 마을은 솔안(松內)이고, 소나무 뒤에 있는 마을은 송두가 된다. 송두 앞에는 위촌천이 흐르고, 뒤에는 산줄기가 감싸고 있다.. 송두는 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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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2리에 있는 마을. 송명동(誦明洞)은 예전에 이 골 안에 송명암이란 암자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송명동은 와전되어 속명동(續命洞)이라고 하며,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자연환경]. 송명동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곤신봉에서 내려온 줄기 끝에 있고, 마을 가운데로 하천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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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행정리. 송암리의 동쪽은 대전동, 서쪽은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은 성산면 위촌리, 북쪽은 사천면 노동리와 접하고 있다. 송암리는 마을에 소나무와 바위가 많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원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1916년에 거릿말, 광양이, 미리재, 안마을을 합하여 만든 행정리이다. 1955년 9월 1일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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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꿈은 크게, 행동은 바르게, 생각은 깊게’이다. 첫째, 남을 배려하고 예절이 바른 어린이를 기른다. 둘째,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는 어린이를 기른다. 셋째, 생각과 경험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어린이를 기른다. 넷째, 몸이 튼튼하고 감성이 풍부한 어린이를 기른다. 다섯째,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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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을 모신 사당. 여말선초에는 흥복암(興福庵)이라 하였으나 17세기에 숭의재라 하였다. 숭의재(崇義齋) 안에는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의 5대조인 태종무열왕의 위패를 봉안한 숭열전이 있다. 오래 전부터 종묘를 세워 태종무열왕에 대한 향화(香火)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훼철된 후 강릉김씨 자손들의 숭조 정신에 입각하여 김진만(金振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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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솔밭길 16[금산리 288-12번지]에 있는 추어탕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음식점. 금산리가 외지고 시골이며 음식점을 운영하는 분이 할머니라 하여 시골할머니추어탕으로 상호를 지었다. 1991년 조정현이 금산 솔밭의 20여 평 건물에서 개업하였다. 2002년 현 장소로 신축 이전하여 운영하고 있다. 2층 건물로 건평 70평에 150명을 수용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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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송암리에 있는 마을. 시막동(侍幕洞)은 안송암에 있는 마을로, 약 200여 년 전에 일포(逸圃) 신석필(辛錫珌)이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이곳에다 묘를 쓰고 그 앞에 상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면서 살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시막동은 고봉에서 내려온 산 능선에 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는 하천이 흐른다. 시막동에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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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는 지명. 싸리겟은 예전에 이곳 들에서 쌀을 씻었다고 하여 ‘쌀을 씻은 들’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싸리겟은 예전에 이 일대에 많은 땅을 가지고 있던 영해이씨들이 이 곳에서 장사를 지내고 나서, 상여를 메고 온 상군들에게 밥을 주기 위에 쌀을 씻었다는 데에서 이름이 형성되었다. 싸리겟은 보광천 하류로 오봉산으로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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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에 있는 마을. 안곡(安谷)은 예전에 마을에 안국사란 절이 있어 그 이름을 따서 안국이라 하다가, 나중에 마을 이름에 ‘국(國)’자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여 ‘국’자를 ‘곡’(谷)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안곡은 안동권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안곡 입구에는 망월봉에서 내려온 조강재가 있고, 이 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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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에 위치한 사지(寺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사찰조」에 ‘안곡사재성산면안곡동 년대미상 당우소실 단석탑고오척삼촌폭삼척 전면각불상석 비고이척 지장존석조잔류 금폐(安谷寺在城山面安谷洞 年代未詳 堂宇燒失 但石塔高五尺三寸幅三尺 全面刻佛像石 碑高二尺 地藏尊石造殘留 今廢)’라는 기록과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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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의 안국사지에 있는 석불대좌. 안국사지 석불대좌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774에 위치한 안국사지 내에 있는 안국사지 5층석탑의 좌측 부근에 인접해 있다. 불상이 올려져 있던 대좌로서 고려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남북이 긴 장방형의 개석(180×127㎝)은 하부에 2단의 몰딩이 있고, 면석(131×69㎝)은 사면에 조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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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행정리. ‘어울리다’, ‘만나다’라는 뜻인 느러리, 느르리의 소리값을 빌려 어흘리라 한다. 원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1914년에 가마골, 문안, 반젱이, 굴면이, 망월이, 제민원을 합하여 만든 행정리다. 1955년 9월 1일에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에 통합 강릉시로 편입되었다. 어흘리는 대관령을 끼고 있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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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 있는 대구머리찜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음식점. 새의 이름으로 상호를 지으면 손님이 많이 온다 하여 ‘카나리아’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오래된 건물에 있어 ‘옛’이란 명칭을 붙이게 되었다. 1층 건물에 건평은 150평, 7개의 객실에 총 1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먹거리촌 내에 있으며 성산파출소 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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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법정리. ‘오봉(五峯)’은 마을 뒤에 5개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어 생긴 이름이다. 1914년 오봉리가 강릉군 성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1917년 면제 개혁 때 상구정면이 왕산면으로 개칭되면서 오봉리의 일부 지역이 왕산면으로 병합되었다. 1955년 9월 1일에는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됨에 따라 명주군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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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 주자(朱子), 송시열(宋時烈)과 함헌(咸軒)을 제향하는 서원. 1777년(정조 1)에 어촌 심언광의 후손인 심상현(沈尙顯)이 어촌이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주자의 영정을 계기로 하남영당을 중건하고 서원을 창건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인(士人) 김형진(金衡鎭)은 그 영정(影幀)이 진상(眞像)이 아니라고 하면서 명륜당에서 재회(齋會)를 열어 반대한 후 권학준(權漢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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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서원(五峯書院)의 건립내력과 연혁을 기록한 기적비(紀蹟碑). 오봉서원에 우암 송시열을 추가로 배향한 후 그 건립시기 이후부터의 내력을 적어 기적비를 세웠다.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 오봉서원 앞 기적비각 안에 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212㎝, 비신 높이 161㎝, 비신 너비 67㎝, 두께 14㎝이다. 비신은 오석이고 비좌와 비두는 화강석이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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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서원에서 제향하는 의례. 공자(孔子)·주자(朱子)·송시열(宋時烈) 그리고 함헌(咸軒) 등을 제향한다. 매년 음력 9월 초정(初丁)에 강릉 지역 유림들에 의해 시행된다. 오봉서원에는 공자(孔子), 주자(朱子) 송시열(宋時烈)을 모신 집성사와 칠봉(七峰) 함헌(咸軒)을 모신 칠봉사(七峰祠)가 함께 있으며, 각각의 사당에는 배향인물의 위패가 모셔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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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서원 건립 배경과 내력 그리고 제향인물 등을 기록한 묘정비(廟庭碑). 공자 진영의 봉안 인물과 과정 그리고 서원의 건립과정, 주자와 송시열의 제향 등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구비(舊碑)가 있었으나 우암 송시열을 추배한 사실을 추가로 기술하여 1856년(철종 7) 강릉 지역 유림들 뜻을 모아 새로 세웠다.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 오봉서원 앞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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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임경당(臨鏡堂) 우물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행하는 민속놀이 . 용물달기는 용수(湧水) 기원제 형식의 정월 놀이로,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 짚으로 수신(水神)인 용의 모양을 사람 크기로 만들어 마을의 동서남북 네 곳의 우물에 용을 잠시 담갔다가 자정 무렵에 꺼낸 다음 임경당(臨鏡堂) 우물로 옮겨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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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는 마을. 우렛말[渭南洞]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위촌천의 남쪽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우렛말은 망월봉에서 내려온 산줄기의 언덕진 곳에 있다. 우렛말은 위촌리에 있는 방학교의 남쪽에 있는데, 남쪽으로 가면 항상골이 되고, 서쪽으로 가면 망월이, 동쪽으로 가면 방학교를 지나 운양초등학교가 있는 양짓말로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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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설립되었던 근대식 사립학교. 우양학교(遇陽學校)는 1900년대 초 팽배했던 민족주의 교육사조의 추세에 부응하여 설립되었다. 우양학교는 동진학교(東進學校)와 자매관계에 있었으며 교육과 운영에 있어서 동진학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우양학교의 교과과정은 동진학교와 비슷하였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초급 과정으로서 비교적 낮은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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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고개. 원울이재(員泣峴)는 옛날 대관령을 오가던 고을원이 이곳에서 쉬면서 울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원울이재는 고을원이 강릉부사로 발령을 받고 영서에서 강릉으로 올 때 길이 험해 울고, 떠날 때는 강릉의 풍속과 인정에 정이 들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떠나기 싫어 울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어흘리 아랫제명이[濟民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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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법정리. 위촌리(渭村里)는 약 400여 년 전인 조선 인조 때 경상북도 풍기 군수를 지낸 강릉 김씨 위촌(渭村) 김상적(金尙迪)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살았기에 김상적의 호를 따서 생긴 이름이다. 위촌리를 우추리라고도 한다. ‘우추리[牛出]’는 위촌리 가장 안쪽에 있는 골아우[鯨岩]에 ‘소가 반듯하게 누워 있는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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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서 깊은 마을 위촌리에 여러 가지 민담과 전설이 없을 리가 없다. 민담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추리 호랑이”다. 옛날에 아전이 한 사람 있었는데, 글을 잘했다. 고을 원님이 그 사실을 알고 “저녁 때 글을 좀 짓다가 가라.”고 지시했다. 아전이 저녁에 남아 글을 짓다가, 한 부분을 완성하고 보니 글의 기상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밤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나섰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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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에 전해오는 민요로는 「자장가」와 「둥기소리」, 「베틀노래」, 「다복녀」 등이 있다. 이 지역에서 채집한 독특한 속담으로는 ‘베 매서 남 주기가 딸 낳아서 남 주기와 같다.’ 는 말이 있다. 베를 짤 때 베를 매주는 사람이 잔풀이나 보푸라기가 없이 풀을 잘 먹여야 베를 짜는 사람이 쉽게 잘 짤 수 있다. 그런데 베를 짜는 사람은 베를 매는 사람이 아무리 잘 매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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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 곳곳에는 옛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글씨들이 남아 있다. 이 지역 출신으로 근대 강릉 유림의 대가인 익분재 최영대 선생이 쓴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글씨가 길 옆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예의를 숭상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는 글이다. 골아우 남쪽 남녘골에는 ‘강릉김씨세장동(江陵金氏世藏洞)’이라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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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의 문화유적으로는 앞서 민담에서 보았던 효자정문(孝子旌門)을 먼저 꼽을 수 있다. ‘효자학생이동규지려(孝子學生李東奎之閭)’라는 것이 정식 명칭인데, 위촌 1리 산 115번지 길가에 있는 효자각으로 이동규(성주이씨)가 아버지의 원한을 씻은 다음 나라에서 효자 정려를 내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독살당한 후 17년 동안 원한을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상복을 입고 지낸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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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에 남아 있는 민간신앙으로는 천제와 서낭제를 들 수 있다. 이들 행사는 마을에 따라 달리 지내고 있다. 우렛말[1리 3반] 천제는 서낭 옆에 있는 제단에서 지내는데 정월 초정일(初丁日)에 서낭제를 지낼 때 같이 지낸다. 신위는 신목(소나무)에 모신다. 유사가 제물을 준비하는데 제물은 메 두 그릇, 백설기, 세 가지 실과(대추, 밤, 감), 나물,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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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는 전통이 살아 있는 마을답게 세시풍속도 잘 지켜지는 편이다. 한 해의 세시풍속 가운데 가장 먼저 돌아오는 것이 설이다. 설날 아침에는 가족끼리 모여 떡국을 끓여 조상신께 차례를 올린다. 그 다음 어른께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눈다. 세배를 마치고 떡국을 먹고, 토정비결을 보거나 윷놀이를 하며 조용히 쉬며 한 해 계획을 세운다. 정월 초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촌장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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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는 전통과 예의를 중시하는 마을이라, 상혼례도 다른 마을과 조금 다르게 치른다. 반촌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위촌리의 장례습속은 다른 마을과 다르다. 상여를 메고 갈 상군들을 아무나 쓰지 않는다. 지체가 낮은 사람들은 상여를 메지 못하고 양반의 혈통을 지닌 사람만이 상여를 멜 수 있다. 그래서 위촌리 사람들 사이에선 ‘욕심을 내도 송장도 욕심을 낸다’고 하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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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으며, 마을 제일 안쪽 골에 있는 골아우에 와우형(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묘자리에서 소가 나왔다고 하여 우출(牛出)이라고도 하는 자연마을. 위촌리는 원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골아우, 새잇말, 새잇말, 송두골, 항생골, 지암골을 합쳐 위촌리(渭村里)라 했다. 위촌이란 지금부터 약 450여 년 전에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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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에는 유서 깊은 몇몇 집안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데, 이들 세거성씨를 알아본다. 먼저 강릉 김씨[위촌파]를 들 수 있는데, 강릉 김씨 위촌파는 매월당 김시습의 양자로 입적된 김덕양의 아들 김준현이 파조가 된다. 김덕양은 김시습의 고조인 김한신의 아우 김한경의 5세손이다. 현재 마을에는 김준현의 15세 종손인 김덕래[73살] 씨가 살고 있다. 강릉 최씨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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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는 예로부터 경치가 좋아서 위촌8경의 명소가 꼽혀서 칭송되어왔다. 위촌8경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옛 8경과 새 8경으로 나뉜다. 옛 8경은 가령낙조(駕嶺落照-마을 뒤 높이 솟은 멍애재에 비치는 저녁놀의 모습), 옥천비폭(玉泉飛瀑-골아우에서 흘러온 물이 옥천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날리는 모습), 휴암상하(鵂岩賞花-봄철 마을 뒤에 있는 부엉재에 핀 진달래꽃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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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는 외진 자연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인근에서 예향으로 유명한 곳이며 유서 깊은 전통문화가 숨쉬는 곳이다. 특히 위촌리에는 각종 사회조직, 특히 계문화가 성행하여 아직도 그 연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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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의 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동계(大同契)다. 대동계는 지금부터 약 450여 년 전 율곡 선생이 만든 『서원향약』(1571년)과 『해주향약』(1577년)에 힘입어 김세록, 함상헌, 이수근 등이 뜻을 같이하여 주민들의 덕화, 상호협조,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규약을 만들어 결성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온다. 1899년(광무 3년 기해년)에 규약을 중수하여 오늘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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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집안끼리 자녀들의 혼례를 준비하는 혼인계(관대계)도 있었다. 혼인계는 혼례 때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조직했는데, 신랑 신부의 혼례복인 관복, 행사 때 쓰는 차일, 휘장, 가마 등을 빌려준다. 성주이씨 문중, 강릉함씨 문중, 강릉최씨 문중에서 혼인계를 조직했으나 지금은 다만 친목을 다지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모인다. 상장계(상례계)는 장례를 대비하기 위한 계다. 상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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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로 흐르는 하천. 위촌천(渭村川)은 성산면 위촌리 가운데로 흐르는 하천이다. 위촌천은 죽헌천의 상류가 되며 황계(璜溪)라고도 하는데, 황계는 중국 감숙성(甘肅省)에서 발원하여 황하(黃河)로 흐르는 물줄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위촌천의 물줄기는 두 줄기인데 한 줄기는 위촌리 안쪽에 있는 사실이재 밑에서 발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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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지방 향리였던 이병화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이병화유혜불망비(李秉華遺惠不忘碑)는 대관령 옛길 등산로 입구에서 2㎞ 정도 올라간 곳에 자그마한 무덤과 함께 위치한다. 한겨울 대관령 험난한 고갯길에 변변한 쉼터가 없어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이들이 생기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비를 내어 주막을 운영하도록 했던 이병화의 은혜를 기리는 비석이다. 조선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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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선비인 이종손(李宗孫)의 묘비. 이종손 형제간의 우애와 덕행(德行) 및 지업(志業)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세웠다. 이종손의 묘가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다. 비문 제목은 ‘유명조선국성균진사이종손묘갈(有明朝鮮國成均進士李宗孫墓碣)[조선의 성균관 진사 이종손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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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안길 32-7[위촌리 395번지]에 있는 근대 개항기 가옥. 건축 연대는 1890년경으로 현 소유자의 증조부가 사업으로 많은 이익을 남긴 후 건축하였으며 택호는 옥골집이다. 안채는 전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안채가 사랑채보다 높게 자리하고 있다. 안방은 원래 전면으로 2칸을 차지하여 넓게 건축되었으며, 지금은 뒷방이 2칸으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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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는 김광헌의 큰 아들 김열의 아호 임경당(臨鏡堂)과 관련된 문화재가 두 곳 있다. 강릉에서 가까운 금산리 445번지에 있는 것이 하임경당(下臨鏡堂)인데 대개 임경당이라 부르고, 마을 위쪽에 있는 것을 하임경당과 구분하여 상임경당(上臨鏡堂)이라 하는데 진사댁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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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던 정자. 일명 건금촌(建金村)에 있던 정자로 정자 앞에 금산평 넓은 뜰이 펼쳐져 있으며, 냇물이 비스듬하게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 냇가에 소나무 수백 그루를 심어 놓고 휴게소로 가꾸어 푸른 소나무가 무성하였다고 한다. 우거진 솔숲이 비록 길옆이긴 해도 맑은 시내와 가까이 있어 발을 담그고 놀기에 안성마춤이었으며, 노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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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2리의 제일 안쪽에 있는 마을. 자포동(自飽洞, 自垉洞)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에 자포동 앞 남대천 북쪽 건너 구산리[구산역]에 살던 사람들이 역촌에 산다는 사회적 신분을 없애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는데, ‘마을 사람들 스스로 돕고 감싸며 살아가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고 하여 생긴 마을이름이다. 자포동은 새재와 팔봉재에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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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때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낸 이택징(李澤徵)의 영당. 이택징의 호(號)가 자호재(自好齋)인데서 자호재영당이라 명명하였다. 이택징은 1735년(영조 11)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방 수령으로 선정을 펼쳐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참의공인 이택징의 충절과 선비정신을 후손에 심어주고자 건립하였다. 1865년(고종 2)에 건립하였는데 현재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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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 있는 길. 장승백이는 영동 지역에서 영서 지역으로 가는 큰 길이다. 장승백이[장승거리]는 예전에 이정표와 나그네들이 잠시 쉬는 휴식처 공간의 구실을 하던 장승이 박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강릉시 성산면 소재지인 구산에서 험하고 구불구불한 대관령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그네들이 돌을 던지며 먼 길의 행로에 안전을 기원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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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선비인 정기평(鄭基平)의 묘비(墓碑). 정기평의 자는 정백(正伯)이고, 1584년(선조 17) 양주목사를 지낸 정약(鄭爚)의 아들로 출생하여 1629년(인조 7)에 졸하였다. 효행이 출중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예제를 충실히 지켜 상을 치렀다. 비문을 지은 사람이 한성부좌윤 및 예문관제학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인 것으로 보아 처음 세워진 것은 18세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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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마을. 제멩이[濟民院]는 조선시대에 이곳에 관원들의 숙소인 제민원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제민원은 대창역에 딸린 구산역[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소재]과 횡계역[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소재] 사이에 있었다. 제민원이 변천하여 제멩이가 되었다. 아랫제멩이 앞으로는 가마골에서 흘러온 물이 흐르고, 윗제멩이 앞으로는 대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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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마을 입구 수붕구에 있는 바위. 좆바위는 뿌리가 땅속에 있으면서 옆으로 향해 있는데 마치 남자의 성기처럼 생겼다. 좆바위 앞 약 100m 떨어진 곳에 여자의 성기처럼 생긴 여근석이 있는데 묘하게도 두 바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좆바위[腎岩]는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남자의 성기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좆바위에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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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1리에 있는 마을. 좌망두[坐望洞]는 마을의 생김새가 마치 토끼가 앉아서 동쪽에서 떠오른 달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좌망두는 자망두라고도 하는데 스스로 앞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마을이란 뜻으로, 좌망두와 자망두의 발음이 비슷하여 생긴 이름이다. 좌망두는 새재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와 칠봉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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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형진이 강릉시에 세운 누정. 18세기 후반 구산(丘山) 연어대(鳶魚臺) 위에 건립된 정자이다. 천연정을 건립한 김형진(金衡鎭)은 향리(鄕里)에서 높은 뜻을 세우고 은둔하면서 매학정(梅鶴亭)을 건립하였다. 김형진은 강릉 지방의 거성(巨姓)인 강릉김씨(江陵金氏)이며, 누대로 재산을 상속받아 재력을 갖춘 인물로서 백련거사(白蓮居士)라 불렸다. 김형진이 지은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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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을 배향한 사당. 김시습은 조선 전기의 생육신(生六臣)에 포함된 인물이다. 5세부터 13세까지 김반(金泮)의 문하에서 사서(四書)를 익혔고 윤상(尹祥)의 문하에서는 『예기(禮記)』와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배웠다. 1458년(세조 4) 『탕유관서록후지(宕遊關西錄後志)』를 썼고 1460년(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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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청간사에서 김시습의 충절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행하는 다례. 김시습의 시호가 청간(淸簡)인 데서 청간사라고 명명하였다. 1769년 4월에 종중에서 목조 3칸 건물을 짓고 다례를 시작하였다. 1769년부터 다례를 행해오다가 한국전쟁으로 잠시 멈추었다. 1954년 이후 매 삭망일에 분향하며 능향일(陵享日)에 다례를 봉행하여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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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서 대동계원들이 모시는 최고령자. 매년 새해를 맞이하면 정월 초이튿날 계원들이 촌장에게 합동세배를 드리는 도배를 행한다. 계원의 직계존속이 잇는 ‘승계’와 계원의 추천으로 들어오는 ‘신입’이 있다. ‘승계’에는 맏아들이 잇는 ‘승입’과 차남이나 손자가 계승하는 ‘추입’이 있다. 계원의 유일한 축출은 불효자에게 한하고 있어 전통규율의 엄격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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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강릉최씨 입지계의 시조인 최입지의 신도비. 최입지(崔立之)는 강릉최씨 입지계의 시조이다. 최입지는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다. 1844년(헌종 10)에 후손 최종태(崔鍾泰)·최양호(崔養浩) 등이 종인들과 함께 재원을 마련하여 건립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최입지 묘 근처에 있다. 비좌와 비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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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구산교에서 회산동 회산로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 칠봉로는 성산면 산북리 지역과 구정면 제비리 지역을 연결하는 농·산촌 도로이다. 산간의 구릉 지역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도로가 지나는 구정면 제비리와 성산면 산북리 사이에 있는 칠봉산의 이름을 반영하여 칠봉로라고 이름하였다. 칠봉산의 산줄기에 봉우리 7개가 있고 산의 정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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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봉(七峯) 함헌(咸軒)의 위패를 모신 사당. 칠봉 함헌은 1546년(명종 1) 간성군수(杆城郡守), 1552년(명종 7) 서장관(書狀官), 1553년 이천부사(利川府使), 1555년 강릉교수(江陵敎授), 1562년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지냈다. 1552년 서장관으로 중국 남경(南京)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공자의 영정과 「행단도(杏亶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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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고속도로의 건설·유지·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도로공사의 강릉 지사. 1975년 10월 14일에 영동고속국도[새말~강릉 간 97㎞] 및 동해 고속 국도[강릉~묵호 간 30㎞]의 개통과 함께 연장 60.7㎞의 동해선 고속 국도의 관리를 위해 설립되었다. 1969년 2월 15일에 한국도로공사가 설립되고 1975년 10월 14일에 영동고속국도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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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인 홍인국(洪仁國)의 묘비. 홍인국은 남양홍씨 시조 홍은열의 21세손으로 생원이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 묘소 인근에 묘제를 위한 전청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홍인국의 아버지는 홍충양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이다. 부인도 강릉김씨이다. 후손 홍재민(洪在珉) 등이 홍인국의 가계와 행적을 정리하여 세웠다. 건립시기는 병자년 윤3월로 되어 있으나 정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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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여전교에서 홍제동 경강로에 이르는 도로. 회산로는 국도 35호선[경강로]에서 2002년 제비리 회산 방면의 노선을 분리하여 건설된 도로이다. 이 도로는 국도 35호선과 회산 방면에서 강릉 종합 유통 단지로 용이하게 접근하기 위한 진입로로 개설된 도로로 4차선의 넓은 도로이다. 회산동을 지나는 도로라고 하여 회산로라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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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학필(權學弼)[1894~196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권학필은 안동권씨이다.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맏형수의 손에서 자랐다. 그는 4형제의 막내로 성장하면서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리 돈독하였다. 11세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애통해 함이 남달랐으며, 형들의 가르침에 따라 상례를 치렀다. 이후 가세가 빈약하여 맏형을 따라 왕산면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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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李東奎)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이동규의 아버지 이선빈(李善彬)은 풍수에 조예가 매우 깊었다. 어느 해 한 상가(喪家)의 묘자리를 잡아 주었는데, 그 묘자리가 공교롭게도 그 상가의 종인 개산(介山)의 아버지 묘자리와 가까웠다. 그러자 개산(介山)은 이선빈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으며 이후 개산(介山)은 남몰래 이선빈을 독살하였다. 이동규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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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최기원(崔起元)은 금란반월회(金蘭半月會) 사석(師席)이었으며 강릉 향현사에 배향된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부모를 정성스럽게 섬겼다. 최기원이 8살 때 부친의 병이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소생케 하고, 이러한 효행이 나라에 알려져 1608년(선조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