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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선사시대부터 고려왕조의 통일 이전까지의 역사. 역사상의 고대라는 개념은 서양의 역사시대 구분을 원용한 것으로, 고대 노예제사회 혹은 엄격한 신분제사회의 성립과 해체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에서 문자기록 이전의 시기는 선사시대로, 문자기록 이후는 역사시대로 구분하는데, 고대라는 개념 속에는 선사시대를 포함하여 신분계층사회의 성립 과정과 고대적 사회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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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역사. 고대 말기 지방 호족의 성장으로 통일신라가 분열되면서 시작된 후삼국시대에서 음성 지역은 서기 900년경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에 예속되었다. 그후 폭정을 일삼던 궁예가 쫓겨나고, 서기 918년 왕건이 여러 지역 호족들을 규합하고 인심을 수렴하는 데 성공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음성군이 속한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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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驢興). 아버지는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이고, 아들은 조선 초기 문신인 민수산(閔壽山), 손자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민발(閔發)이다. 민백훤은 어렸을 때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전평리 새눈이에서 살았으며 1374년(우왕 즉위) 11월에 전공판서(典工判書)로 사신이 되어 밀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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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민의(閔懿)의 아들이다. 처는 배씨(裵氏)이며 아들로 민식(閔湜)·민공규(閔公珪)가 있다. 배씨의 동생은 유익겸(柳益謙)의 처가 되었다. 민영모는 인종·의종·명종 때 활동한 인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다. 민영모가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 부(賦)를 지었는데 격식에 맞지 않아서 동지공거(同知貢擧) 이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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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귀주대첩에서 공을 세워 음성백(陰城伯)에 봉해진 후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호부상서(戶部尙書) 박인석(朴仁碩)이다. 박서는 무과에 급제한 후 1202년(신종 5)에 아버지가 진주도 안찰부사(按察副使)로 도적을 평정한 공에 의해 내시(內侍)로 근무하게 되었다. 봉선고판관(奉先庫判官)에 임명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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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음성박씨의 선조. 본관은 음성(陰城). 고려 평장사(平章事) 박서(朴犀)의 후손이며 시랑(侍郞)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효자문이 남아 있는 박호원(朴浩遠)이 박순의 아들이며 대사헌까지 지낸 박숙채(朴菽蔡)가 손자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박유겸(朴惟謙)은 박순의 후손이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는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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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 횃불)으로, 낮에는 수(燧: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이다.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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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따라서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음성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면 용성리에서 석영질 암석으로 만든 찍개와 긁개, 밀개 등의 연모가 출토됨으로써 음성 지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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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지역에 언제 처음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청동기시대 구릉 위에 만든 마을의 둘레에 환호(環壕)를 두른 유적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 안팎으로 나무말뚝 따위를 죽 이어서 박아 만든 울타리, 곧 울짱의 형태와 같은 목책(木柵)을 두른 시설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책 이외에 흙으로 다져서 성벽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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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이들 놀이. 공치기로도 불리는 장치기는 한자어로 봉희(棒戱), 또는 타구(打毬)놀이라고도 불렀다. 금왕읍의 경우 주로 정월 대보름 전후로 행해졌는데, 농한기인 겨울철에 청소년들이 많이 하는 놀이였다. 1960년대까지도 많이 행해지던 놀이였으나, 오늘날에는 현대적인 스포츠에 밀려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장치기의 연원은 고려시대에 크게 성행하였던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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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군계(君啓). 판도판서(判圖判書) 조돈(趙暾)의 아들이다. 조인옥은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생원이 되고 1387년(우왕 13)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의 휘하에 종군하여 최영(崔塋) 등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남은(南誾) 등과 더불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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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 문신. 채정은 본래 음성의 이속(吏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였다. 고려 후기인 무인집권기 때 동도(東都)[지금의 경주]의 장서기(掌書記)가 되어 청렴하게 자기 직분을 다하고 백성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었다. 임기를 마치고 국학학정(國學學正)이 되었는데 칠재(七齋: 고려 예종 때 국자감에 설치한 일곱 과목의 전문 강좌)의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