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당진군 편이 실린 일제 강점기 이병연이 지은 지리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의 저자는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논산군 두마면 장전리에 거주한 유학자 이병연(李秉延)[1894~1977]이다. 『조선환여승람』은 공주 출신 유학자 이병연이 일제 강점기인 1910년부터 1922년까지 충청남도 당진, 서산 지역을 포함한 전국 129개 군의 인문...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소재했던 면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1919년 3월 10일에 일으킨 독립만세운동. 1919년 고종의 인산에 참례한 원용은(元容殷)은 귀향한 후, 면천 공립 보통학교[현 면천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0일, 4개 학년 90여 명을 인솔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하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주동자...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사회 운동가. 강선필(姜善弼)[1898~1976]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당진의 청년 운동과 신간회 당진 지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강선필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한국 전쟁 때 당진군 인민 위원장을 지낸 강선국(姜善國)이 동생이다. 강선필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
-
대호지면 적서리에 있는 차숙보의 며느리 경주김씨의 효열비. 경주김씨(慶州金氏)는 대호지면 적서리의 부호였던 차숙보(車淑輔)[1859~1945]의 며느리였다. 경주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고, 집안일은 물론 남편을 대신하여 인천을 자주 왕래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해난 사고로 사망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효열비를 세웠다. 경주...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학리에 있는 교하노씨의 효열문. 교하노씨의 본명은 노지임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남다른 효녀였다. 안씨 집안으로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자 노지임은 절망하여 끼니를 거르면서도 태연하게 집안일을 보살펴 이웃에서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주변에서 노씨의 재색을 아깝게 여겨 재가할 것을 권하고 다투어...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구서의 신도비. 구서(具緖)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다.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 세거지를 형성한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 면성 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의 고손자이다. 신도비의 내용에 따르면, 구서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조숙하였고, 어머니가 사망하자 슬픔과 예절로써 장례를 치르고 제수를 손수 만들어 마을에서는 효...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관료이자 번안 작가. 구연학(具然學)[1874~1940]은 한말에 군부 번역관과 내각 주사로 관리 생활을 하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군 서기와 면장을 지냈다. 구연학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중습(仲習)이다. 아버지는 구인식(具寅植),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구연학은 충청남도 해미군 염솔면 봉촌(鳳村)[...
-
1876년 개항 이후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진행된 근대적 교육. 개항 이후 근대화 물결의 도래와 함께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도 신학(新學)이 수용되었다. 비록 충청도의 서북단의 벽지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크고 작은 포구가 형성되었고 이곳을 통하여 신문물이 전래되었다. 근대 교육의 수용은 여러 형태의 학교를 곳곳에 설립하는 것으로 시작하였...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일(金道一)[1886~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김도일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규모,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김도일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27번지에서 태어났...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합덕면장. 김철호(金喆鎬)[1879~1960]는 일제 강점기에 합덕면장을 지냈다. 합덕 평야의 근간이 되는 합덕 연호(蓮湖)[합덕 방죽]을 중수하고 관리하였으며, 농업용수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김철호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김철호는 1912년 8월, 다섯 명의 동지와 함께 경비를 모아 합덕읍 합덕리에 있...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의병·독립운동가. 현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에서 출생한 남정(南正)[1880~1950]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국 광복을 위하여 국내에서 민족 종교인 청림교와 용화교를 앞세워 신도들을 규합하고 중국 만주 봉천 등지에서 독립운동의 선봉 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 교육 사업에도 많은 공헌을 했으며, 중국에서 폭탄 6개를 가지고...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1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주권 회복과 민족 생존권 확보를 위해 항쟁한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또한 3·1 운동은 신분과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이 참여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내재적 역량이 결집된 거족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19...
-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조직된 소작 조합. 당진 소작 조합은 당진군 합덕면과 우강면, 신평면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설립한 농민 단체이다. 이들은 재경 지주와 마름의 소작 농민에 대한 억압에 대하여 구체적인 농민 항쟁을 지도하였다. 또한 야학과 강습소를 설치하여 농민들에게 문맹 퇴치와 근대 의식을 심어 주었다. 소작 조합은 1924년 3월에 설립되었고...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군에 있었던 감리교회 청년 운동 단체. 당진 의법 청년회는 일제 강점기 당진 지역의 감리교회 청년 신앙 운동 단체로 발족하여 신앙 운동과 사회 운동 청년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3·1운동 이후 한국인에 대한 통치 방식을 헌병 경찰 통치에서 문화 정치로 변경하고 한민족에 대한 유화 정책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유...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조직. 당진 청년 동맹은 더욱 조직적이면서 강력한 청년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28년경 설립되었다. 또한 청년 동맹은 1920년대 당진 지역에서 활동한 여러 청년 단체를 통합하였다. 당진 청년 동맹은 일제의 간섭과 억압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당진 지역의 교육 운동, 주민 계몽 운동, 노동자 농민을 위한 각종 쟁의에 참여하는...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에 설립된 청년 단체.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 사상이 보급되면서 당진 청년들에게 계급의식을 고취시키고 노동자와 농민 해방을 강조하는 혁신 청년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와중에 당진 청년회는 1925년 당진 읍내에서 지역 유지층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1927년 신간회 당진 지회, 1928년 당진 청년 동맹을 통해 혁신 청년 단체와 통합하...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에 있는 축항 기념비. 당진 지역에는 많은 포구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활성화된 해상교통의 중심지는 송산면 당산리에 있던 오도항(鰲島港)이었다. 그것은 당진군의 중심 도시였던 당진 읍내리와 가장 가까운 항구였기 때문이다. 육로가 발달되지 못했던 시기의 당진 지역 주민들, 특히 당진 읍내리의 주민들은 오도항에서 출발하여 인천을 경유...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주민들이 1919년 4월 4일 천의장터에서 일으킨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례한 대호지면 유생 남주원·남상돈·남상락·남계창 등이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입수하여 귀향한 후, 대호지면 이인정 면장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도로와 가로수 정비’라는 명목으로 대호지면 9개 동리 주민을 동원하여, 4월 4일에...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에 있는 밀양박씨의 효열비. 밀양박씨(密陽朴氏)[?~?]는 박영석(朴永錫)의 딸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동래 정씨 가문으로 시집가 정창(鄭昌)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질병으로 사망하자 밀양박씨는 22살의 나이로 자결하여 남편의 뒤를 따랐다. 유림인 경학원(經學院)에서 밀양박씨를 표창하였고, 이를...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육영 사업가. 박병렬(朴炳烈)[1894~1940]은 일제 강점기 합덕읍 신리의 부호로, 현재의 신촌 초등학교 설립자이다. 박병렬의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하초(荷樵)이다. 아버지는 박용래(朴容來), 어머니는 나주 임씨(羅州林氏)다. 박병렬은 당진시 합덕읍 신리에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조부모 슬하에서 성장하...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쾌인(朴快仁)[1898~1950]은 1919년 서울 경성 고등 보통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박쾌인은 일제 경찰에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9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후 귀향하여 당진 향교 명륜당에서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 박쾌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쾌인은 충청남도 당진시...
-
일제 강점기 동아 일보사가 주도하고 학생들이 실시한 당진 지역의 계몽 운동. 동아 일보사는 '민중 속으로 가자.'라는 뜻의 러시아어인 ‘브나로드(v narod)’를 내걸고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전국적 규모의 문맹 퇴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운동의 주체인 학생들은 하기 방학을 활용하여 당진 지역으로 귀향하였고, 자택과 공회당을 활용하여 문맹인 주민들에게 한글과 숫자를...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석문공립보통학교에서 1930년 1월에 일어난 만세 격문 사건.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이 발생한 이후, 학생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930년 1월 15일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에 있는 석문공립보통학교[현 석문 초등학교]에서 ‘만세 불러’라는 격문이 발견되었다. 격문을 배포한 인물은 신간회 당진 지회에서 활동하던 인원수와 석문공립보통학교 훈...
-
충청남도 당진 지역 소작 농민이 지주에 대항하여 소작 관계 개선을 위해 일으킨 농민 운동. 소작 쟁의는 재경 지주와 중간 관리인인 마름의 수탈에 대항하여 발발한 소작 농민의 운동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지주와 친일 지주 등은 고율 소작료를 징수하였고, 새로운 계약 방식을 이용하여 소작 농민의 소작권을 박탈하였다. 이에 농민들은 1920년대 조직된 당진 소작...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봉운(宋逢云)[1891~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송봉운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아버지는 송일기,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송봉운은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사성리 205번지...
-
충청남도 당진에서 1927년 조직된 신간회의 지회. 신간회 당진지회는 1927년 12월 6일 민족 협동 전선의 노력으로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였다. 시기상으로는 충청남도 지역 7곳 중에서 홍성 지회, 공주 지회, 예산 지회에 이어서 네 번째로 결성되었다. 당진지회는 1931년 3월 해소될 때까지 홍성 지회와 함께 충남의 대표적인 신간 지회로 활동하였다. 신간회...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천도교 간부이자 독립운동가. 신태순(申泰舜)[1884~1929]은 충청남도 당진시 당진동 대덕리 토골 853번지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고향에서 한학을 배운 후 일찍이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04년 김현구, 박용태 등과 함께 천도교 당진 교구를 창설하는 데 공헌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고향을 떠나 상경하였다. 이후 당진...
-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 단체. 신합청년회(新合靑年會)는 1924년 3월,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면에서 결성되었다. 단체의 명칭은 신평면과 합덕면의 줄임말로 추정되며, 회원은 신평면·합덕면·우강면 지역에서 활동하던 농민 운동가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지역 유지 중심의 청년 운동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고, 전국적인 청년 단체와 연결하여 조직적...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개인 가옥. 심재영 고택은 심훈(沈熏)의 맏조카 심재영(沈載瑛)[1912~1995]이 1930년에 당진에 내려와 농토의 관리사에서 기거하며 1931년에 지은 집이다. 건평 45평 정도의 기와집으로 당시의 농촌 실정에서 보면 호화 주택이라 할 수 있는데, 집이 완공된 1931년에 심훈의 부모가 이곳으로...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에서 장편 소설 『상록수』를 집필한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 독립유공자. 심훈(沈熏)[1901~1936]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교동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 고등 보통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하여 투옥되었다가 11월에 출옥하였다.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귀국하여 『동아 일보』와 『조선 중앙 일보』 기자로 생활하며 다수의 작품을...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한학자이자 민족 운동가. 안만수(安晩洙)[1879~1949]는 한말에 태어나 성균관 박사(成均館博士)를 역임하고 법관 양성소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고향으로 낙향하여 지역 사회의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안만수의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미산(眉山)이다. 아버지는 안종선(安鍾善), 숙부는 함재(涵齋) 안종화(安鍾和)이다....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안민학의 신도비. 안민학(安敏學)[1452~160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이습(而習), 호는 풍애(楓厓)이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당대의 대유학자들인 이이, 정철, 이지함, 성혼, 고경명 등과 교유하였다. 사헌부 감찰, 대흥 현감을 시작으로 아산·현풍·태인 등의 현감을 지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군인. 유해준(兪海濬)[1917~1986]은 일제 강점기 중국으로 망명하여 홍진의 한국 독립당에 입당하였고, 1940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한국 광복군 창설에 참여하여 항일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 뒤 일본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귀국하여 국군 창설에 가담하였고 1967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유해...
-
일제 강점기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달준(李達俊)[1881~1919]은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 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이달준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명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이달준은 지금의 충청남도 당...
-
1920년대초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 단체. 1919년 3·1 운동의 결과 전국적으로 청년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전개되었다. 청년들은 각 지역의 유지와 지식인들을 지칭하는데, 이들은 어린이와 주민에게 신문화를 알려주고 문맹을 퇴치하며 근대 의식을 주입하는 데 노력하였다. 1920년대 초기, 충청남도 당진에서 설립된 이문 구락부(以文俱樂部)도 대표적인 청년 단체였다....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자선 사업가. 이성근(李性根)[1896~1973]은 신평면을 중심으로 당진 지역 교육과 사회 부문에서 활발한 기부 활동을 전개한 자선 사업가이다. 이성근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군석(李君石)[또는 이은범(李殷範)], 어머니는 정희모(鄭熙模)이다. 이성근은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에서 태어나 어릴...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렬(李定烈)[1900~1962]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바 있고, 자신의 사유지를 지속적으로 매각하면서 그 금액을 상해의 이시영, 김구 등에게 직접 전달하여 독립 자금으로 충당하도록 하였다. 또한 1932년부터 평안북도 귀성과 삭주에서 광산을 경영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언론인·정치가·종교인·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종린(李鍾麟)[1883~1950)은 천도교 출신의 종교인이자 정치가였다. 1888년 혜사(蕙史) 최현구(崔賢九)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상경하여 1907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한림학사를 지내던 중 시세가 위태로워지자 관직을 버리고 족형 이종일이 운영하던 『제국신문』의 기자로 언론인 생활...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혁(李種赫)[1892~1935]은 대한 제국 무관 학교 재학생으로 있다가 일제의 억압으로 폐교되자 일본 육군 사관 학교에 편입해 1915년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군 중위로 복무 중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 투신하였다. 이종혁은 만주 지역의 육군 주만 참의부 군사 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결국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종혁...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만(林錝萬)[1892~1933]은 1892년 8월 21일 당진시 신평면 초대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당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이후 정학원 등과 함께 합덕, 범천, 신평 청년들의 조직인 신합 청년회를 조직하여 청년 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당진 소작 조합을 결성하였으며...
-
근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한학자. 정재학(鄭在學)[1888~1949]은 화서학파 존재(存齋) 유진하(兪鎭河)[1846~1906]의 제자로, 출신지인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에 서당을 세우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정재학의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도명(道明), 호는 방재(方齋)이다. 아버지는 정문환(鄭文煥), 어머니는 무안 박씨(務安朴氏...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학원(鄭鶴元)[1892~1933]은 당진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면천 보통학교 1회 졸업생으로 1915년 공주 농업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미곡상과 사립 보통학교 교사 등을 지냈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당진 소작 조합을 창립하여 소작 쟁의를 조직하였으며, 민족 협동 전선 신간회 당진 지회를 조직...
-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청년들이 주도하여 1925년에 결성한 사상단체.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신합 청년회 운동가들은 1925년경 충청도 전체를 대표하는 사상단체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 결과, ‘제일선 동맹(第一線同盟)’을 대전에서 창립하였다. 제일선 동맹은 각 지역을 이동하며 매월 월례회를 개최하고 각 지역 청년들의 사상을 교육하며 청년 운동을 지도하였다. 하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최병주의 효자문. 최병주(崔秉周)[1872~1952]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534번지에서 태어났다. 최만보라고도 한다. 최병주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장가든 동생이 일찍 사망하자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집을 바라보며 울었다. 어느 날 동생 집을 볼 때마다 안타까우니 안 보이게 옮겨 달라고 하였다...
-
1925년 2월 충청남도 당진군 신합 청년회에서 추진한 청년 대회. 당진의 혁신 단체인 신합 청년회에서는 충청 지역 청년 단체의 전체적인 조직화를 위해 충청청년대회를 기획하였다. 신합 청년회는 1925년 2월경, 개최 준비 위원을 선정하고 사무소를 천안 읍내에 개설하였다. 이어서 충청남도 각 지역에 선전대를 파견하여 상호 연합의 당위성을 역설하였고, 충청북도 지역과의 연...